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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지역 무장공비 침투사건 본문

국가정보원 안보모니터

강릉지역 무장공비 침투사건

CIA Bear 허관(許灌) 2016. 8. 8. 13:01

 

 

             한국 강원도 강릉시에서 북한 공작원 26을 옮긴 것으로 보인다 북한 잠수함 인항(引航) 준비하는 한국군 병사. 1996 9 촬영(사진)

강릉지역무장공비침투사건(江陵地域武裝共匪侵透事件)은 1996년 9월 18일 북한 상어급 잠수함이 강릉시 부근에서 좌초된 것을 택시 기사가 신고를 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잠수함에 탑승한 인원은 총 26명이었으며, 이들은 북한 인민무력부 정찰부 소속으로서 대좌와 상좌 등 고위급 장교를 포함해 군관 이상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의 조사결과 이 중 19명이 승조원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잠수함에 탑승했던 26명 중 살해된 인원이 11명이었고, 13명은 국군에 의해 사살되었으며, 1명은 생포되었다. 한국 측은 군인 11명과 경찰 1명, 예비군 1명을 포함한 민간인 6명이 교전 또는 사고로 사망했다.

1.배경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인 1994년부터 북한은 잠수함을 간첩 활동에 투입했고, 1995년 9월, 서귀포에 간첩을 침투시키기도 했다. 1996년 2월 초 동해상에서 한국과 미국의 합동 훈련이 실시되었고, 4월 4일 북한은 남한 내에서 시행된 한미연합훈련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다.

북한은 인민군 판문점대표부 담화를 통해 비무장지대와 관련된 규정들을 따르지 않겠다고 선언한 후 판문점에서 무력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1996년 초부터 북한은 미군의 유해 송환을 계기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논의를 진행했고, 9월 21일에는 미국의 대표가 북한을 방문할 계획이었다.

2.내용경과

잠수함이 좌초된 후의 경과는 다음과 같다.

1996년 9월 18일 새벽 1시 30분경 택시 기사가 강릉 해안 20m 해상에서 잠수함을 발견해 파출소에 신고했고, 대한민국 군에서는 2시경 해안 초소에서 잠수함을 확인해 군 병력을 투입했다.

잠수함 수색과정을 거쳐 국방부는 이 사건을 북한의 대남도발이며 중대한 정전협정 위반 사항이라고 발표했다. 잠수함에서 빠져 나온 북한 승조원들은 육지로 침투했고, 군·경은 동해안 일대에서 이들을 검거하기 위한 작전을 벌였다. 침투한 승조원은 모두 13명으로 파악되었으며, 이후 이들은 곳곳에서 수색대와 교전을 벌였다. 동원된 4만여 명의 군·경찰·예비군과 헬리콥터 5대가 합동 수색을 벌였다. 11월 5일까지 계속된 작전에서 동해안 일대에서 민간인과 군 사망자가 발생했고, 무장간첩 1명을 생포했다.

3.결과

무장공비침투사건은 강원도 주민들에게도 피해를 남겼다. 관광 수입 감소와 농림어업 분야에서 약 2500억 원의 손실이 발생해 도민들은 경제생활에 어려움을 겪었다.

1996년 12월 29일 북한은 잠수함 사고에 대한 유감을 발표하면서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다음날 남한은 판문점에서 이 사건으로 사망한 북한 측 승조원 24명의 시신을 북한으로 송환했다. 일반적으로 이들 시신은 적군묘지에 안장되지만, 남측은 시신을 화장한 후 이름과 키, 몸무게, 혈액형을 기재해 북측에 인도했다. 이것은 남북한 사이의 첫 시신 송환이었다.

