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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고위층 탈북, 류 대사대리 이전에도 지속..."체제 불안정, 자녀 교육 등 이유"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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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고위층 탈북, 류 대사대리 이전에도 지속..."체제 불안정, 자녀 교육 등 이유"

CIA Bear 허관(許灌) 2021. 1. 27. 16:13

황장엽 전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지난 1997년 7월 한국으로 망명한 후 서울에서 가진 첫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자료사진)

최근 알려진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의 탈북 이전에도 북한 고위층의 망명은 꾸준히 있었습니다. 북한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지위를 누리던 이들의 탈북 배경으로 북한 체제의 불안정성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동경, 자녀들의 교육 문제 등이 꼽히고 있습니다. 

한국 등 제3국에서 새 삶을 시작한 북한 출신 인물 중 최고위층은 이제는 고인이 된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입니다.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황 전 비서는 지난 1997년 일본 방문 뒤 귀국길에 베이징주재 한국대사관에 망명을 신청했습니다.

황 전 비서는 수기를 통해 북한 체제에 의분을 느꼈다며, 변혁을 도모하기 위해 망명을 결심했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2010년 심장마비로 사망하기 전까지 황 전 비서는 북한 체제의 문제점과 인권 실태 등을 고발하는 활동을 벌였습니다.

황 전 비서는 지난 2003년 미국 워싱턴에서 한 연설에서 북한 정권이 무너져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녹취: 황장엽 전 비서] “김정일 독제체제를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 근본입장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의 견해입니다.”

외교관 신분으로 망명한 첫 번째 인물은 지난 1991년 콩고대사관 1등 서기관으로 근무했던 고영환 씨입니다.

한 때 김일성 주석의 프랑스어 통역을 하기도 했던 고 씨는 콩고에 주재할 당시 공산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한 사실이 드러나자 망명을 감행했습니다.

1996년에는 잠비아주재 북한대사관 3등 서기관이자 현철해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의 조카인 현성일 씨와 부인이 한국으로 망명했고, 잠비아대사관의 보안책임자였던 차성근 씨도 같은 해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이듬해인 1997년에는 장승길 당시 이집트주재 대사와 그의 형인 장승호 프랑스주재 경제참사관이 미국으로 망명했습니다.

또 1998년에는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주재 북한대표부 3등 서기관이던 김동수 씨와 그의 가족이 서울로 향했고, 1999년에는 독일 베를린주재 북한이익대표부 서기관 김경필 씨가 미국에 도착했습니다.

이어 2000년에는 태국주재 북한대사관 과학기술참사관이던 홍순경 씨 가족이 한국에 정착했습니다.

이름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태국과 아프리카, 러시아 등지에 근무하던 북한 외교관이 망명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처조카인 이한영 씨. 탈북 후 정착한 한국에서 지난 1997년 북한 공작원의 총에 맞아 숨졌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인척이 망명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처 성혜림의 조카인 이한영 씨는 1982년 모스크바를 거쳐 한국으로 망명했다가 1997년 경기도의 자택 주차장에서 북한 공작원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습니다.

앞서 이한영 씨의 모친이자 성혜림의 언니인 성혜랑 씨는 1996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서방으로 탈출한 상태였습니다.

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모인 고용숙 씨는 외교관인 남편과 스위스에 머물던 중 1998년 미국대사관을 통해 미국으로 망명했습니다.

고용숙 씨 부부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어린 시절 스위스에서 유학할 당시 뒷바라지를 맡았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통치자금을 관리하는 북한 노동당 39호실의  고위 관리 출신이 탈북하기도 했습니다.

2015년 탈북해 그 이듬해 미국으로 망명한 리정호 씨는 39호실 산하 대흥총국 선박무역회사 사장과 무역관리국 국장, 금강경제개발총회사 이사장 등을 거쳐 중국 다롄주재 대흥총회사 지사장을 지냈습니다.

북한 노동당 39호실 고위 간부였던 탈북자 리정호 씨가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연설했다.

지난 2002년 경제, 문화, 건설 부문에서 공로를 세운 사람에게 주어지는 ‘노력영웅’ 칭호를 받은 리 씨는 2014년 북한에서 진행된 처형과 숙청을 보면서 망명을 결심했다고 VOA에 밝힌 바 있습니다.

[녹취: 리정호 씨] “그 때 제가 알고 지내던 여러 명의 고위급 간부들이 고사총으로 무참히 처형됐고 또 우리 자식들이 알고 지내던 친구들이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 가는 걸 보면서 정말 저희들은 강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와 가족들은 정말 그런 비극적인 상황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최근 들어 가장 잘 알려진 고위급 탈북 인사는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를 지냈던 태영호 한국 국회의원입니다.

2016년 가족과 함께 한국이 입국한 태영호 전 공사는 당시 탈북 동기에 대해 "김정은 체제에 대한 염증과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동경, 그리고 자녀와 장래 문제 등”으로 밝힌 바 있습니다.

태 전 공사는 지난해 4월 한국 총선에서 탈북민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지역구 국회의원에 당선됐습니다.

태 전 공사의 오랜 친구로 알려진 조성길 전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대리도 2018년 11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종적을 감춘 뒤 한국에 망명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북한 외교관이었다가 탈북해 한국 국회에 진출한 태영호 의원.

미 해군분석센터의 켄 고스 국장은 북한의 고위급들로서는 엘리트로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한 정권 내에 머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 정권 내 그들의 지위가 떨어지거나 도전을 받는 상황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정권을 떠나는 것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고스 국장]  “As long as they can reap the benefits of being part of the elite in North Korea, then it makes sense for them to to stay with the regime. But at some point if it looks as if their status within the regime is going to drop or be challenged, then, I think, they have the many of them take that opportunity to seriously consider whether they want to leave the regime. And now, given the troubles that the regime is facing the increased pressure that hard currency operators are facing, I think that that many of them are going to take this opportunity to bail out.”

고스 국장은 그러면서 북한 정권이 자금 관리 측면에서 직면하고 있는 압박이 커지면서 이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정권을 떠나는 기회로 삼으려고 했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