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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10주기: '죽은 동료들이 너는 왜 살았냐고 묻더라' 본문
천안함 사건 생존자 정주현 씨
“에픽하이의 ‘우산’을 들으며 침대에 누워 있었어요. 자정부터 당직이어서 미리 잠을 자 두려고 했죠. 갑자기 몸이 붕 뜨는 거예요. ‘파도가 높은가’ 생각했는데 천장이 제 오른쪽에 있더라고요.”
정주현 씨는 2010년 당시 열아홉살 해군 하사였다. 바다가 좋아 해군이 됐다고 했다. 그는 천안함 침몰 사건 생존자다.
그해 3월 26일 밤, 한국 해군 초계함 천안함은 백령도 남서쪽 1km 지점에서 침몰했다.
배는 두 동강이 났다. 46명이 전사했고 58명이 구조됐다. 한국 국방부는 ‘북한 소행’이라고 주장했고 북한은 혐의를 부인했다.
천안함 사건 10주기를 한 달 앞둔 지난 2월 말, 한국 대전에서 정 씨를 만났다.
미리 양해를 구하고 사건 당일의 기억에 대해 물었다. 그는 천천히 기억을 되짚었다. 단어를 조심스레 고르는 듯했고, 말을 자주 멈췄다.
2010년 3월 26일 오후 9시 30분
정 씨의 기억을 토대로 침몰 순간을 재구성했다.
이날 정 씨는 자정 당직 임무를 기다리고 있었다. 좁은 3층 침대 꼭대기 층에 누워 음악을 듣던 중이었다. 부대에 MP3가 막 보급된 시기였다.
그는 “침대에 누워 있는데 몸이 갑자기 공중으로 붕 뜨더니 물건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고 처음 사고를 인지한 순간을 떠올렸다.
곧이어 ‘쾅’ 소리와 함께 배가 오른쪽으로 뒤집혔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순간 먼지가 호흡기 안으로 확 들어오더라고요. ‘배 안에 침 뱉으면 안 되는데’ ‘내가 치워야 하는데’ 같은 생각을 하는데 침이 계속 나오는 거예요. 곧이어 불이 꺼지고 주황색 비상 전원이 들어왔어요.”
그 순간, 누군가 ‘물이 들어온다’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턱걸이도 못 했는데 초인적인 힘으로 기어서 좌향 갑판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는 갑판에 올라서는 순간 보이던 달빛을 아직도 기억한다고 했다.
“동굴에서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뒤를 돌아봤는데……. 뒤따라 올라오는 사람들이 꼭 좀비 같았어요. 피범벅이 된 사람, 발가벗고 기어오는 사람, 누구는 목이 부러지고 누구는 허리가 부러지고. 바닷물엔 기름과 잔해가 둥둥 떠 있었습니다.”
군인들은 서로의 옷을 찢어 피투성이가 된 동료의 상처를 동여맸다.
정 씨는 “어디 계세요”를 외치며 ‘넘버 투’ 하사를 찾아 나섰다. 하사는 엉덩이뼈에 금이 간 채 옴짝달싹 못 하고 있었다.
또 다른 동료는 부서진 구조물에 대퇴부가 깔려 입에 거품을 문 채로 발견됐다.
아비규환 속, 바다 먼 끝자락에서 불빛이 보였다. “엎드리라”는 함장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아군인지 적군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사람이 죽기 전 주마등처럼 지난날들이 지나간다고 하잖아요. 필름처럼 눈앞에 찰칵, 찰칵, 찰칵……. 기억도 잘 안 나는 다섯 살 시절까지 보이는 거예요.
정 씨는 다가오는 배가 적군일 경우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다.
“‘여기서 잡혀서 북한에 가면 사형 당할 수도 있는데’ 같은 생각도 했고요. ‘저 배가 공격하면 여기서 뛰어내려야겠다’ 싶었는데 갑판 끝이 어둠이더라고요. ‘그럼 죽겠다’ 싶어서 ‘그냥 배가 터지면 나도 터져야지’ 하고 체념했죠.”
천안함에 접근해 온 배는 구조선이었다. 파고가 높은 날이었다. 구조선에 부상자들을 옮겨 싣는 일은 쉽지 않았다.
“70, 80kg 되는 사람들을 두 명이 들고 다른 배에 넘겨야 하는데, 구조선은 가까이 붙지도 못 하고요. 죽겠다고 소리지르는 동료를 딱 들어 올렸는데, 제 허리에서 ‘펑’ 소리가 나는 겁니다. 너무 급박하니까 아픈 것도 모르겠더라고요.”
부상이 덜한 사람들이 다친 동료들을 들고 구조선을 향해 내던졌다. 던지지 않으면 옮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정 씨는 무사히 해경정에 탔다.
“해경에게 가서 ‘아저씨, 마음이 너무 안 좋아서 그러는데 담배 한 대만 주실 수 있어요?’ 했죠. 물에 다 젖은 담뱃갑을 건네 주는데, 세 대 남아 있더라고요. 한 대를 꺼내 덜덜 떨면서 피웠어요. ‘아저씨, 이제 어떻게 되는 거예요?’ 하니까 ‘어뢰 맞은 것 같아요’ 하더라고요.”
“’그때 죽었어야 했다’는 말도 들어”
정 씨는 전남 여수에서 나고 자랐다. 집 대문을 열고 몇 걸음만 달려나가면 선착장이 보였다고 한다.
“친구들과 놀이터에 가는 게 아니라 바닷가에 가서 놀았어요. 고구마도 구워먹고, 어부 아저씨들이 생선을 가져오면 같이 회도 떠 먹고. 수건 한 장만 있으면 바로 바다를 즐길 수 있는 그런 환경이었죠. 물 흐르듯 해군이 됐습니다.”
정 씨는 “해군이 된 건 운명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천안함 사건 이후에도 군에 남았다. 파병도 다녀왔다.
그는 “이 일 때문에 바다에 못 나간다면 스스로에게 지는 거라고 생각했다”며 “죽은 사람들에게 미안해서라도 정말 멋있는 군인이 되고 싶었다”고 했다.
정 씨는 사건 5년 뒤인 2015년 6월 군을 떠났다. 계획에 없던 전역이었다. 그는 “해군 내에서 종종 패잔병 취급을 받았다”고 했다.
“제가 다른 천안함 생존자와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너희 둘 같이 있으면 또 재수 없는 일 생길 수 있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어요. ‘그때 죽었어야 했다’고 혼을 내던 상관도 있었고요. 천안함 사건을 겪고 나서도 이겨내려고 다시 배에 탔는데 동료들이 그러니 정말 너무 힘들었습니다. 배에서 뛰어내리고 싶었어요.”
그는 “죽지 못해 살고 있다”고 말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도 호소했다. “언제 떨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엘리베이터도 잘 안 탄다”고 덧붙였다.
그의 주머니에선 여러 종류의 약이 나왔다. 3년 전부터 복용해 온 수면제, 알코올중독 치료제, 공황장애 약물이라고 했다.
“죽은 사람들이 자꾸 꿈에 나옵니다. ‘너는 왜 살았느냐’고 묻습니다. 원래는 그런 말을 할 분들이 아닌데…….”
“’내가 진짜 아프구나’ 생각했던 게, 언젠가 운전을 하고 있었는데 환영이 보이더라고요. 죽은 사람이 제게 다가오는 환영이요. ‘와, 이건 진짜 병원을 가야겠구나’ 싶었습니다.”
정 씨는 2015년 국가유공자 지정을 신청했지만 아직 인정받지 못했다.
민군합동조사단 “북한 어뢰공격이 원인” 결론
사건 발생 20일째부터 인양 작업이 시작됐다. 시신 40구가 절단된 배 곳곳에서 발견됐다. 6명은 여전히 실종 상태다.
민군합동조사단은 2010년 5월 20일 한국과 미국, 호주, 영국, 스웨덴 등의 전문가들이 참여한 조사 결과 보고서를 냈다.
조사단은 “천안함은 북한에서 만들어진 어뢰 공격으로 인한 수중 폭발로 침몰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증거들은 분명 해당 어뢰가 북한 잠수함에서 발사됐다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북한은 이튿날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사건과 하등 관계가 없다”며 “조사 결과는 미국의 승인과 비호, 조장에 의한 자작극”이라고 반박했다.[BBC 뉴스 코리아]
천안함 생존장병 회견 문답
최원일 함장을 비롯한 천안함 생존 장병 57명은 7일 국군수도병원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사고 당시의 상황을 비교적 침착하고 생생하게 전했다. 사고 발행 13일째만에 언론과의 회견에 나선 이들은 사고 발생 당시 상황은 물론 자신들이 생각하는 사고 원인, 구조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전했다.
