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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인 나라에서의 '평범한' 일상 본문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국제 외교가 이어지고 있고, 주요 당사자 간 합의 조짐은 거의 보이지 않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도 평범한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나름의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주기적으로 미사일이 떨어지는 나라에서의 일상은 어떤 모습일까. 수도 키이우와 서부 도시 리비우를 오가며 취재하는 다리아 타라다이 BBC 기자의 설명을 들어봤다.
유치원, 학교, 직장, 쇼핑 등 겉으로만 보면 우리의 삶도 평범해 보인다. 하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이 평범한 삶의 조각들은 전쟁으로 인해 상처 입은 상태다.
매일 아침과 잠자리에 들기 전, 우리는 러시아 군대가 다음날 혹은 오늘 밤에 어떤 '계획'을 품고 있는지 알아내고자 노력한다.
군 레이더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운영하는 SNS 계정에 접속한다. 게시물 내용에 따라 앞으로 몇 시간 동안 대피소에서 지낼 수도 있고, 그냥 집에 머무를 수도 있다.
가장 치명적인 무기인 러시아의 '칼리브르' 탄도미사일이나 '킨잘' 순항미사일이 배치되었다는 소식이 가장 우려된다.
긴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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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전쟁 발발 시점은 2022년이 아니다. 러시아는 2014년 3월 크림반도를 병합한 후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분쟁을 일으켰고, 그곳의 대리 조직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2022년 2월 24일 전면적인 침공을 감행했고, 이번 전쟁은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치명적인 분쟁이 되었다.
군인 수십만 명, 민간인 수만 명이 이번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국민 약 1000만 명이 피난길에 올랐으며, 그중 수백만 명은 국외로 떠났다.
내 가족은 우크라이나를 떠날 수 없었고, 나 또한 그랬다. 한 번도 이 결정을 후회하지 않았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소중한 시간이기에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그 가치를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
전쟁이 바꾼 일상용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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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항상 휴대전화가 잘 충전되어 있는지 확인하며, 식량과 현금뿐만 아니라 보조배터리도 바로 손이 닿을 수 있는 선반이나 상자에 구비해 둔다.
또한 전기와 물이 모두 끊길 경우를 대비해 식수로 가득 채운 페트병 2병, 세탁용 수돗물로 사용할 페트병 등 총 10병 정도의 물병을 항상 쌓아둔다.
정전 시 주민들에게 물과 난방 서비스를 계속 공급할 수 있는 발전기나 배터리가 설치된 고층 아파트들이 이미 많지만, 이마저도 작동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우리는 제2의 대비책을 마련해둔다. 이러한 발전기는 보통 값이 비싸 아파트 주민들이 함께 비용을 부담하곤 한다.
새로운 '평범한' 삶
키이우나 리비우 같은 대도시에서는 공습 사이렌이 울리기 전에 서둘러 아이들을 학교나 유치원에 등교시킨다. 선생님들과 함께 방공호로 가면 아이들이 안전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공습 사이렌이 얼마나 자주 또는 언제 울릴지 예측하기란 불가능하다. 하루에 최대 10번까지 울리기도 하고, 하루 종일 한 번도 울리지 않는 날도 있다.
귀를 찢을 듯이 울리는 이 공습 사이렌을 무시할 수는 없다. 이곳 도시와 주민들에게는 죽음과 파괴를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가방에 완충된 헤드랜턴과 지혈대를 가지고 다닌다. 지혈대는 미사일 공격으로 주요 동맥이 절단된 경우 큰 출혈을 막는 데 사용되어 생명을 구할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은 동맹국이 우크라이나에 공급해준 방공 미사일인 '패트리엇' 미사일이 발사되는 시끄러운 소리를 알아듣는다. 늘 사실은 아닐지라도, 아이들은 러시아에서 날아든 모든 로켓포는 격추된다는 어른들의 말에 안심하곤 한다.
음식과 엔터테인먼트
지난 3년간 식료품 가격이 오르긴 했지만, 맛과 품질은 여전히 훌륭하다. 외식을 하거나, 음식을 배달시켜 먹는 것은 우리가 간절히 지키고자 노력하는 평범한 일상 중 하나다.
우리는 커피도 좋아한다. 방공호에서든 건물 복도에서든, 간밤의 공세를 잘 견뎠는지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것은 중요하다. 좋아하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면 삶이 조금 수월해지는 느낌이다.
