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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 “코로나19 안정되는 대로 시진핑 방한 조기 성사 합의”
CIA Bear 허관(許灌) 2020. 8. 23. 03:11
한국과 중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이 안정돼 여건이 갖춰지는 대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조기에 성사시키기로 합의했다. 방한 시기 등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선 외교당국간 지속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22일 부산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양제츠 중국 중앙정치국 위원과 회담에서 이같이 합의했다고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서면 브리핑을 통해 밝혔다.
강 대변인은 “중국 측은 ‘한국이 시 주석이 우선적으로 방문할 나라'라는 점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회담과 오찬 협의에서 서 실장과 양 위원은 △코로나19 대응 협력 △고위급 교류 등 한·중 관심 현안 △한반도 문제와 국제정세 등 폭넓은 이슈에 대해 허심탄회하고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
양측은 이번 양 위원의 2년 만의 방한이 한중 간 교류협력 활성화를 위한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며, 특히 서 실장 부임 이후 주요국 상대 인사로는 처음으로 가진 상견례를 겸한 오늘 회담이 매우 의미 있고 성공적으로 개최됐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서 실장은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양국이 신속통로 신설 및 확대 운영 등 교류협력 회복과 발전을 위한 공동의 노력을 이어나가고 있음을 평가하고 △항공편 증편 △비자발급 대상자 확대 등이 조속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중국 측이 함께 노력해 줄 것을 당부했다.
양측은 또 한·중·일 정상회의 연내 개최 필요성에 대해서도 협의했고, 한·중·일 정상회의 계기 리커창 총리의 방한이 이루어지면 한·중·일 3국 관계는 물론, 한중관계의 미래 지향적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데에도 뜻을 모았다.
양측은 다양한 양국의 관심 현안 중 △FTA 2단계 협상 가속화 △RCEP 연내 서명 △제3국 시장 공동진출 △신남방·신북방정책과 ‘일대일로’의 연계협력 시범사업 발굴 △인문 교류 확대 △지역 공동방역 협력 △WTO 사무총장 선거 등 다자 분야 협력 문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면서 폭넓은 공감대를 이뤘다.
이 밖에도 양측은 한반도 정세를 포함한 지역 및 국제문제에 대해서도 논의했으며, 특히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진전 과정에서 한중 양국 간 전략적 소통과 협력의 중요성에 대해 공감했다.
서 실장은 우리 정부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진전을 위해 외교적 노력을 계속해 나갈 것임을 강조했다. 양 위원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진전을 위한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을 평가하면서, 향후에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위해 우리 측과 지속적인 소통과 협력을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양 위원은 최근 미중관계에 대한 현황과 중국 측 입장을 설명했고, 서 실장은 미·중 간 공영과 우호 협력 관계가 동북아 및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중요함을 강조했다.
강 대변인은 “이번 양 위원의 방한은 코로나19 이후 중국 측 고위급 인사의 첫 방한”이라며 “한중 간 고위급 대면 소통을 통해 양국 간 교류협력을 회복하고 활성화해나가고자 하는 양국 간 의지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양 위원은 서 실장과 오찬을 끝으로 방한 일정을 마치고 중국으로 귀국한다.
서 실장은 호텔에서 코로나19 검사를 받은 후 결과가 나올 때까지 6시간 동안 대기한다. 검사 결과 음성이 나오면 서울로 복귀해 5일 동안 자가격리할 예정이다.
김진하 동아닷컴 기자 jhjinha@donga.com
‘서훈-양제츠 회담’ 청와대 서면 브리핑 전문 |
서훈 국가안보실장은 8월 22일 오전 9시 30분부터 4시간 동안 양제츠 중국 중앙정치국 위원과 회담을 가진 데 이어, 오후 1시 30분부터 1시간 50분 동안 오찬 협의를 통해 △코로나19 대응 협력 △고위급 교류 등 한중 관심 현안 △한반도 문제와 국제정세 등 폭넓은 이슈에 대해 허심탄회하고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양측은 이번 양제츠 위원의 2년 만의 방한이 한중 간 교류‧협력 활성화를 위한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며, 특히 서훈 실장 부임 이후 주요국 상대 인사로는 처음으로 가진 상견례를 겸한 오늘 회담이 매우 의미 있고 성공적으로 개최되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습니다. 서훈 실장은 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시진핑 주석에 대한 안부를 전달했고, 양제츠 위원은 문 대통령에 대한 시 주석의 안부를 전달했습니다. 또한, 양제츠 위원은 지난 7월 중국 홍수피해 때 문 대통령의 시 주석 앞 위로전 발송에 다시 한번 감사를 표명했습니다. 서훈 실장은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양국이 신속통로 신설 및 확대 운영 등 교류‧협력 회복과 발전을 위한 공동의 노력을 이어나가고 있음을 평가하고 △항공편 증편 △비자발급 대상자 확대 등이 조속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중국 측이 함께 노력해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이에 대해 양제츠 위원은 한중 수교기념일(8월 24일/28주년)이 즈음한 시점에 회담을 갖게 된 것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양국이 지금까지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대응 및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해 노력해 왔다고 평가했습니다. 