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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목 ‘예비비 쪽지 결백’ 주장…‘내란특검’ 필요성 키웠다 본문
접은 종이→한 장짜리 자료→쪽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는 12·3 비상계엄 선포 직후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비상입법기구 예비비 확보’ 지시 계엄 문건을 받았다. 국회 해산을 전제로 한 지시여서 내란죄 구성 요건인 국헌 문란 목적을 입증할 명백한 증거 중 하나다.
내란 중요임무종사 혐의로 기소된 김용현(구속기소) 전 국방부 장관의 공소장에는 윤 대통령이 최 권한대행에게 건넨 이 문건이 특히 중요하게 다뤄진다. 공소장에 적힌 문건 내용은 △예비비를 조속한 시일 내 충분히 확보하여 보고할 것 △국회 관련 각종 보조금·지원금, 각종 임금 등 현재 운용 중인 자금 포함 완전 차단할 것 △국가비상입법기구 관련 예산을 편성할 것 등이다.
검찰은 이 문건 내용 등을 근거로 “국회를 무력화시킨 후 별도의 비상입법기구를 창설하여 헌법상의 국민주권제도, 의회제도, 정당제도 등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려는 국헌 문란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켰다”고 했다.
18일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윤 대통령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에서 판사가 비상입법기구 창설 의도를 물은 것이나, 윤 대통령이 ‘내가 썼는지 김용현이 썼는지 가물가물하다’며 핵심 혐의를 떠넘기려는 듯한 답변을 한 이유이기도 하다. 김 전 장관 쪽은 20일 문건 내용을 김 전 장관이 작성했다고 했다. 이 주장이 맞다면 ‘김용현 작성→윤석열 검토→최상목에 전달’ 흐름이 된다.
조태열은 “대통령 지시”, 최상목은 “참고 쪽지”
이 문건의 존재는 12·3 내란사태 열흘 뒤인 지난달 13일 국회 긴급 현안질문에서 처음으로 드러났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비상계엄 선포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윤 대통령으로부터 외교부 장관이 취해야 할 조치 지시사항이 적힌 종이 한 장을 받았다”고 했다. 주요 국무위원에게 구체적 계엄 지시사항이 따로 내려갔다는 사실을 처음 밝힌 것이다. 조 장관은 지시 내용에 대해 “워낙 충격적이었다. (문건을) 들고나오지도 않고 놓고 나왔다”고 했다.
그러자 기획재정부 장관인 최 권한대행에게도 ‘윤 대통령으로부터 문건을 받았느냐’는 질문이 갔다.
“참고하라고 접은 종이를 주셨다.”
내란죄 핵심 혐의를 담고 있는 이 문건에 대한 최 권한대행의 첫 표현은 “접은 종이”였다. 그는 “당시 무슨 내용인지 모르고 경황이 없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국회에서 (계엄 해제) 의결 장면을 보고 나서, 나중에 그 문건이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 사실은 직원한테 맡겨 놓은 상태였다”고 했다.
‘대통령이 준 문건을 보지도 않고 직원에게 넘겼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질타에도, 최 권한대행은 “한 장짜리 자료가 접혀 있었다. 나중에 기재부 차관보가 ‘아까 주신 문건이 있다’고 리마인드시켜 줬다. 그래서 그때 확인을 했다”고 했다.
비상계엄 선포 전후 자신에게 유리한 대화 내용 등은 자세히 복기하던 최 권한대행은, 정작 문건을 받은 이후 상황과 문건 내용에 대해서는 중언부언하거나 일부만 기억난다고 했다. 거듭 질문을 받고서야 “아마 제가 기억하기로는 ‘비상계엄 상황에서 재정자금을, 유동성 같은 것 확보를 잘해라’ 그 문장만은 기억이 난다”고 했다.
최 권한대행의 답변은 ‘비상입법기구 설치 예비비’가 아닌 계엄 선포로 인한 대내외 경제 충격을 완화할 방안을 대통령이 지시했다는 취지로 받아들여졌다. 나흘 뒤인 12월17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긴급 현안질의에서도 “정확한 단어는 생각 안 나고 재정자금 확보 정도만 기억난다”고 했다.
최 권한대행은 해당 문건을 수사기관에 제출했다면서도, 그 내용에 대해서는 ‘문건을 무시하고 보지 않았다’는 취지의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을 반복했다. “핸드폰을 꺼내다가 손에 잡히는 걸 느끼고, 아까 뭘 받았다는 생각을 하고 옆에 차관보한테 가지고 있으라고 줬다” “문건을 읽어 본 건 아니고 문건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는 식이다.
‘대통령 지시사항을 안 보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따지자 “지시사항이 아니고 참고하라고 주셨다”고 했다. 국가 비상사태라며 계엄을 막 선포한 대통령이 국가 재정을 책임진 국무위원에게 ‘한 번 읽어보라’는 수준의 참고자료를 줬다는 주장이다. 조태열 장관이 “대통령으로부터 지시사항을 받았다”고 명확히 말한 것과 대조된다. 최 권한대행은 “계엄을 반대했기 때문에 받은 자료에 대해 관심도 없고 열어 볼 의사도 없었다” “언뜻 봤더니 비상계엄을 전제로 한 조치 사항 같은 것으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무리한 계엄 연결고리 끊기…“오히려 의심 키웠다”
최 권한대행은 15일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 출석하지 않았다. 기재부는 대신 “최상목 부총리는 대통령실에서 전달받은 예비비 확보 관련 쪽지는 무시하기로 하였으며 수사 과정에서 수사기관에 제출했다”는 입장을 국회에 보고했다.
