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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배포 2007년 정상회담 회의록 발췌본 본문

국가정보원 안보모니터

국정원 배포 2007년 정상회담 회의록 발췌본

CIA bear 허관(許灌) 2013. 6. 24. 20:20

 

"정전협정조인장-1950년 6월 25일 조선에서 침략전쟁은 도발한 미제국주의자들을 영웅적 조선인민 앞에 무릎을 꿇고 이곳에서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에 조인하였다"(북쪽 판문점 내 정전협정조인장 앞에 서 있는 중국인 관광객 모습)

 

국가정보원은 24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취지 발언 논란과 관련,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문과 발췌본을 국회 정보위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배포했다.

100여쪽 분량의 정상회담 회의록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10.2~4 평양)' 이란 제목으로 작성돼 있으며 문서 생산 시점은 '2008년 1월(생산)'이라고 명시돼 있다. 문서 하단에는 '국가정보원 (2013.6.24)'라고 배포 일자를 기록했다.

8쪽 분량의 발췌본은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발췌내용'이라는 제목으로 작성됐으며 작성일시는 2013년 6월20일로 적혀 있다. 발췌본은 노 전 대통령 발언내용을 중심으로 작성됐으며 중간중간 고(故)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발언도 소개돼 있다. 따라서 전체적인 남북정상회담의 대화내용을 파악하기에는 일정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또한 실제 발언한 내용을 옮긴 것이어서 조사가 탈락되는 등 문법적으로 맞지 않는 표현도 적잖게 발견된다.

국정원이 배포한 100쪽 분량은 아직 외부로 공개되지 않았으나, 8쪽 짜리 발췌본은 이날 언론에 공개됐다.

다음은 연합뉴스가 입수한 발췌본 전체 내용.


<NLL 문제>

▲3쪽 = (노무현) 오늘 아리랑 공연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저는 큰 기대를 가지고 있고, 위원장님과 함께 볼 수 있으면 하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만.

▲4쪽 = (노무현) 그동안 해외를 다니면서 50회 넘는 정상회담을 했습니다만, 그동안 외국 정상들의 북측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나는 북측의 대변인 노릇 또는 변호인 노릇을 했고 때로는 얼굴도 붉혔던 일도 있습니다.

▲17쪽 = (김정일) 군사경계, 우리가 주장하는 군사경계선, 또 남측이 주장하는 북방한계선, 이것 사이에 있는 수역을 공동어로구역, 아니면 평화수역으로 설정하면 어떻겠는가.

(김정일) 우리 군대는 지금까지 주장해 온 군사경계선에서 남측이 북방한계선까지 물러선다. 물러선 조건에서 공동수역으로 한다.

▲18쪽 = (김정일) 북방한계선과 우리 군사경계선 안에 있는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선포한다.

(노무현) 예. 아주 저도 관심이 많은...

▲35쪽 = (노무현) 어쨌든 자주…자주국방이라는 말을 이제 우리 군대가 비로소 쓰기 시작합니다. 주적용어 없애버렸습니다.

▲36∼37쪽 = (노무현) 작계 5029라는 것을 미측이 만들어 가지고 우리한테 가는데...그거 지금 못 한다...이렇게 해서 없애버리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개념계획이란 수준으로 타협을 해가지고 있는데 이제 그거 없어진 겁니다.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 그 흐름을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굳혀나가는 것은 남북관계에 성과있는 진전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죠...

▲40∼41쪽 = (노무현) NLL 문제 의제로 넣어라. 넣어서 타협해야 할 것 아니다. 그것이 국제법적인 근거도 없고 논리적 근거도 분명치 않은 것인데... 그러나 현실로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북측 인민으로서도 그건 아마 자존심이 걸린 것이고, 남측에서는 이걸 영토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혼동이라는 것을 풀어가면서 풀어야되는 것인데...이 풀자는 의지를 군사회담 넣어 놓으니까 싸움질만 하고요...풀자는 의지를…두 가지...의지가 부족하고 자기들 안보만 생각했지 풀자는 의지가 부족하고...뭐 아무리 설명을 해도 자꾸 딴소리를 하는 겁니다. 그거 안됩니다 하고... 그 다음에 이런 여러 가지 위원장께서 제기하신 서해 공동어로 평화의 바다…내가 봐도 숨통이 막히는데 그거 남쪽에다 그냥 확 해서 해결해 버리면 좋겠는데...

