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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피아, 야쿠자, 삼합회 등 속속 국내 상륙
동남아 조직까지 침투 ‘조폭 춘추전국시대’
국정원이 이 첩보를 입수한 것은 지난 2002년 8월. 방글라데시인으로 구성된 위폐 조직이 원화, 달러화, 유로화를 만든다는 단순 첩보였다. 이들 조직이 위폐를 동남아와 미국 LA에 유통시킨다는 추가 첩보는 국정원의 추적 뒤 ‘정보’로 격상됐다. 이 요원은 현장에서 위폐를 만들 때 사용하는 장비와 드나드는 인물들까지 완벽하게 파악한 뒤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렇게 수집된 범죄정보는 국정원의 ‘자료 파일’에 저장됐고, 국정원은 방글라데시 수사당국과 공조해 결국 일당을 검거했다. 그러나 해외에서 원화를 위조한 일당이 드러난 사상 초유의 사건은 언론에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 요원의 존재가 알려질 것을 우려해 국정원이 보도 자제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은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모르는 굵직굵직한 국제범죄는 수시로 일어나고 있다. 일례로 지난 2005년에는 한국인 조모씨가 남미지역의 국제 마약조직과 결탁, 가정 형편이 어려운 가정주부 등 10명을 마약운반책으로 고용해 수리남과 페루 등지에서 프랑스, 네덜란드 등 유럽으로 무려 100kg에 달하는 코카인을 팔아넘긴 초대형 마약밀매 사건이 터졌다. 이들은 한국 국정원 등 각국 첩보원들의 공조로 검거됐지만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또 신문이나 TV등에 검찰이나 경찰 등이 검거했다고 발표되는 국제범죄 사건의 상당수도 알고 보면 국정원의 작품인 경우가 많다. 가까운 예로 지난해 1월 중국동포 유모씨가 중국에서 국내 밀입국을 원하는 중국동포 여성들에게서 거액을 받고 위장결혼을 알선한 사건이 적발됐다. 당시 유씨는 송모 씨와 함께 정상적으로 입국비자를 받을 수 있는 중국인들을 모집해 1인당 1천만원씩을 받고 위장결혼을 알선했다. 당시 경찰은 위장결혼 알선책 송씨를 검거하는 한편 위장결혼자 21명을 적발했다고 발표, 언론에 크게 보도됐지만 국정원이 물밑 작업을 지휘했다는 내용은 언급되지 않았다. 문제는 사람들이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국제범죄조직이 한국에서 범죄행위를 일삼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는 점. 국정원에 따르면 노무현 정부 출범 후부터 2005년 말까지 국제범죄와 관련해 4백7건의 사건이 발생해 무려 2천6백40명이 적발됐다. 이 중 마약범죄가 1백70건에 9백50명으로 가장 많고, 출입국 범죄가 1백21건에 1천1백6명, 금융범죄 44건에 2백67명, 위폐범죄 9건에 29명, 밀수 등 기타 범죄 63건에 2백88명 순이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국제범죄조직들중에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마피아나 야쿠자, 삼합회는 말할 것도 없고, 최근엔 아프리카 조직까지 들어와 활동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2004년까지 한국에서 활동한 나이지리아 국적의 O. C. 프랭크는 전설적인 아프리카 범죄조직의 보스다. 아프리카 범죄조직의 원조격인 나이지리아 조직의 두목이 서울에서 암약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아프리카 조직도 서울 침투
마약운반에 한국여성 이용
아프리카 범죄조직은 나이지리아, 가나, 토고, 코트디부아르 등 서아프리카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이들은 마약밀매, 금융사기, 밀입국, 인신매매, 다이아몬드 밀수 등에 개입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프랭크의 주종목은 마약 밀매로, 한국 진출 이전에는 유럽에서 활동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프랭크는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 유령회사까지 세운 뒤 한국을 국제범죄의 베이스캠프로 활용했다. 그의 조직은 대량으로 마약을 다루는 마피아 조직과 달리 소량을 빈번하게 운반, 밀매함으로써 틈새시장을 공략했다. 그는 서울에서 미국인 사업가로 행세하면서 유창한 영어로 한국 여성들과 사귀면서 이들을 마약운반책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한국을 제3국 수출의 전진기지로도 활용한 아프리카 범죄조직은 아프리카나 남미에서 값싸게 제조된 마약류를 여행객으로 위장한 조직원을 통해 국내로 밀반입했다.
러시아 마피아 수산물 거래 위조서류로 무역업체 울려
프랭크는 수사망이 좁혀오는 것을 감지하고 유럽으로 도주했다가 독일 수사당국에 의해 검거됐다. 사정당국은 수사 및 기소를 위해 신병인도를 요구하려 했으나, 그는 범죄를 저지른 덴마크로 먼저 인도됐다가 탈옥하는 바람에 현재는 행방이 오리무중이다. 이 때문에 그가 한국에서 얼마만큼의 범죄를 저질렀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소 생소한 아프리카 조직이 철저히 음지에서 움직이는 반면 중국의 삼합회, 일본의 야쿠자, 러시아의 마피아 등은 국내 호텔과 기업체를 인수하는 등 합법을 가장해 아예 ‘대놓고’ 활동하고 있다. 러시아 마피아는 야쿠르트파와 페트락파, 마가파, 알렉세이파 등 10개 조직이 부산 등지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지역적 특색에 맞게 수산물 분야에 특화하는 ‘현지화 전략’까지 펼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국내 선박회사나 수산회사 등과 연계해 명태 등 러시아산 수산물을 비밀리에 거래하고 있다. 더욱이 이들 러시아 마피아들은 영세 수산물 업체들의 열악한 사정을 이용해 사기행각을 벌이고 있어 지역경제에 피해를 주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국정원 등에 따르면 러시아 사할린에 거점을 둔 마피아들은 한국이 북태평양 명태의 최대 소비국이라는 점과 중국이 러시아와 직접교역보다는 한국을 경유한 중개무역을 선호하고 있는 점을 악용, 자신이 채취한 수산물을 중국으로 수출하고 싶다는 명목으로 국내 영세 수산물 무역업체에 접근해 사기를 치기도 했다.
