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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총련 실권자 김해 허씨이고 고성파출신 허종만 체제는 철옹성인가? 본문
[8.15 조총련 특집 2회] 허종만 체제는 철옹성인가
2007.08.16
도쿄-채명석 seoul@rfa.org
지난 7월2일 시사 주간지 <아에라>를 발행하는 아사히 신문 도쿄 본사 앞에 일단의 항의 시위대가 몰려들었습니다. 조총련 간토 지방 일꾼 100여 명이 그들의 면면입니다. 그들은 조총련과 허종만 책임 부의장을 비방 중상한 <아에라>의 사죄를 요구하면서 편집장을 만나게 해달라고 현관 앞에서 한동안 항의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렇다면 <아에라>의 어떤 기사가 그들의 거친 항의 시위를 불러 일으켰을까요?
<아에라>는 지난 7월2일자 발매 호에서 ‘총련의 수령과 5천억 엔’이란 제목으로 허종만 책임 부의장을 ‘일본의 장군 님’에 빗대면서 조총련 중앙본부가 경매로 넘어 갈 위기에 처한 것은 모두 그가 저질러온 각종 비리 때문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아에라>에 따르면 허종만 책임 부의장은 93년에 조총련의 넘버 투인 책임 부의장에 취임한 뒤 북한으로 송금할 돈과 일본 정계에 대한 공작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총련 중앙본부 주도하에 독자적인 사업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첫 번째가 7할 내지 8할을 재일동포들이 운영하는 빠징코 사업입니다. 허종만은 빠징코 사업이 산하 재일동포들과 경합하게 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도쿄, 야마가타 현 등에 대형 빠징코 점을 차례로 개장하고, 골프장 개발회사까지 차렸습니다.
북한의 금화 세트를 들여다 팔기도 했고 즉석 라면 공장과 수산가공회사와 같은 소위 ‘애국 공장’을 북한에 설립하는 일까지 추진했습니다. 당연히 이러한 사업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종자돈이 필요하게 됐습니다. 허종만이 이때 눈독을 들인 것이 일본 전국에 널려 있는 산하 38개 조은 신용조합의 예금액 2조 2천억 엔입니다.
허종만은 조은 신용조합이 융자를 해주는 대가로 산하 상공인들에게 헌금을 강요했습니다. 또 담보도 받지 않고 거금을 융자해 주도록 조은 신용조합에 압력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개중에는 본인도 모르게 거액을 융자를 받은 사실이 나중에 밝혀지게 되어 곤경에 처한 상공인들도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도쿄 분쿄구에 있는 조선출판회관 담보 대출사건입니다. 조총련 산하 22개 단체가 입주해 있는 이 13층짜리 건물의 담보가치는 30억엔 이하입니다. 그러나 7년 사이에 5개 금융기관에 의해 82억 3천만엔이 대출되고, 3개 조은 신용조합도 57억3천만엔을 대출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아에라>는 이렇게 해서 허종만이 조은 신용조합으로부터 빼돌린 돈이 5천억엔 즉 남한 돈으로 약 4조5천억 원에 이른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거품 경제가 붕괴하자 허종만이 주도하던 총련 단독 사업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북한에 세운 애국공장들도 고철 덩어리로 변했습니다.
난맥 경영을 일삼아 온 조은 신용조합들도 97년5월 조은 오사카 신용조합이 도산한 것을 시작으로 2년 뒤인 99년5월에는 조은 도쿄 등 13개 신용조합이 연쇄도산을 일으켰습니다. 일본 정부는 경영이 파탄한 조은 신용조합을 구제하기 위해 공적인 자금 약 1조 4천억 엔을 투입했습니다. 그리고 채권을 인수받은 정리회수기구는 조은 신용조합의 융자의 일부가 조총련 중앙본부에 대한 실질적인 융자라고 주장하면서 627억 엔을 반환하라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에 대한 판결이 지난 6월18일 도쿄 지방법원에서 내려졌는데요. 조총련 측이 전면 패소하고 항고를 포기함으로서 조총련 중앙본부는 머지 않아 경매로 넘어 갈 위기에 처하게 됐습니다.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조총련의 실질적인 책임자인 허종만 책임 부의장이 실각할 것이라는 설, 북한으로 소환될 것이라는 설 등이 지금 난무하고 있는데요.
