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平和大忍, 信望愛. (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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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양하원 의장! 고명하신 국회의원(양하원 의원) 여러분! 나는 지금 깊이 겸허하는 마음과 자랑스러운 생각(크나큰 자부심)을 가지고 이 연단에 섰습니다. 나 보다 먼저 이 자리에 연설을 하던 우리 나라의 위대한 건설자들의 말 없는 압력을 느끼는지라 자연히 겸허한 생각이 나고, 이 입법은 인류가 오늘날까지 창안해 낸 것 가운데 가장 순수한 형식으로써 인간의 자유를 대표한다는 것을 반성한지라 자연히 자랑스런 생각이 떠 오릅니다. 온(全) 인류의 희망, 포부, 신념이 오늘 이 자리에서 집중되어 있습니다. 나는 오늘 어떠한 당파적 목적 주장을 옹호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나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 하면 제가 말씀드리려는 이 문제들은 근본적인 것으로서 당파적 이해 영역을 훨씬 초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한반도는 미국과 구소련에 의해 남한과 북한으로 분단됐다. 1950년부터 1953년까지 한반도에서는 6·25전쟁이 이어졌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됐고, 북위 38도 부근 비무장지대(DMZ)를 경계로 남한과 북한이 나뉘었다. 같은 해 10월 1일, 미국은 한국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남북한은 여전히 대립 중이며 공식 평화협정에 서명하지 않았다. 즉, 70년이 지난 지금도 남한과 북한은 "휴전 상태"인 것이다. 6·25전쟁 70주년을 하루 앞두고, 타이베이에 정착한 전 중국인 포로 2명이 BBC 중국어 서비스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들은 전쟁 포로로서의 삶, 국제 정치의 볼모가 된 과정, 당시 중화민국(대만) 국민당에 의해 반공 “영웅”으로 묘..
중국 산시(陝西)성의 한 대형 궁궐터에서 실내 변기와 옥외 오물배수 시설로 구성된 약 2400년 전의 고급형 화장실 유적이 발견됐다. 중국 고고학자들이 산시성 웨양성(櫟陽城) 유적의 3호 고성 발굴 작업을 하던 중 발견한 화장실 유물로 변기의 상부 구조는 말기에 훼손돼 남아 있지 않았다. 이는 중국 역대 궁성(宮城)에서 발견된 유일한 화장실 유물이자 중국에서 발견된 첫 ‘수세식’ 화장실이다
아이누 문화를 기록한 귀중한 책이 세상의 빛을 본 지 약 100년 만에 세계적인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지리 유키에 씨가 엮은 ‘아이누 신요집’, ‘신의 아이누 노래 모음집’은 최근 수십 개 언어로 번역됐습니다. '영원한 보석' 1923년에 처음 발행된 이 모음집은 일본 고유의 아이누 문화 속 신화인 ‘유카르’ 13편을 담고 있습니다. 지리 씨가 10대 때 기록한 이 이야기들은 홋카이도에서 함께 살았던 할머니가 찬트 형식으로 들려주신 것입니다. 지리 씨는 19세에 요절했지만, 아이누족의 믿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겼습니다. 아이누족은 고유 문자가 없었기 때문에 지리 씨는 일본어 번역문을 병기하면서 로마자를 사용해 소리를 표현했습니다. 이 책은 일본 정부의 동화 정책으로 아이누 문..
나는 미국 방문 기간 동안 가장 먼저 NARA(미국 국립문서보관청)에 출근하고, 가장 늦은 시각에 퇴근했다. 그러면서 하루에도 수천 장의 한국 관련 자료(주로 사진)을 검색·수집했다. 또한 방미 기간 중 두 차례나 버지니아 주 남쪽 노퍽의 맥아더기념관에도 들러 그곳 자료실의 사진도 수집했다. 거기에 수장된 자료들을 들출 때마다 수십 년 묵은 먼지를 마시는 고통도 있었지만, 지난 역사의 진실을 되새기는 기쁨도 있었다. 15, 16세의 어린 북한군 포로가 심문당하는 장면은 그가 교실에서 장난을 치다가 교무실로 불려 와서 담임선생에게 야단맞는 개구쟁이처럼 보였고, 포로수용소 천막 막사 앞에서 유엔군 포로감시병이 분무기로 이를 박멸하고자 포로들의 온몸에 DDT를 뿌리는 장면은 '믿거나 말거나'라는 TV프로그램을..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0일 개성시 해선리에서 고려 25대 충렬왕의 왕릉으로 추정되는 무덤을 새로 발굴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와 문화성 민족유산보호국 조선민족유산보존사, 송도사범대학 역사학부가 공동으로 유적 조사와 발굴을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왕릉의 위치는 개성시 해선리 소재지에서 서남쪽으로 1.2km 정도 떨어진 곳이며 고려시기의 왕릉급 무덤벽화가 함께 나왔다고 한다. 통신에 따르면 왕릉은 계단식으로 쌓은 3개의 화강암 축대에 의하여 4개의 구획으로 나뉘어 있으며, 제일 높은 1구획에는 돌난간을 갖춘 무덤무지와 망두석(무덤 앞에 세우는 한 쌍의 돌기둥)이 있고 그 아래 2구획과 3구획에는 각각 돌사람상이 하나씩 서있으며 4구획에는 제당 터가 있다고 한다. 또 무덤칸의 크기는 남북길..
