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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나토 가입 신청 여부 몇 주 내 결정" 본문

북유럽 지역/핀란드

핀란드 "나토 가입 신청 여부 몇 주 내 결정"

CIA bear 허관(許灌) 2022. 4. 15. 03:01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가 13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마그달레나 안데르손 총리와 회담 후 공동 회견하고 있다.

북유럽 국가인 핀란드가 앞으로 몇 주 안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 가입 신청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는 13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마그달레나 안데르손 총리와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의 모든 종류의 행동에 대비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마린 총리는 “나토 가입 선택이 신중하게 이뤄져야 하지만 지난 2월 말 러시아 군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나토의) 파트너가 되는 것과 회원국이 되는 것의 차이는 매우 분명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나토헌장 5조에 근거한 나토 억지력과 공동 방위 외에 안보를 보장받는 다른 방법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마린 총리는 “우리가 결정을 내릴 때 어떤 종류의 일정도 제시하지 않겠지만, 몇 달이 아니라 몇 주 안에 매우 빠르게 이뤄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핀란드와 이웃나라인 스웨덴은 유럽연합 회원국으로 나토의 긴밀한 파트너이지만 냉전 기간 옛소련에 대항하기 위해 1949년에 설립된 나토에는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두 나라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나토 가입에 대해 매우 진지해졌고, 특히 마린 총리는 올여름 중반 전까지 논의가 마무리되길 바란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VOA 뉴스

 

■ "몇 주 안에 가입 신청 여부 결정"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가 13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마그달레나 안데르손 총리와 회담 후 공동 회견하고 있다.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는 13일 스웨덴 스톡홀름을 방문해 마그달레나 안데르손 총리와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몇 주 내에 나토 가입 신청 여부에 대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마린 총리는 나토 가입 필요성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있다면서 "매우 신중하게 이것들을 분석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우리의 절차는 꽤 빠를 것이며, 몇 주 내에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핀란드 의회는 이날(13일) 정부가 내놓은 외교·안보 백서를 토대로, 다음 주부터 나토 가입 문제에 대한 토론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예정입니다.

안데르손 스웨덴 총리 역시 국가 안보 정책을 재검토하고 있으며 다음 달 말쯤 분석 결과가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고 이날 밝혔습니다.

안데르손 총리는 "다른 안보 문제처럼 나토 가입 문제에도 찬·반양론이 있다"면서도, 그에 관한 "분석이나 절차를 늦출 필요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나토 회원국인 발트3국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

나토 회원국인 발트3국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연방(소련)에서 독립한 발트3국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등은 나토 회원국이다.

나토의 임무는 자국 영토에 있는 10억 명의 자유와 민주적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전 세계 민주주의 파트너 국가와 함께 전 세계 자유와 법치 보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에스토니아는 발트해 공동방위 이니셔티브를 통해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와 협력하고 있다. 삼국은 발트 항공 감시 네트워크 (BALTNET)의 일환으로 NATO 대응군으로 참여하는 발트해 영공관제 센터, 발트대대 (BALTBAT)를 관리하고 있으며, 공동 군사교육기관인 발트 국방대학도 타르투에 두고 있다.

 

에스토니아는 2004 NATO에 가입하였으며, 2008년에는 탈린에 우수 사이버 공동 방위센터가 설립되었다. 2017년부터는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군사개입에 따라 NATO 보강 전방주둔군 대대군이 타파 육군기지에 주둔하게 되었다  2014년부터는 NATO군의 발틱 항공 헌병대가 애마리 공군기지를 중심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1.에스토니아

에스토니아는 북유럽에 위치하며 북쪽과 서쪽은 발트 해, 동쪽은 러시아, 남쪽은 라트비아와 닿아 있다. 수도는 탈린이다. 정식 명칭은 에스토니아 공화국(에스토니아어: Eesti Vabariik 에스티 바바리크)이다.

 

1차 세계대전 때 독립국가를 선언하였으나, 1940년 다시 소련에 강제 점령 병합되었다. 50년 뒤 노래 혁명과 발트의 길을 비롯한 독립운동과 소련 해체로 1991 8 20일 자주권을 회복하여 공화국이 되었다. 2008 5 1일에 유럽 연합에 가입했다.

