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항일 무장투쟁 경력을 놓고 북한의 김일성 주석과 진위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던 독립투사 김경천 장군이 직접 쓴 수기를 KBS 취재팀이 입수했습니다.
⊙앵커: 그 당시 작전과 독립군의 상황이 자세히 적혀 있었습니다.
성재호 기자입니다.
⊙기자: 본명이 김광서인 김경천 장군은 북한 김일성 주석이 그의 항일경력을 도용했다는 주장이 나올 만큼 1920년대 만주와 시베리아를 무대로 항일무장 투쟁을 벌였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입니다.
KBS뉴스가 입수한 이 육필 수기에는 일본육사를 졸업한 김경천 장군이 일신의 영달을 뒤로하고 풍찬노숙에 고된 독립운동에 뛰어든 과정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인터뷰: 주변 친구들 말대로 결행하자면 서간도나 북간도, 러시아 국경 등으로 나가는 것이다.
내 자신도 십오 년을 와신상담하며 이날을 기다려왔다.(1919년 3월 1일 직후)
겨울이 되면 군사행동에 불리하니 빨리 무기를 준비해 압록강을 넘자고 했다.
무기준비위원은 나와 신팔균 두 사람이었다.(1919년 초가을 신흥무관학교 시절)
⊙기자: 만주 독립군 양성기관이었던 신흥무관학교가 직접 국내 진공작전까지 계획했던 사실도 수기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기자: 러시아 혁명군에게 부대를 해산당하고 죽임까지 당했던 독립군의 안타까운 상황도 적혀 있습니다.
국한문을 섞어 쓴 80여 쪽의 이 수기는 1925년 연해주에서 작성된 것으로 홍범도 장군 기념사업회가 김경천 장군의 막내딸로부터 건네받아 처음 공개되었습니다.
⊙장세윤(고구려연구재단 연구위원): 독립운동 당사자들이 쓴 자료가 많지 않았고요.
특히 만주, 연해주, 20년대 초반 상황을 알려준 자료는 드물었기 때문에 새로운 의미로 바뀔 수 있는 그런 귀중한 자료라고 생각이 되고...
⊙기자: 김경천 장군은 1937년 가족들과 함께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당했고 현재 후손들은 카자흐스탄과 러시아 등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발레리 김(김경천 장군 외손자): 다른 유품들도 더 있습니다.
일부만 유족에게 돌려주고 나머지는 등록이 안 됐다며 안 주고 있습니다.
⊙기자: 김경천 장군은 지난 1998년 한국 정부로부터 뒤늦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습니다.
KBS뉴스 성재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