또한, 과거 28년간 양국 관계가 다방면에서 전면적으로 눈부시고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향후에도 서로 중요한 이웃이자 협력의 동반자로서 협력을 지속해 나가자고 말했습니다. 양측은 회담을 통해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면서, 각급에서의 교류와 소통을 확대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특히, 양측은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되어 여건이 갖추어지는 대로 시진핑 주석의 방한을 조기에 성사시키기로 합의하였고, 방한 시기 등 구체 사안에 대해서는 외교당국 간 지속 협의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중국 측은 “한국이 시 주석이 우선적으로 방문할 나라”라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이어 양측은 한·중·일 정상회의 연내 개최 필요성에 대해서도 협의하였고, 한·중·일 정상회의 계기 리커창 총리의 방한이 이루어지면 한·중·일 3국 관계는 물론, 한·중 관계의 미래 지향적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데에도 의견을 같이했습니다. 양측은 다양한 양국의 관심 현안 중 △FTA 2단계 협상 가속화 △RCEP 연내 서명 △제3국 시장 공동진출 △신남방·신북방정책과 ‘일대일로’의 연계협력 시범사업 발굴 △인문 교류 확대 △지역 공동방역 협력 △WTO 사무총장 선거 등 다자 분야 협력 문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면서 폭넓은 공감대를 이루었습니다, 이 밖에도 양측은 한반도 정세를 포함한 지역 및 국제문제에 대해서도 논의했으며, 특히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진전 과정에서 한·중 양국 간 전략적 소통과 협력의 중요성에 대해 공감했습니다. 서훈 실장은 우리 정부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진전을 위해 외교적 노력을 계속해 나갈 것임을 강조하였고, 양 위원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진전을 위한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을 평가하면서, 향후에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위해 우리 측과 지속적인 소통과 협력을 해나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양제츠 위원은 최근 미·중 관계에 대한 현황과 중국 측 입장을 설명하였고, 서훈 실장은 미·중 간 공영과 우호 협력 관계가 동북아 및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중요함을 강조했습니다. 양제츠 위원은 서훈 실장의 조속한 시기 중국 방문을 초청했고, 양측은 외교채널을 통해 협의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이번 양제츠 위원의 방한은 코로나19 이후 중국 측 고위급 인사의 첫 방한으로서, 한·중 간 고위급 대면 소통을 통해 양국 간 교류‧협력을 회복하고 활성화해나가고자 하는 양국 간 의지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
中国外交トップ「中韓関係、新段階へ」 対中包囲網にくさび
中国外務省によると、中国外交担当トップの楊潔篪 共産党政治局員は22日、韓国・釜山で韓国大統領府の徐薫国家安保室長と会談し、中国の習近平国家主席の訪韓を念頭に「ハイレベルの往来」を強めることで一致した。楊氏は「中韓の戦略パートナーシップを新たな段階に進めたい」と言明した。
中国側は、台湾や香港、南シナ海の問題などをめぐって対立が深刻化している米中関係について「原則と立場」を説明した。こうした問題に関して米欧諸国と一定の距離を置く韓国に接近し、対中包囲網にくさびを打ち込みたい考えだ。
楊氏は中韓関係について、習氏と韓国の文在寅(ムン・ジェイン)大統領の指導により「良好な勢いを維持している」と評価。新型コロナウイルス対策にあたって両国が協力し、感染拡大を制御できたとして「国際的な模範になった」と主張した。
さらに楊氏は南北関係の改善を支持するとし、「朝鮮半島問題の政治解決プロセスに建設的な役割を果たしたい」と述べた。
한국-중국 고위관리 회담, 시진핑 조기 방한에 합의
중국에서 외교를 통괄하는 양제츠 정치국위원이 22일 한국 부산에서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오찬을 포함해 약 6시간에 걸쳐 회담했습니다.
청와대에 따르면 회담에서 양국은 코로나19 대응과 관련된 협력과 한반도 정세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눴습니다.
또 코로나19 감염상황이 안정돼 환경이 마련되는 대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한국 방문을 조기에 실현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또 양제츠 정치국 위원이 대립 중인 미국과의 관계 현황과 중국 측의 입장을 설명한 데 대해, 서훈 실장은 미중간 우호협력관계가 동북아시아와 세계의 평화 번영에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밖에 양국은 한국이 올해 의장국을 맡은 일중한 3개국 정상회담과 관련해 연내 개최의 필요성을 협의했습니다.
중국은 코로나19 대응과 홍콩 정세, 그리고 남중국해 문제 등에 대해 미국이 각국과 연대해 대중국 대항자세를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과의 관계 강화로 미국을 견제해 국제사회에서 고립을 피하겠다는 생각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한국은 악화된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중국 측의 협력을 끌어내겠다는 생각이나, 홍콩 정세 등을 둘러싸고 중국 측이 입장 지지를 요구해 올 가능성도 있어 미국과의 관계 사이에서 어려운 대응을 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NHK]
서훈-양제츠 회담, 시진핑 조기방한 합의
한국과 중국이 코로나 19 상황이 안정되는 대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한국 방문을 조기에 성사시키기로 했습니다.
서훈 한국 국가안보실장과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이22일 부산에서 회담을 열고 이 같이 합의했다고 한국 청와대가 발표했습니다.
청와대는 “방한 시기 등 구체 사안에 대해서는 외교당국 간 지속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며 “중국 측은 ‘한국이 시 주석이 우선적으로 방문할 나라’ 라는 점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양측은 이번 회담에서 한반도 문제와 국제정세, 코로나19, 고위급 교류 등 폭넓은 주제를 논의했다고 청와대는 설명했습니다.