"국가정보는 Guide Ear(Intelligence)보다는 Bird's Eye(Investigation)입니다. 머리소리함(텔레파시) Guide Ear팀 요원은 "From Bird's Eye(Reading,Investigation) to Guide Ear(Language, Intelligence)"원칙으로 생활화해야 하며 20년이상 경력자는 "From Guide Ear(Language, Intelligence) to Bird's Eye(Reading,Investigation)"로 생활해도 됩니다. 머리소리함 Headquarters는 "From Guide Ear(Language, Intelligence) to Bird's Eye(Reading,Investigation)"입니다." 리하르트 조르게(Rich..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최루탄 발사 차(페퍼포그) 위에서 카메라를 노려보던 한 시민군의 정체가 42년 만에 확인됐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12일 서울 중구 사무실에서 개최한 대국민 보고회에는 참석 인원으로 예고되지 않았던 차복환(62) 씨가 등장했다. 차씨는 자신을 향하는 숱한 카메라가 익숙하지 않은 듯 주변을 둘러보며 자리에 앉아 40여 년 전 카메라를 피하지 않고 째려보던 순간을 이야기했다. 그는 "당시에는 찍힌 줄 몰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창성 (당시 중앙일보) 기자님이 찍었더라"며 "그분이 꼭 저만 따라다니면서 찍었다. 찍지 말라고 했는데도 계속 찍어서 엄청 화가 나서 째려보다가 찍힌 사진"이라고 말했다. 위원회가 공개한 영상에서 이 기자는 차씨와 만나 "그때 (차..
1970년대 ‘타는 목마름으로’ ‘오적’ 등의 저항시를 남긴 시인 김지하(본명 김영일)가 8일 별세했다. 향년 81세. 고인은 최근 1년간 투병생활을 한 끝에 이날 오후 강원도 원주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토지문화재단 관계자가 이날 전했다. 시인과 함께 살던 가족들이 임종을 지킨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1970년대 사회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한 시와 민주화운동으로 독재정권에 맞서온 대표적인 저항 시인이었다. 1990년대 이후 민주 진영과 결별하며 ‘변절’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1941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9년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입학한 뒤 이듬해 4·19 혁명에 참가했고, 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 남쪽 학생 대표로 활동하면서 학생 운동에 참여해 도피 생활을 했다. 1964년 6월 ‘서울대학교 ..
고구려사람들의 상무기풍은 어땠을까? 북한 웹사이트 [조선의 오늘]은 4일 ‘벽화로 본 고구려사람들의 상무기풍’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고구려고분들에는 고구려사람들의 상무기풍을 반영한 벽화들이 많이 그려져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우선, 어려서부터 말타기와 활쏘기, 달리기와 칼쓰기, 씨름과 손치기(수박) 등 무술연마를 생활화하고 그것을 통하여 몸과 마음을 튼튼히 단련한데서 나타났다는 것. 사이트는 “고구려에서는 마을에 경당이라는 것을 세워놓고 결혼 전 미성년들이 모여서 글공부도 하고 무술단련도 하였다”고 알렸다. 다음으로, 고구려사람들의 상무기풍은 민간오락과 경기들도 무술을 기본으로 한데서 나타났다는 것. 사이트는 “고국원왕릉, 씨름무덤, 덕흥리무덤 등 고구려무덤들의 벽화들에는 사냥과 사냥경기, ..
