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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선박 나포: 이란은 왜 한국을 '인질범'이라고 표현했을까?
CIA Bear 허관(許灌) 2021. 1. 7. 11:55
"한국 정부가 70억달러(약 7조5992억원)를 인질로 잡고 있다."
이란 정부가 인질범으로 한국을 지목했다.
5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알리 라비에이 이란 정부 대변인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국 선박 나포가 인질극에 해당한다는 지적에 "70억달러를 인질로 잡고 있는 건 한국"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란 국민의 어려운 사정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제재 대상이 아닌 의약품 같은 물품에 관해서도 근거 없는 구실을 들어 이란의 접근을 거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애초 이란은 선박 억류 이유로 '해양 오염' 혐의를 들었다. 하지만 이란 정부의 이같은 발언으로 이번 사건의 배경엔 미국의 대이란 제재로 한국으로부터 받지 못한 석유 대금 문제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앞서 이란 혁명수비대는 전날 오전 10시 걸프 해역(페르시아만)에서 "한국 배는 반복적인 환경법을 위반했다"며 한국 국적 선박 '한국케미'를 나포했다.
이 선박은 메탄올 등 화학물질을 싣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아랍에미리트(UAE)로 가던 길에 나포된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인 선원 5명과 미얀마인 11명, 인도네시아인 2명, 베트남인 2명 등 20명이 타고 있었다.
혁명수비대 측은 나포 뒤 발표한 성명에서 "해당 선박이 해양 환경 규제를 반복적으로 위반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이란 관영 IRNA 통신 등에 따르면 하티브자데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이 사안은 완전히 기술적인 것이며, 해당 선박은 해양 오염에 대해 조사하라는 법원의 명령에 따라 조치된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선사 측은 "환경 오염을 할 이유는 전혀 없다"며 이란의 입장을 납득할 수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해당 유조선을 소유하고 있는 선사 디엠쉽핑의 이천희 이사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최근 출항 전 검사가 무척 까다로워서 환경 오염 우려가 있으면 배가 출항할 수 없다. 그리고 이란 측 요청으로 조사를 위해 영해에 자발적으로 진입했기 때문에 나포라고 볼 수도 없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케미'호는 이란 남부 반다르아바스 항에 억류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이 내세운 '70억달러'의 의미는?
이란은 표면적으로는 선박 나포의 이유를 '해양 오염' 때문이라면서도 '70억달러'를 강조하고 있다.
라비에이 대변인이 언급한 이 돈은 한국의 우리은행과 IBK기업은행의 이란중앙은행 명의 원화 계좌에 예치된 이란의 원유 수출대금이다.
이 자금은 미국 정부가 2018년 핵합의를 탈퇴하고 이란 제재를 강화하면서 사용하지 못하게 동결됐고, 이란 정부는 자금을 돌려달라고 한국 정부에 강하게 요구해 왔다.
앞서 미국은 지난 2012년 국제 달러 금융거래 시스템인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이란중앙은행 등 30개 금융기관을 퇴출시켰다. 이어 2018년 이란중앙은행을 제재 명단에 올렸고, 2019년엔 제재를 강화하면서 한국과 이란 간 교역·금융거래가 사실상 중단됐다.
하지만 이란과의 협의가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정부와 미국 재무부는 이란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구매 대금을 한국 원화 자금으로 납부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었다.
앞서 인도주의 명분으로 미국과 협의해 지난해 5월 동결된 자금을 이용, 50만달러(약 5억4350만원) 규모의 의약품을 이란에 수출하기도 했다.