 

발트 3국의 최북부에 있으며, 빙하 작용을 받은 토지는 낮고 평평하다. 기후는 습윤하며, 삼림·습지·목초지는 매우 넓다. 민족 구성은 65%가 에스토니아인이다. 공용어로는 에스토니아어를 사용한다. 의회는 단원제로 직접 선거로 선출되며 임기는 4년이다. 발트 해를 따라 핀란드, 스웨덴과 국경을 접한다. 핀란드에서는 에스토니아를 "Viro"(비로)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에스토니아는 상고적부터 핀우그리아어파의 언어를 사용하는 우랄계 민족인 에스토니아인들의 땅이었으며, 리보니아의 발트족과도 관계를 주고받았다. 중세에 독일의 프라테스 밀리치아이 크리스티(Fratres militiae Christi) 기사단의 리보니아 원정에 의해 1227년 정복되며 기독교화되었다. 이후 덴마크의 지배를 받다가 17세기 스웨덴-러시아 전쟁의 결과로 스웨덴령으로 넘어갔다. 18세기부터는 러시아 제국에 의한 지배를 받게 되었는데, 19세기 초부터 이른바 국민계몽(Ärkamisaeg)으로 불리는 민족주의 부흥 시대가 시작되며 민족 독립을 원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10월 혁명으로 제정 러시아가 무너지고 난 뒤 1918 2 24일 에스토니아는 독립국가가 되었다. 1934년에 초대 국무총리였던 콘스탄틴 패츠(Konstantin Päts)가 쿠데타를 일으켰고, 1939 8 23일 소련은 나치 독일과 리벤트로프-몰로토프 밀약을 맺어 중앙유럽을 독일과 소련이 각각 분할하기로 하는 비밀 의정서를 만들었을 때 같은 의정서에서 에스토니아는 소련의 영향권에 두기로 인정받았다.

 

소련은 1940 6월 중순에 에스토니아를 점령하여 소련의 내무인민위원회 요원은 에스토니아의 국경 초소를 급습하였고, 에스토니아군을 몰아낸 뒤 소비에트 간부단으로 대신하였다. 의회와 여타 정부 부처의 공직자를 뽑는 선거에서는 명부에 후보자가 한 명씩밖에 없었는데, 독재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명분으로 선거가 치러져 선거의 공식 결과에서 친()소련 후보가 92.8%의 표를 얻었다. 그렇게 구성된 의회는 곧 소비에트 연방에 가입할 것을 요청하였으며, 소련의 승인을 얻어 에스토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소련에 병합되었다. 국제 사회는 이와 같이 진행된 소련의 발트 3국 병합을 불법으로 보고 비판하였다. 에스토니아는 1941 6월 하순부터 1944년까지 나치 독일군에게 점령되었다. 1991 8 20일 노래혁명과 소련의 붕괴로 독립을 되찾았으며, 8 20일은 에스토니아의 국경일로 지정되어 있다.

 

소련 군대가 에스토니아를 떠난 1994 8 31일 이후 에스토니아는 서유럽과의 관계 정상화에 노력을 기울여 2004 3 29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2004 5 1일 유럽 연합(EU)에 가입했고, 2011 1 1일부터 유로를 공식화폐로 도입했다. 에스토니아는 세계에서 최초로 휴대폰으로 투표를 치르게 되는 방식을 2012년에 도입하여 주목을 받았다

 

2.라트비아

라트비아는 북유럽에 있는 공화국으로서, 공식 명칭은 라트비아 공화국(라트비아어: Latvijas Republika 라트비야스 레푸블리카, 영어: Republic of Latvia)이다. 북쪽은 에스토니아, 동쪽은 러시아, 남쪽은 리투아니아와 접하고 있으며 서쪽은 발트 해와 리가 만에 닿아 있다. 수도는 리가(Riga)이다. 18세기부터 제정 러시아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1차 세계 대전 후 독립하였으나 1940 8월 소련 에 강제 점령 병합되었다. 1991년 소련 8월 쿠데타 실패 후 독립을 인정받았으며, 독립국가연합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민족구성은 라트비아인이 58%이며, 라트비아어와 러시아어를 사용한다. 국민소득의 48.6%를 서비스업이, 23.9%를 제조업이, 22.8%를 농업이 차지하고 있다.

 

기원전 2000년 경부터 핀우그르계의 리브인들과 레트족이라고 불리는 발트인들이 이 지역에 거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12세기 말부터 독일인들이 리가만 연안에 진출하기 시작하여, 1201년 이들에 의하여 리가 시가 건설되었다.

 

1558년 러시아의 이반 4세가 리보니아 전쟁을 일으키자, 이 지역을 지배하던 독일 기사단은 라트비아를 리투아니아의 보호령으로 양도하였고, 1561년 리투아니아의 보호를 받는 리보니아 공국과 쿠를란트(Courland) 공국이 성립하였다.

