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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Pacific Region Intelligence Center

재일(在日)교포 북송사업 자료 본문

Guide Ear&Bird's Eye/일본

재일(在日)교포 북송사업 자료

CIA Bear 허관(許灌) 2005. 6. 17. 12:45

북한의 재일교포 북송 사업은 냉전시대 치열했던 남북체제 경쟁의 대표적 사례였다 북한이 일본과 한국이 미(未)수교국 반일(反日) 이승만 정부때  지난 1959년 첫 북송선을 띄웠을때 남한의 격렬한 반응과 그 이후 1968년 한일국교정상화로 등장한 박정희정부는 1974년 재일교포 모국방문 사업을 벌인 것은 이를 잘 말해준다

북한정부의 재일교포 북송사업은 1984년 사실상 중단됐고 그때까지 북송된 교포는 8만-9만으로 알려졌다

이와관련 지난해 호주 국립대 스즈키 교수는 비밀해제된 국제적십자사 문서를 통해 일본정부가 그 동안 재일동포 사회와 북한의 요구에 따라 인도적 차원에서 북송을 승인해줬을 뿐이라고 주장해온 것과 달리 재일교포의 범죄율이 높고 빈곤한 가정이 많아 생활보호 재정부담이 많은 점 때문에 북한의 북송사업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협력했음을 밝혀내기도 했다

특히 북송자 중엔 재일교포와 결혼한 일본 배우자들도 최소 1천 500명 이상 포함돼 있는 것으로 동구권 외교문서에 나타나 있다  북한과 일본간 일본인 처 귀환문제의 시발점은 수십년전 북한과 일본의 협력에서 비롯된 셈이다

북한이 의기양양하게 북송사업을 시작했다가 수년만에 시들해진 것은 북한의 실상이 알려진 데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옛 평양주재 공산권 외교관들의 관찰로는 북송자들이 북한 내부에서 체제불안 요인이 됨에 따라 북한 스스로도 흥미를 잃은 측면도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 북송사업 자신감 표방(1959년 5월 14일 헝가리 대사관 보고서)

김일성은 5월 8일 헝가리당 대표단에게 북한이 일본을 떠나려는 재일교포들을 수용할 만큼 충분히 강해졌다고 말했다

 

*소련선박 지원 (1959년 12월 16일 헝가리 대사관 보고서)

소련대사관의 율린 동지 말로는 북한 적십자사와 소련 선박 회사가 선박 3척에 대한 용선 계약을 체결했다 이들 선박으로 약 3천명을 수송할 예정이다

  

  

 

1.재일동포 북송사업 기간: 1959년-1984년

 

2.재일동포 북송 인원:8만-9만명

(1)1960년말 무렵---북송 선박 54차례로 5만 3천명 북송

ㄱ.출신--남한출신 94%

ㄴ.직업분포

대부분이 자영업자나 중소기업 소유주, 농민들이었고 전문기술자 700명, 과학가와 예술가 300명, 의사나 약사 4명, 재일교포 배우자 일본인 1,500명  

 

3.재일동포 북송 주도기관: 국제적십자사

실제로는 북한정부와 조총련 주도로 일본 사회당 정부 승인으로 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