다음은 장병과의 문답을 간추린 것.
--46명이 실종됐다. 함장으로서 심정이 어떤가.
▲함장 최원일 중령= 저는 아직도 실종 장병이 제 옆에 있는 것 같다. 살아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복귀 신고하는 날을 기다리겠다.
--사고 발생시각에 대해 당시 상황을 설명해달라.
▲박연수 대위= 함교에 당직사관이 확인할 수 있는 모니터가 있는데 모니터상 시간은 오후 9시시24분이었다. 컴퓨터 우측 하단의 시간도 같았다.
함교 당직사관으로 사고직전까지 정상근무했다. 상황이 있었다면 제게 보고됐을 것이다. 제게 따로 보고된 사항이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 특별한 상황은 없었다.
--사고 전 함정의 소나(음탐기)에 이상 징후가 포착된 것이 있었나.
▲홍승현 하사= 특별한 신호가 없었다.
--사고 해역에서의 주임무는 무엇이었나.
▲함장= 2008년 8월에 부임해 20개월 근무했다. 그 구역은 누구보다 자신있는 구역이고 16회 정도 경비했다. 주요 임무는 도발대비 태세 유지였다.
--사고 순간 폭발음이 들릴 때와 이후 진행 상황을 설명해달라.
▲오성탁 상사 = 사고 순간 지하 2층 격실에서 업무보고 준비중이었는데 순간 `꽝'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공중에 붕 떴고 정전이 됐다. 정신 차리고 나니 아무것도 안보이는 암흑세계였다. 사방에서 출입문을 찾으려해도 안보였다. 순간 다시 `펑'하는 소리와 함께 배가 90도로 기울었다. 폭발음은 귀가 아플 정도로 컸고 문 주위의 컴퓨터책상이 모두 무너져 문이 안열렸다. 살겠다는 일념으로 손에 잡히는 집기를 모두 치워서 15분만에 밖으로 나왔다. 외부에 의한 충격으로 생각했다.
--폭발 이후 화약냄새가 났었나.
▲오 상사= 제가 탄약을 담당하는 병기장이라서 잘 아는데 만약 화약이 있으면 불이나고 냄새가 진동했을 것이다. 그 순간 화약냄새는 전혀 안났다.
--후타실에 5명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왜 갔을 것으로 보나.
▲오 상사= 저는 운동을 좋아해 그 시간대면 거기 가 있는다. 사고발생 한시간 반 전에 가서 늘 운동했었고 그날은 업무보고 때문에 후타실에 안갔다. 추정되는 5명은 항상 운동하는 인원이다.
--사고직전 외부에 통화했던 분들 상황을 설명해달라.
▲허순행 상사= 오후 9시14분부터 18분 몇 초까지 전탐실 후부 계단에서 집사람, 딸과 통화했다. 집사람이 임신한 상태라 그와 관련한 통화를 했고, 딸에게는 엄마가 많이 힘드니까 도와드리라고 말하고 바로 통신실로 복귀했다.
이채권 대위 = 기관장은 보통 상황이 있으면 기관조종실에 있다. 저는 행정 워드 업무로 기관장실에 있었는데 긴급한 상황이었다면 기관장이 고속추진을 위해 거기 있어야 했다. 아무런 조짐이 없었다는 것을 확실히 증언한다.
--당시 갑판에 있었던 장병 중 물기둥을 본 사람이 있나.
▲병사 = 당시 함교 우현에 있었는데 함교 바로 밑 우현쪽에 나와서 배가 진출하는 쪽을 관찰하는 역할이다. 물기둥 같은 특이한 점은 없었다. `꽝'하는 소리와 함께 심한 진동을 느꼈다.
김수길 상사= 침실에서 `쿵'하고 `쾅'하는 소리를 자세히 들었다. 저는 전탐장으로서 `쿵'소리와 동시에 침대에서 빠져나와 전탐실로 향하려고 했는데 3~5초간 `꽝'하는 소리와 외부로 90도로 배가 기울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소화호스를 타고 5~7분 걸려 탈출한 뒤 달빛, 불빛으로 외부로 향하려는데 함미가 없었다.
승조원 = 기본적으로 야간 중에는 등화관제도 있지만 실족 등 사고를 방지하려고 문을 폐쇄한다. 그 당시 외부에 나온 사람은 견시 2명밖에 없다. 2명도 360도 다 보는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항해를 하던 전방을 주시하고 있어서 뒤에서 물기둥이 발생했다면 확인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물이 새는 등 천안함 내부 문제가 없었나.
▲이채권 대위 = 물이 샌다고 얘기하는 경우는 잘 모르는 대원들이 온도차로 파이프에 물이 맺히는 것을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천안함은 물이 전혀 안샜다.
--마지막 안전 점검 일자는.
▲이 대위= 부임한 지 50일가량 됐는데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출항 전에 2-3일 전부터 작동을 시작하니까 장비나 선체의 노후는 아니라고 본다.
--사고 직후 구조 때까지 한시간여 동안 무엇을 했나.
▲박연수 대위= 좌현 통로를 이용해 외부로 나온 이후에 구조선이 오기 전까지 구조세력이 왔을 때 선체에 접근해 어느 방향으로 대원들을 이함시킬지 함장으로부터 지시를 받았고, 수면 부위까지 내려가 구조선을 파악하는 임무를 맡았다.
박세준 중위= 많은 장비들이 떨어졌고 전탐실에서 끼어있었던 하사 2명을 구조한 뒤 올라와서 심리적으로 불안해하는 대원들을 안정시키키는 임무를 했고 환자들이 먼저 구조될 수 있도록 인원들 관리에 신경썼다.
김덕원 소령= 우현으로 배가 기울고 제일 먼저 갑판으로 올라왔다. 함미 쪽이 보이지 않았고 대원들이 갑판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밑에서는 함장실이 잠겨 있어서 풀려고 노력했고 함장이 구출된 뒤 인원파악하라는 지시가 있어서 인파악을 했다. 통신망으로 상황전파 후 침착하게 함장 지시에 따라 대처하면서 구조세력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
--함미 목격자가 있나. 구조된 직후 함장이 말을 자제하라고 지시했나.
▲함장= 장병들은 휴식 응급 치료 위해서 해경정 침실로 배치됐다. 저는 해경에서 명단을 파악해야 하고 지휘보고도 해경에서 이뤄졌다. 휴대전화 회수는 사실이다. 구조가 해경, 고속정 등 여러군데에서 이뤄졌고 골절, 피흘리는 사람 등이 있는 상황에서 혼란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소지를 허가하지 않았다.
--함장은 사고시각을 오후 9시25분으로 번복한 이유는.
▲함장= 당시 전술지휘체계(KNTDS) 컴퓨터 자료를 검색하던 중 우측화면에서 오후 9시23분으로 확인했다. 저는 사고 다음날 바로 현장에 가서 선체나 실종자 상황을 지휘.보좌하고 있었다.
--후타실에서 운동할 때 어떤 복장인가.
▲전준영 병장= 운동할 때는 속옷 내의와 반바지를 입고 한다.
--오후 9시16분 정도에 폭발음이 들린 게 있나.
▲황보상준 일병= 좌현에서 외부 당직을 서고 있었는데 그 시각에 아무 소리도 못들었다.
▲박세준 중위= 당시 그런 상황이 있어서 특이 사항으로 보고됐다면 인근 함에 전파가 된다. 제가 당직근무를 서는 동안 유.무선 통신망으로 어떤 보고도 없었다.
--디젤엔진이나 기관실 등에서 폭발 소리를 들었나.
▲정종욱 상사= 함정이 6노트 저속일 때는 디젤엔진으로 기동한다. 군생활 17년 됐는데 배에서 폭발했다는 것은 전혀 들은 바 없다.
--포술장의 최초 보고 내용과 피격이라고 한 것의 의미가 무엇인가.
▲함장= 비상통신기와 휴대전화가 살아있는 것을 확인했지만 제가 계속 통신기를 잡고 있으면 현장 구조가 어려워 옆에 허순행 상사를 위치시켜 지시한 내용을 전파하라고 했다. `뭐에 맞은 것 같고 충격이 너무 컸다'고 우리끼리 얘기했다.
김광보 중위= 밖으로 올라가 휴대전화로 함대 직통실에 보고했다. 너무 정신이 없어 직통실 전화가 아니라 군부대 교환대를 이용했고 어떤 말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안난다. 상황장교가 전화를 받았고 제가 처한 위치나 상황, 구조요청 등을 두서없이 말해서 기억이 안난다.