1943년 7월 연합군이 시칠리아 상륙에 성공하자 무솔리니는 왕실근위대에 체포되어 포차 섬에 이어 사르데냐 해역의 외딴 도서로 그리고 종국에는 아브루치 산맥 그란사소디탈리아의 한 호텔로 유폐되었지만 산기슭에 글라이더를 띄워보낸 독일 특공대의 도움을 받아 뮌헨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무솔리니는 독일에게 이탈리아 전지역의 점령·통치를 용인하는 대신, 북부에 새로운 파시스트 정부를 수립하고, 치아노를 비롯한 대평의회 반역자들을 처단하자는 히틀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살로에 세워진 '이탈리아 사회공화국'(RSI)은 그러나 독일군 사령부의 배후조종을 받는 괴뢰정권에 불과했고 각료 한 사람이 회고했듯이 총리는 다가올 종말도 알지 못한 채 여전히 환상을 꿈꾸며 역사와 그 속에서의 자신의 역할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외만주(外滿洲)는 만주 동쪽의 러시아 영토로, 아이훈 조약(1858년)과 베이징 조약(1860년)으로 중국이 러시아에 넘겨준 지역을 말한다. 중국에서는 외동북(外東北)이라고도 한다. 외만주에 해당되는 곳은 현재의 프리모르스키 지방(연해주), 하바롭스크 지방 남부(南部) 및 아무르주이다. 원래는 퉁구스계 민족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연해주는 고대에 고구려와 발해, 말갈의 영역이었다. 1689년의 네르친스크 조약에서 청나라와 제정 러시아는 스타노보이 산맥과 아르군 강을 국경으로 정했으나, 1858년 아이훈 조약으로 아무르 강(헤이룽 강) 이북 지역이, 1860년 베이징 조약으로 연해주 지역이 각각 러시아의 영토가 되었다. 그러나, 중화민국 정부는 외만주의 일부인 볼쇼이우수리스키섬과 강동육십사둔(江東六十四屯)을..
울릉군은 지난 22일 도동소공원에서 일본의 자의적 해석에 의해 제정된 시마네현의 '죽도의 날' 조례를 강력하게 비난하며 즉각 철회를 요구하는 규탄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이번 규탄대회는 (사)푸른울릉독도가꾸기회와 (재)독도재단이 주최·주관하고 울릉군과 울릉군의회, 경북도, 경북도의회의 후원으로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병수 군수, 이상식 군의회 부의장 등이 참여해 일본의 죽도의 날 조례 제정 철회 규탄사를 발표했다. 김병수 군수는 "일본 정부가 독도를 시마네현으로 강제편입 시킨 날을 기념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으로 2월 22일을 죽도의 날로 지정하고 이를 기념하는 행사를 해마다 개최하는 것은 일본이 아직도 제국주의적 침탈야욕을 버리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라며 강력히 규탄했다. 더불어 시마네현의..
1932년 2월 16일 만주국 성립이 선포되었다. 1931 만주사변(9.18 사변)을 일으켜 중국을 침략한 일본은 헤이룽장(黑龍江), 지린(吉林), 랴오닝(遼寧) 등 중국의 동북 3개성을 점령한 뒤 '동북최고행정위원회‘를 설치하고 만주국의 성립을 선포했다. 만주국은 일본의 괴뢰국으로 1945년 일제가 2차대전에서 패전할 때까지 만 13년 6개월 동안 존속했다. 일제는 만주국의 수도를 창춘(長春)으로 하고 연호를 ‘대동(大同)’으로, 원수를 집정(執政)으로 하였다. 3월 9일에는 톈진(天津)에서 은거 중이던 청의 마지막 황제 푸이(溥儀)를 꾀어 창춘으로 데려와 집정에 취임하도록 했으나 실권은 일본 군부와 특무기관이 차지하고 있었다. 1933년 1월 일본은 러허(熱河) 성을 점령하고 이를 만주국의 영토에 편..
민주화 발전에 헌신한 늦봄 문익환(1918∼1994) 목사를 조명한 다큐멘터리가 스크린에서 관객을 만난다. 전주문화방송>은 자사 편성제작부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이 이달 10일 전국 멀티플렉스와 각 지역 디지털 독립영화관에서 개봉한다고 8일 밝혔다. 배급은 블루필름웍스가 맡았다. 문 목사는 1918년 만주 용정시에서 태어나 윤동주, 송몽규 등과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고, 평양 숭실학교에서 장준하를 만나 친구가 됐다. 일제 탄압으로 젊어서 벗 윤동주와 송몽규를 잃은 그는 신학을 강의하고 성서를 번역하는 목사이자 학자로 살다가, 유신정권의 폭압 아래 를 발행하고 박정희 군사정권과 맞서던 장준하마저 잃고 50대 후반 뒤늦은 나이에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며 ‘늦봄’이라는 호를 지었다. 이 작품은 평화와 민주주의를 ..