소환설, 실각설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서는 우선 김정일 위원장과 허종만 책임부의장과의 관계를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 방송이 여러모로 취재한 결과에 따르면 허종만은 1931년 경남고성에서 태어나 부모를 따라 대 여살 때 일본으로 건너왔습니다. 허종만이 1931년 생이라면 올해 나이는 만 76세입니다. 그러나 조총련 내부에서는 1935년생 그러니까 72세로 행세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의 정확한 나이는 어느 쪽일까요?
<코리아 국제 연구소>의 박두진 소장은 허종만이 자민당의 히라사와 의원을 명예 훼손 혐의로 고발하면서 제출한 소장에는 1931년 생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허종만이 재작년 1월 70살에 공화국 노력 영웅 칭호를 받았다는 북한측 보도를 보면 올해 나이가 72세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말했습니다. 박두진 소장의 말입니다.
박두진: 옛날에는 부모들이 애들의 호적을 정확히 올리지는 않았지요. 그래서 아마 72세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봅니다.
허종만은 일본으로 건너 온 뒤 도쿄 조선 중고급학교를 졸업하고 가와사키의 민족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다 재일본조선청년동맹(조청) 도쿄도 본부 부위원장 겸 조직부장으로 들어갔습니다. 그후 조총련 국제부 지도원, 국제부 부부장, 사무총국 부국장을 거쳐 86년9월 재정담당 부의장으로 승격했습니다.
또 93년 9월에는 공식 서열 넘버 투인 책임부의장에 임명되어 와병중인 한덕수 의장을 대신하여 조총련을 실질적으로 이끌어 왔습니다. 2001년 2월 ‘종신 의장’ 한덕수가 고령으로 죽자 2대 의장으로 취임한 현재의 서만술 의장도 얼굴마담에 불과하며, 조총련의 실질적인 책임자는 허종만이라는 데 이의를 다는 전문가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조총련의 의장도 아닌 책임 부의장 허종만이 어떻게 해서 20년 가까이 조총련을 쥐고 흔드는 이른바 ‘조총련의 장군님’으로 군림할 수 있게 됐을까요.
<코리아 국제 연구소> 박두진 소장은 허종만이 국제부 부부장 시절 일본을 방문한 김용순 비서를 수행하면서 본국과의 끈을 잡게 됐고, 김정일 위원장의 직접 지시로 재정 담당 부의장으로 발탁된 뒤 막대한 돈을 북한으로 송금한 것이 김정일 위원장으로부터 절대적인 신임을 받는 계기가 됐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90년대 말 조은 신용조합이 연쇄 도산하자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허종만이 북한으로 곧 소환될 것이라는 설이 파다했는데요. 김정일 위원장은 재일동포 사회에서 떠돌고 있던 허종만 실각설, 소환설을 불식시키 위해 2000년 3월 평양을 방문한 허종만과 독대하는 자리를 일부러 마련해주고, 노동신문에 독대 사진을 크게 실으라는 지시까지 내렸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이때 “허종만은 내가 일찍부터 고생하여 기른 총련의 주도 핵심(핵심 간부)”라고 말하면서, 모든 사업을 허종만 주도하에 강력히 밀고 나가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로부터 7년 뒤 조총련 중앙본부 부동산이 경매로 넘어 갈 위기에 처하자 또다시 허종만이 곧 실각할 것이라는 설, 본국으로 소환될 것이라는 설이 난무하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사 간부를 지낸 이모 씨는 얼마전 자유아시아 방송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중앙본부 부동산이 남의 손으로 넘어가는 사태를 초래한 허종만에 대한 재일동포 사회의 분노는 이미 위험 수위를 넘었다”고 말하면서 “그 여파로 조직원과 동포들의 이탈 현상이 가속될 경우 북한 당국도 이대로 지켜보지는 않을 것”이라며 허종만의 실각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반면 <코리아 국제 연구소>의 박두진 소장은 조총련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사태가 허종만이 단독으로 결정한 사안이 아니라 김정일 위원장의 지시 내지는 양해아래 이루어 진 것이고, 아직도 허종만에 대한 신임이 절대적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허종만의 실각설, 소환설은 단지 재일동포 사회의 희망 사항일 뿐이라며 그 가능성을 일축했습니다.