--`꽝' 소리가 두번 났는데 파편을 본 사람이 있나.
▲김수길 상사= 안자고 있었기 때문에 `꽝꽝' 소리를 두번 느꼈다. 처음 `쿵'하는 소리는 어디에 부딪힌줄 알고 제가 바로 전탐실로 행했고, 이후의 `꽝'하는 소리는 약간의 폭음과 전등이 떨어지는 소리가 함께 들렸다.
오성탁 상사= 지하 2층에 있었는데 `꽝'하는 소리와 동시에 몸이 붕 떴고 그 소리와 동시에 함정이 90도로 기운 것으로 판단한다.
--암초 가능성도 있다고 보나.
▲김병남 상사= 암초에 걸리면 기본적으로 찢어지는 소리가 나고 배가 출렁인다. 그런 상황 때문에 외부 충격이 아닐까 생각한다.
--최초 상황시 사고 원인에 대한 보고는 없었나.
▲함장 = 당시는 급박한 구조 상황이었다. 사고원인은 차후였다. 오후 10시32분 통화할 때 충격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외부충격으로 느꼈다.
--어뢰나 기뢰에 의한 사고가능성을 어떻게 보나.
▲함장= 정말 답답한 심정이다. 세상이 생명과 같은 천안함을 제발 있는 그대로 이해해줬으며 감사하겠다. 아직도 옆에있는 듯 장병들이 가슴에 묻혀있다. 누구보다 슬퍼할 실종자 가족들 생각 뿐이다.
천안함 함미 인양과 침몰원인 "외부 폭발"
함미의 스크루와 밑부분은 온전한 상태이지만 우현 절단면은 C자형으로 휘어 있어 함선이 외부의 강한 충격(외부폭발)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습니다
합동조사단은 어제(15일) 인양한 천안함 함미 (즉, 배의 꼬리)부분에 대한 분석을 마친 결과, 어뢰 등 외부의 충격에 의해 천안함이 침몰했다고 잠정 결론 내렸습니다. 윤덕용 민군 합동조사단 공동단장입니다.
"선체 절단면과 선체 내 외부에 대한 육안 감식 결과, 내부 폭발보다는 외부 폭발의 가능성이 매우 높으나, 최종적인 원인 규명을 위해서는 함수를 인양하고 잔해 물을 수거한 후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세부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합동조사단은 함미 인양 때 밤샘조사에서 선체에 구멍이 나지 않았고 절단면이 아래에서 위로 솟구친 것 등 다양한 현상을 분석했습니다.
이런 근거로 함미 탄약고와 연료탱크, 디젤엔진실의 손상이 없었고 가스터빈실의 화재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또 함미 내부 전선의 피복 상태가 양호하고 함체의 손상 형태로 볼 때도 내부 폭발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아직 어뢰나 기뢰 등 어떤 원인으로 천안함이 침몰했는지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최종적인 결론은 오는 24일 함수 (즉, 배의 머리)부분을 인양하고, 해저와 절단면 등에서 금속 물질과 파편을 수거해 인양한 뒤 판단할 계획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천안함의 침몰 원인으로 외부 충격을 상정한 것은 결국 어뢰에 의한 공격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초계함을 단번에 침몰시킬 수 있는 수중무기는 경어뢰와 중어뢰, 기뢰 등을 꼽을 수 있지만 기뢰일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한국 군과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북한의 연루설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습니다(미국의 소리 자료)
한국합동조사단 공동단장인 윤덕용은 이날 오전 국방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초보적인 조사결과로 볼때 "천안"함 함미 탄약고, 연료탱크, 디젤엔질실은 모두 손상되지 않았으며 사고발생해역의 해저에도 장애물이 없고 선체하부도 충격을 받은 흔적이 없다고 하면서 이런 상황으로 비추어 조사단은 외부폭발로 선체가 침몰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인정한다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최종결론은 함수를 인양한후 더 깊은 분석을 해야 얻을수 있다고 표시했습니다(중국 국제방송 자료)
한국군과 미군 등으로 구성된 합동조사단은 오늘, 서울 국방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함미 부분에 대한 잠정적인 조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탄약고와 연료탱크 그리고 디젤 엔진실에는 손상이 없고, 가스 터빈실에서도 화재가 발생한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며 선내에서 폭발했을 가능성은 낮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침몰한 해역의 해저에는 장해물이 없어 좌초됐을 가능성도 낮은데다, 선체의 철판이 외부에서 힘이 가해져 안쪽으로 휘어져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따라 합동조사단은 외부에서 일어난 폭발이 침몰의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며 앞으로 모든 가능성을 고려해 조사하겠다고 밝혔습니다.(NHK)
北신문 “천안함 침몰은 남조선 조작극”
황해 백령도 해상 천안함 폭침 위치
한국 정부는 천안함의 침몰 원인을 규명할 민간·군인 합동조사단을 구성하였고, 대한민국을 포함한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스웨덴, 영국 등 5개국에서 전문가 24여 명으로 구성된 합동조사단은 2010년 5월 20일 천안함이 북한 인민군 정찰총국의 어뢰공격으로 침몰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천안함 폭침이 남북관계 갈등을 증폭하기 위한 조작극이라고 주장했다.
노동신문은 3일 논평을 통해 “지난 시기 남조선에서는 우리를 반대하는 각종 명목의 대결책동들이 뻔질나게 감행됐다”며 “천안호 침몰사건을 구실로 동족에 대한 적대감과 대결의식을 고취했다”고 밝혔다.
신문은 이어 “남조선보수패당이 조작해낸 치졸한 모략극인 천안호 침몰사건의 진상은 이미 만천하에 폭로됐다”며 “그 무슨 ‘서해 수호의 날 기념식’ 이라는 짓이 얼마나 유치한 대결광대극인가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은 지난 2일 남측 예술단 평양 공연 취재단을 만나 “남측에서 저보고 천안함 폭침 주범이라는 사람이 저 김영철입니다”라고 발언한 바 있다.
열상 카메라로 촬영한 폭침 당시의 천안함 모습
침몰된 천안함의 함수와 함미 발견.
천안함의 절단 부위
왼쪽에 강한 외부 폭발 충격으로 침몰된 천안함. 만약 어뢰라면 침몰 당시 충격파를 볼 때 tnt 200~300kg급 중어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그렇다면 어뢰는 어디서 발사된 것일까? 북한의 상어급 잠수함에 탑재된 중어뢰의 유효사거리는 3~4km입니다.
당시 천안함은 백령도로부터 2.5km 떨어진 곳에서 해안선을 따라 북서쪽으로 기동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음파탐지에 위치가 파악되는 것을 피해 최대한 먼거리에서 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백령도 쪽 보다는 서남해 쪽이라는 것이 군사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즉, NLL을 우회해 공해상을 거쳐 들어와 유효사거리인 서쪽으로 3-4킬로미터 떨어진 지점, 즉 백령도 서쪽 외해에 은폐해 있다가 어뢰를 쐈을 가능성입니다. 인양된 함미 절단면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사선으로 잘라진 점, 그리고 충격을 받은 뒤 오른쪽으로 넘어진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고 군사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현장해역에서 회수한 부품과 파편 등을 분석한 결과, 어뢰 부품에서 1번이라는 한글표기를 확인했으며 발견된 어뢰 부품이, 북한이 해외수출용으로 배포하고 있는 어뢰의 설계도에 나와 있는 것과 크기나 형태가 일치(사진)
결정적 증거로 제시된 어뢰 추진체 가운데 1번 글씨. 버지니아대 물리학과 이승헌 교수, 캐나다 매니토바대 양판석 교수는 “주변 흰 물질(사진 1)은 고온에서 녹은 상태로 붙는 물질인데 어떻게 잉크로 쓴 1번 글씨(사진 2)는 타지 않느냐”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KAIST 송태호 교수는 “폭발 직후 가스 버블의 크기를 계산했는데 폭파 0.1초 이내에 버블은 6.3m로 커지면서 온도가 26도로 떨어진다. 디스크의 1번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합조단은 순식간에 버블 온도가 낮아져 1번 글씨가 타지 않았다고 했다.
