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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장 특별기고문] 여우와 두루미 우화의 교훈

CIA Bear 허관(許灌) 2007. 11. 20. 21:20
 

북한 ‘개혁·개방’ 용어 사용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

 

‘2007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지난 9월 11일,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경제인들과의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여우와 두루미’의 우화를 예로 들며 “지금까지 대북정책에서 비난을 많이 듣는 이야기가 ‘왜 여우가 두루미처럼 생각하느냐’ 라는 것이지만 저는 문제를 풀자면 ‘여우가 두루미처럼 사고해야 신뢰를 얻을 수 있고 비로소 이 문제가 풀리지 않겠느냐’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남북한 간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며, 북측의 입장을 배려해 주는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던 것이다.

 

“개혁·개방 용어 사용 신중”…일부 언론 진의 곡해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중 10월 3일 평양 옥류관 오찬과 10월 4일 개성공단을 방문한 후 귀로에 “북한에 대해 ‘개혁·개방’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경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를 두고 요즈음 일부 언론에서 ‘햇볕정책의 실패를 고백한 일’이라거나 ‘김정일 위원장이 개혁을 거부하도록 보장했다’고 하는 등의 보도가 나오고 있다. 회담 전 과정을 지근거리에서 수행한 나의 입장에서 볼 때 이는 대통령의 진의를 매우 곡해한 것으로 여겨진다.

북한은 우리가 수차례 ‘북한에 대한 흡수통일은 배제한다’고 천명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측의 북한 개혁·개방 논의에 대해 “남조선 당국이 떠드는 개혁·개방의 본질은 우리를 내부로부터 와해시키려는 것”(2004년 11월 1일, 노동신문)이라거나 “남조선의 일부 세력들이 개혁개방으로 유도해야 한다는 등의 망발을 서슴치 않고 있다”(2007년 5월 25일, 노동신문)고 하는 등 여전히 의심을 풀지 않고 있다.

 

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중 10월 3일 평양 옥류관 오찬과 10월 4일 개성공단을

방문한 후 귀로에 “북한에 대해 ‘개혁ㆍ개방’ 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경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북한이 이같이 ‘개혁·개방’이라는 용어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은 1980년대말 개혁·개방을 추진했던 구소련과 동구권 국가들의 체제붕괴를 목격한데서 비롯된다. 당시 북한은 서방권 국가들의 공산권 정책에 대해 “제국주의자들이 벌이고 있는 ‘평화적 이행전략’은 민주주의와 자유의 간판을 들고서 사회주의를 내부적으로 와해시키려는 음흉한 목적이 있다”(1991년 8월 20일, 노동신문)고 비난하는 등 개혁·개방의 여파가 북한체제에 미치는 것을 적극 경계했다.

 

시장경제 요소 도입하면서 ‘변화·혁신·개선’으로 표현하는 이유

 

비록 북한은 개혁·개방이 갖고 있는 부정적 의미로 인해 내부적으로 ‘개혁·개방’ 용어의 사용을 금기시하고 대신에 ‘변화·혁신·개선’으로 표현하도록 하고 있지만, 경제적 의미에서 실질적인 ‘개혁·개방’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고, 시장경제 요소를 점진적으로 도입하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북한은 2002년 들어 물가·임금 현실화, 배급제 폐지, 기업 자율권 확대 등 이른바 ‘7.1 경제관리개선’ 이라고 불리는 조치를 취했으며, 그 이후 종합시장 신설·상업은행법 제정 등 상업·금융 부문에서 시장경제 요소를 점진적으로 도입했다. 이와 함께 2002년 9월과 11월, 신의주·개성·금강산을 특구로 지정한다고 선포하기도 하였다.

 

이밖에도 북한은 현재까지 김일성대학에서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해 강의를 하고 있으며, 경제 관료들에 대해서도 중국·베트남·스웨덴 등지의 경제시찰과 연수를 통해 해외의 경제발전 경험을 습득토록 하고 있다.

 

이 같은 조치는 국내외의 북한전문가들 사이에서 ‘북한도 경제회생을 위해 부분적이나마 시장요소를 도입하는 등 경제개혁 조치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공동선언문 서명에 앞서 악수하는 남북 정상

 

‘개혁·개방’ 에 혼재된 의미에 ‘체제 붕괴’ 위협느껴

 

이로 볼 때 북한이 ‘개혁·개방’이라는 용어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동구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붕괴 경험이 보여주는 역사적 교훈과 더불어, ‘외부에서 북한에 대해 개혁·개방을 요구하는 것’을 ‘북한체제 붕괴 책략’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간 우리 측이 사용해 온 북한의 개혁ㆍ개방에 대한 시각이나 용어를 보면, ① 북한의 계획경제 시스템의 결함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서방의 자본이나 기술을 도입하게 하는 경제적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으나 ②이를 통해 북한 체제를 다원화된 사회로 유도하는 정치적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가 북한의 ‘개혁·개방’에 대해 혼재된 의미를 사용함으로써 북한으로서는 ‘북한체제 붕괴’ 또는 ‘흡수통일’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위협을 느낄 수 있었으리라고 추정할 수 있다.

 

실례를 들어 보면 우리 측은 ‘신정부는 북한의 개혁개방 및 고립 탈피 유도위해 노력할 것’,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유도해야 통일 기반 조성 가능’, ‘북한을 개혁 개방으로 이끌어 수준을 높여 놓으면 통일 비용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 등으로 언급한 바 있다.

 

특히 개성공단에 대해서도, ‘개성공단은 북한 개혁·개방 유도 목적’ 이라고 표현함으로써 북측의 우려를 유발한 측면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남북정상회담장 전경

 

‘역지사지’ 하는 자세에 담긴 실사구시적 사고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우리 측은 순수한 경제적 의미로 북한의 개혁ㆍ개방을 위해 ‘특구 추가개발’을 제의했다. 그러나 북측은 “남측에서 개성공단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우리 측 제의에 대해 ‘북한 체제 붕괴 영역을 더 넓히려는 의도’라고 의구심을 나타냈다.

 

이를 간파한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에게 미국이 북한의 체제를 붕괴시키거나 남측이 북측을 흡수통일하려는 의도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은 북측의 우려를 누그러지게 하는 방편으로 “북한에 대해 개혁·개방이란 용어의 사용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대북정책은 한반도의 평화와 공동 번영, 화해를 통한 통일을 지향하고 있다.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역지사지’ 하는 자세를 언급한 배경에는 이와 같은 남북한간의 현실을 직시하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민족적 염원을 실현하기 위한 실사구시적 사고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김만복 국정원장이 김위원장과 대화하며 회담장을 나오고 있다

 

상대 입장 배려는 대화의 기본 원칙

 

목표에 이르는 과정에서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함으로써 공동의 목표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 ‘역지사지 접근법’의 요체이다. 대화나 협상에는 상대방이 있는 만큼 상대의 입장을 배려하는 것은 대화의 기본 원칙이며, 이는 남북간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타협의 룰’이라고 할 것이다.

 

사소한 것이라도 상대방의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적극적 으로 해소하는 것이 대화의 기본이라고 본다. 이것이 대통령이 “(북측이) 굳이 꺼려하는 개혁ㆍ개방이라는 용어 사용에 신중하자”는 소회를 밝힌 배경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발상의 전환은 남북간 인식의 괴리를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인 배려가 필요하다는 점을 언급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진정한 화해와 통일은 남북간에 뿌리 깊이 존재하고 있는 불신의 벽이 허물어지고, 마음속으로부터 동의가 이루어지는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귀가 빙빙도는 사람 그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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