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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한국 대통령, 아웅산 테러사건 추모비 방문...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 본문
문재인 한국 대통령, 아웅산 테러사건 추모비 방문...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
CIA Bear 허관(許灌) 2019. 9. 4. 23:32미얀마를 국빈 방문한 문재인 한국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4일 양곤에 위치한 불자들의 성지순례지 쉐다곤 파고다를 방문하고 있다.
미얀마를 국빈방문 중인 문재인 한국 대통령이 양곤에 있는 아웅산 묘역 순국사절 추모비를 방문했습니다. 한국 대통령으로는 첫 방문입니다
문재인 한국 대통령이 아웅산 순국사절 추모비를 방문했습니다.
한국 대통령이 이 곳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추모비는 지난 1983년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미얀마 국빈방문 당시 북한 공작원의 폭탄 테러로 아웅산 국립묘지에서 순직한 17명의 외교사절과 수행원들을 기리기 위해 2014년 건립됐습니다.
당시 북한은 지난 1983년 10월 미얀마를 방문한 전두환 당시 한국 대통령과 수행원을 노리고 폭탄을 터뜨렸습니다.
이로 인해 당시 수행원이었던 서석준 부총리와 이범석 외무장관, 김동휘 상공부 장관, 이중현 동아일보 기자 등 한국인 17명과 미얀마인 7명이 숨지고 50여 명이 다쳤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은 참배 예정시간보다 30분 가량 늦게 도착해 화를 면했습니다.
2014년 건립된 추모비는 사건이 발생한 아웅산 국립묘지의 북문 입구에 설치됐습니다.
아웅산 폭탄테러 사건은 김중린 북한 대남담당 비서가 주도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김중린 비서는 북한의 남파 공작원들의 대부로 불렸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입니다.
특히 김 비서는 5.18 광주 민주화항쟁 당시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좌천 당했으며, 이를 만회하기 위해 아웅산 테러 사건을 기획했다는 게 고위급 탈북자들의 증언입니다.
이신재 한국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입니다.
[녹취: 이신재 연구원] “아웅산 국립묘지에 폭탄을 설치를 했는데 전두환 대통령 도착 전에 그게 터져버렸잖아요. 그게 왜 터졌느냐, 일설에는 군악대가 음악을 울리니까 대통령이 왔구나 해서 터뜨렸다는 설이 있고, 북한 공작원의 증언으로는 당시 주위에 무전 주파수들이 많아서 폭탄이 오작동을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북한의 한국 대통령 암살작전은 실패했지만 한국 측 수행원 17분이 돌아가셨죠.”
당시 미얀마 정부가 자체 수사를 벌여 북한 소행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으며 생포된 북한 공작원 한 명은 미얀마 감옥에서 2008년 사망했습니다.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은 강경한 대북정책을 내세우는 신군부 정권에 대한 북한의 공격이었다고 평가했습니다.
[녹취: 강인덕 전 장관] “신군부가 등장해서 남한 내에 진보적인 세력이 반대를 하니까 그런 것과 연합해서 마치 한국에 진보세력이 전두환 정권 신군부를 공격한 것처럼 그렇게 하려고 그런 시나리오를 만든 거죠. 근데 그게 드러났으니까, 공작원들이 죽었다면 들통나지 않았을 텐데 체포됐단 말이죠. 그래서 다 들통난 거죠. 그 때 중국 등소평 정부도 이건 숨길 수가 없다, 이렇게 된 거죠.”
전문가들은 아웅산 테러 사건으로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테러집단으로 낙인 찍혔으며 남북관계 역시 경색됐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한국은 당시 미얀마 정부와 단교했고, 2007년에 복교했습니다.
VOA 뉴스
김중린(金仲麟)
북한의 정치·행정가. 1924년 평안북도 벽동에서 태어나 8·15해방 전 중국에서 민족해방동맹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1948년 북조선노동당 함경북도 도당위원회 부장으로 당료생활을 시작했으며, 1959년 조선적십자회 중앙상무위원으로 재일교포 북송사업에 깊이 관여했다. 북한이 1·21사태, 울진-삼척지구 무장공비사건 등 일련의 무장 게릴라 중심의 대남사업에 실패하자 1969년 허봉학(許鳳學)의 뒤를 이어 조선노동당 대남담당 비서로 선임되었다.
1970년대 대남사업을 담당하면서 적극적인 군사개입정책을 지양하고 남한에 혁명여건을 조성하는 데 치중하는 방식으로 기본전술을 전환했다. 조선노동당 제5차 당대회에서 당중앙위원회·정치위원회 위원으로, 1974년 정치위원회 상무위원에 선임되었다. 1980년 6월 당이론지인 〈근로자〉에 〈항일의 기치 밑에 전민족을 굳게 결속시킨 반일민족통일전선〉이라는 논문을 기고하여 통일사업에서 민족통일전선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역설했다.
조선노동당 제6차 당대회에서 비서국 비서로 재선되었으나 1984~86년 1년 간격으로 비서직에 기용·해임이 엇갈리다가 1987년 3월 관영 조선중앙통신사 사장 겸 공보위원장에 취임했고, 1988년 11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6기 4차 전원회의에서 비서국 근로단체담당 비서로 재기용되었다. 1990년부터 근로단체 담당 당 비서를 맡았다.
북한 대남비서만 '3수'한 김중린
북한의 대남비서는 대남정책을 총괄하는 자리다. 한 때는 당 작전부(대남 공작원 훈련 및 요인 암살), 35호실(엘리트 간첩 양성), 당 대외연락부(비밀지하조직 구축 및 간첩 관리), 통일전선부(대남공작 및 남북대화 등) 등 4개 기구를 총괄할 정도로 막강했다. 하지만 지금은 초라해졌다. 현재는 대남비서가 통일전선부만 관장하고, 나머지 조직은 2009년 총참모부 정찰국과 함께 총참모부 정찰총국으로 확대 개편됐다
김중린(1923~2010)은 대남비서를 3차례 역임했다. 첫 번째는 69년 4월~76년 9월, 두 번째는 78년 1월~83년 12월, 세 번째는 88년 11월~90년 1월이다. 대략 13년 정도를 맡았다. 북한의 대남비서 가운데 최장수다. 그는 대남 강경파로 알려진 인물이다. 아웅산 테러 사건을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지휘를 했다
김중린은 자강도 우시군 빈농의 가정에서 태어나 해방 이후 46년 평안북도 벽동군 당위원회 부장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우시군은 52년 북한의 행정구역 개편 이전까지 벽동군 우시면으로 있다가 54년 자강도에 편입됐다. 김중린은 고향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그는 52년 노동당 지도원으로 들어가면서 중요 직책에서 오랫동안 사업을 했다. 54년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윈회 상무위원으로 선출됐으며 제네바의 국제적십자회에 북한대표로 참석했다. 김중린이 김일성의 ‘눈도장’에 찍히는 것은 재일동포의 북한 귀환에 공을 세우면서부터다. 59년 2월 제네바에서 열린 북·일 적십자회담의 북한 대표로 참석해 성과를 올린 것이다. 김중린은 그 해 12월 재일동포 975명을 소련 선박 클리리온호와 토보르스크호에 태워 일본 니가타항에서 북한 청진항으로 데려왔다.
이후 김중린은 승진의 고속도로를 달렸다. 그는 69년 4월 대남공작 실패 등의 이유로 숙청된 허봉학을 대신해 항일 빨치산 장군 출신이 아닌데도 대남비서로 전격 발탁됐다. 냉전 시절에 항일 빨치산 출신이 아닌 사람이 대남비서를 맡기 어려웠다. 앞선 이효순-허봉학은 모두 항일 빨치산 출신들이었다. 김중린은 급기야 70년 11월 제5차 노동당 대회에서 권력 서열 10위로 급부상했다. 10년 전 제4차 노동당 대회의 87위에 비하면 괄목할만한 성장이었다.
김중린이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72년 5월 평양을 방문해 그를 만나면서다. 두 사람은 비밀협상을 가졌으며 이후락은 김일성과 그의 동생 김영주 당 조직지도부장을 만났고 두 달 뒤에 7·4공동성명이 발표됐다. 김중린이 김일성과 김영주를 도와 실무작업을 진행했다.
승승장구하던 김중린에게도 시련이 찾아왔다. 김정일이 74년 후계자로 확정되면서 모든 권력기관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두려고 했다. 김정일은 76년 6월 대남 공작부문을 대상으로 집중 사찰을 시작했다. 사찰은 5개월간 지속됐고 김정일은 진행 상황을 하나씩 확인했다. 대남사업을 총괄했던 김중린도 자기비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김정일은 “50년대 이래의 대남공작은 한 마디로 0점”이라고 질책했다. 아울러 김정일은 “과거의 공작 활동은 모두 백지화해야 한다. 새로운 전략 전술적 방침을 가지고 새로운 각오로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몰아붙였다.
사찰은 다음 해 4월까지 계속됐고 그 결과 김중린 76년 9월 노동당 산하단체인 ‘남조선연구소’의 소장으로 좌천됐다. 김정일이 대남서기를 겸하며 대남공작기관을 지휘했다. 남조선연구소에서 찌그려져 있던 김중린은 78년 1월 다시 대남비서에 복귀했다. 북한은 사람을 한 번 버렸다가 능력에 따라 복귀시키는 경우가 많다.
두 번째 대남비서 시절에는 ‘악역’을 맡았다. 그 악역은 83년 10월 버마 아웅산 테러 사건이었다. 서석준 부총리 등 한국 각료 4명을 포함해 17명이 사망해 세계를 놀라게 한 참극이었다. 아웅산 테러는 감독 김정일, 각본 김중린, 기술감독 김격식 등이 진행됐다. 김격식은 2010년 연평도 포격을 지휘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로 당시 총참모부 정찰국 소속으로 테러를 직접 지휘했다.
김중린은 아웅산 테러 사건을 또 다시 ‘물’을 먹었다. 북한은 입을 다문 채 늘 하던 대로 오리발을 내밀었지만 체포된 공작원이 범행을 털어놓으면서 탄로가 났다. 버마 정부가 테러는 ‘북한 부대에 의한 범행’이라고 발표했고 69개국이 북한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북한 내부에서도 아웅산 테러가 자신들의 소행이라는 것이 퍼지면서 누군가 희생양이 필요했다.
김중린은 또 다시 정치적 시련을 겪어야 했다. 83년 12월 대남비서를 허담(1929~1991)에게 물려주었으며 84년 3월 정치국 위원에서 후보위원으로 강등됐다. 85년 1월에는 정치국 후보위원마저 탈락됐다. 김정일의 미움이 그 만큼 컸다. 김정일은 아웅산 테러범들이 붙잡혀 범행을 털어놓는 바람에 국제적 망신을 당한 책임을 김중린에게 돌렸던 것이다.
그러나 김중린은 86년 8월 조선중앙통신사 사장으로 복귀했다. 조금 엉뚱했던 임명이었다. 김중린이 대남비서를 ‘3수’를 하게 된 것은 88년 11월이다. 이번에는 고작 1년 2개월 정도였다. 그 이후 그는 90년 1월부터 당 근로단체비서를 맡았다. 근로단체비서는 김일성-김정일주의청년동맹·조선직업총동맹(직총)·조선민주여성동맹(여맹) 등을 지도한다. 노동당 내에서 비중이 떨어지는 부서다. 김중린이 근로단체비서로 언제까지 있었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오랫동안 당에서 중요직책을 맡았던 그는 2010년 4월 28일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2016년 5월 제7차 당대회 개회사에서 노동당의 강화발전과 사회주의 위업의 승리를 위해 헌신한 인물로 허담, 연형묵 등과 함께 김중린을 언급했다.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보좌단이 72년 11월 김일성을 방문한 뒤 북한 내각 청사에서 김일성을 비롯한 북한 요인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왼쪽부터 한응식, 김덕현, 강인덕 국장, 김중린, 최규하 특별보좌관, 김일, 이후락 부장, 김일성, 장기영 부총리, 박성철, 정홍진 국장, 유장식, 이경석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 그리고 사유재산 이윤추구 자유시장등 자본주의 3대 원칙을 존중하는 민주국가에서는 머리소리함 귀팀(Guide Ear)을 폐지해야 할 것 같습니다
머리소리함 귀팀(Guide Era)은 북한 주체연호 1인 종신직 좌익군정과 비슷한 대공수사처(정치공작기구 치안정보, 선거 전담팀) 국가기구입니다
Bird's Eye는 고정간첩(스파이)가 될 수 있지만 Guide Ear는 이중스파이(밀정, 비밀경찰이나 직파간첩)이 될 수 있습니다[민주화(民主化)는 적화(赤化)라고 눈(의식)이 된 분이 대부분 극우이면서 평양정부 이중대입니다. 북한이 민주화 돼야 미군이 철수하고 항구적 평화가 될 수 있는 통일국가를 거부하는 세력이 사회주의 국가(국가사회주의 세력)입니다. 1980년대 전두환정부의 자유화 개방화 조치이후 남한 재야 운동권이 북한정부의 NLPDR(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 이론에 의식화 되어 북한정부의 고정간첩이 되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때 전두환정부의 좌경사상 교육보다 자본주의민주주의 교육강화와 북한사회 개방정책을 추진했다면 북한정부의 제 1공화국 인민민주주의 헌법과 북한정부의 제2공화국 사회주의 국가이론 인민민주주의 독재정치(주체사상,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 사회주의 헌법을 구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북한도 1인 독재정치 주체사상 등장 이후 중국 등소평 헌법이나 러시아 민주화 헌법, 남한 단임제 민주화 헌법 등의 유입으로 반체제세력 고정간첩(민주인사)이 되는 분이 많습니다. 북한이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 제3공화국 1인 독재 헌법에서 국가 지도자의 임기제한 개혁개방 민주화 헌법으로 변경하지 않을 때는 남한이나 중국 등소평헌법, 러시아 민주화 헌법을 옹호하는 고정간첩(민주인사)이 많이 증가될 것입니다]
[사회주의 국가 중화인민공화국의 대외정책과 국가교육은 눈(Bird's Eye)보다는 귀(Guide Ear)입니다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 그리고 사유재산 이윤추구 자유시장등 자본주의 3대 원칙을 존중하는 민주국가의 대외정책과 국가교육은 귀(Guide Ear)보다는 눈(Bird's Eye)입니다. 눈(Bird's Eye)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지만 귀(Guide Ear)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 보다는 감시자(지도자)의 말이 법(정책)이 될 수 있습니다. 사회주의 국가 중화인민공화국의 사상범(반체제 인사) 통제는 눈(Bird's Eye)보다는 귀(Guide Ear)입니다 눈(Bird's Eye)의 교육은 고정간첩이 될 수 있지만 귀(Guide Ear)의 교육은 밀정(비밀경찰)이 될 수 있습니다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 그리고 사유재산 이윤추구 자유시장등 자본주의 3대 원칙을 존중하는 민주국가에서는 머리소리함 귀팀(Guide Ear)을 폐지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귀로 뇌를 통제돼 온 정보요원은 적국의 귀로 뇌를 통제하는 시스템에 유혹으로 국가기밀을 누설할 수 있고 눈으로 뇌를 통제돼 온 정보요원은 적국의 귀로 뇌를 통제하는 시스템 유혹에 극복할 수 있다. 북한 세습제 좌익군정이나 독재국가 정보기구는 대부분 귀로 뇌를 통제 돼 있는 시스템이다
미국 부시정부때 머리소리함 뇌분해기 ear팀 인권침해로 폐지하고 eye팀 도입과 활용해오고 있다"
-머리소리함[ 태어날 때부터 생존 당시까지 뇌 기억 검증이 된 분들의 모임]-
당신은 북한 자료를 보고도 한국정부 관점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까?
귀(음향) 소리로 뇌 분해기[90년대 한국정부 친북세력 검거에 활용, 좌경세력(반정부 세력) 자료실]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하는 세력은 주체연호 1인 종신직 좌익군정(김일성 김정일 헌법)과 인민민주주의 독재체제(전제정치) 사회주의 국가입니다[인민민주주의 독재체제(전제정치) 사회주의 국가도 인민의회정부 입장에서 국가주석(국가평의회 의장) 임기제한을 한 국가는 수평적 권력교체 인정과 실용주의(수정주의) 노선으로 민주국가로 인정하는 입장이며 국가주석(국가평의회 의장) 연임 1인 종신직 국가는 독재국가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제6공화국을 부정하는 세력은 대통령 임기제한(딘임제) 수평적 권력교체를 인정한 제5공화국 헌법보다는 1인 종신직 유신헌법입니다
민주화 세력이 대한민국 제6공화국 헌법을 부정하는 세력이 아니고 군국주의, 국가사회주의 노선을 추종하는 좌우익 파시즘세력들이 대한민국 제6공화국 헌법을 부정하는 세력입니다
머리소리함 Guide Ear 지위와 역할이 좌우익 파시즘세력들이 될때는 Guide Ear을 제거해야 경제와 정치가 안정이 될 수 있습니다. 좌우익 파시즘 시대는 사회가 혼란되고 반체제세력(반국가단체, 독재세력)이 권력을 장악할 수 있습니다
귀로 뇌를 통제돼 온 정보요원은 적국의 귀로 뇌를 통제하는 시스템에 유혹으로 국가기밀을 누설할 수 있고 눈으로 뇌를 통제돼 온 정보요원은 적국의 귀로 뇌를 통제하는 시스템 유혹에 극복할 수 있다
북한 좌익군정이나 독재국가 정보기구는 대부분 귀로 뇌를 통제 돼 있는 시스템이다
눈으로 뇌 분해기 [미국정부 테러범 검거에 활용]
From Bird's Eye(Reading,Investigation) to Guide Ear(Language, Intelligence)"[CIA, SVR et cetera]"
국내외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는 눈과 귀로 각국 언어를 이해하고 해독할 수 있어야 하며 국제범죄를 파악할 수 있는 요원의 지적능력이 배양돼야 한다
미국 부시정부때 머리소리함 뇌분해기 ear팀 인권침해로 폐지하고 eye팀 도입과 활용해오고 있다
북한은 국가평가로 급변사태가 일어날 수 있는 실패국가입니다
북한 아동 훈련용 목총(木銃) 모습
북한은 국가평가로 급변사태가 일어날 수 있는 실패국가입니다
안보능력은 핵무기와 핵탄두 탄도미사일을 보유했지만 인권침해와 반정부세력 확대로 인민군 120만명 배치(60%이상 치안군) 그리고 중국 러시아등 유엔안보리 입장 북한 핵무기 포기정책을 지지로 약한국가로 평가하고 있으며 경제능력은 기아와 평민층 식량난으로 외부로부터 식량원조국가로 실패국가로 평가되고 있으며 정치능력은 국가사회주의 군국주의노선 좌익파시즘 주체사상과 선군정치 세습제 좌익군정으로 실패국가로 평가되어 급변사태가 일어날 수 있는 실패국가이다
-머리소리함(知積能力團) 논의내용-
*안보능력: 내전위기 여부, 동맹국 여부 , 군사력 여부
*경제능력: 민생경제(식량난이나 의식주 여건)
*정치능력: 의회 민주주의와 주민 자치능력 그리고 지도자의 개인 능력
북한은 전쟁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 일반적 의견입니다
북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권력은 세습제 좌익군정 체제유지에 주력해왔습니다
북한 김정은정부는 내전을 북한내부 지역 전쟁이나 북한 주민들의 반김정은세력 무장투쟁이 아닌 남북전쟁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머리소리함으로 논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북한정부의 안보능력은 약한국가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안보능력은 핵무기와 핵탄두 탄도미사일을 보유했지만 인권침해와 반정부세력 확대로 인민군 120만명 배치(60%이상 치안군) 그리고 중국 러시아등 유엔안보리 입장 북한 핵무기 포기정책을 지지로 약한국가로 평가되고 있다
(1)북한정부의 군사력
북한은 재래식 핵무기(핵 폭탄, 수송기로 투하하는 대량살상무기)와 신형무기 핵탄두 탄도미사일(로켓이나 미사일로 투하하는 대량살상무기)을 보유하고 있다
북한의 군사력은 중국이나 러시아 극동지역 조차도 위협이 되고 있다
30분으로 서울을 평평하게 서울 불바다 이론이 바로 북한정부의 전술 핵무기와 전략 핵무기 이론이다
남한의 위협은 재래식 핵무기 원자폭탄과 핵 대포나 핵 배낭,핵 어뢰 등 전술 핵무기, 단거리 탄도미사일 전략 핵무기이고 일본, 중국, 러시아 극동의 위협은 중거리 탄도 미사일 전략 핵무기이며 미국등 태평양 연안국의 위협은 장거리 탄도 미사일[ICBM,탄도로켓] 전략 핵무기이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개발 수준이 고저(高低) 각도 발사로 비행거리를 조정하는 "로프티드 궤도(lofted trajectory)[高低角度 발사] 모델" 수준이고 북한 장거리 탄도 미사일[ICBM,탄도로켓] 전략 핵무기도 남한(한국)이나 일본, 중국, 러시아 극동지역의 위협되고 있다
The news came hours after state media showed North Korean leader Kim Jong-un inspecting what it said was a hydrogen bomb[미사일 핵탄두]
미사일 요격 방어시스텀 미국 사드나 러시아 S-400는 수송기(폭격기)나 로켓,탄도 미사일도 요격이 가능하다
미사일 방어 전투는 미사일 탄두를 식별하고 그 미사일 탄두를 파괴하기 위한 한 순간의 전쟁이다. 한국이나 아시아 태평양지역도 나토처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DD) 배치로 탄도 미사일은 물론이고 지구 궤도를 도는 인공위성[탄도로켓]까지 요격할 수 있는 미사일 방어체제(MD)를 갖출 수 있게 되었다
북한 로켓부대(미사일과 포부대) 이외 지상군(地上軍, ground army)은 남한보다 열세이다
(2)내전위기 여부
북한 김정은정부는 내전을 북한내부 지역 전쟁이나 북한 주민들의 반김정은 세력 무장투쟁이 아닌 남북전쟁으로 척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남녀 징병제 국가로 120만명의 인민군을 보유하고 있다[남자는 10년, 여자는 7년 군복무]
북한 인민군의 60%이상이 북한내부 법과 질서(주체사상과 선군정치 주체연호 좌익파시즘 세습제 좌익군정)를 지키는 치안군이다
북한정부의 군사력에서 가장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치안군이다
북한 주체사상과 선군정치 주체연호 좌익파시즘 세습제 좌익군정 김정은 부대가 남침이나 일본에 대한 미사일 공격을 할때 내전이 일어날 수 있으며 반김정은 세력이 대량살상무기를 장악할때는 주체사상과 선군정치 주체연호 좌익파시즘 세습제 좌익군정이 붕괴될 것으로 본다
중국이나 러시아 정부도 북한 핵무기 포기정책에서 핵무기를 포기하고 민생경제로 전환할 수 있는 모델 수평적 권력교체를 선호해왔다
(3)동맹국 여부
과거 북한정부의 동맹국 러시아나 중국은 유엔안보리 5개국 상임이사국으로 북한 핵무기 포기정책 유엔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는 핵무기를 포함한 대량 살상 무기와 탄도 미사일[핵 대포, 핵 배낭, 핵 어뢰, 핵 기뢰등 전술 핵무기와 탄도 미사일(공중발사 순항 미사일이나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단거리 탄도미사일) , 탄도 로켓(대륙간 탄도 미사일 ,사거리 5,500km 이상) 등 전략 핵무기]의 완전한 검증 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방법으로 폐기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라 북한의 자금이나 경제, 외교의 활동을 제한하는 것이다
중국이나 러시아 정부도 북한 핵무기 포기정책에서 핵무기를 포기하고 민생경제로 전환할 수 있는 모델 수평적 권력교체를 선호해왔다
북한정부 내부 핵무기와 핵탄두 탄도미사일 개발을 추진해 온 세력은 주체사상과 선군정치 주체연호 좌익파시즘 세습제 좌익군정이다
주체연호(세습제 좌익군정) 청산이 수평적 권력교체이며 핵무기 포기정책이다
*조소 우호 협력 및 상호 원조 조약[朝蘇友好協力─相互援助條約]
1961년 7월 6일 북한과 소련 사이에 체결된 양국 간의 군사동맹조약.
정식 명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소비에트 사회주의연방공화국 간의 우호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이다. 이 조약의 특징은 유사시 군사적 자동개입을 규정한 양자동맹조약이라는 것이다. 김일성의 소련 방문 중 체결된 이 조약은 6개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핵심 내용은 ‘체약 일방이 어떠한 국가 또는 몇 개 국가들의 연합으로부터 무력침공을 당함으로써 전쟁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체약 상대방은 지체 없이 군사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 밖에도 조선·소련 양국 간의 경제·문화·기술의 원조·제공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당시 소련은 바르샤바 조약 기구 등 다자간 안보조약을 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과는 양자조약을 체결했다. 또한 대국-소국 간의 군사동맹이 소국의 수도에서 협정이 체결되는 것에 반하여, 이 조약은 김일성이 모스크바를 방문해서 체결되었다.
소련 측 자료에 따르면, 김일성은 중국과 소련에 통보하지 않고, 두 개의 조소, 조중 군사협정을 5일 간격으로 체결했다. 따라서 체결 당시부터 협정의 강제성이 의문시되었다
(1)역사적 배경
북한과 소련 간의 조약 체결은 1950년대 후반 치열해지는 사회주의 진영의 중소갈등과 중인전쟁, 그리고 한국의 5·16군사정변 및 한일관계 정상화 움직임, 미국의 동아시아 지역 통합 전략 구상 등으로 북한을 둘러싼 안전보장 환경이 악화되면서 체결되었다. 그러나 동맹 체결 직후 중소갈등이 심화됨에 따라 조소관계는 실질적으로 중단되었고, 허울뿐인 동맹으로 전락하였다. 조약 체결 이후 김일성은 국내외적으로 소련, 흐루시초프, 현대수정주의에 대한 투쟁을 전개하였다. 1961년 11월부터 1964년 10월까지 소련은 북한에 대한 군사원조를 중단했다. 더욱이 소련은 중국, 북한과의 경제 원조를 중단했으며, 북한에 제공했던 차관을 황금으로 상환할 것을 요구하였다.
(2)경과
이 조약은 10년간 효력을 가지도록 규정되어 있었고, 체약 일방이 기한 만료 1년 전에 조약 폐기에 관한 희망을 표시하지 않는다면 자동으로 5년간 연장되도록 되어 있었다. 탈냉전 분위기와 더불어 1990년 한국과 소련의 국교정상화 이후 조약의 유지가 어렵게 되었다.
1994년 6월 김영삼 대통령 러시아 방문 시 옐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동 조약의 폐기를 강력히 요청하였다. 1995년 8월 7일 러시아 동 조약을 연장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북한에 통보하여, 1996년 9월 10일 이후 효력 상실했다. 2000년 2월 이바노프 외무장관의 평양 방문에서 조러 친선선린 협조조약(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소비에트 사회주의연방공화국 간의 우호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을 정식으로 체결했다. 북한은 2000년 4월, 러시아는 7월에 이를 비준했다. 새 조약에는 쟁점 조항인 자동군사개입 규정이 삭제되었으며, 경제·문화·기술 협력에 대한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3)의의와 평가
냉전 시기 북중우호조약과 더불어 북한의 안전을 보장한 주요 군사동맹조약. 1961년 7월 북중우호조약과 북소우호조약이 체결되었지만, 북소조약 체결 직후 북소관계의 악화와 더불어 1962-64년 북소관계에 따라서 허울뿐이 조약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냉전시기 북소동맹조약의 불완전하게 작동함으로써 북한의 안전보장이 불완전하게 되었다.
*조중우호협력 상호원조조약
1961년 7월 11일에 북한과 중국 사이에 맺은 조약.
조중우호협력 상호원조조약은 1961년 7월 11일 베이징에서 체결됐다. 북한 김일성 주석과 당시 저우언라이(주은래) 중국 총리가 양국 전권 대표로 서명했다. 양국이 평화와 안전을 지키는 것을 전제로 어느 한쪽이 타국의 침략을 받아 전쟁에 들어갈 경우 양방은 의무적으로 모든 노력을 다해 군사적 지원 등을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지난 1981년과 2001년에 2차례에 걸쳐 자동 연장됐고 앞으로 유효기한은 2021년이다.
그러나 북한의 핵무와 탄두 미사일 개발이 ‘평화와 안전을 지키는’ 의무를 위배한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조중우호협력 상호원조조약 내용
제1조 중화인민공화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양국은 아시아와 세계 평화 그리고 양국 국민의 안전을 위해 모든 분야에서 끊임없이 노력한다.
제2조 중화인민공화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양국은 모든 조치를 공동으로 맡으면서 체결국에 대한 특정 국가의 침략을 방지한다. 체결국 가운데 한 쪽이 몇몇 동맹국의 침략을 받을 경우 전쟁 상태로 바뀌는 즉시 군사적 원조를 제공해야 한다.
제3조 어느 체결국도 다른 체결국과 맺은 동맹에 참가하지 않으며 다른 나라에 대한 특별한 집단, 행동, 조치에도 참가하지 않는다.
제4조 중화인민공화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양국은 양국 공통의 이해 관계가 있는 모든 중대한 국제 문제에 대해 서로 협의하기로 한다.
제5조 중화인민공화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양국은 주권의 상호 존중, 내정 불간섭과 평등 호혜의 원칙, 우호-협력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양국간의 사회주의 건설 사업에서 가능한 한 경제-기술 원조를 진행하며 양국간의 지속적인 경제, 문화, 과학, 기술 협력을 통해 발전시킨다.
제6조 중화인민공화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양국은 조선의 통일이 평화와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실현되는 것을 원하며 이러한 문제의 해결은 조선 인민의 이익 및 동아시아의 평화 옹호 목적과 일치하는 것을 인정한다.
