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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사회: 1년 넘게 북한 쓰레기를 주우며 알게 된 것들 본문

백령도와 연평도 등 서해 5도에는 파도에 밀려 쓰레기가 많이 내려오는데, 그중에는 북한에서 떠밀려온 것도 꽤 있다.
1년 넘게 이런 북한 쓰레기를 2000여 점 넘게 주워 온 사람이 있다. 바로 북한 연구가인 강동완 동아대학교 정치학과 교수의 이야기다.
그는 북한 주민들이 버린 북한 쓰레기를 연구 자료로 삼아 최근 '서해5도에서 북한 쓰레기를 줍다'를 출간했다'라는 책을 펴냈다.
'낯설지만 익숙한 포장지'
지난달 27일 만난 강 교수는 우연히 포착한 장면 하나가 북한 쓰레기 연구의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백령도 해변을 여행하다가 낯선 포장지 하나를 발견하게 된 것.
한글이 적혀 있었지만, 한국 제품은 아니었다.
"그 쓰레기에 평양이라는 글자도 있고 또 국규(국가 규격을 의미하는 북한 단어)라는 단어도 있고요. 제가 그동안 북·중 국경을 다니면서 굉장히 다양한 북한 상품을 직접 봤기 때문에 한눈에 봐도 그게 북한 상품이라는 것을 알았죠."
그렇게 1년 넘게 모은 북한 생활 쓰레기는 과자와 사탕, 아이스크림, 빵, 음료수, 라면, 조미료 등 품목도 다양했지만, 종류도 놀라울 정도로 많았다.
그는 이를 "작은 마켓을 하나를 옮겨놓은 수준"이라고 표현했다.
당과류를 보면 짝퉁 '헬로키티'나 '곰돌이 푸' 캐릭터가 눈길을 끈다.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한 것인 양 포장 디자인은 화려했다. '전승', '꽃구름', '하늘' 등 고유의 브랜드 이름도 찾아볼 수 있었다.
강 교수는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꽉 짜인 그런 사회주의 톱니바퀴와 같은 북한 체제가 아니라, 뭔가 자본주의 시스템들이 돌아가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 주민이 '소비자' 개념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상품을 선택하고자 하는 개인적 욕망과 정서가 보인다"는 분석이다.
라면 제품 중에는 시판 한국 라면 포장지와 매우 유사한 제품도 있었다. 빨간색 바탕에 소 캐릭터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있는 모습이 매우 흡사했다.
강 교수는 "한국의 라면도 장마당에서 인기리에 유통되는 상품"이라며 "결국은 암묵적으로 북한 주민들에게 익숙한 그런 디자인을 카피를 한 거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가 모은 쓰레기 중에는 북한의 생리대 포장지도 있다. '봉선화'라는 브랜드에서 나온 제품들인데 그림은 있어도 '생리대'라는 단어는 쓰여 있지 않았다. 또한 '부인병 치료에 특효가 있다'는 과대광고로 볼 수 있는 표현도 있었다.
강 교수가 가장 아끼는 북한 쓰레기는 '대동강 주사기 바늘'이다.
희귀아이템이라 할 수 있는 의료 완제품을 우연히 발견해 연구 종류를 하나 더 추가했을 때 기쁨은 가히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고 한다.
당시 그는 바닷가에서 혼자 만세를 외쳤다.
'다양성' 속에 드러난 '폐쇄성'
강 교수는 북한 제품의 '다양성' 속에서 북한의 '폐쇄성'이 드러난다고 했다.
예를 들면, 탄산단물(탄산음료)의 주원료 설명을 살펴보면 '8월풀당'이라는 낯선 이름이 있다. 북한은 설탕 대신 식물 '팔월풀의 당 성분을 우려내 정제한 당을 탄산음료에 사용하고 있는 것.
"사탕수수를 수입해서 설탕을 정제하거나 가공할 수 있는 시설이 있고, 북한이 자유무역 체제 안에서 수입과 수출을 한다면 굳이 이 팔월풀당을 만들어낼 필요가 없거든요. 고립된 경제 안에서 자력갱생을 강조하다 보니까 이렇게 풀에서 당 성분을 찾아낼 수밖에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모은 쓰레기들은 실제로 북한 주민들이 널리 사용하는 것일까?
강 교수는 종종 그가 주운 쓰레기를 탈북자들에게 보여준다.
2016년을 전후로 반응이 갈린다고 한다. 2016년은 북한이 공업 제품의 다종화와 다양화를 시작한 해다.
그는 "그 전에 탈북한 분들은 평양에서 아주 잘 사는 사람들만 쓰는 것이라고 얘기한다"면서 "하지만 그 이후에 탈북한 친구들을 면접해보면, 아이스크림을 예로 들면 자기가 직접 장마당에서 사 먹은 것이라고 한다"고 했다.

쓰레기 줍다 지뢰 지대에 들어간 적도
강 교수는 쓰레기를 주우며 웃지 못할 일도 많이 겪었다.
아무도 없는 바닷가를 여기저기 살피다보니 수상한 사람으로 오해받아 현지 주민이 신고한 적도 있었다.
한 번은 지뢰 경고판을 보지 못하고 출입금지 구역에 들어가는 바람에 인근 군부대에서 긴급출동하는 사건도 겪었다.
그는 "교수가 그렇게 할 일이 없어 쓰레기 주러 다니냐" 비아냥 속에서 스스로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고 했다.
혼자 바닷가에서 운 적도 많다.
하지만 강 교수는 북한 쓰레기를 통해 미디어에 비친 북한이 아니라 "사람을 보게 됐다"고 했다.
이 포장지를 버린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흔적을 통해 의미를 발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집단주의에서 사상을 주입하려는 의도의 포장지 겉면과 그것을 실제로 사용해온 북한 주민들의 심리 상태도 함께 본다면, 이 쓰레기가 굉장히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그는 이제 범위를 넓혀 동해안에서도 북한 쓰레기를 줍고 있다. 서해에서는 보지 못했던 종류의 포장지들을 발견하고 있다.
연구를 확장해 북한의 유통 실태나 경제 상황을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도 크다.
강 교수는 올해 하반기를 목표로 '동해안에서 북한 쓰레기를 줍다'라는 책 발간을 준비하고 있다. '늘 발로 뛰는 연구자'가 되는 게 그의 신념이다.
"그냥 쓰레기라고 자꾸 표현하지만 저는 이제 '보물'을 찾으러 간다고 해요. 연구하는 사람에게는 연구 자료가 보물이니까요."
1년 넘게 북한 쓰레기를 주우며 알게 된 것들 - BBC News 코리아
당과류를 보면 짝퉁 '헬로키티'나 '곰돌이 푸' 캐릭터가 눈길을 끈다.
www.bb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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