조직기반 대부분 부산에 마련 ‘국내 조직과 연계 가능성’
시내 한복판서 총격전 벌어지기도…공안당국 무방비상태
이들 러시아 마피아들은 정교하게 위조된 송장과 서류를 영세업체에 보여주면서 국제가보다 10∼20% 정도 싼 가격을 제시해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현지 명태 선적 선박이 오호츠크 해역을 출발해 부산항에 도착하는데 10일 정도 걸린다며 업체를 속이고 무역 관행상 사전에 은행계좌로 송금토록 독촉해 입금된 자금을 갈취하는 수법을 썼다. 이들 러시아 조직들은 국내 마약밀매 판매 거점을 두고 서로 세력다툼을 벌이며 살벌한 전쟁을 벌이는 대담무쌍함을 보이기도 한다. 2003년 4월 러시아 마피아 조직 야크루트파 두목 ‘나우모프’가 부산에 잠입했다가 반대파 조직인 ‘파드라코프’파에 피살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일본 야쿠자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국내에 진출한 일본 야쿠자는 야마구치구미와 스미요시카이 등 21개 파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들의 주된 범죄활동은 히로뽕 밀반입, 사행성 게임, 대부업, 부동산 투기, 유흥업소 운영 등 각종 국내 이권에 개입하고 있다.
야쿠자, 금융시장 침투
한국소재 호텔 인수하기도
지난 2004년 조직원이 2만 여명인 야마구치구미는 중간보스 등 7명을 한국에 보내 부산에 사행성 도박장을 만들었고, 국내 폭력배를 고용해 청부폭력까지 일삼다 적발됐다. 사카우메구미의 재일교포 출신 두목 김 모씨는 최근 서울 특급호텔에 머물면서, 의형제를 맺은 부산지역 거대 폭력조직인 칠성파 두목 등과 접촉, 국내 부동산 거래에도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스미요시카이는 재일동포 명의로 한국에서 호텔 하나를 인수, 합법투자를 가장해 한국을 돈세탁 기지로도 활용하고 있다. 야쿠자가 고액수표를 대거 위조해 국내에 유통한 정황도 포착되고 있다. 국정원에 따르면 일본의 야쿠자 고액수표 위조조직 총책은 한국인들의 일본 위조수표 식별능력이 부족한 점에 착안, 거액의 일본 위조수표를 정교하게 위조한 다음 한국 유통책 김모씨을 통해 밀반입했다. 이들이 들여온 위조수표는 액면가 2천5백억엔 짜리 10매로, 우리 돈으로 치면 무려 18조7천억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중국 역시 푸젠성 삼합회, 연지 강동화파 등 7개 조직이 이미 국내에 들어와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삼합회는 전공인 히로뽕 밀매를 통해 국내 범죄에 연루되고 있다. 전체 조직원이 1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삼합회는 국내 조직 및 중국동포와 연계해 마약 밀매, 중국인 밀입국 알선에 개입한 정황이 속속 포착되고 있다. 최근 시가 ,600억원 상당의 마약을 국내에 밀반입 시도를 한 중국 삼합회 조직이 적발된데 이어 중국 선양의 범죄조직과 연계해 다량의 히로뽕을 국내 밀반입해 수도권 일대에 공급한 이모씨가 잇달아 검거되기도 했다. 더구나 최근 삼합회는 중국산 히로뽕 뿐 아니라 해외에서 직접 공수한 마약을 국내에 유통시키는 추세라 마약 공급원을 파악하기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들 국제범죄조직은 한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거점으로 삼고 있는 곳이 한국 제2의 도시이자 최대항구인 부산이라는 점이다. 부산은 최근 국제범죄조직의 유입에 따라 최근 몇 년간 외국인범죄가 급증하고 있고, 특히 국내 조폭과 연계 가능성이 큰 마약범죄가 전국에서 가장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5년 발생한 조직폭력배의 마약류범죄 34개파 중 전체 38% 해당하는 11개파가 부산에서 발생했다.
대부분 부산거점 마약 유통
정보제공자 보복살해까지
이같은 사실은 국제범죄조직들이 부산을 국내 마약 유통에 중심으로 보고 있음을 말해준다. 특히 마약 밀거래 사실을 털어놓은 정보제공자들을 보복 살해하는 등 잔인한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어 부산 경찰은 이들 검거에 애를 쓰고 있다. 이 밖에 태국 차이파, 방글라데시 우슈파 등 동남아 지역 조폭들도 국내에 유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전반의 개방이 진행되면서 범죄마저 세계화, 국제화의 흐름에 동참한 셈이다.
[일요시사 심철규언론인ㅣ스포츠서울닷컴 제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