제7조 이 조약은 양국 의회가 비준하지 않으면 효력이 생기지 않으며 양국이 비준서를 교환한 날부터 효력이 발생한다. 비준서는 평양에서 교환하며 양국이 조약의 개정 또는 효력의 상실에 대해 합의하지 않는 이상 효력이 유지된다
핵 보유를 위한 북한의 시도는 자국과 지역의 안전에 충격을 줬고 중국의 국가안보 이익에도 심각한 피해를 줬기 때문에 이는 조약 위반 사안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조약은 침략을 단호히 반대한다고 명시했는데 북한이 고집대로 핵을 개발하고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위배되는 미사일 발사시험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이는 조약을 체결했을 당시와 2001년 조약이 마지막으로 갱신됐을 때와는 다른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신문은 "북한은 반드시 핵실험을 중단해야 하고 한미 양국도 북한을 겨냥한 군사적 위협을 멈춰야 하며 양측은 한반도 안정과 평화를 위해 각자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간의 북중관계가 외부로 비치는 것보다 그리 끈끈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한중 수교 다음 해인 1993년 북한은 2000년 올림픽 유치 경쟁에서 중국이 아닌 호주를 지지했고, 1997년 덩샤오핑(鄧小平) 사망 때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대사관에 조전을 보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선즈화(沈志華) 화둥사범대 교수가 북중 혈맹관계 와해를 주장하며 “조선(북한)은 잠재적 적국이고 한국은 가능한 친구”라고 말한 강연록도 회자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은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지지했습니다[한반도 통일국가는 군국주의나 국가사회주의 노선으로 전쟁에 의한 통일이 아닌 남북 주민이 선출한 남북의회에 의한 자유사회(민주화 사회) 평화통일이다 한반도 비핵화 원칙이 군국주의나 국가사회주의 정책 노선이 아니다]
러시아나 중국정부는 수정주의(실용주의) 노선이다. 수정주의(실용주의) 노선은 새로운 정세에 점진적이고 온건한 입장에서 대응하기 위하여 기존의 이론이나 학설을 수정하려는 경향이다
수정주의를 실용주의로 표현하고 있다
볼셰비키 혁명 후 수정주의라는 용어는 공산주의자들이 확립된 견해로부터 벗어나는 어떤 종류의 이견들을 매도하는 데 쓰이게 되었다.
실용주의란 말은 이상주의나 세계를 불변의 것으로 파악하는 원칙보다는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에 촛점을 두고 실용성을 중시하는 정치적 입장이다
“世界潮流浩浩蕩蕩順之則昌, 逆之則亡.
民國基於三民主義,為民有、民治、民享之民主共和國(立憲君主國)“
북한정부의 안보능력은 남침을 할 수 없을 만큼 약한 국가이다
남침이나 일본 미사일 발사, 지역분쟁을 할때는 유도적 전술 오판이나 북한 내부 권력투쟁으로 일어날 수 있다
유엔안보리는 남침이나 일본 미사일 발사, 지역분쟁을 할 수 있는 세력에게 대북제재를 가하고 있다
2.북한정부의 경제능력은 실패국가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북한정부의 경제능력은 기아와 평민층 식량난으로 외부로부터 식량원조국가로 실패국가로 평가되고 있다
(1)외부의 식량 지원이 필요한 나라
유엔이 또다시 북한을 외부의 식량 지원이 필요한 나라로 분류했습니다. 스위스의 비정부기구는 북한을 인도적 위기국으로 꼽았습니다.
유엔 산하 ‘식량농업기구(FAO)는 7일 1분기 ‘곡물 작황 식량 상황 보고서’에서, 북한을 외부의 식량 지원이 필요한 세계 41개 나라 가운데 하나라고 밝혔습니다.
보고서는 2018년 곡물 생산량이 예년 평균 수준에 미치지 못했던 전년도 보다 더 감소할 것으로 공식 추산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는 지난 해 7월과 8월 사이의 높은 온도와 적은 강수량 때문이라며, 그 결과 대부분의 가구의 식량 소비율이 계속 경계선상에 있거나 열악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에서는 식량 불안정에 관한 우려가 계속 남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보고서는 지난 해 말을 기준으로 북한의 식량 수입 필요량이 64만 1천t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보다 앞서, 북한주재 유엔 상주조정관실은 6일 발표한 ‘2019년 북한 필요와 우선순위 보고서’에서, 지난 해 북한의 식량 생산량이 495만t으로 전년도 545만t에 비해 50만t 감소했다고 밝혔습니다.
보고서는 북한에 만성적인 식량 불안정과 영양실조가 광범위하게 퍼져있다며, 전체 인구의 43%인 약 1천 100만 명이 영양결핍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타판 미슈라 상주조정관은 특히, 지난 해 북한의 식량 생산량이 전년도에 비해 9% 감소하면서 1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점이 우려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로 인해 상당한 식량 부족이 초래됐다며, 적절한 자금 지원이 없을 경우 북한의 인도적 상황이 악화되고 영양실조와 질병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한편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비정부기구인 ACAPS가 7일 북한을 ‘인도주의 위기국’으로 분류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의 복합적인 인도적 위기는 정치 경제적 요인과 함께 자연 재해로 인해 촉발된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 야욕이 국제 제재로 이어졌고, 이는 지원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입니다.
또한 북한은 폭우와 홍수, 가뭄 등에 주기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으며, 2018년에도 심각한 홍수를 경험했고, 8월에는 태풍 솔릭이 북한을 강타했다고 덧붙였습니다.
북한 평민층 식량난과 영양부족(실조) 북한 아동들 모습[Famine grips North Korea]
A malnourished boy stands in an equally emaciated cornfield, in Hwanghaenam-do, North Korea on September 29, 2011. [북한 함경남도 옥수수 밭에 서 있는 영양부족(영양실조) 북한 아동모습(2011년 9월 29일)]
A homeless woman prepares a few shriveled ears of corn for lunch in Hwanghaenam-do, North Korea on September 30, 2011(점심 밥)
Students and volunteers dig a canal on October 1, 2011 in Haeju , capital of Hwanghaenam-do, North Korea.(학생과 주민 자원자들 동원 근로사업)
A woman cooks at home on September 29. 2011, in Hwanghaenam-do, North Korea(옥수수 밥을 준비하는 북한 어머니 모습)
A malnourished boy lies on a hospital bed in Haeju, capital of Hwanghaenam-do, North Korea on October 1, 2011.(영양실조로 병원에 누워 있는 소년 모습)
A mother cares for her clinically malnourished child(영양실조로 누워 있는 아동을 간호하는 어머니 모습)
Malnourished infants lie on hospital beds in Haeju, capital of Hwanghaenam-do, North Korea on October 1, 2011(함경남도 해주 병원 입원한 영양실조 북한 아동들 모습)
A boy prepares the soil for crops on a collective farm in Hwanghaenam-do, North Korea, on September 30, 2011(집단농장에서 농작물을 위해 흙을 준비하는 소년모습)
Women work on a collective farm in Hwanghaenam-do, North Korea, on September 30, 2011(집단농장에서 일하는 북한 여성들 모습)
Pak Su Dong, the boss of the collective farm in Hwanghaenam-do, North Korea(집단농장 책임자 박수동씨 모습)
Jo Tae Kun, a health-care assistant in a small village in Hwanghaenam-do, North Korea(마을 영양사 조태곤씨 모습)
Two North Korean orphans dress to impress a foreign delegation(두 명의 북한 고아들이 외국 파견단 방문용으로 좋은 옷을 입은 모습)
자료:중국정부
http://www.china.org.cn/photos/2011-10/11/content_23591611_6.htm
(2)군국주의 국가사회주의 노선 좌익 파시즘 북한 인민군 경제
공식적은 북한 군은 120만명이다. 북한의 나머지 군인들은 민간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이 민간 업무란 양돈, 어획, 광산, 공장 등에서 일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무임급으로 일을 시키는 것이다 [북한은 남녀 징병제국가로 중학교 졸업 후 남자는 10년간, 여자는 7년간 현역군인이나 다른 군복무형태 직장 등지에서 군복무를 해야 한다]
인민군은 농업, 공업과 군수산업 중공업, 공공기업체 기능도 겸하고 있다. 이들은 제일 거대한 생산집단이며, 동시에 소비집단이다 북한 핵무기 개발이나 미사일 개발 비용이 대부분 인민군 경제활동에서 충당하고 있다.
북한 경제는 국영자본체제 북한 인민군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남북 경협이나 외부 경협이 인민군 영향력에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대북 투자는 군국주의, 국가사회주의 주체연호 세습제 좌익군정 좌익 파시즘을 지지해야 한다 민간경제 대북투자는 실패 가능성이 높은 위험국이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북한 인민군 제549부대 양돈장(養豚場) 시찰하여 돼지 사육과 도축 그리고 돼지고기 제품 판매 현황등을 시찰했습니다
2013년 5월 21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북한 인민군 제621호 육종장(育種場)을 방문했습니다. 인민군 제621호 육종장(育種場)은 면적이 349만 평방미터로 인민군 가축 식량기지로 양등을 사육해오고 있습니다
일본 홋카이도 마쓰마에초 부근 해역에 위치한 무인도 마쓰마에고지마에서는 지난달 28일, 북한을 출항한 목조선이 정박해 10명의 선원 가운데 일부가 상륙했는데 경찰 등의 조사에 따르면 섬 건물에서 TV와 소형이륜차 등이 없어진 것으로 밝혀진 바 있습니다.
이들 10명의 선원 가운데 약 절반이 해상보안본부 등의 조사에서 이전에 조선인민군 소속이었다고 밝힌 사실이 관계자를 대상으로 한 취재에서 밝혀졌습니다.
목조선에는 북한 인민군 제854군부대라고 쓰인 표식이 달려 있는데 무기 등은 없었고 북한에서는 군이 외화획득을 위해 수산업에 관여하고 있는 점으로 미뤄 군부대 소속 어선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경찰과 해상보안본부는 선원이 과거 어떤 부대에 소속했는지도 포함해 계속해서 군부대과의 관련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습니다.
(3)주체사상과 선군정치 주체연호 좌익파시즘 세습제 좌익군정 북한 제4공화국 헌법은 자주적 사회주의 국가 북한식 국영자본체제
북한 제4공화국 헌법 제24조 개인소유는 공민들의 개인적이며 소비적인 목적을 위한 소유이다. 개인소유는 로동에 의한 사회주의분배와 국가와 사회의 추가적혜택으로 이루어진다. 터밭경리를 비롯한 개인부업경리에서 나오는 생산물과 그밖의 합법적인 경리활동을 통하여 얻은 수입도 개인소유에 속한다. 국가는 개인소유를 보호하며 그에 대한 상속권을 법적으로 보장한다[북한 제4공화국 헌법 제24조]
1936년 스탈린 헌법 제11조 시민소유는 그 시민개인의 재산이며 물질적·정신적 만족을 위하여 사용된다. 시민소유에는 노동에 의하여 또는 법률에 위반되지 아니하는 범위내에서 취득된 소비용 또는 산업용의 모든 재산이 포함된다. 다만, 시민의 소유로서 인정되지 아니하는 취득물은 이에서 제외된다. 농업과 개인의 부업경영 기타 법률에 규정된 목적을 위하여 시민은 영대사용(永代使用) 상속의 대상으로서 토지를 전유하거나 사용할 권리가 있다. 시민재산의 상속권은 법률에 의하여 인정되고 보장된다.[1936년 스탈린 헌법 제11조]
북한 제1공화국 헌법 제6조 전 일본국가와 일본인의 소유토지 및 조선인 지주의 소유토지는 몰수한다.
소작제도는 영원히 폐지한다.
토지는 자기의 로력으로 경작하는 자만이 가질 수 있다.
토지소유의 최대한도는 5정보 또는 20정보로 한다.
토지소유의 최대한도는 지역 및 조건에 따라서 따로 법령으로 규정한다.
토지의 개인소유와 아울러 국가 및 협동단체도 토지를 소유할 수 있다.
국가 및 협동단체의 토지소유면적에는 제한이 없다.
국가는 로력농민의 리익을 특히 보호하며 경제적 정책이 허하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들을 방조한다.[1948년 북한 제1공화국 헌법 제6조]
북한은 인민경제 제1공화국 헌법을 폐지하고 1972년 주체사상과 선군정치 주체연호 좌익파시즘 세습제 좌익군정 자주적 사회주의 국가 수립이후 북한 경제는 민간경제(인민경제)에서 인민군이나 집단농장 군국주의, 국가사회주의 경제로 전환돼 왔다
북한 경제는 스탈린헌법보다도 반민간경제(반민생경제) 국가이다
국영자본체제는 국가가 운영하는 자본주의(국영기업)를 의미한다
북한정부도 토지이외 모든 물건(주택이나 상가, 자동차등) 개인 소유를 인정하고 있으며 평양시내 아파트 매매를 허용하고 있다 토지는 국가나 협동농장 소유이다 북한 평양시민 중 경제적으로 풍요한 사람은 개인 소유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다
평양 시내 상류층과 평민층, 빈곤층등의 빈부격차도 심각하다
북한 주민 계층은 상류층, 평민층, 빈곤층(식량난이나 영양실조 계층)으로 구분할 수 있다[북한 상류층 30%이내이며 평민층 70%, 평민층 중 빈곤층 33%이내: 북한의 배고픈 사람들(식량난과 기아위기 주민들)이 1990년대 초반 420만명, 중반 700만명이었고 긴 식량 위기의 10 년 후, 2007 년까지 북한 전체 주민의 33 %, 즉 780만명이 영양실조 상태이다]
북한은 교육, 의료, 주거의 무상화를 실시하고 있다고 칭하고 있지만 북한 경제 빈곤화로 실업자나 빈곤층에게는 교육,의료, 주거등의 무상화가 제대로 실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북한 주민은 상류층과 서민층(평민층)으로 구분 돼 있고 서민층(평민층) 중에는 식량위기 계층 빈곤층이 전체 주민 33%이다
북한은 계획 경제를 실행하고 있지만 의식주(衣食住), 외출이나 쇼핑에는 (입장권·승차권 등의) 표, 상표권과 돈이 필요하다. 교육,의료,주거 무상화로 직원 급여가 아니라 생활비만 지급된다. 주택(주거)도 개인소유를 인정함으로 점차 사유화 돼 가고 있다
북한 빈곤층 생활 모습은 TV 방영 되지 않고 있다
텃밭이나 개인 부업을 하는 북한 주민들 모습
3. 북한정부의 정치능력은 국가사회주의 군국주의노선 좌익파시즘 주체사상과 선군정치 세습제 좌익군정으로 실패국가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북한은 제1공화국 헌법 인민회의정부론 인민 민주주의 노선을 포기하고 제2공화국 헌법 자주적 사회주의 국가 주체사상을 공식적으로 국가제도로 인정한 이후 의회 민주주의 정치와 주민자치가 사라지고 지역 군사위원회나 중앙 국방위원회에 의한 통치를 해오고 있다
이때부터 인민의회정부론(인민회의정부론) 노선 인민 전쟁론[의회에 의한 전쟁방식]에서 군국주의 국가사회주의 노선 전쟁론[군대에 의한 전쟁방식]으로 변경 되었다
(1)당군이론과 선군정치 노선 좌익파시즘 세습제 좌익군정
현역군인이나 군(軍) 경력이 없으면 원칙적 북한 노동당 당원이 될 수 없다
북한 노동당 당원은 군인이다[先軍정치와 국방위원회]
북한은 14세가 되는 해 징병대상자로 등록된 후, 16세 때 징병검사를 받는다. 이듬해 17세에 정식으로 입대한다. 복무기간은 남성 보병부대 10년 특수부대 13년, 여성 보병부대 5년 특수부대 7년. 복무 중 의무적으로 경제활동에 투입되므로, 북한 인민군은 농업, 공업과 공공기업체 기능도 겸하고 있다. 이들은 제일 거대한 생산집단이며, 동시에 소비집단이다. 전역 후 계급에 상관없이 60세까지 예비역으로 복무한다. 2000년대 들어 병무행정이 원활히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단, 대학입시를 통해 대학에 들어가거나 예술가, 운동 선수, 징병검사를 통한 심신 상태나 자질 문제가 있는 사람은 징병되지 않는다. 징병되지 않는다고 다 같은 대우를 받는 것이 아니다. 예술가와 운동선수는 장교에 준한 대우를 받는 반면 심신 또는 자질에 문제가 있어서 징병되지 않은 사람은 적대계층으로 분류되어 평생 차별을 당한다
북한 무상교육 중학교 졸업생 중 30%이내 학생들이 개인의 능력과 유상교육기관 대학에 진학한다
통상 군부에 해당되는 선거구나 대의원 수는 상세히 공개되지 않는다. 다만 발표된 선거결과로 군부 관련 선거구와 당연직으로 선출되는 중요 인물들의 인적사항 등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총정치국과 총참모부, 인민무력성의 주요 직책을 포함하여 군종 별 사령부와 군단급에서 당연직에 해당하는 인물들을 고찰하면 제13기의 경우 대략 80여 명이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이번 제14기에서는 이보다 20여 명이 적은 60 여개의 선거구에서 군부 대의원이 배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 대의원은 대부분이 현역군인이나 퇴역군인이다
북한 최고인민회의 개최 모습
4월 11일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평양에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5차회의가 열렸다고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
(2) 김일성 김정일 가계 세습제 유일사상과 조국통일민주주의 전선
북한 주민들은 김일성, 김정일주의자가 돼야 국가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북한 주민들은 김일성주의 주체사상(주체연호)과 김정일주의 선군정치를 지지해야 정치범이 아니다
북한정부에서는 김일성, 김정일 가계 세습제 유일사상 이외는 모든 세력이 적이다
-중국 공산당 지도자를 버려야 종파분자가 되지 않는다 김일성 주체사상과 김정일 선군정치 유일사상으로 무장하라
-국제적 반미투쟁가와 연대를 하라 그래야 반미전선을 구축할 수 있다 중국정부 내 친미인사를 제거하라 일본정부나 한국정부 내부 반미인사를 포섭하라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후보 자격은 다음과 같다
"선거에 참여할 정당과 개인은 선거연합인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에 가입하며 해당 선거연합은 모든 지역구에서 후보를 단일화한다"
후보를 내는 곳이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뿐이기에 모든 지역구에서 단독 후보가 출마하게 되고 홍보나 선전 활동 등 선거 유세도 없다. 투표용지에 적힌 후보자를 지지할 경우에 기표소에 들리지 않아도 된다고 보장하였으니 기표소에 들리는 것 자체가 해당 후보자를 반대한다는 표시가 되는 '공개투표'가 된다. 선거가 끝나면 다 같이 모여서 춤을 추는데, 개표가 끝난 뒤가 아니고 투표가 끝난 뒤에 한다는 점도 선거에서 반대 의견을 내기 어려운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통일전선: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조선로동당 (여당) ·
조선사회민주당 ·
천도교청우당
해외 김일성 김정일 가계 세습제 유일사상 단체[조총련등]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祖國統一民主主義戰線)은 북한의 정치 단체이다. 흔히 조국전선으로 약칭한다.
1.개요
1949년 6월에 평양에서 남한의 민주주의민족전선과 북한의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이 통합하여 창립되었다. 북한 노동당을 포함하여 북한의 여러 정당과 사회단체가 연합하는 형식으로 구성된 단체이다.
단체의 목적은 북한 노동당의 정책, 특히 남북통일 문제에 대한 정책을 지지하며 옹호, 관철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남한에 대한 대남 활동을 펼치는 것이 주요 기능이었지만, 현재는 정당 및 사회단체의 연합체로서 총선거 후보자를 배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2.배경
민전의 통합은 남조선로동당과 북조선로동당의 합당으로 조선로동당이 탄생한 것과 같은 시기에 이루어졌다.
민주주의민족전선은 미군정 시기인 1946년 2월에 박헌영과 여운형, 허헌 등이 만든 단체이다.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은 소군정 영역에서 김일성과 김두봉, 최용건 등이 주축이 되어 구성되어 있었다. 모두 사회주의 계열의 여러 정당과 사회단체가 연합해 창립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은 불법 단체로 규정되었다. 이에 1949년 6월 25일부터 평양에서 회의가 열려 두 단체는 조국통일민주주의 전선으로 통합했다.
3.기능
북한에서는 이 단체를 "노동계급이 영도하는 노농동맹에 기초하여 조국통일을 지향하는 우리나라의 모든 애국적 민주주의 역량을 묶어 세운 강력한 정치적 조직체"로 규정한다. 북한 노동당의 통일전선 전술의 전위를 맡고 있었으며, 대한민국 내의 북한 노동당 지지 세력을 단합시켜 북한 노동당과 연계 활동을 펼치는 것이 목적이었다.
주요 활동은 대한민국에 대한 성명과 담화, 기자회견 등을 통해 여러 제의와 선전 활동을 펼치는 것이었다. 한국 전쟁 전의 대표적인 제의로는 1950년 5월의 총선거 실시 제의가 있다. 남북한의 통일된 입법기관을 설립하기 위한 총선거를 함께 실시하자는 내용이었다.
최고 기구는 중앙위원회이며 산하에 하부조직과 단체를 두고 있다. 북한 노동당 비서를 지낸 김용순과, 여운형의 딸 여원구, 남한 출신인 류미영 등이 공동 의장을 역임한 바 있다.
1961년 창설된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과 유사한 역할을 맡게 되었고, 현재는 각 정당과 사회단체가 연합하여 총선거 후보자를 배출하는 연합체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북한 선거에는 후보자가 한명밖에 입후보하지 않는다.
일본 조총련이나 남한 친북세력 김일성 김정일주의(주체사상이나 선군사상) 단체[한국민족민전선 서울대표부] 그리고 해외 친북세력 김일성 김정일주의(주체사상이나 선군사상) 단체들이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祖國統一民主主義戰線)[통일전선] 하부조직으로 활동하면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
북한 최고 인민회의 대의원은 북한 김정은정부 친위대이며 자금줄(돈줄)이다
특히 해외 단체 북한정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은 북한정부 인적자원단체이며 자금줄(돈줄)이다
남한에서는 북한 김일성정부가 박헌영과 남로당을 체제전복 범죄행위와 미국의 간첩으로 처형된 이후 남한에서 친북세력이 와해 되었고 박정희정부 때 남한 최초의 김일성노선 통일혁명당을 조직했고 1972년도 주체사상 선포와 함께 남한, 조총련 해외단체에 대의원을 선출하여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을 구축해왔다
제5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서 노동당이 크게 패배하고 인민민주주의 노선 인민회의정부론 인민공화국을 포기하고 자국 사회주의 국가 주체사상과 사회주의 공화국 헌법으로 변경하게 되었다
그리고 1972년 12월 27일 최고인민회의 제5기 제1차회의에서 사회주의 공화국 헌법을 채택하여 북한 제2공화국을 선포했다
(3)자유화 민주화운동 세력 탈북민
-김정은 독재 정권 종식할 때 진정한 평화통일-
▲북한 민주화위원회 허광일 위원장
제16회 북한자유주간 3일째인 4월 30일 오후 2시(현지시간) 워싱턴 D.C. 헤리티지재단에서 '북한 인권과 안보 위협 사이의 정책 격차 좁히기'를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발표자로 나선 허광일 위원장(북한민주화위원회), 김흥광 대표(NK지식인연대), 김성민 대표(자유북한방송)의 발표 내용을 아래 요약했다
허광일 위원장
북한민주화위원회는 황장엽 선생이 북한 민주화와 해방을 위해 운영해 온 탈북자 조직이다. 해마다 워싱턴과 서울을 오가며 진행되는 북한자유주간은 17년 전 황장엽 선생을 미국에 초청해 강연을 했던 수잔 솔티 여사가 그 때를 기점으로 매년 해오고 있는 국제적인 행사다. 북한 2,300만 주민들의 자유를 위해 앞장서서 투쟁해 온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여러분들도 다 알다시피 인권이라는 것은 천부적인 권리로 인권탄압은 그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그러나 2,300만 북한 주민들은 오랜 세월동안 인권을 유린당한 채 노예와 같이 살아왔다. 고난의 행군 때에는 350만의 무고한 주민들이 굶어 죽었다. 당시 350만 아사의 대참사와 같은 사건에 대해 우리 탈북자들은 이를 살인 독재자 김정일에 의한 인위적인 대학살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때문에 북핵 문제를 비롯한 북한 문제 해결에서 중심은 부득불 북한 인권 문제가 중점에 설 수 밖에 없다. 북한 인권 문제를 해결해야 북한의 3대 세습 문제도 종식시키고 한반도의 통일도 기약할 수 있다.
북핵은 3대 세습 마지막 독재자 김정은의 생존 수단으로 북한 정권의 운명과 직결돼 있고 인권 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북한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가장 합리적인 방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인권유린과 독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여서 북한과 같은 독재 체제에서의 인권 문제는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북한 주민은 인권이라는 개념조차 몰랐고 착취 계급이 피착취 계급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었다. 북한 주민들의 이 같은 인식은 그들을 정신적 불구로 만들려는 북한의 수단이었다. 그러나 고난의 행군과 함께 시작된 북한 장마당은 북한식 변화의 민감한 촉진제 역할을 해 왔다.
장마당을 통해 외부정보가 자연스럽게 유입될 수 있었고 이는 북한사회를 꾸준히 변화시켜 왔다. 그 결과 장마당을 시시때때로 단속하는데 대한 주민들의 반발은 전에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이는 북한의 보편적인 생활로 자리 잡았다.
최근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현재 한류를 비롯한 외부 정보에 대한 처벌은 강화되지만 정보 확산 속도를 따라 가지 못하기 때문에 김정은 정권의 운명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 때문에 북한은 탈북자들에 대한 전방위적인 압박과 협박을 가하고 있다.
저와 같은 경우만 해도 북한은 십 여년 전부터 저의 북한 행적을 면밀히 알아보고 저에게 북한 보위부 소속의 고위급이 직접 저희 딸을 내세워서 전화를 해서 북한으로 유인하기 위해 갖은 모략을 다 꾸며왔다.
심지어 이들은 북한에 있는 제 가족들의 동영상을 저에게 보내주면서 다시 북한으로 온다면 특별 대우를 해주겠다는 제안도 해왔다.
결론적으로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통일은 김정은 독재 정권이 종식할 때 이뤄진다. 특히 김정은 정권의 종식은 북한 인권 문제가 중점적으로 거론될 때 이뤄질 수 있다. 북한 체제가 무너지고 자유 대한 세력이 힘을 얻게 될 때 든든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평안이 찾아올 것이다.
▲김흥광 대표가 발표하고 있다
김흥광 대표
북한은 고도로 폐쇄된 사회다. 그 사회에서 일어나는 어떤 고발도 세계가 알 수 없다.
구체적인 액션도 그것을 취했을 때 그 안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알아야 접근할 수 있는데 피드백을 알 수가 없는 상황이다. 구체적인 정책을 수정하거나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 정부는 북핵 문제의 첫 단추를 잘 못 끼웠다. 그 악마를 보통 사람과 친구로 만났다. 김정은의 거만성이 지금 매우 높은데 매우 나쁜 신호다.
탈북자들은 10여 년 동안 북한 붕괴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저희들이 가지고 있는 3가지 생각이 있다.
1. 핵으로 무장한 북한과 핵무기를 어떤 협상이나 보상으로 둘을 갈라 놓을 수 있다는 생각은 적합한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권을 붕괴시키면 핵도 없어진다. 북한이 민주화 되면 핵무기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된다. 북한 정권에서 핵무기를 떼어내기 위한 무기가 있다면 그것은 인권에 관한 것이다.
북한과 협상을 할 때, 정치범 수용소를 해체하라거나 이동의 자유, 해외 여행의 자유를 보장하게 하라고 하면 북한 붕괴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고, 비핵화와 장거리 미사일까지 무력화시킬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2. 북한 내부로 외부 정보를 강물처럼 흘려 보내야 한다. 미 국무부와 많은 북한 단체를 통해서 북한에 들여보낸 많은 정보들이 오늘날 북한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동력으로 작용했다.
혁명이 일어나려면 사회에 크게 3가지 변화가 필요하다. 첫째는 속삭이는 사회다. 그리고 거기서 더 깨어나서 통하는 사회처럼 대 놓고 소통하는 사회가 두번째 단계다. 그리고 마지막은 행동하는 사회로 들어서게 된다.
북한자유주간 대표단 가운데 다양한 시대별로 온 사람들이 있는데 의식이 다르다. 북한에서 정보를 접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현 주소는 웅성거리는 사회로 진입했고 공개적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이제는 행동하는 사회로 진입하는 것이 남았다.
마지막으로 북한의 비핵화 문제 해결 방안이나 21세기 히틀러가 될 수 있는 김정은에 대한 대안은 탈북자라고 생각한다. 호랑이는 호랑이로 친다는 말이 있다.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많은 보고서는 탈북자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탈북자들은 북한의 현재 인권 상황 가운데 행동하는 사회로 이끌기 위해서는 북한에 인터넷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대담한 시도와 기술적 대안을 가지고 있다.
북한에 있는 각급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졸업한 탈북자들이 60명이 넘어서지만 북한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를 한 사람은 없다. 정보를 함께 나누려고 하지 않는다. 북한에 다양한 풀뿌리 조직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시장 조직, 사회 조직, 군사 조직까지 만들어야 하며 이런 활동을 위한 후원도 필요하다.
▲김성민 대표가 발표하고 있다
김성민 대표
한국 현지시간 새벽 3시 15분이면 만조를 통해서 물풍선을 보내고 있다. 페트병에 쌀을 담아서 보내는 것도 있는데 새벽 만조 때 이뤄지는 것은 김정일 김정은의 왜곡된 영상과 함께 쌀과 약재, 성경을 담아 보내는 것이다.
현장에서 보신 분들이 많겠지만 물 흐름을 따라서 김정은 머리가 이어지고 있는데 정말 장관이다. 이것이 탈북자들의 힘일 수 있다. 북한이 남쪽에서부터 이상한 물건이 떠내려오면 간첩물자라고 생각하고 총으로 쏜다. 그런데 김정은 사진이 있는 풍선 때문에 이 물자를 쏘지 못한다.
오늘 드리고 싶은 말씀을 먼저 하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지금 보여드린 것처럼 페트병, 아이스박스, 김일성 머리 풍선, 대북전단, 제가 하는 대북 라디오, 최정훈 사령관이 하는 USB. 이런 모든 대북 정보 유입사업들을 누가 할 것인가. 대한민국 국민들은 아주 적은 사람들이 할 뿐 대부분 탈북자들이 하고 있다. 그 많은 정보유입을 탈북자들이 해 왔고 할 것이다.
