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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총통 선거 앞두고… 가짜 뉴스로 ‘미국 회의론’ 씨앗 뿌리는 중국 본문
대만 총통 선거 앞두고… 가짜 뉴스로 ‘미국 회의론’ 씨앗 뿌리는 중국
CIA Bear 허관(許灌) 2024. 1. 8. 17:37
"우파 국민당 허우유이 후보와 중도 민중당 커원저 후보, 좌파 민진당 라이칭더 후보...민생과 친중 진보세력의 투표 성향이 차기 총통선거에 큰 영향?"
오래됐지만 효과적인 소문이었다. 바로 대만인들이 “독이 든” 미국산 돼지고기를 먹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아울러 몇 주 전부터 대만에선 대만 정부가 중국을 공격하기 위한 생화학무기를 제조하고자 비밀리에 시민들의 혈액을 채취해 미국에 넘기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다.
이 두 소문 모두 곧장 가짜 뉴스로 드러났다.
하지만 오는 13일 총통 선거 및 의원 선거를 앞둔 대만에선 이러한 소문이 꽃을 피우고 있다.
‘이메이룬’, 즉 미국에 대한 회의론은 대만이 그 최대 동맹국인 미국에 마치 장기 말처럼 이용당하고 있다고 묘사하며 대만의 미국에 대한 믿음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러한 이메이룬의 궁극적 목표는 결국 미국과 대만 관계에 틈을 만들어 두 팔 벌려 환영하는 중국의 품에 대만인들이 안기게끔 유도하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지난 2018년 해당 용어를 처음 만든 인물이자 대만에서 허위 정보를 연구하는 양광순 연구원은 “전쟁이 일어나거나, 상황이 미국에 유리하지 않을 경우 미국이 대만을 지지하지 않거나 포기할 것이라는 등의 이야기가 돌고 있는 모양새”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허위 정보 전문가들은 이러한 가짜 뉴스를 유포하는 데 중국이 관여, 혹은 심지어 직접 이러한 메시지를 만들어내고 있을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증거는 친중 성향의 대만 언론과 정치인들을 가리킨다.
이러한 이메이룬이 언제나 음모론적인 내용만 담고 있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미국을 나쁘게 그리거나, 신뢰할 수 없는 초강대국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대만의 또 다른 허위 정보 전문가인 푸마 셴 박사는 “중국의 입장에서 이는 여론전”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이 더 낫다고 사람들을 납득시키기란 어렵지만, 미국을 문제 있는 나라라고 납득시키기는 상대적으로 더 쉽습니다 … 그리고 중국은 이것만 돼도 자신들의 성공으로 여길 것입니다.”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 중 하나인 대만의 ‘TSMC’가 미국에 진출했을 땐 미국이 대만의 자원을 “파내서 가져가고” 있으며, 강요하고 있다는 말이 돌았으며, 대만이 미국의 무기를 수입했을 땐 미국이 미덥지 않은 무기를 팔아 대만을 “속였다”는 말이 돌았다.
이는 대만의 싱크탱크 ‘IORG’가 2021~2023년 기준 중국어로 된 미디어와 SNS, 대만의 온라인 포럼 플랫폼인 ‘PTT’와 메시지 플랫폼인 ‘LINE’ 등에서 발견한 84종의 이메이룬 중 일부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한 생화학무기에 대한 소문은 한 대만 언론사의 근거 없는 보도를 통해 처음 수면 위로 드러났는데, 당시 일부는 중국 정부가 관련돼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돼지고기 관련 소문은 미국 정부가 자국산 돼지고기를 대만산으로 몰래 빼돌리고 있다는, 온라인에 게시된 어느 증거 없는 주장에서 시작됐다. 해당 게시물이 올라온 지 몇 주 뒤엔 미국산 돼지고기에 독이 들었다는 또 다른 주장이 제기됐는데, 이 주장은 친중 성향의 어느 홍콩 신문사의 보도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미 오래전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 난 보도였다.
사실 미국산 돼지고기가 안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주장은 이미 대만에서 수년 전부터 꾸준히 제기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치열한 접전이 벌어질 듯한 총통 선거를 앞두고 때마침 다시 돌아온 것이다.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의 라이칭더 후보는 허우유이 국민당 후보를 불과 몇 퍼센트포인트 차이로 앞서고 있을 뿐이다.
셴 박사는 허위 정보 유포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선 유권자의 약 3% 정도만 설득하면 된다고 추정했다.
지난 총통 선거 기간에도 대만에선 민진당을 겨냥한 대규모 허위 정보 파동이 일었다. 비록 차이잉원 총통이 압도적인 표 차로 연임에 성공하며 중국에서 유입된 듯한 이 허위 정보 퍼뜨리기는 결국 실패했으나, 이러한 가짜 뉴스 파동은 많은 대만인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이후 대만의 정치적 지형은 변했다. 우선 중국과의 긴장이 한층 더 고조됐다. 중국은 평화를 말하면서도 무력 사용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으며 대만 통일에 대한 의지를 거듭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에 대한 신뢰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만인들의 미국에 대한 신뢰는 여전히 중국에 대한 신뢰보다 훨씬 크다. 그러나 매년 대만 학자들이 실시하는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을 신뢰할 수 있는 국가로 본다는 비율은 전체 응답자의 34%에 불과했다. 2021년에 기록된 45%와는 차이가 있다.
