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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8월 17일 조용한 독립기념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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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8월 17일 조용한 독립기념일"

CIA bear 허관(許灌) 2021. 8. 19. 12:58

COVID-19 전염병은 예년과 같이 군중에 모이는 것이 금지됨에 따라 사람들이 올해 8월 17일 독립 기념일을 축하하는 방식을 바꿨습니다. 아레카 나무, 깃발 및 기타 독립 기념일 품목의 상인들은 많은 이웃과 민간 및 정부 기관이 장대 등반 및 기타 게임과 같은 일반적인 독립 기념일 행사를 조직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당한 수입을 잃었습니다. 학교와 사무실에서 거행되는 국기 게양 행사도 지난 몇 년 동안 계속된 행사였습니다. 메르데카 궁전에서는 수십 명이 참여했던 예년과 달리 8명으로 깃발 게양단을 구성했습니다. 하지만 이 팬데믹 속에서도 광복절의 유쾌한 순간을 완전히 잊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인도네시아는 태고 때부터 좋은 환경 때문에 인류의 발상 발전지가 되어 왔다
이른바 자바원인(피테칸트로푸스 에렉투스)을 비롯하여 모조케르토인. 솔로인등 원시인류의 유물이 자바섬을 중심으로 발견되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현재 인도네시아 주민의 대부분은 말레이민족계로 크게 원주민 말레이계와 제2차 말레이계로 나누어지는데, 가장 큰 차이점은 외래문화의 수용도에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 서부의 자바섬. 수마트라섬에는 기원 전후부터 인도상인의 동쪽 진출과 함께 힌두교. 불교를 중심으로 하는 인도문화가 유입되었다
논 벼재배기술을 비롯하여 산스크리트계의 문자(文字)와 문학(文學)도 전해져서 종래의 원시문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민족문화가 전개되었다
정치적으로도 많은 힌두계.불교계의 나라들이 일어났다
5세기에는 다르마왕국(서부 자바)에서 건국했고 6세기에는 칼링가국(중부 자바)이 나타났고 같은 무렵에 수마트라섬의 팔렘방에서는 불교계의 스리비자야왕국이 번영 하였다 그 세력은 8세기에는 중부 자바에까지 미쳐 샤일렌드라왕국의 융성을 가져왔으며 장대한 보로부두르 불교유적도 이때 건설되었다
또한 보로부두르와 함께 장려한 힌두교 유적인 프람바난사원군(群)도 9세기에 만들어졌고, 중부자바는 동남아시아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나 그 뒤 문화의 중심은 중부자바에서 동부자바로 몲겨져 11세기 이래 에를랑가. 싱고사리. 케디리등 힌두교계 여러 왕국이 발전 하였다 또한 몰루카제도의 특산물인 육두구. 정향나무등의 향료가 옛날부터 외국상인들을 끌어들여 자바섬은 무역의 중계지로서 번영하였다
13세기 말 원나라의 쿠빌라이는 이 남해의 부유한 섬을 노리고 대원정군을 파견했으나 싸움에서 패하였다 자바섬에서는 이 승리로 강대한 힌두교의 마자파히트왕조의 융성을 보게 되었고 명재상 가자마다의 지도 아래 현재 동남아시아의 도서부 거의 대부분 지역을 지배하여 인도네시아 역사의 황금시대를 이루었다
그러나 당시는 서쪽으로부터 이슬람세력도 동진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수마트라섬 북쪽 끝의 아치에.말라카해협을 제압하여 말라카, 보르네오섬 북부 브루나이등의 기지를 획득하면서 15세기 중엽에는 몰루카제도에 도달하는 한편 자바섬의 연안도시에도 세력을 확대시켰다
1527년 마자파히트왕국은 이 공격에 의해 멸망하였고 자바섬에는 새로 데마크<두의 마타람> 및 반탐두 이슬람왕국이 일어났다
이대 포르투갈. 영국.네덜란드 등 서유럽 나라들이 잇달아 인도네시아지역으로 진출하여 향료무역의 독점과 식민지 획득을 노리고 서로 격렬한 싸움을 벌였는데 결국 네덜란드의 전면적인 승리로 끝났다
네덜란드는 서부 자바의 자카르타항에 새로이 바타비아성(城)을 건설하여 동인도회사의 중심기지로 삼았다 이 회사는 처음에는 향료등 특산품 독점이 목적이었지만 영토지배에 편승하여 이후 3세기 반에 이르는 식민지 지배체제를 확립 하였다