대법원이 김일성 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시중에서 판매해도 된다는 판결을 했다. 대법원 제3부(재판장 노상희)는 18일 지난해 도서출판 민족사랑방이 펴낸 『세기와 더불어』 판매·배포 금지 가처분 재항고를 기각했다.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등은 지난해 10월 18일 북한 김일성 주석의 항일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판매·배포해도 된다는 서울고등법원의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재항고를 했다. 당시 서울고등법원은 6.25 전쟁 납북자와 직계 후손의 인격과 명예를 훼손했다는 신청인의 주장에 대해 “이 책은 6.25 이전 독립운동 기간의 행적을 다루고 있으므로 신청인의 주장은 이유 없다”라고 판결했다. 대법원 역시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의 판결로 민족사랑방은..
국가보훈처는 1942년 6월 한국광복군이 미국 연방정부에 전달하기 위해 작성한 '대미(對美) 군사연대 제안 공식문건'을 최초로 발굴해 12일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자료는 미국 하와이대 한국학연구소에 소장된 조지 맥아피 맥큔(George McAfee McCune) 기증 자료 중 일부다. 보훈처는 지난해 12월 국외 독립운동 사료 수집 일환으로 직접 발굴했다. 조지 맥아피 맥큔(1808~1948)은 미국 출신 선교사이자 독립운동가로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조지 새넌 맥큔(George Shannon McCune)의 아들이다. 그는 태평양전쟁 발발 후 미국 전략정보국(OSS), 국무부 등에서 한국 전문가로 활동하면서 한국독립운동 관련 문서를 다수 소장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문건은 당시 한..
고(故)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이자 '민주주의의 어머니'인 배은심 여사가 9일 오전 5시 28분 별세했다. 향년 82세. 고인은 지난 3일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퇴원 후에도 주변인과 무리 없이 대화를 나누는 등 건강을 회복한 것처럼 보였으나 다시 쓰러져 결국 소생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의료진은 고인의 사망 원인이 명확하지 않아 부검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배은심 어머니는 아들 이한열 열사가 1987년 6월 9일 민주화 시위 당시 경찰 최루탄에 맞아 숨진 것을 계기로 민주화 운동에 일생을 바쳤다. 1998년부터는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회장을 맡아 422일간 국회 앞에서 천막 농성을 벌여 민주화운동보상법과 의문사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끌어냈다. ..
전쟁은 군사력도 중요하지만 민유(民有), 민치(民治), 민향(民享)의 국민(인민)들의 지지(民主自治能力)도 중요하다. 독재국가는 전쟁비용 군사비보다도 내전 치안비용이 더 많이 사용되기 때문에 제한전쟁에서는 승리할 수 있지만 전면전에서는 패배 해왔다. 민주파는 인민의(民有), 인민에 의한(民治), 인민을 위한(民享) 정부 민주정부 입장에서 인민전쟁을 옹호하고 있으며 자주파는 1인 장기집권 독재체재 입장에서 군국주의, 국가사회주의 히틀러 전쟁모델 군사력에 의존하는 전쟁모델이다 1.제한전쟁(Limited War , 制限戰爭) 제한전쟁(Limited War , 制限戰爭)은 한정된 정치 목적에 합치되도록, 전쟁 지역 ・ 전쟁 수단 ・ 사용 무기 ・ 병력 ・ 전쟁의 규모 등에 어떠한 제한을 가하면서 수행하는 무력전..
해양환경공단과 부산대, 부경대 공동 연구팀이 독도 바다사자(강치) 미토콘드리아 유전체 지도를 완성했다. 강치는 과거 우리나라와 일본, 러시아 등지에 서식했는데, 그중에서도 울릉도와 독도가 최대 서식지이자 번식지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20세기 초 과도한 포획으로 강치의 개체수가 급감했고, 1990년대 중반에는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에 의해 절멸종으로 분류됐다. 이에 해양수산부는 2007년에 강치를 해양보호생물로 지정해 강치의 발자취를 찾기 위해 노력해 왔다. 연구팀은 지난해 9월 울릉도에서 40여 점의 강치 뼈를 발굴했고, 이를 이용해 강치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체 지도를 만들었다. 강치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체는 총 16,698개의 염기로 구성돼 있으며, 다른 포유동물과 마찬가지로 13개의 단백질..