천안함 피격 인양 이후 모습
북한정부 주민홍보 포스터: 천안함 피격은 우리의 인민군 정찰국이 복수를 했습니다[3월 26일 밤 9시 45분경 천안함 침몰은 2009년 11월 3차 서해교전때 북한 함정파손과 인민군 죽음등 대패에 대한 보복테러 방법으로 북한 인민군 작전국 주도로 정찰국 실행-연합군 감청기로 인민군 총참모부 작전명 세부자료를 알아내기는 참 어렵다 김정일 췌장암으로 북한정부의 권력공백기이다 ]
국방위 직속기관 김영철 정찰총국장(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왼쪽 첫번째 인물, 인민군 대장), 최부일 인민보안부장(두번째 인물, 인민군 대장),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셋번째 인물, 인민군 대장)
러시아 잠수함 핵 어뢰(사진)
1957년 소련 최초의 잠수함 발사 핵 어뢰인 T-5의 성공적인 시험이후 60년 동안 강력한 파괴력 소형화 무기화 돼 오고 있다
핵 어뢰는 전술적 핵무기이다
전략핵무기와 전술핵무기도 마찬가지다. 먼저 억지력 확보를 위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같은 전략핵무기를 만들고 핵기술이 고도화되면 핵탄두를 장착한 단거리 탄도미사일, 핵대포, 핵배낭, 핵어뢰, 핵기뢰 같은 전술핵무기 개발한다
북한도 수소폭탄(미사일 핵탄두) 시험이후 전술적 핵무기 개발에 주력할 것으로 본다
북한 인민군이 보유하고 있는 전술 핵무기 핵 배낭...
북한 미사일 핵탄두(수소폭탄)를 보유했다면 핵배낭등 재래식 전술 핵무기도 보유했다고 볼 수 있다
국무부, ‘천안함 조작’ 주장 일축…“북한 어뢰 맞아 침몰”
지난 2월 방한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부부가 평택 2함대 사령부에 있는 서해수호관을 방문하고 북한에 의해 폭침된 천안함 잔해를 둘러봤다
미국 국무부가 2010년 천안함 침몰 사건이 한국의 조작극이라는 북한의 주장을 일축했습니다. 천안함이 북한 어뢰에 맞아 침몰했다는 조사 결과를 철저히 신뢰한다고 확인했습니다.
미국은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한국 정부와, 뒤이어 진행된 객관적인 조사를 완전히 지지한다고 국무부가 밝혔습니다.
[녹취: 캐티나 애덤스 대변인] “Our position has not changed, the United States fully supports the Republic of Korea with regard to the Cheonan incident and the objective investigation that followed.”
캐티나 애덤스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대변인은 3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천안함 폭침 사건이 한국의 조작극이라는 북한 노동신문의 주장에 대해, 미국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노동신문은 이날 “남조선 보수패당이 조작해낸 치졸한 모략극인 천안호 침몰사건의 진상은 이미 만천하에 폭로됐다”며 “천안호 침몰사건을 구실로 동족에 대한 적대감과 대결의식을 고취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애덤스 대변인은 이에 대해 2010년 5월19일 발표된 국제 합동조사단의 보고서는 천안함이 북한 잠수함에서 발사된 북한 어뢰에 의해 침몰했다는 결과를 압도적으로 보여주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증거 평가를 반영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캐티나 애덤스 대변인] “The report issued May 19, 2010 by the team of international investigators reflects an objective and scientific evaluation of the evidence, which points overwhelmingly to the conclusion that the Cheonan was sunk by a North Korean torpedo fired by a North Korean submarine.”
애덤스 대변인은 더 나아가 같은 해 자행된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녹취: 캐티나 애덤스 대변인] “We strongly condemn the unprovoked DPRK attack on the Republic of Korea civilians and military personnel on the island of Yonp’yong.”
미국은 연평도의 한국 민간인과 군인을 정당한 이유 없이 공격한 북한을 강하게 규탄한다는 겁니다.
한편 애덤스 대변인은 김정은의 중국 방문에 이어 이날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러시아 방문에 나선 데 대해, 미국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이 막다른 골목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 중국, 러시아를 포함한 파트너들과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캐티나 애덤스 대변인] “We are working with our partners, including China and Russia, to make clear that North Korea’s nuclear and missile programs are a dead end.”
애덤스 대변인은 또 중국이 고유의 영향력을 발휘해 북한이 신뢰할 수 있는 비핵화 협상에 진지한지 확실히 해 줄 것을 기대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면서 한반도 비핵화가 미국의 궁극적 목표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VOA 뉴스
천안함 폭침: '북한 소행 부정… 국가보안법 위반 아냐'
2010년 천안함 침몰로 46명의 해군 장병이 목숨을 잃었다
북한을 찬양하는 글을 수십 차례 올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한국 남성이 항소심에서 일부 무죄판결을 받았다.
북한 주장과 유사해도 '논란의 대상'이라면 국가보안법 위반이 아니는 판결이다
한국 의정부 법원이 북한 찬양, 반미 선동 등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50대 남성 A씨에게 일부 무죄 판결을 내렸다.
A씨는 2011-2016년 특정 인터넷 사이트에 북한을 찬양하는 내용의 이적표현물 51건을 게재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A씨가 한국 정부를 미국의 식민지라고 비판하며 주한미군 철수, 반미투쟁 선동 등 북한을 찬양했다고 봤다.
특히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A씨가 천안함 폭침은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는 북한 주장에 동조하고 북한 군사력을 찬양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A씨가 북한을 찬양하는 내용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고 국가 존립을 위협한다고 볼 수 없다며 해당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아울러 한미연합훈련, 주한미군 철수 등은 한국에서 자유로운 토론 대상이라며 A씨가 북한을 찬양했지만 이적단체에 가입해 활동한 내용이 확인되지 않는 점 등을 감형 이유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하지만 북한의 주체사상, 선군정치, 강성대국론, 핵실험 찬양 등의 게시물에 대해서는 유죄로 인정했다.
반면, 같은 날 서울중앙지법은 비슷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이적표현물을 인터넷에 게시했다면 국가보안법에 따른 처벌대상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이적표현물을 소지하고 있다가 인터넷에 게시한 것은 국가의 존립과 안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해악을 끼칠 수 있는 범죄라고 판단했다.
이와 관련해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는 한국 사회가 북한에 동조하는 조직적 세력의 위험성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소행으로 사람이 많이 죽었고 천안함 희생자들이 다 억울해 하는데 북한의 입장을 들어서 대변한다면 그건 김씨 왕조를 찬양하는 것 못지 않게 훨씬 더 가중처벌 해야 될 범죄 중 범죄인데, 예를 들면 히틀러를 찬양하는 게 독일에서는 범죄잖아요. 근데 히틀러가 자행한 범죄 행위에 대해 히틀러가 한 게 아니라고 한다면 말이 안되죠."
강 대표는 만약 북한에서 남측 입장에 동조했다면 바로 총살감이라며 반국가 행위를 범죄 시 하지 않는 풍토가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조계 인사는 쌍방의 의견이 엇비슷해 어느 쪽이 옳은지 판단하기 어려울 경우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천안함 폭침의 북한 소행 여부를 '토론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맞지 않다는 풀이다.
"안보의식이 너무 약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천안함 사건 당시 국제사회에서도 다 북측 소행이라고 인정을 했는데 토론의 대상이고 논란이 될 수 있으니 북한 소행이 아니라고 이야기해도 괜찮다? 그건 아니지 않나 생각이 드네요."
한국의 국가보안법이 정한 이적표현물은 반국가단체와 그 구성원을 찬양, 고무, 선전하는 등 사회질서 혼란을 위해 쓰이는 문서와 그림 등을 가리킨다. [BBC 뉴스 코리아]
국방부, '천안함 보고서' 발간.."어뢰 피격"
국방부는 13일 천안함이 잠수함에서 발사된 음향유도어뢰에 의한 수중 폭발로 침몰했다는 내용 등을 담은 '천안함 피격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를 발간, 공개했다.
지난 5월20일 조사결과 발표 이후 4개월여 만에 발간한 보고서의 핵심 내용은 당시 발표와 동일한 것으로 자세한 시뮬레이션 자료 및 관련사진 등을 보완한 것이 특징이다.
보고서는 천안함이 "어뢰에 의한 수중 폭발로 충격파와 버블효과를 일으켜 선체가 절단되고 침몰했으며 수중 폭발지점은 가스터빈실 중앙으로부터 좌현 3m, 수심 6~9m 정도"라며 "무기체계는 북한에서 제조 사용되는 고성능 폭약 250㎏ 규모의 CHT-02D 어뢰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특히 보고서는 국제해사기구(IMO)의 함정 침몰사고 분석틀인 비(非)폭발과 외부폭발, 내부폭발로 구분해 분석했으며 비폭발과 관련해 일각에서 제기하는 '좌초' 가능성을 배제했다.