첨단기기들이 북한에 들어오면 북한 당국은 그 물건에 대해 '남조선 괴리놈들 꾀임에 빠진다'면서 SD카드 구멍을 폐쇄하거나 갖은 방법으로 정보 유입을 막는다. 그러나 우리 탈북자들은 그 때마다 새롭게 테크놀로지를 개발해서 그 장벽을 뚫고 있다. 마치 북한이 모든 철의 장벽을 치고 있다면 우리는 '뚫는다' 하고 들어가고 있다. 북한의 인권 문제는 북핵 문제와 결부돼 있다.
김정은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말하는데 이는 기만전선에 전 세계를 빠뜨리는 것이다. 이 북핵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미국을 겨냥한 전술무기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핵을 이용한 북한의 대미 전략은 첫째는 체제 안전보장이며 둘째는 대북제재 해제이다. 미군이 철수하고 적화통일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북핵을 포기 않을 것인데 그동안 김정은은 북핵폐기가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라는 언어전술로 미국을 기만해 왔다.
핵포기를 전제로 한 빅딜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정이 여기에 있다. 이 자료들은 우리가 북한과 직접 전화통화를 해서 카카오톡이나 USB로 받은 자료이다. 여기 오신 단체장들이 다 수고해서 얻은 정보들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정보 부서나 국방부는 가질 생각을 안 한다. 작년부터 차곡차곡 모은 자료인데 이것을 해리티지재단에 기증하려 한다. 이 같은 핵문제를 포함한 북한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 인신매매, 가짜 달러, 가짜 화폐, 마약, 납치, 국군포로, 정치범수용소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제일 손쉬운 것은 인권 문제 아니겠는가. 아킬레스건이다. 꾸준히 제기하면 되는데 유감스럽게 미국이나 한국 정상이 김정은을 만나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이 인권 문제 제기는 탈북자 입장에서는 매우 긴박한 문제이다. 김정은이 북핵만 포기하면 체제도 인정해주고 잘 먹고 잘 살게 해주겠다고 하는데 우리는 반대한다. 인권 문제가 제기돼야 한다.
최근에 온 탈북자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면 100명 중 90명이 한국 드라마를 봤다고 한다. 재미있으니까 봤다고 했다. 북한은 오직 당에 충성하는 관계로만 사람들을 만나니 재미가 없다. 사랑도 통제돼 있다. 그런데 한국의 드라마는 사랑 이야기도 재미있다. 그런데 탈북자들이 한국 드라마에 대해 자랑하려고 세트장에서 찍은 것이 아니냐고 한다. 한국 드라마는 정형적으로 만든다는 학습효과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탈북자들이 하는 대북 정보 유입 사업은 기존 북한 주민들의 학습 효과를 깨는 효과를 가져다 준다. 자유를 한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겠느냐 권유하면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게 된다. 북한자유주간의 주제는 '탈북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다. 한 걸음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분명히 자금이 필요하다. 탈북자들이 이런 일에 도움이 필요하구나 하는 것에 관심을 가져달라.
-북한 이탈 주민(탈북민)의 규모는 1950년부터 1989년까지 누계 607명이었다. 또한 1993년까지 누계 641명이었으나 1994년부터 그 수가 꾸준히 증가하여 2000년에는 누계 1,405명이었고, 2017년에는 누계가 31,340명이나 되면서 마침내 북한이탈주민들이 30,000명의 시대를 맞이했다.
-탈북민 여성의 입국비율은 1989년 이전에는 7%에 불과하였으나, 1997년 35%, 2000년 42% 등 꾸준한 증가 추세를 보이다가, 2002년을 기점으로 남성비율을 넘어섰음.
[남녀 징병제 때문에 젊은 여성들의 탈북민 많음]
-남과 북은 단일 민족이면서 민유(民有), 민치(民治), 민향(民享)의 민주공화국 대한민국과 주체사상, 선군정치 주체연호 세습제 좌익군정 좌익 파시즘 자주적 사회주의 국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존속해오고 있습니다
북한이 본래 인민회의정부 제1공화국 정부가 될 때 남북은 의회연합으로 통일국가가 가능합니다
남한으로 탈북민이 많을수록 남북 경제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며 통일 이후 북한 경제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중국 선양 주재 일본 총영사관 철문 안 쪽에서 두 명의 중국 공안원들에 의해 영사관 바깥쪽으로 끌려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는 어린-당시 생후 2년 4개월이었다- 김한미 양의 모습은 TV화면을 통해 전 세계 방영됐고 보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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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4월 20일 오후 황장엽과 김덕홍, 서울 도착 모습
41세 북한 농민이 남한 비무장지대 국경 철조망으로 넘어 1996년 7월 24일 남한으로 망영한 박철호(朴哲浩), "북한에 너무 배고파." 남한으로 도망 왔다고.
1996년 5월 23일 북한 이철수 대위 미그(Mig)-19 전투기로 수원 공군 비행기장 도착
남북한 기술적으로 전쟁 중인 비무장지대 귀순자의 전화기(사진)
한국정부나 미국정부는 대북정책에서 북한 특권층이나 상류층 입장보다는 북한 평민층 입장을 존중해야 군국주의 국가사회주의 노선 주체사상과 선군정치 주체연호 좌익파시즘 세습제 좌익군정을 청산하고 평민층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개혁개방세력으로 수평적 권력교체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고달픈 북한 서민(평민)들은 지금 무엇을 원할까 핵무기도 아닌 빵(개인의 생존권 衣食住)입니다
북한 김정은정부는 내전을 북한내부 지역 전쟁이나 북한 주민들의 반김정은세력 무장투쟁이 아닌 남북전쟁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민민주주의 독재체제(전제정치) 사회주의 국가를 표방한 중국, 북한, 베트남, 쿠바
1991년 소련 해체와 동구권의 공산주의 국가(사회주의 국가) 몰락을 계기로 프롤레타리아 독제체제(노농동맹 인민민주주의 독재체제) 사회주의는 급격히 몰락했고 레닌의 '국가와 혁명'이 나온지 102주년이 되는 2019년 현재는 레닌의 논지(마스-레닌주의)를 명목적으로나마 유지하는 공산주의 국가는 북한, 중국, 베트남 그리고 쿠바 등 4 개국에 불과하다.
레닌이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론(노농동맹의 인민민주주의 독재체제)'을 구체화 하는 러시아 10월 혁명의 지침서 구실을 하는 ‘국가와 혁명’을 완성했다(1917년 8월 15일).
이 레닌의 지침에 따라 이해 2월 혁명을 통해 짜르 체제를 붕괴시키는데 자유주의자들과 협력한 소비에트세력, 즉 직업적 혁명가들의 지도를 받는 노동자 계급 세력이 자유주의와 의회주의 그리고 이에 바탕한 국가체제의 유지를 고수하고 있던 임시정부를 타도하는 10월 혁명이 일어나게 되었다.
부르주아 국가 체제를 혁명적 방법, 즉 무력적 방법으로 타도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제체제를 수립해야 한다는 레닌의 이 논지는 공산 혁명에 앞서 브루주아 혁명을 통해 수립한부르주아 국가 체제를 유지하면서 사회주의 체제의 성숙화를 진전시켜 한다는 서유럽의 사회주의 세력 주류와도 차이를 갖는 것이어서 소련 소비에트 사회주의 세력과 서유럽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갈라서는 계기를 마련했다,.
레닌의 논지는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의 탄생을 가져왔고 20세기 중반에서 말기까지는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바탕을 둔 사회주의가 전세계의 절반 을 차지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그러나 1991년 소련 해체와 동국권의 몰락을 계기로 프롤레타리아 독제 체제 사회주의는 급격히 몰락햇고 레닌의 '국가와 혁명'이 나온지 101 주년이 되는 2018년 현재는 레닌의 논지를 명목적으로나마 유지하는 공산주의 국가는 북한, 중국, 베트남 그리고 쿠바 등 4 개국에 불과하다.
반면 서유럽의 사회 민주주의는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여 프롤레타리아 독재 사회주의가 몰락한 뒤 자본주의에 극복하는 세력으로 뿌리를 굳히며 성장하고 있다.
1.회의제 정부(의회정부제) 개념
의회가 가장 우월한 정부형태(권력주체)로 의회는 정부를 불신임 할 수 있지만 내각은 의회를 불신임할 수 없다
(1) 회의제 정부(의회정부제) 유형-의회의 우월성 측면에서 운영하는 정부
a.본래의미 의회정부제-프랑스 국민공해
b.집정정부제-의회가 행정부 지위와 역할 수행(스위스)
c.인민회의제(인민 회의정부론, 인민민주주의)- 공산주의 국가
(2)회의제 정부(의회정부제) 특징
a.민선의회에 권력이 집중
b.집행부는 의회에 예속 종속됨
의회는 내각을 불신임하지만 내각은 의회를 불신임하지 못한다
(3)인민 회의제(인민 회의정부론, 인민민주주의)
PDR(인민민주주의 혁명)은 회의제 정부론(의회 정부제) 이론이다
회의제 정부론(의회 정부제)은 의회(인민의회)가 가장 우월한 정부형태이며 의회는 정부를 불신임할 수 있지만 내각(정부)는 의회를 불신임할 수 없다
공산주의 국가는 인민회의제 정부 형태이다
공산주의 국가는 인민의회가 권력을 장악하여 내각은 의회 정책수행 시녀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내각(정부)은 의회에 예속 ,종속돼 왔다
소련헌법은 인민회의제(인민민주주의) 헌법으로 명목상 국가원수 소비에트 최고 회의 간부회 의장이고 실권자는 소련공산당 지도자 당 서기장과 내각 수장 총리(수상)이다 소련헌법은 소련 공산당 일당 독재를 인정함으로 소련 연방 최고회의(최고 의회)는 공산당이 장악하게 되었고 내각도 소련 공산당에 예속 종속돼 왔다
인민 의회정부론(인민 회의정부론)이 의회보다 지도자론(영도론)으로 나아갈 때 군국주의 국가사회주의 국가(1인 전체주의 정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국가주석이나 대통령(최고지도자)의 임기제한을 해야 인민회의정부(인민의회정부)가 될 수 있다. 중국 등소평헌법이나 쿠바 신헌법은 국가주석 임기를 제한하고 있다 베트남도 형식상 국가주석 4년 중임제이다
-소비에트국가는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위한 사명을 완수함으로써 전인민의 국가가 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노동자계급이 영도하고 노농연맹을 기초로 하는 인민민주 전제정치( 인민민주주의독재)의 사회주의국가이다.
2.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 연방헌법상 권력
레닌 시대 초기와 고르바초프 시대 후반의 잠깐을 제외하고는 소련 공산당의 일당 독재가 이루어졌다. 공산당에 의한 일당 독재, 민주집중제, 계획경제를 기초로 하는 이른바 '마르크스-레닌주의'로 불리는 체제는, 노동자, 농민 및 대중 계층이 지지하는 정당에 의한 독재 체제이며, 표현이나 집회, 결사의 자유는 사실상 없었다. 이 때문에, 칼 마르크스가 주창한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의 이상과는 크게 동떨어져 일반 노동자·농민에게 있어서는 지배자가 로마노프 왕조의 차르를 공산당이 대신한 것뿐으로, 정치적으로는 어떤 해방도 되지 않은 체제가 되었다는 평도 있다. 이 때문에 실질적 최고 지도자인 서기장은 「적색 황제」라고도 불렸다. 특히 스탈린 시대에는 숙청으로 많은 사람들이 처형되어 스탈린주의 하의 공산주의는 억압적인 체제와 동일시되었다.
고르바초프 시대 마지막에 잠시 대통령제를 도입한 것을 제외하고는, 스탈린 시대 이래 소련의 국가 원수는 소비에트 최고 간부 회의의 의장이었으나, 실권은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 있었으며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이후의 서기장들은 최고 간부 회의 의장을 겸임하였다. 소련 공산당의 일당 독재는 1991년 8월의 쿠데타가 3일 천하에 그친 뒤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소련 공산당을 해체하여 막을 내렸다.
(1)국가원수-소비에트 최고 간부 회의의 의장(소련 최고 소비에트 상임위원회 의장,대통령)
1919-1946 칼리닌 소비에트 최고 간부 회의 의장(소련 최고 소비에트 상임 위원회 의장)
1946-1953 시베르니크 소비에트 최고 간부 회의 의장
1953-1960 보로실로프 소비에트 최고 간부 회의 의장
1960-1964 브레즈네프 소비에트 최고 간부 회의 의장
1964-1965 미코얀 소비에트 최고 간부 회의 의장
1965-1977 포드고르니 소비에트 최고 간부 회의 의장
1977-1982 브레즈네프 소비에트 최고 간부 회의 의장
1982-1984 안드로포르 소비에트 최고 간부 회의 의장
1984-1985 체르넨코 소비에트 최고 간부 회의 의장
1985-1988 그로미코 소비에트 최고 간부 회의 의장
1988-1990 고르바초프 소비에트 최고 간부 회의 의장
1990-1991 고르바초프(대통령)
소비에트 최고 회의(Верховный Совет)는 소련의 최고 권력기관으로 법을 만들고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상설 기관으로는 최고회의 간부회를 선출했으며, 최고 회의 간부회 의장이 소련 국가 원수였다.
연방 회의(연방원)과 민족 회의(민족원)의 양원제를 택했으며, 임기는 모두 5년이었다. 연방 회의는 30만 명을 1개 선거구로 한 소선거구제를 택했고, 민족 회의는 각 민족별 인구를 반영해 설치했다. 그 대의원은 소련의 15개 공화국, 11개 자치공화국, 5개의 자치구 및 민족관구에서 선출되었다.
(2) 총리(수상)
내각은 소련 최고 집행 기관이면서 최고 회의의 휘하기관이다. 내각의 수장은 총리이며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선출한다
1946년까지는 인민위원회의 의장이었고 그 이후 각료회의 의장이었다 1991년 대통령제 신헌법에서는 총리의 명칭이 국가간경제위원회 의장으로 바꾸었다
레닌 소비에트 연방의 인민위원평의회 주석(인민위원회 의장, 1917년-1924년)
리코프(1924년-1930년)
몰로토프(1930년-1941년)
이오시프 스탈린 (1941년 5월 6일 ~ 1945년)
이오시프 스탈린 소비에트 연방 각료회의 의장 (1945년 ~ 1953년 3월 5일)
게오르기 말렌코프 (1953년 ~ 1955년)
니콜라이 불가닌 (1955년 ~ 1958년)
니키타 흐루쇼프 (1958년 3월 27일 ~ 1964년 10월 14일)
코시긴(1964년-1980년)
티호노프(1980년-1985년)
니콜라이 리즈코프(1985년-1991년)
발렌틴 파블로프 (1991년 1월 14일 ~ 1991년 8월 22일)
이반 실라예프 국가간경제위원회 의장 (1991년 9월 6일 ~ 1991년 12월 25일)
(3)소련 공산당 서기장(소련 지도자)
이오시프 스탈린 (1922년 ~ 1953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 및 소비에트 연방 각료회의 의장 수상(총리) 그리고 소비에트 연방의 인민위원회 국방 담당 위원(군사위원장, 최고사령관) 겸직
니키타 흐루쇼프 (1953년 ~ 1964년):1952년부터 1964년까지 제1서기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1964년 ~ 1982년)
유리 안드로포프 (1982년 ~ 1984년)
콘스탄틴 체르넨코 (1984년 ~ 1985년)
미하일 고르바초프 (1985년 ~ 1991년)
정치국(러시아어:Политбюро, 정식 명칭은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러시아어:Политбюро ЦК КПСС)은 소련 공산당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통치체의 기능을 했다. 이것은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주요 구성원들이 참여했다. 1952년부터 1966년 사이에는 간부회라고 불렸다.
1990년에 열린 제28차 당대회에서는 정치국의 권한을 최고 소비에트로 이양하는 것이 승인되었다. 정치국은 1991년 8월의 쿠데타 실패 직후에 해산되었다.
1987년까지 정치국원은 소련 공산당원만 출마할 수 있었으며, 각 지역에서 하향식 직접 선거를 통해 선출되었다. 마지막 정치국원이 선출되었던 1990년 7월 14일에는 부로케비시우스, 굼바리아제, 고르바초프, 구렌코, 자소호프, 이바시코, 카리모프, 루신쉬, 마살리예프, 모프시샨, 무탈리보프, 나자르바예프, 니야조프, 폴로즈코프, 프로코피예프, 루비크스, 세묘노바, 실라리, 소콜로프, 스트로예프, 프롤로프, 셰닌, 야나예프 등이 정치국원으로 선출되었다.
3.1982년 12월 등소평 헌법과 2018년 3월 습근평헌법 같은 점과 다른 점
(1)1982년 12월 등소평 헌법과 2018년 3월 습근평헌법 같은 점-인민민주주의 독재 사회주의 국가론(자국식 사회주의 국가이론)[인민의회정부론]
PDR(인민민주주의 혁명)은 회의제 정부론(의회 정부제) 이론이다
순수내각책임제 형태 정부이론으로 의회가 가장 우월한 정부형태(권력주체)로 의회는 정부를 불신임 할 수 있지만 내각은 의회를 불신임할 수 없다
(1)민선의회에 권력이 집중
(2)집행부(내각, 행정부)는 의회에 예속 종속됨
의회는 내각을 불신임하지만 내각은 의회를 불신임하지 못한다(권력이 의회에 집중돼 있고 내각은 의회에 예속, 종속돼 있다 공산주의 국가나 자국 사회주의 헌법 국가들은 1당 독재 국가체제로 당 총서기나 당 총비서가 내각 수상이나 국가주석이다)
인민의회정부론에서 국가수반(국가대표)은 주석이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대통령)이다 국가주석이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이 의례적 상징적 인물이고 실질적 권한은 수상이 해오고 있다
중국은 국가주석이 국가수반(국가대표)이고 군사위원장이 군 통수권자이며 총리(수상)는 행정부 수반이다. 등소평 헌법은 국가주석은 공산당 대표가 아닌 중국 전체 인민의 대표자(국가대표자)로서 국가주석 임기는 5년 중임제이고 총리는 의원 임기와 동일하다 군사위원장 임기는 제한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등소평 헌법은 형식상 국가를 대표하는 주석 밑에 국가권력이 유지하는 형태로 국가주석 임기를 제한했다
습근평 헌법은 공산당이 일당독재정부로 수평적으로 국가주석이나 군사위원장, 수상의 임기제한을 하지 않았다
인민민주주의 독재형태를 공산당 독재로 이해하고 있다
중국은 공산당 국가가 아닌 중국 전체 인민의 정부이다
인민해방군은 공산당 당군으로 공산당 총서기가 군사위원장이 돼야 한다는 이론이 습근평 이론이며 인민해방군은 중국 전체 인민의 군대로 공산당 총서기가 아닌 다른 분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등소평 이론이다 그리고 1982년 등소평 헌법은 권력이 집중한 마오 시대의 반성에서 국가주석 3선 금지를 했다 그래야 민주주의 원칙과 인민 전체 경제환경이 나아질 수 있다는 입장이다
등소평 헌법은 실용주의 노선 수정주의자라면 습근평 헌법은 공산주의 교조주의자이다
중화인민공화국 제1조 중화인민공화국은 로동계급이 령도하고 로농동맹에 기반을 둔 인민민주주의독재의 사회주의국가이다.
사회주의제도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기본제도이다. 중국공산당의 령도는 중국특색의 사회주의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이다. 어떤 조직 또는 개인이든지 사회주의제도를 파괴하지 못한다.
(2)1982년 12월 등소평 헌법과 2018년 3월 습근평헌법 다른 점
ㄱ.1982년 12월 등소평 헌법 국가주석 임기제한
제79조 중화인민공화국 주석·부주석은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선거한다.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있는 만 45세의 중화인민공화국 공민은 중화인민공화국 주석·부주석으로 피선될 수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주석·부주석의 매회 임기는 전국인민대표대회 매회 임기와 같고, 연임은 2회를 초과 할 수 없다 [1982년 등소평 헌법-권력이 집중한 마오 시대의 반성에서 3선 금지]
ㄴ.2018년 3월 습근평헌법 국가주석 임기제한 철폐(연임 가능)
제79조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부주석은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선거한다.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가진 만 45세 이상의 중화인민공화국 공민은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부주석으로 선거될 수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부주석의 매기 임기는 전국인민대표대회 매기 임기와 같다[국가주석과 부주석 임기 제한 철폐]
(3)중국 모택동 공산당의 국제적 원조 정당[마스-레닌주의(공산주의)]: 공산당은 자본주의 3대 원칙 '개인의 사유재산과 이윤추구, 자유시장경쟁원리'등을 부정한다
마르크스-레닌주의자당 연맹, 혁명적 국제주의자 운동, 아프가니스탄 해방전선 , 아르헨티나 혁명공산당, 볼리비아 인민혁명전선, 부탄 공산당, 캐나다 혁명공산당, 중국 공산당(1969 ~ 1976. 모택동 사후 중국 공산당도 마스-레닌 모택동주의 보다는 개혁개방세력으로 지칭하고 있음 ), 콜롬비아 혁명공산당, 에콰도르 공산당, 인도 공산당 (마오쩌둥주의), 이란 공산당, 이탈리아 마오쩌둥주의자당(붉은 여단), 네팔 공산당 (마오쩌둥주의), 노르웨이 노동자당, 필리핀 공산당, 포르투갈 노동자공산당, 터키 공산당, 미국 혁명공산당, 흑표당, 홍위병, 일본 적군파 등
중국공산당의 정책은 2002년 11월에 열린 제16대 중국공산당 전국 대표대회에서 장쩌민 주석 겸 비서장이 대표적인 정책 변화에 관한 내용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중화인민공화국은 중국공산당의 통제 아래 있는 "인민의 민주 독재" 상태이지만, 기업가와 자유직업에 종사하는 인민들이 당의 의사결정에 어느 정도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으며 고위 공직자의 부정부패를 막기 위해서 공산당 간부가 자본가와 개인적인 관계를 갖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2008년 중국공산당 제17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에서는 농촌경제 성장을 위한 토지 경작권의 매매허용(토지유동화정책), 통화와 재정정책 규제완화, 경기 부양을 위한 거시 경제정책마련 등의 변화가 있었다.
중국 공산당은 마스-레닌주의와 무산계급 정책으로 자본가(상공인, 자영업이나 자작농 등)들에게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자본주의 3대 원칙 '개인의 사유재산과 이윤추구, 자유시장경쟁원리등'을 경시(輕視)함으로 경제적 빈곤과 국가사회주의(국영자본체제, 국영기업이나 국영농장) 노선을 추구 해오고 있다[히틀러의 독일 노동자당(나찌즘)의 경제 군사정책을 추종할 수 있다]
-중국 공산당 모택동주의는 스탈린노선으로 마르크스, 레닌, 스탈린 등을 추종하는 교조주의 노선이다 자국 사회주의(일국사회주의) 모택동 노선은 마스-레닌주의(레닌의 공산당) 보다 스탈린 계열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내 노동자의 당(노동당) 계열이다 교조주의 노선은 반미 반서방 반자본주의 노선을 추구하면서 자국 사회주의 노선(중국식 사회주의 노선) 사회주의 공화국이론이다
-중국 공산당 등소평주의는 실용주의 노선 즉 자본주의를 인정하는 수정주의자들이다
등소평주의는 인민민주주의 원칙으로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후 사회주의 노선을 견지하고 있다
등소평은 권력이 집중한 마오 시대의 반성에서 국가주석 3선 금지를 함으로 중국 모든 기관이나 단체의 장 임기를 사실상 3선 금지를 했다[국가기관 수장의 임기를 제한했다]
-중국공산당은 각 도시·읍·촌락·학교·지구(地區)·주요작업장 등에 당의 소조(小組)를 두고 있다
중국 공산당 대의원 의석은 전국인민대표대회 2,157 / 2,987(3분의 2이상) 이다
-공산당 군사조직-중국 인민해방군[당군이론]
중국 공산주의 청년단 출신 대부분이 중국 인민해방군 군인들이다
군정분리주의는 군정과 군령을 분리된 국가제도이다 군정분리주의는 군정기관과 군령기관의 역할을 내각과 군사위원회(국방위원회, 군사평의회)로 분리함으로써 군정은 정부의 책임과 의회의 통제 아래에 두지만 군령은 정부나 의회보다 우월한 군령권을 군사위원회(국방위원회, 군사평의회)에 두고 있다 그러므로 군 통수권에 정치적 판단(의회통제)이 개입할 여지가 없고 오로지 최고 지도자에게만 모든 군 인사권이 주어지고 있다
군정분리주의는 군(軍)통수권 독립이 허용되는 모델로 국가수반(국가주석이나 총통, 대통령)이 군 통수권자가 아닌 군사위원회(국방위원회, 군사평의회) 위원장이 군 통수권자이다
중국(중화인민공화국):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가 중앙군사위원회 조직이다(당군이론)
제4절 중앙군사위원회(中央軍事委員會)
제93조 ①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는 전국 무장역량을 영도한다. 중앙군사위원회는 아래 자로 구성한다.
주석·부주석약간인·위원약간인
②중앙군사위원회는 주석책임제를 실행한다.
③중앙군사위원회의 매회 임기는 전국인민대표대회 매회 임기와 같다.
제94조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은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에 책임을 진다.[중화인민공화국 헌법 제4절]
중화인민공화국을 이끌어가는 정치 권력 중 지금까지 설명한 것 이외에 두 가지 주요기관이 더 존재한다. 그 중 하나는 형식적인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내각)이며, 나머지 하나는 중국 인민해방군(군사위원회)이다.
"中国政府爲軍政分離星期的左翼軍政[軍委]至軍政合倂星期的文民政府(人民政府、民間政府)[主席和内閣]要成爲權力變更, 才能以解放軍不是小党的國家和聯合国軍往前走地位和作用.
중국정부는 군정분리주의 좌익군정[군사위원회]에서 군정통합주의 문민정부(인민정부, 민간정부)[주석과 내각]로 권력변경이 돼야 인민해방군이 당군이 아닌 국군과 유엔군으로 지위와 역할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중국 인민의회 내부 경제성장과 군비확장론 중국식 사회주의 보수파(공산주의 계열)과 평민경제존중, 자유화 개방화 민주화를 지지하는 개혁개방세력 민주파(사회주의와 인민민주주의, 자유민주주의 계열)가 있습니다 개혁개방세력은 자유화 민주화 정책으로 군정분리주의 군사정책을 군정통합주의 군사정책으로 변경돼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중국 등소평정부는 모택동주의 1인 장기집권을 청산하고 등장한 5년 중임제 주석제 실용주의 정부이다 중국은 아직도 모택동주의 무장단체 좌익군정 잔재 군정분리주의로 국가주석은 국가원수이며 군사위원장이 군 통수권자이다
-모택동정부 때 우파와 극우 분류[실용주의자를 우파나 극우로 분류]
1957년 10월 15일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중공중앙)이 ‘우파분자 분류 표준에 관한 통지’를 발표하였다.[모택동주의 노선 중국 공산당이 분류한 자본주의민주주의 세력(수정주의자) 우파와 극우세력 동향]
이에 따른 우파는 다음과 같다.
1) 사회주의 제도를 반대하는 자 .
2) 무산계급의 독재와 민주집중제를 반대하는 자 .
3) 공산당의 국가 정치생활 중의 영도적 지위를 반대하는 자 .
4) 사회주의와 공산당을 반대함으로써 인민의 단결을 분열시키려는 자 .
5) 사회주의를 반대하고 공산당을 반대하는 소집단을 조직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자 일부 분야 혹은 일부 계층 단위에서의 공산당의 영도를 뒤엎으려는 자 공산당과 인민정부를 반대하는 소란을 선동하는 자.
6) 앞에서 규정한 우파분자의 범죄활동을 지지하고, 관계를 맺으며 또 통신하여 혁명조직의 기밀을 보고하는 자.
통지는 또한 다음과 같은 사람들을 극우분자로 분류했다.
1) 우파활동 중의 야심가, 지도분자, 주모분자와 핵심 분자.
2) 공산당과 사회주의를 반대하는 강령성 의견을 제출하고 이 같은 의견을 적극적으로 고취한 자.
3) 사회주의 반대활동에 특별히 악랄하고 적극적으로 활동한 분자.
4) 역사적으로 일관되게 반공산당, 반 인민 활동을 전개해 왔으며 최근의 우파활동 전개 시에 적극적으로 반동활동을 한 자.
중공중앙의 이 통지는 반우파 투쟁을 체계화하는 것이었다.
중국 공산당은 1949년 건국 후사회주의 개조과정에서 후펑(胡風본명은 장광런張光人) 비판 등의 부르주아사상 비판 캠페인으로 위축되어 있었던 지식인의 활동을 적극화시키기 위해 '백화제방 백가쟁명(百花齊放 百家爭鳴)' 운동을 제창했다.
중국문화가 꽃핀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의 자유로운 언론활동을 상기시키기 위하여 마오쩌둥(毛澤東)이 명명했고, 1956년 5월 중국공산당 선전부장 루딩이(陸定一)가 '백화제방·백가쟁명'이라는 제목으로 강연, 지식인의 자유로운 발언을 호소했다.
당초 지식인의 반응은 매우 소극적이었으나 1957년 5월 '언자무죄(言者無罪 : 무엇을 말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라는 방침에 고무, 일제히 발언하기 시작, 중국공산당에 대한 비판이 속출했다.
