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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訪北과 북중관계 밀착 본문
*아래 사진 설명: 소련군정 및 북로당 간부들: 앞줄 우로부터 허가이. 김일성. 소련정치사령관 레베데프 소령. 김두봉. 소련군 정치국장 이그나치포 대좌. 김책 뒷줄 우로부터 주영하. 박일만. 최창익등(북로당과 중국 동북3성 중국인민군,소련 극동군 중심으로 남침 주도 세력) 한반도 전쟁은 중국정부 오판으로 일어날 수 있습니다 6.25 남북전쟁도 중국정부가 배후에서 NLPDR(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 지원했기 때문입니다 중국 공산당은 남북 공산주의 세력에게 반미인민전쟁 NLPDR 지원을 하지 않도록 주의를 알려 드립니다:))))))
5년 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뒤를 이을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이 취임 이후 첫 해외방문 국가로 북한을 선택하고 17일부터 2박3일간 방북한다.
김일성 주석의 후계자로 선정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1983년 중국 방문을 연상케 하는 이번 방북은 미래 중국 최고지도부의 북한 지도부 상견례 형식이 강하지만 최근 빠르게 밀착하고 있는 북한과 중국 간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작년 10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3자 또는 4자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해 중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던 북한은 최근 들어 대중 관계를 빠르게 정상화하고 있다.
올해 3월 김 위원장은 북한 지도부를 이끌고 평양의 중국 대사관을 직접 방문하기도 했고 4월에는 헌법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평양에서 성화봉송행사를 가졌다.
또 북한은 '없는 살림'에도 불구하고 쓰촨(四川)성 대지진으로 인한 피해에 10만 달러를 성금으로 쾌척했고 티베트 사태로 중국 지도부가 국제적 비난에 시달릴 때는 일관되게 중국 정부의 편을 드는 모습도 보였다.
중국 신화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지난 2월 방북한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에게 "나는 중국을 절대로 배기(背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 지도부도 국제식량가 폭등 속에서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에 대해서는 식량수출 쿼터를 늘려주기도 했고 이번에 방북하는 시진핑 부주석도 북측과 식량지원문제를 논의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북중 양국은 일종의 원조협정인 '경제과학기술협정'의 틀에서 매년 식량원조 규모와 시점을 논의해 작년까지 매년 10∼15만t에 달하는 원조식량을 북한에 제공해 왔으며 이번에는 미국의 50만t에 달하는 대북지원량을 감안해 규모를 확대할 것이라는 예상도 흘러나오고 있다.
작년 말까지만 해도 냉랭한 관계를 이어가던 북중관계가 최근 들어 빠른 속도로 밀착하며 재정상화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은 변화하고 있는 동북아 정세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북미관계가 전환기를 맞이하는 가운데 미국의 대선으로 숨고르기가 불가피한 상황이고 이명박 정부의 등장 이후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만큼 북중관계 정상화를 통해 북한에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하고 나아가 경제적 실리를 확보하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중국의 입장에서는 변화하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지속적인 역내 안정을 추구함과 동시에 북한에 대한 '조정자 역할'을 강화함으로써 북핵관리에 나설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중국이 동북아 지역 외교에 힘을 쏟으면서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방일로 대표되는 일본과 관계개선 움직임에다 북중관계를 활성화하고, 한중관계를 '전략적 파트너십'으로 격상시킨 것은 한.미.일 3각 공조에 대한 나름의 대응책이라는 지적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방중 기간 친강(秦剛) 외교부 대변인이 "한미 군사동맹은 지나간 역사의 산물"이라며 "시대가 변하고 동북아 각 국의 정황에 많은 변화가 생겼기 때문에 냉전시대의 군사동맹으로 역내에 닥친 안보문제를 생각하고 다루고 처리할 수 없다"고 비판한 것도 이러한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북중 양국의 이해 일치 속에서 북중관계는 앞으로 더욱 활성화되고 돈독해질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지난 4월 박의춘 외무상과 리병철 공군사령관이 취임 후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했고 '피바다 가극단'과 평양교예단이 중국을 방문해 '꽃파는 처녀' 등의 작품을 순회공연하기도 하는 등 정치.사회.문화교류가 전방위적으로 진행됐다.
또 중국에서는 다양한 기업과 경제단체 대표단이 북한을 방문해 경제협력사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류샤오밍(劉曉明) 북한 주재 중국대사는 지난 4일 "중국은 상호 무역과 투자를 늘려 기초시설건설, 광산자원개발, 광산품가공, 변경지구무역왕래 등 4대 분야에서 조선(북한)과 경제협력을 더욱 강화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최근 북중간의 관계는 재정상화라는 표현이 적합할 만큼 과거의 동맹관계를 회복한 것으로 보인다"며 "시기적으로 남쪽에서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북중관계가 밀착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남쪽에 경제적으로 의존해오던 북한은 중국으로 파트너를 대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중국은 한.미.일 3각동맹의 관리라는 동북아 외교전략 속에서 북한과 관계를 이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당분간 북중관계는 더욱 밀착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jyh@yna.co.kr
http://blog.yonhapnews.co.kr/king21c/
(끝)
*전면론자 김일성, 서울점령과 협상론자 박헌영
*모택동에게 보낸 金日成 박헌영의 애걸복걸 편지(1950년 10월 1일)
중국 만주 단동에 있는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 기념관에는
1950년 김일성과 박헌영이 모택동 중국공산당
주석에게 보낸 자필편지가 있습니다.
인천상륙전쟁 후 파죽지세로 북진하는 유엔군 앞에서 전면
붕괴의 위기에 처한 김일성은 편지 말미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의 자체의 힘으로써는 이 위기를 극복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신의 특별한 원조를
요구하지 않을수 없게 됩니다.
즉 적군이 38도선 이북을 침공하게 될 때에는 약속한 바와 같이
중국인민군의 직접 출동이 절대로 필요하게 됩니다.
이상과 같은 우리의 의견을 당신에게 제의하게 되니
이에 대한 당신의 회답을 우리는 기다립니다."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김일성, 박헌영. 1950.10.1일 평양시
김일성은 1950년 초 모스크바로 스탈린을 방문하여 남침허가를
얻은 뒤 스탈린의 지시에 의하여 모택동을 찾아갑니다.
이 자리에서 모택동은 만약 미군이 개입하면
북한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합니다.
김일성은 스탈린의 조종과 모택동의 보증하에서
남침을 감행한 것입니다.
국제공산주의 총본부의 노리개 가 된 것이지요.
김일성의 이 자필 편지에 나타난 [약속한 바과 같이]란 말은
바로 이 모택동의 지원약속을 의미합니다.
이 편지 김일성이 스스로 6.25전쟁은 남침이었음을
고백하는 자료이기도 합니다.
6.25 전쟁은 기본적으로 김일성이가
외세를 한반도에 끌어들인 사대주의적인 전쟁이었습니다.
소련과 중공을 끌어들여 기습남침을 하니
우리는 이미 나갔던 미군을 다시 불러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김일성은 나중에는 스탈린에게 제발 휴전하도록
해달라고 애걸합니다만 스탈린은 미군을 고지전에
묶어두는 것이 유리하다면서 휴전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스탈린이 죽자 휴전이 넉달만에 이루어집니다.
외세를 불러들여 이 강토를 피로 물들인 김일성을
민족주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에서
소위 진보적 지식인 행세를 하고 있으니 우리는 정신을 차려서
수많은 국군과 애국인사들이 몸을 던져 지켜낸 대한민국이
소매치기 당하지 않도록 눈을 부릅 떠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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