▲42쪽 = (노무현) 위원장이 지금 구상하신 공동어로 수역을 이렇게 군사 서로 철수하고 공동어로하고 평화수역 이 말씀에 대해서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거든요... 단지 딱 가서 NLL 말만 나오면 전부다 막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는 것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인데 위원장하고 나하고 이 문제를 깊이 논의해볼 가치가 있는 게 아니냐...

▲47쪽 = (노무현) 우리는 위원장하고 김대중 대통령하고 6·15 때 악수 한번 했는데, 그게 우리 남쪽 경제에 수 조원, 수 십 조원 번 거 거든요. 어제 사진도, 어제 내가 분계선을 넘어선 사진으로 남측이 아마 수 조원 벌었습니다.

▲50쪽 = (노무현) 남측은 데모가 너무 자유로운 나라라서 모시기도 그렇게... 우리도 좀 어려움이 있습니다.

▲57쪽 = (노무현) 그런데 NLL이라는 것이 이상하게 생겨 가지고, 무슨 괴물처럼 함부로 못 건드리는 물건이 돼 있거든요.

그래서 거기에 대해 말하자면 서해 평화지대를 만들어서 공동어로도 하고, 한강하구에 공동개발도 하고, 나아가서는 인천, 해주 전체를 엮어서 공동경제구역도 만들어서 통항도 맘대로 하게하고, 그렇게 되면, 그 통항을 위해서 말하자면 그림을 새로 그려야 하거든요. 여기는 자유통항구역이고, 여기는 공동어로구역이고, 그럼 거기에는 군대를 못 들어가게 하고, 양측이 경찰이 관리를 하는 평화지대를 하나 만드는, 그런 개념들을 설정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이지요.

▲63쪽 = (노무현) 자주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환경의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또 남측의 지도자들도 그러한 환경의 변화를 지켜만 보고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전에 내가 말씀드렸듯이 여러가지 노력을 통해 자주적인 역량을 강화해 나가고 있습니다.

▲68쪽 = (노무현) 개혁 개방을 유도하기 위해 온 것이 결코 아닙니다. 경제의 성과를 생각하는 것이죠.
우린 북측 체제를 존중하는 것이 약속일 뿐만 아니라, 도리일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이익이 된다.

▲69∼70쪽 = (노무현) 우리는 북측이 굳건하게 체제를 유지하고 안정을 유지한 토대 위에서 경제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우리에게 이익이라고 다들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선공업 같은 것은 우리 남측을 위해서 돌파구를 열어 주셔야 합니다.

NLL 문제가 남북문제에 있어서 나는 제일 큰 문제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 번에 장관급 회담을 여느냐 안 여느냐 했을 때, 장성급 회담을 열어서 서해평화문제 얘기 진전이 안 되면 우리는 장관급회담도 안 할란다 이렇게 억지를 부려본 적도 있습니다. 서해에서 1차적으로 상호 교신하고 상호 알려주고 했는데, 이행은 좀 잘 안되고 있지만, 문제는 인제 북측에서 NLL이란 본질적인 문제를 장성급회담에 들고 나온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의제로 다뤄라 지시를 했는데 …반대를 합니다. 우선 회담에 나갈 장소부터 만들어야죠.

단호하게 다뤄라 했는데 그 뒤에 그러한 기회가 무시되고 말았지만…이 문제에 대해서 나는 위원장님하고 인식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NLL은 바꿔야 합니다.

그러나 이게 현실적으로 자세한 내용도 모르는 사람들이 민감하게, 시끄럽긴 되게 시끄러워요. 그래서 우리가 제안하고 싶은 것이 안보군사 지도 위에다가 평화 경제지도를 크게 위에다 덮어서 그려 보자는 것입니다.

전체를 평화체제로 만들어 쌍방의 경찰들만이 관리하자는 겁니다.

▲72쪽 = (김정일) 서해 북방 군사분계선 경계선을 쌍방이 다 포기하는 법률적인 이런거 하면 해상에서는 군대는 다 철수하고 그 담에 경찰이 하자고 하는 경찰 순시…

▲73쪽 = (노무현) 서해 평화협력지대를 설치하기로 하고 그것을 가지고 평화문제, 공동번영의 문제를 다 일거에 해결하기로 합의하고 거기에 필요한 실무 협의 계속해 나가면 내가(내) 임기동안에 NLL 문제는 다 치유가 됩니다.