마오의 생각은 이 운동을 통해 이왕의 사회주의 건설을 정당화하고 강화하자는 것이었으나 순식간에 체제를 부정하는 단계로까지 치닫자 자신이 고무한 이들의 발언을 "'우파' 분자에 의한 반당·반사회주의적 '독초'"라고 매도하고, 같은 해 6월 '반우파투쟁'을 전개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공산당의 모순을 비판했던 공산당원들 다수가 반우파 분자로 몰려 숙청되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였다. 29세이던 1957년 당적박탈과 강등 조치를 당한 주룽지는 문화대혁명 기간에는 이 ‘우파분자’라는 꼬리표 때문에 5년 동안 노동개조를 받기도 했다. 그는 마오쩌둥이 사망한 2년 뒤인 1978년 당적을 회복하고 사회과학원 공업경제연구실 주임에 임명되면서 ‘개혁 총리’로서의 미래를 예비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50세였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구분해야 홍콩 경제가 중국공산당 중심의 인민민주주의 독재체제 사회주의 국가[중화인민공화국-입헌제 공화국 인민회의정부론(인민의회정부론)] 종속이 되지 않고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존중 자유사회(민주화 사회)로 독자적 경제발전을 할 수 있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 3대 원칙 사유재산, 영리추구, 자유시장경쟁원리 등을 부정하고 있지만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3대 원칙을 인정하고 있다 사회주의의 약점은 국영자본체제(국영기업)이나 군국주의 등 국가사회주의 논리이다 .자본주의는 자유화 개방화 정책으로 국가 경제발전에 큰 힘이 되고 있으며 개인의 사유재산이나 이윤추구, 시장도입으로 1인당 국민소득 중가(개인 재산축적)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 민주주의도 민유(民有) ,민치(民治), 민향(民享)의 국가정책으로 개인 재산이나 생활여건의 불평등을 극복하고 특권층이나 빈곤층이 없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두려워 하는 세력은 권력층이다. 2차대전이후 국가 최고 권력자 대통령(공화국 대통령이나 국가주석, 총통)이나 수상(입헌군주국의 의원 내각책임제 수상)의 임기는 3선 금지 원칙을 표방 하고 있다.
자유주의나 사회주의도 국가발전과 개인의 부축적이나 삶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자유주의도 극단적 자유권인 무정부주의나 자유방임은 개인이나 국가 발전의 장애물이 되고 있다. 그리고 사회주의도 극단적 생존권인 군국주의나 국영자본체제(국영기업)은 개인이나 국가발전의 장애물이 되고 있다
등소평 前 국가주석의 실용주의는 수정주의 노선으로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사회주의 노선을 추구했다. 사회주의는 생존권(사회권)으로 자유주의(자유권)와 상충함으로 자유주의(자유권)를 존중해야 개인이 제3자의 힘 있는 권력자나 기업가 그리고 국가를 견제할 수 있다. "
"중국 인민해방군의 홍콩 독립운동이 아닌 자유화(개방화) 민주화[개혁개방] 운동에 개입하는 것은 자본주의민주주의 홍콩이 인민 민주주의 전제정치 사회주의 국가로 편입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중국정부의 대내외적으로 일국양제( 一國兩制) 나 개혁개방정책 실용주의 노선 포기를 의미합니다. 실용주의(수정주의) 노선은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사회주의 노선입니다. 중국발전을 추구하는 자유화(개방화) 민주화[개혁개방] 운동도 선진국으로 나아가게 하는 애국운동입니다 . 중국정부는 독립운동과 자유화 개방화 민주화 운동(개혁개방운동)을 구별해야 합니다 "
"중국 공산당은 1969년부터 1976년까지 마스-레닌주의 노선 모택동주의 정당이었고 모택동 사후 중국 공산당도 마스-레닌 모택동주의 보다는 실용주의(수정주의) 노선 개혁개방세력으로 지칭하고 있습니다 "
"대한민국이나 중화민국은 국민투표와 자유선거에 의한 三民主義(民有 民治 民享)의 민주공화국이며 중화인민공화국은 인민민주주의 독재정치 사회주의 국가입니다. 대한민국의 우방은 사회주의 국가보다는 민주국가입니다
同一介中華(中國)
中華民國(中國), 中華人民共和國(中國)
중화민국 국민대회는 전체 국민의 위탁으로 손중산(孫中山) 선생의 중화민국 건국 이념에 근거하고 [중화민국 헌법 전문]
1911년에 손중산선생이 령도한 신해혁명에 의하여 봉건군주제가 페지되고 중화민국이 창건되였다[중화인민공화국 헌법 전문]"
4.북한은 인민민주주의 독재체제 공산주의 국가보다는 김일성, 김정일주의 노선 국영자본주의(국영기업) 체제 주체연호 1인 종신직 세습제 좌익군정 북한식 사회주의 국가[김일성 김정일 헌법, 공화제 사회주의 형태 세습제 좌익군정]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주체적인 국가건설사상과 국가건설업적을 법화한 김일성-김정일헌법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를 국가건설과 활동의 유일한 지도적지침으로 삼는다.[주체연호 김일성 김정일 헌법, 공화제 사회주의 형태 세습제 좌익군정]
5.인민민주주의 독재체제(전제정치) 사회주의 국가를 표방한 중국, 북한, 베트남, 쿠바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제1조
중화인민공화국은 로동계급이 령도하고 로농동맹에 기반을 둔 인민민주주의독재의 사회주의국가이다.
사회주의제도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기본제도이다. 중국공산당의 령도는 중국특색의 사회주의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이다. 어떤 조직 또는 개인이든지 사회주의제도를 파괴하지 못한다. -중국 공산당 령도 인민 민주주의 형태 사회주의 국가-
배트남사회주의공화국 헌법 제1조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은 육지, 부속도서, 영해, 영공을 포함한 독립, 주권, 통일, 국토가 있는 국가이다.
제2조
1.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국가는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인민의 사회주의 법치국가이다.
2.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국가는 인민이 주인이 되고, 국가의 모든 권력은 인민에게 속하며 그 기반은 직공계급과 농민계급 및 지식계층의 연맹이 그 초석이다.
3. 국가의 권력은 동일하며 입법권, 행법권, 사법권을 이행하는 데에 국가기관 간에 배치, 협조, 통제 등이 있다.
제3조
국가는 인민의 주권 행사를 보장하고 발휘하며, 인권 및 공민권 공인, 존중, 보호, 보장 등을 하고, 부흥한 국민, 부강, 민주, 공평, 문명의 국가 목표를 추진하여 모든 사람이 넉넉하고,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고 포괄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한다.
제4조
1. 베트남 공산당은 베트남 직공계급의 선봉대이면서 노동인민과 베트남 전민족의 선봉대이고 직공계급, 노동인민 및 전민족의 권리에 충성하는 대표로서 마르크스-레닌주의와 호찌민 사상을 사상적인 기반으로 만들며 국가 및 사회의 영도세력이다.
2. 베트남 공산당은 국민과 긴밀히 연결하며 국민을 위해 활동하고 국민의 감독을 받고 당에서 내리는 결정에 대해서 책임을 짊어진다.
3. 당의 조직들과 당원들은 헌법과 법률의 테두리내에서 활동한다.-베트남 공산당 령도 민주공화국 형태 사회주의 국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 제1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전체 조선인민의 리익을 대표하는 자주적인 사회주의국가이다.
제2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제국주의침략자들을 반대하며 조국의 광복과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실현하기 위한 영광스러운 혁명투쟁에서 이룩한 빛나는 전통을 이어받은 혁명적인 국가이다.
제3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를 국가건설과 활동의 유일한 지도적지침으로 삼는다.
제4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권은 로동자, 농민, 군인, 지식인을 비롯한 근로인민에게 있다. 근로인민은 자기의 대표기관인 최고인민회의와 지방 각급 인민회의를 통하여 주권을 행사한다.
제5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모든 국가기관들은 민주주의중앙집권제원칙에 의하여 조직되고 운영된다.
제6조 군인민회의로부터 최고인민회의에 이르기까지의 각급 주권기관은 일반적, 평등적, 직접적원칙에 의하여 비밀투표로 선거한다.
제7조 각급 주권기관의 대의원은 선거자들과 밀접한 련계를 가지며 자기 사업에 대하여 선거자들앞에 책임진다. 선거자들은 자기가 선거한 대의원이 신임을 잃은 경우에 언제든지 소환할수 있다.
제8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사회제도는 근로인민대중이 모든것의 주인으로 되고있으며 사회의 모든것이 근로인민대중을 위하여 복무하는 사람중심의 사회제도이다. 국가는 착취와 압박에서 해방되여 국가와 사회의 주인으로 된 로동자, 농민, 군인, 지식인을 비롯한 근로인민의 리익을 옹호하며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한다.
제9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북반부에서 인민정권을 강화하고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을 힘있게 벌려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이룩하며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한다.
제10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로동계급이 령도하는 로농동맹에 기초한 전체 인민의 정치사상적통일에 의거한다. 국가는 사상혁명을 강화하여 사회의 모든 성원들을 혁명화, 로동계급화하며 온 사회를 동지적으로 결합된 하나의 집단으로 만든다.
제11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선로동당의 령도밑에 모든 활동을 진행한다.
제12조 국가는 계급로선을 견지하며 인민민주주의독재를 강화하여 내외적대분자들의 파괴책동으로부터 인민주권과 사회주의제도를 굳건히 보위한다. -김일성 김정일주의 지도이념 주체연호 1인 종신직 세습제 좌익군정 북한식 사회주의 국가-
쿠바 헌법 제1조
쿠바는 자주 사회주의에 의한 독립을 누리는 노동자의 국가로, 정치적 자유의 향유,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복지, 인류의 일치단결을 위하여, 통일된 민주 공화국의 형태로 공익과 공공으로써 조직되었다 -쿠바 공산당 령도 민주공화국 형태 사회주의 국가-
쿠바의 주석(Presidente de Cuba), 또는 쿠바의 국가평의회 의장(Presidente del Consejo de Estado de Cuba)은 아래와 같으며 임기는 5년 중임제이며 한 번의 중임은 가능하며 최대 임기는 10년이며 쿠바의 국가평의회에서 선출을 한다"[쿠바 국가원수 국가평의회 의장(국가주석) 5년 중임제 도입]
6.교조주의(敎條主義)[마스-레닌주의 노선, 친소정책 사회주의 공화국 이론]와 수정주의(修正主義) 또는 실용주의(實用主義)[자본주의 노선, 친미 친서방정책 민주공화국 이론(미국의 링컨 민주정치 이론과 수정헌법, 중국 孫文노선)]
선진국은 대부분 수정헌법이다
그리고 러시아(소련)나 중국(북경정부)도 교조주의보다는 수정주의(실용주의) 노선을 추구해왔다
북한은 교조주의라면 남한은 수정주의이다
(예)"世界潮流浩浩 蕩蕩順之則昌 逆之則亡.
民國基於三民主義,為民有、民治、民享之民主共和國(立憲君主國)"[신분제 철폐와 민주공화국(민주국-입헌군주국) 이론]
1.교조주의(敎條主義)[마스-레닌주의 노선, 친소정책 사회주의 공화국 이론]
구체적인 조건을 상관하지 않고 불변의 진리라고 판단되는 개념과 명제만을 고집하는 태도
교조주의(敎條主義,Dogmatism)란 특정한 사상이나 종교경전을 역사적 배경을 생각하지 않고 무비판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
교조주의를 마르크스주의에서는 마르크스의 사상을 마르크스가 살던 시대의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배경을 생각하지 않고, 어디에나 정통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그대로 적용시키는 행태를 비판하는 말로 쓴다. 실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들은 왜 마르크스가 모든 인류의 역사를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비평한 이유를 다양한 배경에 근거하여 생각하지 않고, 분쟁이 일어나면 무조건 '계급투쟁'이라고 하는 것을 유사 마르크스주의라고 비평한다. 때문에 마오쩌둥, 블라디미르 레닌 등과 같은 혁명가들은 정통 마르크스주의를 무분별하게 고수하던 교조주의를 맹렬히 비판했으며, 이들은 각 노동 계급이 처한 현실에 맞게 마르크스주의를 발전시켰다. 종교적으로는 경전의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배경을 생각하지 않고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종교인을 교조주의자나 원리주의자라고 한다. 교조주의는 사상과 종교를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것이므로, 학문적 곧 논리적 비평에 대해 대화와 토론으로 극복하기보다는 무조건 거부하거나 탄압하는 전체주의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다.
교조주의자는 좌익 파시즘이나 우익 파시즘 세력을 지칭하고 있다
(예) 마스-레닌주의자 또는 레닌-스탈린주의자 [공산주의 노선만 고집하는 세력 모택동이나 김일성 등]
2.수정주의(修正主義) 또는 실용주의(實用主義)[자본주의 노선, 친미 친서방정책 민주공화국 이론(미국의 링컨 민주정치 이론과 수정헌법, ,중국 孫文노선)]
새로운 정세에 점진적이고 온건한 입장에서 대응하기 위하여 기존의 이론이나 학설을 수정하려는 경향이다
수정주의를 실용주의로 표현하고 있다
베른슈타인은, 노동가치론과 경제결정론 및 계급투쟁의 중요성을 물리치면서 독일 사회에서는 마르크스의 예언 중 몇 가지가 틀렸다는 것이 이미 밝혀졌고, 자본주의는 붕괴에 직면해 있지 않으며, 자본이 갈수록 소수인에게 몰리고 있는 것도 아니고, 중산 계급은 사라지고 있지 않으며, 노동 계급이 '갈수록 비참한 상태'에 빠지고 있지도 않다고 주장했다.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는 당시의 독일 사회민주당 내에서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볼셰비키 혁명 후 수정주의라는 용어는 공산주의자들이 확립된 견해로부터 벗어나는 어떤 종류의 이견들을 매도하는 데 쓰이게 되었다
실용주의(實用主義)는 19세기 말에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철학 사상. 행동을 중시하며, 실생활에 효과가 있는 지식을 진리라고 주장하였다. 사고나 관념의 진리성은 실험적인 검증을 통하여 객관적으로 타당한 것이어야 함을 강조하였으며 제임스, 듀이 등이 대표적이다.
실용주의 철학은 "인간의 경험 안에서 실행적 시험을 거쳐야" 아이디어의 특정되는 적용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실용주의는 이상주의, 사실주의, 토미즘 등이 세계를 불변의 것으로 파악하는 것과 달리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에 촛점을 맞춘다.
실용주의란 말은 원칙보다는 실용성을 중시하는 정치적 태도를 가리키는 말로도 혼용되었다
수정주의자나 실용주의자는 "민주주의 반대는 공산주의가 아닌 독재주의(전체주의)고 자본주의 반대가 공산주의입니다.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자유주의(자유권)와 사회주의(사회권=생존권) 공존(존중) 자유사회(민주화 사회)입니다" 구호로 표현할 수 있다
(예)"世界潮流浩浩 蕩蕩順之則昌 逆之則亡.
民國基於三民主義,為民有、民治、民享之民主共和國(立憲君主國)"[신분제 철폐와 민주공화국(민주국-입헌군주국) 이론]
1970년대 말 중국의 개혁과 개방을 주장하던 덩샤오핑이 펼친 경제 정책.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고양이는 쥐만 잘 잡으면 되듯이,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상관없이 중국 인민을 잘살게 하면 그것이 제일이라는 정책이다.[등소평의 실용주의(수정주의) 노선 흑묘백묘론 (黑猫白描論)]
중국 개혁개방세력[평화세력, 국가주석의 임기제한(국가주석 5년 중임제) 도입] 등소평정부 이후 미국은 타이완에서 미군을 철수했습니다.
1980년대 덩샤오핑 시대로 진입하면서 중국 공산당은 중화인민공화국이 평화와 발전의 시대에 있다고 규정함하고 사회주의 혁명, 즉 전쟁을 통해 사회주의 이상을 달성하고 공산주의를 이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원칙상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던 이전의 마오쩌둥주의와는 달리 전쟁은 피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중화인민공화국의 대외정책을 규정하게 된다. 중국 공산당은 국가발전의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선 평화로운 국제환경 조성이 필수적이라고 인식했다. 따라서 주변국과의 영토분쟁에서 평화적인 해결의 원칙을 천명하였고 양안관계 문제에도 일국양제의 원칙을 제시하며 무력을 통한 해결이 아닌 평화적 해결을 시도했던 것이 일국양제 개념의 시초이다.
등소평은 수정주의자(실용주의자)로 경제는 자본주의를 인정하고 정치는 인민민주주의 혁명노선 인민 의회정부론 입장에서 국가주석 5년 중임제 도입을 하였다
등소평정부는 마스-레닌주의 공산주의 노선에서 서구식 사회주의 노선으로 전환을 했다
본래 전쟁은 1인 종신직 독재정부에서 추진하는 국가정책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전쟁을 추진하기가 어렵다
북한은 국가사회주의 군국주의노선 좌익파시즘 주체사상과 선군정치(김일성 김정일주의, 교조주의 노선) 1인 종신직 세습제 좌익군정이다
대북 자유사회(민주화 사회)의 수평적 권력교체와 수직적 권력교체
오늘은 대북 자유사회(민주화 사회)의 수평적 권력교체와 수직적 권력교체에 대하여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북한 김정은정권은 김정은정부식 공화국 입헌제 주체연호(김일성 가계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 사회주의 국가(김씨왕조 국가) 수립 목표로 헌법을 개정하고 대내외정책을 수립하여 추진하고 있습니다 봉건주의 가계중심의 김씨왕조국가 수립은 이성계의 조선왕조 건국처럼 반외세, 사대부 중심의 민본주의 정치를 내걸 것 처럼 북한은 반외세 자주정부 이론과 주체사상(주체연호) 그리고 노동당 중심의 사회주의 정치(김일성 김정일 헌법)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북한 김일성, 김정일 헌법은 남북한 주민들을 가족주의(혈통주의) 가계 사회를 이용하여 김일성 종족(주체연호)으로 이념화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데올로기에 편승하지 말아야 합니다
2차대전 이후 민주공화국(인민공화국, 연방공화국)이나 입헌군주국 등 세계 각국은 "국정은 국민의 엄숙한 신탁에 의한 것으로서, 그 권위는 국민에 유래하고(民有), 그 권력은 국민의 대표자가 행사하고(民治), 그 복리는 국민이 향유한다(民享)"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김정은정부식 공화국 입헌제 주체연호(김일성 가계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 사회주의 국가(김씨왕조 국가) 수립 목표로 봉건주의 사회 특수 신분제도 김일성 김정일 헌법(주체연호)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북한사회에서 사회 특수 신분제도(특권층)은 친소 제88독립 저격여단 (러시아어 : 88-я отдельная стрелковая бригада; 약칭 88 осбр) 출신과 김일성 가계(김일성 김정일헌법) 등 김일성세력입니다
스탈린 헌법 제12조 소련의 업무는 모든 유능한 시민들에게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마라[He who does not work, neither shall he eat]”는 원칙에 따라 의무와 존경의 대상이 된다. 소련 사회주의에서 적용되는 원칙은 "각자 자신의 능력에 따라, 각자 자신의 일에 따라[능력에 따른 생산, 노동에 따른 분배. From each according to his ability, to each according to his work]" 사회주의의 원칙이다
[소련이나 중국에서 노동계급 노농동맹(프롤레타리아)이 지주나 자본가(부르죠아)에께서 승리한 눈(eye)이 바로 스탈린 헌법 제12조이다]
북한 김정은정부는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마라' 사회주의의 원칙처럼 특수신분제도를 타도하고 북한 국민들이 평등하게 대우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 국정은 국민의 엄숙한 신탁에 의한 것으로서, 그 권위는 국민에 유래하고(民有), 그 권력은 국민의 대표자가 행사하고(民治), 그 복리는 국민이 향유한다(民享)" 민주주의 3대 원칙처럼 자유사회(민주화 사회)의 수평적 권력교체와 수직적 권력교체가 돼야 합니다
수평적 권력교체는 공화국에서는 대통령(국가주석)이나 입헌군주국에서는 수상의 임기제한입니다
북한은 군주국이 아닌 공화국으로 국내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국무위원장(국가주석이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임기제한이 돼야 수평적 권력교체가 가능합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수평적 권력교체의 대표적인 사례는 국가주석 5년 중임제 등소평헌법입니다
"1982년 12월 등소평 헌법 국가주석 임기제한
제79조 중화인민공화국 주석·부주석은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선거한다.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있는 만 45세의 중화인민공화국 공민은 중화인민공화국 주석·부주석으로 피선될 수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주석·부주석의 매회 임기는 전국인민대표대회 매회 임기와 같고, 연임은 2회를 초과 할 수 없다 [1982년 등소평 헌법-권력이 집중한 마오 시대의 반성에서 3선 금지]"
중국 개혁개방세력[평화세력, 국가주석의 임기제한(국가주석 5년 중임제) 도입] 등소평정부 이후 미국은 타이완에서 미군을 철수했습니다.
1980년대 덩샤오핑 시대로 진입하면서 중국 공산당은 중화인민공화국이 평화와 발전의 시대에 있다고 규정함하고 사회주의 혁명, 즉 전쟁을 통해 사회주의 이상을 달성하고 공산주의를 이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원칙상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던 이전의 마오쩌둥주의와는 달리 전쟁은 피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중화인민공화국의 대외정책을 규정하게 됩니다. 중국 공산당은 국가발전의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선 평화로운 국제환경 조성이 필수적이라고 인식했습니다. 따라서 주변국과의 영토분쟁에서 평화적인 해결의 원칙을 천명하였고 양안관계 문제에도 일국양제의 원칙을 제시하며 무력을 통한 해결이 아닌 평화적 해결을 시도했던 것이 일국양제 개념의 시초입니다.
등소평은 수정주의자(실용주의자)로 경제는 자본주의를 인정하고 정치는 인민민주주의 혁명노선 인민 의회정부론 입장에서 국가주석 5년 중임제 도입을 하였습니다
등소평정부는 마스-레닌주의 공산주의 노선에서 서구식 사회주의 노선으로 전환을 했습니다
본래 전쟁은 1인 종신직 독재정부에서 추진하는 국가정책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전쟁을 추진하기가 어려습니다
북한은 국가사회주의 군국주의노선 좌익파시즘 주체사상과 선군정치(김일성 김정일주의, 교조주의 노선) 1인 종신직 세습제 좌익군정입니다
[중국 공산당은 1969년부터 1976년까지 마스-레닌주의 노선 모택동주의 정당이었고 모택동 사후 중국 공산당도 마스-레닌 모택동주의 보다는 실용주의(수정주의) 노선 개혁개방세력으로 지칭하고 있습니다 ]
북한정부이 평민층의 식량난을 극복하고 남북협력과 점진적 남북통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은 북한 권력층 스스로 수평적 권력교체를 인정하는 것이 자유사회(민주화 사회)입니다
북한은 군주국이 아닌 공화국으로 북한정부의 대내외적으로 대표하는 국가수반의 임기제한이 돼야 수평적 권력교체가 가능하고 국가사회주의 군국주의노선 좌익파시즘 주체사상과 선군정치(김일성 김정일주의, 교조주의 노선) 1인 종신직 세습제 좌익군정에서 실용주의(수정주의), 평화주의 노선 자유사회(민주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남한에서도 미군이 철수할 수 있는 동북아 평화여건이 조성될 수 있습니다
북한 김일성 김정일 헌법은 수정주의 헌법이 아닌 교조주의 헌법으로 전쟁을 추구하는 군국주의 국가사회주의 헌법입니다
수직적 권력교체는 북한 주민과 군인 그리고 공무원(관료)들이 연합으로 국가사회주의 군국주의노선 좌익파시즘 주체사상과 선군정치(김일성 김정일주의, 교조주의 노선) 1인 종신직 세습제 좌익군정 김일성, 김정일 헌법(김정은정부)을 무장봉기(무장력)로 타도하고 새로운 공화국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세계 조류에 역행하는 부정부패 친족주의[국가사회주의, 침략 군국주의 노선] 1인 장기집권 독재자의 좌익 파시즘이나 우익 파시즘 정권일때는 民官軍(민관군) 주도의 연합정부론 군사혁명[유엔 안보리(국제연합안전보장이사회) 결의로 전쟁]도 인정하는 것이 자유사회(민주화 사회)입니다 "
수직적 권력교체는 혁명군 민관군(民官軍)에 의한 김정은 처형을 의미합니다
북한에서 수직적 권력교체가 될 때 유엔과 중국, 러시아등 각국은 신속히 새정부(혁명정부)를 승인할 것입니다
반미 반서방 친소 좌익정부 국가사회주의자 카다피 독재자는 인간이 아닌 신으로 귀소리 뇌개조팀에 의하여 운영 돼 카다피 스스로 자유사회정부를 부정하고 리비아 왕 자청하며 카다피왕조 가족권력으로 국가를 운영해왔습니다
[왕후립 리비아 중국주재 전임 대사는 카다피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카다피는 42년동안 정권을 장악했고 리비아인민들이 부유한 생활을 누리게 했으며 "중동신화"를 창조했습니다. 그는 반미의 기치를 견지해 "반미영웅","사막의 사자"로 불리웠습니다. 다른 한편 그는 독재정치를 했고 자고자대했으며 정책에 변화가 많았습니다. 특히 록크비공중조난사건후 서방 나라들이 리비아에 다년간에 걸친 경제제재를 가했고 이로 하여 리비아국민들의 생활이 곤경에 빠지게 되었고 결국 독재자 카다피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었습니다. 왕후립 전임 대사는 카다피는 인민들이 직접 관리하는 국가체계를 구축하려 했고 총인민대회와 총인민위원회라는 입법과 행정기관을 만들었으나 이런 국가기구들은 인민이 국가의 주인공이 되거나 직접 국가를 관리하는 목적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외 카다피 가족의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된 독재통치도 대중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에 대해 왕후립 전임대사는 "지도자들의 공적과 과오는 리비아 국민들이 평가해야 하고 력사가 최종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루마니아 자유화 민주화 혁명
차우셰스쿠의 잔인한 독재를 싫어하던 군인들도 정권의 수혜를 입던 보안군 '세쿠리타테'(Securitate)를 제외하고 시민들 편에 서서 시민들을 도와주게 되고 이는 유혈 사태로 이어지게 된다[루마니아 군인들이 자유화 민주화 세력에 가담]
외채에 시달리던 타 동구권 국가들과 다르게 루마니아는 외채는 다 갚았다. 그러나 이는 수입은 안하고 수출만 밀어붙이던 괴악한 경제 계획의 산물로 이로 인해 인민들의 생활수준은 동구권에서도 알바니아에 뒤 이은 최악의 수준으로 악화일로에 치달았다.
이런 가운데서도 차우셰스쿠의 통제 정책은 매우 성공적이었고 소소한 시위도 유혈 진압하여 국민들의 저항을 원천 차단하였기에 1989년 중순까지만 해도 루마니아는 끄떡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지 한달이 지난 12월 16일 헝가리계가 많이 살고 있던 트란실바니아의 도시 티미쇼아라(Timișoara)에서 공산당 정부를 비판하던 개신교 소속 퇴케시 라즐로(Tőkés László) 목사가 정부의 강압에 의해 교구에서 사임하고 지역 주민들이 여기에 항의하자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여 대규모 사상자를 낸 소위 티미쇼아라 사건이 터진 이후 본격적으로 루마니아에도 저항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러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12월 21일 이란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차우셰스쿠가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자신의 건재함을 알리기 위해 관제 집회를 열었지만 이것이 시민들의 분노로 인해 역효과를 내고 마침내 다음날인 12월 22일 루마니아에서도 본격적으로 반차우셰스쿠 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차우셰스쿠의 잔인한 독재를 싫어하던 군인들도 정권의 수혜를 입던 보안군 '세쿠리타테'(Securitate)를 제외하고 시민들 편에 서서 시민들을 도와주게 되고 이는 유혈 사태로 이어지게 된다
이렇게 차우세스쿠 비밀 보안군과 대결이 일어남으로써 사실상 절반은 준내전 비슷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차우세스쿠는 북한으로 도망치려고 했지만 결국 시민들에게 붙잡혀 체포를 당했고, 그의 아내였던 엘레나 차우세스쿠와 함께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처형됨과 동시에 보안군의 준동도 대부분 진압된다. 이렇게 루마니아도 1989년의 마지막 주를 해피엔딩(...)으로 장식하면서 민주주의 정권이 들어서게 되었다.
이 사건을 루마니아 혁명이라고 부르며, 1989년 12월 25일 혁명 이후 루마니아인들은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인 민주화를 쟁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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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셰스쿠 공산독재의 종식을 외치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루마니아 국민들의 모습. 솔리다르노시치 깃발도 보인다.
루마니아는 동구권에서 연달아 공산당 정권이 붕괴하고 민주주의 체제로 바뀌는 과정에서, 무력을 사용하여 유혈사태가 일어난 유일한 국가이기도 하다. 냉전 시기 동유럽에서 벌어진 자본주의화의 바람은 루마니아에도 불었다. 헝가리계 개혁교회 목사 퇴케시 라슬로(Tőkés László)를 체포하자, 루마니아 서쪽의 도시 티미쇼아라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고, 차우셰스쿠 정권은 이를 잔혹하게 유혈진압을 하였다.
이에 대해서 수천명이 학살당해서 냉동고에 처박혀 있다는 둥 하는 근거없는 소문[18]이 서방 언론을 통해서 확산되었고 루마니아 국민들은 매우 동요하기 시작하였으며 민주화 시위가 루마니아 전역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국민을 감시하던 정보부 또한 민심을 읽었지만, 이미 민심을 돌이킬 수가 없는 지경이며 그의 종말이 머지 않았다는 생각에 차우셰스쿠에게 이런 상황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차우셰스쿠 부부는 정국이 혼란한 와중에도 이란을 2박 3일의 일정으로 방문하면서 그해 갓 취임한 최고 종교지도자 하메네이를 만나는 위엄까지 보였다.
사실, 차우셰스쿠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는 모든 국민들을 감시하고 도청했으며 우상화 작업을 철저히 해왔다. 또 1984년에 일어난 쿠데타 역시 실패로 돌아갔으며 국민들의 소소한 저항은 항상 유혈진압으로 처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상황이 달랐다.
1989년 12월 21일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하고 있던 차우셰스쿠는 평소에 하던 대로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 광장에서 국민들을 불러놓고 지지대회를 벌였다. 이 과정이 차우셰스쿠 입장에선 정말 재수가 없었는데 원래대로라면 광장에는 차우셰스쿠에 대한 충성심이 높은 열성당원들이 모여서 차우셰스쿠의 연설을 화려하게 장식해야 했다.
