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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땅굴 본문
1978년 10월에 한국군이 발견한 직후에 촬영 된 제 3땅굴(사진)
제 3땅굴은 1978년 10월 17일 판문점에서 4㎞, 군사분계선 남방 435m 지점에서 땅굴수색 시추공사를 하던 중, 한 시추공에 박혀 있던 PVC파이프가 튀어나오고 지하수가 공중으로 12m 가량 솟아오르면서 발견되었다. 땅굴이 발견된 지점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군사정전위원회를 지원하는 유엔군 전진기지로부터 2㎞ 떨어진 곳으로 임진각에서 서북쪽으로 4㎞지점에 위치하였다. 이 땅굴은 임진강 하구에서 판문점을 향하여 남북으로 그어진 군사분계선의 서쪽 1,200m지점으로 추정되는 북한측 지역의 입구에서부터 지하평균 73m의 암석층을 굴착하여 1,635m가량 남쪽으로 내려온 것이었다. 폭 2m, 높이 2m로 제2땅굴과 같은 구조인 아치형이었으며, 전술능력은 1시간에 3만 명의 병력과 야포 등 중화기를 통과시킬 수 있었다.
북한은 1971년 9월 25일 김일성의 명령에 따라 땅굴작전을 개시하였다. 이른바 ‘9·25교시’라 일컬어지는 명령에서 김일성은 “남조선을 해방하기 위한 속전속결 전법을 도입하여 기습전을 감행할 수 있게 하라.”고 지시하였다. 이에 따라 북한에서는 각 군단별로 땅굴작전이 수행되었으며, 현재까지 약 20여 개의 땅굴이 굴착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북한의 땅굴은 1974년 11월 15일 고랑포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후 1975년 3월 19일 철원에서, 1978년 10월 17일 판문점부근에서 차례로 발견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북한의 땅굴은 서부와 중서부전선에 집중된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러나 1990년 3월 3일 강원도 양구 북방에서 4번째 땅굴이 발견됨에 따라 우리나라의 모든 전선에 땅굴이 존재한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발견된 땅굴은 순서에 따라 제1, 제2, 제3, 제4땅굴로 명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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