▲74쪽 = (노무현) 그건 뭐 그런 평화협력지대가 만들어지면 그 부분은 다 좋아할 것입니다. 또 뭐 시끄러우면 우리가 설명해서 평화문제와 경제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는 포괄적 해결을 일괄 타결하는 포괄적 해결방식인데 얼마나 이게 좋은 것입니까?

나는 뭐 자신감을 갖습니다. 헌법문제라고 자꾸 나오고 있는데 헌법문제 절대 아닙니다. 얼마든지 내가 맞서 나갈 수 있습니다. 더 큰 비전이 있는데 큰 비전이 없으면 작은 시련을 못이겨 내지만 큰 비전을 가지고 하면 나갈 수 있습니다. 아주 내가 가장 핵심적으로 가장 큰 목표로 삼았던 문제를 위원장님께서 지금 승인해 주신거죠.

(김정일) 협력지대로 평화협력지대로 하니까 서부지대인데 서부지대는 바다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그건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래 바다문제까지 포함해서 그카면 이제 실무적인 협상에 들어가서는 쌍방이 다 법을 포기한다, 과거에 정해져 있는 것. 그것은 그때 가서 할 문제이고 그러나 이 구상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게 발표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노무현) 예 좋습니다.

▲85쪽 = (김정일) 남측의 반응은 어떻게 예상됩니까?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노무현) 서해 평화협력지대를 만든다는 데에서 아무도 없습니다. 반대를 하면 하루아침에 인터넷에서 반대하는 사람은 바보되는 겁니다.

▲87쪽 = (노무현) 항상 남쪽에서도 군부가 뭘 자꾸 안할라구 합니다. 뒤로 빼고 하는데 이번에 군부가 개편이 돼서 사고방식이 달라지고, 평화 협력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갖고 있습니다만.

▲88쪽 = (노무현) 군부가 이 사업에 적극 참여해서 그래서 군비를 강화하는 필요있는 곳을 강화해나가는 방안을 모색해가는 방법이 있지 않겠습니까?

▲97쪽 = (노무현) 임기 마치고 난 다음에 위원장께 꼭 와서 뵙자는 소리는 못하겠습니다만, 평양 좀 자주 들락날락 할 수 있게 좀... 특별한 대접은 안 받아도...

▲102쪽 = (노무현) 내가 받은 보고서인데 위원장님께서 심심할 때 보시도록 드리고 가면 안되겠습니까?

(김정일) 여기 우리 합의한 것에 대해 의문점은...? 우리는 뭐...

(노무현) 없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김정일)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6.15 선언, 큰 선언을 하나 만드시고 돌아가셨는데...이번 노대통령께서는 실무적으로 선언보다...선언도 중요하지만...보다 해야될 짐을 많이 지고 가는 것이 됐습니다.

(노무현) 내가 원하는 것은 시간을 늦추지 말자는 것이고...또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지 모르니까...뒷걸음질 치지 않게...쐐기를 좀 박아 놓자...
<駐韓 미군>

▲36쪽 = (노무현) 작전통제권 환수하고 있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2사단 후방배치를 미국이...또 이런 저런 전략이라고 얘기하지만...그건 후보때부터 얘기하던 나의 방침이기도 합니다. 왜 미국 군대가 거기가 있냐. 인계철선 얘기하는데 미국이 인계철선이 되면 우린 자주권을 가질 수가 없는 것 아니냐...국방을 거기다 맡겨놓고 어떻게 우리가 자주를 얘기할 수 있느냐...그래서 2사단 철수한다는 것이 방침이었는데 마침 미국도 재배치계획을 가지고 있어서 일치해서 용산 기지를 이전하는 데 우리가 60억달러라는 돈이 듭니다.

그런데 60억달러가 들어도 100억달러가 들어도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 외국군대가 있는 것은 나라 체면이 아니다...보내지 않습니까...보냈고...나갑니다. 2011년 되면...그래서 자꾸 이제 너희들 뭐하냐...이렇게만 보지 마시구요 점진적으로 달라지고 있구나...이렇게 보시면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략적 유연성...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동북아시아에서 군대를 움직일 때에는 우리 정부의 승인을 반드시 받아야 된다...합의했지 않았습니까...


