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바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쪽을 장악하려는 이유

지난달 26일 친러시아 분리주의자들이 장악한 도네츠크 지역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에서 철수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동부에 총집결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돈바스 지역에서 전투가 시작됐다"며 "러시아군이 상당한 병력을 투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오래된 산업 중심지를 해방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과연 그의 목표는 달성 가능한 것일까?

우크라이나의 최정예 군대는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분리주의자들과 8년간의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이미 동쪽으로 배치됐다.

러시아군은 동쪽에서 인도주의적 재앙을 촉발시켰지만 항구 도시인 마리우폴은 여전히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리 영토 1미터를 위해서라도 싸울 것"이라며 "러시아의 새로운 공세는 분쟁을 장기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돈바스가 중요한 이유

푸틴 대통령이 말하는 돈바스는 우크라이나의 오래된 석탄 및 철강 생산 지역을 일컫는다. 이는 루한스크와 도네츠라는 두 개의 큰 동부 지역 전체를 말하는 것이다. 이 지역은 남쪽의 마리우폴 외곽에서 북쪽 국경까지 뻗어있다.

돈바스 위치도 - 구글 갈무리

영국 왕립연합서비스연구소(RUSI)의 샘 크라니 에반스는 "핵심은 러시아가 이 지역을 우크라이나 내에서 러시아어를 사용하며, 우크라이나보다 더 러시아 같은 지역으로 규정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지역에서 러시아어가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게 맞다. 하지만 더 이상 친러시아 성향은 아니다. 로찬 컨설팅의 책임자이자 국방 전문가인 콘라드 무지카는 "마리우폴이 과거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친러시아적인 도시 중 하나였다"고 설명했다.

루한스크와 도네츠라 지역 지도

전쟁이 시작된 지 한 달 만에 러시아는 루한스크 지역의 93%와 도네츠크의 54%를 장악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이 전 지역을 장악하려면 아직 멀었다. 이 지역은 비록 그가 승리를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통제하기 매우 어려운 넓은 영토이다.

푸틴이 돈바스를 통제하려는 이유

푸틴 대통령은 그동안 '우크라이나가 동부에서 대량학살을 자행했다'는 근거 없는 비난을 반복해 왔다.

전쟁이 시작됐을 때 동부 지역의 거의 3분의 2가 우크라이나의 지배 하에 있었다. 나머지 지역은 친러 분리주의 세력 하에 있었고, 8년 이상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친러 세력 간 교전이 지속됐다. 

전쟁 직전 푸틴 대통령은 두 동부 지역을 모두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된 지역으로 인정했다.

러시아가 이 거대한 지역을 모두 정복한다면, 푸틴 대통령은 이번 전쟁에서 일종의 성과를 얻게 되는 셈이다. 다음 단계는 2014년 국민투표를 통해 크림반도를 합병했던 것처럼 돈바스를 합병하는 것이다.

이런 목표가 5월 9일 이전에 달성된다면, 러시아는 승전 기념일에 이를 축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러시아군은 1945년 나치 독일의 패배를 승전 기념일로 기리고 있다.

루한스크의 이른바 '러시아 꼭두각시' 대표는 "조만간 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전쟁 지역에서 이런 가짜 투표를 한다는 발상은 비현실적으로 여겨진다.

푸틴의 전략은?

푸틴 대통령이 돈바스뿐만 아니라 크림반도의 북서쪽에 있는 케르손 남부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려 한다는 게 우크라이나 당국의 분석이다. 이 지역을 확보하면 푸틴은 남부 해안을 따라 러시아 국경으로 들어가는 육로를 확보할 수 있고, 크림반도로 들어가는 상수도 시설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

도네츠크의 대부분과 루한스크의 주요 지역은 여전히 우크라이나의 통제 하에 있다. 때문에 러시아군은 북쪽과 동쪽, 남쪽 등 사방에서 우크라이나 군대를 포위하려 하고 있다.

런던 킹스칼리지의 트레이시 저먼 분쟁 및 안보 교수는 "이 지역은 상당히 넓고 그 지리적 복잡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지금까지 러시아 국경 남쪽에 위치한 우크라이나 제2의 도시인 하르키우를 점령하는 데 실패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전략적 도시인 이지움을 점령했다.

저먼 교수는 "러시아군은 이지움 주변 고속도로의 주요 라인을 따라 이동하고 있다"며 "대부분의 장비를 도로와 철도를 통해 이동하는 것을 감안하면 이해할 만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도네츠크 주변 지도

친러 분리주의자들이 처음으로 돈바스의 상당 부분을 장악한 이후, 러시아 세력 하에 있는 도시들에선 이미 수년간 전쟁이 이어지고 있다.