그런데 차우셰스쿠가 늦는 바람에 연설이 취소되었단 소문이 퍼지면서 모여있던 열성당원들은 거의 해산해버렸고 이에 허겁지겁 인근의 노동자들을 닥치는대로 징발해서 모아놨는데 난데없이 꼴보기 싫은 폭군의 연설에 강제로 모인 사람들은 당연히 기분이 좋을 리도 없었다. 그리고 차우셰스쿠는 평소처럼 자화자찬식의 연설을 했지만, 연설 중간 광장에 모여 있던 국민들이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차우셰스쿠여! 우리도 사람이다", "학살자를 타도하자!", "루마니아는 잠에서 깨어났다."라는 식으로 야유를 퍼붓고 티미쇼아라 시위의 무력진압에 항의를 하는 구호를 외치는 등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이것이 루마니아의 자유민주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이었고, 차우셰스쿠 독재정권의 몰락의 시초였던 이 역사적인 순간을 방송국을 통해서 생방송으로 내보내고 있었다.
급하다면 2분 40초부터 보자. 2분 40초부터 이러한 광경이 나온다.
차우셰스쿠는 자신의 연설에 군중이 야유와 비난을 퍼붓자 당황하여 말을 잇지 못한 채 손을 흔들어 보이는 뻘짓을 했고 공산당 보안국 간부들이 "어서 관저로 들어오십쇼!"라고 재촉을 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자신의 사자후에 군중이 진정할 것이라고 착각했는지 "hallo!"만 미친듯이 외쳐댔다. 옆에서 엘레나는 재촉하는 간부들과 야유하는 군중에게 "닥치시오!"라고 을러댔고 결국에는 부부가 같이 군중들에게 "동무들, 입 좀 닥치시오!"라고 악을 써대는 상황이 되었다.
한참동안 목이 쉬도록 조용히 있으라고 소리질러도 군중이 잠잠해지지 않자 당황한 차우셰스쿠는 멍청하게 손이나 흔들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5분 30초 경에 보다못한 엘레나가 '뭐라고 말 좀 해 봐요! (Talk to them, talk to them!)' 라고 말한 것이 결정타였다. 결국 차우셰스쿠는 국가의 단합을 호소하는 내용으로 허겁지겁 연설을 마무리했지만 아무도 환호하지 않았고 옆에서 엘레나와 공산당 간부들만 열심히 박수를 쳐댔다. 한편 군중들의 성난 함성은 마침내 폭발했다. 차우셰스쿠는 예정된 것인지는 몰라도 연설중에 90년 1월부터 전국민의 월급을 2000 레이에서 2200 레이로, 노인 연금도 800 레이에서 900 레이로 올려주겠다고 했지만 그런 당근으로 국민들을 진정시키기는 너무 늦은 상황이었다. 텔레비전 연설 방송은 도중에 중단되었지만, 라디오는 방송을 계속 진행되어 당시 상황이 생생하게 알려졌다. 방송이 나간 후 상황은 급변했다.
여기서 차우셰스쿠의 희대의 병크가 터지는데 차우셰스쿠는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국방장관인 바실레 밀리아(Vasile Milea) 장군에게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고 맹비난하면서 앞으로도 병사들에게 데모 군중들을 향한 발포 명령을 내리지 않는다면 갈아치워 버릴 것이라고 협박했다. 그러나 장군은 앞에서는 차우셰스쿠의 말을 따르는 듯이 행동했으나 실제로는 발포명령을 끝내 내리지 않았다.
결국 그는 의문의 암살을 당해 시체로 발견되었다. 정부는 그의 암살을 데모 군중들에 의한 암살이라고 선언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실을 믿지 않았고 다른 소식통들은 차우셰스쿠의 지시에 따른 처형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만약에 데모 군중에 의해 국방장관이 암살될 정도라면 이미 시위는 엄청난 수준이며 진압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스스로 시인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러자 군 내부의 분위기는 크게 바뀌었다. 어? 우리 보스가 우리 국방장관까지 죽이네? → 그럼 우리는 시위를 진압해도 살아남기 굉장히 힘들겠네?→ 우리한테 주는 것도 없으면서 뒷통수를 치냐?! → 차우셰스쿠를 죽입시다! 차우셰스쿠는 나의 원수! 이런 입장으로 돌변하여 시위대에 참여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지켜보던 빅토르 스탄쿨레스쿠 장군은 가짜 깁스까지 하면서 끝까지 차우셰스쿠와 연루되지 않으려고 했으나, 엘레나 차우셰스쿠에 의해 끝내 국방장관으로 임명당했다. 당연히 후임 국방장관은 시위대 편이었다.
그리하여 22일에는 시위를 진압하러 보낸 정규군이 혁명 세력에 가담해 차우셰스쿠에게 총부리를 겨눴고 수도 부쿠레슈티에서는 정규군과 세쿠리타테 사이의 시가전이 전개되었다. 그리고 루마니아 공산당도 차우셰스쿠를 제명시켰다. 국민들 뿐 아니라 군과 당에게까지 버림받은 차우셰스쿠와 그의 추종자들은 이제 대다수의 반대파들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루마니아 정규군이 차우셰스쿠를 지지하지 않은 것은 차별대우 때문이다. 이 당시 정규군과 보안군의 대립은 루마니아 판 임오군란이라고 말해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이었다. 차우셰스쿠는 정규군을 신뢰하지 못했고 낙태와 콘돔 사용 등의 피임을 금지하면서 급증한 고아원에 넘쳐나는 고아들을 뽑아다가 자신에게만 충성하는 비밀 경찰과 특별 보안군 '세쿠리타테(Securitate, Departamentul Securității Statului)' 를 조직했다. 친위대 역할을 맡은 보안군에게는 정규군에도 지급되지 않은 최신 장비와 높은 보수가 주어졌고 이에 정규군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차우셰스쿠가 체포된 후 즉시 총살된 것도 보안군의 반격을 염려한 탓이었다.
실제로 차우셰스쿠의 처형 직후까지도 보안군의 지하요새는 건재했으며, 이들을 진압하는 동안에도 많은 사상자가 속출했다. 이후 차우셰스쿠 시대에 태어난 고아들은 그의 죽음 이후에도 큰 골치가 되었다. 공산 정권이 무너진 뒤 혼란 상황에서 고아원이 더이상 그나마의 재정 지원도 받지 못하면서 더욱 삶이 열악해진 아이들이 거리를 방황하게 되었다.
차우셰스쿠는 즉시 도주를 시도했고 관저 옥상에서 헬리콥터를 타고 외국으로 망명하려 했다. 북한으로 망명하려 했다는 설이 잘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 확증된 것이 없다. 북한 이외에도 소련,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쿠바, 모로코, 리비아, 앙골라 등 많은 국가들이 1989년 동유럽 민주화 혁명 당시 국제 전문가들과 외신들 사이에서 망명 후보국으로 언급, 거론된 적이 있었다.
조종사 바실레 말루찬 중령은 차우셰스쿠의 망명 계획을 껄끄럽게 생각했고 자신이 차우셰스쿠 부부의 독재정치에 대한 불만, 엘레나의 잔소리에 대한 불만 등이 많았기 때문에 비행 중 일부러 기체를 요동치게 하면서 '반란군의 대공 사격을 받고 있다'라고 거짓말을 했다. 헬리콥터 탈출이 힘들다고 판단한 차우셰스쿠는 육로로 이동하기 위해 착륙 명령을 내렸다. 안전한 곳에 헬리콥터를 비상 착륙시킨 말루찬 중령은 경호원들이 속임수를 알아채고 자신을 사살할 것을 우려해 곧장 소속 부대로 도망쳤다. 실제로 조종사의 증언에 따르면 엘레나가 자신을 무섭게 째려봤다고 한다.
차우셰스쿠 부부와 경호원은 도로에 달리던 시민의 차를 징발해 계속 도피하면서 은신처를 수소문하느라 바빴고, 사람들에게 계속 "자신의 대의에 동의하는가"라는 말을 하면서 자신의 편인지를 꼭 확인했다고 한다. 그러나 라디오를 통해 자신의 군대가 등을 돌리는 것을 알게 되었고 갈 곳을 잃어 우왕좌왕하다가 어느 산림 감시원의 숙소를 발견해 그 곳에 은거하기로 했다. 하지만 감시원들은 차우셰스쿠 일당에게 순종하는 척 하면서 혁명군 측에 몰래 자신들의 숙소에 있다고 고발했고, 결국 23일 차우셰스쿠 부부는 도주한 지 하루도 안 돼서 혁명군에게 체포되었다.
체포된 이후에도 차우셰스쿠 부부는 자포자기 했는지 군대의 총사령관과 이야기를 하고 싶다거나, 군인들이 먹는 식단을 가져다 주자 "인간이 먹을 수 없는 음식"이라며 입에도 대지 않았고 이 지방의 특산품인 고급 빵과 당시 루마니아에서는 엄청나게 희귀했던 사과를 줄기차게 요구해 매 끼 사과를 먹었다고 한다. 차우셰스쿠는 건강 때문에 소금기 있는 음식을 먹지 못하는데 신경을 써 주지 않는다고 항의했고, 설탕이 든 음식을 주면 각하는 당뇨가 있는데 왜 이런 걸 주냐고 아내 엘레나는 끊임없이 불평을 늘어 놓았다. 또한 목욕탕 가는 것조차 거부해서 욕조를 갖다 주기도 했다.
그 외에도 당시 차우셰스쿠를 관리하던 세쿠 소령의 증언에 따르면 차우셰스쿠 부부는 금슬은 좋았는지 갇힌 상황에서도 둘이 부둥켜 안고 잠을 잤다고 한다. 거기에 자신이 군중들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자신을 군중들 앞에서 연설하게 해달라거나, 자고 있던 자신을 깨워서 텔레비전 방송국에 자신을 데려다 주면 100만 또는 200만 달러의 돈을 줄 수 있으며, 달러를 주기 전에 가까운 마을 보이네슈티에 감춰둔 돈 수백만 레이의 돈을 준다고도 말했다고 한다. 세쿠 소령은 그토록 태양처럼 받들라고 교육받은 차우셰스쿠의 진짜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훗날 사람들이 이 마을을 샅샅이 뒤졌으나 돈은 발견되지 않았다.
혁명정부는 차우셰스쿠 부부 체포 이전부터 그들의 재판에 대하여 논의하고 있었다. 일부에서는 헌법에 의한 재판을 주장하였지만 혁명군부에서 "차우셰스쿠가 항소하여 살아있을 경우 그들의 추종자들이 역으로 혁명을 일으킬 수 있고, 그러면 큰 내전으로 변할 것이다. 결국 외국군대가 루마니아에 들어올거고 그렇게 되면, 우리 역시 차우셰스쿠와 똑같이 처벌받을 것이다"라고 주장하여 군법에 의한 군법 재판으로 그들을 처벌하기로 하였다. 판결도 내부적으로는 차우셰스쿠가 완전히 미쳤다는 증거 등이 나오지 않은 이상 무조건 사형에 처하기로 결론 내려진 상황에서 그들의 신병만 확보되면 바로 속결하기로 하였다. 그외에도 당시 차우셰스쿠를 지지하는 친위 세력을 두려워해 일찍 처형했다는 의견도 있다. 일단 세쿠리타테 같은 차우셰스쿠파와 전투가 벌어지는 상황이었고, 당시 혁명세력은 숨어있는 차우셰스쿠파의 저격이나 테러로 크게 고생했다. 실제로 차우셰스쿠 재판을 위해 가던 사람이 총을 맞기도 했다.
차우셰스쿠 이후 집권한 리에스쿠 정권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리에스쿠 정권이 차우셰스쿠 일가만 빠진 차우셰스쿠 정권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차우세스쿠 실각 이후에도 옛 공산당 정권 요인들은 대부분 그대로 권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차우셰스쿠 정권이 유지될 수 없다고 판단한 당시의 루마니아의 권력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최대한 빨리 차우셰스쿠만 제거하여 문제를 봉합하려 들었다는 분석도 있다.1989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한 작은 초등학교에서 차우셰스쿠에 대한 비밀재판이 열렸는데 이 재판에서 검사는 "나는 개인적으로 사형에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이 녀석은 인간이 아니므로 상관없다"고 하면서 사형을 구형했다. 한국어 위키백과에 의하면 변호사까지 검사로 돌변했다고 한다. 차우셰스쿠의 변호사 카를로가 말하길,
"당신 편을 들어줘야 하는 처지지만, 당신이 이 나라에 해 놓은 짓을 보시오. 편을 들어준다고 해결될 문제요? 당신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시오. 상식으로 누가 봐도, 아무리 당신에게 유리하게 설명해도, 당신이 이 나라 루마니아를 멸망으로 몰고 간 것을 부인할 수가 없소. 내가 변호사로 일하면서 많은 사람을 담당했지만, 당신 같은 최악의 경우는 처음이요. 나도 당신을 포기했소."
얼마나 썩어빠졌으면 중립을 지켜야할 법정에서까지 대놓고 감정적인 의견이 나올 정도로 차우세스쿠는 그야말로 인민의 적이었다. 그리고 차우셰스쿠는 누구도 자신을 재판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변호와 항소를 거부했다. 만약 항소하였다면 당시 형법상 최소 열흘 정도는 더 살 수 있었겠지만, 항소는 법정을 인정하는 것이었기에 그는 항소조차 거부했다. 물론 항소하겠다 해도 당시 상황상 인정되었을지는 미지수.
그래도 변호는 해야 하니 변호사가 마지막으로 사형만은 면하게 하려고 제안한 게 '정신 이상'을 제안하는 것이었다. 정신병이 인정되면 아무리 재판을 엉성하게 해도 사형만큼은 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공산권에서조차 정신 이상은 의무적인 감형 사유로 규정하고 있었다. 루시안 스타니악이 엄벌주의가 일반화된 공산권 시절 사형을 면한 것은 정신병이 너무 명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우셰스쿠는 이것도 거부했고 항소도 포기하여 결국 사형이 확정되었다. 이런 엉성한 재판을 비판하는 사람도 많은데, 차우세스쿠를 옹호해서가 아니라 공개적이고 명확한 재판으로 그의 악행을 두고두고 씹을 수 있게 정식 재판을 거쳐서 전세계에 그의 악행을 알린 후 사형에 집행했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다.
재판 직후 줄로 묶어서 끌고 나가는 과정도 가관이었는데 차우셰스쿠는 "무엄하다! 감히 날 줄로 묶으려 들다니!"라며 상황파악을 아직도 못했고 엘레나는 몸을 함부로 만지지 말라며 난리를 피웠다. 차우셰스쿠는 자신의 권리 운운하며 포박되는 것을 완강히 거부했으나 끝내 꽁꽁 묶이고 말았다. 끝내 결박된 차우셰스쿠 부부는 흥분해서 병사들에게 부끄러운 줄 알라고(...) 호통을 쳐댔다.
이 때 엘레나가 한 말이 "난 너희들을 어머니로서 대해왔다!"였다. 그러다 결국 죽는다는 공포에 겨워 하소연했으나 병사 중 하나가 싸늘하게 "당신들을 도와줄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소."라고 일갈했다. 엘레나는 "우리처럼 힘없는 사람들을 죽이려 하다니!"라고 울부짖으며 끌려나갔다. 차우셰스쿠는 더해서 자신을 잡으러 온 혁명군들이 "인민의 이름으로 당신을 체포하겠소!"라고 외치자 그 말을 이해하지도 못했다고 한다. 이유가 "내가 인민의 아버지인데 너희들이 무슨 자격으로 인민 운운한다는 거냐?"였다나. 차우셰스쿠를 총살한 병사들 중 한 명은 "오늘 난 아버지를 죽였다"라고 비아냥거렸다고 한다.
오후 4시 사형판결 1시간 반만에 차우셰스쿠 부부는 탈출할 때 입었던 값비싼 정장을 그대로 입고 건물에서 끌려나와 담벼락에 세워져 총살형을 당한다. 이 후 총살형을 집행할 육군 제64공수연대에서는 기존의 사형집행 방법에 따라 부사관급 이상 소총수 열 명에 실탄 다섯 발을 준비하여 사형을 집행하려 했다.
총살형을 일반 징집병이 집행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기 때문에 헌병대 부사관급 이상이 총살형 집행을 맡으며, 그마저도 실탄은 일부에게만 지급한다.
하지만 군인들은 '나도! 나도 죽일 거야!'를 외치며 서로 자기가 사형을 집행하겠다고 아주 난리를 부렸고 결국 8명이 차출되었는데 그들 전원이 차우세스쿠를 죽이길 원하자 최종적으로 대위, 상사, 하사 계급의 군인 3명만 차출되었다. 부대측은 이들에게 규정대로 부부당 5발씩 총 10발만 지급하려 했지만 부대원들이 탄창 하나씩 갈기기로 약속하고 한 사람당 탄창 2개씩 총 180발을 준비한 것까지 막지는 않았다.
현재 전해지는 영상에는 사형 판결 직후 차우셰스쿠 부부를 결박하는 장면과 건물 벽을 배경으로 하여 사격이 끝나가는 때, 그리고 사형된 두 사람의 모습과 사망을 확인하고 후처리를 하는 군인들의 모습이 찍혀있다. 정작 사형이 집행되는 순간은 당시 사용 중인 비디오 카메라의 전원이 끊어지는 바람에 촬영되지 못했다.
당시 처형 순간을 보도한 영상. 차우셰스쿠의 나이는 71세였고 엘레나의 나이는 73세였다.
5분 36초경 엘레나와 차우셰스쿠의 시체가 나오는데 엘레나의 시체가 꽤나 참혹하다.
차우세스쿠는 재판에서 사형이 결정되자 눈물을 흘렸고 죽기 직전까지 인터내셔널가를 부르다가, 1절도 못 마치고 총살형이 집행되어 사살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인터내셔널가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1절의 가사가 당시 상황과 완벽히 일치한다.
일어나라,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아
일어나라, 굶주림의 노예들아
이성의 불길이 분화구에서 타오르니
이것은 마지막 외침이 되리라
과거는 깨끗한 판으로 덮일지니
억압받은 민중들아, 일어나라, 일어나라
세상은 바야흐로 밑바닥부터 뒤바뀌고
아무것도 아니었던 우리들이 전부가 되리라.
처형 장면은 군인들에 의해 녹화된 후 프랑스 A2-TV[24]를 통해 전세계 언론을 통해 공중파를 탔다. 여담으로 미국에서 처형장면을 아침속보로, 그것도 무삭제 방영하는 바람에 이런 거에 민감한 자들에게 심대한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 다행히 우리나라 지상파 방송에서는 나오지 않았다. 조사 결과 차우셰스쿠와 그의 아내에게는 약 120발의 총알이 박혔다고 한다.
그런데 부검 결과 차우셰스쿠의 경우는 총살 직전에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한다. 당시 그는 71세의 고령이었으므로 어마어마한 공포감에 그 정도 연령이었으면 충분히 일어날 만한 일이다. 그리고, 루마니아의 국민들은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로 민주화를 쟁취하게 되었다.
하지만 거리에서 그의 죽음을 기뻐하는 시민들에 섞인 한 여성은 울음을 터트리면서 "도대체 왜 차우셰스쿠를 그렇게나 쉽게 죽인 거냐? 사람이 겪을 수 있는 모든 고통들을 천천히... 그리고 영원히 겪게 해야지!" 라고 했다고 할 정도니 차우셰스쿠에 대한 사람들의 증오감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
그리고 이 작자에 대한 집행을 끝으로 루마니아에서 사형제는 기존에 있던 사형수까지 종신형으로 감형하는 형태로 완전히 폐지되었다. 민주화 직후 처음이자 마지막 사형집행인 셈. 더군다나 일부 지식인들은 "인간이 아닌 악마를 '퇴치한' 것이므로 사형이 아닌 엑소시즘. 고로 민주화 이후 사형 집행은 전혀 없었다"라고 주장하기도 한다고.
총살형을 당한 차우셰스쿠 부부의 시체는 원칙대로 부검 뒤 가족에게 인도해 장례를 치르기 위해 찢어진 텐트로 둘둘 말려 헬기에 실은 뒤 부쿠레슈티 교외의 운동장 한 가운데에 내려놓았는데, 시신이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육군 수색대가 샅샅이 뒤져 다음날 아침 운동장 차고에서 시신을 찾아냈다. 하지만 누가 무슨 목적으로 시신을 그곳에 두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루마니아 정부는 시신을 인도하려 했지만 가족이 풍비박산났기 때문에 그럴 수 없게 되자 그냥 공동 묘지에 매장하는 형태로 장례를 치렀다. 이미 죽은 사람이라 그런지 묻어주는 것까지 규탄하는 사람은 없었다.
차우셰스쿠의 처형 소식이 북한에 전해지자 김정일은 최단 시간 내에 처형 장면 비디오를 구해 오라고 명령했다.이 때는 김일성이 생존 중이었는데, 김일성은 루마니아 군대가 차우셰스쿠를 배반했다는 점, 그리고 소련이 이를 방관했다는 점에 상당히 충격을 먹었다고... 그래서 아들 김정일에게 하루빨리 군권을 넘겨 김정일이 군을 확실하게 장악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남한과의 남북기본합의서 체결도 서둘러 추진하게 된다. 루마니아를 포함한 동유럽 공산권 붕괴에 대해 소련은 아오안이고, 미국은 갈수록 세계에서 공세적 태도를 취하고 있으니, 기댈 언덕이 없어진 북한은 일단 남한만이라도 끌어들여 평화공존을 기치로 내걸면 어떻게든 체제 붕괴는 면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 꼼수를 부린 것이다.
덕분에 유럽 쪽의 북한 외교관들이 고생깨나 했다고. 후지모토 겐지의 증언에 의하면 이 장면을 본 김정일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더니 "반동들을 때려잡지 않으면 우리도 저 꼴이 된다." 라고 부들부들 떨었다고 한다. 제 아비와 친목질 하던 작자가 분노한 국민들의 손에 끌어내려져서 끔찍하게 살해당한데다가 자기도 국민들을 착취하면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었으니, 똑같이 될까봐 두려웠던 모양이다. 김정일은 우리나라에게는 전보다 더 기만적인 화전양면전술을 사용함과 동시에 북한 내의 반대파들을 더더욱 무자비하게 숙청을 하게 된다.
덩샤오핑도 역시 중국 공산당 간부들과 함께 차우셰스쿠의 처형 비디오를 봤다고 한다. 덩샤오핑은 처형 비디오를 보면서 한참만에 "어쩌다 저 꼴이 되었는가?"라고 물었고 공산당의 한 간부가 "반동분자들을 때려잡지 않아서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덩샤오핑은 "틀렸다. 우리도 개혁하지 않고 인민들에게 베풀지 않으면 저렇게 된다."라고 대답한다. 결국, 덩샤오핑은 자신이 직접 개혁개방 정책을 실시하면서 본격적으로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게 되었고 중국은 최고의 자본주의 시장으로 바뀌면서 경제성장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정작 덩샤오핑 본인이 천안문광장에서 직접 피로써 반동분자를 때려잡은건 기억 못하는가 보다.
일련의 과정을 거쳐 차우셰스쿠 부부의 시신은 공동묘지 한 구석에 처박히듯 묻혔다. 보통 서양식 무덤은 대리석을 이용해 장식하기 마련인데 그의 무덤은 그냥 흙 봉분으로 되어있으며 잡초와 나무가 무성히 자라고 있었다가 최근에야 위의 사진처럼 깔끔해졌다. 비석도 죽고 나서 한참 후에야 세워졌다. 부부 매장도 허용되지 않아서 그의 아내의 묘지는 차우셰스쿠의 묘지에서 약 50m 정도 떨어져 있으며 머리의 방향이 서로 반대 방향이 되도록 묻혔다.
여러모로 독재자의 집권과 비참한 최후를 한 몸에 보여주는 사례다. 그리고 그의 처인 엘레나의 무덤 위에는 지금 나무가 자라고 있어서 어디에 있는지도 구별이 안 갔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차우셰스쿠의 사후 평가가 높아지면서, 지지자들의 청원에 힘입어 이 가묘는 나중에(2010) 다시 재발굴되었고, 감식팀의 감정 끝에 유골이 수습되어 이장, 정식으로 묘가 세워졌다. 위에 보이는 묘가 바로 그 차우셰스쿠의 묘지. 이장된 이후, 차우셰스쿠의 처형일이나 생일마다 지지자들이 몰려와서 꽃을 놓고 추모집회를 가진다고
한다
1989년 12월 루마니아 자유화 민주화 혁명군 모습(사진)
현재 전해지는 영상에는 사형 판결 직후 차우셰스쿠 부부를 결박하는 장면과 건물 벽을 배경으로 하여 사격이 끝나가는 때, 그리고 사형된 두 사람의 모습과 사망을 확인하고 후처리를 하는 군인들의 모습이 찍혀있다. 정작 사형이 집행되는 순간은 당시 사용 중인 비디오 카메라의 전원이 끊어지는 바람에 촬영되지 못했다.
당시 처형 순간을 보도한 영상. 차우셰스쿠의 나이는 71세였고 엘레나의 나이는 73세였다.[사진]
1991년 2월 20일 알바니아의 수도인 티라나에서 스탈린주의자인 노동당 총서기이며 알바니아인민공화국 건국자 엔베르 호자의 동상을 무너뜨리는 시위대 모습[알바니아의 스탈린주의 노동당 정권 붕괴-알바니아의 공산주의 붕괴]
소련군부는 소련공산당 보수파(교조주의) 입장보다 개혁파(수정주의) 입장을 지지했다[소련군인들이 시민혁명을 지지했다]
옐친前대통령은 1991년 8월 19일 보수강경파에 의한 쿠데타가 발생하자 즉각 반(反)쿠데타세력의 선봉에 서서 소련국민에게 저항 할 것을 호소하며 총파업을 촉구 60시간만에 쿠데타를 실패로 끝나게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러시아연방 개인의 권리와 자유는 최고의 가치를 갖는다. 개인과 시민의 권리와 자유를 인정하고 이를 준수하며 수호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다
1. 러시아연방에서는 이데올로기의 다양성이 허용된다.
2. 어떠한 이데올로기도 국가이념이나 의무적 이념으로 규정될 수 없다.
3. 러시아 연방에서는 정치적 다양성과 복수정당이 허용된다.
4. 모든 사회단체들은 법앞에 평등하다.
러시아연방헌법
헌법 전문:
러시아 연방의 영토내에서 공동운명체로 결합된 다민족인 우리는, 개인의 권리와 자유 그리고 국민의 평화와 동의를 확인하면서, 역사 속에서 키워 온 국가적 일체성을 보존하면서, 권리평등과 민족자결이라는 보편적 원칙으로부터 출발하여, 조국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 그리고 선과 정의에 대한 믿음을 우리에게 전해 준 선조들을 기억하면서, 러시아의 주권국가체제를 부흥시키고 견고한 민주적 기반을 확립하면서, 러시아의 안녕과 번영을 보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현재와 미래의 세대 앞에 조국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우리가 세계사회의 일원임을 인식하면서 러시아 연방의 헌법을 채택한다.
제 1 장 헌법 체제의 기초
제 1 조
1. 러시아 연방, 즉 러시아는 공화국 통치형태를 가진 민주.연방.법치국가이다.
2. 러시아 연방과 러시아라는 명칭은 동일하게 사용된다.
제 2 조
개인의 권리와 자유는 최고의 가치를 갖는다. 개인과 시민의 권리와 자유를 인정하고 이를 준수하며 수호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다.
제 3 조
1. 러시아 연방의 제민족은 러시아 연방 주권의 소유자이며 유일한 권력의 원천이다.
2. 국민은 직접적으로, 또는 국가권력기구와 지방자치 기구들을 통하여 권력을 행사한다.
3. 국민투표와 자유선거는 국민에 의한 최고의 직접적인 권력행사이다.
4. 러시아 연방에서는 그 누구도 권력을 탈취할 수 없다. 권력의 탈취 또는 취득행위는 연방법에 따라 소추된다.
제 4 조
1. 러시아 연방의 주권은 연방내의 전 영토에 미친다.
2. 러시아연방 헌법과 연방법들은 러시아 연방 영토내에서 최고의 상위법이다.
3. 러시아 연방은 영토의 보전과 불가침을 보장한다.
제 5 조
1. 러시아 연방은 공화국.지방.주.연방직할시.자치주.자치관구들로 구성된다. 이들은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 연방의 주체이다.
2. 공화국은 자체의 헌법과 법률을 갖는다. 지방.주.연방직할시.자치주.자치구역들은 자체의 헌장과 법령을 갖는다.
3. 러시아 연방의 연방체제는 국가적 일체성, 국가권력체제의 단일성, 연방 권력기구들과 연방 구성주체 권력기구들간의 관할과 권한의 구분, 연방내 제민족의 평등과 자결을 기초로 구성된다.
4. 연방 권력기구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러시아 연방의 모든 구성주체들은 상호 동등하다.
제 6 조
1. 러시아 연방의 시민권은 연방 법률에 따라 취득 또는 정지되며 취득사유와 상관없이 단일, 평등하다.
2. 러시아연방이 모든 국민은 영토내에서 러시아 연방 헌법에 규정된 모든 권리와 자유를 향유하며, 동등한 의무를 진다.
3. 러시아연방의 국민은 자신의 시민권 또는 국적변경의 권리를 박탈당하지 아니한다.
제 7 조
1. 러시아연방은 사회적 국가이며, 러연의 정책은 개인의 가치있는 삶과 자유로운 발전을 보장해 주는 여건 창조를 목표로 한다.
2. 러시아연방에서는 국민들의 노동과 건강이 보호되며, 최소임금이 보장되며, 가족, 모성, 부성, 아동, 장애자와 노령자에 대한 국가지원이 보장되며, 사회적 봉사제도가 발전되며 국가연금, 수당과 여타 사회적 보호가 보장된다.
제 8 조
1. 러시아 연방에서는 단일경제권, 상품, 서비스, 자본재의 자유로운 이동, 경쟁의 지원과 경제활동의 자유가 보장된다.
2. 러시아연방에서는 개인소유, 국가소유, 자치단체소유 및 여타 소유형태가 동일하게 인정되고 보호된다.
제 9 조
1. 토지와 기타 천연자원은 러연내 해당지역에 거주하는 제민족의 생활과 활동의 기반으로써 이용되고 보호된다.
2. 토지와 기타 천연자원들은 개인소유, 국가소유, 자치단체 소유 및 여타의 소유형태가 될 수 있다.
제 10 조
러시아 연방의 국가권력은 입법, 행정, 사법권의 분립을 기반으로 행사된다. 입법, 행정, 사법 기구들은 상호 독립이다.