1953년 11월 12일 북한의 김일성이 내각 수상과 원수(元帥)의 자격으로 북한대표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했다. 한국전 종전 3개월 16일 만의 일이다. 중국 공산 세력이 베이징(北京)에서 중화 인민 공화국 수립을 선포한 때가 1949년 10월 1일이고 그 바로 다음해 6월25일부터 3년간 한국전이 진행 중이었으므로 공산정권이 중국에서 수립된 뒤 김일성의 중국 방문은 이때가 처음으로 추정된다. 중국공산당의 동북항일연군 소속 하급 지휘관으로 활동하다 일본군에 쫓겨 소련으로 들어간 이후부터 따지면 거의 10년 만에 중국 방문일 수도 있겠다. 한국전 와중에서 연안파의 김무정과 소련파의 허가이를 숙청하고 휴전 직후 남로당 박헌영마저 제거, 최고지도자의 위치를 확고히 한 그로서는 '금의환중(錦衣還中)'의 감회를..
고(故)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된 ‘10·26사건’ 직후 북한 김일성이 일련의 상황을 오판한 증거가 박정희 서거 42주년을 앞두고 드러났다. 북측은 10·26사건 후 불과 1달여 만에 벌어진 ‘12·12사태’로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전 대통령) 겸 10·26사건 합동수사본부장을 필두로 한 신군부가 남한의 권력을 장악할 것이란 예상을 전혀 못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오히려 북측은 10·26사건 직후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던 최규하 당시 국무총리(전 대통령)가 집권을 계속 이어가는 와중에, 남한 내 혁명세력의 봉기로 ‘박정희’라는 구심점을 잃은 남한 정권이 자연 붕괴할 것으로 오판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자연히 10·26사건 직후 남한과 미국에서 가장 우려했던 김일성의 제2 한국전 도발 시도도 애당초 없었던 ..
현재 세계에서 가장 흥행하는 영화는 최신 007 시리즈인 '노 타임 투 다이'도 아니고 본드 영화 노 타임 투 다이도 아니고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도 아니다. 바로 1950년대 한국전쟁에 관한 중국의 선전 영화 '장진호에서의 전투(장진호)'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작은 규모의 중국군이 온갖 고난에도 불구하고 미군을 물리치는 내용이핵심이다. 영화 장진호는 개봉 2주 만에 6억 3300만 달러 이상의 박스오피스 매출을 거뒀다. 이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이 전 세계에서 거둔 4억 200만 달러를 단 절반의 기간 내 훌쩍 뛰어넘었다. 장진호는 중국 역사상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린 영화가 될 전망이다. 이 영화의 흥행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중국 내 극장들이 잠정 폐관과 재개관을 반복하는..
1972년 9월 29일 중국과 일본이 정식 수교를 했다. 베이징(北京)에서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일본은 단절된 양국 국교를 다시 연다는 원칙 아래 과거의 전쟁을 통해 중국 국민에게 큰 피해를 주었음을 인정하고 책임을 통감하며 깊이 반성한다는 내용을 전제하였다. 아울러 중국이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인정하고 대만이 중국 영토의 불가분의 일부라는 점을 “충분히 이해하며” 이를 “존중한다”고 밝혔다. 대만은 즉각 일본과 단교하였다. 중-일 수교 당시 일본 총리는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 1918~1993)였다. 미국이 대만 문제에 발목이 잡혀 수교까지 이르지 못한 상황에서 다나카는 과감하게 대만 문제를 정리하고 중국과의 수교를 단행한 것이다. 다나카는 경제정책 실패에 따른 물가앙등에다 문예춘추의 정치자금 비리 ..
지난 15일, 중국침략 일본군 제731부대 범죄증거전시관은 일본군 제731부대(이하 731부대) 2대 부대장이었던 기타노 마사지(北野政次)가 미국 포트 데트릭 기지 소속 수사관에게 조사를 받은 후 미군 측에 건넨 자백서 17페이지를 공개했다. 이 자백서는 처음으로 공개된 자료로, 기타노 마사지가 731부대를 5개 측면으로 나누어 체계적으로 진술한 동시에 세균무기 연구와 사용 및 인체실험을 자백했다. 중국침략 일본군 제731부대 범죄증거전시관 진청민(金成民) 관장은 “1945년 8월 일본이 투항하자 기타노 마사지는 상하이를 떠돌다 포로수용소에 갇혔는데, 연합국총사령부(SCAP) 정보부의 조정으로 1946년 1월 9일 일본으로 인도되었다. 일본으로 돌아온 그는 포트 데트릭 기지에서 파견한 일본 세균전 관련 ..
