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平和大忍, 信望愛. (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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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 탕"1979년 10월 26일, 금요일 밤. 전직 중앙정보부 경비원 유석술 씨의 기억은 두 발의 총성으로 시작된다.오후 7시 40분, 유 씨는 박정희 대통령의 술자리가 열리던 건물 옆 휴게실에 있었다. 박 대통령의 궁정동 안가 경호업무를 맡고 있던 그는 정문 경비를 서다 교대근무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던 참이었다.첫 총성이 울린 뒤, 더 많은 총소리가 들렸다. 놀란 경비원들은 경계 근무를 시작했지만, 명령을 기다리며 밖에 있었다."경비과장이 와서 총 두 정과 실탄, 슬리퍼 등을 주며 묻어달라고 했어요." 당황한 유 씨는 내용물을 살펴볼 겨를도 없이 안가 앞마당에 묻었다.누가 총에 맞았는지는 몰랐고, 묻지도 않았다."설마 대통령을 쏜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이른바 '10.26'이 발생한 지 4..

선사시대 한국인들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울산 반구천의 암각화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다.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12일 오전(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47차 회의에서 한국이 신청한 ‘반구천의 암각화’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위원회는 “탁월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그려진 사실적인 그림과 독특한 구도는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의 예술성을 보여주고, 다양한 고래와 고래잡이의 주요단계를 담은 희소한 주제를 선사인들의 창의성으로 풀어낸 걸작”이라며 “선사시대부터 약 6000년에 걸쳐 지속된 암각화의 전통을 증명하는 독보적인 증거이면서 한반도 동남부 연안 지역 사람들의 문화 발전을 집약해 보여준다”고 평가했다.암각화는 바위나 동굴 벽면 등에 새기거나 그린 그림을 말한다. 이번에 세계유산에..

매년 6월 19일은 대마도의 날입니다대마도의 날은 일본 시마네현이 2005년 2월 22일에 다케시마의 날 조례를 제정한 것에 대응해 2005년 3월 18일에 당시 마산시 의회가 조례를 통해 제정한 기념일이다. 날짜는 6월 19일인데 이는 세종대왕 때 대마도 정벌을 주도했던 이종무 장군이 마산포에서 출정했던 역사적 사실에서 정해진 것이다. 1.마산시 의회 '대마도의 날' 조례 제정 경상남도 마산시 의회(현 창원시 의회)는 일본 시마네 현 의회가 다케시마의 날 조례를 제정한 데에 대응해 2005년 3월 18일 대마도의 날 조례를 제정했다. 시의회는 대마도의 날 조례’안을 긴급 상정해 30명의 의원 가운데 출석의원(29명) 전원 찬성으로 가결했다. 이날 제정된 조례는 쓰시마섬이 한국 영토임을 대내외에 각인시키..

임정 요인들이 환국 전 상하이 공항에서 찍은 사진. 앞줄 가운데 태극기를 든 소년이 이종찬이다. 오른쪽에 눈물을 닦고 있는 중절모 쓴 노인이 이종찬의 작은할아버지인 성재 이시영...이종찬 현 광복회장은 1936년 4월 29일 중국 상하이에서 출생하였다. 1945년 임정 요인들이 귀국할 때 함께 귀국하여 그 뒤부터는 서울에서 살았다대한민국 임시정부 헌장과 선언문, 헌법 자료大韓民國은 民主共和國이다大韓民國基於三民主義,為民有、民治、民享之民主共和國국호(國號)는 삼한정통설(三韓正統說)로 건국한 대한제국을 계승하여 대한(大韓)으로 하며 국정(國政)은 국민의(民有), 국민에 의한(民治), 국민을 위한(民享) 정부(民主共和國)를 원칙으로 한다단군왕검 이래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3.1운동으..

8월 13일 79년 만에 하얼빈(哈爾濱)을 다시 찾은 94살의 시미즈 히데오 씨가 자신이 복무했던 제731부대 유적지에서 중국 침략 일본군의 죄행을 증언하고 ‘사죄와 부전(不戰) 평화의 비’ 앞에서 참회와 사죄를 했다.중국 침략 일본군 ‘731부대’는 비밀부대로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세균전을 계획∙조직∙시행한 근거지다. 1945년 3월 소년병으로 입대한 시미즈 씨는 8월 14일 패전 부대와 함께 귀국했다. 이번 하얼빈행은 시미즈 씨가 전쟁 후 처음 출국한 것이자 처음 중국을 찾은 것이기도 하다. 731부대(七三一 部隊)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육군 관동군 소속의 세균전 연구·개발 기관으로 일제가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에 주둔시켰던 비밀부대이다. 1936년 일제의 만주 침공 때 설립됐고 1945..

