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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표창장' 받은 駐쿠바 北외교관 한국 망명 본문

자유화 민주화운동 세력-탈북민 자료

'김정은 표창장' 받은 駐쿠바 北외교관 한국 망명

CIA Bear 허관(許灌) 2024. 7. 16. 09:05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의 리일규(52) 정치 담당 참사(참사관)가 지난해 11월 초 아내와 자녀를 데리고 망명해 한국에 정착했다. 리 참사는 북한 외무성의 대표적 ‘쿠바통’으로, 2019년 4월부터 쿠바 주재 정치 담당 참사를 지내며 지난해까지 한국과 쿠바의 수교를 저지하는 임무를 맡았다. 2016년 귀순한 태영호 당시 주영국 북한 공사 이후 한국에 온 북한 외교관 중 가장 직급이 높다. 2019년 탈북한 조성길 이탈리아 대사대리, 류현우 쿠웨이트 대사대리의 내부 직급은 1등 서기관과 참사였다.

지난 14일 본지 인터뷰에 응한 리 참사는 “북한 주민이라면 누구든 한번쯤은 한국에서 살아봤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며 “북한 체제에 대한 염증, 암담한 미래에 대한 비관, 이런 사회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탈북을 고민하게 된 출발점이었다”고 말했다.

1999년 외무성에 입부한 리 참사는 2013년 북한 선박 ‘청천강호’가 쿠바에서 지대공 미사일과 전투기 부품을 싣고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려다가 적발됐을 때 쿠바 대사관의 3등 서기관(대외직명은 1등 서기관)으로 파나마 측과 교섭을 벌여 청천강호의 억류를 해제하고 선장과 선원들을 석방시켰다. 이 공로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표창장을 받았다. 이후 2016년부터 약 3년간 평양 외무성 본부서 중남미 담당 부국장으로 근무하며 김정은 정권을 가까이서 지켜봤고, 2019년 다시 쿠바 참사로 부임했다.

‘김정은 표창장’까지 받았던 엘리트 외교관인 리 참사는 “사실 북한 주민들이 한국 국민들보다 더 통일을 갈망하고 열망한다. 내 자식이 미래가 좀 더 나은 삶을 누리려면 ‘답은 통일밖에 없다’는 생각을 누구나 다 공유하고 있다”며 “오늘날 김정은 체제는 주민들 속에 남아있던 그 한 가닥의 희망마저 무참히 뺏어버렸다”고 했다. 김정은은 지난해 말 남북을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규정하며 “(남북이) 통일될 가능성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단독] ‘김정은 표창장’ 받은 駐쿠바 北외교관 한국 망명 (chosun.com)

 

[단독] ‘김정은 표창장’ 받은 駐쿠바 北외교관 한국 망명

단독 김정은 표창장 받은 駐쿠바 北외교관 한국 망명 리일규 참사, 작년 11월 입국해 아내·자녀와 정착 태영호 이후 최고위직 北외무성 대표적 쿠바통

www.chosun.com

"北 주민들, 자식의 미래 걱정하며 한국보다 더 통일 갈망"

쿠바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근무하다 탈북한 리일규 참사가 14일 서울 모처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리 참사는 인터뷰에 응한 이유에 대해 “희망이 없는 김정은 체제의 실상을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14일 서울 한 호텔에서 본지 인터뷰에 응한 리일규(52) 전 쿠바 주재 북한 대사관 참사는 차분하고 온화한 인상이었다. 평양 말씨만 아니면 불과 8개월 전 사선(死線)을 넘어 귀순해온 북 관료란 사실을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반통일 2국가 정책’을 “민족의 넋을 말살하는 행위”라고 비판할 때는 단호했다.

◇뇌물 요구와 병 치료 거부에 결심

–왜 탈북을 생각했나.