<北核·경수로>

▲39쪽 = (노무현) 지난번에 경수로 못한다...그 이종석(통일장관)씨 잘 아실 겁니다. 기존 이종석이 보고 우리가 경수로 짓자...미국 제끼고...몇 번 말로 하니까 안 된다 그래서 그럼 안 되는 이유를 보고서로 글로 써내라...분석보고서를 써내라...한번 올라왔는데 뭐 좀 자세하지 않아서 한번 더 이거 이거 이거 다시 보고서를 내보라 지적해서 다시 보고서를 받았는데 할 수 없는 것입니다.

▲42쪽 = (노무현) 6자회담에 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는데 조금 전에 보고를 그렇게 상세하게 보고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측에서 이번에 가서 핵문제 확실하게 이야기하고 와라...주문이 많죠...근데 그것은 나는 되도록이면 가서 판 깨고...판 깨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주장 아니겠습니까...

▲46쪽 = (노무현) 그래서 지금 경수로 하나 하는 것도요, 정치적 상황 때문에 그렇겠지만, 94년에 합의 돼가지고 98년에 첫 삽 뜨고 2003년 초에 중단이 됐는데, 그 중단될 때까지 35% 공정 밖에 안됐습니다. 그 투자한 돈 13억 달러 안고 있습니다만, 우리는 경수로 꼭 지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지난 5년 동안 내내 북핵문제를 둘러싼 북측의 6자회담에서의 입장을 가지고 미국하고 싸워 왔고, 국제무대에 나가서 북측 입장을 변호해 왔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내가 행동하면서 미국하고 딱 끊고 당신 잘못했다고 하지 못한 것은 미국이 회담장을 박차고 떠나 버리면, 북측도 좋은 일이 아니겠지만, 우리 남측으로봐서도 좋지 않습니다.

▲75쪽 = (노무현) 궁극적으로는 경수로문제 뭐 그것은 우리가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협력할 것입니다.

<對美관계·BDA>

▲38쪽 = (노무현) 지난 번에 BDA 때...BDA는 뭐..그건 미국의 실책입니다. 분명히 얘기를 하는데...실책인데...그러나 어쨌든 미국의 실책임에도 불구하고 북측의 돈을 받으라하니까 어느 은행도 하는 것 아닙니까.

▲46쪽 = (노무현) BDA 문제는 미국이 잘못한 것인데, 북측을 보고 손가락질하고 북측보고 풀어라 하고, 부당하다는 거 다 알고 있습니다.

▲61쪽 = 뭐 제일 큰 문제가 미국입니다. 나도 역사적으로 제국주의 역사가 사실 세계, 세계 인민들에게 반성도 하지 않았고, 오늘날도 패권적 야망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63쪽 = (노무현) 우리 남측 국민들에게 여론조사를 해 봤는데 제일 미운 나라가 어디냐고 했을 때 그 중에 미국이 상당 숫자가 나옵니다. 또 동북아시아에서 앞으로 평화를 해롭게 할 국가가 어디냐, 평화를 깰 수 있는 국가가 어디냐 했을 때 미국이 일번으로 나오고 제일 많이 나오고 많은 사람들이 미국을 지목하고, 그 다음은 일본을 지목하고 다음은 북측을 지목했습니다.


<對日관계>

▲93쪽 = (노무현) 지난번에 일본 대사가 이임하면서 찾아왔길래...당신들 요구가 뭐냐 물었더니, 사람 돌려달라, 다 돌아갔잖냐 했더니, 더 있다는 겁니다. 어떻게 증거가 있냐 이랬더니, 하여튼 못 믿겠다 이런 얘기만 하는 겁니다.

납치문제에 있어 구체적으로 내가 무슨 말씀을 드릴 수 없고 나도 일본측의 주장을 들어봤지만 잘 못 알아듣겠구요. 이상하다 그것만...호주 사람이 쓴 아주 잘 분석된 책을 봐도 일본이 생트집 잡고 있다고 써놓은 책도 있고 한데...