보고서는 "우현 프로펠러 변형 분석 결과 좌초됐을 경우에는 프로펠러 날개가 파손되거나 전체에 긁힌 흔적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손상이 없어 5개 날개가 함수 방향으로 동일하게 굽어지는 변형이 발생했다"며 "스웨덴 조사팀은 이 같은 변형은 좌초로 발생할 수 없고 프로펠러의 급작스런 정지와 추진축의 밀림 등에 따른 관성력에 의해 발생될 수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고 설명했다.
또 외부폭발 유형을 수상폭발(순항.탄도미사일), 기뢰폭발, 어뢰폭발, 육상조종기뢰(MK-6) 폭발 등으로 구분해 미국과 한국의 조사팀이 분석한 시뮬레이션 결과를 제시하는 한편 미국과 영국, 한국 조사팀의 의견을 종합한 결과 어뢰에 의한 폭발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특히 한국 조사팀은 수심 7m에서 TNT 300㎏의 폭발력에 의해 침몰했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제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수심 6m에서 TNT 250㎏, 수심 7m에서 TNT 300㎏, 수심 7~9m에서 TNT 360㎏의 폭약이 각각 폭발했을 때 천안함 절단면과 유사한 폭발현상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측은 좌현 3m, 수심 6~9m에서 TNT 200~300㎏ 정도의 폭발로 천안함이 침몰한 것으로 판단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한국과 미국의 시뮬레이션 결과를 종합해보면 천안함은 수심 7m에서 TNT 300㎏에 상당한 폭약이 폭발해 침몰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어뢰에 사용되는 고성능 폭약은 HMX, RDX, TNT 등의 혼합 비율에 따라 TNT보다 1.4~2배 정도 폭발력이 크다"며 "복한에서 제조, 사용 중인 고성능 폭약 250㎏ 규모의 'CHT-02D' 어뢰의 공격으로 천안함이 침몰했다는 기존 조사 결과에는 변함이 없다"고 설명했다.
기뢰폭발 가능성에 대해서는 수중 폭발을 일으키는 비접촉식 계류기뢰의 설치가 사고해역의 조류로 인해 사실상 불가능하고, 육상조종기뢰(MK-6)도 1977년에 설치했다가 재작년에 수거한 데다 천안함을 절단할 수 있을 정도의 폭발력이 없다는 이유로 배제했다.
이번 발간된 것은 천안함 사건에 대한 사실상 '최종 보고서' 성격으로, 천안함 선체와 사고해역에서 발견한 북한제 어뢰추진체에 흡착된 비결정 산화알루미늄이 동일한 성분으로 수중폭약의 폭발재라는 기존 발표 내용을 재확인했다.
천안함 생존자들이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인접한 경비구역에서 정상적인 항로로 운항하다가 당했고, 순간적으로 함정이 절단된 점 등을 고려해 침몰원인을 어뢰에 의한 폭발로 인식했다는 생존 장병들의 진술한 내용도 자세히 소개했다.
사고 직후 천안함 최원일 함장은 직속상관인 22전대장인 이원보 대령에게 "어뢰 같다"는 내용으로 통화했고, 통신장 허순행 상사는 레이더기지 당직병과 "어뢰 피격으로 판단된다"는 내용으로 교신했다.
결정적 증거인 어뢰추진체 부품에 쓰인 '1번' 표기 잉크의 원료를 정밀 분석했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 유사한 원료를 사용해 제조국을 식별할 수는 없었다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북한의 잠수함(정)이 공해상을 우회해 침투한 것으로 추정한 것은 NLL을 직선으로 관통할 경우 거센 조류의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고, 당시 북한 잠수함(정)이 수중에서 어뢰를 발사하는데 조류의 영향이 크지 않았을 것으로 분석했다.
천안함 최종보고서는 한글판이 189페이지, 영문판이 313페이지이며 사건개요, 침몰요인 판단결과, 분야별 세부분석 결과, 결론, 부록 등 5장으로 구성돼 있다.
합동조사단에 참여한 미국과 영국, 호주, 스웨덴 등 4개국의 조사팀장이 조사 결과에 동의한다고 자필로 서명했으나 3명의 조사팀이 일주일간 방한해 조사한 러시아 조사단의 조사결과는 포함되지 않았다.
국방부는 보고서를 국회와 정당, 각 언론기관, 연구소 등에 배포하고 일반인도 볼 수 있도록 시중에서도 2만원에 판매키로 했다. 천안함 사고 원인에 대해 일각에서 제기한 의혹을 해명하는 내용으로 '천안함 피격사건의 진실'이란 제목의 32페이지짜리 만화도 제작했다.
북한정부 주민홍보 포스터: 천안함 피격은 우리의 인민군 정찰국이 복수를 했습니다[3월 26일 밤 9시 45분경 천안함 침몰은 2009년 11월 3차 서해교전때 북한 함정파손과 인민군 죽음등 대패에 대한 보복테러 방법으로 북한 인민군 작전국 주도로 정찰국 실행-연합군 감청기로 인민군 총참모부 작전명 세부자료를 알아내기는 참 어렵다 ]
천안함 최종보고서로 새로 드러난 사실들
국방부는 13일 발간한 '천안함 피격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를 통해 일부 새로운 사실들을 공개해 관심을 끌었다.
이번 보고서는 '천안함이 어뢰에 의해 피격됐다'는 지난 5월20일 조사결과 발표 내용을 시뮬레이션 자료와 도표, 사진 등으로 보완한 성격이 강하지만 이 과정에서 그간 자세히 공개하지 않았던 사실들이 일부 포함됐다.
우선 생존장병들의 침몰 당시 상황진술이 상세히 공개됐다.
26명은 폭발음과 함께 정전이 되면서 몸이 30㎝~1m까지 떴다가 우현쪽으로 떨어졌으며, 41명은 "기름냄새가 났다"고 진술했다. 화염과 불꽃, 물기둥 목격자 및 화상환자는 없었고 50명이 골절과 타박상, 염좌(일종의 근육통) 등의 상처를 입었다.
KAIST 신영식 박사와 수중폭발을 경험한 영국 조사팀은 "버블효과시에는 충격 및 압력파에 의해 승조원들이 골절상과 열창(부딪혀 찢어지는 상처), 타박상 등을 입을 수 있으며 천안함 사건에서 발생한 환자는 버블효과로 나타나는 현상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전탐(전자.전파탐지)부사관은 "물기둥, 섬광은 보지 못했으나 기름냄새는 났으며 기뢰, 어뢰 등 외부 충격으로 판단했다"고 했고, 음파탐지사는 "음탐 당직근무중 특이한 신호나 소리는 없었으나 꽝하는 소리와 함께 정전이 되었고 외부갑판으로 나와 보니 연돌(연통) 부분부터 잘려 나가다시피한 것을 보고 '전쟁이 났구나'하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함장과 전투정보관, 조타사, 조타병은 "북한의 어뢰공격"이라고 진술했으며, 갑판병은 "북한의 반잠수정에 탑재된 경어뢰에 좌현 함미 부근이 맞아서 함정이 균열하여 무거운 함미부분이 자연스럽게 찢어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백령도 해안초소에 근무했던 해병대 병사 2명이 "하얀 불빛이 주변으로 퍼졌다가 소멸됐다", "하얀색 섬광불빛이 보였다"고 한 진술에 대해 거짓말탐지 검사를 한 결과 진실반응이 나와 증거로 채택했다는 사실도 명기했다.
천안함의 외부폭발 유형을 시뮬레이션한 자료를 보고서에 명기한 것도 눈에 띈다.
폭발력을 분석한 시뮬레이션은 1, 2단계로 실시됐다.
1단계에서는 폭발위치와 폭약량을 판단하기 위해 버블주기(1.1초)와 3D로 촬영한 선체손상 정도를 고려해 시뮬레이션한 결과, 미측은 천안함 좌현 3m, 수심 6~9m, TNT 200~300㎏으로 판단했다.
반면 한국측은 좌현 3m, 수심 6m, 폭약량 250㎏과 좌현 3m, 수심 7m, 폭약량 300㎏, 좌현 3m, 수심 7~9m, 폭약량 360㎏ 일때 천안함 절단면과 유사한 것으로 판단했다.
2단계는 1단계의 결과를 토대로 선체 손상 정도를 판단하기 위해 TNT양을 최대인 360㎏으로 높게 잡아 실시했다.
