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메르 루즈 정치범 수용소장 재판회부
2007.11.21
워싱턴-김연호 kimy@rfa.org
지난 70년대 캄보디아 국민에 대한 고문과 학살을 주동한 두치가 30년 만에 결국 법정에 서게 됐습니다. 김연호 기자, 두치의 재판에 대한 관심이 대단했다고요?
그렇습니다. 이날 재판은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서 열렸는데요, 학살 주동자에 대한 첫 공개 재판인 만큼, 캄보디아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 이 재판을 보려고 몰려든 수백 명의 사람들로 법정이 발 디딜 틈 없이 꽉 찼습니다. 캄보디아 방송국들은 재판 장면을 전국에 생중계했습니다.
두치가 재판에 회부된 죄목은 뭡니까?
두치의 죄목은 ‘인류에 대한 범죄’입니다. 두치는 크메루 루즈 공산정권 시절 악명 높았던 투올 슬랭 감옥의 소장으로 있었습니다. 1975년부터 79년까지 이 감옥에서 어린이들을 포함해 모두 1만6천명이 고문을 당한 뒤 처형됐습니다. 이 감옥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14명 밖에 안됩니다. 크메루 루즈 정권은 모두 1백 7십만 명의 국민을 학살했는데요, 당시 전체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숫자입니다.
두치는 원래 시골 고등학교 교사였다는데, 그렇게 잔혹한 학살자로 변한 이유는 뭡니까?
두치는 교사 생활을 할 때부터 공산주의를 접하게 됐고, 그 때문에 감옥에도 갔습니다. 그러다 크메루 루즈 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 정치범 수용소를 책임 맡았는데, 이것은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두치는 정치범 수용소의 책임을 맡자마자 상부의 인정을 받으려고 선량한 국민들에 대한 고문과 학살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급진 공산이념을 앞세운 크메루 루주 정권은 특히 지식인과 기술자들을 기회주의자라는 죄명아래 마구 학살했는데요, 두치가 그일에 앞장섰던 겁니다.
앞으로 두치에 대한 재판은 어떻게 이뤄질 예정입니까?
두치에 대한 정식 재판은 내년 여름으로 잡혀 있습니다. 이번 재판은 그전에 사전 심리에 해당합니다. 이 재판은 크메르 루즈 정권의 만행을 심판하는 유엔 특별 재판소가 관장하고 있습니다. 캄보디아 국민들은 30년 만에 대학살의 책임자들이 법의 심판대에 오르게 됐다며 크게 반기고 있습니다. 이번 심판은 늦었지만 인민을 학살한 사람은 아무리 시간이 흐르고 정권이 바뀌어도 끝까지 찾아내 반드시 그 죄값을 치르게 한다는 국제사회의 의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