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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공화국 출신 자크 르네 시라크 전 대통령 본문

Guide Ear&Bird's Eye/프랑스[法國, 佛蘭西]

민주공화국 출신 자크 르네 시라크 전 대통령

CIA bear 허관(許灌) 2019. 10. 30. 14:33











  





우파연합(공화국 연합 또는 대중운동연합) 출신 자크 시라크 전(前) 대통령...

자크 르네 시라크 전 대통령은  19321129~ 2019926는 프랑스 공화국의 정치인이자 제22대 대통령이다. 1995년에 대통령이 되었고, 2002년에 재선하여 2007년까지 그 직을 수행했다.

 

파리 정치 대학( Institut d'Etudes Politiques de Paris)과 국립행정학교( École Nationale d'Administration)에서 공부를 마치고 시라크는 고급 공무원으로 그의 직업을 시작하였고, 곧 정계에 입문하였다. 이후 농림부장관, 총리, 파리시장 등 다양한 요직을 거쳐 마침내 프랑스의 대통령이 되었다

 

1.생애

파리에서 은행원의 아들로 태어나 1954년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 Sciences Po)를 졸업하고, 1956년부터 1년간 알제리 주둔 프랑스군 사령관으로 복무하였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여러 행정부에서 활약하였다.

 

1974년부터 1976년까지, 1996년부터 1998년까지의 두 차례의 총리를 지냈고, 1977년부터 1995년까지 파리 시장을 지냈다.

 

신드골주의자로 1981, 1988년 두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패하였다가, 1995년 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2002년 선거에서 장 마리 르펜을 누르고 재선에 성공하였다. (이때부터 프랑스의 대통령 임기는 7년제에서 5년제로 바뀐다)

 

2.업적

대통령 취임 후, 남태평양 지역 핵개발 실험과 국내 사회 보장 제도 추진에 노력하였다. 유럽연합 정책에서 프랑스에 강한 발언을 주었다. 또한 2003년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데 손꼽히기도 했다

 

프랑스는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자유주의(자유권)와 사회주의(사회권, 생존권) 공존(존중) 자유사회(민주화 사회) 국가로  공화국연합 정당 등의 우파는 본래 자본주의 노선으로 개인의 자유권을 우선시 하고 있으며 사회당 등 좌파는 본래 민주주의 노선으로 개인의 생존권(사회권)을 우선시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나 총선에서 각 정당 인물이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자유권과 사회권을 정치적 입장이 혼용하고 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전 대통령이 26일 오전(현지 시간) 별세했다. 향년 86세.

"시라크 (전) 대통령이 오늘 아침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하게 숨을 거뒀다"고 시라크 대통령의 사위가 AFP 통신에 밝혔다.

40여 년 간 프랑스 정계의 중심에 있던 시라크 전 대통령은 세 차례 도전 끝에 지난 1995년 대통령에 당선됐고, 2002년에 재선에 성공했다.

대표적인 업적으로는 재임 기간 대통령 임기를 7년제에서 5년제로 바꾼 것과 유럽 단일 통화 도입을 주도한 것 등이 꼽힌다.

또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강력히 반대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1995-2007년까지 대통력직을 수행하는 가운데 2005년 뇌졸증을 앓았고, 그후 급격히 건강히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전(前) 대통령

출생:19321129, 프랑스

사망:2019926

직업:정치인, 전직 대통령

성별:남성

 

학력

- 프랑스 국립행정학교

- 파리 정치학교

경력

1995 ~ 2007.5 17대 프랑스 대통령

1986.3 ~ 1988.5 프랑스 국무총리

- 프랑스 상원 외교위원장

1977 프랑스 파리시 시장

1976 공화국연합당 창설 총재

1974 ~ 1976 프랑스 국무총리

1974 프랑스 내무부 장관

1972 ~ 1974 프랑스 농업부 장관



*공화국연합 (共和國聯合)

공화국연합 (共和國聯合, 프랑스어: Rassemblement pour la République, 약칭 RPR)은 프랑스 우익 정당이다. 공화국 민주동맹 (Union des Démocrates pour la République, UDR)을 전신으로 하는 공화국연합은 1976년에 자크 시라크에 의해 창당되었으며, 드골주의의 계승자임을 천명하였다. 2002921, 공화국연합은 후일 대중운동연합이 되는 '여권(與權) 강화를 위한 연대'에 흡수되어 소멸된다

