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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Pacific Region Intelligence Center

이란,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금신월(金新月,황금초승달)'지역 마약이 이슬람과격파조직 IS 자금 본문

Guide Ear&Bird's Eye/테러단체,간첩등 수집.조사연구

이란,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금신월(金新月,황금초승달)'지역 마약이 이슬람과격파조직 IS 자금

CIA bear 허관(許灌) 2015. 7. 12. 20:46

 

                              이란,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금신월(金新月,황금초승달)'지역 헤로인이 이슬람과격파조직 IS 자금.

황금의 초승달 지역은 서아시아 지역의 3개국 아프가니스탄, 이란, 파키스탄등이 인접하는 국경지역에서 전통적으로 아편을 재배해온 지역을 지칭한다. 유럽지역 헤로인 압수량 중 75%, 구국내 압수량중 25%, 그리고 아프리카 및 아라비아 반도 등 경유지에서 적발된 헤로인의 75%가 황금의 초승달 지역에서 생산된다

 

*유럽 판매망

금신월(金新月,황금초승달)'지역 헤로인(아편재배)->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이란-->IS 헤로인 확보-->유럽 판매

*러시아 판매망

금신월(金新月,황금초승달)'지역 헤로인(아편재배)->이란과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중앙아시아-->러시아 판매

*중국 판매망

금신월(金新月,황금초승달)'지역 헤로인(아편재배)->이란-->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중국 신강-->중국 판매

*인도 판매망

금신월(金新月,황금초승달)'지역 헤로인(아편재배)->파키스탄->인도 판매

 

*이란,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금신월(金新月,황금초승달)'지역 헤로인 판매는 이슬람교 주축

 

이슬람 과격파조직 IS 이슬람국가 자금 "약탈전쟁물자와 외국인 납치, 아편재배와 판매등"

                                                         Poppy farms are flourishing in Afghanistan[아편재배와 마약 판매]

이슬람 과격파조직 IS 이슬람국가 자금은 과거 이슬람 과격파조직 알카에다이나 탈레반처럼  "약탈전쟁물자나 외국인 납치, 아편재배와 판매, 밀수등"이다

 

Financing jihadism

Annual income and sources

  • Islamic State: sale of oil, tolls and 'taxes' $2bn

  • Afghan Taliban: donors, sale of drugs$400m

  • Al-Shabab: sale of charcoal and 'taxes'up to $100m

  • Boko Haram: kidnap for ransom, fundraising $10m

  • Al Nusra Front: donations, kidnap for ransom $ unknown

AFP

 

 

 

 

 

 

 

                                    Islamic State earns money from oil, taxation and looting[약탈전쟁 물자 확보--전차,탱크, 무기,석유,식량등 약탈]

 

 

The French government has repeatedly denied paying ransoms for hostages such as Serge Lazarevic, who returned home safely from Mali on 10 December

 

Serge Lazarevic (centre) spent three years in captivity in Mali before being freed while Philippe Verdon (right) was killed in captivity[외국인 납치와 몸값 요구]


 

이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의 접경지대는 산맥으로 이루어진 지역으로 흔히 ‘황금의 초승달지대’로 불린다. 이곳에서는 16세기부터 양귀비가 재배되고 있었다. 황금의 초승달지대에 속한 파키스탄 북서부 국경지대는 파탄 부족의 자치 지역들이 있으며, 이곳에서는 파키스탄 정부의 법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호전적인 파탄 부족은 수세기 동안 파키스탄 정부의 근심거리였을 뿐만 아니라 영국 식민지 통치자들도 이들을 통제하지 못하고 자치권을 인정하는 동맹을 맺을 정도였다. 이들은 지역 지배자들에게 충성하며 파키스탄 정부가 정해놓은 국경은 무시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정부의 제재를 받지 않고 국경을 넘나들 수 있었다. 이런 조건을 이용해 그들은 아프가니스탄과 군수품을 거래하였으며 마약까지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

 

영국은 19세기 전후로 합법적인 아편 교역을 위해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국경지대의 마하반 산맥에서 양귀비를 재배하였으나 당시에는 소량의 아편만이 생산되고 있었다. 따라서 농업 이외에 다른 소득원이 없던 이곳 사람들에게는 양귀비가 최고의 환금작물이 되었다. 이후 1970년대에는 이곳에서 생산된 아편이 아프가니스탄으로 보내졌으며, 비록 적은 양이었지만 국제적으로 밀수출되었다. 오늘날에도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국경에는 광범위한 양귀비 재배 지역들이 존재하고 있다.

 

파키스탄과 같이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양귀비를 많이 재배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사회에 불고 있던 마약 금지 바람으로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아편 금지 법안을 1958년에 제정했다. 하지만 이 법은 거의 유명무실하게 유지됐으며 법을 어겼다 할지라도 어떤 형벌이나 벌금도 부과되지 않았다. 당시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마약에 대한 피해를 별로 보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정부에서는 세력이 강한 부족들이 무장 폭동을 일으킬 우려를 항상 하고 있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양귀비 재배는 가난한 농부들에게는 최고의 생계 수단이었고, 정부나 관리들의 부패도 한몫 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아편은 막대한 외화 소득원이었다. 수도인 카불에서는 1960년대 말과 1970년대에 마약 조직과 정부의 고위관리들이 비밀자금으로 설립한 헤로인 정제소에서 히피들이 밀수업자로도 활동했다.

