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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주변국/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는 왜 그토록 EU 가입을 원할까?

CIA Bear 허관(許灌) 2022. 4. 21. 14:27
우크라이나는 서유럽과의 좀 더 긴밀한 관계와 러시아 세력권에 속하는 것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지적을 종종 받아왔다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에 가입이 돼야 개인의 자유와 민주적 권리를 보호 받을 수 있는 국가가 될 수 있습니다.

푸틴정부는 입헌군주국을 부정하는 노동자계급이 령도하고 노농연맹을 기초로 하는 인민민주 전제정치( 인민민주주의독재)의 사회주의국가가 아닌 입헌군주국을 인정하는 민유(民有), 민치(民治),민향(民享)의 민주국가이지만 군국주의, 국가사회주의 극우성향 일당제 우위국가 권위주의 1인 장기집권 독재정부입니다.

군국주의, 침략주의 극우성향 1인 장기집권 푸틴독재정부가 개인의 자유와 민주적 권리가 보장된 민주정부로 수평적 권력교체될 때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이 될 수 있으며 러시아 주변국들도 군사적 중립국이나 친러시아 우호국가들(독립 국가 연합 가입국)이 될 수 있습니다. "

 

우크라이나가 빠르면 오는 6월에는 유럽연합(EU) 가입 후보국 지위를 공식적으로 승인 받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8일(현지시간) 마티 마시카스 우크라이나 주재 EU 대표부 대사를 만나 EU 가입 절차 중 하나인 '가입 질문지'에 대한 두 권 분량의 답변서를 전달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가 EU에 가입하기 위한 공식적인 발걸음"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국민은 오랫동안 정신적으로 유럽의 일원으로 느껴왔습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서유럽과의 좀 더 긴밀한 관계와 러시아 세력권에 속하는 것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지적을 종종 받아왔다.

그렇다면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끄는 현재의 우크라이나는 왜 그토록 EU에 가입을 하고 싶어할까?

'현대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국민은 평등함을 느끼며 유럽의 일원, EU의 일원으로 살아가자는 목표 아래 결집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EU의 공식 가입 후보국 자격 획득은 전후 우크라이나를 재건하고 현대화할 수 있는 "전례 없는 기회"를 열어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다른 국가 및 국제 금융기관과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 지원과 관련해 협상 중입니다. 물론 글로벌 기업들도 최대한 참여시키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최우선순위는 우크라이나 내 일자리 및 부가가치 창출입니다."

지난 8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찾은 우즈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만난 젤렌스키 대통령

유럽의회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대외 무역에서 EU는 40% 이상을 차지한다.

하지만 EU와 우크라이나 간의 친밀성은 무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2017년부터 우크라이나 국민은 별도의 비자 없이 EU에 입국할 수 있으며, 그보다 더 앞선 2015년부터 EU 에라스무스(EU 회원국 간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참여한 우크라이나 학생은 1만1500명을 넘는다.

전후 우크라이나에 대한 EU의 지원은 직접 지원에서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에 이르기까지 그 형태가 다양할 것으로 보인다. 녹색 에너지로의 전환 및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의 영향을 완화하기 위한 경제적인 지원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와 EU 사이의 정치 및 무역에서의 우호적 관계는 EU와 우크라이나 간 '포괄적 협력 협정'을 기반으로 한다. 에너지, 교통, 교육 등의 분야에서 양측이 서로 협력한다는 내용이다.

해당 협정은 또한 우크라이나에 개혁 시행 및 민주국가로서의 원칙, 인권, 법치를 존중할 것을 요구했다.

이후 친러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EU와의 이 협정을 거부했다. 하지만 2014년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일어난 정권 교체 혁명 운동으로 결국 야누코비치는 축출돼 러시아 모스크바로 망명했다.

친러시아냐, 친서방이냐

러시아와 서방 국가와의 관계에 대해 우크라이나 내부에서는 수년간 긴장 상태가 이어져 왔다.

