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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알말리키 총리 '영욕의 8년' 마무리 본문

Guide Ear&Bird's Eye/이라크

이라크 알말리키 총리 '영욕의 8년' 마무리

CIA bear 허관(許灌) 2014. 8. 17. 11:40

 

 

                                                                                        알말리키 이라크 총리, 3선 연임 포기

국내외로부터 퇴진 압력을 받고 있던 누리 알말리키 이라크 총리(연단)가 8월 14일(현지시간) 3선 연임을 포기하고 총리직을 하이데르 알아바디 총리지명자에게 넘겨주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이라크의 누리 알말리키 총리가 나라 안팎의 거센 퇴진 압력에 결국 무릎을 꿇었다.

2006년 5월 당시 이브라힘 알자파리 과도정부 총리가 수니파와 쿠르드계의 반발에 부닥치는 바람에 총리 자리에 오른 그가 공교롭게도 비슷한 이유로 자리에서 물러난 셈이다. 

1950년 이라크 중부 아부 가라크 지역에서 태어난 그는 바그다드대학에서 아랍문학을 전공하며 석사 과정을 밟던 중 시아파 다와당에 입당, 정계에 입문했다. 

1979년 수니파인 사담 후세인 정권이 다와당 간부를 처형할 것이라는 소문에 시리아로 피신했고, 이듬해 궐석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1982년에는 이란으로 1990년에는 다시 시리아로 돌아오는 등 후세인의 박해를 피해 타지를 전전하던 그는 2003년 미군의 침공으로 후세인 정권이 붕괴하자 고향으로 돌아와 바트당청산위원회에서 활동하며 후세인 잔당 축출을 주도했다. 

2006년 5월 총리직을 맡을 당시만 해도 정치권에서 그의 영향력은 그리 크지 않았다. 

2006∼2007년 수니파와 시아파 간 종파 분쟁이 극에 달해 내전 상황에 이르는가 하면 수니파 무장세력의 잇단 테러로 치안이 크게 악화하는 등 집권 1기가 순탄치만은 않았다. 

2010년 3월 총선에서도 집권당인 법치연합의 패배로 연임이 불투명했지만 그는 시아파와 수니파, 쿠르드계를 모두 참여시키는 분권 내각 구성을 주도하면서 힘겹게 연임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후 알말리키 총리는 집권 2기부터 수니파와 쿠르드 정파로부터 권력을 독점하고 시아파를 우대하고 수니파와 쿠르드를 차별한다는 비판을 받기 시작했다. 

집권 2기 내내 주요 부처인 국방부와 내무부의 장관직을 공석으로 두고 측근을 차관에 앉힌 게 대표적인 예다. 

특히 2011년 12월 미군 철수 직후 수니파 최고위직 인사인 타리크 알하셰미 부통령이 암살단 조직 혐의로 망명하는 신세로 전락하면서 알말리키의 권력 독점은 더욱 큰 비판을 받기 시작했다. 

2012년 12월 시작된 수니파 주민들의 반정부시위는 2013년 4월 정부군이 수니파 시위대를 무력 진압한 '하위자 사건'을 계기로 일부 수니파 무장세력의 무력 도발로 이어졌다. 

앞서 지난 1월에는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가 서부 안바르 주의 주도 라마디 일부와 바그다드 서쪽 팔루자 전체를 장악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알말리키 총리의 법치연합은 지난해 4월30일 총선에서 전체 328석 가운데 92석을 차지해 최다 의석을 확보했다.

하지만 지난 6월 초 ISIL이 북부 모술을 장악, 이를 거점으로 거침없이 세를 확장하면서 그의 3선 연임 가도에 차질이 빚어지기 시작했다.

최근 수니파 반군을 주도하는 '이슬람국가'(IS·옛 ISIL)의 급격한 세력 확장으로 사실상 나라가 쪼개지자 국내외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 것이다. 

지난 8년간, 특히 2011년 12월 미군 철수 이후 권력을 독점하고 수니파와 쿠르드를 차별해 이번 사태를 야기했다는 비판에서다.

알말리키는 지난 11일 대통령의 새 총리 지명 전후만 해도 바그다드 곳곳에 특수부대를 배치하고 법적 대응에 나서며 3선 연임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물론 우방인 이란마저 그에게서 등을 돌리고 시아파 내부의 반대도 거세지는 등 고립무원의 처지에 빠지면서 결국 무릎을 꿇게 됐다.

특히 알말리키 총리는 14일 퇴진 연설에서 다음 정부에서 아무런 역할을 맡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당분간 정계에서 완전히 물러날 것임을 시사했다.(연합뉴스)

 

Nouri Maliki rose to prominence after the 2003 US-led invasion, as a lawmaker for the Dawa party. A former party activist from southern Iraq, he lived in self-imposed exile during the rule of Saddam Hussein.

 

 

 

 

 

 

In 2008, the US announced it would gradually hand over control of security to Iraqi forces. Anger at the US remained high, however. At a press conference in Baghdad, Mr Maliki tried to defend visiting US President George W Bush from a pair of shoes, flung in protest by an Iraqi reporter.

 

 

                                   US President Barack Obama has long been calling on PM Maliki to take a more inclusive approach to governance

 

                                                    Nouri al-Maliki still has supporters who could make life difficult for Mr Aba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