 

 

-한국민족민주전선 서울대표부 공작원 활동에 잠수함 파견

<통일혁명당> 중앙위원회는 1985년 7월 27일 당의 명칭을 <한국민족민주전선>으로 개칭했고 일본에서는 1986년 8월 8일 통일혁명당 일본대표부를 한국민족민주전선 일본대표부로 조직 확대 개편 개명했다
한국(남한)에서는 1990년 1월 1일 전후 반미청년회(반미여성회)를 한국민족민주전선 서울대표부(민혁당)으로 조직 확대 개편 개명했다
반제청년동맹(강철서신)--->반미청년회(구국의 소리)---->한국민족민주전선(90년 1월,새세대)

좌파 민족주의 책자 탐독과 모임결성->NLPDR과 김일성 책자 학습(주사파 모임)-->북한정부 대남공작부 의식화 기능기(뇌 세뇌기)로 검증과 간첩교육-->납치,월북-->반미무장단체 결성과 북한정부 대남 간첩활동.

 북한정부 대남공작부는 뇌 세뇌기(의식화 기능기)로 남한 사람 납치대상을 "반미단체 간부(김일성주의자=주사파)"로 규정해오고 있다

북한정부 대남공작부가 반미단체 간부(김일성주의자=주사파)를 뇌 세뇌기로 검증을 할때  북한 김정은 정부를 찬양하고 김일성을 신격화, 우상화 할 수준이 돼야 납치, 월북 대상자로 선발한다[남한정부 내부 김일성주의 단체-통일혁명당과 민족민주혁명당(반미단체)]

-1990년 1월 한국민족민주전선 서울대표부 설치(반미청년회 등 반미단체 통합)

반미청년회 구국의 소리(김일성주의)에서 한국민족민주전선 새세대(김정일주의=주체사상)로 지하신문 변경

1986년에는 강철서신 등에 '미제의 스파이 박헌영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김영환등 강철서신(반제동맹)-구국의 소리(반미청년회)-새세대(한국민족민주전선 서울대표부, 민족민주혁명당)

-1991년 12월 김정일 노동당 군사부위원장이 인민군 총사령관으로 취임(김정일 북한 권력 장악)

1984년 5월 18일 김정일 직접 쓴 논설《남조선인민들의 반미자주화투쟁은 높은 단계의 애국투쟁이다》(1984)  발표했다

-김정일  우상화 벽보 사진이 북한 곳곳에 등장

-1992년 11월 미국 민주당 클린턴 후보 대통령 당선과 민주당 정부 등장

-1993년 3월 김영삼정부 출범과 핵무기 보유설, 북폭등장 그리고 남한 한민전 서울대표부 1995년 해방 50주년 남북통일 결정적 시기 공식화 (반미자주정부와 전쟁론)

-1994년 남북정상회담 추진과 분열[김대중-찬성파, 반미단체-반대파]

-1994년 7월 8일 새벽 2시 김일성 사망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 등 주요언론들은 9일 정오 특별방송을 통해 김 주석이 “심장혈관과 동 맥경화증으로 치료를 받아오던 중 겹쌓이는 정신적 과로로 94년 7월 7일 심한 심근경색이 발생 했고 심장쇼크가 합병되었으며 모든 치료를 다했으나 심장쇼크가 악화돼 7월 8일 새벽 2시에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1998년 12월 17일 해군이 남해에서 격침시킨 북한 반잠수정이 여수해안에 상륙
남해안으로 침투한 북한 반잠수정이 여수해안 상륙한 사실은 민혁당 연루자인 하영옥 심재춘씨가 국정원에서 <1998년 12월 17일 북한 공작원 배모씨를 여수해안으로 안내했다>고 진술했고 지난 1999년 3월 17일 건져 올린 반잠수정에서 이 공작원의 시체가 발견됨으로써 확인됐다

-민혁당과 관련된 무장간첩사건
이선실 여간첩 사건(이선실은 한국민족민주전선 부위원장 출신)
1995년 10월 24일 부여침투 무장간첩 김동식 사건
1996년 9월 18일 강릉무장간첩 사건
1997년 10월 최정남 강연정 부부간첩 사건(울산지역)
1998년 12월 17일 여수근해 반잠수함 격침사건

-반미 전쟁파 민혁당 와해와 김대중,김정일 남북정상회담(이선실 사망)
1998년 9월 5일 북한 제3공화국수립-세습제 좌익군정 헌법(先軍정치와 국방위원회, 명목상 국가원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