 

그 후 1600년부터 1629년까지 이 지역을 둘러싸고 폴란드-리투아니아와 스웨덴이 전쟁을 벌였다. 스웨덴은 1621년 리가를 점령하였고, 1629년 리보니아 공국은 스웨덴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나, 쿠를란트-젬갈레 공국은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영향 하에서 독립을 유지하였다.

 

예카프스 케틀레르스(Jekabs Ketlers) 공작이 지배하던 시대(1642-1682)에는 동방의 네덜란드를 만들겠다는 야망을 가지고 발전을 꾀하였다. 이 시기에는 쿠를란트 공국의 선단이 대서양을 누비고 다녔으며, 서인도 제도의 토바고와 아프리카의 감비아에 해외식민지를 만들기도 하였다.

 

1700년부터 1721년까지 계속된 스웨덴과 러시아 제국간 북방전쟁의 결과 리보니아 지역이 러시아의 지배에 들어갔고, 이어 쿠를란트 역시 1795년 폴란드 분할의 결과 러시아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1차 세계 대전에서 러시아가 독일에 패하자, 1918 11 18일 라트비아는 독립을 선언하였다. 이후 라트비아는 농지개혁을 실시하고 경제, 문화, 교육 전반에 있어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루었으나, 1934년에 일어난 쿠데타로 초대 대통령이었던 카를리스 울마니스(Kārlis Ulmanis) 4대 대통령으로 다시 취임하였다. 1939 8 23일 소련은 나치 독일과 리벤트로프-몰로토프 밀약을 맺어 중앙유럽을 독일과 소련이 각각 분할하기로 하는 비밀 의정서를 만들었다. 이 의정서에서 라트비아는 소련의 영향권에 두기로 인정받았다.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난 뒤, 소련은 1940 6월 중순, 발트 3국을 점령하기 시작하였다. 소련의 내무인민위원회 요원은 라트비아의 국경 초소를 급습하였고, 라트비아군을 몰아낸 뒤 소비에트 간부단으로 대신하였다. 의회와 여타 정부 부처의 공직자를 뽑는 선거에서는 명부에 후보자가 한 명씩밖에 없었는데, 독재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명분 아래에 치러진 선거의 공식 결과에서 친()소련 후보가 97.6%의 표를 얻었다. 그렇게 구성된 의회는 곧 소비에트 연방에 가입할 것을 요청하였으며, 소련의 승인을 얻어 라트비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소련에 병합되었다. 국제 사회는 소련의 발트 3국 병합을 불법으로 보고 비난하였다.

 

1941 6월 하순에 나치 독일군은 소련군을 몰아내고 1944년까지 라트비아를 점령했다.

 

소련으로의 편입 과정에서 약 13만 명의 라트비아인들이 외국으로 망명하였고, 1953년까지 약 12만 명의 라트비아인들이 죽거나 시베리아로 강제 이주되었다. 한편 약 75만 명의 러시아인들이 러시아보다 산업환경이 좋은 라트비아로 이주하여, 라트비아인의 비율은 총인구의 52% 선으로 감소하기에 이르렀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 독립하였다. 1999년에는 제6대 대통령으로 바이라 비케프레이베르가(Vaira Vīķe-Freiberga)가 선출되어 라트비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었으며, 친미, 친서방 정책을 펴고 있다. 2012 2월에 러시아어를 제2의 공용어로 지정하는 것을 정해놓은 투표가 실시되었으나, 거의 대부분의 인구가 러시아어를 제2의 공용어로 지정하는 것에 반대표를 던졌다. 2012 8 28일에 라트비아의 국방장관이 소련군 기념비를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러시아계 정치인들이 반발했다

 

3.리투아니아

북쪽으로 라트비아, 동쪽과 남쪽으로 벨로루시, 남서쪽으로 러시아의 칼리닌그라드 주 및 폴란드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서쪽은 발트 해에 면해 있다 .