(서울=연합뉴스)

-NLL 문제

 

                                                                                                       개성직할시

                                                                                                            서해 5도

서해 5도와 개성등 옹진반도: 한국전쟁 이전에는 개성과 옹진반도등이 남한측으로 군사상으로 서울과 경기지역이 큰 위협이 없지만 개성등 옹진반도가 한국전쟁이후 북측 영토로 편입돼 이후 서해5도를 포기하는 것은 남북한 군사상나 심리전에 불리하고 황해도가 북한정부내 가장 친남한세력 지역으로 서해5도와 개성등 옹진반도 함께 입장을 정리해야 할 부분이다     

개성등 옹진반도가 남한정부 평화지역으로 편입한다면 서해5도도 북한정부 평화지역으로 편입할 수 있다

-북한 핵문제는 남북한 문제가 아닌 중국, 일본, 러시아, 한국, 미국등 5개국 지역상 안보문제로 남북정상회담으로 논의할 대상이 아닌다
미국이나 일본정부내 강경파는 주한미군을 철수한 후 북한 핵시설을 폭격하자는 입장을 제기하는 분도 있다 중국이나 러시아정부조차도 북한 핵보유를 반대하고 있으며 중국 소수민족이나 극동지역 소수민족 독립운동 무기로  북한 핵무기가 등장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주한미군은 주일미군이나 주독미군처럼 연합군(유엔군) 일원으로 동북아 평화유지군 지위와 역할로 배치돼 있다 향후 동아시아지역도 나토모델 군사기구가 창설되어도 주한미군 일부가 한반도에 배치돼 동아시아 평화유지군으로 활동할 것으로 본다

한반도 문제와 중국내 소수민족 문제, 극동지역(러시아와 조선족, 만주족등) 문제등이 동북아 지역분쟁으로 보고 있다  

-북한 민주국가가 아닌 세습제 좌익군정이다

좌익군정은 군부가 권력을 장악하여 모든 정치 경제 등을 독점하기 때문에 국제테러나 지역전쟁을 추진할 수 있다

그러니 북한 지도부 해외은행 계좌 추적과 동결은 유엔문제이다 

북한이 중국처럼 사회주의 국가라도 안정적이고 국제적 신뢰를 받기 위해서는 군부(국방위원회) 권력이 아닌 내각과 의회 권력이 돼야 한다

노무현대통령은 자유화 개방화 정책 입장에서 개성공단 사업이나 남북정상회담을 했다고 본다

북한 평민층이 민주화 입장을 지지하는 분이 증가돼 오고 있다는 것이 좌파성향 노무현정부 한계었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2007년 10월 3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정상회담하는 모습. 연합뉴스 DB

*북침론(정의의 전쟁): 미국과 남한이 전쟁을 도발했다는 입장

유엔은 북한이 남침을 하여 유엔안보리 결의에 의하여 16개국이 한국전쟁에 참전했습니다 구소련(러시아)도 남침 사실을 인정했으며 유엔안보리 결의에 기권(중립)을 했습니다

머리소리함 한국전쟁 조사에 따르면 한국전쟁 이전에 남북 국경선 지역에서 지역분쟁이 연일 일어났고 북한은 모택동(한중연합군) 부대에 편입돼 있었던 조선인(한국인) 주도로 백범 김구선생 첫번째 제사날 남침을 했습니다 유엔이 한국전쟁 참전으로 이북지역으로 진격함으로 중국 인민군과 체코슬로바키아등 2개국이 북한군에 참가하여 사실상 국제전쟁이 되었습니다

전쟁은 명분론입니다

남북협력세력이 제거와 함께 북한정부 내 강경파 주도로 일어날 것이 한국전쟁입니다

그 후 남북은 남북협력세력이 항구적으로 제거돼 왔고 김일성과 박정희 중심의 군정(군사정부)이 실시돼 왔습니다 

제6공화국 헌법과 김영삼 문민정부 등장이후 남북전쟁세력이 제거돼 오고 있으며 남북협력세력 중심으로 남북 평화통일이 준비돼 오고 있습니다

 

*NLPDR(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남침도 민족해방전쟁론으로 정당성 확보 논리 제공을 해오고 있는 노선입니다

1단계 민족해방전쟁(반미전선)-좌우익연합전선[반미전선]

남한-반미성향 단체나 반미투쟁 단체(민족주의와 김일성주의자 구분이 잘 되지 않는 것이 특징)

2단계 인민민주주의 혁명-사회주의 국가 수립(좌파정권 수립-군정분리주의 좌익군사정부 수립)[김일성주의-우리식 사회주의(주체사상=자주노선)]

남한-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 그룹 중 김일성주의자 그룹(주체사상-자주노선)

 