 

1.역사

 

(1)지스카르 데스탱에 맞서 드골주의를 지키다 (1976-1981)

1974, 드 골주의 진영 내부의 분열은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의 당선을 가져왔다. 친유럽과 오를레앙파 중도 우익 노선을 천명한 지스카르 데스탱은 프랑스 제5공화국의 출범 이후 처음으로 대통령직에 오른 비드골주의 인사였다. 그러나 드골주의 정당들은 여전히 의회에 다수로 남아있었으며, 이들은 총리로 자크 시라크를 추대한다. 시라크는 19768, 총리직에서 사임하고 그 해 12월에 공화국연합을 창당하여 공화주의 진영을 아우르는 드골주의 진영의 확대를 꾀했다.

 

공화국연합은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과 레이몽 바레 총리의 행정부에 비판적인 자세를 견지했다. 집권당에 대한 공화국연합의 첫 일격은 지스카르 데스탱의 최측근인 미셸 도르나노를 물리치고 시라크가 파리의 시장에 선출된 것이었다. 이에 지스카르 데스탱은 정부 정책을 지지하는, 범우파 정당의 연합체인 프랑스민주동맹 (UDF)을 창설하여 공화국연합에 맞섰다. 1978년의 프랑스 총선에서, 공화국연합은 좌파진영을 물리치는 것은 물론 집권당인 프랑스민주동맹을 따돌리고 의회 다수당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차기 대선이 가까워오면서, 행정부를 구성하는 대통령과 내각의 몰락이 가속화되자 공화국연합은 보다 행정부에 비판의 날을 세워나갔다. 유럽 의회 선거를 6개월여 앞둔 197812월에는, 유럽 연방의 일원으로서의 자격과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국가적 이득을 포기할지라도 외세가 프랑스를 농단하는 것을 더 이상 두고볼 수 없다는 이른바 '코친 구상'이 시라크에 의해 발표된다. 이 날의 담화는 명백히 지스카르 데스탱을 겨냥한 것이었다.

 

공화국연합은 1981년의 프랑스 대선을 맞아 재선을 노리는 지스카르 데스탱에 맞서, 그의 저격수 노릇을 담당하는 자크 시라크를 내세웠다. 2차 투표에 진출하지 못한 시라크는 지스카르 데스탱에게 개인적으로는 '당신을 지지하겠다'고 말하였음에도, 공식석상에서는 지스카르 데스탱에 대한 지지를 하지 않았다. 사실, 공화국연합의 목표는 현직 대통령의 패배였지 자신들의 당선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2)미테랑과의 대립과 '비동맹 외교노선'의 포기 (1981-1995)

1981년 이후, 공화국연합은 사회당 출신 대통령 프랑수아 미테랑과 그의 좌파 내각이 펼치는 정책들에 대해 공세적 자세를 취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우선 미테랑 정부의 국공유화 계획을 "집합주의적 사회"의 소산이라 규정하면서 반대하였다. 미국과 영국에서, 각각 로널드 레이건과 마거릿 대처가 이끈 보수진영의 선거 돌풍에 감명받은 공화국연합은, 점차 '드골 독트린'의 대표 정책들인 '비동맹 외교노선'과 경제에 대한 '국가 주도주의'를 포기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1983년의 전당대회에서는, 자유주의를 반영한 경제정책과 초국가성을 인정한 유럽 공동체의 구성을 채택하게 된다.

 

공화국연합이 새 노선을 채택함에 따라 프랑스민주동맹과의 관계 역시 개선되었다. 1984년의 유럽 의회 선거에서 두 당은 공동 강령을 발표하고, 다가오는 1986년의 프랑스 의회 선거에서 승리의 기반을 만들어 나간다. 그러나 차기 대선을 앞두고 누가 범우파 진영의 맹주가 될 것이냐는 문제에 또다시 자크 시라크과 레이몽 바레 간의 라이벌 의식이 되살아나게 되었다. 게다가 사회당에 대한 역선택으로 결성된 우파 전선은 엉뚱하게도 극우 진영의 국민전선의 부상에 맞부딪히게 된다. 이에 공화국연합의 내부는 이러한 우파 동맹의 가능성을 두고 다시 갈리게 된다.

