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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군부, 정부 대대적 조직개편 선포 본문
미얀마 군부는 미얀마군 TV를 통해 지난 1일 미얀마 현 정부의 대대적 조직 개편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에서 외교부, 국방부, 국경사무부, 기획·재정과 공업부, 투자대외경제관계부, 국제협력부 등 11개 중앙정부 부처의 장관을 교체했다고 말했다. 또 국무재정부처, 기획·재정과 공업부, 상무부 등 19개 중앙정부 부처 차관 24명의 직을 박탈했다고 밝혔다.
미얀마 공식 발표에 따르면 미얀마 현 정부는 24개 부처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번에 정부 부처가 대거 개편되었다.
윈 민 미얀마 대통령과 아웅산 수지 국가 고문 및 민주주의 민족동맹(NLD) 고위 인사들은 1일 새벽 군부에 의해 구금됐다. 미얀마 군부는 1년간 비상사태를 선포했으며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에게 국가 권력이 이양됐다고 덧붙였다.
흘라잉 미얀마 사령관, “쿠데타 불가피했다”
미얀마 군부가 1일, 아웅산 수치 국가 고문과 윈 민 대통령, 여당 간부를 잇달아 구속하고 쿠데타로 전권을 장악했습니다.
국영 텔레비전은 2일 밤, 쿠데타 이후 처음으로 군부 책임자인 민 아웅 흘라잉 사령관의 대국민 성명을 내보냈습니다.
흘라잉 사령관은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1,000만 표가 넘는 부정이 있었지만 조사되지 않은 채 새 정권이 출범하려고 했기 때문에 군부가 통치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며 쿠데타의 정당성을 주장했습니다.
아울러 간부 소집 회의에서도 미얀마의 현실에 적합한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갈 필요가 있고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발언했습니다.
한편 여당 국민민주연맹, NLD 관계자에 따르면 군부는 구속했던 일부 인사들을 2일 석방했습니다.
이 중에는 군부가 해임한 것으로 보이는 각료도 포함돼 있고, 건강 상태는 모두 양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수치 씨는 수도 네피도에 있는 자택에 연금돼 외부와의 통신이 차단된 것으로 전해진 만큼 연금 상태가 장기화할 것으로 우려됩니다.
흘라잉 미얀마 사령관, “쿠데타 불가피했다” | NHK WORLD-JAPAN News
미얀마정부는 군정분리주의 군사정책을 군정통합주의 군사정책으로 변경돼야 문민정부가 수립이 될 수 있습니다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으로 불리던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NLD는 2015년 총선에서 승리해 50여 년 간의 군부 집권을 종식하고 문민정부를 수립했습니다.
하지만 군부는 군부정권 시절 제정된 헌법에 따라 상 ·하원 의석의 25%를 사전 할당받고, 내무·국방 등 3개 주요 부처의 장관을 맡는 등 미얀마 정치권에서 막강한 권한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군정분리주의는 군정과 군령을 분리된 국가제도입니다 군정분리주의는 군정기관과 군령기관의 역할을 내각과 군사위원회(국방위원회, 군사평의회)로 분리함으로써 군정은 정부의 책임과 의회의 통제 아래에 두지만 군령은 정부나 의회보다 우월한 군령권을 군사위원회(국방위원회, 군사평의회)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군 통수권에 정치적 판단(의회통제)이 개입할 여지가 없고 오로지 최고 지도자(최고 사령관)에게만 모든 군 인사권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군정분리주의는 군(軍)통수권 독립이 허용되는 모델로 국가수반(국가주석이나 총통, 대통령)이 군 통수권자가 아닌 군사위원회(국방위원회, 군사평의회) 위원장이 군 통수권자입니다 군정분리주의는 국가사회주의 국가 군사정책으로 침략군대가 될 수 있습니다
병정통합주의(兵政統合主義)란 군정통합주의는 군정기관과 군령기관을 모두 행정부에 소속시켜 군령 또는 군정과 같이 국가행정의 일부로서 정부의 책임과 의회의 통제 아래서 수행하도록 하는 주의로써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에서 채택하고 있습니다 군정통합주의는 통수권의 독립이 허용되지 않으며 문관에 대한 무관의 지배가 불가능함으로 군국주의(군부통치)의 대두를 방지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군정통합주의는 미국이나 영국, 한국, 러시아, 일본등 대부분 국가에서 채택하고 있습니다
세계전쟁에서 군정통합주의 군사정책 국가들이 군정분리주의 군사정책 국가들에게 승리해왔습니다 전쟁은 무장력 힘만이 아닌 국내외적 국민적 지지 옹호입니다
아웅산 수치 여사
지난해 11월 미얀마에서 치러진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ational League for Democracy, NLD)이 압승을 거뒀습니다. 그리고 지난 1일에는 반세기에 걸친 군부시대를 끝내고 민간 주도의 민주정부로 향하기 위한 의회 개원식을 가졌습니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자 민주주의민족동맹 대표 아웅산 수치 여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아웅산 수치는 누구?”