19세기 초 유럽정세의 변동으로 한때 영국에게 점령당했고 오스트리아 빈회의에서 또 다시 네덜란드의 수중에 들어갔는데 네덜란드는 강제 재배법을 시행하여 원주민들로부터 착취를 감행하였다 즉 중심지인 자바섬에서 원주민의 논에 사탕수수. 커피 또는 쪽 등의 특산물을 강제로 재배하게 하여 대부분 무상으로 거두어들여 수출 하였다
유럽의 작은 나라 네덜란드는 이렇게 인도네시아로부터 착취한 거대한 이윤에 의해 국내 근대화를 완수하여 부유한 나라가 될 수 있었으나 원주민은 빈곤과 기아에 시달렸다
또한 19세기 후반부터 수마트라섬. 자바섬을 중심으로 실시된 대농원과 유전개발도 역시 네덜란드에 막대한 부를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원주민사회는 여전히 빈곤상태로 방치되었고 교육혜택도 받지 못하였다 물론 이러한 식민지 정책의 강화에 대하여 가끔 저항운동이 일어나 1825--1830년의 자바전쟁,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수마트라섬의 아치에전쟁등 대규모 전쟁이 있었으나 모두 네덜란드에 의하여 무력 진압 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인도네시아인의 민족주의 운동도 20세기에 들어오자 차츰 활발해졌다
그 도화선 역할을 한 사람이 자바귀족의 딸인 카르타니였다
그녀의 사상에 자극을 받아 조직적인 정치활동도 시작되었고 네덜란드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계속되었다
제2차대전에 의한 네덜란드 정권의 붕괴는 민족에게 희망을 주었다
1945년 8월 17일 국민당의 지도자 수카르노는 인도네시아공화국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계속해서 식민지 재지배를 목표로 하는 네덜란드둔과의 오랜 격전 끝에 1949년 말 네덜란드로부터 주권을 회복 하였다
네덜란드는 또 이리안바라트(지금의 이리안자야)에 대해서 집착을 버리지 않았으나 이곳도 1969년 국민투표로 인도네시아령이 되었으며 1976년에는 포르투갈령으로 남아 있던 티모르섬 북동부를 회수 하였다 서유럽 새력의 침략 이래 주권을 회복하기까지에는 370여년이 걸린 것이다
인도네시아 독립 이후 인도네시아의 정치는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의 통치 아래 판차 실라(건국 5원칙)에 입각한 강력한 민족주의를 배경으로 주친되어 왔다
그러나 광대한 영토와 다수민족을 가진 이 나라의 통일은 쉽지 않았다 아시아-아프리카회의 개최, 말레시아와의 대결정책, 이리안바라트의 탈환등 국민의 눈을 바깥으로 돌린 정책에는 괄목할 만한 데가 있었으나 그것과는 대조적으로 국내경제의 건설은 불충분했으며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민중의 생활고도 커졌다
이는 수카르노 전대통령이 이용한 국내 공산당 세력이 급성장 차츰 커져서 1965년 공산당 주축으로 반란군이 쿠데타(정권탈취)를 기도함으로써 일어난 <9월 30일 사건>의 계기가 되었고 그 사건 계기로 수카르노 대통령이 실각을 초래하게 되었다 수카르노 대통령이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으로 인도네시아를 근대화 한 후 사회주의와 자유주의 공존을 모색했다면 일본처럼 선진국이 되었을 것이다
수카르노 대통령이 실각한 후 공산군 정권탈취 9월 30일 사건을 진압하고 등장한 군인 출신 수하르토 대통령은 국내경제의 안정과 발전을 제1의 목표로 삼고 외자도입에 노력했으며 공산당 세력을 철저하게 배제 하였다
그리고 강력한 군대를 배경으로 하여 1998년 민주화운동과 부정부패 쳑결을 요구하는 시위대에 밀려 사임하기까지 30여년 동안 장기집권을 하였다
부통령에서 대통령직을 계승한 하비비는 1999년 대선과 총선을 실시하겠다는 정치일정을 발표하고 새 과도정부를 구성했다
1999년 6월 총선, 10월 대선에서 와히드가 승리해 정권을 교체하고 추당파적 거구내각을 출범하여 민심수습과 분열된 국민통합에 노력했다
그러나 2000년말 와히드 대통령은 각종 부패혐의가 드라나고 실정을 거듭, 통치는력을 의심받아 불신임결정이 내려져 탄핵을 받게 되었다 인도네시아 건국의 아버지 스카르노 대통령의 딸인 메가와티 부통령은 와히드 탄핵일인 2001년 7월 23일 제5대 대통령에 취임하여 이로요 필리핀대통령과 함께 전직대통령의 딸로서 부패정권을 청산하고 집권한 여성 대통령으로 기록되고 있다