‘대만 여론 재단’이 실시한 또 다른 여론조사에 따르면 20대 초반의 대만인 중 51%가 이메이룬에 동질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연령대에서 가장 높은 비율이었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대만 여론 재단’은 청년들이야말로 전쟁이 일어날 경우 투입될 가능성이 가장 큰 집단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러한 상황은 대부분 미국이 자초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보여준 형편 없는 철군과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추가 지원을 두고 분열된 미 의회 등을 바라보며, 향후 중국이 공격해와도 미국이 대만을 버리거나, 제대로 개입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대만인들의 우려가 커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선거에서 국민당 측 부총통 후보이자 중국과 더 친밀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메이룬을 조장하는 자오사오캉 후보는 “대만이 제2의 아프가니스탄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원하는 게 전쟁인지 평화인지 똑바로 잘 생각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IORG의 유치하오 전문가는 이메이룬은 의심의 “씨앗을 뿌리는” 역할을 했다고도 볼 수 있다면서 “만약 미국이 잘못을 저지르면 과거 뿌려진 씨앗이 싹트며 이미 이전에 지닌 의심이 더욱 강화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시아의 고아’
여느 선전선동 혹은 허위 정보가 그렇듯, 대만 내 이메이룬 또한 식품 안전이든, 전쟁 가능성에 관한 것이든 두려움을 먹고 자란다.
그러나 이메이룬은 대만인의 정신에 박힌 근본적인 존재, 즉 미국과의 관계에 대한 수십 년간의 불안감을 파고들기도 한다.
이에 대해 양광순 연구원은 “고아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거 대만은 여러 제국의 식민지였습니다. 이전 지배자에서 다시 새로운 지배자의 손에 넘겨졌죠. 대만의 집단적 기억엔 이러한 역사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가장 직접적인 계기는 1979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79년은 미국이 수개월에 걸친 비밀 협상 끝에 중국과의 외교 관계를 공식화한 해다. 이는 국제 사회를 놀라게 하는 한편 대만엔 큰 실망감을 안겨준 사건이었다. 미국은 대만 대신 중국을 인정하며 중국과 수교하고 대만과 단교했다.
하지만 동시에 미국은 대만이 스스로 방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대만관계법’도 통과시켰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은 오늘날까지 대만과 비공식적이지만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무기도 수출한다.
하지만 이 당시 단교로 인해 “대만이 다시 미국에 의해 버림받을 수도 있다”는 사고방식이 심어졌다는 게 양 연구원의 설명이다.
‘고아가 바람에 울고 있네 … 서풍은 동방에서 슬픈 노래 부르네’라는 가사를 담은 곡 ‘아시아의 고아’가 1980년대 대만에서 크게 히트할 정도로 이때 대만인들은 깊은 상처를 받았다.
아울러 양 연구원은 그래서 이메이룬은 평화 보장을 위해선 대만이 중국과 더 가까워져야 한다는 친중국적 서사와 맞물려 “서로 밀고 당기는 힘”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언급했다.
“대만이 고아라면 미국 밑에 남아있기보단 대국[즉 중국]으로 돌아오는 탕자가 돼야 한다는 거죠.”
한편 전문가들은 미국에 대한 신뢰 재강화야말로 이러한 회의론을 중화할 최고의 해독제라고 말했다.
유치하오 전문가는 “미국이 이러한 미국 회의론의 위험성을 더 잘 인식하고, 대만과의 파트너십을 둘러싼 긍정적인 측면들을 다시 한번 강조해준다면 … 대만인들 또한 이 [관계]를 좋은 것으로 바라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은 이러한 서사를 언제나 늘어놓습니다. 중국으로부터 대만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항상 얘기하죠. 그러나 미국의 정책적 서사엔 이러한 메시지가 많이 보이지 않습니다.”
한편 대만 당국은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공익 캠페인, 제보를 위한 핫라인 개설, 가짜 뉴스를 찾아내는 AI 챗봇 도입 등 허위 정보 유포에 맞서기 위한 방어책도 강화하고 있다.
또한 비록 언론 자유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키긴 했으나, 대만 의회는 가짜 뉴스 단속 법안도 내놨다.
그러나 이미 대만은 전 세계에서 외국 정부가 추진하는 허위 정보가 가장 집중적으로 유포되는 곳으로 추정된다.
허위 정보 유포를 막고자 노력하는 ‘대만 팩트 체크 센터’의 리웨이핑 연구원은 수년간 이어진 선전 선동과 허위 정보로 인해 대만 사회가 양극화되고, 진실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고 지적했다.
리 연구원은 “문제는 허위 정보 자체가 아니라, 정보에 대한 국민들의 태도”라면서 “이제 사람들은 이를 믿을 수 있냐고 물어보게 될 것이다. 자신이 품은 특정 정당에 대한 생각 혹은 정치적 견해에 따라 과연 이 정보가 신뢰할만한 정보인지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셴 박사 또한 대만의 자국 방어 능력이 향상되면서 중국 또한 더욱더 정교한 방법으로 대만 여론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영향력이 미칠 위험성에 대한 대만 정부의 지속적인 경고가 중국을 비판하는 행위에 좋지 않은 낙인을 찍으려는 중국의 노력과 결합해 대만인들 사이에서 피로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요즘엔 우리가 중국의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싶어도 … 왜 미국의 문제에 대해선 논의하지 않냐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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