제 11 조
1. 러시아연방의 국가권력을 러시아 연방 대통령, 연방의회(연방회의 및 국가 회의), 러시아 연방 정부, 러시아연방 사법부에 의해 행사된다.
2. 러시아연방을 구성하는 주체에서는 이들에 의해 구성된 권력기구들에 의해 국가권력이 행사된다.
3. 러시아 연방 정부와 러시아 연방 구성주체간의 권한 배분은 본 헌법, 연방 조약 및 권한의 구분에 관한 여타 조약에 의해 이루어진다.
제 12 조
러시아 연방에서는 지방자치가 인정되고 보장된다. 지방자치는 각 주체들의 권한내에서 독자적으로 시행된다. 지방자치기구들은 국가권력기구 체계에 포함되지 않는다.
제 13 조
1. 러시아연방에서는 이데올로기의 다양성이 허용된다.
2. 어떠한 이데올로기도 국가이념이나 의무적 이념으로 규정될 수 없다.
3. 러시아 연방에서는 정치적 다양성과 복수정당이 허용된다.
4. 모든 사회단체들은 법앞에 평등하다.
5. 러시아 연방 헌법체제의 기초를 변경시키거나 연방의 일체성을 파괴하는 사회단체의 창설과 활동, 국가안보를 위해하는 무장병력의 창설, 사회적.인종적.민족적.지역적 반목의 선동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단체의 창설과 활동은 금지된다.
제 14 조
1. 러시아 연방은 국가종교를 갖지 않는다. 어떤 종교도 국가종교나 의무종교로 제정될 수 없다.
2. 종교단체는 국가로부터 분리되며 법앞에 평등하다.
제 15 조
1. 러시아 연방의 헌법의 최고의 법률적 효력을 가지며, 러시아 연방의 모든 영토에 직접적인 효력을 미친다. 러시아연방에서 채택된 법률, 기타의 법령은 러시아 연방의 헌법과 상치되어서는 안된다.
2. 국가권력기구, 지방자치기구, 공무원, 일반시민들과 기타 단체는 러시아 연방 헌법과 법률을 준수할 의무가 있다.
3. 모든 법률은 공표되며 공표되지 않은 법률은 효력을 갖지 못한다. 시민의 권리.자유 및 의무에 관계되는 규범과 법령은 보편적 고지를 위해 공표되지 않으면 효력을 갖지 못한다.
4. 국제법상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원칙과 규범 및 러시아 연방이 체결한 국제조약들은 러시아 연방 법률체계를 구성하는 일부분이다. 국제조약은 러시아 연방 법률에 우선한다.
제 16 조
1. 러시아 연방 헌법체제의 기초를 구성하는 본장의 내용들은 본 헌법에 규정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개정이 불가능하다.
2. 본 헌법의 어떤 조항도 러시아 연방 헌법체계의 기초에 상치되어서는 안된다.
제 2 장 개인과 시민의 권리와 자유
제 17 조
1. 러시아연방에서는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국제법상의 원칙과 규범 및 본 헌법에 의해 개인과 시민의 권리와 자유가 인정되고 보장된다.
2. 개인의 기본 권리와 자유는 박탈할 수 없으며 출생때부터 모든 국민들에게 부여된다.
3. 개인과 시민의 권리와 자유의 행사가 타인의 권리와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제 18 조
개인과 시민의 권리와 자유는 직접적인 효력을 가지며, 법률의 의미.내용 및 적용, 입법부 및 행정부의 활동, 지방자치기구의 활동을 규정한다.
제 19 조
1. 만인은 법과 재판 앞에 평등하다.
2. 국가는 개인의 권리와 자유가 성별, 인종, 언어, 출신, 재산과 지위, 거주지, 종교, 사회단체 소속 여부 및 여타 사유에 의해 차별받지 않도록 보장한다.
3. 남성과 여성은 동등한 권리와 자유 및 이를 실현하기 위한 동등한 기회를 갖는다.
제 20 조
1. 모든 개인은 삶의 권리를 갖는다.
2. 사형은 사형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연방법에 따라 중대한 범죄에 대한 예외적 조치로서 제정될 수 있으며 피고인은 배심원이 참가하는 재판에서 사건의 심리를 받을 권리가 주어진다.
제 21 조
1. 인간의 존엄성은 국가에 의해 보호되며, 그 무엇도 이를 훼손할 수 없다.
2. 누구도 고문, 강압, 체벌, 여타의 가혹행위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시켜서는 안된다. 누구도 자발적 동의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의학.과학.기타의 실험을 당하지 아니한다.
제 22 조
1. 모든 개인은 자유와 신체 불가침권을 갖는다.
2. 체포, 구금 및 감금은 법원의 결정에 의해서만 허용되며, 법원의 결정이 있을 때까지 48시간 이상 구금되어서는 안된다.
제 23 조
1. 모든 개인은 사생활의 불가침, 자신과 가족의 비밀, 자신의 명예와 명성을 보호할 권리를 갖는다.
2. 모든 개인은 서신, 전화통화, 우편.전신과 다른 통신수단에 대한 비밀권을 가지며 이 권리의 제한은 법 원의 결정에 의해서만 허용된다.
제 24 조
1. 개인의 사생활에 관한 정보의 수집, 보존, 이용과 유포는 본인의 동의없이는 허용되지 않는다.
2. 국가기구 및 지방자치기구들과 이 기관의 책임자들은 법이 허용하는 범위내에서 모든 개인들에게 본인의 권리와 자유에 직접 관계되는 문서와 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
제 25 조
주거는 불가침이다. 그 누구도 연방법에 명시된 경우나 법원의 결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거주자의 의사에 반해 주거에 침범할 권리를 갖지 못한다.
제 26 조
1. 모든 개인은 자신의 민족적 귀속을 결정할 권리를 갖는다. 누구도 이에 관한 결정을 강요받지 아니한다.
2. 모든 개인은 모국어 사용, 전달, 교육, 학습 및 창작을 위해 자유롭게 사용언어를 선택할 권리를 갖는다.
제 27 조
1. 러시아연방 영토내에서 합법적으로 거주하는 모든 개인들은 자유로운 이전이 보장되며 체류 및 거주의 장소를 선택할 권리를 갖는다.
2. 모든 개인들은 러시아연방 영토의 국경을 넘어 자유로이 다닐 수 있으며, 러시아연방 국민들은 러시아연방으로 자유로이 돌아올 권리를 갖는다.
제 28 조
모든 개인들에게는 양심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개인적으로 원하는 종교를 신봉할 권리 또는 어떤 종교도 신봉하지 않을 권리, 종교 이외의 여타의 신념을 자유롭게 선택, 신봉, 전파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된다.
제 29 조
1. 모든 개인들에게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다.
2. 사회적, 인종적, 종교적 반목을 야기시키는 선전 또는 선동은 허용도지 않으며 사회적, 인종적, 종교적 또는 언어의 우월성에 대한 선전은 허용되지 않는다.
3. 누구도 개인의 사상과 신념의 표현 또는 이를 버릴 것을 강제 당하지 아니한다.
4. 모든 개인들은 합법적인 방법으로 자유로이 정보를 획득, 생산, 전파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국가의 기밀로 분류되는 정보의 목록은 연방법에 의해 정해진다.
5. 보도의 자유는 보장되며 검열은 금지된다.
제 30 조
1. 모든 개인은 자신의 이해를 보호하기 위한 결사의 권리를 가진다. 사회단체의 활동의 자유는 보장된다.
2. 누구도 사회단체에의 가입 또는 탈퇴를 강요 당하지 아니한다.
제 31 조
러시아연방 국민들은 무기를 갖지 않고 평화롭게 집회, 시위 행동 및 피켓 행위를 할 권리를 갖는다.
제 32 조
1. 러시아연방 국민들은 대표자를 통해 혹은 직접적으로 국정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
2. 러시아연방 국민들은 국가기구와 지방 자치기구에 대한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가지며 국민투표에 참가할 권리가 있다.
3. 법원의 판결에 따라 자유가 제한되거나 무능력자로 선고된 국민들에게는 선거에 참여할 의무가 주어지지 않는다.
4. 러시아 연방 국민들은 공무에 참여할 수 있는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
5. 러시아연방 국민들은 재판에 참여할 권리를 갖는다.
제 33 조
러시아 연방 국민들은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기관에 개인적으로 또는 집단적으로 소청할 권리를 갖는다.
제 34 조
1. 모든 개인들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지 않은 경제활동이나 기업활동을 위해 자신의 재산과 능력을 이용할 권리를 갖는다.
2. 불공정한 경쟁이나 독점을 위한 경제활동은 허용되지 않는다.
제 35 조
1. 사유재산권은 법률로 보장된다.
2. 모든 개인들은 단독으로 또는 타인과 공동으로 재산을 점유.처리,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3. 누구도 법원의 판결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자기의 재산을 몰수 당하지 아니한다. 국가의 필요에 따른 재산의 강제수용은 사전에 동등한 보상을 하는 조건하에서만 행해질 수 있다.
4. 재산상속권은 보장된다.
제 36 조
1. 개인이나 단체는 토지를 사유화할 권리를 갖는다.
2. 환경을 훼손하지 않고 타인의 권리 및 적법한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한, 자연자원이나 토지의 사용과 처분은 자유롭게 행할 수 있다.
3. 토지의 이용조건과 절차는 연방법에 따라 정해진다.
제 37 조
1. 자유로운 노동은 보장된다. 모든 개인들은 자신의 노동능력을 자유롭게 활용하며 직업과 노동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2. 강제노동은 금지된다.
3. 모든 개인들은 안전과 위행이 보장된 조건하에 노동하며 일체의 차별없이 연방법이 정한 최소 임금 보다 적지 않은 임금을 받을 권리와 실업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갖는다.
4. 파업을 포함하여 연방법으로 정해진 개인적, 집단적 쟁의는 허용된다.
5. 모든 개인들은 휴양을 취할 권리를 가진다. 노동 계약에 따라 일하는 근로자들에게는 연방법에 의해 정해진 근로시간, 휴일, 경축휴일과 연가가 보장된다.
제 38 조
1. 모자와 가족은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2. 아동에 대한 보호와 양육은 양친의 동등한 권리이며 의무이다.
3. 만 18세에 달한 취로 능력자는 노동 능력이 없는 부모를 공양해야 한다.
제 39 조
1. 모든 개인들에게는 노령, 질병, 신체장애, 부양자의 사망과 아동의 양육에 대해 법에 정해진 바에 따라 사회적 보장이 허용된다.
2. 국가연금과 사회적 수당은 법에 의해 정해진다.
3. 자발적인 사회적 보험이나 자선사업 또는 사회보장의 보충을 위한 형태의 창출은 권장된다.
제 40 조
1. 모든 개인들은 주거의 권리를 갖는다. 누구도 부당하게 주거의 권리를 박탈할 수 없다.
2. 주거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기관의 주택건설은 권장된다.
3. 극빈자, 법으로 정해진 시민, 주거가 여의치 않은 개인들에게는 법이 정하는 기준에 따라 국가, 지방자치단체, 기타 주택자산에서 무상으로 또는 저렴한 임대료로 주택이 제공될 수 있다.
제 41 조
1. 모든 개인들은 건강의 보호와 진료를 받을 권리가 있다.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의 의료보호는 국민에게 무료로 시행되며 관련 비용은 국가 예산, 보험료 납입, 기타의 자금에 의해 충당된다.
2. 러시아 연방에서는 국가, 지방자치단체와 민간의 보건제도를 발전시키는 조치가 강구되며, 개인의 건강보호, 신체문화 발전, 스포츠 생태학, 전염병 예방을 위한 활동이 권장된다.
3. 개인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행위와 이러한 사실을 은닉하는 행위에 대하여는 연방법에 따라 책임을 묻는다.
제 42 조
모든 개인들은 환경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고 좋은 환경에서 살 권리를 가지며 환경상의 위법행위로 인하여 발생한 재산이나 건강상 손실에 대하여는 배상을 청구할 권리를 갖는다.
제 43 조
1. 모든 개인들은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갖는다.
2.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보통교육 시설과 기업체에 있어서 학령전 교육, 초등교육, 중등직업교육은 누구든지 무상으로 받을 권리를 가진다.
3. 모든 개인들은 경쟁에 의한 선발을 통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기업들에 의해 행해지는 고등교육을 무상으로 받을 권리가 있다.
4. 기초 보통교육은 의무이다. 부모나 부모를 대리하는 사람은 자식이 기초 보통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여야 한다.
5. 러시아연방은 국가교육 수준을 정하여 여러형태의 교육을 지원한다.
제 44 조
1. 모든 개인들에게 문학, 미술, 과학, 기술 등 모든 형태의 창작활동과 교수의 자유가 보장된다. 지적소유권은 법에 의하여 보호된다.
2. 모든 개인들은 문화적인 생활에 참여하고, 문화시설을 이용하고 문화적 유산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3. 모든 개인들은 역사적, 문화적 유산을 보호해야 하며 역사 및 문화적 기념물을 보존할 의무를 가진다.
제 45 조
1. 러시아 연방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국가의 보호가 보장된다.
2. 모든 국민들은, 법이 제한하지 않는 한,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보호할 권리를 갖는다.
제 46 조
1. 모든 개인의 권리와 자유에 대한 사법적 보호가 보장된다.
2.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시민단체, 공무원의 결정이나 행위는 법원에 제소될 수 있다.
3. 모든 개인들은 개인의 권리에 대한 러시아연방의 국내적 보호수단이 없을 경우, 러시아연방이 체결한 국제조약에 의거하여 개인의 권리와 자유의 보호를 국제기구에 제소할 권리를 갖는다.
제 47 조
1. 누구도 법원과 법관에 의해 재판받을 권리를 박탈 당하지 아니한다.
2. 범죄 피의자는 연방법이 규정하는 경우, 배심원의 참여속에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갖는다.
제 48 조
1. 모든 개인들은 사법적인 도움을 받을 권리를 보장받는다. 법에 규정된 경우, 법적인 보호는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다.
2. 체포 또는 구금된 모든 피의자들은 체포 또는 구금된 시점부터 변호인의 도움을 청할 권리를 갖는다.
제 49 조
1. 범죄행위로 인해 기소된 모든 개인들은 법원의 판결을 통해 유죄가 인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간주된다.
2. 피의자 및 피고인은 자신의 무죄를 입증할 의무가 없다.
3. 피의자에 대한 불확실한 협의는 피의자에게 유리하게 해석한다.
제 50 조
1. 누구도 동일 범죄에 대해 중복하여 판결을 받지 아니한다.
2. 연방법을 위반하여 획득한 증거는 재판과정에서 이용할 수 없다.
3. 형을 선고받는 모든 사람들은 연방법의 규정에 따라 상급 법원에 항소할 권리가 있으며 특사나 형의 경감을 신청할 권리를 갖는다.
제 51 조
1. 누구도 본인이나 본인의 배우자, 연방법에 의해 그 범위가 정해진 가까운 친척들에 대해 불리한 증언을 할 의무가 없다.
2. 연방법은 증언의무로부터의 면제에 대해 예외적인 규정을 할 수 있다.
제 52 조
범행이나 직권남용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자의 권리는 법으로 보호된다. 국가는 이러한 손실에 대한 보상이나 재판을 보장한다.
제 53 조
국가기관이나 공무원들이 불법행위로 인해 손해를 입은 경우 모든 개인들은 국가로부터 배상을 받을 권리를 갖는다.
제 54 조
1. 책임을 확정하거나 이를 강화하는 법은 소급 효력을 갖지 못한다.
2. 누구도 행위의 시점에서 위법사실이 증명되지 않는 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위법행위를 한 경우 그에 대한 책임의 경감이나 면제는 새로운 법에 따른다.
제 55 조
1. 러시아 연방 헌법에 열거된 기본적인 권리와 자유가 다른 일반적인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축소 또는 부인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안된다.
2. 러시아 연방내에서는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축소하거나 파기하는 법이 제정되어서는 안된다.
3. 개인의 권리와 자유는 헌법 체제, 윤리, 타인의 권리와 법적이해, 국가와 정부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불가피한 경우에만 연방법에 의해 제한 할 수 있다.
제 56 조
1. 국민의 안전보장 및 헌법제도의 수호를 위해 비상사태하에서는 연방헌법 법률에 의해 일정기간과 범위를 명시하여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
2. 러시아연방의 모든 영토 및 개별지역에 대한 비상사태 선포는 연방헌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다.
3. 러시아연방 헌법 20조, 21조, 23조, 24조, 28조, 34조, 40조, 46∼54조에 규정된 권리와 자유는 제한할 수 없다.
제 57 조
모든 개인들은 법에 규정된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납세자의 부담을 확대하거나 새로운 조세를 규정한 법은 소급효력을 갖지 않는다.
제 58 조
모든 사람들은 자연, 주변환경과 천연자원을 보호할 의무를 갖는다.
제 59 조
1. 조국수호는 러시아연방 국민의 본분이며 의무이다.
2. 러시아 연방 국민은 러시아 연방법에 따라 병역의 의무를 완수해야 한다.
3. 러시아 연방 국민들은 본인의 신앙이나 종교가 군복무 이행과 상치하는 경우, 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여타 복무를 대신 선택할 수 있다.
제 60 조
러시아연방 국민들은 18세부터 자기의 권리와 의무를 독자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
제 61 조
1. 러시아연방 국민들은 러시아 연방 경계외로 추방되거나 또는 외국에 인도되지 아니한다.
2. 러시아연방은 그 경계 외에서도 자기의 국민에 대한 보호를 보장한다.
제 62 조
1. 러시아 연방 국민은 연방법과 러시아연방이 체결한 국제조약에 따라 외국 국적을 가질 수 있다.
2. 러시아연방 국민은 외국국적을 취득해도 연방법이나 러시아 연방이 체결한 국제조약에 의해 특별히 규정되지 않는 한 러시아 연방 시민으로서의 의무나 권리가 경감되거나 면제되지 않는다.
3. 외국 시민이나 무국적자도 연방법이나 러시아연방이 체결한 국제조약이 규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러 연방 시민과 동등한 권리와 자유를 향유하며 의무를 진다.
제 63 조
1. 러시아 연방은 국제법 원칙에 따라 외국시민과 무국적자에 대해 정치적 망명을 제공할 수 있다.
2. 러시아연방에서는 자신의 정치적 신조를 위해 러시아연방법에 의해 범죄로 인정되지 않는 행동으로 박해를 받은 인사를 타국에 양도하지 않는다. 범죄행위자에 대한 인도는 러시아연방법과 러시아 연방이 체결한 국제조약에 의거하여 이루어진다.
제 64 조
본장의 규정은 러시아연방에서의 개인의 법적지위에 관한 기본규정이며, 이는 현 헌법에 규정된 절차에 의하지 않고서는 변경되지 않는다.
제 3 장 연방의 구성
제 65 조
1. 러시아연방에는 다음 주체들이 포함된다.
공화국 :
아디게야, 알타이, 바쉬코르토스탄, 부라티야, 인구세티야, 다게스탄, 카바르디노-발카리야, 칼미키야(할므크탄크츠, 카라차예보-체르게스카야), 카렐리야, 코미, 마리-엘, 모르도비야, 사하(야코치야), 북오세티야, 타타르스탄, 투바, 우두무르치야, 하카시야, 체첸, 추바쉬
주(크라이) :
알타이, 크라스노다르, 크라스노야르스카, 프리모리야(연해주), 스타브로폴, 하바롭스크
주(오블라스치) :
아무르, 아르한겔스카, 아스트라한야, 벨고로드, 브랸스카, 블라디미르, 볼고그라드 볼로그다, 보로네즈, 이바노프, 옴스크, 이르쿠츠크, 칼리닌그랃, 칼루그, 캄챠카, 케메로보, 키로프, 노보시비르스크, 오렌부르그, 코스트로마, 쿠르간, 쿠르스크, 레닌그라드, 리페츠크, 마가단, 모스크바, 무르만스크, 니제고라드, 노브고라드, 오룔, 펜자, 페름, 프스코프, 로스토프 랴쟌, 사마라, 사라노프, 사할린, 스베르들로프스크, 스몰렌스크, 탐보프, 트베르, 톰스크, 툴라, 울리야놉스크, 칠리야빈스크, 치타, 야로슬라블, 모스크바시, 상트-페테르부그르시, 유태인 자치주
자치구역(오크르가) :
아가-부랴트, 코미-페르먀츠, 코랴크, 네네츠, 타이미르(도르간, 네네츠), 우스찌-오르다-부랴트, 한디-만시, 추코트, 에벤키, 야말로-네네츠
2. 새로운 구성주체의 러시아연방 가입과 지위 부여는 러시아연방 헌법규정에 의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다.
제 66 조
1. 공화국의 지위는 러시아연방 헌법과 공화국 헌법에 의해 규정된다.
2. 주(크라이,오블라스치), 연방직할시, 자치주, 자치구역의 지위는 러시아 연방 헌법 및 각 주체의 헌장에 의해 규정된다.
3. 자치주와 자치구역 입법, 행정기관의 위임에 의해 자치주와 자치구역에 관한 연방법이 채택될 수 있다.
4. 자치구역과 주의 관계는 연방 법률 및 지방정부기구간의 협약에 의해 조정될 수 있다.
5. 러시아연방 구성주체의 지위는 연방 헌법절차에 따라 연방과 구성주체간의 상호합의에 의해 변경할 수 있다.
제 67 조
1. 러시아연방 영토는 내해.영해.영공을 포함한다.
2. 러시아연방은 연방법률 및 국제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러시아연방의 대륙붕과 경제수역에 대한 주권을 가지며 관할권을 행사한다.
3. 러시아 연방 구성주체간의 경계선은 상호합의에 따라 변경될 수 있다.
제 68 조
1. 러시아연방의 국어는 러시아어이다.
2. 공화국은 자체사용언어를 설정할 권리가 있다. 공화국의 자치기구에서는 러시아어와 함께 자체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
3. 러시아연방은 모국어의 보존, 학습, 발전을 위한 제조건의 정비를 모든 민족에 보장한다.
제 69 조
러시아연방은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국제법 규범과 러시아연방이 체결한 국제조약에 의해 소수민족의 권리를 보장한다.
제 70 조
1. 러시아연방의 국기, 문장과 국가의 공식적 사용절차는 연방헌법률에 의해 규정된다.
2. 러시아 연방의 수도는 모스크바시이다. 수도의 지위는 연방법에 의해 규정된다.
제 71 조
러시아연방 정부는 다음사항을 관할한다.
가) 러시아연방 헌법과 법률의 채택. 개정. 준수에 대한 감독
나) 연방체제 및 러시아연방 영토
다) 국민의 권리와 자유의 조정 및 보호 : 러시아연방 시민권 : 소수민족 권리의 조정과 보호
라) 연방 입법, 행정, 사법기구의 조직과 활동절차 수립 : 연방기구 구성
마) 연방 재산관리
바) 정치.경제.환경.사회.문화 분야와 러시아 연방의 발전에 관한 연방차원의 정책과 프로그램 수립
사) 단일시장의 법적 기초 확립 : 금융.회화.신용.관세정책.통화발행. 가격정책 수립 : 연방은행을 포함한 연방 경제기구
아) 연방 예산 : 연방 세금의 징수 : 지역발전을 위한 연방 기금
자) 연방 에너지 시스템, 핵에너지와 그에 관련된 물질 : 연방수송, 정보, 통신 : 우주에서의 활동
차) 대외정책, 러연의 국제관계, 러연의 국제협약 체결, 전쟁과 평화에 관한 문제
카) 러시아 연방의 대외경제 관계
타) 국방.안보 : 방위산업 : 무기.탄약.군사장비.기타 군수물자 판매 및 구입에 관한 절차의 결정 : 유독물질, 마취 수단의 생산 및 사용에 관한 절차
파) 러시아 연방의 국경, 영해, 영공, 경제수역 및 대륙붕의 획정과 보호
하) 재판제도 : 검찰 : 형사, 형사소송, 형사집행법 : 사면, 민사, 민사소송 : 지적 소유권의 법률적 조정
거) 연방 분쟁방지법
너) 기상연구 업무, 표준.도량형에 관한 업무, 미터법, 시간계산 : 측지학 및 지도제작 : 지형물 명칭 : 공식통계 및 회계 계산
더) 러시아 연방 국가 포상 및 명예 호칭
러) 연방 국가 업무
제 72 조
1. 러시아 연방과 러시아연방의 구성주체가 공동으로 관할하는 사항은 다음과 같다.
가) 공화국 헌법 및 법률과 연방직할시, 자치주, 자치구역의 법률과 연방 헌법 및 법률과의 조화 보장
나) 개인의 권리와 자유보호 : 소수민족의 권리 보호 : 법질서와 안정의 보장 : 국경지역정책
다) 토지, 물 및 기타 자원자원의 점유, 사용 및 처분에 관한 사항
라) 국가소유의 한계 설정
마) 자연이용 : 환경보호 및 생태계 안전보장 : 특별자연보호 구역 : 역사.문화적 기념비 보호
바) 교육.과학.문화.체육.스포츠 문제에 관한 사항 전반
사) 재난.천연재해.전염병의 예방과 퇴치
아) 가정과 아동 보호에 관한 문제 조정
자) 러시아연방에 있어서의 조세 부과의 징수에 관한 원칙 수립
차) 행정.행정소송.노동.가정.주거.토지.물.산림에 관한 법.토지와 천연자원, 환경보호 관련법
카) 사법부와 법질서 수호기구 인원 : 변호사, 공증인제도
타) 소수민족사회의 전통 생활양식 보호
파) 연방기구와 지방관청의 조직 체계에 관한 원칙 확립
하) 러시아 연방 구성주체의 대외교류와 대외경제관계 조정, 러연이 체결한 국제조약 이행
2. 본 조항은 공화국, 주(크라이, 오블라스치), 연방직할시, 자치주, 자치 구역에 동등하게 적용된다.
제 73 조
러시아 연방과 러시아 연방 주체의 공동 관할 대상 업무에 있어서 러시아 연방 전권의 관할 사항 이외에는 러시아 연방 주체가 관할권을 행사한다.
제 74 조
1. 러시아연방 영토에서는 관세구역 설정, 세금, 수수료 징수와 같이 상품, 용역 및 자본재의 자유거래를 방해하는 수단은 허용되지 않는다.
2. 국가안보, 시민의 생명과 건강보호, 자연.문화재 보호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연방 법률에 의해 상품과 용역거래에 관한 제한을 할 수 있다.
제 75 조
1. 러시아연방의 화폐단위는 루블이다. 화폐발행은 러시아연방 중앙은행에 의해 독점적으로 행해진다. 러연에서는 다른 화폐의 유통은 허용되지 않는다.
2. 루블화의 가치 보장과 보호는 러시아 중앙은행의 기본업무이다. 중앙은행은 다른 정부기관과 독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한다.
3. 연방 예산과 관련된 조세제도와 세금 징수에 관한 일반원칙은 연방 법률에 의해 규정된다.
4. 국채는 연방 법률에 따라 발행되며 자유의사에 의해 인수된다.
제 76 조
1. 러시아연방의 관할 사항에 대하여는 러연 전영토에서 적용되는 연방헌법률과 연방 법률이 채택된다.
2. 러시아연방과 러시아연방 주체의 공동 관할사항에 대해서는 연방 법률과 그에 따라 채택되는 러시아연방 구성주체의 법률이 공포된다.
3. 연방 법률은 연방 헌법률에 상치되어서는 안된다.
4. 러시아 연방의 관할 사항과 러시아연방 및 러시아연방 주체의 공동관할사항 이외의 업무에 대해 공화국(크라이, 오블라스치), 연방직할시, 자치주, 자치구역은 관련 법령 채택 등 독자적 법률 조정권을 행사한다.
5. 러시아연방 주체가 채택하는 법률과 기타 규범적 행위는 본조 1항과 2항에 의해 채택되는 연방 법률에 상치되어서는 안된다. 러시아연방에서 연방법과 여타 규범 행위가 대립되는 경우 연방법이 우선한다.
6. 연방법과 본 조항 4조에 의해 채택된 러시아연방 주체의 법령이 대립되는 경우에는 러시아연방 구성주체의 법령이 적용된다.
제 77 조
1. 공화국, 주(크라이, 오블라스치), 연방직할시, 자치주, 자치구역의 국가 기구체계는 러시아 연방 구성주체가 러연 헌법체계에 근거하여 독자적으로 수립한다.
2. 러시아연방 관할 업무, 러시아 연방과 러시아 연방 구성주체가 공동으로 관할하는 업무에 대해 러시아 연방 구성주체의 행정기구와 연방 행정기구는 단일한 행정체계를 형성한다.
제 78 조
1. 연방 행정기구는 관할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지방에 기구를 설치할 수 있으며 관계공무원을 임명할 수 있다.
2. 연방 행정기구는 지방 행정기구의 동의를 받아 러연 헌법 및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내에서 권한의 일부 행사를 지방 행정기구에 위임할 수 있다.
3. 러시아연방 구성주체의 행정기구는 연방 행정기구와의 합의에 의해 자기 권한의 일부를 연방 행정기구에 위임할 수 있다.
4. 러시아 연방의 대통령과 연방 정부는 러시아연방 전 영토에서 러시아 연방 헌법에 의한 연방 정부기구의 권력행사를 보장한다.
제 79 조
러시아 연방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구속하지 않고 러시아 연방 헌법체계에 반하지 않을 경우 국가간 연합에 참여하여 권한의 일부를 국가간 연합에 위임할 수 있다.
제 4 장 러시아연방 대통령
제 80 조
1. 러시아연방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다.
2. 러시아연방대통령은 러시아연방헌법, 인간과 시민의 권리와 자유의 보증인이다. 대통령은 러시아연방 헌법에 규정된 절차에 따라 러시아연방의 주권 독립 국가적 통일의 보전에 관한 조치를 강구하며 국가권력기관의 기능의 조정과 상호작용을 보장한다.
3. 러시아연방대통령은 러시아연방헌법과 연방법에 따라 국가의 내외정책의 기본 방향을 결정한다.
4. 러시아 연방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국내외에 러시아연방을 대표한다.
제 81 조
1. 러시아연방 대통령은 러시아연방 국민들의 직접, 평등, 비밀선거에 의해 4년 임기로 선출된다.
