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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탈북자, 조총련 ‘귀국 사업 50주년’규탄 본문

Guide Ear&Bird's Eye/북한[PRK]

일본 탈북자, 조총련 ‘귀국 사업 50주년’규탄

CIA Bear 허관(許灌) 2009. 11. 11. 22:26

 

올해는 일본 내 친북단체인 조총련이 일본 거주 한인들을 북송선을 이용해 북한으로 보내는 이른바 ‘귀국 사업’을 시작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최근 도쿄의 조총련 본부 앞에서는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여졌다고 하는데요. ‘귀국 사업’의 배경과 의미를 최원기 기자와 함께 알아봅니다.

문) 최 기자, 일본 도쿄에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조총련)의 귀국 사업을 규탄하는 시위가 벌어졌다면서요?

답) 네, 올해는 재일 한국인들이 북송선을 탄 이른바 ‘귀국 사업’ 이 시작된 지 50주년이 되는 해인데요. 탈북자 고정미 씨와 ‘탈북자구원회’ 그리고 ‘국경 없는 기자단’등 20여명은 지난 6일 도쿄의 조총련 본부 앞에서 조총련의 귀국 사업을 규탄하고 납북자 송환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문) 조총련은 이들의 시위에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답) 고정미 씨는 과거 북송선을 탔다가 37년 만에 북한을 탈출해 다시 일본으로 돌아온 사람인데요, 이날 항의문을 전달하기 위해 조총련을 방문했지만 조총련은 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이에 고정미 씨가 항의문을 문 앞에 놓고 돌아서자 조총련 측은 항의문을 문 밖으로 내버렸다고 합니다. 고정미 씨는 지난 해 조총련을 상대로 북한에서 겪은 고통에 대해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문) 조총련이 고정미 씨를 그야말로 ‘문전박대’ 했군요. 그런데 문제의 핵심은 이른바  ‘귀국 사업’인데, 귀국 사업이 무엇인지 좀 설명해주시죠?

답) 귀국 사업은 ‘북송 사업’이라고도 하는데요, 말 그대로 일제로부터의 해방 후 일본에 남아 있던 한인들이 조총련의 부추김으로 대거 북한으로 간 일을 말합니다. 기록에 따르면 1959년부터 1984년까지 계속된 이 사업으로 총 9만3천 여명의 재일 한인들이 북송선을 탔습니다. 특히 이들 가운데는 한국인과 결혼한 7천 여명의 일본인 처도 포함돼 있습니다. 

문) 25년에 걸쳐 1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북송됐다는 얘기군요. 그런데 이 재일 한인들이 조총련의 허위 선전에 속아서 북송선을 탔다고요?

답) 50년 전 북한의 김일성 정권은 이 사업을 노동력과 기술인력 확보 차원에서 시작했는데요. 당시 평양으로부터 지시를 받은  조총련은 재일 한인들에게 ‘북한은 세금이 없는 지상 낙원이다’ ‘김일성대학에 공짜로 보내주겠다’라는 등의 감언이설로 설득했습니다. 그러자 조총련의 이 같은 선전을 그대로 믿은 한국인들은 하나둘씩 만경봉호에 올랐다고 합니다.

문)북한에 간 한인들은 이후 어떤 대우를 받았습니까?

답)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처음에는 이들을 그런대로 대우해 줬다고 합니다. 그러나 70년대 들어 북한은 이들을 시골로 이주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반동’으로 몰아서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하는 일도 많았다고 합니다. 탈북자 출신인 서강대 안찬일 교수의 말을 들어보시죠.

“ 60년대 중반 이후 유일사상이 나오면서 그 사람들 대부분이 숙청되고 지방으로 강제 이주되고, 심지어는 73년도에 국가정치보위부가 정치범 수용소를 만들었는데 그 태반이 북송 교포 출신이었습니다.” 

문) 좀더 구체적으로 북송 교포가 무슨 이유로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됐는지 설명해 주시지요.

답) 탈북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사소한 발언이 문제가 돼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간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일본이 북조선 보다 잘 산다’ 라든가 ‘김일성, 김정일 독재 때문에 주민들이 못 산다’이런 말을 한 것이 북한 당국의 귀에 들어가 정치범 수용소에 들어간 경우가 태반이라고 합니다. 다시 안찬일 교수의 말을 들어보시죠.

“북송 교포들 역시 불만이 많았습니다. 일본에서 올 때는 나름대로 공화국에 오면 교육이나 혜택을 볼 것으로 기대했는데 그런 혜택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제재 받는 결과를 불러 온 것 같습니다.”

문) 북한식으로 표현하면 ‘말 반동’ 을 저질렀다는 얘기군요. 그런데 김정일 위원장의 부인이었던 고영희도 일본에 거주하던 한인 아닌가요?

답)그렇습니다. 고영희는 북송 한인으로 유도 선수인 고태문의 딸로 평양의 만수대예술단 무용수였다가 1970년대 후반 김정일 위원장의 눈에 띄어 동거를 시작했습니다. 고영희는 그 후 김정일 위원장의 3남인 김정은을 낳고 지난 2004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진행자: 최원기 기자와 함께 일본 도쿄에서 조총련의 북송 사업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는 소식을 알아봤습니다.

http://www.voanews.com/korean/2009-11-10-voa3.cf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