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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소년 레르쉬의 소망 본문

[NATO 모델]/UNICEF(유엔아동기구)

미얀마 소년 레르쉬의 소망

CIA bear 허관(許灌) 2008. 8. 13. 18:27
언젠가 가족을 만날 수 있겠죠?

미얀마 수도 양곤의 침례교여성연합회 건물 안의 큰 방에서 어린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얼마 전만 해도 이 곳은 각종 서류와 사무장비로 가득찬 사무공간이었지만 지금은 사이클론 나르기스로 집을 잃은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방이 되었다. 방 안에서는 한 무리의 소년들이 실내축구를 하느라 여념이 없다.
또 다른 쪽에서는 좀 더 어린 아이들이 미니볼링 놀이를 하면서 즐거워하고 있다. 아기를 재우기 위해 동화책을 읽어주는 엄마들도 보이고 소녀들이 색색의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리는 모습, 어린이들이 한데 모여 노래를 부르는 광경까지 방 안은 다양한 어린이들의 활기와 웃음으로 들썩거리고 있다. 이 방에서는 250명의 어린이들이 한꺼번에 게임이나 놀이를 할 수 있다.



사무기기 창고에서 어린이의 놀이공간이 된 이 방은 유니세프의 지원으로 운영되는‘어린이에게 친근한 공간’중 하나이다. 사이클론으로 고아가 되었거나 미아가 된 아이들에게 특별히 위로가 되는 곳으로 어린이들이 정신적인 상처를 극복하도록 돕기 위해 계속 만들어지는 중이다.

“저는 축구가 제일 좋아요.”
라푸타 출신의 12세 소년 레르쉬는 그렇게 말한다. 이번 사이클론으로 레르쉬는 부모님과 남동생, 여동생을 모두 잃어 버렸다. 어디엔가 살아 있기만을바랄 뿐이다.

“이 곳이 아주 좋아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그 곳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요. 유령들이 지금도 돌아다니고 있을 것 같아요.”

사이클론이 들이닥치기 직전에 레르쉬는 엄마와 저녁거리를 사기 위해 야채가게에 갔었다. 당시 입었던 셔츠와 반바지를 그대로 입고 있다. 그 때 잡았던 엄마손의 감촉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이제는 만날 길조차 요원하다. 사이클론이 밀려오던 그 순간 레르쉬는 밖에서 놀고 있다가 무서운 바람과 폭우를 피하기 위해 가까운 이웃집으로 피난을 갔다. 그러나 그 집도 거세게 밀려드는 물길을 견디지 못했다. 레르쉬는 살아남기 위해 나무 위로 올라갔고 이튿날 아침까지 나무 위에서 작은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나무 위에서 본 광경은 정말 끔찍했어요. 죽은 가축들과 부서진 집의 파편들, 그리고 많은 시체들이 거센 물결에 떠내려가고 있었어요.” 

레르쉬는 공포스러웠던 시간을 이야기하면서 애써 용감한 척 하려 했지만 어느새 마음에 격정이 일어나는지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 그의 음성이 슬픈 듯 가라앉기 시작했다.

“아침이 되자 저는 집으로 돌아갔어요. 우리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엄마와 아빠, 그 어떤 가족도 남아 있지 않았어요.”

가족을 찾기 위해 레르쉬는 허리까지 차오른 물을 헤치면서 마을 근처를 몇 시간 동안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생존자를 수색하던 구명보트가 레르쉬를 발견했고, 혼자 남은 그를 보트에 태웠다. 레르쉬는 교회에 설치된 임시 이재민 보호센터로 왔고, 그 곳에서 이모와 할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할머니는 심한 정신적 상처를 입은 레르쉬에게 마음의 안정을 찾아주기 위해‘어린이에게 친근한 공간’으로 손자를 데리고 왔다.

“이 어린이들은 대부분 끔찍한 경험을 했습니다. 우리는 어린이들이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 않을까 그 점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정말 많은 어린이들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견디고 있습니다. 그들이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곳을 제공해 주고 잘 돌보는 일이야 말로 이번 사태를 이겨나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한 공간에서 아이들은 잠시라도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느낌은 아이들이 자신이 겪은 끔찍한 일을 이겨내고 회복할 수 있는 과정의 시작이 됩니다.”

유니세프 미얀마사무소의 앤 클레어 두파이 아동보호사업국장은 그렇게 이야기한다. 현재 유엔은 사이클론으로 피해를 입은 미얀마 주민의 수가 25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중 약 1백만 명은 어린이들이다. 어린이에게 친근한 공간은 놀이공간만 되는 것이 아니다. 어린이들에게 인생의 기술을 가르치는 학교도 된다. 읽고 쓰기, 간단한 응급처치와 같은 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며칠 전만 해도 구석에 틀어박혀 말도 잘 하지 않던 아이들이 활기차게 움직이고 놀이를 즐기며 웃는 모습은 정말 감동적입니다.”

실제로 이 공간을 만드는 데 참여해온 우즈마 후케 유니세프 아동보호담당관은 기쁜 표정으로 말한다. 2008년 5월 말까지 유니세프와 협력기구들은 양곤과 이라와디 지역 임시거처와 마을에 30개의‘어린이에게 친근한 공간’을 만들었으며 60개가 추가로 만들어지고 있다.‘ 어린이에게 친근한 공간’은 가족과 헤어진 어린이들에게 가족과 친척을 찾아주는 역할도 수행한다. 이 곳을 찾는 어린이들은 모두 이름과 주소를 비롯한 자신의 정보를 등록하게 되는데 이는 가족을 찾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약 300명의 미아가 등록을 마쳤고 잃어버린 자녀와 친척을 찾는 사람들이 60여 명의 미아를 등록서류에 올렸다. 이러한 활동덕분에 일부 아이들은 잃었던 가족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아직 레르쉬의 가족 중 누구를 보았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엄마, 아빠 뿐 아니라 어린 동생의 생사조차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레르쉬는 언젠가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

“이 곳에서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어요. 하지만 가족들이 그리운 건 어쩔 수 없어요. 바로 아래 여동생이 특히 보고 싶어요.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가족들 생각에 한참을 울기도 해요.”

레르쉬는 오늘 밤에도 가족을 그리며 슬퍼하겠지만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 속에서 슬픔을 차차 이겨내게 될 것이다.

나타 키나판/유니세프 미얀마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