*한국전쟁 유엔군

6ㆍ25 전쟁 당시 한국을 도운 국가가 당초 알려진 41개국이 아닌 60개국에 달한다는 최종 연구결과가 공개됐다. 국방부는 산하 군사편찬연구소가 최근 비밀이 해제된 미국 정부 문건과 유엔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16개국이 6ㆍ25 전쟁에 참전하고 5개국이 의료지원을, 32개국이 전쟁 중 물자지원을, 7개국이 전후 복구를 지원했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15일 밝혔다.
당시 독립국 93개국 가운데 63%가 한국을 지원한 셈이다. 그동안 정부는 전쟁 중 41개국이 한국을 도운 것으로 파악해왔으나 지난해 민간단체 월드피스자유연합이 67개국을 주장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연구결과 참전국과 의료지원국 수에는 변동이 없으나 물자지원국에 오스트리아ㆍ베트남ㆍ이집트 등 13개국이 추가됐다.
 전후 복구를 지원한 나라도 과거 리히텐슈타인 1개국만 알려졌었으나 실제로는 독일ㆍ아이티ㆍ페루 등 6개국이 늘어 모두 7개국으로 확인됐다.
 월드피스자유연합이 지원국으로 분류한 브라질과 볼리비아 등은 기록이 확인되지 않아 제외됐다.
 연구를 맡은 양영조 박사는 "물자 또는 구호자금 지원 사실을 유엔과 관련기관의 보고서 등 1차 자료를 상호 교차해 확인한 결과"라면서 "국방부 입장에서 이를 공식 규명한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내년 3월 외교통상부와 교육과학기술부 등 관련부처 및 전문가들과 함께 포럼을 열고 내용을 최종 확정한 뒤 국가공식기록물과 교과서 수정 작업에 착수할 계획이다.


*한국전쟁(6.25 동란) 중 북한을 지지하고 도왔던 국가들은 어떤 나라들입니까? 공식적으로 중국과 체코슬로바키아등 2개국

북한의 전격적인 남침은 유엔내에서는 유엔군을 구성하여 북한의 불법적 남침을 격퇴하려고 하였습니다. 소비에트연방(소련의 정식명칭)은 유엔의 투표에서 국제여론을 의식하고 기권(중립)을 하였으며 반대가 없었기 때문에 유엔군이 결성되어 전장에 투입되었습니다.

 당시 유엔군은 한국을 제외한 16개국이 군사적 지원을 하였으며 비공식적 지원국은 2개국, 의료지원국은 5개국이었습니다. 이에 반해 북한의 경우 중화인민공화국이 공식적으로 지원을 하였고 소비에트 연방은 비공식 지원국이었습니다. 여기에 체코슬로바키아가 의료지원을 하였습니다

 

*한국전쟁과 유엔군사령부

1950년 6월 25일 비가 내리는 평화로운 새벽의 정적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야포와 자동화기의 굉음과 함께 북한 인민군의 남침이 시작되었다. 침략군은 이내 38선을 넘어 반 무방비 상태의 대한민국 경찰군을 밀어내며 수도 서울로 향하고 있었다.

이틀 후 유엔은 북한군의 침략 저지를 위한 회원국의 단결과 원조를 요청하였다. 유엔 안보이사회는 결의안을 통해 미합중국을 결의안 내용의 실행과 한국 내 유엔군 작전 지휘를 담당할 집행국가로 선정하였다.

이에 따라 당시 미 대통령 해리 트루먼은 자유 세계에 대한 위협을 인지하고, 공산세력이 자유국가를 짓밟는 행위를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음을 천명하였다. 당시 미 육군 극동사령부 총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은 북한의 침략을 격퇴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하라는 명령에 따라 미 공군 및 해군을 투입하고 7월 24일 일본 도쿄에서 유엔 사령부 총 사령본부를 설치하였다.

유엔의 호소

한편, 유엔은 모든 회원국에 보내는 호소문을 통해 대한민국 정부의 항전 노력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군사 및 기타 원조 제공을 촉구한 상태였다. 이에 따라 미 보병 24사단 21 보병연대가 유엔 지상군으로는 처음으로 한국 전쟁에 참전하였다. 이른바 "스미스 특수임무 부대"로 명명된 이들은 일본 내 주둔지로부터 공수된 병력으로 7월 5일 오산에서 북쪽으로 수 킬로미터 떨어진 지역으로 투입되었다.

한-미 양국의 군대는 우세한 전력의 북한군을 상대로 점차 남쪽으로 후퇴하는 가운데, 유엔 사령부는 지연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즉, 수적으로나 장비 측면에서 열세인 가운데 유엔의 다른 회원국이 약속한 지원을 기다리며 조금씩 후퇴하면서 시간을 벌고 있었던 것이다.