 

1986, 공화국연합은 의회 내에서 다수석을 차지한 범우파 진영의 수장이 된 것은 물론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과 함께 동거 정부를 구성하게 되었다. 이에 시라크가 다시 총리에 오른다. 그는 당시 공기업을 사영화하고, 부유세를 폐지하던 영미권의 사례에 영감을 얻어 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펼치는 한편, 당시 시라크 내각에서 내무장관직을 맡고 있던 샤를 파스카는 이민제한 정책을 추진한다. 이를 바탕으로 시라크는 레이몽 바레의 입후보에도 불구하고 1988년의 대선에서 2차투표까지 올랐으나, 미테랑에게 패배하게 된다.

 

공화국연합의 대권 도전 실패를 기점으로, 우익 진영의 재구성을 바라는 젊은 정치인들이 시라크의 자리를 넘보기 시작하였다. 더욱이 '드골 독트린'의 포기는 샤를 파스카와 필립 세갱 등의 반발을 갖왔다. 이 둘은 1990년의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차지하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만다. 그러나 이러한 분열은 1992년의 마스트리히트 조약 비준을 위한 국민 투표 과정에서 다시 드러났다. (당시 시라크는 마스트리히트 조약의 비준을 찬성해야 한다고 역설하였으나, 파스카와 세갱은 반대 운동을 벌였다.)

 

공화국연합과 프랑스민주동맹의 연합체인 "프랑스동맹"1993년의 의원선거에서 승리를 거둔다. 시라크는 미테랑과의 동거정부 구성을 이번에는 거절하여, 에두아르 발라뒤르가 총리직에 오른다. 총리가 된 발라뒤르는 1995년의 대선에 후보로 출마하지 않겠다고 공언하였다. 그의 이런 선언에도 불구하고, 대선 여론조사에서 발라뒤르는 선두를 지켰으며 더 나아가서는 범 우파 진영의 정치인 다수가 그를 지지하겠다고 거들고 나섰다. 마침내 발라뒤르는 시라크를 맞아 결선투표까지 오르지만, 시라크와 30년 우정을 자랑하기도 하였다.

 

미테랑의 연이은 당선으로 14년 동안 집권했던 사회당에 대한 대중의 시선은 이전에 비해 싸늘했다. 이에 1995년 당시의 대선은 발라뒤르와 시라크라는 두 '신 드골주의자'의 대결에 이목이 집중되었다. 발라뒤르는 그의 총리 재임동안 가져온 성과들과 자유주의적 정책들을 선전한 반면, 시라크는 빈부격차의 축소를 위해 수정자본주의를 도입할 것을 주장하며, 발라뒤르의 자유주의적 정책들을 겨냥했다. 결국 1995년의 대선에서 시라크가 승리한다.

 

(3)여당이 된 공화국연합 (1995-2002)

프랑스 대선 이후, 자크 시라크는 알랭 쥐페를 만나 "우리 중에 당신이 제일 낫다"며 총리직에 오를 것을 요청한다. 그러나 대선 기간 동안 발라뒤르를 지원했던 많은 당내 세력들에게는 입각이 허용되지 않아, 이에 불만을 품은 니콜라 사르코지와 같은 "발라뒤리앵"들의 탈당 행렬도 이어졌다.

 

199511, 알랭 쥐페 총리는 다양한 사회적 갈등을 촉발하는 복지 정책들을 개혁하겠다고 밝힌다. 이로 인해, 행정부와 집권당에 대한 인기가 하락하자 결국 시라크 대통령은 하원의 해산을 선언하게 된다. 하원의 해산으로 조기에 실시된 1997년의 의회 선거에서 집권 RPR은 패배하고, 이에 따라 2002년까지 리오넬 조스팽의 좌파 내각과 함께 동거정부를 구성한다.

