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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피즈 알 아사드(부친)과 바샤르 알 아사드(아들) 모습 본문
좌익군사정부 공군사관학교 출신으로 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하피즈 알 아사드 前대통령(부친)과 의과대학교 안과의사 출신 바샤르 알 아사드대통령(아들)
하페즈 알아사드 (Ḥāfiẓ al-Asad, 1930년 10월 6일 ~ 2000년 6월 10일) 는 시리아의 정치인으로, 아랍어로 ‘사자’란 뜻의 아사드 가문 출신이다. 1966년 ~ 1972년 시리아의 국방장관, 1970년 ~ 1971년 시리아의 총리, 1971년 ~ 2000년 시리아의 대통령을 지낸 바 있다.
1930년 북부 해안도시 카르다하의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1955년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바트당에 가입, 바트당이 집권한 1963년 쿠데타에서 요직을 맡았으며 1965년 공군사령관, 국방장관에 임명, 1970년 무혈쿠데타로 집권했다.
그는 아랍 민족주의를 내걸고 수십 년간 이스라엘-아랍간의 적대 구도를 이끌어온 중심 인물로 이집트-이스라엘 평화협정과 1993년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오슬로 평화협정 체결 등의 배후에서도 항상 아랍의 단결을 외치며 이스라엘에 강경 입장을 고수해왔다. 또한 뛰어난 정치적 감각과 책략으로 ‘아랍의 비스마르크’라 불렸다. 국제 관계에서는 구 소비에트 연방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원조를 얻고 걸프전 때는 연합군의 편을 드는 등 철저한 실리파였다. 이러한 이유로 아랍권의 대부로 존경을 받기도 했으나, 30년간 독재정치를 하며 반대파를 탄압하여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2000년 심장마비로 사망했고, 미리 후계자로 지목했던 아들 바샤르 알아사드가 후임 대통령이 되었다.
다마스쿠스 구 시가 벽의 아사드 선전 광고
바샤르 알아사드 (Bashar al-Assad,1965년 9월 11일~) 는 시리아의 대통령으로, 바트당의 지역 지도자이자 시리아의 전 대통령 하페즈 알아사드의 아들이다
바샤르 알아사드는 1965년 다마스쿠스에서 태어났다. 바샤르는 처음에는 정치가가 될 열망이 없었으며, 하페즈 알아사드는 바샤르의 형 바실 알아사드 (Basil al-Assad) 를 미래의 대통령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바샤르는 1988년 다마스쿠스 대학교에서 안과학을 배웠으며, 안과의사가 되기 위해 1992년 런던에 유학하였다.
하지만, 1994년 형 바실이 교통 사고로 사망한 이후, 시리아로 돌아와 시리아군에 입대하였다. 다마스쿠스 북부에 있는 홈스의 군사 아카데미에 들어갔으며, 1999년 1월 대령으로 승진하였다. 바샤르는 형 바실의 사고사로 인해 바샤르는 하페즈 알아사드의 새로운 후계자가 되었으며, 동생의 권력 기반이었던 시리아 공화국 수비대의 실질적인 지휘권을 장악하였다.
2000년 하페즈가 사망했을 때, 바샤르는 바트당과 군의 지도자에 임명되었고, 누구의 반대도 받지 않았다고 주장되는 대중의 엄청난 지지 (투표의 97.2%) 로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2007년 5월 27일, 또 다른 후보자 없이 치러진 국민 투표에서 97.6%의 공식 결과로 7년 임기의 대통령에 승인되었다.
바샤르 알아사드의 키는 189cm이며, 영어를 능통하게 구사하고, 프랑스어로 일상 대화가 가능하다. 다마스쿠스 대학교에서 안과전문의 과정을 공부하고, 영국의 웨스턴 안과 병원 (Western Eye Hospital) 에서 수련하였다. 하페즈의 후계자로 점쳐졌던 형 바실이 죽자, 시리아로 돌아와 군사 학교에 들어간 이후 하페즈의 후계자로 육성되었다. 2000년 12월에 런던 태생의 시리아 수니 무슬림 아스마 알아사드 (Asma al-Assad) 와 결혼하였다
바샤르는 미국 신문 워싱턴 포스트의 주간지 "퍼레이드"의 세계 최악의 독재자 순위 12위에 선정된 바 있으며, 그가 통치하는 시리아는 반 (反) 이스라엘 정책의 일환으로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레바논의 헤즈볼라를 노골적으로 지원해, 서방 국가들에게 테러 지원국으로 지정되었다.
2005년에는 라피크 하리리 전 레바논 총리 암살 사건 개입으로 서방 국가들에게 국제적인 압박을 받아, 시리아군을 레바논에서 전면 철수시켰으며, 레바논과의 중동 평화 문제를 둘러싸고, 이스라엘과의 관계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또, 북한과 핵 개발에 협력하고 있다는 의혹으로 2007년 9월, 이스라엘 공군의 시리아 공습이 이루어졌다는 보도가 나온 바 있다.
한편으로는 아버지 하페즈 알아사드의 통치 시기부터 우호적인 관계에 있었던 이란과의 관계를 공고화하고, 터키, 이라크와의 외교 관계를 개선하였다. 2009년 미국에서 버락 오바마 정권이 출범한 직후, 미국과의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는 태도를 보였다
바샤르 알아사드는 1월 26일부터 진행 중인 반정부 시위에 대해 외국의 음모라고 주장하며, 1963년부터 지속되어 온 국가비상사태의 해제를 거부하는 발언을 하였다. 2011년 4월 48년간 지속되어 온 비상사태 해제를 공포했으나, 비상사태 해제 이후에도 반정부 시위는 계속해서 전개되고 있으며, 이에 바샤르 정권은 탱크와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반정부 시위를 무참하게 진압하고 있다.
심각한 정국 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5월 27일에는 시위 현장에서 보안군에 끌려갔던 13살 소년 함자 알카티브가 고문 흔적으로 가득한 시신으로 돌아오자 국제 사회의 비난이 들끓었다.
바샤르 정권은 국제 사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반정부 시위대에 대한 일방적인 공격을 계속하고 있다. 6월 6일에는 정부의 군인과 경찰 120명이 매복 괴한한테 숨졌다고 주장하며, 6월 10일 북부 도시 지스르 알 슈구르와 이웃 마을에 대한 보복 공격을 가했으며, 이 외 시리아의 다른 도시와 터키 국경 지역에서도 대규모 유혈 진압이 일어나고 있다.
7월 2일에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발생한 하마 주의 주지사를 해임시켰으며, 7월 17일에는 수도 다마스쿠스에 위치한 우마미아드 광장에 집결한 친정부 세력에게 자신에 대한 충성을 맹세케 하였다
바샤르 알아사드와 부인 아스마 알아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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