 

아프가니스탄 및 파키스탄의 아편과 헤로인은 국경을 넘어 이란으로 건너갔다. 이곳은 자동차로는 갈 수 없고 오직 노새로만 통과할 수 있는 오솔길과 울퉁불퉁한 길이 800여 킬로미터나 이어져 있었다. 이 길은 매우 험할 뿐만 아니라 정부의 치안력이 미치지 못하는 국경지대였다. 이란으로부터 나온 마약은 서쪽으로 터키, 남쪽으로는 두바이로 보내지고, 거기서 유럽과 세계 여러 지역으로 운송되었다.

 

19세기와 20세기 초, 아편은 이란에서 외화 소득의 15%를 차지하는 중요 수출품 중 하나로페르시아어 아프욘(afyon)이라기보다는 만병통치약을 뜻하는 테리악(teriac)으로 불려졌다. 하지만 이란산 아편은 질이 낮아 비교적 싼 편이었다.

 

1931년 이란에서는 정부가 허가한 아편 흡연실이 개설되었다. 이 흡연실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편 치료를 위한 병원 형태였지만 이로 인해 중독률은 급격히 상승하였다. 이란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아편 흡연실로 인해 1949년 어떤 지역에서는 90%가 아편을 흡연하였으며, 전체 주민이 600명인 지역에 16개의 흡연실이 생기기도 했다. 또한 1950년대 중반에는 하루에 아편 2톤을 소비하는 200만 명 정도의 중독자가 있었으며, 이란 성인 인구의 11%가 중독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란의 국왕과 왕족들 그리고 정부의 고위 관리들은 대부분 광활한 양귀비 밭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이곳에서 엄청난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아편과 관련된 법을 제정하지 않았고, 부패의 고리는 갈수록 심해졌다.

 

아편에 대한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자 이란은 1950년부터 아편 생산을 줄이기 시작했으며, 1955년에는 양귀비 재배가 금지되었다. 중독자들에게는 스스로 치료할 수 있는 기간을 6개월 동안 주고, 만약 6개월 이후에도 아편을 끊지 못하고 흡연하거나 판매, 소지하는 경우에는 구금시켰다. 이란 국왕의 이러한 조치는 아편의 폐해를 인정해서가 아니라 마약국이라는 국제적인 비난과 국민 10명 중 1명 이상이 아편에 중독되어 군사력이 급격히 약해졌기 때문이다.

 

양귀비 재배가 중단된 1955년 이후 이란에서는 아편 중독자가 많이 줄었지만, 사람들은 마약을 공급받기 위해 암시장으로 몰려들었다. 그 결과 터키,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의 아편이 밀려들었으며 수요가 많아지자 밀수업자들은 마약 대금으로 현금이 아닌 금괴를 요구했다. 금괴를 요구해도 아편 중독자들은 구름처럼 밀려들었으며 국가의 재정에 타격을 주기 시작했다.

 

헤로인은 약효와 눈에 잘 띄지 않는 성질 때문에 도시의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다. 여기에 발맞춰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파키스탄과 연계된 정제소들이 테헤란에 세워졌고, 1968년 교도소 재소자의 70%가 마약 범죄에 관련된 사람들이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이란 정부는 현재의 어려움과 아편금지법이 실패했음을 인정하며 원망의 눈길을 이웃 국가들에게 돌렸다. 그리고 금지법을 바꿔 다시 양귀비를 재배하고 아편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란이 아편을 생산하기로 결정하자 국제사회에서는 비난이 쏟아졌다. 이란의 결정은 1945년 이후 국제적으로 마약을 통제하고자 했던 세계 사회의 공동 목표에 큰 걸림돌이 되었다. 하지만 이란은 물러서지 않았고 아편 생산을 허락하는 법률을 1969년 6월에 통과시켰다. 이 법에 의하면 양귀비 재배는 허가된 지역에서만 가능하며 국내용으로 제한한다고 되어 있었다. 그러나 법이 제정되자마자 전국 곳곳에서 우후죽순처럼 양귀비 밭이 생겨났다. 또한 60세 이상의 중독자들과 중독이 너무 심해 의학적으로 더 이상 치료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만 아편을 사용할 수 있게 하자 대부분의 중독자들은 아편을 불법으로 구입해 복용하였다. 만약 아편을 밀거래하다가 잡히면 사형에 처하도록 하였지만 부패한 정부는 이미 법을 집행할 의지가 없었다.

 

1972년까지 황금의 초승달지대에서 생산된 아편은 주로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이란, 세 나라에서만 소비되었으며 밖으로 밀수출되지는 않았다. 또한 이란의 아편금지법이 발휘되는 동안에는 그 경계 지역 안에 있는 수많은 중독자들을 상대로 한 밀거래만으로도 충분한 돈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란이 아편금지법을 철회하고 아편 생산량을 다시 늘리자 황금의 초승달지대에서 생산된 아편의 일부가 국제시장으로 유출되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부터 많은 양이 밀수출되지는 않았으며 양이 많아지기까지는 몇 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