특히 양측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진전 과정에서 한중 양국 간 전략적 소통과 협력의 중요성에 대해 공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도 이번 회담 결과를 보도했습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양 정치국원은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발전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습니다.
VOA 뉴스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RCEP은 아세안(ASEAN) 10개국과 한국, 중국, 일본, 호주, 인도, 뉴질랜드 등 총 16개국이 지역경제 통합을 위해 추진하는 일종의 자유무역협정(FTA)이다.
RCEP이 본격적으로 체결되면 인구 기준 최대 규모(34억명)의 협정이 될 것으로 예상되며 명목 국내 총생산은 19조 7천 억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2012년 11월 동아시아 정상회의(EAS)를 계기로 알셉에 대한 협상 개시가 선언되었으며 2013년 5월 첫 협정을 시작으로 2015년까지 협정의 내용이 확정 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닉슨·키신저 미중화해 배경에 처칠이
리처드 닉슨이 1968년 미국 대통령 선거전을 앞두고 출마했을 때 헨리 키신저는 공화당 경선에서 닉슨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넬슨 록펠러 후보 캠프에 있었다.
닉슨이 공화당 후보가 되자 키신저는 록펠러의 권유와 추천에 따라 닉슨 캠프에 들어왔다.
둘은 공화당이라는 같은 울타리 안에 있다는 점을 빼고는 여러 점에서 달랐다.
닉슨이 미국 정치 주류에서 비껴나 있는 서부출신인데 반해 키신저는 뉴욕시장을 지낸 록펠러의 참모이던 경력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미국 주류 동부 출신과 가까웠다.
닉슨이 매카시스트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강력한 반공주의자였던 반면 독일 이민자 출신인 키신저는 공화당의 정치 스펙트럼에서는 닉슨과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물과 불처럼은 아니지만 물과 기름 못지않게 외면상으로는 섞이지 않았던 두 사람이 유방과 장량처럼 컴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둘 다 철저한 현실주의적 정치적 탄력성을 생래적으로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19세기 초반 나폴레옹 전쟁 이후 세력 균형이라는 논리에 따라 유럽의 질서를 끌고 갔던 오스트리아 재상 메테르니히의 수제자인 키신저의 국제전략 비전에 닉슨이 공감했던 것은 그의 마키아벨리적 현실주의 정치 감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 접점이 있기에 닉슨과 키신저 컴비는 스틸웰, 마샬 그리고 트루먼으로 이어진 마오쩌둥의 공산중국을 호의적으로 본 시각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닉슨-키신저는 스틸웰-마샬-애치슨-트루먼처럼 마오쩌둥을 중국의 토지 혁명가로 보는 전략적 청맹과니와 좌고우면 주의자는 아니었다. 아니 문화대혁명을 목도한 두 사람이 그런 시각에서 마오의 중국을 보았을 리는 없다.
아니 그보다는 소련이라는 더 큰 적을 견제하기 위한 프래그마티즘적인 입장과 마키아벨리즘적인 자세가 배합된데서 비롯한 '적과의 동침' 전략적 선택에 따라 마오와 손을 잡았던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자면 닉슨과 키신저를 연결시켜준 세계전략적 멘토는 윈스턴 처칠이다.
처칠은 당대 영국의 정치 스펙트럼에서 가장 사회주의와 멀었던 인물이다. 소련을 '철의 커튼'이라고 가장 먼저 비난의 포문을 열었던 인물도 처칠이었다.
그런 처칠은 2차대전 당시 유고의 공산주의자 티토를 전략적 동침의 파트너로 삼았다.
나치 독일이라는 주적을 가장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실질적 군사 세력이 티토였기 때문이었다.
처칠은 나치 독일 등 파시스트 세력이 유럽에서 제거된 뒤 소련이 주적으로 부상하고 중국 대륙에서 마오가 패자가 되자 신속하고 냉혹하게 공산중국을 전략적 파트너로 삼아야 한다는 자세에서 공산 중국을 자리매김했다.
처칠은 마오를 토지 개혁가로 보는 순진한 시각에서는 벗어나 있었다. 그러나 소련보다는 덜 치명적이라고 보았다.
'비상도 약이다'라는 철저한 실리주의가 엿보이지 않는가.
닉슨과 키신저기 마오의 공산 중국과 악수한 배경에는 처칠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미군시찰단 연안(延安) 방문
1944년 7월 22일 미군 대령을 단장으로 한 미군 시찰단이 주중 미군총사령부의 지시에 따라 홍군의 최고 지도부가 위치한 옌안(延安)을 방문했다. 8월 7일에는 2차 시찰단이 비행기 편으로 옌안에 왔다.
이들의 시찰 목적은 전선 후방 지역에서 8로군(八路軍)과 신4군(新四軍)의 작전 상황을 파악하고 군사적 협력관계를 모색하기 위한 것이었다.
예젠잉(葉劍英)과 양상쿤(楊尙昆)의 영접을 받은 이들은 마오쩌둥(毛澤東), 주더(朱德), 저우언라이(周恩來) 등을 만났으며 펑더화이(彭德懷)와 천이(陳毅) 등으로부터 8로군과 신4군의 전투 활약상황을 브리핑 받았다이들 시찰단은 옌안 외에 진찰기(晋察冀)지구(현재 산시<山西>성과 허베이성 일대), 진수(晋綏) 지구(현재 산시<山西>성과 네이멍구 일대) 등 홍군의 항일 근거지 등을 시찰했다.