2004년 7월 5일 인도네시아 직선제로 선출되는 첫번째 대통령의 과제는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으로 식민지 제도 청산과 자유주의(자유권)와 사회주의(사회권=생존권) 공존(존중) 자유사회(민주국가)모색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인도네시아 정부 경제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친미정책과 함께 일본, 중국, 한국, 인도와 협력으로 동아시아 태평양 공동체 모색을 강화하는 것이 올바른 현실적 정책이다(군사적으로는 미국과 협력, 경제적으로는 중국 일본과 협력을 할때 인도네시아 경제성장은 급속하게 될 것으로 본다 유럽은 너무나 먼 나라이다)

 

"민주주의 반대는 공산주의가 아닌 독재주의(전체주의)고, 자본주의 반대는 공산주의입니다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자유주의(자유권)와 사회주의(사회권=생존권) 공존(존중) 자유사회(민주국가)입니다-"

자본주의 3대 원칙(경제)은 사유재산, 이윤추구, 자유시장경쟁 등입니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를 부정하지만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를 인정합니다 자본주의 3대 원칙(경제)은 사유재산, 이윤추구, 자유시장경쟁 등입니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 3대 원칙을 부정함으로 자영업(자작농)을 할 수 없습니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를 부정하기 때문에 국가사회주의(자국 사회주의) 국영자본체제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 3대 원칙(정치)은 민유(民有), 민치(民治),민향(民享)의 민주정부입니다[국정(國政, 民國)은 국민의 엄숙한 신탁에 의한 것으로서, 그 권위는 국민에 유래하고(民有), 그 권력은 국민의 대표자가 행사하고(民治), 그 복리는 국민이 향유한다(民享)는 민주주의(민주)국가이다]
민주국가는 대부분 국가사회주의(군국주의)와 투쟁한 2차대전 이후 공화국 대통령, 국가주석이나 입헌군주국 수상의 임기제한이 돼야 권력분리과 국민주권, 기본권보장, 법치주의, 사법부의 독립, 복수정당과 의회정치, 국제평화주의 등을 보장할 수 있었습니다
[미합중국 헌법 수정 제22조(대통령 임기를 2회로 제한)
*이 수정조항은 1947년 3월 24일에 발의되어 1951년 2월 27일에 비준됨
제1절 누구라고 2회 이상 대통령직에 선출될 수 없으며 누구라도 타인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임기 중 2년이상 대통령직에 있었거나 대통령 직무를 대행한 자는 1회 이상 대통령직에 당선될 수 없다
다만, 본 조가 효력을 발생하개 될 때에 대통령직에 있거나 대통령 직무를 대행하고 있는 자가 잔여임기 중 대통령직에 있거나 대통령 직무를 대행하는 것을 방해하지 아니한다]

민주국가는 경제토대는 민영자본체제(민간 자본주의)이며 정치토대는 병정통합주의 노선 의회민주주의이다
독재국가는 경제토대는 국영자본체제(국가자본주의) 국가사회주의이며 정치토대는 병정분리주의 노선 군국주의 국가사회주의이다
민주국가는 경제 토대는 자본주의이며 정치 토대는 민주주의입니다[머리소리함 Guide Ear 허관 의견]


"From Guide Ear(Language, Intelligence) to Bird's Eye(Reading,Investig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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