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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와 민족주의 - 안중근과 유럽연합에서 배운다 본문

-平和大忍, 信望愛./韓中日 동북아역사(한자언어문화권)

한일관계와 민족주의 - 안중근과 유럽연합에서 배운다

CIA bear 허관(許灌) 2016. 6. 19. 17:41

 

일본은 중국과 한국 그리고 만주(만국) 분열정책으로 만국(만주족)과 연합으로 한반도와 중국본토를 공격하는 논리보다는 동북아 공동체와 동아시아국가연합으로 나아가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베네룩스 3국이 주도해서 만든 유럽석탄철강공동체는 탈냉전 이후에 유럽공동체로 발전했다. 급기야 오늘날에는 유럽연합(EU)을 만들고 단일통화권을 구축하며 국경을 없애고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IS(이슬람국가)의 테러, 난민 문제, 유럽연합 국가들의 경제적 불균등 발전 등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 유럽은 나폴레옹전쟁에서부터 보불전쟁, 1, 2차 세계대전 등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역사를 딛고 유럽통합의 뿌리를 내린 것이다. 이에 비하면 탈냉전 이후 동아시아에는 유럽과 전혀 다른 방향의 질서가 만들어졌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사회주의 국가의 존재와 성장, 베네룩스 3국과 같이 평화질서 구축에 이해관계가 강한 강소국의 부재, 남북 분단체제의 강화, 과거사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 일본의 존재 등이 유럽과 비교해서 볼 때 동아시아에서 화해를 가로막고 평화질서를 구축하지 못하게 하는 배경이 된다. 여기서 과거사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 일본의 존재는 한국과 중국에서 반일민족주의를 강화시키고, 한국과 중국 내부에서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국내정치의 기반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동아시아 국가 중국

거꾸로 가는 일본의 시계

일본의 아베 정권은 역사수정주의 노선에 입각해서 사과하지 않는 일본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였다. 아베정권이 추구하는 ‘보통국가화’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시각에서는 일본의 재무장과 우경화 노선이다. 2차대전 이후 패전국 일본을 재건한 요시다 시게루 수상은 군대를 보유하지 않는 평화헌법에 기초하여 경제발전을 우선시하는 노선을 추구하였다. 아울러 끊임없이 진행되어온 일본 보수 세력의 재무장과 우경화 시도 속에서도 종군위안부 문제를 사과한 고노 담화와 일본의 침략을 사과한 무라야마 담화가 탄생하였다. 하지만 아베의 노선은 평화헌법에 대한 해석 변경을 통해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하여 재무장을 추구하는 것이다. 전후 요시다 시게루가 추구해온 노선에서 명백하게 이탈한 것이다.

아베 총리의 재무장 노선은 2차대전 종전 70주년 외교를 통해서 꽃을 피웠다. 아베는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해 관대한 처벌을 했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결일인 4월 27일을 일본의 ‘주권회복의 날’로 지정했다. 그리고 2차대전 종전 70주년인 2015년에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결일을 전후해서 4월 하순에 미국을 방문하여 미일 가이드라인을 개정함으로써 자위대의 해외 활동을 보장하는 지침을 마련하였다. 이를 뒷받침할 국내 관련 안보법률도 제정하고 개정하였다. 바야흐로 아베 총리의 앞길에는 평화헌법을 개정하는 일만 남게 되었다. 아베 총리는 자위대의 해외진출의 명분을 “국제평화에 기여한다”는 것으로 포장했다.

                      ✽ 2013년 일본 정부가 논란 속에 제정된 ‘주권회복의 날’을 기념하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아베 총리와 일왕 부부가 참석했다. ©연합뉴스

바야흐로

아베 총리의 앞길에는

평화헌법을 개정하는 일만 남게 되었다

견고한 미일동맹

아베 총리의 거침없는 행보는 미국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과 깊은 관련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오바마 정부는 성장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일본의 기여를 필요로 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미국에게 일본은 아시아로 진출하기 위한 태평양의 전초기지로서 가치를 지녔다.

1852년 페리 제독이 일본을 원정할 때부터 미국은 일본의 가치를 중요시했다. 페리의 원정은 처음부터 일본의 개항이 목적이었다. 영국과 프랑스의 아시아 진출에 맞서서 새로운 통상지 개척의 필요성에 직면한 미국은 일본을 선택했다. 당시 증기기관선으로는 태평양을 횡단할 연료를 충분히 실을 수 없는 맹점이 있었다. 페리 제독은 이러한 맹점을 극복하기 위해 유럽 국가들이 이미 개척한 아시아 항로인 대서양과 인도양을 경유해서 연료를 보급하면서 일본에 도착했다. 이후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은 미국의 아시아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서 확고한 위상을 유지했다.