M03 고속도로를 따라 이동하고 있는 러시아군의 다음 목표지는 슬로뱐스크다. 인구 12만5000명의 이 도시는 2014년 친러 분리주의 세력이 점령했는데, 곧이어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재탈환한 곳이다.

슬로뱐스크 바로 남쪽에 위치한 크라마토르스크를 점령하는 것도 러시아의 주요 목표 중 하나다.

미국에 본부를 둔 전쟁연구소(ISW)는 "우크라이나가 슬로뱐스크를 지켜낸다면, 두 지역을 모두 장악하려는 러시아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러시아군은 루한스크 북쪽과 동쪽에서 진격하면서 우크라이나 통제 하의 도시들을 연이어 공격했다. 러시아군은 세베로도네츠크의 북서쪽에 위치한 크레미나에 진입했고, 루비즈네, 포파스나, 리시찬스크 등의 도시를 폭격했다.

전쟁연구소는 러시아군이 이 도시들을 점령하면 서쪽으로 진격할 수 있게 되고, 또 이지움의 남동쪽으로 진격하는 러시아군과 연합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는 우크라이나가 이지움 외곽 지역에 반격을 집중하는 이유다.

루한스크 마을 주민들

러시아 입장에선 도로 보급선을 통제하고 서쪽에서 철도 노선에 대한 우크라이나 접근을 차단해야 한다. 철도는 우크라이나 군대와 중화기를 수송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일 뿐만 아니라 민간인을 탈출시키는 가장 빠른 경로이기도 하다.

철도망의 일부를 통제하게 된다면 러시아군은 병력과 보급품을 이동할 수 있게 된다.

세르히 하이다이 주지사는 "러시아군이 루한스크의 서부 지역 국경을 장악하려는 푸틴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방해가 되는 건 뭐든지 파괴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4일 돈바스 지역 동부 도시 크라마토르스크

러시아군의 진격을 앞두고 민간인들은 이 지역을 탈출하고 있다. 하이다이 주지사는 "러시아 포탄이 떨어지는 곳에 남는 건 훨씬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북쪽의 이지움과 남쪽의 마리우폴과 멜리토폴까지의 기차 노선은 이미 중단됐다. 슬로뱌스크에서도 기차 운행이 차질을 빚고 있고, 주변의 크라마토르스크에선 지난 8일 로켓 공격으로 기차를 기다리던 57명이 사망한 이후 열차 운행이 중단됐다.

우크라이나, 버틸 수 있을까?

전쟁 초기, 동쪽에서 우크라이나의 합동군 작전(JFO)을 구성한 10개 여단은 우크라이나 최고의 군인과 장비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의 샘 크랜니 에반스는 "우크라이나군의 숫자는 최근 몇 주 동안 지원군에 의해 증가했을 것"이라며 "우크라이나군의 병력 규모를 파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무지카는 "우크라이나의 주요 목표는 러시아에 최대한 많은 손실을 입히는 것"이라며 "우크라이나군은 큰 전투를 피하기 위해 비대칭 전술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 당국에 따르면 러시아는 현재 동부 지역에 76개 대대 전술 부대 배치했고, 최근 11개 부대를 추가했다. 한 부대는 700명에서 900명으로 구성돼 있다.

러시아의 병력 증원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군이 목표를 빠르게 달성할 것이라는 데는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전쟁연구소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군의 입지를 약화시킬 수는 있지만 큰 비용을 치를 것으로 예상했다. 반면 우크라이나 군사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많은 대대 병력이 열악한 상태에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러시아군은 7주간의 전쟁으로 이미 많은 손실을 입었다. 사기도 저하된 것으로 보인다.

분리주의자 장악한 루한스크

친러 분리주의 세력이 점령한 곳은 상대적으로 피해가 더 적은 편이다.

친러 분리주의 당국은 우크라이나군이 주거 건물을 포격하고 민간인을 살해했다고 비난했다. 도네츠크 당국은 2월 중순 이후 민간인 72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선 러시아의 공격으로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다.

익명을 요구한 루한스크의 한 여성은 BBC에 "시내에서 많은 러시아 군용차를 봤다"며 "두려움과 경계의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무서운 상황"이라며 "남자들은 친러 분리세력의 민병대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기 때문에 징병을 피하려는 사람들은 모두 숨어있다"고 전했다.

이어 "러시아군은 거리에서 남자들을 붙잡고 있다"며 "그래서 상점, 도시, 거리에는 남자가 없고, 남자들이 운영하는 사업장들은 모두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비공식적이라 하더라도 우리 지역은 이미 러시아가 됐습니다. 모든 사람은 러시아 여권을 가지고 있어요."

돈바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쪽을 장악하려는 이유 - BBC News 코리아

러시아가 돈바스에 목숨 거는 이유 - BBC News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