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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대통령 에브라힘 라이시는 누구인가?…'강경 보수 성직자'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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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대통령 에브라힘 라이시는 누구인가?…'강경 보수 성직자'

CIA bear 허관(許灌) 2024. 5. 21. 08:46

에브라힘 라이시 현 이란 대통령(63)은 최고 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측근으로 손꼽히는 강경파 성직자로, 지난 2021년 대통령직에 당선됐다.

그의 집권으로 이란 이슬람 공화국 전역에서 보수파들의 지배력이 더욱 공고해졌다.

과거 사법부 수장이었던 라이시는 사전 여론 조사에서 대다수 유권자의 지지를 받지 못했음에도 여러 유명한 온건파 및 개혁파 후보의 출마가 저지된 끝에 열린 2021년 대선에서 하산 로하니 대통령의 뒤를 이어 당선됐다.

라이시 집권 당시 이란은 심각한 경제난, 역내 긴장 고조, 세계 강대국들과의 핵 협상 중단 등 여러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이에 더해 집권 후인 2022년에는 반정부 시위가 이란 전역을 휩쓸었을 뿐만 아니라, 지난해부터는 이란이 지원하는 팔레스타인 단체인 ‘하마스’가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이면서 이란과 이스라엘 간 그림자 전쟁이 갑작스럽게 전면에 드러났다.

1980년대 이란에선 정치범을 대거 사형했는데, 많은 이란인과 인권 활동가들은 라이시가 관련돼 있다며 거듭 조사를 촉구했다.

라이시는 1960년 이란에서 2번째로 큰 도시이자 시아파 무슬림의 성지로 손꼽히는 마슈하드에서 태어났다. 마찬가지로 성직자였던 아버지는 그가 5살 때 사망했다.

시아파 전통에 따라 예언자 무함마드의 후손임을 나타내는 검은 터번을 쓰고 다니는 라이시 대통령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15세 때 성지인 쿰 지역의 신학교에 입학했다.

학창 시절 그는 서방의 지원을 받는 샤(이란의 국왕)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다. 결국 샤는 1979년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의 주도로 일어난 이슬람 혁명으로 축출됐다.

혁명 이후 라이시는 사법부에 들어가 1981년 이란의 대통령이 된 하메네이 현 최고지도자의 밑에서 검사로 활동했다.

이란 '죽음 위원회'와의 관련성

라이시는 겨우 25살에 부검사직에 오르게 된다.

부검사 재직 당시 그는 1988년 설치돼 이른바 ‘죽음 위원회’로도 알려진 비밀 재판소 내 판사 4명 중 하나이기도 했다.

해당 재판소는 정치적 활동으로 이미 징역형을 선고받은 수감자 수천 명을 '재심'하는 곳이었다. 대부분이 ‘이란 인민무자헤딘기구(PMOI)’라고도 알려진 좌파 성향의 야권 단체 ‘무자헤딘 에 칼크(MEK)’의 조직원들이었다.

이란의 야권 운동가들은 지난 2019년 프랑스 파리에서 자국의 사형 희생자들을 기렸다

해당 재판소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이들이 정확히 몇 명인지는 밝혀진 바 없으나, 인권 단체들은 남성과 여성 5000여 명이 이곳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아무런 기록 없는 집단 무덤에 매장됐다고 주장한다. 이는 반인륜적 범죄에 해당한다.

이슬람 공화국의 집권층은 사형 집행 사실 자체는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각 사건에 대한 세부 사항 및 적법성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한편 라이시는 이러한 정치범 사형 선고와 자신은 연관이 없다고 거듭 부인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들에 대한 판결은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파트와(이슬람 학자의 율법에 대한 의견)에 의한 정당한 조치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던 2016년, 라이시를 비롯한 여러 사법부 일원과 당시 부최고지도자였던 아야톨라 호세인 알리 몬타제리(1922~2009)가 1988년 만나 나눈 회담을 담은 녹음본이 유출됐다.

해당 녹음테이프엔 몬타제리가 해당 사형 집행에 대해 “이슬람 공화국 역사상 최대 범죄”라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담겨 있다.