이와 같은 일본의 위상은 2차대전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2차대전 이후 공산진영의 아시아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전초기지로서 일본을 선택했다. 오늘날 G2로 성장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도 미국은 일본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아베의 재무장 노선 역시 이러한 역사적 맥락과 정확하게 일치하면서, 미일동맹을 견고히 하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 도쿄에서 열린 아베 정권의 안보법안 반대 시위 ©연합뉴스

한국의 반일민족주의

하지만 한국에서 일본에 대한 관점은 역사적인 맥락과 국제정치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기보다는 식민지 강점에 대한 분노의 표출 차원에서 진행되어 왔다. 한국 국민들의 강고한 반일민족주의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역대 정권은 일본과 관계 개선을 시도했지만 결실을 맺지 못했다.

한국 국민들의 반일민족주의는 강력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일본의 식민지 통치가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 지배에 비해서 가혹했기 때문이다. 특히 일제가 식민지 강점시기 말기에 보인 민족말살정책이나 태평양 전쟁에서 자행한 잔혹한 행위는 이후 한국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강력한 반일 민족주의를 형성하게 만든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한국 역대 정부의 한일관계 개선 시도 역시 일본 우경화의 역사적 맥락과 국제정치적 현실에 대한 고려가 충분하지 못했다. 한일관계라는 양국 차원이 아니라 동아시아 차원에서 평화와 번영의 미래를 구상하는 전략이 부재했기 때문에 반일 민족주의와 한일과거사의 강력한 늪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新 대동아공영권

다른 한편 아베 정부의 재무장 노선은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제기된 ‘대동아공영권’의 현대판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아베는 그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서슴없이 요시다 쇼인을 꼽는다. 대동아공영권의 뿌리는 일본 근대화의 선구자인 요시다 쇼인의 사상에서 비롯된다. 대동아공영권은 아시아의 공존공영이 아니라 일본천왕 아래, 즉 일본의 지배 아래 아시아가 공영한다는 제국주의적이고 패권주의적인 노선이다. 이러한 요시다 쇼인의 사상은 메이지 유신으로 이어졌다.

일본은 서구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는 단기간에 근대화에 성공한 나라가 되었다.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한 요시다 쇼인의 제자들이 한반도를 침략하고 만주국을 만들게 된 것은 요시다 쇼인의 노선을 실현하는 차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근대화는 아시아에 대한 침략으로 이어진 것이기 때문에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안중근 의사가 일본 근대화의 영웅인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것과 같이 숙명적으로 배타적 대립적 관계를 타고난 것이다.

아베가 추구하는 노선은 대동아공영권의 뿌리인 요시다 쇼인과 대동아공영권의 실현을 위해 만주국을 설계한 기시 노부스케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아시아 정책과 관련하여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차지하는 국가위상 때문에 미일동맹의 후견을 받고 있는 노선이다.

한일관계의 현실적 갈등 해결을 위해 동아시아 협력기구 창설이 필요하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의 시사점

한일관계 개선은 역대 정권이 성과를 내지 못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길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동아시아의 역사와 국제정치적인 상황을 포괄하는 전략 속에서 아시아 평화 번영의 미래를 제시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반일 민족주의에 기초해서 일본의 재무장 노선과 맞서는 것이다. 두 가지 모두 어려운 길이지만 우리의 전략적 접근은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미완성의 구상이지만 상설기구로서 동양평화회의 조직, 동북아 3국 공동은행 설립, 동북아 3국 공동평화군 창설 등의 구체적인 구상도 담겨 있다. 안중근이 구상한 동양평화론은 오늘날 유럽연합과 비슷한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한일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동아시아 협력기구 창설이라는 범아시아적인 플랫폼에서 한일 간 과거사 문제와 경제 문화 교류의 투트랙(two track) 접근을 시도하는 것이 멀지만 역사적인 맥락과 국제정치적인 현실을 고려한 길이다. 안중근이 동양평화를 구상한 것처럼, 한일관계의 현실적인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궁극적인 해법은 유럽연합과 같은 동아시아 협력과 연대의 모델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유로스타(Eurostar)

 

 

 

*유로터널[영국의 포크스톤과 프랑스의 칼레 사이 도버해협]

 

 

 

 

도버 해협 해저 터널이라고도 부른다. 유로 터널은 1987~88년에 도버 해협 양쪽에서 굴착 공사를 시작해 1991년에 완성되었으며, 공식적으로는 1994년 5월에 개통되었다.