이들 시찰단은 시찰을 마치고 미국정부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중국 공산당과 그 무장역량을 중시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당시 이들 미군 시찰단을 맞아 옌안에서 발행되던 해방일보(解放日報)는 ‘우방 미국 군사사절단 환영’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시찰단이 미국에게 중국공산당과 그들의 저항운동에 대한 호의적 평가를 제공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주중 미군 총사령부의 군사시찰단 파견은 미국의 대중국 정책 전환 움직임과 연계된 것이었다.
태평양에서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던 미국은 중국에서의 제2전선 역량 강화를 위해 모든 중국 군대의 통합을 희망했다.
헨리 월레스(Henry Wallace) 미국 부통령은 1944년 6월 충칭(重慶)에서 장제스(蔣介石)와 만나 중국 공산당과 관계를 개선하여 항일에 더욱 박차를 가하라고 압력을 가했다.
7월 초에 루스벨트 대통령은 국민당과 공산당 군대를 포함한 전 중국군 지휘자로 스틸웰(Stilwell) 장군을 제안했다.
이는 미국이 한국전 초기 한국군의 작전권을 요구했던 것을 연상시킨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이승만 대통령은 대전협정을 통해 맥아더에게 한국군의 작전권을 이양했다. 하지만 장제스는 그렇게 절박한 상황은 아니어서 미국의 요구를 거부했다.
루스벨트의 이 제안은 필연적으로 공산당이 참여한 중국의 연합정부 창설 제안으로 이어졌다. 공산당은 이 일련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이러한 배경 하에서 미군 시찰단의 옌안 방문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장제스의 강력한 반발 때문에 루스벨트는 결국 장제스와 심한 불화를 보였던 스틸웰을 소환하고 웨드마이어(Wedmeyer) 장군을 그 후임으로 임명하였다.
또 공산당을 포함한 연합정부를 제안한 가우스(Gauss) 대사도 이해 11월 30일 스틸웰의 소환을 주장했던 패트릭 헐리(Patrick Hurley)로 교체했다.
장제스의 강력한 반발로 미국의 대중국 정책 전환 시도가 좌절된 셈이다.
미국의 대중국 정책 전환은 유럽에서 처칠이 추구한 유고 정책 을 본 뜬 것이다. 유고에서는 나치 침공 후 왕정 세력의 게릴라와 티토가 이끄는 공산 세력 게릴라가 별도로 활동했는데 처칠은 티토의 게릴라가 적 후방에서 제2전선을 구축하는데 더욱 효과적인 역할을 하자 그들이 공산 세력임에도 불구하고 적극 지원햇다.
이 결과 2차 대전 기간 티토의 게릴라는 세력이 급속도로 팽창했다. 티토의 게릴라 세력은 종전 후 벌어진 유고 내전에서 미하일로비치가 이끄는 왕정 세력을 격파하고 자체적으로 유고를 공산화하였다.
1940년 8월 20일부터 그해 12월 5일 까지 8로군 부총사령관 펑더화이가 지휘한 한 백단대전(百團大戰)은 미국에게 영국이 티토가 지휘하는 유고의 공산 게릴라의 전략적 가치를 주목했던 것처럼 미국에게 마오쩌둥의 홍군의 전략적 가치를 괄목상대하게 만들엇다.
스틸웰 등 중국 주둔 미국 지휘부는 국민당 군대의 만연한 부패와 이에 따른 군사적 무능과 비효율에 불만을 품고 처칠이 유고에서 취했던 것처럼 공산 게릴라 세력을 적극 지원, 대일본 제2전선을 구축하자는 입장을 취했다.
장제스의 강력한 반발로 미국 민주당 행정부는 2차 대전 기간 중국의 유고화를 시도하지 못했으나 이러한 기조는 루스벨트 사후 트루먼 행정부에 이어져 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이 패배하는 것을 방치했고 중국 공산화 이후에도 애치슨 라인 발표 등 중국 유고화를 부단히 추구했다. 이런 중국의 유고화 전략을 무산시킨 것은 한국전(6.25 사변) 발발이었으며이 전략은 1971년 공화당 닉슨행정부의 키신저가 부활시킬 때까지 동면해야했다.
헨리 키신저 미 국무장관이 한반도 문제 해결 위한 4자 회담과 남북교차 승인, 유엔동시가입 등을 제의했다(1976).