즉, 폭약량 TNT 360㎏으로 수심 7m와 9m 2개의 조건으로 시뮬레이션한 결과 7m에서는 천안함 선체 손상과 유사했으나 9m에서는 선체 손상이 경미하게 나타났다.
국방부 관계자는 "한국과 미국의 시뮬레이션 결과를 종합해보면 천안함은 수심 7m에서 TNT 300㎏에 상당한 폭약이 폭발해 침몰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며 "결론적으로 5월20일 발표와 같이 좌현 3m 지점, 수심 6~9m에서 고성능 폭약 250㎏의 폭발력을 나타낸 것"이라고 말했다.
천안함은 HMX(28개소 527.91나노그램), RDX(6개소.70.59나노그램), TNT(2개소.11.7나노그램)가 혼합된 고성능 폭약이 들어 있는 수중무기에 의해 피격되어 침몰했다고 국방부는 설명했다.
국방부가 뒤늦게 공개해 의혹을 키웠던 사고 해저에서의 미상침선 및 웅덩이 발견 내용도 보고서에 포함됐다.
천안함 함미에서 250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미상침선은 수심 47m에 있었고 높이는 10m 규모였다. 수십년 전에 침몰한 상선일 것으로 추정됐으며 백령도 어민은 부친으로부터 일제시대에 침몰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보고서는 "천안함 흘수(배가 물 위에 떠 있을 때 물에 잠겨 있는 부분의 깊이)가 2.88m인 점을 감안하면 천안함 항해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침선과 함미 사이에서 반경 20~40m, 깊이 1.8m 규모의 웅덩이도 발견됐다. 1개월간의 퇴적 및 침식 작용을 3차원 음향영상 촬영장비를 이용해 관찰하고 잠수부를 동원해 확인한 결과 천안함 사건과 무관한 조류의 흐름으로 생성됐다.
북한 잠수함(정) 예상 침투기지와 백령도 사이의 조류 흐름과 세기를 분석한 자료도 공개됐다.
연안 조류 속도는 0.48~2.89kts, 외해 조류 속도는 0.23~1.82kts로 나타나 조류의 영향을 덜 받기 위해 잠수함(정)이 외해인 공해상으로 우회해 침투했으나 어뢰 발사 때는 속도가 30kts이기 때문에 조류의 영향은 미미한 것으로 판단됐다.
다만 잠수함(정)이 기뢰를 부설하려 했다면 저속 운항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조류의 영향을 크게 받았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천안함에 설치된 11개의 폐쇄회로TV(CCTV) 카메라 중 동체 움직임이 없어 촬영되지 않은 5개소를 제외한 6개 카메라에서 찍은 영상도 복원됐다.
영상에는 디젤기관실과 가스터빈실에서 순찰 중인 안전당직자와 후타실에 있던 하사 1명과 병장 2명, 상병 1명의 모습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보고서는 "승조원들의 복장과 표정, 함정의 안정적 운항상태 등을 볼 때 천안함은 사건 발생 직전까지 좌초 등 비상상황 없이 정상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다가 갑작스런 폭발로 선체가 침몰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천안함 침몰이전 모습
결정적 증거로 제시된 어뢰 추진체 가운데 1번 글씨. 버지니아대 물리학과 이승헌 교수, 캐나다 매니토바대 양판석 교수는 “주변 흰 물질(사진 1)은 고온에서 녹은 상태로 붙는 물질인데 어떻게 잉크로 쓴 1번 글씨(사진 2)는 타지 않느냐”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KAIST 송태호 교수는 “폭발 직후 가스 버블의 크기를 계산했는데 폭파 0.1초 이내에 버블은 6.3m로 커지면서 온도가 26도로 떨어진다. 디스크의 1번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합조단은 순식간에 버블 온도가 낮아져 1번 글씨가 타지 않았다고 했다.
김정일 사망이전에 2,3차 핵실험,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등 북한 주체연호(주체사상) 3대 세습제 좌익군정 주도
2006년8월 뇌졸중 발병설에 휩싸였던 북한 김정일 前국방위원장 모습 사진입니다 김 위원장이 뇌졸중 발병설이 제기된 2008년 8월과 비슷한 시기에 췌장암 판정을 받았다고 알려지고 있다. 췌장암은 주로 말기에 발견되는 탓에 암 중에서도 생존가능성이 가장 희박한 병이다.
이 시기부터 김정일 사후 후계자 추대와 대남 강경노선 세습제 좌익군정 주도로 2, 3차 핵실험,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등을 주도해왔다
김정일은 김일성 사망 이전 1991년 12월 인민군 최고사령관 취임과 인민군을 장악하고 핵 실험을 추진해왔다
김정일은 90년 1월 남한내부 반미청년회(구국의 소리)를 한국민족민주전선 서울대표부(새세대-김정일시대 주체사상 시대)로 개편하고 남한정부와 협상, 전쟁 양면정책으로 대남정책을 추진해왔다
김정일은 동유럽 공산정부 붕괴와 소련해체 이후 핵실험으로 미국이 북한지역 군사적 행동을 유도하고 남과 북전쟁을 추진하는 저강도전략 일환으로 남한내부 반미전선 구축 한민전 서울대표부 개편을 서둘러왔다 한민전 서울대표부 주도로 남한 내부 폭동과 약탈을 주도할 수 있도록 조직화해왔다
소련 공산당이나 중국 공산당 강경파도 이런 정책을 동조해왔다
러시아 정부나 중국정부 그리고 북한 내부 세습제 좌익군정 반대세력들이 군사우선 정책 남북 군사적 전쟁보다는 남북협력과 경제우선 정책을 지지해왔다
1998년 9월 국가수반으로 추대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주도로 대외정책을 추진해왔다 김영남은 영국과 국교이후 국가수반으로 영국을 방문하여 영국 여왕과도 환담했다
12월 17일 8시 30분에 현지 지도 방문을 위해 탑승한 열차에서 과로로 인한 급성 심근경색과 심장 쇼크로 사망하였다 사망 사실은 2일 동안 극비에 부쳐졌으며, 12월 19일] 정오에 북한중앙방송을 통하여 사망 소식이 공식 발표되었고, 시신은 금수산기념궁전에 안치되었다 2008년부터 뇌졸중으로 좌반신 마비 증세를 겪고 있었고, 2010년에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는 “췌장암으로 수명이 3년 정도 남았을 것”이라는 발언을 하며 그의 사망이 임박했음을 예측하였다
《남조선인민들의 반미자주화투쟁은 높은 단계의 애국투쟁이다》(김정일 논설, 1984) 북한 김일성, 김정일사상은 NLPDR(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노선으로 반일 반미사상(반제국주의 운동사상)입니다 북한 현대사는 반일과 반미 투쟁 역사로 남북통일도 반미인민전쟁론을 주장하고 있으며 미국과 전쟁을 추구해오고 있습니다 김정일은 반미사상을 체계화하여 좌익군정을 실시해온 인물이며 각국에 반미테러단체 설립을 지원하였고 남한에도 반미청년회나 여성회 활동을 지원하거나 후원하여 남한내부 무장단체 한민전(반제민족민주전선) 서울대표부 건설에 주력해왔습니다(남한에도 1984년경 반미청년회가 설립 NLPDR 김일성주의 사상을 보급했으며 90년 1월 김정일주의 주체사상 보급과 함께 한민전 서울대표부로 개명했습니다)
한국민족민주전선 서울대표부 민혁당과 관련된 무장간첩사건
-이선실 여간첩 사건[이선실은 한민전 부위원장 출신, 제주출신으로 이화전문대(이화여대) 졸업]
남한 조선노동당사건이나 중부 노동당 사건, 김동식 간첩사건, 민혁당 사건등 한민전 부위원장 이선실 간첩 배후 조종[남한 간첩사건이 대부분 남한사람 월북자 단체 반제민족민주전선<한국민족민주전선=통일혁명당>이 주도해왔다]
-1995년 10월 24일 부여침투 무장간첩 김동식 사건
-1996년 9월 18일 강릉무장간첩 사건
-1997년 10월 최정남 강연정 부부간첩 사건(울산지역)
-1998년 12월 17일 여수근해 반잠수함 격침사건
-남한지역의 한국민족민주전선 변천사[전두환정부 이후 남한지역 자생 친북 반미단체]
반제청년동맹(강철서진, NLPDR)-->반미청년회(구국의 소리, 김일성주의)--->한국민족민주전선(90년 1월, 새세대-주체사상과 김정일주의)-->반제민족민주전선(2005년 1월)
-우파 민주공화국이나 입헌군주국 이론[民營資本體制]
世界潮流浩浩蕩蕩順之則昌, 逆之則亡.