리투아니아 공화국는 북유럽에 있는 공화국이다. 수도는 빌뉴스(과거에는 카우나스). 동쪽과 남쪽은 벨라루스, 서쪽은 발트 해, 남서쪽은 러시아(월경지 칼리닌그라드주)와 폴란드, 북쪽은 라트비아에 닿아 있다. 발트 3국 국가 중에서는 인구와 영토가 가장 많고 넓다. 18세기 말 폴란드 분할 때 러시아 제국에 합병되었다. 1차 세계대전 때 독립했으나 1940년 다시 소련에 강제 점령 병합되었다. 1941년부터는 독일의 지배를 받다가 1944년 다시 소련군에 점령되면서 소비에트 공화국의 일원이었다. 1991 8월 소련 쿠데타 실패 후 독립을 선언, 9월 독립을 인정받았으며, 독립국가연합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발트 3국의 최남부에 있다. 민족 구성은 리투아니아인이 83%이다. 전체 산업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식품 및 담배가 29.6%, 기계 장비가 18.3%, 섬유 의복·가죽 제품이 17%이다. 6세부터 11년간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1990년 종교교육을 도입하는 등 교육개혁을 단행했다. 로마 가톨릭 문화권에서는 리투아니아가 제일 북쪽에 위치한다. 현재 유럽 연합(EU),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이다.

 

리투아니아라는 이름은 1009년의 라틴 연대기 Annales Quedinburgenses에서 처음으로 나타난다. 1253 7 6일 민다우가스가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처음으로 통일 국가를 수립하였다.

 

1386년 요가일라(Jogaila)가 폴란드의 여왕 야드비가와 결혼하면서 리투아니아와 폴란드는 동군연합(同君聯合)을 형성하게 된다. 리투아니아-폴란드 연합군은 1410년 타넨베르크 전투에서 튜턴 기사단을 무찌름으로써 독일인들의 동방 팽창을 저지하였고, 리투아니아는 이 시기에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이후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는 동일한 운명을 걷게 되어(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폴란드 분할 결과 1795년 리투아니아 지역은 러시아 제국의 영토로 편입되고 말았다. 리투아니아인들은 1795, 1830, 1863년 등 세 차례에 걸쳐 대대적인 봉기를 일으켰으나 실패하였다.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리투아니아는 1918 2월 독립을 선언하였다. 애초에는 뷔르템베르크 공국 출신의 군주를 영입해 군주제로 독립할 것을 계획하고 있었으나 러시아 혁명과 독일 제국의 패망으로 독립되어, 공화국으로 출발한 것이다. 리투아니아는 1918년 독립을 선언한 이후에, 공산당 세력, 보수 세력, 농민 세력 등 복잡한 이념 세력들의 정권 쟁탈 투쟁으로 국내사정은 극히 혼란하여 정권 교체가 잦은 불안이 계속되어왔었다.

 

그 틈새를 타서 민족주의자가 점점 세력을 키워나가기 시작하게 되었는데, 1930년대 즈음 들어오면서 리투아니아를 비롯한 발트 3국 국가들은 민족주의자가 반란으로 집권하여 반소, 반공 독재 정권이 들어서게 된다.

 

1939 8 23일 소련은 나치 독일과 리벤트로프-몰로토프 밀약을 맺어 중앙유럽을 독일과 소련이 각각 분할하기로 하는 비밀 의정서를 만들었다. 리투아니아는 1939 9월 두 번째 밀약에서 소련의 몫으로 추가되었다. 2차 세계 대전의 발발 이후, 소련이 리투아니아를 처음으로 점령한 것은 1940 6 15일이었는데, 소련의 내무인민위원회 요원은 리투아니아의 국경 초소를 급습하였고, 리투아니아군을 몰아낸 뒤 소비에트 간부단으로 대신하였다. 의회와 여타 정부 부처의 공직자를 뽑는 선거에서는 명부에 후보자가 한 명씩밖에 없었는데, 선거의 공식 결과에서 친()소련 후보가 99.2%의 표를 얻었다. 그렇게 구성된 의회는 곧 소비에트 연방에 가입할 것을 요청하였으며, 소련의 승인을 얻어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소련에 병합되었다. 국제 사회는 소련의 리투아니아 병합을 불법으로 보고 비판하였다. 1941년 독-소 개전 이후 독일군에 점령되기도 하였다. 1944년 나치 독일이 패퇴하면서 다시 리투아니아를 점령한 소련군은 독일에 협조하였다는 이유로 리투아니아인들을 박해하여 29923가구가 시베리아로 강제 이주되었고, 12만 명이 국외 추방되거나 북유럽, 미국 등지로 망명하였다.

 

1990 3월 소련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1991 1월 소련군이 리투아니아를 침공하여 13명이 사망하고 700여명이 부상하였으나, 리투아니아는 1991 9월에 독립했고 1991 9 17일 라트비아, 에스토니아와 함께 유엔에 가입하였다.

