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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중국에선 발 묶이고, 한국에선 생활고 위협받는 탈북민 본문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올해 1분기 입국 탈북자가 전년도 1분기 대비 42% 줄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때문에 미국에 가는 것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한국행을 결정했습니다."
지난해 7월 북한을 탈출한 후 미국행을 고대하며 태국의 한 이민수용소에서 4개월 남짓 지내 온 26세 전광진 씨. 코로나19로 그는 결국 미국행을 포기했다.
전씨는 약 3개월 전 미국 대사관에서 1차 인터뷰를 한 후, 다시 연락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미국이 탈북민을 난민 자격으로 받아들이기까지 일반적으로 오랜 시간이 걸려 이미 각오했었다.
이런 가운데 자신이 있던 수용소에서 수감자 1명이 코로나19 증세를 보이며 문제가 터진 것. 태국 내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는 1600명이 넘었고 사망자도 최소 10명이 발생해, 태국 정부는 일부 지역에 봉쇄령을 내렸다.
"미국이 지구 상 유일 초대국이라 가서 마음껏 공부하고 꿈도 이루고 싶었는데…" 전 씨는 자신을 돕고 있는 선교 단체를 통해 BBC 코리아에 아쉬움을 전했다.
탈북민을 포함해 목숨을 걸고 위험 지역을 탈출한 난민에게 코로나19 사태의 충격은 더 크다.
유니세프 헨리에타 포어 사무총재는 지난 1일 성명서를 내고 코로나19 팬데믹은 난민의 삶을 파괴할 수 있다고 했다.
전 씨는 독방에 수감됐고 언어도 달랐기 때문에 수용소에서 코로나19 증세를 보인 수감자가 나왔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
지난해 말 모처에서 BBC 코리아와 단독 인터뷰 당시 전 씨
탈북 경로 막혀 발 묶인 그들
전 씨처럼 코로나19가 발병하기 전에 중국을 탈출한 경우는 그나마 낫다. 탈북자의 경우 대개 북한과 국경을 맞댄 중국을 통해 탈출한다. 코로나19 발병 이후 중국 내 탈북자들은 두 달째 발이 묶인 상황이다.
미국의 북한 인권단체 링크(LiNK) 박석길 한국지부장은 중국 당국의 이동 통제가 강화되면서 1월 중순·말부터 탈북민들이 사실상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고 BBC 코리아에 말했다.
중국에서는 하나의 성에서 다른 성으로 이동할 때마다 코로나19에 걸리지 않았다는 건강진단서를 제출해야 한다. 탈북자의 그다음 경유지인 라오스, 베트남, 태국 등에서도 일부 봉쇄령을 내려졌고 이동제한조치도 시행 중이다.
중국 연길 아파트에 감금되어 있다가 탈출하는 탈북 여성
결국 중국 내 탈북자들은 중국에서 신분 없이 숨어 지내는 동시에, 강제 북송뿐 아니라 코로나19에 감염될 수 있다는 공포 속에서 지내고 있다고 북한인권단체들은 말한다. 중국 내 탈북자 수에 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일각에서는 15만에서 20만 명 정도로 보고 있다.
이들을 돕고 탈출시키는 단체들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탈북민 구출단체인 한국 갈렙선교회 김성은 목사는 "현재 (우리가 지원하는) 중국 내 탈북자가 30명이 있다"며 "숨어 지내는 동안에도 계속 재정을 투입해 보호해줘야 한다"고 BBC 코리아에 말했다.
하나원은 외부교육·면회 중단
통일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입국 탈북민 수는 135명(여성 96명, 남성 39)이다. 전년도 1분기 229명(여성 191명, 남성, 38명)의 58%로 거의 반 토막이 됐다. 1~3월 국내 입국 탈북자 135명은 2009년 이후 1분기 기준으로는 역대 최저 수치다.
북한인권단체들은 코로나19 여파가 올해 내내 지속되면 한국에 들어오는 탈북민 수가 20년 만에 처음으로 한 해 1000명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이미 한국에 입국하는 탈북민 수는 이미 수년 전부터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북-중 당국의 국경 경계 강화 등의 이유로 탈북민의 한국 입국은 2009년 2914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계속 감소세를 보여 왔다.