이 터널을 건설하려는 계획은 나폴레옹 시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그 계획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은 영국의 저명한 철도·운하 토목 기술자인 존 호크쇼(1811~91)가 사우스이스턴철도회사와 로스차일드 가문의 지원을 받아 1865년에 해저지질조사에 착수한 이후였다.

그 조사 결과 해저터널의 굴착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영국과 프랑스 양국은 1882년 해저에 굴착갱을 시설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그 이듬해 영국의회가 국내 보안을 이유로 굴착작업에 대한 반대입장을 의결해 공사가 중단되었다. 그후 1916, 1924, 1930년 이 계획이 재검토되었으나 실제 착공에까지 이르지는 못하다가1966년에야 영국과 프랑스 정부가 터널 굴착작업 재개에 합의했다.

터널은 총연장 55㎞(해저구간은 약 37㎞)로 3개의 터널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2개는 고속 열차가 다니는 곳이고 나머지 하나는 안전과 서비스를 위한 곳이다. 터널은 영국 측의 채링턴(포크스턴 부근)과 프랑스 측의 코크뉴(칼레 부근)를 연결하고 있으며 화물수송과 여객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 이 터널에서 시속 300㎞의 고속열차인 유로 스타(Euro-star)가 런던-파리, 런던- 브뤼셀 구간을 운행하고 있다

 

-EU[European Union] with us-
Capitalism  Anti Communism! Democracy Anti Totalitarianism(Dictatorship)!
After the capitalist democracy revolution, liberalism(Civil liberties) and Socialist(social rights, Right to life) coexist (respect) is a free society.  -Freedom Society[Democratization government]"
*Three principles of capitalism:Private property, pursuit of profit, Principle of free market competition Etc
*Three principles of Democracy: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Etc

 

 

 

                                                                                            Northeast Asia[Far East, 2016] 

부산은 극동지역(동해, 일본)을 중요시 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경제발전이 될 수 있다

가덕도 신항공 건설을 하기 위해서는 일본(미국) 자본과 투자가 돼야 하며 일본정부와 협력이 필요하다

거가대교(해저터널) 건설과 개통이후 서부산(남부경남) 발전과 낙동강  경제기적을 가져올 수 있는 디딤돌이 되어서면  향후 남해(동중국해) 연안국 일본, 중국, 필리핀등과 자유화 개방화 경제구역으로 나아갈 수 있는 국제항구 도시가 될 것이다 허남식 전부산시장이 재직 중에 추진한 사업 중 성과이며 한국과 일본 섬으로 해저터널로 거가대교처럼 하나의 경제, 문화구역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노력해오고 있다

 

 

 

"한일 해저터널이 완공돼 양국 간 우정이 돈독해지면 좋겠습니다"
이달 중순 일본 규슈(九州) 북단 히가시마쓰우라(東松浦)반도 가라쓰(唐津)의 지하 44m 갱도에서 만난 후지하시 겐지(藤橋建次.60)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가 서 있는 곳은 한·일간을 바다 속으로 연결하는 한일해저터널 탐사용 갱도의 최북단 해저 지역이다. 공사장 입구에서 547m가량이나 땅속을 걸어 들어와야 하는 곳이다.
이 공사를 주도하는 국제하이웨이 건설사업단이라는 단체가 지난 14일 주일 한국특파원단에 현장을 공개했다.
한일 해저터널 건설의 타당성을 놓고는 현재 한일 양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데다 양국 정부 간 합의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정부 차원은 아니지만 이미 이처럼 시추공사까지 진행되고 있다.

   이 사업단은 한일 해저터널이 일본과 한반도는 물론, 중국을 건너 전 세계를 하나로 잇는 평화의 터널의 기능을 하게 될 경우 한일 양국 모두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1982년부터 탐사갱도 시추 작업에 나섰다.
사업단은 3가지 노선을 놓고 다각적으로 검토한 끝에 가라쓰에서 일본의 이키섬, 쓰시마를 거쳐 거제도와 부산을 잇는 노선이 최적이라는 판단을 얻었다.