 

현재 리투아니아는 반러시아적인 민족주의 성향이 강하다. 2008 11 27일에 리투아니아는 신임 총리로 안드류스 쿠빌류스가 새총리로 당선되었다. 2009 5 17일에 대선에서 첫 여성 대통령인 달리아 그리바우스카이테가 당선되었다. 그녀는 재선을 거쳐 2019년까지 임기를 수행하였다.

 

4.소련[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연방(소련)은 동등한 권리를 가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자발적 협회의 기초 위에서 형성된 연방국가이다: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The Russian Soviet Federated Socialist Republic)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The Ukrainian Soviet Socialist Republic)

벨라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The Byelorussian Soviet Socialist Republic)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The Azerbaidjan Soviet Socialist Republic)

그루지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The Georgian Soviet Socialist Republic)

아르메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The Armenian Soviet Socialist Republic)

투르크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The Turkmen Soviet Socialist Republic)

우즈베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The Uzbek Soviet Socialist Republic)

타지키스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The Tadjik Soviet Socialist Republic)

카자흐스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The Kazakh Soviet Socialist Republic)

키르기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The Kirghiz Soviet Socialist Republic)

카렐로-핀란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The Karelo-Finnish Soviet Socialist Republic)

몰다비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The Moldavian Soviet Socialist Republic)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The Lithuanian Soviet Socialist Republic)

라트비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The Latvian Soviet Socialist Republic)

에스토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The Estonian Soviet Socialist Republic).

1. 아르메니아 2. 아제르바이잔 3. 벨로루시 4. 에스토니아. 5. 그루지야. 6. 카자흐. 7. 키르기스. 8. 라트비아. 9. 리투아니아. 10. 몰도바. 11. 러시아. 12. 타지크.; 13. 투르크멘. 14. 우크라이나. 15. 우즈베크..

5.집단안보조약기구[Collective Security Treaty OrganizationCSTO]

집단 안보 조약 기구(集團安保條約機構, 러시아어: Организация Договора о Коллективной Безопасности (ОДКБ) 오르가니자치야 도고보라 오 콜렉티브노이 베조파스노스티 (오데카베)[*], 영어: Collective Security Treaty Organization (CSTO), 문화어: 집단안전조약기구) 2002 10 7일에 창설된 옛 소련의 공화국 6개국의 집단안전보장 조직이다. 러시아 모스크바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공식 언어는 러시아어이다.

 

집단 안보 조약 기구의 효시는 1992 5 15일 옛 소련의 공화국 6개국(러시아, 아르메니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이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체결한 독립 국가 연합 집단안전보장 조약으로 아제르바이잔은 1993 9 24, 조지아는 1993 12 9, 벨라루스는 1993 12 31일에 서명했다.

 

이 조약은 1994 4 20일에 효력이 발생했으며 조약의 유효 기간을 효력이 발생한 날로부터 5년으로 정했다. 그러나 아제르바이잔과 조지아, 우즈베키스탄은 1999 4 2일에 체결된 집단 안보 조약의 유효 기간을 5년 연장하는 내용의 협약 체결을 거부하여 탈퇴했다.

 

2002 10 7일 옛 소련의 공화국 6개국(러시아,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이 몰도바 키시너우에서 집단 안보 조약 기구의 창설에 관한 조약에 서명했으며 2003 9 18일에 이 조약의 효력이 발생했다. 우즈베키스탄은 2006 6 23일에 가입했지만 2012 6 28일에 탈퇴하였다.

 

집단 안보 조약 기구는 2009 2 4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집단 안보 조약 기구 가입국 정상 회의에서 지역 내의 군사적 위협이나 국제 테러, 조직적 범죄, 마약 밀거래, 비상 사태 등에 대해 공동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신속 대응군을 창설하기로 합의했다. 유엔 총회 옵서버로도 활동하고 있다.

 

2022 1 6일에 러시아 주도 CSTO 평화유지군이 카자흐스탄에 파병되었고, 사상자 발생 소식이 전해졌다.

 

푸틴정부는 입헌군주국을 부정하는 노동자계급이 령도하고 노농연맹을 기초로 하는 인민민주 전제정치( 인민민주주의독재)의 사회주의국가가 아닌 입헌군주국을 인정하는 민유(民有), 민치(民治),민향(民享)의 민주국가이지만 군국주의, 국가사회주의 극우성향 일당제 우위국가 권위주의 1인 장기집권 독재정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