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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멀라 해리스: '미국 역사상 첫 여성 부통령'의 다양한 정체성 본문

Guide Ear&Bird's Eye/영국 BBC

카멀라 해리스: '미국 역사상 첫 여성 부통령'의 다양한 정체성

CIA Bear 허관(許灌) 2024. 10. 25. 10:12

올해 7월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이 대선 출마를 포기한다고 결정한 지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미국 민주당은 카멀라 해리스(59) 부통령을 당의 새로운 대선 후보로 내세우고자 결집하기 시작했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꿈꾸는 해리스 부통령이 선거 운동에 나서면서 진보 성향의 유권자들은 다시 활력을 얻고 있으며, 지난 2달간 모인 기부금만 6억7100만달러(약 9200억원)이다.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모은 기부금의 거의 3배에 달하는 규모다.

그러나 이곳까지 오르기까지 해리스 후보는 독특하고도 험난한 여정을 거쳤으며, 답하기 쉽지 않은 여러 질문을 맞닥뜨려야 했다.

해리스 후보의 커리어, 주요 사건 및 어떻게 미국 최초의 흑인 여성 대선 후보가 될 수 있었는지 그 과정 등을 살펴봤다.

어떻게 부통령이 됐나

해리스가 대선 출마 의사를 밝힌 건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캘리포니아주 앨러미다 카운티 검찰청 차장검사로 경력을 시작한 해리스는 2004~2011년까지 샌프란시스코의 검사장을 지냈다.

그 후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으로 승진했다. 미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주인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높은 법조인 자리인 법무장관에 오른 최초의 여성이자 흑인이었다.

그 여세를 몰아 2016년에는 캘리포니아를 대표하는 연방 상원의원직에 출마했고, 당시 청문회에서 보여준 검사 스타일로 큰 화제가 됐다.

그러나 더 많은 인파와 주요 토론 순간이 많았던 2020 대선 경쟁에서는 자신의 이념과 정책 플랫폼을 명확히 표현해내지 못했고,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채 물러나야만 했다.

그렇게 선거 운동을 1년도 채우지 못했으나, 대선 후보로 나선 바이든 전 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지목되며 해리스는 다시 전국적인 주목을 받게 된다.

해리스의 공보 담당자였던 언론인 길 듀란은 이를 두고 “해리스에겐 큰 행운의 반전”이라고 표현했다.

듀란은 “많은 이들이 해리스가 야망이 있고 스타로서의 잠재성을 지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 백악관에 입성할 만큼의 집중력이 있거나 수련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고 보는 이들이 많았다”면서 “그러나 해리스에게 타고난 재능이 있다는 건 분명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취임 이후 해리스는 몇 가지 주요 이니셔티브에 집중했으며, 바이든 행정부가 가장 자랑할 만한 일부 업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내기도 했다.

여야 의석이 동수인 상원에서 해리스는 부통령으로서 역사상 가장 많은 캐스팅보트를 행사한 인물이기도 하다. 해리스의 투표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코로나19 관련 경제 지원금을 제공하는 내용의 ‘미국 구조 계획’법 등이 통과될 수 있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멕시코 국경에 몰리는 이민자 수가 기록적인 수준을 넘어선 상황에서 해리스 부통령에게 근본 원인을 해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는 공화당 측에서 해리스가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고 지적하는 부분으로, 공화당원들은 물론 일부 민주당원들조차 해리스가 취임 후 6개월이 지나서야 국경 지역을 찾았다는 소식에 반감을 표했다.

이보다 더 최근 일로는, 2022년 연방 대법원이 낙태권을 보장하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은 이후 해리스는 행정부 인사 중 앞장서서 낙태 금지로 인한 피해를 강조하고 나섰다.

생식권을 둘러싼 이 같은 논란은 올해 8월에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도 계속 중점적으로 다뤄졌으며, 이는 ‘자유’라는 더 광범위하고도 고무적인 메시지와 잘 어울렸다.