해당 회담 이후 1년 뒤, 몬타제리는 호메이니의 지정 후계자 지위를 잃었고, 그해 호메이니 사망 이후 최고 지도자 자리엔 알리 하메네이가 오르게 된다.

2021년 대규모 사형 집행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했느냐는 언론의 질문에 라이시는 “판사, 검사가 시민들의 안전을 수호했다면, 이는 칭찬받아야 할 일 … 나는 내가 지금까지 맡았던 모든 직책에서 인권을 수호해 왔다는 점이 자랑스럽다”고 답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대권 야망

2017년, 라이시는 대선에 출마한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성직자였던 로하니가 1차 투표에서 압도적인 득표율 57%를 기록하며 연임에 성공한다.

당시 대선 운동 중 자신을 반부패 투사로 내세운 라이시는 사법부의 2인자으로서 부패 척결에 소홀했다는 대통령의 비난에 밀려 득표율 38%로 2위에 만족해야만 했다.

라이시는 대선 패배 이후로도 건재한 모습을 보이며, 2019년엔 하메네이에 의해 사법부 수장으로 임명돼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쥐게 된다.

그리고 바로 1주일 뒤엔 국가 최고지도자 후계자를 선출할 권한을 지닌 88명으로 이뤄진 ‘율법 전문가 회의’의 부의장으로도 선출된다.

라이시는 사법부 수장으로서 여러 개혁을 단행했고, 그 결과 마약 관련 사형수 규모가 줄었다. 그러나 이란은 여전히 중국을 제외하면 사형을 가장 많이 집행하는 국가이다.

한편 이란의 사법부는 보안군과 협력해 반대파들을 탄압하는 한편 이중 국적자 및 외국 영주권을 지닌 자국민들을 간첩 혐의로 기소하고자 노력했다.

2019년, 라이시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에 의해 제재 대상이 된다. 미성년자에 대한 사형 집행에 행정적으로 관여했으며, 논란이 있던 2009년 대선 이후 벌어진 야권의 ‘녹색 운동’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데 관여했다는 것이다.

2021년 대선 당시 라이시 현 대통령은 자신을 반부패 투사로 묘사했다

2021년, 라이시는 또 한 번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자신은 “국가 지도층을 변화시키고, 빈곤과 부패, 수치, 차별에 맞서 싸우고자 개인의 자격으로 이곳에 섰다”고 주장했다.

이후 강경파로 이뤄진 이란 ‘헌법수호위원회’에서 유명한 온건파 및 개혁파 후보의 대선 후보 자격을 박탈하면서 해당 대선은 사실상 의미를 잃었다.

이에 반정부 세력과 일부 개혁파들은 라이시의 당선을 위협할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거하고자 설계된 투표라며 유권자들에게 선거 보이콧에 동참해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라이시는 1차 투표에서 압도적인 득표율 62%를 기록하며 당선된다. 그러나 당시 투표율은 49%에 불과했다. 이는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사상 최저 대선 투표율이었다.

그해 8월부터 4년간 임기에 들어가게 된 라이시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국가 문제를 해결하고자 경제 상황을 개선”하고, 국제 사회의 제재를 해제하기 위한 “모든 외교적 계획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핵 협상 재개를 가리키는 부분이다. 2015년 이란은 주요 6개국 및 유럽연합과 자국의 핵 활동을 제한하는 합의에 도달했으나,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이러한 핵 합의를 파기하고, 이란의 경제를 겨냥한 제재를 다시 시행했다. 이후 이란과의 핵 합의 복원 협상은 오랫동안 교착 상태에 빠져 있었다.

이후 이란은 점점 더 많은 제재를 위반하며 보복에 나섰다.

또한 라이시 대통령은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약속했으며, 동시에 역내를 “안정화하는 세력”인 자국의 지역 내 활동을 수호하겠다고도 밝혔다.

한편 라이시 대통령의 강경한 입장에도 불구하고 핵 협상 재개에 대한 미국과의 협상은 지난 2022년 8월에 타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후 이란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건으로 이러한 노력은 결국 무산됐다.