이번 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이 일본을 방문했습니다 “미국의 전통적 우방, 일본” 일본은 아시아에서 미국의 대표적인 우방국입니다. 하지만 두 나라는 한때 적국이기도 했습니다. 두 나라는 19세기 중반에 외교 관계를 수립했고, 1912년에는 친선의 상징으로 일본이 미국 정부에 3천 여 그루의 벚꽃 나무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특히 미국 하와이는 사탕수수밭에서 일하기 위해 건너온 일본인 이민자들이 대거 정착한 오랜 이민 역사도 갖고 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미국과 일본이 함께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하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데요. 하지만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키면서 두 나라 관계는 급속히 악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만주사변은 1931년 당시 일본제국이 중국 북동부와 내..
지난 8일 중국 공안부는 ‘2020년 전국 성명 보고’를 발표했다. 호적 인구수를 기준으로 2020년 중국의 ‘백가성’(百家姓)은 2019년과 비교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왕’(王), ‘리’(李), ‘장’(張), ‘류’(劉), ‘천’(陳)이 차례대로 5위 안에 들었으며 5대 성씨 인구의 총수는 전국 호적 인구 총수의 30.8%를 차지했다. 2020년 12월 31일까지 2020년 출생으로 호적 등록을 마친 신생아는 총 1003만 5천 명이며 그중 남자아이가 529만 명(52.7%), 여자아이가 474만 5천 명(47.3%)이다. 2020년 ‘백가성’ 중 가장 많이 등록된 신생아 성씨는 ‘리’로 총 72만 6천 명이며 가장 적은 성씨는 ‘구’(顧)로 1만 7천 명이다.
최근 시진핑 국가주석 등 중국 지도부가 대대적으로 한국전쟁을 미제의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승리로 주장하는 데 대해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한국전쟁은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지원으로 북한 정권이 일으킨 것으로 이미 입증됐고, 미군 참전도 유엔 결의에 따라 합법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중국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는 지적입니다. 모건 오테이거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23일 인터넷 사회관계망 서비스인 ‘트위터’에 중국 지도부의 한국전쟁 왜곡 주장을 공개적으로 반박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중국 공산당은 70년 전 한국전쟁이 단순히 발발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1950년 6월 25일에 마오쩌둥의 지지를 받은 북한이 남침했다”는 겁니다. 이어 “자유 국가들이 이에 맞서 싸우자 중국 공산당은 압록강을 건너 수십만 명의 병..
중국은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에서 대규모 ‘인민의용군’을 파견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과 싸웠는데, 10월로 참전 70주년을 맞습니다. 이를 앞두고 중국은 북한과 국경을 접하는 중국 동북부 랴오닝성 단둥에 있는 한국전쟁 기념관을 약 6년간 리모델링해 20일부터 일반공개가 시작됐습니다. 기념관은 전시 공간이 5배로 확대됐고 김일성 주석이 참전을 요청하기 위해 직접 써서 보냈던 편지 등 1600여 점이 전시돼 있습니다. 또 기념관 부지 내에는 한국전쟁 당시의 탱크와 전투기 등도 전시돼 있습니다. 전시실 입구에는 “중국과 북한은 피로 맺어진 우호관계”라는 시진핑 국가 주석의 말이 걸려 있습니다. 중국은 “중국이 군사 지원해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선전함으로써 북한과의 전통적 우호관계를 강조하려는 목적..
국제적십자위원회(ICRC)가 한국전쟁 발발 직후 남북한 모두에 인도적 지원을 제의했지만 북한은 응답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국제적십자위원회는 한국 내 북한군 포로수용소를 160차례 방문해 수감자들에게 식량과 담배를 공급하며 인도적 지원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국제적십자위원회 ICRC가 의사결정 기록을 70년 후 공개하는 원칙에 따라 최근 한국전쟁 기록물 일부를 공개했습니다. 스위스 공영매체인 ‘스위스인포’(Swissinfo)는 5일 입수한 자료를 통해 국제적십자위원회가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 발발 직후 남북한 당국 모두에 전보를 보내 지원을 제의했지만 북한 외무성은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고 전했습니다. ICRC는 1949년 새롭게 확대-보완된 4개 제네바협약에 따라 인도적 지원, 억류 수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