"머리소리함 의견으로는 중국정부의 시진핑헌법 포기와 등소평 헌법 복귀가 될 때 양국 관계정상화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시진핑(習近平, 습근평) 헌법은 공산당 지도 교조주의 사회주의 국가 헌법이라면 등소평 헌법은 실용주의 사회주의 국가 헌법입니다"
실용주의 노선 중화인민공화국 등소평 헌법과 공산당 령도 중화인민공화국 습근평 헌법
http://blog.daum.net/007nis/15873485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구분이 돼야 민주당(공화당)과 공산당(노동당, 사회당)을 차별화할 수 있습니다
민주국가는 민유(民有), 민치(民治),민향(民享)의 민주정부라면 사회주의 국가는 노동계급의 령도 노농연맹(勞農聯盟)을 기초로 하는 인민민주 전제정치( 인민민주주의 독재정부, 프롤레타리아 독재정부)입니다
우파는 민유(民有), 민치(民治),민향(民享)의 민주국가(민주공화국이나 입헌군주국)를 지지하는 분들을 말한다면 좌파는 노동계급의 령도 노농연맹(勞農聯盟)의 사회주의 국가(인민공화국이나 사회주의 공화국)를 지지하는 분들을 말합니다
우파는 입헌군주국을 인정하지만 좌파는 공화국만을 인정합니다
우파와 좌파에서 진보와 보수와도 구분해야 합니다
민주주의 반대는 공산주의가 아닌 전체주의(독재주의)이며 자본주의 반대는 공산주의입니다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후 자유주의(자유권)와 사회주의(사회권, 생존권) 공존(존중) 자유사회(민주국가)는 우파세력으로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후 자유주의(자유권, 자유무역)를 지향하는 세력을 보수세력으로 지칭하고 있으며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후 사회주의(생존권, 보호무역)를 지향하는 세력을 진보세력으로 지칭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를 부정하지만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를 인정합니다 자본주의 3대 원칙(경제)은 사유재산, 이윤추구, 자유시장경쟁 등입니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 3대 원칙을 부정함으로 자영업(자작농)을 할 수 없습니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를 부정하기 때문에 국가사회주의(자국 사회주의) 국영자본체제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 3대 원칙(정치)은 민유(民有), 민치(民治),민향(民享)의 민주정부입니다. 민주국가는 대부분 국가사회주의(군국주의)와 투쟁한 2차대전 이후 공화국 대통령, 국가주석이나 입헌군주국 수상의 임기제한이 돼야 권력분리과 국민주권, 기본권보장, 법치주의, 사법부의 독립, 복수정당과 의회정치, 국제평화주의 등을 보장할 수 있었습니다
민주국가는 경제 토대는 자본주의이며 정치 토대는 민주주의입니다
중국 모택동 노선 마스-레닌주의(교조주의, 공산주의)는 공산주의 세력으로 사회주의 국가만을 인정하는 세력이며 등소평 실용주의 노선은 자본주의를 인정하는 수정주의로 자본주의 세력으로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사회민주주의 세력으로 지칭하고 있습니다 모택동을 좌파라면 등소평은 우파입니다, 중국 실용주의 우파정부(사회주의 국가 실용주의 우파정부) 내부에서 등소평은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자유주의 노선을 추구하는 진보파가 아닌 사회주의 노선을 추구하는 보수파입니다 강택민, 호금도전주석을 등소평파(실용주의자)라면 습근평(시진핑) 주석은 모택동파(마스-레닌주의자)라고 부릅니다
중국이 세계 조류에 편승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 국가이론(국영자본체제)를 해체하고 민주국가이론(민영자본체제)로 체제(國政)전환이 돼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의 중국으로 통일국가가 될 수 있습니다
-우파 민주공화국이나 입헌군주국 이론[民營資本體制]
世界潮流浩浩蕩蕩順之則昌, 逆之則亡.
民國基於三民主義,為民有、民治、民享之民主共和國(立憲君主國,聯邦共和國)
-국정(國政, 民國)은 국민의 엄숙한 신탁에 의한 것으로서, 그 권위는 국민에 유래하고(民有), 그 권력은 국민의 대표자가 행사하고(民治), 그 복리는 국민이 향유한다(民享)는 민주주의(민주)국가이다
-중화민국은 삼민주의(三民主義)에 기초한, 민유(民有), 민치(民治), 민향(民享)의 민주공화국이다.
중화민국의 주권은 국민 전체에 있다.
-국정은 국민의 엄숙한 신탁에 의한 것으로서, 그 권위는 국민에 유래하고, 그 권력은 국민의 대표자가 행사하고, 그 복리는 국민이 향유한다. [일본국 헌법]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프랑스 국민은 1789년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에서 규정되고 1946년 헌법 전문에서 확인· 보완된 인권과 국민주권의 원리, 그리고 2004년 환경헌장에 규정된 권리와 의무를 준수할 것을 엄숙히 선언한다.
프랑스 공화국은 상기의 원리들과 각 국민들의 자유로운 결정에 따라, 공화국에 결합하기를 희망하는 해외영토들에게 자유· 평등· 박애의 보편적 이념에 입각하고 그들의 민주적 발전을 위한 새로운 제도들을 제공한다.
프랑스 공화국은 자유· 평등· 박애를 국시로 한다.
프랑스 공화국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를 원칙으로 한다
-개인의 권리와 자유는 최고의 가치를 갖는다. 개인과 시민의 권리와 자유를 인정하고 이를 준수하며 수호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다.
국민투표와 자유선거는 국민에 의한 최고의 직접적인 권력행사이다.
러시아연방에서는 이데올로기의 다양성이 허용된다.
어떠한 이데올로기도 국가이념이나 의무적 이념으로 규정될 수 없다.
러시아 연방에서는 정치적 다양성과 복수정당이 허용된다.
