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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천황 부처, 베트남 '잔류일본군병사' 가족과 만나 본문
베트남을 공식 방문 중인 일본 천황 부처는 오늘 숙박 중인 호텔에서 제2차세계대전 중에 당시의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주둔해, 베트남에서 종전을 맞은 구 일본군 병사, '잔류일본군병사'의 가족과 만났습니다.
잔류일본군병사는 종전 후에도 현지에 남아 베트남인과 함께 프랑스와의 독립전쟁에 참가했지만, 정치체제의 변화 등으로 1950년대 이후 상당 수가 일본으로 귀국하면서 베트남에 남은 가족과 생이별했습니다.
남겨진 가족들은, 경제적인 어려움과 여러 가지 차별에 직면해 왔으며, 일본 궁내청에 따르면, 천황 부처는 베트남 방문 전에 이들 가족의 존재를 알고 만나기를 희망했습니다.
천황 부처가 "오랫동안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아무쪼록 건강하세요"라는 위로의 말을 건네자, 눈물을 흘리는 가족도 있었습니다.
남편이 일본으로 귀국해 3명의 자녀를 여자 혼자 몸으로 키웠다는 93세 여성은, "오랫동안 계속된 전쟁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에 처했지만, 고령의 천황 부처가 모처럼 베트남을 방문해 우리를 만나 준 데 감사한다"며 "천황 부처가 앞으로도 건강하기를 빈다"고 말했습니다.
아키히토천황의 만찬회 말씀 전문
이번 쩐 다이 꽝(陳大光, 진대광) 국가 주석 각하의 초청에 의해, 황후 함께 귀국(貴国, 귀중한 국가)을 처음 방문하는 것을 대단히 기쁘게 생각합니다. 오늘 저녁(今夕)은 저희를 위해 만찬을 접대 해 주셨고 국가 주석 각하의 정중한 환영의 말씀을 주시고,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한 이 기회에 우리의 아이들인 왕세자와 아키시노 노미야 부부가 한때이 땅을 방문했습니다 그 때 귀국((貴国, 귀중한 국가)의 여러분으로부터 받은 여러가지 배려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최근 국가 주석을 비롯한 귀국(貴国)의 지도자가 우리나라를 방문하게 되어, 그 때 저희에게 귀국(貴国) 방문의 초대를 받고 왔습니다. 그런 가운데 이번에 귀국(貴国) 을 방문 할 수 있는 것을 감회 깊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귀국(貴国)과 우리나라 사이에서는 옛날부터 수많은 교류가 쌓여 왔습니다. 역사를 더듬어 보면 18세기에는 당시 일본의 수도였던 나라(奈良,710~784년 일본의 도읍으로 헤이조쿄[平城京])에서 대불개안[大仏開眼, 대불(大仏) 완성 때 개안회(開眼会)를 열고 공양하는 것]의 의식이 거행 되었습니다 만, 그 때 현재 베트남 중부에 있던 임읍(林邑,린 유)의 승려 불철(仏哲 )에 의해 무용이 봉납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때 임읍(林邑,린 유)의 음악은 일본의 아악 곡으로 지금도 연주되고 있습니다. 이번 한번 임읍(林邑,린 유)이 번성 또한 베트남 사원 아침(朝)의 수도였던 후에 방문합니다. 그곳에서 일본의 아악과 근원을 나누는 냐냐쿠을 듣는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한 16세기에서 17세기 사이에는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했던 베트남 중부에 위치한 호 이안에 우리나라에서 많은 무역선을 방문해 일본인 마을도 만들어졌습니다.
그 후 일본의 쇄국 정책으로 인해 귀국과 우리나라의 교류는 단절했지만 20세기 초반에는 "동유운동(東遊運動,동경 유학운동. 신학문) '아래 약 이백 명의 귀국 청년들이 우리나라에 유학 하고 있던 적도 있었습니다.
1973년에 왕위 양국의 외교 관계가 수립 된 지 이미 사십여 년 동안 양국의 교류는 더욱 확대하고 현재 우리나라에는 약 18만명의 베트남인 유학생 기능 실습생 등으로 체류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향후 우리나라에서 간호사, 개호 복지사로서 활약하는 것을 목표로 병원이나 복지 시설에서 일하면서 연수를 하고 있는 약 오백 명의 사람들도 있습니다. 내일, 문묘[文廟,공자(孔子)의 신위(神位)를 모신 사당]에서 일본에 유학하고 있던 사람들을 시작하고 일본과 베트남 양국의 교류에 종사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의 기회를 가지게 되고 있어 기대하고 있습니다.
최근 귀국(貴国)에서는 일본어를 가르치는 초등학교도 있는 등 일본어 학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기업들이 이 땅에서 생산 등에 관심을 높이고 있으며, 베트남에 거주하는 일본인의 수도 이제 약 1 만 5 천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일본과 베트남 양국에서 각각의 문화를 소개하는 행사도 각지에서 개최되고, 서로의 음악과 식사 등을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있는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양 국민의 교류가 점점 깊어지고, 서로의 문화에 대한 친근감이 더해 가고 있는 오늘, 이번 저희들의 방문이 양국 국민의 상호 이해와 우호의 인연을 더욱 강화 도움이되는 것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여기에 잔을 들어 쩐 다이 꽝(陳大光, 진대광) 국가 주석 각하 및 영부인 어건승(御健勝)과 귀국(貴国)의 국민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베트남 쩐 다이 꽝(陳大光,진대광) 국가주석과 악수하는 아키히토 일본천황
베트남 국가 주석 부부 주최 만찬에서 인사 말씀을 하는 일본 국왕
*참파 왕국(占婆王國, 베트남어: Chăm Pa, 영어: Champa, The Kingdom of Champa, 192년 - 1832년)은 베트남 중부 지방에 위치해 있던, 인도네시아계의 옛 참 족이 세운 왕국이다. 이들 옛 참 족은 오늘날 베트남 중부 남단에 거주하는 참족의 직접적인 조상이 된다. 당나라에서는 임읍(林邑)이라고 불렀고, 일시적으로 환왕국(環王國)이라고 자칭하였다. 송나라때에는 점성(占城)이라고 불렀다. 참파의 이름은 인도식 왕의 이름과 함께 이 나라가 일관해서 부르고 있는 것이다. 참파 왕국은 인도 문화의 가장 동쪽 전초지였다. 그들은 자주 프놈과 동맹을 맺기도 하면서, 중국과 끊임없이 싸움을 벌였다. 4세기 반경에 참파는 중국의 한 군(郡)인 일남(日南)을 합병하기도 했으나 이 승리는 순식간에 뒤바뀌고 말았다. 5세기에 중국이란 대국을 상대로 하는 전쟁에서 참파는 독립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삼부바르만왕은 공식적으로 중국의 주권을 인정하고, 중국에 조공을 바칠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 이리하여 비교적 평화스런 시대가 시작됨으로써, 경제적 활동이나 문화적·종교적 사업을 촉진시킬 여유를 갖게 되었다. 7세기경까지는 유력한 국가로서 중국령인 동경(東京) 지방에도 압력을 가했었으나 8세기경부터는 베트남과 당나라의 압박을 받았고, 거기에 해상왕국 스리비자야의 대두로 해상 활동이 억제되어 중개무역도 쇠퇴했다. 13세기에 원(元)나라 원정군을 격퇴시켰으나 15세기에 계속해서 베트남의 공격을 받아 17세기에 멸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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