2. 러시아연방 대통령은 러시아연방에 10년 이상 계속 거주하고 있는 만 35세 이상의 러시아 국민 중에서 선출된다.
3. 동일인이 2회 이상 러시아연방의 대통령직에 취임할 수 없다. (러시아 연방 헌법의 '3선 연임 금지' 조항으로 대통령 임기를 4년에서 6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4.러시아연방대통령의 선거절차는 연방법률로 정한다.
제 82 조
1. 러시아 연방 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하여 국민들에게 다음의 선서를 한다.
"본인은 러시아연방 대통령으로서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존중하고 보호하며, 러시아연방 헌법을 준수하여 국가의 주권, 독립, 안전과 일체성을 수호하며 국민에게 충실히 봉사할 것을 선서합니다. "
2. 선서는 러시아연방의 연방회의(상원, Federal Council) 의원들, 국가회의(하원, State Duma) 의원들 및 헌법 재판소 판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장엄한 분위기 속에서 거행된다.
제 83 조
러시아 연방 대통령은
가) 국가회의의 동의하에 러시아연방 총리를 임명하며,
나) 러시아연방 국무회의를 주재할 권리를 가지며,
다) 러시아연방 내각 사퇴에 관한 결정을 시행하며,
라) 러시아연방 중앙은행 총재의 임명과 해임을 하원에 제청하며,
마) 러시아연방 총리의 제정으로 러시아연방 부총리 및 각부 장관들을 임명 또는 해임하며,
바) 러시아연방 헌법재판소, 러시아연방 최고재판소, 러시아연방 최고중재 재판소 판사들의 임명, 러시아연방 검찰총장의 임명과 해임을 연방회의에 제청하고 기타 연방 재판소 판사들을 임명하며,
사) 그 지위가 연방법에 의하여 규정되는 러시아연방 국가안보회의를 구성하고 주재하며,
아) 러시아연방의 군사독트린을 승인하며,
자) 러시아연방 대통령실을 편성하며,
차) 러시아연방 대통령의 특명 전권대표들을 임명하고 해임하며,
카) 러시아 연방 군의 초고위급 지휘관들을 임명하고 해임하며,
타) 연방의회(상하원을 통칭) 해당위원회 혹은 소위원회들과의 협의를 거쳐 재외공관 및 국제기구에 주재할 러시아연방 외교대표들을 임명하고 소환한다.
제 84 조
러시아연방 대통령은
가) 러시아연방 헌법과 연방법에 따라 국가회의 선거를 공고하며,
나) 러시아연방 헌법에 의하여 규정된 절차에 따라 국가회의를 해산하며,
다) 연방 헌법률에 규정된 절차에 따라 국민투표를 공고하며,
라) 국가회의에 법안을 제출하며,
마) 연방 법령에 서명하고 이를 공포하며,
바) 국내정치 및 국가대내외정책의 기본방향에 관한 연례 보고서를 연방회의에 제출한다.
제 85 조
1. 러시아 연방 대통령은 러시아연방 국가기구들과 러시아연방 구성주체 자치 기구들간의 또는 러시아 연방 주체 자치기구들간의 의견 대립을 해소하기 위하여 조정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대립을 해소하지 못한 경우에는 분쟁 해결을 해당법원에 회부할 수 있다.
2. 러시아 연방 대통령은 러시아연방 구성주체 자치기구들의 결정이 러시아연방 헌법, 연방법률 또는 러시아 연방이 체결한 국제적 협약에 저촉되거나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침해하는 경우 해당법원을 통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자치기구 결정의 효력을 정지할 권리를 가진다.
제 86 조
러시아연방 대통령은
가) 러시아연방 대외정책을 지도하며,
나) 러시아연방이 체결하는 국제조약에 관한 교섭을 시행하고 서명을 하며,
다) 조약 비준서에 서명하며,
라) 러연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대표들의 신임장과 소환장을 접수한다.
제 87 조
1. 러시아연방 대통령은 러시아연방 군의 최고 사령관이다.
2. 러시아 연방이 침략을 당하거나 직접적인 침략위험이 발생한 경우에 러시아 연방 대통령은 러시아연방의 전역이나 그 일부지역에 전시상태를 선포하고 이를 지체없이 연방회의와 국가회의에 통고한다.
3.계엄의 제반조건은 연방의 헌법적 법률로 규정한다.
제 88 조
러시아연방 대통령은 연방 헌법률에 규정된 상황과 절차에 따라 러시아 연방 전역 또는 일부지역에서 비상상태를 선포하며 이를 지체없이 연방회의와 국가회의에 통고한다.
제 89 조
러시아연방 대통령은
가) 러시아연방 공민권 및 정치적 망명문제를 결정하며,
나) 러시아연방 국가표창을 수여하고 러시아연방 명예칭호, 최고군사칭호 및 최고특별칭호를 부여하며,
다) 사면을 실시한다.
제 90 조
1. 러시아연방 대통령은 명령과 포고를 발한다.
2. 러시아연방 대통령의 명령과 포고는 러시아연방의 전 영토에서 집행되어야 하는 의무이다
3. 러시아연방 대통령의 명령과 포고는 러시아연방 헌법 및 연방 법률에 위배되어서는 아니된다.
제 91 조
러시아연방 대통령은 불체포특권을 가진다.
제 92 조
1. 러시아 연방 대통령은 취임선서를 한 시점부터 권한행사를 시작하며, 후임 대통령이 선서를 한 시점부터 권한행사를 중지한다.
2. 러시아 연방 대통령은 사임하거나, 건강상 이유로 권한을 행사할 수 없거나 탄핵되는 경우 임기만료전에 권한행사를 중지한다. 이 경우 새로운 대통령 선거는 권한 행사가 중지된 시점으로부터 3개월 이내에 시행되어야 한다.
3. 러시아연방 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에는 러시아연방 총리가 그 임무를 대행한다. 러시아연방 대통령 서리는 국가회의 해산권, 국민 투표 실시권과 헌법 개정 제안권을 갖지 못한다.
제 93 조
1. 러시아 연방 대통령은 국가회의가 제기하여 러시아연방 최고재판소에 의해 유죄로 판결받고 러시아연방 헌법재판소에 의해 탄핵의 절차가 준수되었음이 확인된 대역죄나 기타 중죄에 대해서만 연방 회의에 의하여 최종 탄핵판결을 받을 수 있다.
2. 탄핵은 국가회의 재적의원 1/3 이상이 발의하고 국가회의내 특별위원회의 결정을 거쳐 연방회의와 국가회의 재적의원 2/3 이상의 찬성을 얻어 확정된다.(소추청구에 관한 국가두마의 결정과 대통령의 파면에 관한 연방회의결정은 국가두마의 재적의원 3분의 1이상의 발의가 있어야 하며, 또 국가두마가 구성한 특별위원회의 결정이 있을 때 양원 각각의 의원총수의 3분의 2의 정족수에 의하여 의결되어야 한다)
3. 탄핵에 대한 연방회의의 결정은 국가회의가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발의한 후 3개월 이내에 채택되어야 한다. 그 기간내에 연방회의의 결정이 채택되지 않으면 대통령에 대한 탄핵발의는 소멸된 것으로 간주된다.
제 5 장 연방회의(상하의원)
제 94 조
러시아연방 회의는 러시아연방의 대의 및 입법 기구이다.
제 95 조
1. 연방회의(상하의원)는 연방회의(상원)와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의 양원으로 구성된다.
2. 연방회의(상원)는 모든 러시아 연방 구성주체에서 2인씩 선출된 대표, 즉 대의 기구와 행정기구의 대표 각 1인으로 구성된다.
3.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는 450명의 의원으로 구성된다.
제 96 조
1.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는 4년의 임기로 선출된다.
2. 연방회의(상원)의 구성절차와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의 선거절차는 연방법률에 의하여 규정된다.
제 97 조
1. 국가회의(국가두마,하원) 의원은 만 21세 이상으로 피선거권을 가진 러시아 연방 국민 중에서 선출된다.
2. 연방회의(상원) 의원과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 의원직은 겸직될 수 없다.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 의원은 여타의 대의기구와 지방자치기구의 대의원을 겸할 수 없다.
3.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 의원들은 전업직으로 근무한다.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 의원들은 정부 직책을 겸직할 수 없으며 교육 및 학술 활동, 기타 창조적 활동을 제외한 다른 유급 활동에 종사할 수 없다.
제 98 조
1. 연방회의(상원) 의원과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의 의원은 그의 임기동안 불체포특권을 가진다. 그들은 현행범이 아닌 한, 체포 구금 수색을 당하지 아니하며, 또한 타인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하여 연방법률이 규정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신체검사를 당하지 아니한다.
2.의원의 불체포특권의 박탈에 관한 안건은 러시아연방 검찰총장의 제청으로 연방의회의 해당 원에서 결정한다.
제 99 조
1. 연방 의회는 상시적으로 활동하는 기구이다.
2.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는 선출된 후 30일째 되는 날에 첫 회의를 소집한다. 러시아 연방 대통령은 이 기간 전에는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를 소집할 수 있다.
3.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의 첫번째 회의는 의원중 최고령자가 주재한다.
4. 새로 구성된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가 업무를 개시하는 시점으로부터 전임의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는 권한이 중지된다.
제 100 조
1. 연방회의(상원)와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는 별도로 회의를 개최한다.
2. 연방회의(상원)와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의 회의는 공개로 진행하나 관계법에 규정된 경우에는 비공개 회의를 할 수 있다.
3. 양원은 러시아연방 대통령의 교서, 러시아 연방 헌법 재판소의 교서, 외국 지도자들의 연설을 청취하기 위하여 합동회의를 개최할 수 있다.
제 101 조
1. 연방회의(상원)는 구성원 중에서 의장과 부의장을 선출한다. 국가회의(국가두마,하원)는 구성원 중에서 의장과 부의장을 선출한다.
2. 연방회의(상원) 의장과 부의장,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 의장과 부의장은 회의를 주재하며 각원의 내부규칙을 정한다.
3. 연방회의(상원)와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는 위원회와 소위원회를 구성하며 소관업무에 대해 공청회를 개최한다.
4. 양원은 각기 의사 규칙을 채택하며 스스로의 활동에 필요한 내규를 제정한다.
5. 연방예산 집행을 감사하기 위하여 연방 회의(상원)와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는 회계감사원을 구성하며 그 구성원과 활동절차는 연방법에 의하여 규정된다.
제 102 조
1. 다음 사항은 연방회의(상원)가 관할한다.
가) 러시아연방 구성주체들간의 경계선 변경 승인
나) 전시상태 선포에 대한 러시아 연방 대통령령의 승인
다) 비상사태 선포에 대한 러시아연방 대통령령의 승인
라) 러시아연방 영토밖에서 러시아연방 군사력을 사용하는 문제의 결정
마) 러시아연방 대통령 선거의 공고
바) 러시아 연방 대통령의 탄핵 파면(결정)
사) 러시아 연방 헌법재판소, 러시아연방 최고재판소, 러시아연방 최고 중재재판소 판사들의 임명
아) 러시아연방 검찰총장의 임명 및 해임
자) 회계감사원 부원장과 회계감사원을 구성하는 감사위원 반수의 임명 및 해임
2. 연방회의는 러시아연방 헌법에 규정된 관할 업무에 대한 결정을 채택한다.
3. 연방회의의 결정은 러시아연방 헌법에 의하여 별도로 규정되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채택된다.
제 103 조
1. 다음사항은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가 관할한다.
가) 러시아연방 총리 임명에 대한 동의
나) 러시아연방 내각 불신임 문제의 결정
다) 러시아연방 중앙은행 총재의 임명 및 해임
라) 회계감사원 원장과 회계감사원을 구성하는 감사위원 반수의 임명 및 해임
마) 연방 헌법률에 따라 활동하는 인권담당 전권대표(옴부즈만)의 임명 및 해임
바) 사면의 실시
사) 러시아연방 대통령에 대한 탄핵 발의
2.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는 러시아연방 헌법에 규정된 관할 업무에 대한 결정을 채택한다.
3.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의 결정은 러시아 연방 헌법에 의하여 별도로 규정되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적 과반수의 찬성으로 채택한다.
제 104 조
1. 러시아연방 대통령, 연방회의, 연방회의(상원) 의원,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 의원, 러시아연방 정부, 러시아연방 주체들의 입법(대의)기구들은 법안 제출권을 가진다. 러시아연방 헌법재판소, 러시아연방 최고재판소 및 러시아연방 최고중재 재판소는 그의 소관사항에 관한 법률안 발의권을 가진다.
2. 법률안은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에 제출된다.
3. 조세의 도입 또는 폐지, 세금의 면제, 국채발행, 국가재정의무의 변경에 관한 법안과 연방예산에 의하여 부담되는 지출을 수반하는 법안들은 러시아연방 정부의 의견을 명기해서만 제출될 수 있다.
제 105 조
1. 연방 법률은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에 의해 채택된다.
2. 연방 법률은 러시아연방 헌법에 의하여 별도로 규정되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 의원 재적 과반수의 찬성으로 채택된다.
3.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가 채택한 연방 법률은 5일내에 연방회의(상원)의 심의에 회부된다.
4. 연방 법률은 연방회의(상원) 의원 재적 과반수의 찬성을 받거나, 14일 이내에 심의되지 않은 경우에 연방회의(상원)를 통과한 것으로 간주된다. 연방 법률이 연방회의(상원)에서 부결되는 경우, 양원은 이견을 해소하기 위하여 조정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으며 연방 법률은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에서 재심의한다.
5.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가 연방회의(상원)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에 연방 법률은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에서 재차 표결에 회부되어 재적 의원 2/3 이상의 찬성을 얻는 경우 채택된 것으로 간주된다.
제 106 조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가 채택한 다음 문제에 관한 연방 법률은 연방회의(상원)에서 의무적으로 심의된다.
가) 연방 예산
나) 연방 세금 및 수수료
다) 금융, 외화, 신용, 관세의 조정과 화폐 발행
라) 러시아연방이 체결하는 국제조약의 비준과 파기
마) 러시아연방 국경의 지위 및 방위
바) 선전포고의 강화
제 107 조
1. 채택된 연방 법률은 서명 및 공포를 위하여 5일내에 러시아연방 대통령에게 송부된다.
2. 러시아연방 대통령은 14일내에 연방 법률에 서명하고 이를 공포한다.
3. 러시아연방 대통령이 연방법률이 송부된 시점으로부터 14일내에 이를 거부하면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와 연방회의(상원)는 러시아연방 헌법에 규정된 절차에 따라 그법률을 재심의한다. 재심의를 거쳐 연방 법률이 연방회의(상원)와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 의원 재적 2/3 이상의 찬성으로 원안대로 재의결되면 러시아연방 대통령은 7일내에 이에 서명하고 공포하여야 한다.
제 108 조
1. 연방 헌법률은 러시아연방 헌법에 의하여 규정된 바에 따라 채택된다.
2.연방의 헌법적 법률은 연방회의(상원) 재적의원 4분의 3 이상과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되는 경우 확정된 것으로 본다. 의결된 연방의 헌법적 법률은 14일 이내에 러시아연방대통령이 서명하고 이를 공포하여야 한다.
제 109 조
1.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는 러시아연방 헌법 제111조와 제117조에 규정에 의거하여 러시아연방 대통령에 의해 해산될 수 있다.
2.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가 해산된 경우 러시아연방 대통령은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가 해산된 시점부터 4개월 이내에 새로운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가 소집될 수 있도록 선거일자를 공고한다.
3.국가두마는 러시아연방헌법 제117조의 규정에 의하여 선거후 1년이내에 해산되지 아니한다.
4.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는 러시아연방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발의되어 연방회의(상원)에서 이에 대한 결의가 채택될 때까지는 해산되지 않는다.
5. 국가회의(국가두아, 하원)는 러시아연방 전역에서 전시상태나 비상상태가 발생한 경우 그리고 러시아연방 대통령의 임기만료 전 6개월 기간 동안에는 해산될 수 없다.
제 6 장 러시아연방 내각(정부)
제 110 조
1. 러시아연방의 행정권은 러시아연방 내각이 행사한다.
2. 러시아연방 내각은 러시아연방 총리, 러시아연방 부총리 및 연방 각료들로 구성된다.
제 111 조
1. 러시아연방 총리는 러시아연방 대통령이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의 동의를 얻어 임명한다.
2. 러시아연방 총리 후보에 대한 제안은 새로 선출된 러시아연방 대통령의 취임 후 또는 러시아연방 내각이 사퇴한 후 2주일 이내에 또는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가 후보 인준을 거부한 후 1주일내에 이루어져야 한다.
3.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는 러시아연방 대통령이 추천한 러시아연방 총리 후보를 그 제안이 제출된 날로부터 1주일이내에 심의하여야 한다.
4.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가 대통령이 추천한 러시아연방 총리 후보를 3차례 거부할 경우 대통령은 러시아 연방 총리를 임명한 후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를 해산하고 새로운 선거를 공고한다.
제 112 조
1. 러시아연방 총리는 임명된 후 1주일 이내에 연방 내각 구성에 대한 제안을 러시아연방 대통령에게 제출한다.
2. 러시아연방 총리는 러시아연방 부총리와 연방 각료 후보자를 러시아연방 대통령에게 추천한다.
제 113 조
러시아연방 총리는 러시아연방 헌법, 연방 법률 및 러시아 연방 대통령령에 따라 러시아연방 내각 활동의 기본방향을 설정하고 그 사업을 수행한다.
제 114 조
1. 러시아연방 내각은
가) 연방예산을 편성하여 국가회의에 제출하고 그 집행을 보장하며, 연방 예산 집행에 대한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하며,
나) 러시아연방내에 단일한 재정, 신용 및 통화정책의 집행을 보장하며,
다) 러시아연방내에서 문화, 과학, 교육, 보건, 사회보장, 생태학 분야에서 단일한 정책의 집행을 보장하며,
라) 연방재산에 대한 관리를 시행하며,
마) 국가안전을 보장하고 러시아연방의 대외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조치를 강구하며,
바)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고 재산과 사회질서를 보호하며, 범죄 퇴치를 위한 조치를 실시하며,
사) 러시아연방 헌법, 연방 법률, 러시아 연방 대통령령에 의하여 내각에 부여된 기타 권한을 행사한다.
2.러시아연방정부의 활동절차는 러시아연방 헌법적 법률로 구성한다.
제 115 조
1. 러시아연방 내각은 러시아연방 헌법, 연방법률 및 러시아연방 대통령령에 기초하여 내각의 정책집행을 위한 각종 포고령을 발표하며 그 집행을 보장한다.
2.러시아연방정부의 규칙 명령은 러시아연방내에서 준수하여야 하는 의무이다
3. 러시아연방 내각의 포고령은 러시아연방 헌법, 연방 법률 및 러시아 대통령령에 상치되는 경우에 러시아연방 대통령에 의하여 취소될 수 있다.
제 116 조
새로이 선출된 러시아연방의 대통령의 취임 직전 종래의 러시아연방정부는 권한행사를 중지한다.
제 117 조
1. 러시아 연방 내각은 총 사퇴할 수 있으며 러시아연방 대통령은 이를 수리하거나 거부할 수 있다.
2. 러시아연방 대통령은 러시아연방 내각의 총사퇴를 결정할 수 있다.
3.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는 러시아연방 내각에 대한 불신임을 의결할 수 있다. 러시아 연방 내각 불신임에 대한 의결은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 의원 재적 과반수의 찬성으로 채택된다.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가 러시아연방 내각에 불신임을 의결할 경우 러시아연방 대통령은 러시아연방 내각의 사퇴를 공고하거나 또는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가 3개월이내에 러시아연방 내각에 대한 불신임을 재차 의결한 경우에 러시아 연방 대통령은 내각 사퇴를 공고하거나 국가회의를 해산한다.
4. 러시아연방 총리는 러시아연방 내각 불신임에 관한 문제를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에 제기할 수 있다.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가 불신임을 의결하는 경우 대통령은 7일내에 러시아연방 내각의 사퇴 또는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 해산과 새로운 선거공고에 대한 결정을 채택한다.
5. 내각 사퇴나 권한 해제의 경우 러시아연방 내각은 러시아연방 대통령의 위임에 의하여, 러시아연방의 새 내각이 구성될 때까지 계속 직무를 수행한다.
제 7 장 사법부
제 118 조
1. 러시아연방에서 재판은 법원에 의해서만 행하여진다.
2. 사법권은 헌법, 민사, 행정 및 형사 소송절차를 통하여 실현된다.
3. 러시아연방 사법제도는 러시아연방 헌법과 연방 헌법률에 의하여 규정된다. 특별재판소의 구성은 허용되지 않는다(특별법원의 설치는 허용되지 아니한다)
제 119 조
법관은 만 25세 이상으로, 고등법학교육을 받고 법률분야에서의 실무경험을 5년 이상 가지고 있는 러시아연방 국민중에서 임명된다. 러시아연방 법관들에 대한 추가적 요건은 연방법률에 의해 규정할 수 있다
제 120 조
1. 법관은 러시아연방 헌법 및 연방법률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2. 법관은 사건을 심리하면서 국가기관 또는 다른 기관의 규정이 법률에 위배됨이 확정된 경우 법률에 따라 결정한다
제 121 조
1. 법관은 파면되지 아니한다
2. 법관의 권한은 연방법률에 정해진 절차와 근거에 의해서만 일시 중지되거나 일시정지 될 수 있다.
제 122 조
1.법관의 신분은 불가침이다.
2.법관에게는 연방법률이 정한 절차에 의해서만 형사책임을 추궁받는다.
제 123 조
1. 모든 재판의 진행은 공개한다. 비공개 재판은 연방 법률에 규정된 경우에만 허용된다.
2. 형사사건의 궐석재판은 연방 법률에 의하여 규정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허용되지 않는다.
3. 소송절차는 당사자주의와 당사자 쌍방의 동등권의 기초하에 진행된다.
4.연방법률에 규정된 경우 재판은 배심원의 참여하에 진행된다.
제 124 조
법원에 대한 예산배정은 연방 예산으로부터만 시행되며 연방법률에 따른 완전히 독립적이고 공정한 재판의 실현이 보장되어야 한다.
제 125 조
1. 러시아연방 헌법재판소는 19인의 판사로 구성된다.
2. 러시아연방 헌법재판소는 러시아연방 대통령, 연방회의(상원) 또는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 재적의원 1/5, 러시아연방 내각, 러시아연방 최고재판소와 러시아연방 최고중재재판소, 러시아연방 구성주체들의 입법기관과 행정기관의 요구가 있을 경우 다음 사항이 러시아연방 헌법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심판한다.
가) 연방 법률, 러시아연방 대통령, 연방회의(상원),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 러시아연방 내각의 법령(규범적 조치)
나) 공화국 헌법, 러시아연방 구성주체들의 헌장, 러시아연방 관할 업무와 러시아연방과 구성주체들의 공동관할에 속하는 문제들에 관하여 공포된 법률 및 기타 법령
다) 러시아연방 기구와 러시아연방 구성주체 기구사이에 체결된 조약, 러시아 연방 구성주체 기구들간에 체결된 조약
라) 발효되지 않은 러시아연방이 체결한 국제조약
3. 러시아연방 헌법재판소는 다음과 같은 쟁의를 심판한다.
가) 러시아연방 기구들간의 쟁의
나) 러시아연방 기구와 러시아연방 구성주체 기구간의 쟁의
다) 러시아연방 구성주체 기구들간의 쟁의
라) 러시아연방 구성주체 기구들간의 쟁의
4.러시아연방구성주체의 최고국가기관간 러시아연방 헌법재판소는 시민의 권리와 자유의 침해에 대한 소원 및 법원의 제청에 따라 구체적인 사건에 적용하였거나 적용하게 되는 법률의 합헌성 여부를 연방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 판단한다.
5. 러시아연방 헌법재판소는 러시아연방 대통령, 연방회의(상원), 국가회의(국가두마, 하원), 러시아연방정부, 러시아연방구성 주체의 입법권력기관의 질의에 대하여 러시아연방 헌법의 해석을 제시한다
6.위헌으로 판단된 법령이나 그 일부 조항은 효력을 상실하며, 러시아연방의 헌법에 위배되는 러시아연방의 국제조약은 집행 또는 적용되지 아니한다.
7.러시아연방 헌법재판소는 연방회의의 제청에 따라 국가반역죄나 기타 중범죄를 이유로 하는 러시아연방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정하여진 절차를 준수하였는지 여부를 심판한다.
제 126 조
러시아연방 최고재판소는 민사, 형사, 행정소송과 일반 법원 관할의 사건에 대한 최고 사법기관이며, 연방법률에 규정된 절차에 따라 하급 재판소들의 활동에 대한 감독행위를 시행하며, 판례에 대하여 설명한다. (러시아연방 대법원은 민사 형사 행정 및 기타 사건과 산하 일반사법 법원에 대한 최고사법기관이며, 연방법률에 규정된 소송형식으로 그 법원의 활동에 대한 사법적 감독을 실시하며, 재판실무문제 등에 대한 지침을 제시한다)
제 127 조
러시아연방 최고 중재재판소는 경제분쟁과 중재재판소의 심리대상이 되는 기타 법률행위를 심판하는 최고 사법기관이며, 연방 법률에 규정된 절차에 따라 하급 중재 재판소들의 활동에 대한 감독행위를 시행하며, 판례에 대하여 설명한다. (러시아연방 최고중재법원은 중재법원의 심리대상인 경제분쟁과 중재법원의 심리대상인 기타 사건을 심판하는 최고사법기관이며, 연방법률에 규정된 소송형식으로 법원의 활동에 대한 사법적 감독을 실시하며, 재판실무문제 등에 대한 지침을 제시한다)
제 128 조
1. 러시아연방 헌법재판소, 러시아연방 최고재판소, 러시아연방 중재재판소 판사들은 러시아연방 대통령의 제청에 의해 연방회의(상원)에 의해 임명된다.
2. 여타 연방 재판소들의 판사는 러시아 연방 대통령이 연방법률에 규정된 절차에따라 임명한다.
3. 러시아 연방 헌법재판소, 러시아연방 최고재판소, 러시아연방 최고 중재재판소 및 기타 연방 재판소들의 권한, 편제 및 활동 절차는 연방 헌법적 법률에 의하여 규정된다.
제 129 조
1. 러시아연방의 검찰기관들은 동일한 체계를 이루며 하급 검사들은 상금 검사들과 러시아연방 검찰 총장에게 복종한다.
2. 러시아 연방 검찰총장은 러시아연방 대통령의 제청에 의해 연방회의(상원)가 임명, 해임한다.
3. 러시아연방주체의 검사는 러시아연방 검찰총장이 그 러시아연방주체의 동의를 얻어 임명한다.
4. 여타의 검사들은 러시아연방 검찰총장이 임명한다.
5. 러시아연방 검찰기관들의 권한, 편제 및 활동절차는 연방법률에 의하여 규정된다.
제 8 장 지방 자치
제 130 조
1. 러시아연방에서 지방자치는 주민에 의한 지방적 문제의 독립적인 해결과 지방자치체 지산에 대한 소유 사용 및 처분을 보장한다
2. 지방자치는 국민투표, 선거 등 직접적 형태의 의사표시와 지방자치기구를 통하여 시행한다(지방자치는 주민투표 선거 기타 직접적 의사표시방법에 의하여 또는 민선단체와 기타 지방 자치단체를 통하여 시민이 이를 실현한다)
제 131 조
1. 지방자치는 도시 농촌 기타 지역에서 그 지방의 역사 기타 지역적 전통등을 고려하여 실시한다. 지방자치기관의 조직은 독립적으로 주민에 의하여 결정된다.
2. 지방자치가 실시되는 지역의 경계 변경은 해당 지역 주민의 의견을 고려하여 허용한다.
제 132 조
1. 지방자치기구는 자치제 재산을 관리하며, 지방예산을 편성, 승인, 집행하며, 지방세금을 징수하며, 사회질서를 유지하며, 지방에 속하는 기타 문제를 해결한다.
2. 지방자치기구는 법률에 의하여 일부 국가권한을 이양받을 수 있으며 권한 행사에 필요한 물질적, 재정적 수단도 자치기구에 이전될 수 있다. 이양된 권한의 행사는 국가의 감독하에 시행한다.
제 133 조
러시아연방의 지방자치는 사법적 보호를 받을 권리, 연방기구가 채택한 결정의 결과로 발생한 지출에 대한 보상을 받을 권리, 러시아연방 헌법과 연방법률에 규정된 지방자치권의 제한금지가 보장된다.
제 9 장 헌법개정 및 재검토
제 134 조
러시아연방 헌법규정의 수정과 개정에 대한 제한은 러시아 연방 대통령, 연방회의(상원), 국가두마(국가회의, 하원), 러시아 연방정부, 러시아연방구성주체의 입법(대의)기관, 연방회의의원 또는 국가두마의원 5분의 1 이상이 제출할 수 있다.
제 135 조
1.러시아 연방헌법의 제1장 제2장 및 제9장의 규정은 연방 회의(상원)가 이를 개정할 수 없다.
2. 러시아연방헌법 제1장 제2장 및 제9장의 규정의 개정제안이 연방회의(상원)와 국가두마(국가회의, 하원)의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을 받을 경우에는 연방의 헌법적 법률에 따라 헌법의회가 소집된다.
3.헌법의회는 러시아연방헌법의 불변성을 확인하거나 러시아연방의 새헌법 초안을 작성하되, 이 초안은 헌법의회의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되거나 또는 국민투표에 부의된다. 국민투표를 실시할 때에는 과반수의 유권자가 투표하고 투표자의 과반수가 찬성하면 러시아연방헌법이 확정된 것으로 본다.
제 136 조
러시아연방헌법 제3장부터 제8장까지에 대한 수정은 연방의 헌법적 법률의 의결을 위하여 정하여진 절차에 따라 의결하며, 러시아연방구성주체의 3분의 2 이상의 입법권력기관이 승인한 수 효력을 발생한다.