모든 사회단체들은 법앞에 평등하다. [러시아연방 헌법]
*미합중국 헌법[민주국가 헌법]
That this nation, under God, shall have a new birth of freedom -- and that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
http://blog.daum.net/007nis/15876066
*프랑스 제5공화국 헌법 전문
http://blog.daum.net/007nis/15871495
*군국주의 국가사회주의 성향 독일 바이마르 헌법(1919)과 군국주의 국가사회주의로부터 해방법률 독일연방공화국 기본법(독일 통일헌법)
http://blog.daum.net/007nis/15875048
*군국주의 대일본제국 헌법 전문과 평화주의 입헌군주제 일본국 헌법 전문[민주국가 헌법]
http://blog.daum.net/007nis/15874623
*러시아 연방 헌법[Конститу́ция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и](민주국가 헌법)
http://blog.daum.net/007nis/15876072
*中華民國 憲法(중화민국 헌법)
http://blog.daum.net/007nis/15857658
*대한민국 헌법(大韓民國 憲法)
http://blog.daum.net/007nis/15875575
*몽골헌법
http://blog.daum.net/007nis/15871736
-좌파 사회주의 국가(사회주의 공화국) 이론[國營資本體制]
1991년 소련 해체와 동구권의 공산주의 국가(사회주의 국가) 몰락을 계기로 프롤레타리아 독제체제(노농동맹 인민민주주의 독재체제) 사회주의는 급격히 몰락했고 레닌의 '국가와 혁명'이 나온지 102주년이 되는 2019년 현재는 레닌의 논지(마스-레닌주의)를 명목적으로나마 유지하는 공산주의 국가는 북한, 중국, 베트남, 라오스 그리고 쿠바 등 5개국에 불과하다.[노동계급의 노농동맹(공산당) 령도(領導, 지도) 인민의회정부론 인민민주주의 독재체제(프롤레타리아 독재) 사회주의 국가](많은 분들은 노동자 국가를 지향ㄹ하고 있는 이탈리아 파시즘이나 독일 나찌즘을 극우라고 표현하지만 좌익 파시즘으로 표현하고도 있다)
-소비에트국가는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위한 사명을 완수함으로써 전인민의 국가가 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노동자계급이 영도하고 노농연맹을 기초로 하는 인민민주 전제정치( 인민민주주의독재)의 사회주의국가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전체 조선인민의 리익을 대표하는 자주적인 사회주의국가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를 국가건설과 활동의 유일한 지도적지침으로 삼는다
*스탈린 헌법과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헌법[1990년 3월 14일에 개정된 소연방의 신헌법]
http://blog.daum.net/007nis/15876069
*실용주의 노선 중화인민공화국 등소평 헌법과 공산당 령도 중화인민공화국 습근평 헌법
http://blog.daum.net/007nis/15873485
*베트남 헌법(2013년 개정)[민주공화국 형태 사회주의 헌법]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국가는 인민에 의한(民治), 인민을 위한(民享) 인민의(民有) 사회주의 법치국가이다-
http://blog.daum.net/007nis/15876070
*북한헌법
-인민민주주의 인민공화국(제1공화국 헌법)과 주체사상 자주적 사회주의 국가(제2공화국 헌법), 주체연호 세습제 1인 종신직 좌익군정 사회주의 국가(제3공화국 헌법)-
http://blog.daum.net/007nis/15875476
1957년 10월 15일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중공중앙)이 ‘우파분자 분류 표준에 관한 통지’를 발표하였다.[모택동주의 노선 중국 공산당이 분류한 자본주의민주주의 세력(수정주의자) 우파와 극우세력 동향]
이에 따른 우파는 다음과 같다.
1) 사회주의 제도를 반대하는 자 .
2) 무산계급의 독재와 민주집중제를 반대하는 자 .
3) 공산당의 국가 정치생활 중의 영도적 지위를 반대하는 자 .
4) 사회주의와 공산당을 반대함으로써 인민의 단결을 분열시키려는 자 .
5) 사회주의를 반대하고 공산당을 반대하는 소집단을 조직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자 일부 분야 혹은 일부 계층 단위에서의 공산당의 영도를 뒤엎으려는 자 공산당과 인민정부를 반대하는 소란을 선동하는 자.
6) 앞에서 규정한 우파분자의 범죄활동을 지지하고, 관계를 맺으며 또 통신하여 혁명조직의 기밀을 보고하는 자.
통지는 또한 다음과 같은 사람들을 극우분자로 분류했다.
1) 우파활동 중의 야심가, 지도분자, 주모분자와 핵심 분자.
2) 공산당과 사회주의를 반대하는 강령성 의견을 제출하고 이 같은 의견을 적극적으로 고취한 자.
3) 사회주의 반대활동에 특별히 악랄하고 적극적으로 활동한 분자.
4) 역사적으로 일관되게 반공산당, 반 인민 활동을 전개해 왔으며 최근의 우파활동 전개 시에 적극적으로 반동활동을 한 자.
중공중앙의 이 통지는 반우파 투쟁을 체계화하는 것이었다.
중국 공산당은 1949년 건국 후사회주의 개조과정에서 후펑(胡風본명은 장광런張光人) 비판 등의 부르주아사상 비판 캠페인으로 위축되어 있었던 지식인의 활동을 적극화시키기 위해 '백화제방 백가쟁명(百花齊放 百家爭鳴)' 운동을 제창했다.
중국문화가 꽃핀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의 자유로운 언론활동을 상기시키기 위하여 마오쩌둥(毛澤東)이 명명했고, 1956년 5월 중국공산당 선전부장 루딩이(陸定一)가 '백화제방·백가쟁명'이라는 제목으로 강연, 지식인의 자유로운 발언을 호소했다.