반정부 시위로 흔들린 이란

2022년 9월, 이란 이슬람 공화국은 성직자들이 주도하는 신정 체제의 종식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로 흔들리게 된다.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혐의로 테헤란의 도덕경찰에 구금된 여대생 마흐사 아미니가 구금 중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수많은 시민이 ‘여성, 삶, 자유’를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온 것이다.

이란 당국은 아미시를 학대한 적이 없다며 부인했으나, UN이 파견한 조사단은 아미니가 “신체적 폭력을 당해 사망에 이르렀다”는 점을 밝혀냈다.

라이시 대통령의 집권 1년 만에 이란은 여성들의 주도로 일어난 신정 통치 반대 시위로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라이시 대통령은 이러한 불안 사태에 “단호하게 대처”할 것을 약속했고, 이란 당국은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했다.

공식적인 사망자 수는 발표된 바 없으나, UN은 신뢰할 수 있는 통계에 따라 시위대 551명이 보안군에 의해 사망했으며, 대부분 총격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이란 정부는 시위로 보안군 75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시위에 참여한 시민 2만 명 이상이 구금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UN 조사단은 고문에 의한 자백에 의존한 즉결 심판 절차에 따라 청년 9명이 처형됐다고 밝혔다.

이러한 반정부 시위는 이내 진압됐으나, 신정 제도 및 엄격한 히잡 규정에 대한 불만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수많은 여성과 소녀들이 공공장소에서 머리를 가려야 한다는 법에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가운데 이란 의회와 라이시 대통령은 새로운 법안 및 단속으로 이에 맞서고 있다.

역내 긴장 고조

지난해 3월, 라이시 대통령 행정부는 철저한 라이벌 관계이자 중동 내 수니파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외교 관계를 회복하기로 깜짝 합의했다. 양국이 관계를 단절한 지 7년 만이다.

그러나 그해 10월, 하마스가 경계선을 넘어 이스라엘 남부에 전례 없는 공격을 개시했고, 이스라엘이 이에 맞서 가자 지구에서 대규모 군사 작전을 개시하면서 역내 긴장감은 다시 고조됐다.

동시에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이라크와 시리아 내 여러 민병대 등 이란의 지원을 얻어 중동 전역에서 활동하는 여러 무장 단체 및 대리 조직이 팔레스타인과의 연대하겠다며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 수위를 높이고 있다.

그리고 지난달엔 이란이 시리아 주재 자국 영사관을 노린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에 사상 최초로 직접적으로 군사 공격을 감행하면서 갈등이 확전해 중동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당시 미사일 대부분이 이스라엘과 서방 동맹국, 아랍 내 파트너 국가들에 의해 격추됐으며, 이스라엘 남부 공군기지 1곳만 가벼운 피해만 입었다.

지난 4월 이란은 이스라엘 본토에 직접 미사일과 드론을 발사했다. 라이시 대통령은 이란이 “강철과도 같은 결단력”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자제하라는 서방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이스라엘은 이란의 공군기지를 향해 미사일을 발사하는 정도로 대응했다.

라이시 대통령은 이스라엘을 향해 드론과 미사일 300여 대를 발사한 해당 결정을 지지하는 한편, “우리의 강철과도 같은 결단력”을 보여준 공격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지난 19일 탑승한 헬기가 이란 북서부에서 추락하기 몇 시간 전, 라이시 대통령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란의 지지를 강조하며 “팔레스타인은 이슬람 세계의 1번째 이슈”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한편 라이시 대통령의 사생활에 대해선 별로 알려진 바 없다. 다만 아내 자밀레는 테헤란 소재 샤 히드 베헤쉬티 대학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들 부부는 이미 성인이 된 딸 둘을 두고 있다. 라이시 대통령의 장인은 마슈하드 내 강경파 고위 성직자인 아야톨라 아마드 알라몰호다이다.

이란 대통령 에브라힘 라이시는 누구인가?…'강경 보수 성직자' - BBC News 코리아

 

이란 대통령 에브라힘 라이시는 누구인가?…'강경 보수 성직자' - BBC News 코리아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헬기 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경파 성직자 출신으로 대통령이 된 라이시 대통령에 대해 자세히 살펴봤다.

www.bb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