아웅산 수치 여사는 2차 세계대전의 암운이 걷혀가던 1945년 미얀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니까 올해 나이 만 70살인데요. 아버지는 영국과 일본의 식민 지배로부터 미얀마의 독립을 이끈 미얀마의 영웅 아웅산 장군입니다. 하지만 수치 여사가 2살 때 암살당했고요. 수치 여사는 15살 때 인도 주재 대사로 발령받은 어머니를 따라 인도로 건너가 그곳에서 청소년 기를 보냅니다. 그리고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로 유학을 가 정치와 경제, 철학을 공부하고요. 거기서 한 남성을 만나 결혼, 두 아들의 엄마로 평범하게 살았습니다.
“평범한 주부에서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 되기까지”
아웅산 수치 여사는 이후 내내 외국에서 살았습니다. 조국 미얀마가 뇌리에서 떠난 적은 없지만 정치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고 해요. 하지만 1988년 아웅산 수치 여사는 인생에 큰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어머니가 아프다는 연락을 받고 미얀마를 찾았는데요. 그 곳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한 겁니다. 26년간 계속되고 있는 네윈의 군사독재 정권에 항의하는 시위대를 향해 군인들이 총을 쏘는 바람에 수많은 사람들이 피 흘리며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수치 여사는 시위 군중들 속으로 들어갑니다. 사람들은 미얀마 건국의 영웅, 아웅 산 장군의 딸인 수치 여사가 자신들을 위해 나서 줄 것을 원했습니다. 수치 여사는 이 사람들을 두고 남편과 자녀들이 있는 영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해 8월, 수치 여사는 이른바 미얀마의 8888 항쟁의 선봉에 서게 됩니다.
“아웅산 수치 여사와 민주주의민족동맹”
1989년 9월 아웅산 수치 여사는 반정부 인사들을 중심으로 정당을 결성하고 이름을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라고 짓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미얀마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는데요. 평범한 주부였던 한 여성이 조국의 자유를 위해 군사정부의 총칼에 맞서고 있는 모습은 국제사회에 큰 충격과 감동을 던집니다. 결국 국제사회의 중재 속에 미얀마 군사정부는 1990년 총선을 치르기로 하는데요. 이 총선에서 NLD는 80%가 넘는 압승을 거둡니다. 하지만 군부는 이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NLD 당원들을 무더기 체포하고 아웅산 수치 여사에게는 가택연금 조처를 내립니다. 이후 미얀마 군부는 10년간 NLD를 불법 정당으로 규정하고 탄압합니다. 수치 여사는 2010년까지 모두 세 차례 가택연금을 당하는데요. 이 기간을 다 합치면 무려 15년이나 됩니다. 수치 여사는 가택 연금 상태에서도 미얀마의 민주화를 촉구하며 단식 투쟁에 돌입하는 등, 국제사회에 미얀마의 현실을 알리는 데 노력합니다. 이후 미얀마 군부는 10년간 NLD를 불법 정당으로 규정하고 탄압합니다. 수치 여사는 2010년까지 모두 세 차례의 가택연금을 당하는데요. 이 기간을 다 합치면 무려 15년이나 됩니다. 수치 여사는 가택 연금 상태에서도 미얀마의 민주화를 촉구하며 단식 투쟁에 돌입하는 등, 국제사회에 미얀마의 현실을 알리는 데 노력합니다. 가택 연금 상태에서 노벨 평화상을 받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영국에 있는 두 아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지 못하는 아픔은 물론이고, 남편이 암으로 사망했을 때 임종도 보지 못하는 고통도 겪었습니다. 이 때 미얀마 군부는 수치 여사의 가택 연금 상태를 잠시 풀어주고 영국 방문을 허용했지만 당국이 다시 입국을 허용하지 않을 것을 우려해 포기해야 했습니다.
