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완상 대한적십자사 총재(남북정상회담 자문위원)
청와대브리핑은 앞으로 정상회담이 열리는 10월초까지 남북정상회담 자문위원들의 특별기고를 주 2~3회 연재할 계획입니다. 자문위원들의 기고 내용은 정부의 공식입장과는 별개임을 밝혀둡니다. |
이번 정상회담이 첫 번째 회담보다 한걸음 더 내실 있는 회담으로 나아가려면, 다음과 같은 의제가 충분히 논의되어 합의에 이르러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합의가 이뤄질 때 갖는 역사적 의미 곧 남북관계 개선의 새로운 국면을 지적하고 싶다.
남북 정상간, 각료간 정기적 회의 합의하자
첫째 정상회담의 정례화에 대해 우선 남북 정상이 합의하게 되면, 주요 각료회담도 정례화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른바 남북연합의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통일에 이르는 단계에서 국가연합의 단계는 대단히 중요하다. 지난 2000년의 첫 정상회담에서는 이 문제가 논의되었으나 오늘까지 단 한걸음도 진전된 바가 없다. 그런데 이번 회담에서 남북정상 간, 남북각료 간의 정기적 회의에 대해 합의가 이뤄진다면 이것은 바로 남북관계에 있어 새로운 국면을 여는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특히 통일을 위시하여 경제, 국방, 외교 분야의 장관 회담이 정기적으로 열리게 된다면 실속 있는 남북연합의 효과와 함께 민족공조의 효과도 나타날 것이다. 게다가 회담의 정례화는 다음 정권으로 이월됨으로써 일관성 있는 통일정책이 정권과 관계없이 추진될 수 있을 것이다.
비핵화에 대한 원칙적 합의는 6자회담에 선순환적 효과 미칠 것
둘째, 이번 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 문제가 논의되고, 두 정상이 이 문제에 대해 확고한 합의에 이르게 된다면 이것도 남북관계에서 새로운 국면으로 이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북은 여태까지 핵문제에 관한 한 봉남통미(封南通美)의 입장을 고수해왔기 때문이다. 말로는 ‘우리 민족끼리’를 항상 강조해왔으나 핵문제에 대해서는 미국과의 타결만을 고집해왔다. 그러기에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 두 정상의 결연한 의지를 표명한다면 북한이 명실공히 민족공조의 원칙을 존중하는 것이 된다. 이것 역시 남북관계의 새로운 국면이라 할 수 있다.
하기야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기도 하기에, 김정일 위원장이 그것을 존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점을 새삼 강조하여 비핵화 실천에 대해서는 결연한 의지를 두 정상이 표명할 필요가 있다. 비핵화의 구체적 문제, 이를테면 핵시설 불능화와 핵 프로그램의 신고 등은 6자 회담의 틀 속에서 ‘말대 말, 행동대 행동’의 지침에 따라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두 정상 간의 원칙적 합의는 이 시점에서 6자 회담에 선순환적 효과를 보태게 될 것이다. 게다가 이런 선순환적 효과로 경제공동체 형성에 필요한 자원 확보가 가능해질 것이다.
남북 FTA 등 새로운 차원의 경제적 파트너십 필요
셋째, 남북 간 경제협력에 있어 새로운 차원으로 진입해야한다. 이제까지는 긴급성 지원의 차원에서 경제적 협력이 이뤄지거나, 소규모의 교역형태로 이뤄져왔다. 이제는 중장기적인 차원에서 경제협력이 쌍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북한의 경제적 인프라는 열악하다. 이것을 개선하려면 중장기적인 계획에 따라 정부와 민간기업이 힘을 합쳐야 한다. 일종의 미니 마샬 플랜과 같은 것에 따라 북한 경제의 하부구조를 개선해야한다. 이것은 일방적 지원이 아니라 남북의 미래 번영을 위한 투자요, 평화를 담보해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이러한 협력을 순조롭게 진행시키기 위해서는 남북 간 FTA 같은 협정이 필요하다. 이것과 연관하여 우리는 중국이 홍콩을 영국으로부터 반환받으면서 시행했던 경제협력 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 나라에 두 가지 다른 체제가 존재할 때 일국양제(一國兩制)의 틀 속에서 상생하는 경제협력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홍콩과 중국 간에 약정이 있었다. 남북 간에도 이같은 경제적 파트너십을 위해 약정을 맺을 필요가 있다. CEPA(경제협력강화협정·Closer Economic Partnership Arrangement)를 체결하여 일정기간 동안 (이를테면 10년) 투자송금, 통관 등은 무관세 교역의 차원에서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남북간 경제 공동체가 가능해진다. 이것이야 말로 남북관계의 새로운 국면을 여는 역사적인 일이다.
평화체제 제도화하는데 협력…남북 연락사무소 개설 합의 절실
넷째로 지난 2000년 회담에서 다루지 못했던 군사 긴장해소 문제를 이번에는 진지하게 다뤄야한다. 현재의 정전 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시키기는 문제는 남북 간 정상의 힘으로만 풀 수 없긴 하지만, 이번에 두 정상이 휴전 체제를 종식시키고 평화체제를 제도화하는 데 협력하기로 한다면, 이것은 6.25전쟁 당사국간에서 이 문제를 풀어 가는데 중요한 촉매의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다.
NLL 문제와 관련해서도 무력충돌 방지뿐만 아니라, 남북간 공동어로 확보를 평화적으로 이룩해내야 할 때이다. 1992년의 남북기본합의서에 담긴 불가침 부속합의서 제10조에 따라 성실하게 협의할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더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번 회담에서 두 정상은 연락사무소 개설에 대해 합의하는 것이다. 서울과 평양에 각기 연락사무소가 설치된다면, 돌발사태로 인한 오해로 남북 간에 긴장이 발생하는 것을 사전 예방하거나 사후 관리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남북 간에 펼쳐질 온갖 교류협력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작고 큰 과제들을 조율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통일로 향한 과정에서 남과 북은 확실히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게 될 것이다.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대북보건지원, 일사일산 등 인도주의 협력도
끝으로 지난 60여 년간 분단과 전쟁(열전, 냉전)으로 헤어지게 된 이산가족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에, 한 차원 높은 합의가 이뤄지길 소망한다. 상봉의 횟수와 규모가 확대되어야 하고, 반드시 정례화 되어야 한다. 남북 모두 노령이산가족 수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지만 북한 어린이들의 보건상황이 여전히 열악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북한 보건상황 개선도 앞으로 해결해나가야 할 절박한 인도적 사업이다. 중장기적 북한 보건 개선을 위한 남북 간 협력이 요청된다.
수해가 단순한 자연재해로 끝나지 않고 북한의 식량난을 악화시키는 요인임을 감안하면, 벌거벗은 북한의 산을 푸르게 하는 사업이 우리 민족의 앞날을 위해서도 절실하다. 인도적인 관점에서 ‘일사일산(一社一山) 푸르게 하기’ 운동을 추진할 필요가 있고 남북 정부가 함께 지원해야한다. 그리고 인도주의 사업은 정치논리와 경제적 계산에 의해 결코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이 같은 인도주의 협력이 강화된다면 한반도 평화는 더 굳건한 기반 위에 서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