친러 성향의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EU와의 긴밀한 관계를 위해 체결된 협정을 거부하자, 이에 반발한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2013년 12월부터 수도 키이우에서 대규모 항의 시위를 벌였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소련 붕괴 후 독립한 국가다.

한편 EU의 기원은 1957년 '유럽경제공동체(EEC)'라는 이름의 6개국이 맺은 '로마 조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EEC는 1993년에 12개국으로 확장됐다. (영국 또한 EU의 기초가 되는 조약인 1993년 '마스트리흐트 조약' 서명국이었으나 이후 EU를 탈퇴했다.)

이후 1995년 오스트리아, 핀란드, 스웨덴이 추가로 가입했으며, 2004년에는 발트해 국가와 몇몇 동유럽 국가가 EU에 합류하면서 가장 크게 확장됐다.

마지막 확장은 2007년(불가리아와 루마니아 가입)과 2013년(크로아티아 가입)으로, EU 세력권이 더욱 동진하는 계기가 됐다.

우크라이나는 특히 2004년 반정부 시위인 '오렌지 혁명'으로 시민들이 부정 선거를 규탄하며 정권 교체를 외쳤을 때 본격적으로 EU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반정부 시위 이후 정권을 잡은 새로운 정부가 기존 정부에 비해 훨씬 더 서방 국가와 가깝게 지내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2004년 대선에서 승리한 빅토르 유셴코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민주주의 국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2010년 대선에서는 친러 성향의 야누코비치에게 자리를 내주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새롭게 당선된 야누코비치는 EU와의 긴밀한 관계를 위해 체결된 협정을 거부했다. 이에 반발한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정권에 반대해 수도 키이우 중심 마이단 광장을 점령했다. '유로마이단 운동'이라고 불리는 대규모 항의 시위다.

결국 야누코비치가 물러나 모스크바로 망명해오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남부의 크림반도를 점령하고 우크라이나 동부의 친러 분리주의 단체를 지원함으로써 보복했다.

이러한 러시아의 지원을 등에 업고 자칭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이 선포됐다.

이들 분리주의 세력이 장악한 동부 지역은 우크라이나 내 석탄과 철강 산업의 중심지였을 만큼 산업이 발달한 지역이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산업을 유지하기 위해 소련 전역에서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노동자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기에 이 지역과 러시아의 관계는 긴밀할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의 침공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에 대한 지지가 공고해졌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자국을 침공하면서 EU 가입에 대한 의지와 지지가 약화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굳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EU 가입은 우크라이나의 미래에 대한 자신의 "전략적 비전"이라며 그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EU 지도층은 우크라이나의 열망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냈으나 구체적인 일정은 약속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최종 단계까지 보통 몇 년이 걸리는 EU 가입 과정을 과연 앞당길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들도 있었다.

게다가 알바니아, 북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세르비아, 터키가 이미 EU 후보국으로 등록한 상태다. 이후 러시아 침공의 여파로 우크라이나, 조지아, 몰도바가 EU 회원 가입을 신청한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모든 EU 가입국들이 우크라이나와 같은 절차를 거쳤으나, 이들의 경우에는 가입 질문지를 작성하는데 "몇 년이 걸렸다"고 인정했다.

"우크라이나는 일주일 남짓 만에 가입 질문지에 대한 답변을 완성했습니다. 두 권 분량입니다. 이에 따라 EU가 빠른 결정을 내려주길 바랍니다."

안드리 예르마크 대통령 비서실장은 우크라이나 정부는 오는 6월 유럽 이사회 회의 이후 가입 후보국 지위를 공식적으로 인정받길 기대하고 있다면서, 관련 협상이 "빠른 절차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는 왜 그토록 EU 가입을 원할까? - BBC News 코리아

 

우크라이나는 왜 그토록 EU 가입을 원할까? - BBC News 코리아

우크라이나는 특히 2004년 반정부 시위인 ‘오렌지 혁명’으로 시민들이 부정 선거를 규탄하며 정권 교체를 외쳤을 때 본격적으로 EU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www.bb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