“아웅산 수치 여사, 철의 난초 ”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 아웅산 수치 여사를 수식하는 말은 참 많습니다. 특히 미얀마 사람들은 아웅산 수치 여사를 그냥 부르지 않고 존경의 의미를 담아서 ‘Daw 아웅산 수치’ 라고들 많이 부르는데요. Daw는 미얀마 말로 이모, 아주머니 정도의 의미를 갖습니다. 그만큼 미얀마 사람들에게 아웅산 수치 여사는 친숙한 존재죠. 또 수치 여사가 가택 연금 상태 중에 있을 때 어떤 사람들은 그녀를 일컬어 ‘버마에 갇힌 작은 새’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2012년 그녀의 삶을 다룬 영화 ‘The Lady’가 나온 뒤로는 The Lady라는 호칭도 얻었습니다. 굴복하지 않는 정신적 투쟁을 빗대 여성 만델라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고요. 가녀린 외모와 기품을 본떠 공작새, 철의 난초(steel orchid)라는 별명도 있습니다. 사실 아웅산 수치 여사의 외모만 보면 투사, 투쟁이라는 말이 주는 거칠고 투박한 모습과는 거리가 멉니다.
[녹취] 아웅산 수치 여사 미국의 소리 VOA 현지 대담
하지만 수치 여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한 신념이 혹독한 시간을 이기게 한 원동력이 됐다고 회고했습니다.
“상징적 인물에서 마침내 현실적인 정치가로”
미얀마 군부는 2010년 총선 일주일을 앞두고 수치 여사의 가택연금을 풀어줍니다. 총선에서 승리한 새 정부가 개혁 과정을 밟고 있는 가운데 수치 여사와 NLD도 정치적 활동을 재개합니다. 2012년 4월에 실시된 보궐선거에 수치 여사는 직접 출마해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고요. 수치 여사가 이끄는 NLD 당도 44석 중 43석을 다 차지하는 압승을 거둡니다. 그리고 같은 해 5월 , 24년만에 처음으로 미얀마 곳곳을 방문하며 더 이상 상징적인 인물이 아니라 현실적인 정치 지도자로서 본격적인 행보를 걸었고요. 2015년 11월 치른 총선에서 NLD 당은 압승을 거두면서 마침내 집권당이 됐습니다.
[녹취] 미얀마 총선 보도
하지만 현재 미얀마 헌법에 따라 외국인 자녀를 둔 수치 여사는 대통령 선거에 나설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해 수치 여사는 집권당의 지도자로서 실질적인 국정운영을 할 거라는 의지를 밝힌 바 있습니다. 한편 미얀마 정치권에서는 최근 수치 여사가 비현실적인 원칙주의자, 이상적인 평화주의자로 현실적인 정치 감각이 떨어진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버마와 미얀마 어느 게 맞는 국호인가요?”
청취자 여러분들 가운데서는 어디서는 버마라고 하고, 어디서는 미얀마라고 할까 좀 헛갈려 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불과 한두 해 전까지만 해도 저희 VOA 방송도 미얀마가 아니라 버마라고 불렀는데요. 1988년 8월의 항쟁 후 다시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신군부가 국민적인 합의 없이 국호를 버마에서 미얀마로 바꿨습니다. 그래서 민주화 운동가들을 중심으로 민주주의를 위한 항거의 표시로 군사정권이 일방적으로 바꾼 미얀마라는 국호를 쓰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미국 정부도 여전히 공식적으로 버마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많은 미얀마 국민이 원하는 이름도 버마라고 하는데요. 앞으로 NLD가 집권하면 다시 버마로 국호가 바뀔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민주주의 반대는 공산주의가 아닌 독재주의(전체주의)고 자본주의 반대가 공산주의입니다.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자유주의(자유권)와 사회주의(사회권=생존권) 공존(존중) 자유사회(민주국가)입니다"
a.자본주의 3대 원칙[경제]은 사유재산, 이윤추구, 자유시장경쟁 등이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 3대 원칙을 부정함으로 자영업(자작농)을 할 수 없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를 부정하기 때문에 국가사회주의(자국 사회주의) 국영자본체제로 나아갈 수 있다
b.민주주의 3대 원칙[정치]은 국민의(民有,Of the people), 국민에 의한(民治,By the people), 국민을 위한(民享,For the people) 민주정부(民主政府,Democratic Government)이다. 국정(國政, 民國)은 국민의 엄숙한 신탁에 의한 것으로서, 그 권위는 국민에 유래하고(民有), 그 권력은 국민의 대표자가 행사하고(民治), 그 복리는 국민이 향유한다(民享)는 민주주의(민주)국가이다
국가사회주의(군국주의)와 투쟁한 2차대전 이후 공화국 대통령, 국가주석이나 입헌군주국 수상의 임기제한이 돼야 권력분리와 국민주권, 기본권보장, 법치주의, 사법부의 독립, 복수정당과 의회정치, 국제평화주의 등을 보장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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