하나원도 외부교육과 면회를 중단하는 등 프로그램을 수정했다
그렇다면 탈북민 정착지원 교육기관인 하나원에 있는 탈북민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통일부 관계자는 하나원에 현재 몇 명 있는지는 밝힐 수 없으며 코로나19 확진자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BBC 코리아에 말했다.
앞서 하나원은 현장 체험 학습 등 교육원 밖에서 이뤄지는 프로그램을 폐지하고, 의료자원봉사를 포함한 견학·방문과 가족 간 면회를 전면 중단한 바 있다. 또 하나원 내 교육생들은 다 마스크를 쓰고 위생 교육을 받고 있다고 하나원은 밝혔다.
"하나원 교육생들은 입국 직후 국정원의 북한이탈주민 보호센터에서 두 달간 생활한다"며 "그곳에서 기초적인 건강 검진도 하기 때문에 현재 감염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이주태 하나원장은 연합뉴스에 설명했다.
국내 탈북민 상황은?
하나원 퇴소 후 사회적응을 돕는 단체들의 활동도 비대면, 온라인으로 전환됐다. 링크의 경우, 유튜브 라이브나 웨비나(온라인 세미나) 등을 통해 정착 선배들과의 만남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고 박 지부장은 말했다.
"목숨 걸고 탈북해 어렵게 한국까지 와서 자유롭게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데 이런 시기라서…"라며 "얼마나 답답하시겠어요. 자유롭게 살려고 왔는데 집안에 있는 시간이 많죠.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도 아무래도 답답해하십니다"라고 덧붙였다.
탈북자들은 통상적으로 수개월에서 많게는 수년 동안 중국 등에서 숨어 지낸다. 사진은 8년간 중국에서 감금생활은 한 탈북 여성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인 여명학교는 한국의 다른 학교와 마찬가지로 오는 9일부터 온라인 개학을 준비하고 있다. 여명학교는 코로나19로 기숙사를 닫았다. 70여 명 중 절반 넘는 학생들은 기숙사에서 생활해 왔지만 이들은 현재 정부가 지원한 소형 아파트에서 정부 지원금 월 40만원 정도를 받으며 살고 있다. 조명숙 교감도 좁은 공간에 머무르는 탈북 청소년이 겪을 심적 어려움을 걱정했다.
"가장 염려가 되는 건 우리 아이들이 북한이나 중국에서 그리고 여기서 사회에 나오기까지 굉장히 많이 갇혀 살았잖아요. 근데 이 아이들이 사는 임대아파트라는 게 9~14평 정도로, 굉장히 좁은 공간에서 계속 있어야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희는 빨리 국면이 해소돼서 아이들과 접촉해서 아이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그런 데 더 신경을 쓰고 싶은거죠"라고 조명숙 교감이 미국의 소리(VOA)에 말했다.
생계 타격도 우려
사회적 소외 외에도 생계에 타격이 있으리라는 우려도 있다. 지난해 8월에는 탈북자 모자가 아사한 채 발견돼 한국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정부는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탈북민에 대한 긴급 실태조사를 하기도 했다. 정부는 조사 결과 긴급 지원이 필요한 '위기의심자'가 총 553명으로 파악됐다고 밝힌 바 있다.
김성은 목사는 "탈북자 중에는 일용직 근로자 등 고용이 불안정한 경우가 많다"며 이런 가운데 자신의 생계뿐 아니라 북한에 있는 가족, 혹은 중국 내 오가지 못하는 가족을 도와야 하는 경우도 있어서 이중으로 고통을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대개 30%의 수수료를 떼던 송금 브로커들도 강화된 이동 통제로 이보다 더 많은 수수료를 요구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지난해 8월에는 탈북자 모자가 아사한 채 발견됐다
2018년도 탈북민의 월평균 소득은 189만9000원으로 2018년 한국 평균 임금근로자의 월평균 소득(297만원)의 약 63%였다. 또 통일부가 지난달 18일 공개한 2019년도 북한이탈주민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업별로는 무직·부양자, 노동자 등 직업능력 취약자가 전체의 84.9%를 차지했다.
링크의 박 지부장은 이런 시기일수록 탈북민들이 "물리적뿐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위축, 소외될 수 있다"며 "사람들이 대개 자신의 가족을 생각하지만 가족을 넘어 탈북민과 같은 사람들도 생각하며 글로벌 연대를 맺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BBC 뉴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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