해리스는 자신의 커리어 중 가장 큰 규모의 연설이었던 해당 전당대회의 기조연설에서 트럼프와 공화당은 전국적인 낙태 제한이라는, 많은 이들이 원치 않는 일을 해내려는 설계자들이라고 비난했다.

해리스는 “간단히 말하면 저들은 제정신이 아니”라면서 자신이 대통령이 된다면 ‘로 대 웨이드’ 판례가 보장한 낙태권을 다시 회복하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많은 이들이 트럼프가 정치적으로 더 중도에 가깝다고 본다는 일부 여론조사가 발표되는 가운데 해리스는 전국의 유권자들에게 자신을 제대로 다시 소개하고자 애쓰고 있다.

2020년 선거 운동 당시 해리스는 이민, 성소수자(LGBT) 인권과 같은 이슈에 대해 좌파적인 성향을 드러냈으나, 검사 시절 행적으로 여러 번 공격당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 해리스는 자신을 유죄 판결을 받은 중범죄자를 무너뜨릴 사법인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과 같은 중산층 가정을 위한 진보적 의제도 실천하겠다는 약속이다.

해리스는 “커리어 내내 내 고객은 단 한 명, 국민뿐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해리스의 뿌리

해리스는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 이민자 부모(인도 태생의 어머니와 자메이카 태생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해리스가 5살 때 이혼했으며, 이후 암 연구자이자 시민권 운동가이며 힌두교도인 어머니 시야말란 고팔란 해리스가 도맡아 키웠다.

해리스는 어머니가 딸들에게 준 교훈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곤 한다.

해리스는 전당대회에서 “어머니는 강인하고 용감했으며, 여성 건강 증진을 위한 싸움에서 앞장선 인물”이라면서 “딸들에게 불의에 대해 불평하지 말고, 무언가 행동으로 옮기라고 가르쳤다”고 회고했다.

아울러 해리스는 어머니와 함께 인도를 방문하며 자신의 인도 정체성을 접하기도 했으나, 자신과 여동생 마야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오클랜드의 흑인 문화를 받아들이며 자랐다고 설명했다.

해리스는 자서전 ‘우리가 품은 진실’에 “어머니는 자신이 흑인인 두 딸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면서 “어머니는 자신의 새 조국은 마야와 절 흑인 여자아이로 바라보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자신감 넘치는 자랑스러운 흑인 여성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셨다”고 적었다.

이러한 다문화 가정 출신 및 성장 배경은 해리스가 수많은 미국의 정체성에 호소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미국에서도 지역의 정치를 바꿀 만큼 급격한 인구통계학적 변화를 겪은 일부 지역에선 해리스를 출세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로 바라본다.

어린 시절 카멀라와 여동생 마야, 어머니의 모습

하지만 해리스는 미국에서도 역사적으로 명문 흑인 대학으로 손꼽히는 하워드 대학에서 무엇보다도 자신의 인생을 형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경험을 했다고 말한다.

리타 로사리오-리차드슨은 1980년대 하워드대 재학 시절 학생들이 캠퍼스에 모여 정치, 패션 등에 대해 토론하던 시절 해리스를 처음 만났다. 그리고 그때부터 “해리스의 토론 실력이 예리함을 알아챘다”고 한다.

로사리오-리차드슨과 해리스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경험, 교내 공화당원들과 열띤 토론을 벌이려는 열정을 바탕으로 친해졌으며, 심지어 둘 다 천칭자리라는 공통점까지 합쳐져 유대감을 쌓아 나갔다.

한편 당시 미국은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시기였다.

로사리오-리차드슨은 “당시 레이건이 대통령이었으며, 인종차별적인 시절이었다. ‘트랜스 아프리카’와의 결별, 마틴 루터 킹 주니어 탄생일 기념 이슈 등으로 말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아울러 로사리오-리차드슨은 “우리는 노예였던 자들의 후손이자, 식민지에서 벗어난 유색인종의 후손으로서 우리에게는 특별한 역할이 있으며, 교육을 통해 사회적 변화를 끌어낼 특별한 위치에 서 있음을 알았다”고 설명했다. 이는 해리스가 경험한 대학 생활의 일환이자 그가 품은 철학이기도 했다.