박두진: 허종만이 실각, 소환된다는 주장은 단지 희망사항일 뿐이다.
아까 말씀 드린 대로 허종만의 실제 나이가 72세이던, 76세이던 그가 70대의 고령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북한 당국이 이번 사태 뿐 아니라 허종만의 나이를 생각해서 진작부터 후계자를 물색하고 있었다는 징후도 엿보이고 있습니다. 그 선두주자는 3년전 조총련 20차 전체대회에서 필두 부의장으로 승격한 남승우 부의장입니다.
<코리아 국제연구소>의 박두진 소장은 2000년 3월 김정일 위원장이 허종만과 함께 남승우를 접견했을 때 “젊은 사람이 쓸만하구먼”이라고 내뱉은 한마디가 그가 조총련의 넘버 쓰리 즉 허종만의 후계자로 부상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올해 63살인 남승우 부의장은 현재 조총련의 각종 대외 활동을 전담하고 있고 지난 7월초에 열린 ‘총련 중앙회관 강제 압수 책동 규탄 대회’를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남승우: 총련 회관을 박탈하려고 미쳐 날뛰고 있는 아베 정권에 대해 기어코 총련 중앙 회관을 지키려는 불퇴전의 각오로 오늘 우리는 여기에 모였습니다.
그러나 남승우 부의장도 허종만 책임부의장 못지 않게 재일동포 사회에서의 인망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박두진 소장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또 남승우 부의장이 허종만의 자리를 물려받는다 해도 조총련이 처한 위기를 헤쳐 나갈 큰 그릇이 못된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고 박두진 소장은 덧붙였습니다.
3회에 걸친 조총련 특집 조총련 어디로 가나. 내일은 마지막으로 위기에 처한 조총련의 내일을 진단해 보겠습니다.
- 31년 경남 고성에서 출생 (재판 진술서에는 31년 생으로 기재돼 있으나, 조총련 내부에서는 1935년 생으로 행세)
- 5-6살 무렵 도일
- 학력 조총련 계 도쿄 조선 중고급 학교 졸업 재학 중 축구 부에서 활약
- 55년 가와사키 민족학교 교원(재판 진술서에는 가나가와 조청 준비위원회 취직으로 기재)
- 59년 재일본조선청년동맹(조청) 도쿄도 본부 부위원장 겸 조직부장
- 60년 초 조청 중앙본부 부위원장
- 65년5월 조총련 국제부 지도원
- 67년5월 조총련 국제부 부부장
- 74년 방일한 김용순을 수행
- 70년대 중반 김정일이 조총련을 직접지도
- 80년 조선 노동당 대회에서 김정일을 후계자로 지명
- 80년 사무총국 부국장으로 승격
- 86년9월 제14차 전체대회에서 재정 담당 부의장으로 승격
- 88년 김정일이 조은 예금을 모두 가져오라고 허종만에게 지시했다는 설 유포됨
- 89년 평양에서 세계청년학생 축전 개최 (총 경비 45억 달러, 조총련은 성금 1백억 엔과 청소년 1천명 파견)
- 89년 빠칭코 헌금 의혹 사건
- 93년9월 내부 서열 2위의 책임 부의장으로 승격
- 94년6월 오가타 공안조사청장관, 조총련의 대북 송금액 연간 600억엔에서 800억엔(중의원 예산위원회)
- 94년7월 김일성 심장발작으로 사망
- 95년3월 김정일 면담(50회 생일 축하단)
- 95년9월 이진규 제1 부의장 사망
- 95년10월 김정일 면담(노동당 창건 50주년 축하단)
- 98년 4월 서만술 제1부위원장과 함께 김정일 면담 (김일성86회 생일 축하단)
- 98년8월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처음 선출됨
- 90년대 말 조은 신용조합의 연쇄도산 문제로 허종만 소환설 유포됨
- 00년3월 노동신문, 김정일과 허종만 독대 사진 게재
- 00년10월 김정일 면담(조선노동당 창건 55주년 축하 대표단)
- 01년2월 종신의장 한덕수 고령으로 사망
