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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CIA 창립 60돌 - 다채롭고 논란많은 어제와 오늘 본문
미국연방정부의 첩보, 방첩기관인 중앙정보국, CIA가 오늘 18일, 창립 60돌을 맞습니다. CIA는 지난 60년동안 실로 다채롭고 또 논란많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CIA의 어제와 오늘을 살펴봅니다.
일부 역사가들은 1941년 일본의 하와이 진주만 공격 당시 미국에는 이를 사전에 경고할 수 있는 충분한 정보수집 능력을 가진 육군, 해군 그리고 연방수사국 등 정부의 여러 정보기관들이 있었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이 기관들은 업무 중복과 서로간의 경쟁때문에 협조체계가 조정되지 않아, 이상한 정세를 탐지하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일본의 진주만 공격 다음해인 1942년 6월,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잡다한 정보수집기관을 하나의 조직으로 통합하고 독일과 일본점령지들에서 첩보활동과 파괴공작을 수립하기 위해 전략사무국, OSS를 창설했습니다.
진주만 공격이후 60년동안 미국정부는 정보수집에 수십억 달라를 지출했으나 2001년에 미국은 또 다시 참혹한 9/11 테러 공격의 표적이 됐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OSS는 1945년 10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대신 1947년 9월 18일에 중앙정보국, CIA로 대체됐습니다. 당시 ‘황야의 빌’로 알려진 윌리암 도노반 OSS국장은 미국의 지도자들이 정보 부족탓으로 정책상의 과오를 저지르는 일이 없도록 전후 새 정보기관의 설립을 위해 적극적으로 로비활동을 벌였습니다.
윌리암 도노반씨는 미국은 또 다시 전쟁전의 무관심을 되풀이할 수는 없다며, 미국은 제 2차 세계대전중에 OSS가 담당했던 정보수집 기능을 가진 영구적인 단일 정보기관의 설립이 필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전직 CIA 간부였던 피터 어네스트씨가 1950년대에 중앙정보국에 합류했습니다. 현재 이곳 워싱턴에 들어선 국제 스파이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 어네스트씨는 냉전 시대에 들어서면서 중앙정보국의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고 말했습니다.
어네스트 씨는 당시 CIA는 사람들을 흥분시키는 분위기였고, 모두 투철한 사명의식을 갖고 냉전의 역군으로 싸우는 미국의 최첨병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고 회상했습니다.
과거 구쏘련의 첩보기관인 KGB출신 올레그 칼루긴씨는 당시 KGB는 미국의 CIA를가볍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올레그 칼루긴씨는 전문적인 관점에서 소련의 KGB는 미국 CIA를 대등한 상대로 간주했다며, 사실 절대로 적을 과소 평가하지 말라는 것이 그 당시 러시아 정보및 방첩기관들의 분위기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CIA는 종종 구소련의 붕괴를 사전에 예측하지 못했고, 이라크의 전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대량파괴무기를 갖고 있다고 오판하는 등의 정보분석의 실수때문에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가장 큰 논란을 빚은 것은 미국 대통령의 명령으로 1953년에 이란에 팔레비 왕을 권좌에 세우고, 1973년에 칠레에서 사회주의자였던 살바도르 아옌데대통령정부를 전복시킨 것 같은 CIA의 비밀활동 이었습니다.
최근 새로운 CIA 역사를 펴낸 팀 와이너 기자는 CIA의 지난 60년의 활동 기록을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팀 와이너 기자는 여러작전들의 실패는 수없이 많고 성공사례들은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존 매크러린 전 CIA 부국장은 CIA가 일부 비판을 받을 일도 있지만, 와이너 기자가 CIA의 전반적인 업적에 너무 불공정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존 매크레런 전 CIA 부국장은 자신은 팀 와이너 기자의 책내용중에 여러가지 심각한 우려사안들을 발견한다고 말합니다. 이 책은 CIA 역사에서 단일사건에 초점을 �추고 그 사건의 어두운 측면, 즉, 실패만을 부각시켜 결국에는 성공한 작전들을 실패작으로 몰고 간다고 맹 비난하고 이때문에 그 책의 제목은, 우리들의 실패작으로 부쳐져야 할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매크러렌 전 CIA 부국장은 2001년 9/11 테러공격 이후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의 신속한 대응과 파키스탄 칸 박사의 핵물질 판매조직의 분쇄를 중요한 성공사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련한 CIA 요원들은 미국 관리들이 스파이 요원들의 활동보다는 첨단 스파이 기술을 더 선호하게 됐음을 인정합니다.
초기 첩보기 SR-71을 설계했던 유진 포티트 전 CIA 과학기술담당관은 기술은 어디까지나 첩보활동의 한가지 수단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유진 포티트 전 CIA 과학기술담당관은 정보 수집은 전쟁의 승패를 가를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며, 적이 생각하고 계획하는 것과 그들의 실제 의도를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첩보요원들에 의한 직접적인 정보수집을 통해서 가능하며, 이것을 첩보위성이나 첩보기로 알아낼 수는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존 매크러렌 전 CIA 부국장은 9/11테러 공격을 계기로 정보 수집 측면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 아주 중요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매크레런 전 부국장은 이제 결론은 ‘휴민트’로 불리우는 첩보요원들의 의한 직접적인 정보수집 활동으로 귀착된다며, 성공적인 작전의 열쇄는 곧 정보요원들의 활동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첨단 첩보 기술은 절대로 배제되어서는 않될것이라고 매크레런씨는 경고합니다.
현재 CIA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보원들의 거의 절반 가량은 2001년 9/11 테러공격 이후에 채용된 신규직원들입니다. 이들 새 CIA요원들은 컴퓨터 기능에 해박하고 과거 냉전시대의 스파이들이 상상 하지 못했던 첨단 첩보기술 능력을 전방위로 활용하면서 현장을 누비는 신세대 분석가요 야전 정보수집 전문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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