“직접적 계기는 노력에 대한 불평등한 평가, 그에 대한 좌절감과 분노였다. 북한 외무성은 권세 있는 집안 자식들이 몰려 있다. 내 출신 성분, 사회 성분은 ‘사무(事務)’로 ‘노동자’나 ‘군인’에 비해 좋지 않다. 최하위 직급으로 입직해 성실하게 노력해 왔다. 그런데 2019년 8월 쿠바에 북한 식당을 내기 위해 평양에 가자 외무성 대표부지도과 부국장이 적잖은 뇌물을 요구했다. 자금 여유가 부족해 ‘후에 보자’는 식으로 미뤘더니 앙심을 품고 나를 소환하려고 시도했다. 이후에도 끊임없이 업무 평가를 야박하게 했다.”

–그래서 결심했나.

“그러던 중 지난해 내가 경추 손상에 의한 신경 손상증을 앓게 돼 멕시코에 가서 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외무성에 제기(요청)했다. 쿠바는 제재를 받아 의료 기기가 없어서다. 24시간도 안 돼 불허한다는 전보가 떨어졌다. 그때 격분해 ‘북한을 떠나려는 내 생각은 옳았다’고 확신했다. ‘김정은 표창장’을 거실에 걸어두셨던 부모님, 장인·장모님이 다 돌아가신 것도 결심에 일조했다.”

–탈북을 어떻게 계획했나.

“2023년 7월 중순부터 탈북을 심각하게 고민해 11월 초 실행했다. 그 3개월여간 7㎏이 빠졌다. ‘밥알이 모래를 씹는 것 같다’는 표현을 체험했다. 비행기표까지 사놓고 탈북 6시간 전 아내와 아이를 불러 내 결심을 알려줬다. ‘한국’이란 말은 안 하고, ‘외국에 나가 살자’고 했다.”

–북한은 여권을 다 대사관에 보관하게 하는데 비행기를 어떻게 탔나.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북한 당국이 그 방식을 사전 차단할 것이다. 내 뒤를 이어 탈출하려는 분들에게 피해가 될 수 있어 말할 수 없다. (쿠바) 공항 탑승구 앞에서 탑승을 기다린 1시간이 몇 년과 맞먹었다. 처음으로 하나님께 가족을 보호해줄 것을 빌고 또 빌었다. 왜 인간이 종교를 믿는지 절감했다.”

탈북인 리일규 참사

◇김정은, 박근혜 당선에 충격

–김정은을 만나 봤나.

“차도 같이 마셔봤다. 김정은도 마주 앉아 보면 그냥 평범한 인간이다. 가까이서 보면 ‘혈압이 굉장히 높겠다’는 생각이 확 든다. 항시 얼굴이 술 마신 것처럼 얼마나 새빨간지 모른다. 화면에 나오는 것보다 더 붉다. 인디언 같다.”

–2022년 11월 딸 김주애를 공개했는데?

“김정은이 주애를 데리고 다닌 것은 (언론 공개) 한참 전의 일이다. 평양에서 제2자연과학원 아파트에 살았다. 주민 80% 이상이 핵 및 미사일 개발에 종사하던 사람들이다. 그들에 따르면 안고 다녀야 하는 꼬마 때부터 김정은이 기분이 좋으면 ‘내가 공주를 보여주겠다’면서 주애를 데리고 나왔다고 한다. 김주애를 처음 공개했을 때는 신기했는데 열병식 같은 공식 국가 행사까지 데리고 다니니 거부감이 점차 들었다. 내가 한생 저 사람들의 발밑에서 온갖 수모를 받았는데 이제 내 자식이 또 저 어린 것 앞에 굽신거리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기가 막혔다. 적잖은 북한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후계자로 보나.

“개인적으로는 어렵다고 본다. 절대 권위, 절대 숭배를 받으려면 신비함이 있어야 한다. 지금처럼 노출시킬 대로 다 시키고 무슨 신비함이 있고 숭배감이 있겠는가.”

–북에서 여성 지도자가 나올 수 있나.

“2012년 한국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됐잖나. 김정은이 그것을 보고 많이 충격을 받았다. 그때 김정은이 김평해 당 간부부장 겸 담당 비서에게 우리도 여자를 대대적으로 써야 이제 국제사회에서 정상적인 국가가 된다는 취지로 얘기를 했다.”

◇對美 라인 한성렬, 간부들 앞에서 공개 처형

–북미 회담에 외교부가 아닌 통일전선부가 나섰는데.