民國基於三民主義,為民有、民治、民享之民主共和國(立憲君主國,聯邦共和國)
-국정(國政, 民國)은 국민의 엄숙한 신탁에 의한 것으로서, 그 권위는 국민에 유래하고(民有), 그 권력은 국민의 대표자가 행사하고(民治), 그 복리는 국민이 향유한다(民享)는 민주주의(민주)국가이다
-중화민국은 삼민주의(三民主義)에 기초한, 민유(民有), 민치(民治), 민향(民享)의 민주공화국이다.
중화민국의 주권은 국민 전체에 있다.
-국정은 국민의 엄숙한 신탁에 의한 것으로서, 그 권위는 국민에 유래하고, 그 권력은 국민의 대표자가 행사하고, 그 복리는 국민이 향유한다. [일본국 헌법]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프랑스 국민은 1789년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에서 규정되고 1946년 헌법 전문에서 확인· 보완된 인권과 국민주권의 원리, 그리고 2004년 환경헌장에 규정된 권리와 의무를 준수할 것을 엄숙히 선언한다.
프랑스 공화국은 상기의 원리들과 각 국민들의 자유로운 결정에 따라, 공화국에 결합하기를 희망하는 해외영토들에게 자유· 평등· 박애의 보편적 이념에 입각하고 그들의 민주적 발전을 위한 새로운 제도들을 제공한다.
프랑스 공화국은 자유· 평등· 박애를 국시로 한다.
프랑스 공화국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를 원칙으로 한다
-개인의 권리와 자유는 최고의 가치를 갖는다. 개인과 시민의 권리와 자유를 인정하고 이를 준수하며 수호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다.
국민투표와 자유선거는 국민에 의한 최고의 직접적인 권력행사이다.
러시아연방에서는 이데올로기의 다양성이 허용된다.
어떠한 이데올로기도 국가이념이나 의무적 이념으로 규정될 수 없다.
러시아 연방에서는 정치적 다양성과 복수정당이 허용된다.
모든 사회단체들은 법앞에 평등하다. [러시아연방 헌법]
*미합중국 헌법[민주국가 헌법]
That this nation, under God, shall have a new birth of freedom -- and that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
http://blog.daum.net/007nis/15876066
*프랑스 제5공화국 헌법 전문
http://blog.daum.net/007nis/15871495
*군국주의 국가사회주의 성향 독일 바이마르 헌법(1919)과 군국주의 국가사회주의로부터 해방법률 독일연방공화국 기본법(독일 통일헌법)
http://blog.daum.net/007nis/15875048
*군국주의 대일본제국 헌법 전문과 평화주의 입헌군주제 일본국 헌법 전문[민주국가 헌법]
http://blog.daum.net/007nis/15874623
*러시아 연방 헌법[Конститу́ция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и](민주국가 헌법)
http://blog.daum.net/007nis/15876072
*中華民國 憲法(중화민국 헌법)
http://blog.daum.net/007nis/15857658
*대한민국 헌법(大韓民國 憲法)
http://blog.daum.net/007nis/15875575
*몽골헌법
http://blog.daum.net/007nis/15871736
-좌파 사회주의 국가(사회주의 공화국) 이론[國營資本體制]
1991년 소련 해체와 동구권의 공산주의 국가(사회주의 국가) 몰락을 계기로 프롤레타리아 독제체제(노농동맹 인민민주주의 독재체제) 사회주의는 급격히 몰락했고 레닌의 '국가와 혁명'이 나온지 102주년이 되는 2019년 현재는 레닌의 논지(마스-레닌주의)를 명목적으로나마 유지하는 공산주의 국가는 북한, 중국, 베트남, 라오스 그리고 쿠바 등 5개국에 불과하다.[노동계급의 노농동맹(공산당) 령도(領導, 지도) 인민의회정부론 인민민주주의 독재체제(프롤레타리아 독재) 사회주의 국가](많은 분들은 노동자 국가를 지향ㄹ하고 있는 이탈리아 파시즘이나 독일 나찌즘을 극우라고 표현하지만 좌익 파시즘으로 표현하고도 있다)
-소비에트국가는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위한 사명을 완수함으로써 전인민의 국가가 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노동자계급이 영도하고 노농연맹을 기초로 하는 인민민주 전제정치( 인민민주주의독재)의 사회주의국가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전체 조선인민의 리익을 대표하는 자주적인 사회주의국가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를 국가건설과 활동의 유일한 지도적지침으로 삼는다
*스탈린 헌법과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헌법[1990년 3월 14일에 개정된 소연방의 신헌법]
http://blog.daum.net/007nis/15876069
*실용주의 노선 중화인민공화국 등소평 헌법과 공산당 령도 중화인민공화국 습근평 헌법
http://blog.daum.net/007nis/15873485
*베트남 헌법(2013년 개정)[민주공화국 형태 사회주의 헌법]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국가는 인민에 의한(民治), 인민을 위한(民享) 인민의(民有) 사회주의 법치국가이다-
http://blog.daum.net/007nis/15876070
*북한헌법
-인민민주주의 인민공화국(제1공화국 헌법)과 주체사상 자주적 사회주의 국가(제2공화국 헌법),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 사회주의 국가(제3공화국 헌법)-
http://blog.daum.net/007nis/15875476
1957년 10월 15일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중공중앙)이 ‘우파분자 분류 표준에 관한 통지’를 발표하였다.[모택동주의 노선 중국 공산당이 분류한 자본주의민주주의 세력(수정주의자) 우파와 극우세력 동향]
이에 따른 우파는 다음과 같다.
1) 사회주의 제도를 반대하는 자 .
2) 무산계급의 독재와 민주집중제를 반대하는 자 .
3) 공산당의 국가 정치생활 중의 영도적 지위를 반대하는 자 .
4) 사회주의와 공산당을 반대함으로써 인민의 단결을 분열시키려는 자 .
5) 사회주의를 반대하고 공산당을 반대하는 소집단을 조직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자 일부 분야 혹은 일부 계층 단위에서의 공산당의 영도를 뒤엎으려는 자 공산당과 인민정부를 반대하는 소란을 선동하는 자.
6) 앞에서 규정한 우파분자의 범죄활동을 지지하고, 관계를 맺으며 또 통신하여 혁명조직의 기밀을 보고하는 자.
통지는 또한 다음과 같은 사람들을 극우분자로 분류했다.
1) 우파활동 중의 야심가, 지도분자, 주모분자와 핵심 분자.
2) 공산당과 사회주의를 반대하는 강령성 의견을 제출하고 이 같은 의견을 적극적으로 고취한 자.
3) 사회주의 반대활동에 특별히 악랄하고 적극적으로 활동한 분자.
4) 역사적으로 일관되게 반공산당, 반 인민 활동을 전개해 왔으며 최근의 우파활동 전개 시에 적극적으로 반동활동을 한 자.
중공중앙의 이 통지는 반우파 투쟁을 체계화하는 것이었다.
중국 공산당은 1949년 건국 후사회주의 개조과정에서 후펑(胡風본명은 장광런張光人) 비판 등의 부르주아사상 비판 캠페인으로 위축되어 있었던 지식인의 활동을 적극화시키기 위해 '백화제방 백가쟁명(百花齊放 百家爭鳴)' 운동을 제창했다.
중국문화가 꽃핀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의 자유로운 언론활동을 상기시키기 위하여 마오쩌둥(毛澤東)이 명명했고, 1956년 5월 중국공산당 선전부장 루딩이(陸定一)가 '백화제방·백가쟁명'이라는 제목으로 강연, 지식인의 자유로운 발언을 호소했다.
당초 지식인의 반응은 매우 소극적이었으나 1957년 5월 '언자무죄(言者無罪 : 무엇을 말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라는 방침에 고무, 일제히 발언하기 시작, 중국공산당에 대한 비판이 속출했다.