大韓民國은 民主共和國이다大韓民國基於三民主義,為民有、民治、民享之民主共和國국호(國號)는 삼한정통설(三韓正統說)로 건국한 대한제국을 계승하여 대한(大韓)으로 하며 국정(國政)은 국민의(民有), 국민에 의한(民治), 국민을 위한(民享) 정부(民主共和國)를 원칙으로 한다단군왕검 이래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였다 大韓民國 臨時政府 憲章神人一致로 中外協應하야 漢城에 起義한지 三十有日에 平和的 獨立을 三百餘州에 光復하고 國民의 信任으로 完全히 다시 組織한 臨時政府는 恒久完全한 自主獨立의 福利로 我子孫黎民에 世傳키 위하여 臨時議政院의 決議로 臨時憲章을 宣布하노라.[신인일치로 중외협응하야 한성에 기의한지 삼십유일에 평화적 독립을 삼백여주에 광복하고 국민의 신임으로..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시작했다(1944).노르망디 상륙작전은 미·영 연합군(총사령관 아이젠하워)이 2차대전 중 북프랑스 노르망디 해안에서 감행한 사상최대의 상륙작전이다상륙작전은 전쟁 초기 서부전선에서 패하여 유럽 대륙에서 퇴각한 연합군이 독일 본토로 진공하기 위한 발판을 유럽 대륙에 마련하고자 감행한 것이다.작전은 1943년 5월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 F. 루스벨트 대통령과 영국 처칠 총리 간 수뇌회담에서 결정되었으며 약 1년간 준비를 거쳐 300만명 가까운 장병을 영국 본토에 집결시켰다.상륙작전은 약 1만1000대의 항공기가 약 1개월 간에 걸쳐 행한 공중공격에 뒤이어 6월6일(D데이) 미명(未明) 3개 공수특전사단(空輸特戰師團)의 강하로 시작했다.함정 약 600척의 호위 아래 약 4000척의 ..

많은 국가에서 5월 1일, 즉 ‘메이데이(5월의 날)’는 오래된 봄 축제의 날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이날은 근로자들의 역사적인 투쟁과 성취를 기념하기 위한 노동절(혹은 ‘국제 근로자의 날’)로 더 잘 알려져 있다.매년 이맘때쯤이면 전 세계 곳곳에서 더 나은 노동 조건과 노동조합의 권한 강화를 외치는 시위가 열리곤 한다.근로자의 날이 처음 생겨났을 당시엔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단체, 노동 단체가 주로 기념했다.사실 처음 노동자들의 이러한 시위가 열린 건 미국이나, 현재 미국의 노동절은 9월 첫째 월요일이다.그 시작은?1886년, 미국의 노동조합들은 영국의 사회개혁가 로버트 오언의 사상을 바탕으로 하루 8시간 노동을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에 돌입했다.오언은 ‘8시간 일하고, 8시간 놀고..

북한 김일성 주석을 ‘가짜’로 판단하는 1950년대 미국 정부 기밀 문건이 공개됐습니다. 마적 출신 무명 인사를 소련이 국가영웅으로 둔갑시켰다고 기술했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1952년 발행된 미국 정부의 기밀(Confidential) 문건은 북한 김일성 주석의 본명을 김성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때 만주에서 마적 두목(bandit leader)로 활동하며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았던 김성주는 1945년 10월 소련의 선전을 통해 뛰어난 조선인 애국자이자 민족 영웅으로 격상됐고 소련에 의해 조선 민족의 ‘탁월한 지도자’로 추앙됐다”는 설명입니다. 특히 “소련군정은 그에게 ‘김일성’이라는 가명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1930년부터 1940년까지 만주와 조선 북부 지역에서 일제에 맞서 게릴라 활동을..

대통령! 양하원 의장! 고명하신 국회의원(양하원 의원) 여러분! 나는 지금 깊이 겸허하는 마음과 자랑스러운 생각(크나큰 자부심)을 가지고 이 연단에 섰습니다. 나 보다 먼저 이 자리에 연설을 하던 우리 나라의 위대한 건설자들의 말 없는 압력을 느끼는지라 자연히 겸허한 생각이 나고, 이 입법은 인류가 오늘날까지 창안해 낸 것 가운데 가장 순수한 형식으로써 인간의 자유를 대표한다는 것을 반성한지라 자연히 자랑스런 생각이 떠 오릅니다. 온(全) 인류의 희망, 포부, 신념이 오늘 이 자리에서 집중되어 있습니다. 나는 오늘 어떠한 당파적 목적 주장을 옹호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나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 하면 제가 말씀드리려는 이 문제들은 근본적인 것으로서 당파적 이해 영역을 훨씬 초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