 

 

 

한일대교(한일해저터널):사가현 가라쓰-나가사키현 이키섬-나가사키현 쓰시마섬-거제섬-거가대교-부산


   이를 위해 사업단은 쓰시마, 거제도 등지에 시추하기 위한 땅도 구입하는 등 활발하게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다만, 사유지를 벗어난 해저에서 시추하기 위해서는 양국 정부의 허가가 필요한 만큼 일단 가라쓰 지역의 시추는 중단된 상태다.
사업단 측은 한국과 일본 내에서 우호적인 여론이 조성돼 양국 정부가 해저터널 건립에 본격적으로 나설 경우엔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업에 적극 참여할 방침이다.
가라쓰의 탐사 갱도 사업을 진두지휘해 온 코다기술주식회사의 대표인 후지하라 건설사업소장은 "양국 간 합의가 이뤄지면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 보면 10년 정도면 한일 해저터널을 완공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20여년간 현장을 누빈 경험으로 볼 때 건설 비용은 현 단계에서 10조엔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천문학적인 금액이지만 주최 측은 이 터널의 예상 물동량 등을 토대로 분석할 때 완공 후 15년이면 건설비 회수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터널이 완성되면 한국과 후쿠오카가 2시간 내에 철도나 자동차로 연결된다. 일본 측은 터널이 개통되면 한국을 거쳐 중국은 물론 유럽까지 철도로 연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보다 이 사업에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국 내에서는 일본~중국~유럽을 잇는 철도망이 완성되면 통과료 수입만으로도 상당한 경제적 효과를 볼 것이라는 찬성론과 함께 터널이 일본의 대륙 진출을 도와주는 역할에 그치면서 오히려 한국의 물류 기지로서의 역할에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란 반대론도 강한 상태다.

   다른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다. 특히 시추 갱도가 마련돼 있는 가라쓰 지역은 과거 임진왜란 때 일본의 30만 대군이 집결해 한반도 점령을 위한 함선 출정식을 한 장소이기도 하다. 경제적 논리와 함께 역사적인 관점에서도 한국측이 계획에 찬성하기 어려운 대목이기도 하다.

-터널입구

-터널 내부 사진


 

 

 

                                                                              베링 해협 대교

러시아가 오는 2030년까지 베링 해협 해저에 터널을 건설, 유라시아 대륙과 미주 대륙을 철도로 연결한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러시아의 TEPR는 TSR를 미국 뉴욕까지 늘리겠다는 구상이다. 총길이는 1만2978㎞인 TSR의 동쪽 끝 노선을 더 연장해 북미(총길이 2만777㎞)까지 잇겠다는 것이다. 관건은 유라시아·미주 대륙을 가르고 있는 베링해협을 어떻게 연결할 것이냐다.

베링해협 양 극단 길이는 88㎞로, 만약 철로를 놓겠다면 다리나 터널이 유력하다고 CNN은 전망했다

현재 아무르~야쿠츠크 본선 공사로 대 공사의 서막을 열었다. 생각보다 성사 가능성이 높은 점은 베링해협의 가운데 섬이 있으며 무엇보다도 깊이가 50m를 넘지 않는 다는 점이다. 애초에 다리를 지을려다가 너무 추워서 터널을 생각할 정도로 지리적 조건은 나쁘지 않다. 언제든지 돈만 넉넉해지면 중국, 러시아, 미국, 캐나다 등의 자본이 몰리면... 다만 최근 몇 년 새 미국 등 서방 국가들과 러시아 간에 긴장 관계가 조성되고 있어 정치적 문제 때문에 쉽지 않을 듯하다

*베링 해협 대교는 베링 해협을 건너게 될 다리다. 중간에 다이오메드 섬이 있기 때문에, 각각의 다리 길이는 자오저우 만 대교 보다 짧다. 그러나 극한적인 기후와 베링 해협의 유빙, 연계 교통망의 부실은 건설을 어렵게하는 요인이다

*다이오메드 제도(영어: Diomede Islands) 또는 그보즈데브 제도(러시아어: Острова Гвоздева 오스트로바 그보즈데바)는 베링 해협의 중간에 있는 제도이다.

                                                                                                        다이오메드 섬

소 다이오메드 섬(Little Diomede Island) 또는 크루젠시테른 섬(러시아어: Остров Крузенштерна 오스트로프 크루젠시테르나)은 미국령이다

대 다이오메드 섬(Big Diomede Island) 또는 라트마노프 섬(러시아어: Остров Ратманова 오스트로프 라트마노파)은 러시아령이다.

다이오메드 제도는 알레스카와 시베리아의 사이에 있는 베링 해협의 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두 개의 섬 사이로 날짜변경선이 지나며 대 다이오메드 섬은 소 다이오메드 섬보다 20시간이 빠르며, 두 섬간의 간격은 약 3km로, 미국과 러시아가 가장 근접한 지역이기도 하다. 1728년에 비투스 베링에 의해 발견되었고 다이오메드로 명명되었다. 1867년에 미국이 알래스카를 매수한 것에 의해 현재의 미국과 러시아의 영역이 확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