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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1부대’ 전 부대원, 79년 만에 하얼빈 찾아 중국 침략 일본군 세균전 죄행 증언 본문
‘731부대’ 전 부대원, 79년 만에 하얼빈 찾아 중국 침략 일본군 세균전 죄행 증언
CIA Bear 허관(許灌) 2024. 8. 18. 05:35
8월 13일 79년 만에 하얼빈(哈爾濱)을 다시 찾은 94살의 시미즈 히데오 씨가 자신이 복무했던 제731부대 유적지에서 중국 침략 일본군의 죄행을 증언하고 ‘사죄와 부전(不戰) 평화의 비’ 앞에서 참회와 사죄를 했다.
중국 침략 일본군 ‘731부대’는 비밀부대로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세균전을 계획∙조직∙시행한 근거지다. 1945년 3월 소년병으로 입대한 시미즈 씨는 8월 14일 패전 부대와 함께 귀국했다. 이번 하얼빈행은 시미즈 씨가 전쟁 후 처음 출국한 것이자 처음 중국을 찾은 것이기도 하다.
731부대(七三一 部隊)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육군 관동군 소속의 세균전 연구·개발 기관으로 일제가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에 주둔시켰던 비밀부대이다. 1936년 일제의 만주 침공 때 설립됐고 1945년까지 생체 해부 실험과 냉동 실험 등 치명적인 생체실험을 자행하며 생물·화학 무기 개발에 주력했다. 731부대는 8개 부서와 4개의 지부로 나뉘었는데 이곳에 종사한 군의관들은 대학 출신의 의학자와 과학자들로 구성됐다. '관동군 방역급수부'로 불리며 공식적으로는 '방역과 정수', '전염병 예방' 등의 임무를 띤 부대로 위장했다. 731부대의 책임자였던 의사 이시이 시로는 이 부대의 목적을 위장하기 위해 휴대용 야전 정수기를 개발하기도 했다. 이후 1941년 '만주731부대'로 명칭을 바꿨다. 학계는 현재까지 발견된 일본 측 과거 기록물 등을 토대로 1940년 이후 해마다 600여명의 수용자들이 생체실험에 동원돼 731부대의 생체 실험 희생자가 최소 3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마루타
'통나무'란 뜻으로 생체실험 대상자를 가리킨다. 1936년부터 1945년 여름까지 일본 관동군 만주 제731부대에 의해 희생된 한국인, 중국인, 만주인, 몽고인, 러시아인 등 전쟁포로와 그 외 구속된 사람 등 3000명이상으로 추정된다. 이들 중 생존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수용자들 가운데는 독립운동을 하다 잡힌 조선인도 많았다. 마루타에겐 '이름'이 없었다. 다만 번호가 부여돼 '사람'이 아닌 '생체실험 재료'로 취급됐다. 실험에 동원된 마루타는 남녀노소를 불문했고 심지어 임산부까지 동원됐다. 실험과 해부는 모두 살아있는 상태에서 마취없이 이뤄졌는데, 이는 실험 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실험 내용
살아있는 사람을 총칼로 찌르고, 매독주사를 놓고, 한겨울에 사람을 묶어두고 팔에 찬물을 계속 부어 팔을 얼게 만들었다가, 그 후 뜨거운 물에 팔을 넣어 동상실험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 밀폐된 공간에서 공기를 줄이고 압력을 높여 사람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을 하고, 가스를 주입해 아이와 엄마가 얼마나 버티는지에 대한 실험도 했다고 한다. 이뿐 아니다. 일부 수용자는 위가 절제돼 식도와 장이 연결되는 실험을 당하고, 또 일부 수용자는 뇌, 폐, 간 일부가 제거되기도 했다고 한다. 피부 표본을 얻기 위해 실험 대상의 피부가 산 채로 벗겨졌고, 의식은 살아있는 반 시체 상태의 실험자가 불태워졌으며, 남자와 여자의 생식기를 절단해 각각 상대방의 국부에 이식하는 성전환수술 실험도 있었다고 한다.
1947년 미 육군 조사관이 도쿄에서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1936년부터 1943년까지 부대에서 만든 인체 표본만 해도 페스트 246개, 콜레라 135개, 유행성출혈열 101개 등 수백개에 이른다. 생체실험의 내용은 세균실험, 해부실험, 동상연구를 위한 생체냉동실험, 생체원심분리실험, 진공실험, 신경실험, 생체 총기관통실험, 가스실험 등이었다. 페스트균을 배양해 지린성 눙안과 장춘에 고의로 퍼뜨린 뒤 주민들의 감염경로와 증세에 대해 관찰했고, 이로 인해 중국인 수백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패전 이후
일제는 1945년 8월9일 소련군의 참전으로 731부대가 강탈당할 것을 우려해 모든 부대시설을 파괴하고 철수를 명했다. 만행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공병대가 긴급히 투입돼 9일부터 4일동안 본부동을 제외한 주요건물들을 모두 폭파했다. 당시 생존해 있던 150여 명의 마루타들까지 모두 처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끔찍한 만행에도 불구하고 이시이를 비롯해 731부대 관련자 중 누구도 전쟁 범죄자로 기소되지 않았다. 미국이 인체실험 자료를 넘겨받는 조건으로 관련자 전원을 석방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거래로 731부대의 만행은 묻히게 됐다. 그러나 1981년 일본인 작가 모리무라 세이치가 다큐멘터리 '악마의 포식'을 발표하며 731부대의 만행을 파헤쳤다. 또 중국은 2014년 1월 1950년대 발굴된 731부대 기록물을 대대적으로 공개했다. 일본이 파괴한 731부대 유적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추진되고 있다.
일본정부는 731부대의 실체를 부인하다 50년이 지난 후에야 부대의 존재를 인정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증거 자료는 찾지 못하겠다, 확인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일본정부가 모르쇠로 일관하는 가운데 패전 70년을 맞은 일본에서 의사들의 양심적인 자기반성이 나오기도 했다. 2015년 4월12일 일본 의료·보건산업 종사자, 시민단체 등이 모여 '역사에 입각한 일본 의사 윤리의 과제' 특별행사를 열고 731부대에서 근무했던 이들의 증언, 관련기록 등을 공개했다. 이들은 또 일본정부를 향해 “731부대 관련 자료를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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