 

쥐페의 뒤를 이어 공화국연합의 지도자로 세갱이 선출되었으나, 그는 취임하자마자 시라크에게 당에 대한 개입을 최소화하라고 못박는다. 그러나 그 역시 1999년의 유럽 의회 선거 기간 당시, 파스카가 대중의 기대와는 다르게 드 골주의적 대유럽정책인 "개별국가로서의 유럽"을 주창하자 그를 지지하기 위해 대표직을 사임한다. 파스카는 프랑스연합 (Rassemblement pour la France, 약칭 RPF)을 창당하여 니콜라 사르코지가 이끄는 공화국연합에 비해 더 많은 표를 획득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당이 파리 시의 재정을 가지고 당직자들의 월급을 지불한 것으로 드러나는 등 부정부패에 대한 추문도 끊이지 않았다. 이러한 내우외환의 상황 속에서 전직 청소년·체육 장관인 미셸 알리오마리가 자크 시라크의 지지를 등에 업은 장 폴 들르부아를 누르고 공화국연합의 신임 대표로 선출되었으나, 2001년의 지방선거에서 그동안 수성하였던 파리의 시장직을 사회당의 베르트랑 들라노에에게 내주는 등 패배를 맞게 된다.

 

2002년의 직전, 공화국연합 및 비공화국연합 소속의 시라크 지지자들이 모여 "행동하는 연대"를 조직한다. 이는 2002421일의 선거패배 이후, "여권(與權) 강화를 위한 연대"(이하 "여권 연대")로 발전해 현재의 프랑스 집권당인 대중운동연합의 전신이 된다. 이로 인해 시라크가 재선에 성공하며, 연합정당 "여권 연대" 역시 2002년의 총선에서 원내 다수를 차지하게 된다.

 

2. 역대 지도부

자크 시라크, 1976-1994

알랭 쥐페, 1994-1997

필립 세갱, 1997-1999

니콜라 사르코지, 1999 (권한 대행)

미셸 알리오마리, 1999-2002

세르주 르펠티에, 2002(권한 대행)

   

-약칭: RPR

상징색: 파랑[자유], 빨강[박애,우애(형제애,동무)]

이념: 드골주의, 보수주의

성향: 우파(중도 우파)



*대중운동연합(大衆運動聯合)

대중운동연합(大衆運動聯合, 프랑스어: Union pour un Mouvement Populaire, 약칭 UMP)는 중도우파의 성격을 가진 프랑스의 정당이다.

2002년에 창당되어, 2007년의 대선에서는 니콜라 사르코지를 후보로 내세워 당선되었다. 2015년 공화당으로 재창당되었다.

1.서론

1980년대부터 프랑스의 우파 세력들은 유럽의 건설과 경제적 자유주의란 가치를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해나가기 시작하였다. 사회당을 비롯한 그들의 이념적·정치적 경쟁자들은 1981년과 1988년의 총선에서 승리를 거두자, 몇몇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우익 연합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등장하였다.

 

1993년의 총선을 앞두고 드골주의 보수정당인 공화국연합 (RPR)과 중도정당인 프랑스 민주동맹 (UDF)이 프랑스를 위한 연합이란 이름의 선거연합을 결성하였다. 그러나 1995년의 총선 기간 동안, 이 선거연합은 다시 자크 시라크를 따르는 무리와 에두아르 발라뒤르를 지지하는 무리로 갈리게 된다. 결국 이들은 1997년의 총선에서 패배한 뒤에 공동 교섭단체인 '프랑스를 위한 동맹'을 다시 구성하게 된다.

 

2.창당

2002년의 대선 즈음에, 당시 현직 대통령이었던 시라크의 지지자들은 세 개의 우익 정당으로 갈라져 있는 상태였다. 이들은 시라크의 재선을 위해 행동하는 연대(Union en mouvement)를 조직한다. 시라크의 재집권 성공 이후에는 2002년의 총선을 위해, 이들을 중심으로 다시 여권(與權) 강화를 위한 연대(Union pour la majorité présidentielle)가 조직된다. 이 조직은 몇 달 후에 이름을 대중운동연합으로 바꾸고 단순히 자크 시라크 지지자들을 아우르던 우산 조직에서 벗어나 항구적인 조직으로 거듭난다.

 

대중운동연합은 드골-보수주의 정당인 공화국연합 (RPR)과 자유 보수주의 정당인 자유 민주주의 (DL), 중도 성향의 정당인 프랑스 민주동맹 (UDF)의 상당수, 더 정확히는 필립 두스트-블라지나 자크 바로와 같은 프랑스 민주동맹 내 기독교 민주주의자들을 흡수·합병하는 한편, 2002년까지 민주동맹과 연합관계였던 사회자유주의 성향의 급진당과 중도 성향의 정당인 프랑스 민주대중당과도 통합하였다.

