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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언론이 본 카다피의 죽음 본문

북아프리카 지역/리비아

중국언론이 본 카다피의 죽음

CIA bear 허관(許灌) 2011. 10. 22. 11:38

리비아 "전국과도위원회" 집행위원회 의장 지브릴은 20일 리비아 전 지도자 카다피가 이미 죽었다고 선포했습니다. 이에 대해 중국의 언론들은 논평을 발표했습니다.

"베이징청년보"는 중국국제문제연구소 중동문제 전문가인 동만원씨의 관점을 인용한 보도에서 현재 리비아에 있어서 최대의 도전은 바로 국가권력과 자원분배와 관련한 내부암투라고 지적했습니다. 그 원인에 대해 글은 첫째로 리비아 "전국과도위원회"중에는 여러가지 세력이 존재하는데 과도위원회가 리비아 내부정세를 통제할수 있을지 또 그 내부에서 여러가지 모순을 조정할수 있을지가 이후 직시해야 할 문제라고 분석했습니다. 둘째로는 리비아는 다부족국가로 여러 부족들간에 부동한 이익요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외 카다피시대의 종결은 서방의 "신 간섭주의"의 성공을 증명해준 셈이며 "리비아방식"을 만들어냈는데 그것은 바로 압력과 여러가지 제재, 제한적인 간섭을 통해 정권교체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입니다.

"법제일보"는 리비아 주재 전임 중국대사 왕후립을 단독인터뷰했습니다. 카다피와 여러번 독대한적이 있는 전임 중국대사의 눈에 카다피는 개성이 독측한 이상주의자였습니다.

왕후립 전임 대사는 카다피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카다피는 42년동안 정권을 장악했고 리비아인민들이 부유한 생활을 누리게 했으며 "중동신화"를 창조했습니다. 그는 반미의 기치를 견지해 "반미영웅","사막의 사자"로 불리웠습니다. 다른 한편 그는 독재정치를 했고 자고자대했으며 정책에 변화가 많았습니다. 특히 록크비공중조난사건후 서방 나라들이 리비아에 다년간에 걸친 경제제재를 가했고 이로 하여 리비아국민들의 생활이 곤경에 빠지게 되었고 결국 독재자 카다피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었습니다. 왕후립 전임 대사는 카다피는 인민들이 직접 관리하는 국가체계를 구축하려 했고 총인민대회와 총인민위원회라는 입법과 행정기관을 만들었으나 이런 국가기구들은 인민이 국가의 주인공이 되거나 직접 국가를 관리하는 목적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외 카다피 가족의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된 독재통치도 대중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에 대해 왕후립 전임대사는 "지도자들의 공적과 과오는 리비아 국민들이 평가해야 하고 력사가 최종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