- 01년12월 주간 문춘, 허종만이 주일 미국 대사관에 망명설
- 02년3월 김정일 면담(김정일 환갑)
- 02년 자민당 히라사와 의원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패소)
- 02년9월 김정일 일본인 13명 납치 인정
- 05년1월 공화국 노력영웅 칭호, 국기훈장 1급
- 06년5월 민단과 화해를 선언한 5.17 공동 성명 발표
- 07년6월 도쿄 지검 특수부, 부동산 사전매각 관련 혐의로 허종만을 극비 소환 조사
- 07년7월 아에라, 허종만 주도로 조은 신용조합에서 인출해 간 돈은 5천억 엔 이상
(1) 2001년3월1일 김정일 발언 요지
“지금 총련은 의장 동지가 고령에다 병상에 누어 있고 서만술 제1부의장 동지도 70세를 넘어 실제로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책임부의장입니다. 총련 사업은 한덕수 의장과 서만술 제1 부의장 동지를 받들어가면서 책임부의장이 실권과 책임을 갖고 조직적으로 전개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허종만 책임부의장이 이번에 조국에 오면 두 번 다시 일본에 돌아가지 못하고 조국에 그대로 남을 것이라는 얘기가 일본에서 나돌았습니다. 총련의 조국 방문단으로 온 동포들 사이에서도 그런 얘기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허종만 책임 부의장은 우리들의 가족입니다. 그런데도 왜 책임부의장이 일본에 돌아가지 못합니까. 그런 소문은 모두 적이 총련을 무너뜨리기 위해 퍼트린 모략으로 엉터리입니다. 책임 부의장에 대해 이런 저런 나쁜 소문이 나돌고 있기 때문에 이번에 책임 부의장이 조국에 오면 원기를 북돋아 주려고 내가 특별히 만나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노동신문에 내가 책임부의장을 만났다고 보도함과 동시에, 나와 책임부의장 두 사람을 찍은 사진을 크게 실으라고 지시했습니다. 보도할 때는 철저하게 “허종만 책임 부의장을 접견했다”고 알려야 하며, “4.15(김일성 생일) 축하단으로 왔을 때와 같이 취급하지 말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러니까 ‘축하단’이란 표현은 쓰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허종만 책임부의장을 만났다는 보도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유포되기 때문에 이것이 조선신보에 보도되고, 일본의 반동과 남조선 괴뢰들도 이 사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허종만 책임 부의장을 변함없이 신용하고 있습니다. 책임 부의장은 내가 일찍부터 고생하여 기른 총련의 주도 핵심(핵심 간부)입니다.
책임부의장은 누가 뭐라 해도 동요하지 말고 총련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책임 부의장의 요구가 높아지면 일부 활동가들이 활동 방법에 대해 왈가 불가할 지 모르겠지만 주저하지 말고 사업을 강력히 추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료 제공, 코리아 국제 연구소, 박두진 소장>
(2) ‘통일의 어버이’ (평양 출판사, 2002년)
“장군님은 허종만 책임부의장을 동행자(동지)라고 말하며, 줄 수 있는 모든 신뢰를 부여했습니다. 그가 조국에 올 때는 바쁜 시간을 쪼개어 만나고, 그의 생활과 건강에 따뜻한 배려를 하셨습니다. 그가 가족과 함께 조국에 왔을 때는 식사도 함께 하셨습니다”
<출처---아에라, 2007년7월2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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