당초 지식인의 반응은 매우 소극적이었으나 1957년 5월 '언자무죄(言者無罪 : 무엇을 말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라는 방침에 고무, 일제히 발언하기 시작, 중국공산당에 대한 비판이 속출했다.
마오의 생각은 이 운동을 통해 이왕의 사회주의 건설을 정당화하고 강화하자는 것이었으나 순식간에 체제를 부정하는 단계로까지 치닫자 자신이 고무한 이들의 발언을 "'우파' 분자에 의한 반당·반사회주의적 '독초'"라고 매도하고, 같은 해 6월 '반우파투쟁'을 전개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공산당의 모순을 비판했던 공산당원들 다수가 반우파 분자로 몰려 숙청되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였다. 29세이던 1957년 당적박탈과 강등 조치를 당한 주룽지는 문화대혁명 기간에는 이 ‘우파분자’라는 꼬리표 때문에 5년 동안 노동개조를 받기도 했다. 그는 마오쩌둥이 사망한 2년 뒤인 1978년 당적을 회복하고 사회과학원 공업경제연구실 주임에 임명되면서 ‘개혁 총리’로서의 미래를 예비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50세였다
*일본 공산당 "2단계 민주연합정부론과 미래에 사회주의적 변혁을 목표"
http://blog.daum.net/007nis/15875883
일본 공산당은 과학적 사회주의를 당의 기본 방침으로 한다
일본 공산당은 2단계 혁명이론 NLPDR노선으로 우선 대미 종속과 대기업의 지배에 대한 민주주의 혁명을, 미래에 사회주의적 변혁을 목표로 한다
1단계로는 반미 민족해방과 인민민주주의 혁명이며 2단계로는 노동계급 령도 노농동맹 프롤레타리아 독재체제(인민 민주주의 독재체제) 사회주의 국가 수립이다
1단계 민주주의 혁명(民主主義革命)
2004년 1월 제 2 차 당대회 개정 강령에서 일본 사회가 필요로 하는 변화는 사회주의 혁명(社會主義 革命)이 아니며 "민주주의 혁명(民主主義 革命)과 민주연합정부(民主聯合政府)'의 목표로 내세웠다
대기업 재계와 대미 종속 세력으로부터 일본 국민(日本 國民)의 이익을 대표하는 세력에 권력 이양을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혁명이라고 평가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가능한 민주적 개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대기업 재계와 대미 종속 세력에서 일본 국민의 이익을 대표하는 세력으로의 권력 이양을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혁명으로 자리매김하고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가능한 민주적 개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일본 공산당은 현재 일본 사회가 요구하는 변화는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라 다음의 민주주의 혁명이라고 하였다
ㄱ.국가의 독립 · 안보 · 외교 분야(分野)
대미 종속을 타파하고 미일안전보장조약(日米安全保障条約)의 폐기(廃棄)와 비동맹(非同盟)· 중립(中立)의 일본을 실현한다. 미국과 대등 평등(対等平等)
의 우호 조약(友好条約)을 맺는다 등등
ㄴ.헌법(憲法)과 민주주의(民主主義) 분야(分野)
(ㄱ)헌법 전문을 포함한 모든 내용을 지키고, 특히 평화적 민주적 조항(平和的民主的諸条項)의 완전한 이행을 목표로 한다.
(ㄴ)의회 민주주의의 체제 반대 당을 포함한 복수 정당제 선거에서 다수를 얻은 정당 또는 정당 연합이 집권하는 정권 교대(政権交代)는 당연히 견지한다.
(ㄷ)18세 선거권을 실현한다.
(ㄹ)일본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억압하는 모든 시도를 제거한다. 남녀평등(男女平等)의 권리(權利)를 모든 분야에서 옹호하고 지킨다. 종교의 자유를 옹호하고 정교분리(政敎分離)의 원칙에 철저를 도모한다. 등등
ㄷ.경제적 민주주의(経済的民主主義)의 분야(分野)
(ㄱ)장시간 노동과 일방적 해고 규제를 포함해 유럽 주요 자본주의 국가와 국제조약 등의 도달점도 근거로 '규칙 있는 경제사회'를 실현한다.
(ㄴ)대기업(독점 자본)에 대한 다양한 민주적 규제(民主的規制)와 군축(軍縮), 불필요한 공공 사업의 중지, 대기업 · 재벌 우대 세제의 재검토를 재원으로 한 사회보장의 충실 등등.
이상(以上)의 민주주의 혁명(民主主義革命)에 의해 일본은 미국의 사실상의 종속국의 지위에서 벗어나 진정한 주권을 회복하고, 국내적으로도 국민이 처음으로 나라의 주인공이 된다. 또한 일본은 군사적 긴장의 근원임을 멈추고 평화의 견고한 초석으로 바뀐다.