하지만 해리스는 백인 인구가 더 많은 곳에서도 잘 지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캐나다 맥길 대학교에서 교수직을 맡았을 때 해리스는 여동생 마야도 함께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5년간 학교에 다닌 적도 있다.

해리스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언제나 편안함을 느낀다면서 그저 자신은 ‘미국인’이라고 간단히 표현한다.

2019년 ‘워싱턴포스트’지와의 인터뷰에서는 정치인들이 피부색이나 성장 배경으로 인해 특정 관념에 갇혀선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시 해리스는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나는 그저 나 자신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 사실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재치 있는 토론 능력

로사리오-리차드슨의 증언처럼 해리스는 일찍부터 장벽을 뚫고 돌파하는 몇 안 되는 여성으로서의 자질을 보였다.

로사리오-리차드슨는 “이렇듯 두려움을 모르는 모습으로 인해 난 해리스를 (하워드 대학의) 토론팀에 가입하도록 이끌었다”고 회상했다.

재치와 유머도 해리스가 지닌 무기 중 하나다. 2020년 대선 승리 이후 해리스의 SNS에 올라온 영상 속 해리스는 바이든과 함께 진심으로 웃으며 “우리가 해냈어요, 우리가 해냈어요, 조. 당신은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될 거예요!”라고 말한다.

로사리오-리차드슨은 당시 바이든에게 이 중요한 소식을 알리는 전화 통화 속 해리스의 이 환한 웃음을 바로 알아챘다.

“해리스는 언제나 이 웃음을 잃지 않았으며, 유머 감각도 잃지 않았습니다. 재치도 있어 대학 토론에서도 상대에게 요점을 제대로 전달하곤 했죠.”

‘마멀라’ 해리스, 역사를 써 내려가는 자

해리스는 상원의원 시절인 2014년, 변호사 더그 엠호프와 결혼해 콜, 엘라의 새엄마가 됐다.

2019년 ‘엘르’지를 통해 해리스는 새엄마가 된 경험에 대해 털어놓으며, 이후 수많은 언론 헤드라인을 장식한 ‘마멀라’라는 별명에 관해서도 설명했다.

“더그와 결혼했을 당시 저와 (남편의 자녀인) 콜과 엘라는 ‘새엄마’라는 호칭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게 (어머니라는 뜻의 ‘맘(mom)’과 ‘카멀라’를 합친) ‘마멀라(Momala)’라는 별명을 만들어줬습니다.”

콜과 엘라는 아빠와 함께 2024년 민주당 전당 대회 무대에 올라 해리스와 “크고 아름다운 자신들의 가족”을 축하했다.

아울러 해리스의 여동생 마야와 조카 미나, 마야의 두 손주도 무대에 올랐다.

한편 해리스를 미국 역사상 여러 세대에 걸쳐 이어진 흑인 여성 운동의 상속자로 봐야 한다는 이들도 많다.

미국 퍼듀대학에서 정치학 및 미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 대해 연구하는 나디아 브라운 교수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해리스는 패니 루 해머, 엘라 베이커, 셉티마 포인세트 클라크 등 유명 흑인 여성 운동가들의 뒤를 잇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해리스는 풀뿌리 운동가, 선출직 공무원 및 백악관으로 향하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한 후보들의 유산을 계승한 인물”이라는 설명이다

 

2024 미국 대선: ‘미국 역사상 첫 여성 부통령’ 카멀라 해리스는 누구인가? - BBC News 코리아

 

2024 미국 대선: ‘미국 역사상 첫 여성 부통령’ 카멀라 해리스는 누구인가? - BBC News 코리아

미 역사상 첫 여성 부통령이자 첫 흑인 및 아시아계 부통령인 카멀라 해리스의 성장 배경 및 정체성 등에 대해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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