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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창사 55년 만에 노조 첫 총파업이 던지는 질문 본문
삼성전자 노조가 창사 55년 만에 처음으로 총파업에 나섰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는 지난 8일 오전 11시 경기 화성시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정문 앞에서 총파업 결의 대회를 개최한 데 이어 이틀간 파업을 이어갈 예정이다.
전삼노는 가입자 수가 3만여 명으로, 삼성전자 전체 직원(약 12만5000명)의 24% 수준이다.
노조는 조합원 임금 인상과 휴가 확대, 성과급 제도 개선 등을 주장하고 있다
전삼노는 지난달 7일 집단으로 연차를 사용하는 방식의 연가 투쟁에 나섰지만, 파업근태를 회사에 통보하고 출근하지 않는 무노동·무임금 파업은 처음이다.
전삼노는 8일 오전 11시 기준 파업 참가자 수가 6540명이라고 밝혔다. 경기 동탄경찰서는 이날 집회 인원을 약 3000명으로 추산했다.
오랜 ‘무노조 경영’으로도 알려진 삼성전자에서 일어난 첫 총파업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무노조 경영' 그 이후
삼성그룹은 2020년 5월 이재용 당시 부회장이 무노조 경영 폐지를 공식 선언하기 전까지 오랫동안 ‘무노조 경영’을 추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자에게는 노조가 없어도 될 만큼 업계 최고의 처우를 제공하고, 회사는 더 효율적인 경영을 할 수 있다는 논리에서였다. 하지만 노동권 침해라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다만 회사가 노조 설립을 원천 봉쇄한 것은 아니고, 계열사별로 몇몇 노조가 존재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활발한 노조 활동을 보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전삼노는 2019년 11월 한국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금속노련) 산하로 출범한 조직이다. 노조원 대다수가 회사의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소속으로, 삼성전자 5개 노조 중 조합원 수가 가장 많지만, 마찬가지로 전체 직원의 과반이 되지 않아 교섭력이 제한적인 상황이다.
손우목 전삼노 위원장은 BBC코리아와의 통화에서 “예전 삼성의 경우 성과가 있으면 무조건 보상이 따른다는 게 있었는데, 지금은 성과가 있어도 보상은 임원들한테만 따르고 직원들한테는 지급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현재 연봉에서 성과급이 차지하는 비율이 상당한데, 성과급을 산정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불확실성이 크다는 것이다.
또 노조는 지난해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가 적자를 내면서 소속 직원들이 기본급의 50% 이상에 달하던 성과급을 받지 못한 반면 임원들이 다른 명목으로 성과급을 가져갔다는 점에 불만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회사가 적자가 났으면 (성과급을) 못 받는 건 맞는데, 그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것”이라며 “전체 임금에서 성과급이 차지하는 비율이 30% 정도인데, 이 30%에 대해 불확실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또 다른 '귀족 노조'?
이번 파업을 바라보는 시선이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삼성그룹 내 다른 노조에서도 파업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삼성전자 임직원들이 업계에서 상당히 높은 수준의 처우를 받는 것으로 알려진 만큼, 노조의 요구사항이 과도하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 임직원의 평균 연봉은 성과급 포함 약 1억2000만원이다.
국내 취업플랫폼 잡코리아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고연봉 기준은 약 8550만원으로, 한국 직장인 평균 연봉의 약 2배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대다수 직장인보다 좋은 처우를 받으면서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파업하는 이들을 '귀족 노조'라며 비판한다.
이러한 현상과 관련해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한국은 노조하기 쉽지 않은 나라”라고 지적했다.
한국 사회가 “군사독재 시절 등을 거치면서 반노조 정서가 사회 전체적으로 형성돼 왔고, 그걸 변화할 계기를 갖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김성희 교수는 “노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너무 적기 때문에 반노조 정서를 극복 못 하는 측면이 있다”며 “제도적 변화를 통해 노조 조직률을 높이거나 교섭 적용률이라도 높여준다면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실제로 2022년 기준 국내 노조 조직률은 13.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못 미친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삼성전자가 국내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파업에 대한 여론을 더욱 악화시키는 또 다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삼성전자는 우리나라 전체 제조업의 20%를 차지하고 있고 전체 시가총액의 20%를 넘게 차지한다”며 “그 정도로 한국을 먹여 살리고 있는데 이렇게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니까 국민들이 우려를 표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행정연구원이 ‘2023 사회통합실태조사’에서 기관별 신뢰 정도를 조사한 결과 노조를 '믿지 않는다'고 응답한 비율은 62.3%로 '믿는다'는 의견보다 많았다. 반면 대기업을 '믿지 않는다'고 응답한 비율은 45.5%, '믿는다'고 응답한 비율은 54.5%였다.
삼성의 위기
일각에서는 결국 이번 파업 역시 삼성전자의 경영 악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지난해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가 적자를 기록한 것과 관련해, 업계에서는 회사가 반도체 위탁생산 부문인 파운드리 투자나 인공지능(AI) 칩에 필수로 여겨지는 고대역폭메모리(HBM) 개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손 위원장은 “언론에서 말하는 삼성의 위기는 경영자들의 위기”라며 “오너가 이런 경영 위기 상황 속에 어떠한 메시지도 던지지 않고, 경영진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해서 여기까지 오게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대종 교수는 “삼성전자 비메모리 반도체는 한때 점유율이 9%까지 떨어졌다”며 “또 HBM 반도체는 하이닉스에 (선두를) 뺏겨서 엔비디아에 납품을 못 하는 등 위기를 겪고 있다”고 했다.
또 김 교수는 삼성전자가 경영 실적 개선뿐만 아니라 새로운 노사 관계 정립이라는 큰 과제에 직면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삼성전자는 원래 (업계 대비) 급여를 1.5배 더 많이 주면서 일을 많이 시키는 것으로 유명했다”며 “하지만 MZ세대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여가 시간, 안전한 근로 환경, 이익 분배 등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노조는 이번 사흘 간의 파업 후에도 노사 간 협상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오는 15일부터 무기한 파업에 나설 가능성도 내비쳤다. 이 경우 본격적인 생산 차질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삼성전자는 AI용 메모리 반도체 판매 호조 등에 힘입어 ‘어닝 서프라이즈(깜짝 실적)’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일 회사는 2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15배 뛴 10조4000억원을 기록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공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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