외교적 대응
정부는 이란에 억류된 한국 선박이 조기에 풀려날 수 있도록 교섭 실무대표단의 현지 파견을 준비하고 있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5일 정례브리핑에서 "가장 이른 시일 내에 담당 지역 국장을 실무반장으로 하는 실무대표단이 이란 현지에 급파돼 이란 측과 양자 교섭을 통해서 이 문제의 현지 해결을 노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고경석 외교부 아프리카중동국장을 단장으로 한 정부 실무대표단은 이르면 6일 밤 이란 테헤란을 향해 출국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와 별개로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도 오는 10일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이란을 방문한다. 최 차관의 이란 방문은 선박 나포 사건 이전부터 추진돼 왔으며, 양자 현안을 비롯한 전반적인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최 차관의 이란 방문 시 한국과 이란 간의 공동 관심사에 대해서 폭넓은 협의가 있을 것"이라며 "최근에 발생한 선박 억류 문제와 관련해서도 당연히 관련 의견 교환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외교부는 또한 미국과 유럽연합(EU), 카타르, 오만 등 친이란 국가, 억류 국민의 소속국, 과거 억류 경험국 등과 소통하면서 협력할 계획이다.
군도 이번 나포 상황 대응을 위해 청해부대 최영함을 호르무즈해협 인근 해역에 파견했다.
이란의 '나포 활용법'은?
이란은 과거에도 외교·군사적 갈등 상황에서 타국 선박에 대한 억류를 항의나 보복의 도구로 삼아 왔다.
중동 산유국의 주요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끼고 있는 지리적 이점을 활용했다.
표면적 이유는 영해 침범이나 해양 오염 등이었지만, 정치적 이유가 따로 있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9년 7월 19일 영국 유조선 '스테나 임페로호'를 국제 해양법을 위반했다며 끌고 간 사건이다.
당시 이란은 이 유조선에 대해 "선박 자동식별장치를 끈 채 불법 해로로 운항하면서 이란 어선을 들이받고 도주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나포 15일 전 영국이 이란 국적 유조선을 유럽연합의 대시리아 제재 위반 혐의로 영국령 지브롤타 인근에서 나포한 것에 대한 보복 성격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당시 테리사 메이 내각이 전방위적 대응에 나섰음에도 이란은 두 달이 흐른 뒤에야 이 배의 석방을 발표했다.
앞서 지브롤터 당국이 이란 유조선을 억류 45일 만에 방면한 데 따른 조처였다.
지난해 8월 17일에도 이란은 '영해 침범'을 이유로 아랍에미리트 선박 '윌라'를 나포했다.
이와 관련해선 4일 전 아랍에미리트가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를 정상화하겠다는 '평화협정'을 체결한 데 따른 대응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아랍에미리트가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가까워지자 항의 차원에서 실력 행사를 했다는 것이다.
이란 외무부는 평화협정 발표 다음날 성명에서 "시온주의 정권(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의 외교관계 정상화를 강하게 규탄한다"며 "이 합의는 팔레스타인과 모든 무슬림의 등에 칼을 꽂는 짓"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수니파 국가인 아랍에미리트가 이스라엘과 평화협약을 체결할 경우 자연스럽게 시아파 맹주인 이란에 대한 견제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인도 유조선 나포 때도 '환경오염' 문제 삼아
한국케미호와 외견상 가장 비슷해 보이는 사건은 2013년 8월 13일 있었던 인도 유조선 나포다.
그해 8월 13일 이란은 이라크 원유 14만톤을 싣고 가던 인도 유조선 'MT 데슈샨티'호를 나포했는데, 당시에도 이번 사건처럼 해양오염을 나포 이유로 들었다. 그러면서 100만달러(약 10억8560만원)의 보상금을 요구했다.
당시 선박을 소유하고 있던 인도선박협회(SCI) 측은 "유조선을 인도에서 출항시키기 전에 선박평형수 오염 야기 여부를 확인한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때문에 국제사회에선 당시 인도 정부가 이란 석유 수입을 줄이고, 이라크 석유 수입을 늘린 데 대한 보복이었단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이란은 억류 인도 유조선을 한 달 만에 풀어줬다.
이란은 인도와 협상을 하고 이런 결정을 내렸는데, 자세한 합의 내용은 양국 모두 밝히지 않았다.
한국선박 나포: 이란은 왜 한국을 '인질범'이라고 표현했을까? - BBC News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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