마오의 생각은 이 운동을 통해 이왕의 사회주의 건설을 정당화하고 강화하자는 것이었으나 순식간에 체제를 부정하는 단계로까지 치닫자 자신이 고무한 이들의 발언을 "'우파' 분자에 의한 반당·반사회주의적 '독초'"라고 매도하고, 같은 해 6월 '반우파투쟁'을 전개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공산당의 모순을 비판했던 공산당원들 다수가 반우파 분자로 몰려 숙청되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였다. 29세이던 1957년 당적박탈과 강등 조치를 당한 주룽지는 문화대혁명 기간에는 이 ‘우파분자’라는 꼬리표 때문에 5년 동안 노동개조를 받기도 했다. 그는 마오쩌둥이 사망한 2년 뒤인 1978년 당적을 회복하고 사회과학원 공업경제연구실 주임에 임명되면서 ‘개혁 총리’로서의 미래를 예비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50세였다
*일본 공산당 "2단계 민주연합정부론과 미래에 사회주의적 변혁을 목표"
http://blog.daum.net/007nis/15875883
일본 공산당은 과학적 사회주의를 당의 기본 방침으로 한다
일본 공산당은 2단계 혁명이론 NLPDR노선으로 우선 대미 종속과 대기업의 지배에 대한 민주주의 혁명을, 미래에 사회주의적 변혁을 목표로 한다
1단계로는 반미 민족해방과 인민민주주의 혁명이며 2단계로는 노동계급 령도 노농동맹 프롤레타리아 독재체제(인민 민주주의 독재체제) 사회주의 국가 수립이다
1단계 민주주의 혁명(民主主義革命)
2004년 1월 제 2 차 당대회 개정 강령에서 일본 사회가 필요로 하는 변화는 사회주의 혁명(社會主義 革命)이 아니며 "민주주의 혁명(民主主義 革命)과 민주연합정부(民主聯合政府)'의 목표로 내세웠다
대기업 재계와 대미 종속 세력으로부터 일본 국민(日本 國民)의 이익을 대표하는 세력에 권력 이양을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혁명이라고 평가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가능한 민주적 개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대기업 재계와 대미 종속 세력에서 일본 국민의 이익을 대표하는 세력으로의 권력 이양을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혁명으로 자리매김하고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가능한 민주적 개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일본 공산당은 현재 일본 사회가 요구하는 변화는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라 다음의 민주주의 혁명이라고 하였다
ㄱ.국가의 독립 · 안보 · 외교 분야(分野)
대미 종속을 타파하고 미일안전보장조약(日米安全保障条約)의 폐기(廃棄)와 비동맹(非同盟)· 중립(中立)의 일본을 실현한다. 미국과 대등 평등(対等平等)
의 우호 조약(友好条約)을 맺는다 등등
ㄴ.헌법(憲法)과 민주주의(民主主義) 분야(分野)
(ㄱ)헌법 전문을 포함한 모든 내용을 지키고, 특히 평화적 민주적 조항(平和的民主的諸条項)의 완전한 이행을 목표로 한다.
(ㄴ)의회 민주주의의 체제 반대 당을 포함한 복수 정당제 선거에서 다수를 얻은 정당 또는 정당 연합이 집권하는 정권 교대(政権交代)는 당연히 견지한다.
(ㄷ)18세 선거권을 실현한다.
(ㄹ)일본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억압하는 모든 시도를 제거한다. 남녀평등(男女平等)의 권리(權利)를 모든 분야에서 옹호하고 지킨다. 종교의 자유를 옹호하고 정교분리(政敎分離)의 원칙에 철저를 도모한다. 등등
ㄷ.경제적 민주주의(経済的民主主義)의 분야(分野)
(ㄱ)장시간 노동과 일방적 해고 규제를 포함해 유럽 주요 자본주의 국가와 국제조약 등의 도달점도 근거로 '규칙 있는 경제사회'를 실현한다.
(ㄴ)대기업(독점 자본)에 대한 다양한 민주적 규제(民主的規制)와 군축(軍縮), 불필요한 공공 사업의 중지, 대기업 · 재벌 우대 세제의 재검토를 재원으로 한 사회보장의 충실 등등.
이상(以上)의 민주주의 혁명(民主主義革命)에 의해 일본은 미국의 사실상의 종속국의 지위에서 벗어나 진정한 주권을 회복하고, 국내적으로도 국민이 처음으로 나라의 주인공이 된다. 또한 일본은 군사적 긴장의 근원임을 멈추고 평화의 견고한 초석으로 바뀐다.
이 민주주의 혁명(民主主義 革命)에 대한 입장 1961년 강령에서는 ""일본의 당면한 혁명은 미국 제국주의와 일본의 독점 자본의 지배, 두 적(敵)에 반대하는 새로운 민주주의 혁명, 인민민주주의 혁명(人民 民主主義 革命)이다"라고 되어 있고, 1994년의 강령까지 거의 동일한 표현을 했다
2004년 강령 개정 당시에는 '다수자 혁명'이나 '의회의 다수를 얻어 혁명의 노선'이라는 설명이 이루어졌다
민주주의 혁명의 과정: 통일전선에 근거한 민주연합정부(民主連合政府) 구상(構想)
일본 공산당은 ‘일본 공산당(日本共産党)과 통일전선(統一戦線)의 세력이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어 국회에서 안정된 과반수를 차지한다면 통일전선(統一戰線)의 정부(政府) 즉 민주연합(民主聯合) 정부(政府)를 만들 수 있다’는 입장으로 단독 정권(単独政権)이 아닌 통일전선(統一戦線)에 기반한 연합정권(連合政権)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면서 "국회를 명실상부한 최고기관으로 하는 의회제 민주주의 체제(議会制民主主義 体制)
, 반대당(反対党)을 포함한 복수정당제, 선거에서 다수를 얻은 정당 또는 정당연합이 정권을 담당하는 정권교대제(政権交代制, 정권교체)는 당연히 견지한다.
이 '통일전선(統一戦線)'은 역사적으로 1945년의 강령에서는 ‘모든 민주주의 세력의 결집에 의한 인민전선(人民戰線)의 결성’과 ‘올바른 실천적 목표 아래 협동할 수 있는 모든 단체 및 세력과 통일전선(統一戰線)의 결성한다’고 되어 있다
1947년의 강령에서는 ‘광범위한 민주전선’으로 1961년부터 2004년까지 강령에서는 '민족 민주 통일전선(民族民主統一戦線, NLPDR)'으로 표현 되었다
이 '민족민주통일전선 정부(民族民主統一戦線政府)'는 '혁명정부(革命政府)'로 전환한다고 하고 있었지만, 2004년 강령 개정에서는 이 규정은 삭제 되었다.
2단계 사회주의적 변혁(社会主義的変革)
일본 공산당은 즉각 민주주의 혁명 이후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국민의 합의를 전제로 국회의 안정된 과반수를 얻어 사회주의를 위한 권력을 만들고 다음의 사회주의적 변혁(社会主義的変革, 사회주의 국가)을 목표로 하고 있다.
ㄱ.자본주의를 극복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회(社會)로의 진전(進展)을 도모(圖謀)
ㄴ.주요 생산 수단의 소유, 관리, 운영을 사회의 손에 옮기는 생산수단(生産手段)의 사회화(社会化)
ㄷ.민주주의와 자유의 성과(成果), 자본주의 시대의 가치 있는 성과(成果)의 모든 것을 받아들여 발전시킨다
ㄹ.사상 신앙의 자유, 반대 정당을 포함한 정치 활동의 자유를 엄격하게 지킨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다양한 사상 신조의 자유, 반대 정당을 포함한 정치 활동의 자유는 엄격하게 보장된다."며 일당 독재(一党独裁制)와 지도 정당제(指導政党制)는 채택하지 않는다고 하고 있다.
또한 소련형 사회주의(連型社会主義)의 관료주의·전제(専制)의 잘못은 반복하지 않는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들은 "자유와 민주주의의 선언"에 더 자세히 설명 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은 주로 이념적인 내용이며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회에서 헌법(憲法), 정부(政府), 군비(軍備), 의회(議会), 사유 재산제(私有財産制)의 범위 등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되어 있지 않다. 일본 공산당은 이러한 미래 세대가 창조적으로 해결 과제이며, 지금부터 고정적으로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주의 사회가 고도로 발전하면 착취와 억압을 모르는 미래 세대는 "원칙적으로 일체의 강제가 없는 국가 권력 자체가 불필요하게 되는 사회,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도 없고 억압도 전쟁도 없는 진정한 평등 자유로운 인간 관계로 이루어진 공동 사회“에 대한 전망이 열린다고 한다.
또한 이 ‘사회주의적 변혁'은 1961년 강령에서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표현이었다는 것으로, 1994년에 ’사회주의적 변혁‘이라는 표현으로 되었다. 또한 ’사회주의 사회는 공산주의 사회의 낮은 단계이다‘라고 하는 두 단계 발전론이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정설이었으나 마르크스, 엥겔스 자신은 그런 구별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두 단계 발전론을 그만두고 2004년 강령 개정에서 '사회주의·공산주의 사회'라는 표현으로 변경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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