이 민주주의 혁명(民主主義 革命)에 대한 입장 1961년 강령에서는 ""일본의 당면한 혁명은 미국 제국주의와 일본의 독점 자본의 지배, 두 적(敵)에 반대하는 새로운 민주주의 혁명, 인민민주주의 혁명(人民 民主主義 革命)이다"라고 되어 있고, 1994년의 강령까지 거의 동일한 표현을 했다
2004년 강령 개정 당시에는 '다수자 혁명'이나 '의회의 다수를 얻어 혁명의 노선'이라는 설명이 이루어졌다
민주주의 혁명의 과정: 통일전선에 근거한 민주연합정부(民主連合政府) 구상(構想)
일본 공산당은 ‘일본 공산당(日本共産党)과 통일전선(統一戦線)의 세력이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어 국회에서 안정된 과반수를 차지한다면 통일전선(統一戰線)의 정부(政府) 즉 민주연합(民主聯合) 정부(政府)를 만들 수 있다’는 입장으로 단독 정권(単独政権)이 아닌 통일전선(統一戦線)에 기반한 연합정권(連合政権)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면서 "국회를 명실상부한 최고기관으로 하는 의회제 민주주의 체제(議会制民主主義 体制)
, 반대당(反対党)을 포함한 복수정당제, 선거에서 다수를 얻은 정당 또는 정당연합이 정권을 담당하는 정권교대제(政権交代制, 정권교체)는 당연히 견지한다.
이 '통일전선(統一戦線)'은 역사적으로 1945년의 강령에서는 ‘모든 민주주의 세력의 결집에 의한 인민전선(人民戰線)의 결성’과 ‘올바른 실천적 목표 아래 협동할 수 있는 모든 단체 및 세력과 통일전선(統一戰線)의 결성한다’고 되어 있다
1947년의 강령에서는 ‘광범위한 민주전선’으로 1961년부터 2004년까지 강령에서는 '민족 민주 통일전선(民族民主統一戦線, NLPDR)'으로 표현 되었다
이 '민족민주통일전선 정부(民族民主統一戦線政府)'는 '혁명정부(革命政府)'로 전환한다고 하고 있었지만, 2004년 강령 개정에서는 이 규정은 삭제 되었다.
2단계 사회주의적 변혁(社会主義的変革)
일본 공산당은 즉각 민주주의 혁명 이후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국민의 합의를 전제로 국회의 안정된 과반수를 얻어 사회주의를 위한 권력을 만들고 다음의 사회주의적 변혁(社会主義的変革, 사회주의 국가)을 목표로 하고 있다.
ㄱ.자본주의를 극복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회(社會)로의 진전(進展)을 도모(圖謀)
ㄴ.주요 생산 수단의 소유, 관리, 운영을 사회의 손에 옮기는 생산수단(生産手段)의 사회화(社会化)
ㄷ.민주주의와 자유의 성과(成果), 자본주의 시대의 가치 있는 성과(成果)의 모든 것을 받아들여 발전시킨다
ㄹ.사상 신앙의 자유, 반대 정당을 포함한 정치 활동의 자유를 엄격하게 지킨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다양한 사상 신조의 자유, 반대 정당을 포함한 정치 활동의 자유는 엄격하게 보장된다."며 일당 독재(一党独裁制)와 지도 정당제(指導政党制)는 채택하지 않는다고 하고 있다.
또한 소련형 사회주의(連型社会主義)의 관료주의·전제(専制)의 잘못은 반복하지 않는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들은 "자유와 민주주의의 선언"에 더 자세히 설명 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은 주로 이념적인 내용이며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회에서 헌법(憲法), 정부(政府), 군비(軍備), 의회(議会), 사유 재산제(私有財産制)의 범위 등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되어 있지 않다. 일본 공산당은 이러한 미래 세대가 창조적으로 해결 과제이며, 지금부터 고정적으로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주의 사회가 고도로 발전하면 착취와 억압을 모르는 미래 세대는 "원칙적으로 일체의 강제가 없는 국가 권력 자체가 불필요하게 되는 사회,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도 없고 억압도 전쟁도 없는 진정한 평등 자유로운 인간 관계로 이루어진 공동 사회“에 대한 전망이 열린다고 한다.
또한 이 ‘사회주의적 변혁'은 1961년 강령에서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표현이었다는 것으로, 1994년에 ’사회주의적 변혁‘이라는 표현으로 되었다. 또한 ’사회주의 사회는 공산주의 사회의 낮은 단계이다‘라고 하는 두 단계 발전론이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정설이었으나 마르크스, 엥겔스 자신은 그런 구별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두 단계 발전론을 그만두고 2004년 강령 개정에서 '사회주의·공산주의 사회'라는 표현으로 변경되었다 .
"Form Guide Ear(Language, Intelligence) to Bird's Eye(Reading,Investigation)"
*민주주의 반대는 공산주의가 아닌 독재주의(전체주의)고 자본주의 반대가 공산주의입니다.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자유주의(자유권)와 사회주의(사회권=생존권) 공존(존중) 자유사회(민주화 사회)입니다
a.자본주의 3대 원칙[경제]은 사유재산, 이윤추구, 자유시장경쟁 등이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 3대 원칙을 부정함으로 자영업(자작농)을 할 수 없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를 부정하기 때문에 국가사회주의(자국 사회주의) 국영자본체제로 나아갈 수 있다
b.민주주의 3대 원칙[정치]은 민유(民有), 민치(民治),민향(民享)의 민주정부(민주국가)이다
民國基於三民主義,為民有、民治、民享之民主共和國(立憲君主國, 聯邦共和國).
국가사회주의(군국주의)와 투쟁한 2차대전 이후 공화국 대통령, 국가주석이나 입헌군주국 수상의 임기제한이 돼야 권력분리과 국민주권, 기본권보장, 법치주의, 사법부의 독립, 복수정당과 의회정치, 국제평화주의 등을 보장할 수 있었다
'Guide Ear&Bird's Eye21 > 대한[Korea(KOR),大韓]'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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