“김정일은 밤에 외무성에 전화를 많이 했다. 문건도 24시간 제한 없이 보고했다. 그런데 김정은이 집권한 이후부터 외무성에 걸려오던 전화가 줄었다. ‘밤 11시 이후 문건 보고는 하지 말라’는 지시도 떨어졌다. 외무성의 권한과 발언권이 완전히 위축됐다.”

–왜 그런가.

“김정은이 집권 초기 외무성이 체제 유지에 얼마나 힘이 되는지 잘 파악하지 못했고, 2016년 (태영호) 주영 공사 등 외교관들의 탈북이 이어졌다. 2017년 김정은이 직통전화를 외무성에 걸었는데 리용호 외무상과 김계관 제1부상이 다 못 받는 사고가 있었다. 김정은이 외무성을 신뢰하지 않게 되면서 북미 회담을 통일전선부에 맡긴 것이다.”

–한성렬 미국 담당 부상과 리용호 외무상이 그 무렵 실각했는데?

“한성렬은 미국 간첩이란 혐의로 공개 처형됐다. 2019년 2월 12일인가 (평양 순안공항 인근의) 강건군관학교에 외무성 부국장 이상 간부들을 모아 놓고 총살 현장을 보게 했다. 나는 그때 쿠바 발령을 받느라고 빠졌다. 총살 현장을 본 사람들은 며칠 밥을 못 먹었다고 하더라. 리용호는 2019년 12월 비리 혐의를 받아 일가가 정치범 수용소에 갔다. 주중 대사관 서기관의 횡령이 적발됐는데, 뇌물 받은 상급자들 조사하면서 리용호 이름이 나왔다. 김정은이 ‘얘가 뒤에서 이딴 짓이나 하니까 일을 제대로 못하는구나’ 하고 얼마나 화를 냈는지 2019년 12월 28~31일 당 중앙위 전원회의 중 셋째날 리용호 비판을 반나절 했다. 거기 갔던 사람들이 ‘외무성 없어지는 줄 알았다’고 했다.”

 

평양서 쿠바 대사와 함께 - 2017년 8월 29일 평양 대동강변의 북한 외무성 고방산영빈관(초대소)에서 리일규(왼쪽) 당시 중남미·아프리카·중동 담당 부국장이 헤수스 아이세 소톨롱고(오른쪽) 주북한 쿠바 대사 등과 함께 외교 관계 수립 57주년을 기념하는 연회에 참석하고 있다. /리일규씨 제공

–최선희 외무상 입지는 탄탄한 것 같다.

“한국에서는 최영림 전 총리의 수양딸이라서 그렇다느니 하는데 사실이 아니다. 김계관 전 1부상의 영어 통역을 하면서 김계관이 끌어줘서 올라갔다. 말을 잘하고, 여자지만 주먹이 세다. 주먹이란 게 진짜 힘이 아니고, 북한에서는 김정은의 신임이 파워다. 2018년 2월 연회에서 김정은이 최선희를 보고 ‘미국 담당 부상이 수고한다’고 했다. ‘부상이 아니라 국장’이라고 하니 김정은이 ‘야, 김평해(당 간부부장) 어디 갔어? 내가 여자들 쓰라고 한 게 언제인데, 이 능력 있는 사람이 아직도 이렇게 있어’라며 화를 냈다. 다음 날 최선희가 미국 담당 부상이 됐다.”

◇”김정은, 통일이란 한 가닥 희망마저 빼앗아”

–북한 주민들은 통일을 원하나.

“북한 주민들은 한국 국민보다 더 통일을 갈망하고 열망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못살기 때문이다. 간부든 일반 주민이든 내 자식의 미래를 걱정할 때 뭔가 좀 나은 삶이 돼야 한다, 답은 통일밖에 없다, 이것은 누구나 공유하는 생각이다. 한국 대기업들이 들어와서 투자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면 최소한 지금처럼 거지처럼 살지는 않을 것 아닌가.”