제 137 조
1. 러시아연방의 구성주체를 정하는 러시아연방헌법 제65조의 변경은 러시아연방에로의 가입과 그 구성에서의 새로운 러시아연방 주체의 구성, 러시아연방구성주체의 헌법적 법적 지위의 변경에 관한 연방의 헌법적 법률에 근거하여 행한다
2.공화국 지방 주 연방특별시 자치주 자치관구의 명칭을 변경하는 경우 러시아연방 구성주체의 새로운 명칭을 러시아연방헌법 제65조에 기입하여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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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부 부칙 및 경과과정
1.러시아연방헌법은 국민투표의 결과에 따라 공포일로부터 효력을 발생한다. 1993년 12월 12일의 국민투표일은 러시아연방헌법 채택일로 한다. 동시에 1978년 4월 12일에 채택되고 그후에 수정 보완된 러시아연방-러시아헌법(기본법)의 효력은 중지된다.
러시아연방의 연방국가권력기관과 러시연방구성 주권공화국 국가권력기관간의 관할 대상 권한의 한계에 관한 조약, 러시아연방의 연방국가권력기관과 러시아연방의 지방 주 모스크바시 상트-베쩨르부르그시의 국가권력기관간의 관할대상 및 권한의 한계에 관한 조약, 러시아연방의 연방국가권력기관과 러시아연방구성 자치주 자치관구의 국가권력기관간의 관할대상 및 권한의 한계에 관한 조약, 또한 러시아연방의 연방국가권력기관과 러시아연방주체의 국가권력기관간의 기타 조약, 러시아 연방주체의 국가권력기관간의 조약 등 연방조약의 규정이 러시아연방헌법의 규정에 일치하지 아니하는 경우 러시아연방 헌법 규정의 효력이 우선한다
2. 이 헌법시행 이전에 러시아연방영토에서 적용되던 법률과 기타 법규는 러시아연방헌법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한 적용된다
3. 러시아연방 헌법(구헌법)에 따라 선출된 러시아연방 대통령은 본 헌법 발효일부터 당초 임기 만료일까지 본 헌법에 의하여 제정된 권한을 행사한다.
4. 러시아연방 내각은 본 헌법 발효일로부터 러시아연방 헌법에 의하여 제정된 러시아연방 내각의 권리, 의무 및 책임을 가지며 향후 러시아연방 정부로 호칭된다.
5.러시아연방에서 법관은 이 헌법에 규정된 권한에 따라 재판한다. 이 헌법 시행 후 러시아연방의 모든 법관은 그들이 선임되었던 임기가 만료되기 전까지 권한을 보유한다. 결원은 이 헌법에 규정된 절차에 따라 보충한다.
6. 배심원의 참가에 의한 사건 심리 절차를 제정한 연방 법률의 효력 발생시까지 해당사건에 대한 종래의 재판심리 절차가 유지된다. 러시아연방 형사소송법을 본 헌법 규칙에 부합되도록 조정할 때까지 범죄 용의자들에 대한 체포, 구금 및 구속에 관한 종래의 절차가 유지된다.
7. 제1기 연방회의와 제1기 국가회의는 2년 임기로 선출된다.
8. 연방회의는 선출 후 30일째 되는 날에 첫 회의를 소집한다. 연방회의의 첫 회의는 러시아연방 대통령이 개막한다.
9. 첫번째 소집되는 국가두마 대의원은 러시아연방정부의 구성원이다. 국가두마대의원인 러시아연방정부 구성원은 직무수행 관련 활동(혹은 비 활동)에 대한 책임부문에서 의원 체포 특권에 관한 이 헌법의 규정이 적용되지 아니한다.
첫 번째 소집되는 연방회의 의원은 한시적으로 그 권한을 행사한다
대북정책: 自由社會(民主化 社會)
“世界潮流浩浩蕩蕩順之則昌, 逆之則亡.
民國基於三民主義,為民有、民治、民享之民主共和國(立憲君主國)“
세계 조류에 역행하는 부정부패 친족주의[국가사회주의, 침략 군국주의 노선] 1인 장기집권 독재자의 좌익 파시즘이나 우익 파시즘 정권일때는 民官軍(민관군) 주도의 연합정부론 군사혁명[유엔 안보리(국제연합안전보장이사회) 결의로 전쟁]도 인정하는 것이 자유사회(민주화 사회)입니다
"민주주의 반대는 공산주의가 아닌 독재주의(전체주의)고 자본주의 반대가 공산주의입니다.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자유주의(자유권)와 사회주의(사회권=생존권) 공존(존중) 자유사회(민주화 사회)입니다"
a.자본주의 3대 원칙[경제]은 사유재산, 이윤추구, 자유시장경쟁 등이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 3대 원칙을 부정함으로 자영업(자작농)을 할 수 없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를 부정하기 때문에 국가사회주의(자국 사회주의) 국영자본체제로 나아갈 수 있다
b.민주주의 3대 원칙[정치]은 인민의(民有,Of the people), 인민에 의한(民治,By the people), 인민을 위한(民享,For the people) 민주정부(民主政府,Democratic Government)이다
民國基於三民主義,為民有、民治、民享之民主共和國(立憲君主國).
국가사회주의(군국주의)와 투쟁한 2차대전 이후 공화국 대통령, 국가주석이나 입헌군주국 수상의 임기제한이 돼야 권력분리과 국민주권, 기본권보장, 법치주의, 사법부의 독립, 복수정당과 의회정치, 국제평화주의 등을 보장할 수 있었다.
[미합중국 수정 제22조(대통령 임기를 2회로 제한)
*이 수정조항은 1947년 3월 24일에 발의되어 1951년 2월 27일에 비준됨
제1절 누구라고 2회 이상 대통령직에 선출될 수 없으며 누구라도 타인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임기 중 2년이상 대통령직에 있었거나 대통령 직무를 대행한 자는 1회 이상 대통령직에 당선될 수 없다
다만, 본 조가 효력을 발생하개 될 때에 대통령직에 있거나 대통령 직무를 대행하고 있는 자가 잔여임기 중 대통령직에 있거나 대통령 직무를 대행하는 것을 방해하지 아니한다 ]
행정부 제1절 1항
행정권은 미합중국(아메리카합중국) 대통령에 속한다
대통령의 임기는 4년으로 하며 동일한 임기의 부통령과 함께 다음과 같은 방법에 의하여 선출된다 [수정조항 이전 미국헌법 조항, 대통령의 임기 제한 없음]
1단계 자본주의 민주주의 혁명 추진(경제 기반으로 정치)
자유화 개방화정책(자본주의 정책)도 국가발전[국가 경제성장과 개인 부(富)의 축적(부유층)]을 가져올 수 있다면 민주화도 국가발전(경제성장)을 가져 올 수 있습니다
2단계 자유주의(자유권)와 사회주의(사회권) 기반 구축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를 존중돼야 하지만 극단적 자유주의 노선 무정부주의나 극단적 사회주의 노선 국가사회주의는 국가의 빈곤과 개인의 생존 결핍(가난)만 가져올 수 있다
자유권(인민)과 사회권(생존권, 국민)
a.인민(人民)-국민 개개인 의미(기본권 향유자)-개개인의 국민-기본권 향유자로서의 국민
권리장전 사람을 지칭할때는 인민으로 사용해야 정확하다(루소 사상:회의제 정부론)
기본권 중 자유권 등의 표현(세계 각국 인민의 권리, 자유권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똑 같이 적용됨)
-신체의 자유권:실체적 보장(법률주의)과 절차적 보장(신체자유의 절차법적 보장)- 강제노역의 금지, 연좌법의 금지(친족의 행위로 인한 불이익 처우금지), 고문을 받지 아니할 권리등
-사회,경제적 자유권:거주.이전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통신의 자유등
-정신적 자유권: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국교부정과 정교분리 원칙), 언론 출판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학문의 자유(대학 자율성 보장)등
-행복추구권과 생명권, 기본권의 초국가성과 포괄성 규정 보장(인격권, 수면권, 휴식권, 일조권, 애정자유권, 스포츠권, 건강권등 보장):축첩(일부다처)제도나 특수신분제도 귀족이나 노예제도등 부정
-인간의 존엄성 보장:집단추방, 대량학살, 고문, 노예제도, 인신매매, 인간생체실험(뇌파로 뇌 세뇌로 각종 정치공작행위이나 테러행위, 무기확보를 위한 인간생체실험 등), 마약, 강제노동등 금지. 잔인하고 가혹한 형벌, 화학적 물리적 생체실험사용 금지, 인간을 최저한 생존까지 불가능하게 하는 조건에 빠뜨리는 행위 금지, 태아의 생명권과 낙태행위금지(사회적 합의에 의한 낙태동의)
b.국민(國民)-인민의 전체(나라 인민 전체 의미,선거권 향유자나 국가기관 대표자)-주권자로서의 국민--이념적 통일체로서 국민.
대한민국이나 중화민국, 미합중국 사람을 지칭할때는 국민로서 사용해야 한다(로크 사상: 국민 투표에 의한 대통령 선출)
기본권 중 사회권(생존권)이나 선거권 등의 표현(자국민, 사회권은 국가의 1인당 국민소득에 따라 차등 사회보장 정책 추진)
-인간다움 생활을 할 권리
-교육을 받을 권리(의무교육과 평생교육)
-근로의 권리(실업자 해소)
-근로자의 근로 삼권
-쾌적한 주거생활의 보호
-최저 임금제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
-환경권 및 주거생활에 관한 권리
-혼인과 가족생활에서의 양성평등과 보건, 모성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결혼, 여성보호, 아동보호)
-상이군경 및 전몰군경 및 국가유공자의 유가족에 대한 우선 취업권 부여
-노인복지와 국가보호
-장애인 보호
-생활무능력자의 권리를 보장(생활보호법이나 의료보호법)
-군 복무 예비역 군인에 대한 복지(경력이나 국가보호)
c.권리(權利)--인민 법률상 투쟁의 힘[국가나 힘(세력)이 있는 제3자에 대한 투쟁의 힘--자유권이나 생존권 등]
d.의무(義務)--인민 법률상 구속의 힘[국가에 구속--노동.국방과 납세의 의무 등]
조지 워싱턴 전 대통령의 대통령 임기 제한
1797년 두 번에 걸친 임기가 끝나자 모든 사람들은 그가 사망할 때까지 종신 대통령직에 머물러줄 것을 간청했지만, 그는 단호히 거절하며 자기가 3번씩 임기를 맡는다면 장기집권을 위한 무서운 정치싸움이 벌어질 것을 염려해 2번의 임기만을 수행하였고, 대통령직을 떠나면서 그는 유명한 "고별사"를 발표하였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미국인의 신념에 신성한 사료로 살아 있다. 이 고별사에서 그는 무엇보다 통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미국민들에게는 정당간의 극심한 대립에 대해 경고하고, 대외적으로는 외국에 대한 지나친 종속과 적대감을 경계했다.
임기를 마친 그는 미련없이 자신의 사저가 있는 마운트버넌으로 돌아갔고, 2년 뒤인 1799년 향년 67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세운 두 번까지만 대통령 임기를 마친다는 전통은 1940년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깨고, 수정헌법 22조에 3선 출마금지, 타인의 임기로 2년 이상 대통령직에 봉직한 사람은 2번 이상 대통령에 당선될 수 없다는 조항을 추가할 때까지 철칙처럼 지켜온 절제의 미덕이었다.(임기는 4년으로, 최대 8년까지만 가능) 당연히 수정헌법 22조에 대통령 3선 출마금지법은 워싱턴의 전통을 계승, 강화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인 초대 대통령이자, 떠날 때에는 떠나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준 대통령이고, 귀족정치를 지지하고 비록 황제처럼 행동하여 정치를 결코 대중화하지는 않았지만, 미국의 대중민주주의를 창조해내는데 큰 역할을 한 사람이다
링컨 게티스버그 연설문
펜실베니아주, 게티스버그
1863년 11월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인 링컨(A. Lincoln)이 남북전쟁 희생자의 영령을 위로하기 위해 최대의 전화(戰禍)를 입은 펜실베니아주의 게티스버그를 방문하여 그곳에서 행한 연설. 그 연설 가운데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government of the people, for the people, by the people)'라는 명언을 남겼는데, 이 말은 민주주의가 무엇인가를 잘 설명해 주고 있으며, 또한 민주정치의 실천 이념이 되고 있다
"Four score and seven years ago our fathers brought forth on this continent, a new nation, conceived in Liberty, and dedicated to the proposition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Now we are engaged in a great civil war, testing whether that nation, or any nation so conceived and so dedicated, can long endure. We are met on a great battle-field of that war. We have come to dedicate a portion of that field, as a final resting place for those who here gave their lives that that nation might live. It is altogether fitting and proper that we should do this.
But, in a larger sense, we can not dedicate -- we can not consecrate -- we can not hallow -- this ground. The brave men, living and dead, who struggled here, have consecrated it, far above our poor power to add or detract. The world will little note, nor long remember what we say here, but it can never forget what they did here. It is for us the living, rather, to be dedicated here to the unfinished work which they who fought here have thus far so nobly advanced. It is rather for us to be here dedicated to the great task remaining before us -- that from these honored dead we take increased devotion to that cause for which they gave the last full measure of devotion -- that we here highly resolve that these dead shall not have died in vain -- that this nation, under God, shall have a new birth of freedom -- and that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
["지금으로부터 87년 전 우리의 선조들은 이 대륙에서 자유 속에 잉태되고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명제에 봉헌된 한 새로운 나라를 탄생시켰습니다.
우리는 지금 거대한 내전에 휩싸여 있고 우리 선조들 이 세운 나라가, 아니 그렇게 잉태되고 그렇게 봉헌된 어떤 나라가, 과연 이 지상에 오랫동안 존재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시험받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모인 이 자리는 남군과 북군 사이에 큰 싸움이 벌어졌던 곳입니다. 우리는 이 나라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에게 마지막 안식처가 될 수 있도록 그 싸움터의 일부를 헌납하고자 여기 왔습니다. 우리의 이 행위는 너무도 마땅하고 적절한 것입니다.
그러나 더 큰 의미에서, 이 땅을 봉헌하고 축성하며 신성하게 하는 자는 우리가 아닙니다. 여기 목숨 바쳐 싸웠던 그 용감한 사람들, 전사자 혹은 생존자 들이, 이미 이곳을 신성한 땅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거기 더 보태고 뺄 것이 없습니다. 세계는 오늘 우리가 여기 모여 무슨 말을 했는가를 별로 주목하지도, 오래 기억하지도 않겠지만 그 용감한 사람들이 여기서 수행한 일이 어떤 것이었던가는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싸워서 그토록 고결하게 전진시킨, 그러나 미완 으로 남긴 일을 수행하는 데 헌납되어야 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들 살아 있는 자들입니 다. 우리 앞에 남겨진 그 미완의 큰 과업을 다 하기 위해 지금 여기 이곳에 바쳐져야 하는 것은 우리들 자신입니다. 우리는 그 명예롭게 죽어간 이들로부터 더 큰 헌신의 힘을 얻어 그들이 마지막 신명을 다 바쳐 지키고자 한 대의에 우리 자신을 봉헌하고, 그들이 헛되이 죽어가지 않았다는 것을 굳게 굳게 다짐합니다. 신의 가호 아래 이 나라는 새로운 자유의 탄생을 보게 될 것이며,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는 이 지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민주공화국은 링컨의 "民國基於三民主義,為民有, 民治, 民享之民主共和國"이다
-1958년 제헌된 프랑스 5 공화국의 프랑스 헌법에서는 프랑스 공화국을 "gouvernement du peuple, par le peuple et pour le peuple" [인민의(백성의), 인민에 의한(백성에 의한), 인민을 위한(백성을 위한) 정부]로 규정하며, 이는 정확히 링컨의 말에 대한 번역이다
-민주주의 3대 원칙[정치]:국민의(民有), 국민에 의한(民治), 국민을 위한(民享) 정부[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공화국이란 공화제(共和制)를 실시하는 국가이며,민주공화국은 국가의 주권이 다수의 국민에게 있고, 국민이 선출한 대표자가 국가를 통치한다. 민주공화국의 효시는 1776년 미국의 독립선언에서, 그 후 1789년의 프랑스혁명, 1793년과 1848년의 프랑스헌법 등으로 이어진다. 권력구조의 집권(集權) 또는 분권(分權)에 의해서 단일공화국과 연방공화국으로 구분되며, 권력분립의 형태에 의해서 대통령제ㆍ의원내각제 국가 등으로 구분된다. 민주공화국은 권력의 기초로서 국민주권의 원리, 정치적 이데올로기로서 자유민주주의, 권력 구조면에서 권력분립주의, 의회주의와 법치주의에 의한 정치 과정의 통제 등을 특징으로 한다. 대한민국은 헌법 1조 1항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미국이나 세계 각국 민주공화국은 링컨의 노예제도 폐지와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민주정부)에서 비롯돼 오고 있다
민주정부는 공화국이나 입헌군주국 어느 나라에서도 다 실시하고 있다
'民國基於三民主義,為民有, 民治, 民享之民主共和國'
민주공화국 헌법(자본주의민주주의 헌법)과 사회주의 공화국 헌법(사회주의 헌법)을 구분해야 한다
민주공화국(民主共和國, democratic republic)은 엄격한 의미로는 민주주의와 공화제를 모두 다 실시하고 있는 국가를 의미한다. 이러한 국가는 궁극적으로 국가의 권위와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며, 모든 정부는 국민에게 선출된 공무원이 운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스스로를 민주 공화국이라고 표방한 국가는 거의 자유 선거나 공정 선거를 치루지 않았다. 동독으로 알려진 독일민주공화국과 북베트남으로 알려진 베트남 민주 공화국 두 공산주의 국가가 대표적인 예이다
민주공화국을 표방하고 있는 또 다른 국가인 콩고 민주 공화국은 2011년 프리덤 하우스의 조사에서 6.0(1.0은 완전히 자유로운 국가, 7.0은 완전히 자유롭지 않은 국가)로 "자유롭지 못한" 국가에 속한다. 또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독재자가 통치하는 세계에서 가장 비민주적인 국가 중 하나이다.
민주공화국 중 자본주의민주주의 국가는 민주정부이며 사회주의 국가는 일당독재국가나 일인 독재국가이다
에이브러햄 링컨 - 노예해방선언문
1862년 9월 22일을 기하여 미합중국 대통령 링컨은 다음과 같은 내용의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Abraham Lincoln delivers the Emancipation Proclamation to his Cabinet현재 미합중국에 대하여 반란 상태에 있는 주 또는 주의 일부의 예속 상태인 노예들은 1863년 1월 1일 이후부터 영원히 자유의 몸이 될 것이다. 육군 및 해군을 포함하여 미국의 행정부는 그들의 자유를 인지하고 지켜줄 것이고, 그들을 다시 억압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그들이 진정한 자유를 얻고자 노력하는 데 어떠한 제약도 가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 행정부는 앞서 말한 1월 1일에 여전히 미합중국에 대하여 반란 상태에 있는 주들과 주의 일부 지역을 선포에 의해 (반란주로) 지정할 것이다. 그리고 그날까지 주 또는 주민 유권자의 과반수 이상이 투표하여 선출한 대의원들을 성의를 가지고 미국 의회에 파견하고 있다면 이를 뒤엎을 만한 다른 증언이 없는 한, 그 주와 주민은 미국에 대하여 반란상태에 있지 않은 것으로 간주할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의 대통령인 나, 에이브러햄 링컨은 미국 정부의 권위에 대한 실제 무장 반란시에 미국 육해군 총사령관으로서 부여된 권한에 의거하여, 그리고 이 반란을 진압하기 위한 적합하고 필요한 조치로서, 1863년 1월 1일부터 그 이후 100일 동안, 미국에 대항해 반란 상태에 있는 다음과 같은 주와 주의 일부 지역을 반란주로 지명하는 바이다.
아칸사스, 텍사스, 루이지애나(세인트 버나드, Palquemines, 제퍼슨, 세인트 존, 세인트 찰스, 세인트 제임스, Ascension, Assumption, 테레본, Lafourche, 세인트 매리, 세인트 마틴, 그리고 올리언즈 지역은 제외하고 뉴올리언즈는 포함함), 미시시피, 알라바마, 플로리다, 조지아, 사우스 캐롤라이나, 노우스 캐롤라이나, 그리고 버지니아(웨스트 버지니아로 지정된 45개 카운티와 버클리, 마코맥, 엘리자베스 시티, 요크, Princess Anne, 그리고 노퍽을 제외하고 노퍽 및 포츠머스의 도시들은 포함함), 그리고 제외된 지역은 현재 노예해방선언이 발표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어 있는 상태이다.
상기 권한과 언급한 목적을 위하여, 나는 이상의 반란주로 지정된 주와 주의 일부 지역에서 노예로 있는 모든 사람은 이제부터 자유의 몸이 될 것임을 선포한다. 그리고 육군과 해군 당국을 포함하여 미국의 행정부는 앞서 언급한 자들의 자유를 인정하고 유지할 것이다. 나는 자유가 선언된 상기의 노예들에게 자기 방어를 위해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모든 폭력 행위를 삼갈 것을 명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허용된 모든 경우에 적합한 임금을 벌기 위하여 충실히 노동할 것을 권유하는 바이다. 그리고 본인은 적합한 조건을 갖춘 자는 미국 군대에 입대하여 요새, 진지 및 기타부서에 배치되고, 모든 종류의 선박에도 배치될 것임을 알리는 바이다. 그리고 진실로 정의를 위한 행위이며 군사상의 필요에 의하여 헌법에 의해 보증된 이 선언에 대하여 전능하신 하느님의 은총과 인류의 신중한 판단이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
[Whereas on the 22nd day of September, A.D. 1862, a proclamation was issued by th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containing, among other things, the following, to wit:
"That on the 1st day of January, A.D. 1863, all persons held as slaves within any State or designated part of a State the people whereof shall then be in rebellion against the United States shall be then, thenceforward, and forever free; and the executive government of the United States, including the military and naval authority thereof, will recognize and maintain the freedom of such persons and will do no act or acts to repress such persons, or any of them, in any efforts they may make for their actual freedom.
"That the executive will on the 1st day of January aforesaid, by proclamation, designate the States and parts of States, if any, in which the people thereof, respectively, shall then be in rebellion against the United States; and the fact that any State or the people thereof shall on that day be in good faith represented in the Congress of the United States by members chosen thereto at elections wherein a majority of the qualified voters of such States shall have participated shall, in the absence of strong countervailing testimony, be deemed conclusive evidence that such State and the people thereof are not then in rebellion against the United States."
Now, therefore, I, Abraham Lincoln,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by virtue of the power in me vested as Commander-In-Chief of the Army and Navy of the United States in time of actual armed rebellion against the authority and government of the United States, and as a fit and necessary war measure for supressing said rebellion, do, on this 1st day of January, A.D. 1863, and in accordance with my purpose so to do, publicly proclaimed for the full period of one hundred days from the first day above mentioned, order and designate as the States and parts of States wherein the people thereof, respectively, are this day in rebellion against the United States the following, to wit:
Arkansas, Texas, Louisiana (except the parishes of St. Bernard, Palquemines, Jefferson, St. John, St. Charles, St. James, Ascension, Assumption, Terrebone, Lafourche, St. Mary, St. Martin, and Orleans, including the city of New Orleans), Mississippi, Alabama, Florida, Georgia, South Carolina, North Carolina, and Virginia (except the forty-eight counties designated as West Virginia, and also the counties of Berkeley, Accomac, Morthhampton, Elizabeth City, York, Princess Anne, and Norfolk, including the cities of Norfolk and Portsmouth), and which excepted parts are for the present left precisely as if this proclamation were not issued.
And by virtue of the power and for the purpose aforesaid, I do order and declare that all persons held as slaves within said designated States and parts of States are, and henceforward shall be, free; and that the Executive Government of the United States, including the military and naval authorities thereof, will recognize and maintain the freedom of said persons.
And I hereby enjoin upon the people so declared to be free to abstain from all violence, unless in necessary self-defence; and I recommend to them that, in all case when allowed, they labor faithfully for reasonable wages.
And I further declare and make known that such persons of suitable condition will be received into the armed service of the United States to garrison forts, positions, stations, and other places, and to man vessels of all sorts in said service.
And upon this act, sincerely believed to be an act of justice, warranted by the Constitution upon military necessity, I invoke the considerate judgment of mankind and the gracious favor of Almighty God.]
미합중국 수정 제13조(노예제도 폐지)
*이 수정조항은 1865년 1월 31일에 발의되어 1865년 12월 6일에 비준됨
제1절 노예 또는 강제노역은 당사자가 정당하게 유죄판결을 받은 범죄에 대한 처벌이 아니면 미합중국 또는 그 관할 속하는 어느 장소에서도 존재할 수 없다
제2절 연방의회는 적당한 입법에 의하여 본 조의 규정을 시행할 권한을 가진다
미합중국 수정 제14조(공민권)
*이 수정조항은 1866년 6월 13일에 발의되어 1868년 7월 9일에 비준됨
제1절 미합중국에서 출생하고 또는 귀환하고 미합중국의 관할권에 속하는 모든 사람은 미합중국 및 그 거주하는 주의 시민이다
어떠한 주도 미합중국 시민의 특권과 면책권을 박탈하는 법률을 제정하거나 시행할 수 없다 어떠한 주도 정당한 법의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사람으로부터도 생명, 자유 또는 재산을 박탈할 수 없으며 그 관할권내에 있는 어떠한 사람에 대하여도 법률에 의한 평등한 보호를 거부하지 못한다
제2절 하원의원은 각주의 인구수에 비례하여 각 주에 할당한다
각 주의 인구수는 과세되지 아니하는 인디언을 제외한 각주의 총인구수이다
다만, 미합중국 대통령 및 부통령의 선거인, 연방의회의 하원의원, 각주의 행정관, 사법관 또는 각 주의회의원을 선출하는 어떠한 선거에서도 반한이나 그 밖의 범죄에 가담한 경우를 제외하고 21세에 달하고 미합중국 시민인 당해 주의 남성 주민 중의 어느 누구에게 투표권이 거부되거나 어떠한 방법으로 제한되어 있을 때에는 그 주의 하원의원 할당 수의 기준은 그러한 남성주민의 수가 그 주의 21세에 달한 남성주인의 총수에 대하여 가지는 비율에 따라 감소된다
제3절 과거에 연방의회, 의원, 미합중국 관리, 각 의회의원 또는 각주의 행정관이나 사법관으로서 미합중국 헌법을 수호할 것을 선서하고 후에 이에 대한 폭동이나
반란에 가담하거나 또는 그 적에게 원조를 제공한 자는 누구라도 연방의회의 상원의원이나 하원의원, 대통령 및 부통령의 선거인, 미합중국이나 각 주 밑에서의 문무의 관직에 취임할 수 없다 다만, 연방의회는 각원(각원)의 3분의 2 이상 찬성 투표로써 그 실격(失格)을 해제할 수 있다
제4절 폭동이나 반란을 진압할때의 공헌에 대한 은급 및 하사금을 지불하기 위하여 기책(起債)한 부채를 포함하여 법률로 인정한 국채의 법적효력은 이를 문제로 삼을 수 없다
그러나 미합중국 또는 주는 미합중국에 대한 폭동이나 반란을 원조하기 위하여 기채한 부채에 대하여 또는 노예의 상실이나 해방으로 인한 청구에 대하여서는 채무를 부담하거나 지불하지 아니한다
모든 이러한 부채, 채무 및 청구는 위법이고 무효이다
제5절 연방의회는 적절한 입법에 의하여 본 조의 규정을 시행할 권한을 가진다
미합중국 수정 제15조(흑인의 투표권)
* 이 수정조항은 1869년 2월 26일에 발의되어 1870년 2월 3일에 비준됨
제1절 미합중국 시민의 투표권은 인종, 피부색 또는 과거의 예속 상태로 해서 미합중국이나 주에 의하여 거부되거나 제한되지 아니한다
제2절 연방의회는 적절한 입법에 의하여 본 조의 규정을 시행할 권한을 가진다
노예 해방 선언문 내용은, ① 반란상태에 있는 여러 주의 노예를 전부 해방하며, ② 해방된 흑인은 폭력을 삼가고 적절한 임금으로 충실히 일할 것, ③ 흑인에게 연방 군대에 참가할 기회를 줄 것 등을 규정하였다. 이 선언은 남북전쟁에서의 전략적 의의도 가지는데, 남부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남부 여러 주의 연방 조기복귀(早期復歸)를 목적으로 하였다. 그러나 실질적인 노예해방은 전쟁 뒤 미합중국 수정(修正)헌법 제13∼15조의 성립으로 노예제도 폐지가 확정되었다.
미합중국 헌법 수정 제22조(대통령 임기를 2회로 제한)
*이 수정조항은 1947년 3월 24일에 발의되어 1951년 2월 27일에 비준됨
제1절 누구라고 2회 이상 대통령직에 선출될 수 없으며 누구라도 타인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임기 중 2년이상 대통령직에 있었거나 대통령 직무를 대행한 자는 1회 이상 대통령직에 당선될 수 없다
다만, 본 조가 효력을 발생하개 될 때에 대통령직에 있거나 대통령 직무를 대행하고 있는 자가 잔여임기 중 대통령직에 있거나 대통령 직무를 대행하는 것을 방해하지 아니한다
선진국 대통령제나 내각책임제 국가에서 대부분 대통령과 수상의 임기 3선 금지를 표방해가고 있습니다
그래야 민주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으며 권력자 부패를 차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패나 권력 남용은 대통령이나 수상 임기의 3선 허용에서 비롯돼 오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에도 나만(대통령이나 수상만)의 애국자가 아닌 많은 애국 정치 지도자가 있습니다
권력을 버릴 수 있는 지도자가 진정한 애국자가 될 수 있습니다
2019년도 새해부터 EAIC Staff들은 "From Bird's Eye(Reading,Investigation) to Guide Ear(Language, Intelligence)"원칙으로 생활화해야 하며 20년이상 경력자는 "Form Guide Ear(Language, Intelligence) to Bird's Eye(Reading,Investigation)"로 생활해도 됩니다.
EAIC Headquarters는 "Form Guide Ear(Language, Intelligence) to Bird's Eye(Reading,Investigation)"입니다.
Guide Ear(Language, Intelligence)는 이상주의자나 거짓말이 될 수 있으며 Bird's Eye(Reading,Investigation)은 현실주의자나 정보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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