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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든든한 동반자 급부상 본문
MUSIC: 몽골민요
‘몽매한 야만인’이라는 의미의 ‘몽고’는 이제 옛말에 불과합니다. ‘용감한’이란 뜻의 ‘몽골’은 이제 긴 잠에서 깨어나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자신들의 지도자를 뽑고 서구의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는 등 개혁, 개방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공산 체제를 버리고 자유 민주주의 체제로 돌아선 몽골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짚어보는 ‘몽골을 본다,’ 오늘 이 시간에는 중앙아시아와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믿을 수 있는 동반자로 급부상하는 몽골을 살펴봅니다.
(현장음: 몽골의 지방대학에서 미국인 강사와 영어회화 연습을 하는 학생들)
방금 여러분께서는 몽골의 한 대학에서 학생들이 미국인 강사와 함께 영어회화를 연습하는 것을 들으셨는데요, 몽골에서 영어가 제일 중요한 외국어가 된 지는 10년도 채 안됩니다. 오랫동안 러시아어가 공식적인 제2외국어였지만 지금은 영어가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거리 곳곳에는 몽골어 표기를 위해 빌린 러시아 문자 옆에 영문 상호가 눈에 띄고, 이제는 식당의 차림표(메뉴)에도 영어를 함께 적고 있습니다.
이 같은 영어 열기는 날로 뜨거워지는 몽골과 미국의 밀월관계의 일면을 잘 보여줍니다. 사실 이런 양국 관계는 몽골이 오랫동안 펼친 총력외교의 결과입니다. 1인당 국내총생산이 1,900달러에 불과한 몽골은 자신들보다 21배나 잘사는 미국에 카트리나 폭풍 피해가 일어났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완전히 침수되기도 전에 정부 차원의 지지를 선언하고, 기업인들은 재해 성금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앞서, 미국 뉴욕에서 9.11사건이 발생하자 몽골은 즉각 미국의 반테러 전쟁에 동참한다는 취지에서 미군기의 자국 영공 통과를 허용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이라크 점령에 자국 병력 130명을 파병했습니다. 인구가 턱없이 적은 몽골로서는 이라크전 파병국가 중 해당 국가의 전체인구대비로 환산했을 때 가장 많은 군인을 파견한 셈입니다.
얼마 전 몽골의 총리로 임명된 수흐바타르 바트볼드 전 외무장관은 특히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파병과 관련한 일련의 움직임을 두고 미국이 몽골의 ‘제3의 이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지리적으로 인접하지는 않지만 러시아와 중국을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대안인 ‘제3의 이웃’으로 미국과 손을 잡고 있다는 겁니다.
수하바타르 바트볼트: These decisions are made by the government but these are not easy decisions because...(더빙) 몽골 정부가 이런 결정을 내리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러시아와 중국이란 두 강대국의 ‘중간에 낀’ 몽골의 지리적,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몽골이 독자적으로 러시아와 중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런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일은 정말이지 어려웠고 여전히 어렵습니다.
미국 역시 몽골의 이런 적극적인 태도에 호응했습니다. 중앙아시아와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이 시장개방과 민주주의의 증진을 고취하는 데 가치가 있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미국 국무부 분석관을 역임한 몽골 전문가인 스티븐 뇌퍼 박사의 말입니다.
스티븐 뇌퍼: Mongolia is attractive to the United Sates because...(더빙) 몽골은 미국에 매력적인 국가입니다. 중국과 2,800마일, 러시아와 2,100마일의 국경을 접하고 있는데다, 동쪽으로는 북한, 서쪽으로는 카자흐스탄을 포함한 중앙아시아 지역의 후발 신생 민주국가가 있는 지역에 자리 잡았습니다. 미국이 마침내 몽골의 지정학적 위치가 줄 수 있는 전략적 이익에 주목했다고 봅니다.
이렇게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자 양국 관계는 탄력이 붙었다는 설명입니다.
우선 경제적으로 보면 양국 간의 무역관계가 빠르게 증가했습니다. 한국 순천향대학교 금융경영학과의 김홍진 교수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미국은 1997년 몽골의 최대 수출대상국이 되었고, 2000년대 내내 높은 수출 비중을 차지하면서 몽골의 2대 수출 대상국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와 더불어 미국은 다양한 원조를 몽골에 제공해오고 있습니다. 미국 국무부 산하 국제개발처를 통해 1991년부터 2009년까지 1억9천만 달러의 무상원조를 줬고, 미국 농무부를 통해 1993년 이래 식량지원을 해왔습니다. 2008년의 경우 이런 식량지원액은 5백만 달러에 이르렀습니다.
최근 국제개발처의 몽골 대표로 임명돼 지난 11월부터 몽골에서 일하는 척 하웰 씨는 자유아시아방송(RFA)과 한 통화에서 국제개발처가 몽골이 1990년대 초 민주주의와 시장위주 경제 체제를 향해 대폭적인 개혁조치들에 착수했을 때 물심양면으로 도왔다고 회상합니다.
Chuck Howell: 미국의 원조는 1991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지만, 그 이전부터 이미 지원했습니다. 미국과 몽골이 1987년에 수교한 직후부터죠. 국제개발처의 지원액은 몽골의 거시경제정책, 에너지 부문 구조조정, 재정 부문 개혁 등에 쓰였습니다. 구체적으로 정부 관리들이 금융 정책을 세우고, 몽골 의회가 관련 법률을 개정하는 일을 도왔고요, 나아가서 몽골에 미흡했던 외국인 투자자 보호 장치를 강화하는 등 건전하고도 효율적인 경제 체제를 세우는 데 일조했다고 자부합니다.
가장 주목할 만 한 점은 급속도로 강화되고 있는 양국 간의 군사적 협력입니다. 몽골 헌법은 외국과 어떤 형태의 군사동맹도 금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과의 교류는 거의 군사동맹 수준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1995년 몽골 국방장관의 방미를 시작으로 양국 국방 관계자의 상호방문이 이어지고, 군 개혁과 군사교육, 군사장비의 현대화에도 미국이 간여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재난구호 목적을 내건 합동 군사훈련이 1996년부터 시작됐고, 평화유지군의 성격을 띤 '칸 퀘스트 훈련'이 2003년부터 실시되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미국의 저명한 전략문제연구소인 스트래트포는 앞으로 미국의 군사력이 몽골 내에서 자유롭게 작전을 할 수 있을 만큼 동맹관계가 강화된다면, 미국이 러시아와 중국을 관찰하기 위한 전진 정찰초소를 설치할 수 있게 되리라고 관측하기도 했습니다.
징기츠칸의 고향인 몽골. 한때는 세계를 호령했지만 지금은 거대한 두 이웃에 의해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동화정책의 위협을 받는 소국(小國). 그런 몽골이 이제 중앙아시아와 동북아시아에서 세계 최대 강국인 미국의 믿을 수 있는 동반자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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