–김정은은 왜 ‘반통일’ 정책을 들고나왔나.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북한 주민들의 통일 갈망을 차단하려는 데 있다고 본다. 한류는 아무리 강한 통제와 처벌에도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최소 선대들은 통일을 제1국사로 책정하고 통일 노선이나 남북 대화 등도 계속 마련하면서 주민들의 통일에 대한 희망만은 감히 뺏지 못했는데 김정은은 이마저 무참히 뺏어버렸다.”

부친 따라 외국에서 청소년기… 평양외대 나와 쿠바 9년 근무

리일규 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는 1972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통일전선부 산하 무역 회사에서 일하던 부친을 따라 알제리와 쿠바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평양외국어학원(중고교 과정)에서 프랑스어를, 평양외국어대학에서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1999년 외무성에 입부했다. 2011년 9월~2016년 1월에 이어 2019년 4월~2023년 11월까지 쿠바에서만 총 9년 정도 근무했다.

1차 해외 파견 기간인 2013년 7월 쿠바에서 불법 무기를 싣고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려다 적발된 ‘청천강호’ 사건 해결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김정은 표창장’을 받았다. 2016년 2월~2019년 3월까지 약 3년 동안 평양에 들어가 외무성에서 아프리카·아랍, 중남미 지역 담당 부국장 겸 당세포비서를 지냈다. 두 번째 쿠바 파견 근무 기간 가장 중요한 임무는 한국과 쿠바의 수교 저지였다

[단독] “北 주민들, 자식의 미래 걱정하며 한국보다 더 통일 갈망” (chosun.com)

 

[단독] “北 주민들, 자식의 미래 걱정하며 한국보다 더 통일 갈망”

단독 北 주민들, 자식의 미래 걱정하며 한국보다 더 통일 갈망 통일은 된다 탈북자 리포트 1 망명 외교관 리일규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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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주재 북한 외교관 ‘리일규 참사관’ 한국 망명

16일 한국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지난해 11월 한국에 망명한 것으로 확인된 리일규 쿠바 주재 북한 대사관 정치담당 참사 관련 보도를 시청하고 있다.

쿠바 주재 북한 외교관이 지난해 11월 한국에 망명한 것이 확인됐습니다.

16일 한국 주요 매체 보도에 따르면, 작년 11월 초 리일규 쿠바 주재 북한 대사관 정치담당 참사가 아내와 자녀를 데리고 탈북해 한국에 정착했습니다. 참사는 북한 재외공관에서 대사, 공사 다음 직위입니다.

리 전 참사는 2016년 태영호 주영국 대사관 공사, 2019년 조성길 주이탈리아 대사관 대사대리, 류현우 주쿠웨이트 대사관 대사대리에 이어 2012년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이후 공식 확인된 4번째 탈북 외교관입니다.

◾️ 뇌물 요구와 질병 치료 거부에 결심

리 전 참사는 탈북 전까지 쿠바 대사관에서 한국과 쿠바의 수교를 저지하는 임무를 맡았다고 조선일보가 보도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지난 2월 쿠바와 전격 수교한 바 있습니다.

리 전 참사는 이날(16일) 공개된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2019년 8월 쿠바에 북한 식당을 내려고 평양에 가자 외무성 대표부 지도과 부국장이 적잖은 뇌물을 요구했다”며 “자금 여유가 부족해 ‘후에 보자’는 식으로 미뤘더니 앙심을 품고 나를 소환하려고 시도했다”고 탈북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질병 치료 요청도 거부당하면서 탈북 결심을 굳혔다고 리 전 참사는 밝혔습니다.

◾️ “대표적 남미통”

연합뉴스는 리 전 참사가 쿠바에서 두 차례 근무한 북한 외무성의 대표적 남미통이었다고 전했습니다.

리 전 참사는 지난 2013년 북한의 '청천강호'가 지대공 미사일 등을 싣고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려다가 적발됐을 때 파나마 측과 교섭을 성공적으로 벌여 김 위원장의 표창장을 받았다고 보도됐습니다.

리 전 참사의 당시 활동은 외신에도 보도된 바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리 전 참사의 탈북 경위 등에 대해 함구하고 있습니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16일) 정례브리핑에서 리 전 참사의 언론 인터뷰에 관해 “개인의 신상과 관련되어 정부 차원에서는 확인해 드리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VOA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