기재부는 내란죄 핵심 물증인 비상입법기구 예비비 확보 지시 문건의 전달 주체를 ‘대통령’에서 ‘대통령실’로 뭉뚱그렸다. 결과적으로 ‘윤석열→최상목’ 직접 지시 구도가 흐릿해졌다. 문건 내용에 대해서도 공소장에 등장하는 ‘비상입법기구’란 표현은 쓰지 않고 ‘예비비 확보’라고만 기재했다. ‘문건 내용을 모른다’는 최 권한대행 기존 발언과 수위를 맞춘 것이다. 계엄 지시사항 문건의 명칭 역시 최종적으로 대통령이 슬쩍 건넨 느낌의 “쪽지”로 ‘공식화’했다.
법조계에서는 “접은 종이”로 시작된 최 권한대행의 지난달 국회 발언부터 “대통령실 쪽지”라는 기재부 국회 업무보고 내용 모두 사실인정 범위와 단어 선택, 표현 수위 등이 사전에 법률적 검토 등을 거쳤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예비비 확보 뒤 보고” “국회 자금 완전 차단” 등 윤 대통령의 서슬 퍼런 계엄 지시사항과 최 권한대행을 최대한 분리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대통령 관련 사건 수사 경험이 있는 검찰 출신 변호사는 20일 “최상목 대행은 ‘대통령이 준 문건을 보지 않고 윤인대 기재부 차관보에게 맡겼다’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고, 윤 차관보도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최 대행이 ‘문건 내용을 검토해 보라’며 차관보에게 지시해 놓고는, 내란 사태로 번지자 나중에 서로 말을 맞춘 것은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평소 윤 대통령의 경제정책 방향에는 반대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끌려만 가던 최 권한대행이, 대통령의 계엄 관련 지시를 읽지도 않고 무시했다며 ‘결백’을 주장한 것이 오히려 의심을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국무위원 일부가 반대했더라도 계엄 선포 직후에는 대규모 병력을 동원한 군 통수권자의 계엄이 실패할 것이라고 본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언론사 단전·단수 협조 지시와 유사한 형태로 기재부 내부에서 예비비 확보 지시가 전달되고 검토됐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해야 한다”고 했다.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12·3 비상계엄 선포 직후 허석곤 소방청장에게 ‘경찰청에서 한겨레 등 주요 언론사에 대한 단전·단수 협조 요청이 들어오면 이에 응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허 청장은 국회에서 ‘이영팔 소방청 차장과 상의만 하고 후속 조치는 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허석곤·이영팔 두 사람 모두 황기석 서울소방재난본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경찰청에서 협조 요청이 오면 잘 협력해달라’ 등의 주문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상민 전 장관을 윤 대통령의 내란죄 공범으로 입건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허석곤(14일)·황기석(16일)·이영팔(17일)을 불러 이 전 장관의 단전·단수 지시 혐의를 조사했다.
‘내란 특검’이 최상목·기재부 수사해야
12·3 내란사태 관련자들의 수사·기소 속도에 비춰볼 때 최 권한대행과 기재부 관련 수사는 결국 ‘내란 특검’이 맡을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법조계에서 나온다.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데다, 조직 논리가 강한 기재부 특성을 고려할 때 ‘윤석열 탄핵 결정’ 이후에나 수사와 내부 진술 확보 등이 용이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1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내란 특검법은 △헌법기관인 국회의 능력을 마비시키려고 한 혐의 △이에 관여하거나 사전에 모의한 혐의 △이 사건 수사과정에서 인지된 사건 등을 수사 대상으로 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힘 쪽 요구사항을 대폭 수용한 내란 특검법에 대해서도 최 권한대행이 ‘여야 합의’를 거론하며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본다. 수사 대상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셈이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20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최 권한대행에게 내란 특검법 수용과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을 요구하며 면담을 제안했다. 박 원내대표는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헌정 질서와 민주주의 수호 책임과 의무가 있음에도, 헌법과 법률을 지키지 않아 사실상 무정부 상태, 무법천지 상황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고 비판했다.
정진욱 민주당 원내대표 비서실장은 전날 서울서부지법 폭동사태 발생 8시간이 지나서야 최 권한대행이 ‘엄정 수사’ 지시를 내린 것을 비판하며 사과를 요구했다. 초유의 법원 침탈 폭동이 발생했는데도 대통령 권한대행이 뒷북 대응한 의도가 무엇이냐고 따진 것이다. 경찰은 최 권한대행 지시가 나오기 1시간 전, 이미 ‘폭동 관련자 전원 구속수사 방침’을 밝힌 상황이었다.
앞서 최 권한대행은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 국면에서는 사실상 영장 집행에 반대하며 경호처는 물론 경찰에도 ‘충돌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고 선제적으로 지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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