밤 생활은 통금 정책으로 인해 변화가 생겼다. 최전선에 가까운 지역에 살수록 통금 시간은 더 빨라진다. 키이우의 경우 자정까지는 외출이 자유롭지만, 대중교통은 이보다 더 일찍 운행이 중단되고, 야간 택시 요금은 더 비쌀 수 있다.
영화관과 콘서트홀 등은 가능한 한 정상적으로 운영하고자 노력하지만, 공습으로 인해 공연이 중단되는 경우가 많다. 보통 영화관에서는 상영이 중단된 영화 티켓을 환불해 주거나 나중에 다른 날짜로 교환해 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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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공이 시작되면서 중단되었던 극장 공연 또한 2022년 봄부터 재개되었다.
키이우의 한 극장에서 선보인 연극 '코노톱의 마녀'는 꼭 봐야 할 작품으로 좋은 평가를 받으며 수개월간 매진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의 고전 작가인 흐리호리 크빗카-오스노비아넨코의 1833년 작 풍자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실패한 마녀사냥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녀사냥을 선동한 두 불운한 인물은 '마녀'로 의심되는 인물의 꾀에 속아 넘어간다.
아직 나는 해당 연극을 보지는 못했지만, SNS에는 티켓을 구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당국이 나서 암표 거래를 막아야 했을 정도다.
철도와 우편 서비스
러시아가 본격적인 침공을 시작한 날인 2022년 2월 24일 문을 닫은 우크라이나의 공항이 그립다. 해외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선 폴란드, 루마니아 또는 몰도바의 가장 가까운 공항으로 가야 한다.
기차, 버스 또는 자동차로 이동해야 하기에 미리 계획을 세우고, 시간과 비용도 넉넉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철도는 멈추지 않았고, 우크라이나 내 가장 신뢰할 만한 서비스 중 하나다. 침공이 시작된 이후 새로운 노선도 개통되며 이전에는 연결되지 않았던 우크라이나의 여러 지역을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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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 서비스도 효율적이다. 키이우에서 리비우로 보낸 택배는 보통 다음날이면 받아볼 수 있다.
키이우에서 실제 전투가 벌어지는 전선에서 10km도 떨어져 있지 않은 최전방 마을인 코스티얀티니우카로 보낸 내 택배는 2일 만에 도착했다.
나는 반드시 택배함으로 배달될 수 있도록 부탁했다. 그래야 24시간 중 통금 없이 다닐 수 있는 시간이 고작 4시간뿐인 그곳에 사는 내 지인이 택배를 받고자 우체국 앞에서 줄을 서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스티얀티니우카와 같은 마을에서 우체국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삶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일상의 흔적 중 하나다. 이것마저 사라지면 주민들은 러시아의 점령이 임박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평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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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전선이 아닌 여러 도시와 마을의 주민들은 여전히 삶을 꾸려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각자 비밀스러운 아픔을 간직한다. 집이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에 있어 되돌아가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러시아는 현재 우크라이나 영토의 약 20%를 점령하고 있다. 본격적인 침공이 시작될 당시에는 7%였다. 일부 우크라이나 주민들은 여전히 러시아 점령하에 살고 있다. 러시아 정부에 자신의 재산을 돌려달라고 요구하고자 귀환하는 이들도 있으나, 영원히 재산을 잃을 위험도 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은 어린 시절 사진과 같은 소중한 물건을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또 집에서 떠나길 거부하거나, 마땅히 살만한 안전한 곳이 없어 러시아 점령지에 살고 있는 나이 든 가족이나 친척을 둔 이들도 있다. 최전선 근처에 여전히 친지가 살고 있음에도 러시아의 포격이 매일 가까워지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사람도 있다.
아울러 가족 중 누군가 군에 복무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언제나 이들의 안전에 대해 끊임없이 불안해한다.
2022년, 우리는 잠시 삶을 보류하면 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힘들지만 서서히, 우리는 이 시간 이곳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가능한 한 모든 것을 "평범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하면서, 최대한 기쁨을 찾고자 노력하면서 우리는 살아간다.
우크라이나 전쟁: 전쟁 중인 나라에서의 '평범한' 일상 - BBC News 코리아
방공호부터 매진된 공연까지, 침공이 본격화되는 동안에도 우크라이나에 머물렀던 줄곧 다리아 타라다이 BBC 기자가 전쟁 중인 나라의 일상을 소개한다.
www.bb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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