1950년 8월 29일, 영국 제 27여단이 부산에 도착, 한국군 및 미군으로 구성되어 있던 유엔 사령부에 합류하였으며 곧 대구 서쪽의 낙동강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이를 기점으로 호주, 벨기에, 캐나다, 콜롬비아, 이디오피아, 프랑스, 그리스,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뉴질랜드, 필리핀, 태국, 터키가 자국 병력을 파병하였고, 남아프리카 연합은 공군병력을, 덴마크, 인도, 노르웨이, 스웨덴은 의무부대를 지원하였고, 당시 비회원국이던 이탈리아는 병원을 제공하기도 했다.

자유세계의 자유를 수호하다

3년 간의 한국전쟁을 통해 연합군에 소속된 장병들은 유엔 사령부의 일원으로서 목숨을 바쳐 싸웠다. 그들은 한국인들의 자유를 위해 싸웠고 침략행위 저지를 위한 유엔의 의지를 확인시켰다.

한국 땅의 혹서기와 혹한기를 견뎌내면서 영국, 이디오피아, 한국, 태국, 터키, 미국 등을 비롯한 연합국 출신의 젊은이들은 북한과 중국 인민군의 인해전술에 맞서 진정한 영웅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국전쟁이야말로 현대 전쟁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순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피의 능선, 장진호, 함흥, 단장의 능선, 화천호, 철의 삼각지, 펀치볼, 부산 등은 한국의 자유 수호를 위해 치열한 전투가 펼쳐진 격전지들이다. 연합군의 용맹스런 장병들이 흘린 피는 불모고지의 흙먼지와 한강과 임진강의 흐르는 강물도 붉게 물들였다.

1953년 7월 27일 드디어 총성은 멈췄다. 판문점에서 체결된 휴전협정은 전투의 종결과 함께 정치적 타협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비록 전투는 끝났으나 군대는 그대로 남아있었다. 양측은 휴전선으로부터 2,000미터씩 물러나 비무장지대(DMZ)를 사이에 두고 언제 다시 시작될지 모르는 전쟁에 대비해야만 했다.

자유의 대가

부산항 부근에 위치한 당곡 평야에는 한국전쟁의 기억을 되새기게 하는 수많은 흔적들이 남아있다. 빛 바랜 터키와 이스라엘의 '초승달과 별'과 '다윗의 별' 문양 옆에 세워진 하얀 십자가들은 33,629 명의 미군과 수많은 한국 병사들, 717명의 터키 병사들, 그리고 1,109 명의 영국군이 치열한 전투 속에서 산화해 간 흔적인 것이다. 이 곳은 한국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죽어간 12 개국 병사들의 시신이 묻혀있는 영광의 장소이기도 하다.

휴전협정과 함께 유엔 사령부 회원국들은 전쟁으로 피폐한 한국의 경제를 재건하는 데 힘을 쏟기 시작했다. 도시와 농촌을 온통 폐허로 만들어버린 전후 한국의 재건과 복구를 돕는 일은 수년의 시간이 걸리는 거대한 작업이었다.

병력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체결 당시 유엔 연합군의 병력은 932,964 명으로 최대규모를 이루었다. 각국별 병력사항은 다음과 같다.

한국 - 590,911

콜롬비아 - 1,068

미 합중국 - 302,483

벨기에 - 900

영국 - 14,198

남아프리카 - 826

캐나다 - 6,146

네덜란드 - 819

터키 - 5,455

룩셈부르크 - 44

호주 - 2,282

필리핀 - 1,496

뉴질랜드 - 1,389

태국 - 1,294

이디오피아 - 1,271

그리스 - 1,263

프랑스 - 1,119

*유엔묘지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 6.25참전 유엔군 전사자 묘지--
부산광역시 남구(南區) 대연동(大淵洞)에 있는 6.25참전 유엔군 전사자의 묘지이다
1951년 국제연합(UN) 총회에서 설립안이 채택되어 참전 16개국 1만 1,000명이 안장되었는데 유해를 본국으로 이장하기도 하여 11개국 2,300여구가 남아 있다
1955년 이후 UN에서 관리해 오다가 1974년부터 이곳에 유해를 남기고 있는 참전국과 한국이 공동관리하고 있다
참전국 국민에게 널리 알려져 해마다 많은 내외국인이 방문, 참배하고 있다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23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