 

대중운동연합의 창당에는 드골주의, 자유주의 (프랑스 내에서는 공화주의라 일컫기도 한다), 기독교 민주주의 그리고 급진주의 등 네 개의 프랑스를 대표하는 정치철학이 만났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당의 첫 이름('여권 강화를 위한 연대')이 의미하듯, 대중운동연합은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정책을 일반적으로 지지하였다. 그러나 2004년에 대중운동연합은 시라크로부터 독립하려는 의미있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대중운동연합의 당원들이 유권자들로부터 인기를 잃은 자크 시라크와 장 피에르 라파랭 내각보다 시라크의 라이벌이었던 니콜라 사르코지를 지지하고 나섰던 것이었다. 또한 시라크가 이전에 몇 번이나 공개적으로 지지한 터키의 유럽 연합 가입에 대해 반대표를 던지기도 하였다.

 

3.2004년까지

대중운동연합의 첫 당수였던 알랭 쥐페는 자크 시라크의 최측근 중 하나였으나, 20041월에 있었던 부패 사건에 연루되어 같은 해 715일에 사임했다. 20041129일에는 니콜라 사르코지가 당수직을 이어받겠다 선언하였으나 재무장관에 임명됨에 따라 사르코지의 당수직 승계는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2004년의 프랑스 지방선거에서 대중운동연합은 알자스와 코르시카를 포함하는 프랑스 본토의 22개 선거구 중 단 2곳에서 겨우 승리하는 한편, () 단위의 선거에서는 절반만을 건져 참패하고 만다. (이전에는 우익 정당들이 현 중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어 열린 유럽 의회 총선에서도 사회당의 득표율에 크게 못미치는 16.6%를 획득하고, 의석에서도 고작 16석만을 얻는 등 참패하게 된다. 2005525일에 열린 유럽 헌법 인준을 위한 국민 투표의 부결은 장 피에르 라파랭 내각의 몰락을 가져와 UMP의 다른 정치인인 도미니크 드 빌팽의 새 내각이 구성되는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2007422일에 열린 프랑스 대선 1차투표에서 UMP의 후보로 나선 니콜라 사르코지가 승리한다. 이어 56일에 열린 대선 2차투표에서는 사회당 후보 세골렌 루아얄을 맞아 53.1%를 획득해 대선에서 최종 승리하게 된다. 이에 따라, 사르코지는 대통령직에 오르기 이틀 전인 514UMP의 당수직에서 물러난다. 617일에 열린 총선에서 UMP는 하원 국민의회의 총 의석수인 577석 중 313석을 차지하여 다시 원내 제1당으로 복귀하게 된다.

 

20083월에 열린 지방선거에서 대중운동연합은 다시 한 번 패배의 쓴 잔을 마신다. 시장선거에서 툴루즈나 스트라스부르 등 다수의 선거구와 현() 들에서 좌파들에게 내주었던 것이다.

 

이후, 프랑수아 피용 내각 아래서 사회연대부의 장관이었던 자비에 베트트랑이 입각을 위해 당수직을 사임한 패트릭 드브지앙을 계승하여 2008년 말 임시 당수에 오른다.

 

2009년에 실시된 유럽 의회 총선에서 대중운동연합은 "여권의 강화" 시절처럼, 이제는 군소정당이 된 급진당과 중도좌파당과 함께 선거 연합을 구성한다. 이들은 27.9%를 득표하고 29명의 유럽 의회 의원을 내는등 아주 좋은 결과를 냈다. 이 결과는 2004년에 비해 비약적으로 성장한 대중운동연합의 모습을 실감하게 했다.

 

2015530일 해산되었고, 공화당으로 제창당되었다.

 

약칭:UMP

영어명:Union for a Popular Movement

상징색: 파랑(자유), 하양(평등), 빨강(박애, 우애)

이념

드골주의

보수주의

자유 보수주의

기독교 민주주의

 

스펙트럼: 중도우파

   

*사회주의 국가 헌법[국영자본체제(國營資本體制)]

1991년 소련 해체와 동구권의 공산주의 국가(사회주의 국가) 몰락을 계기로 프롤레타리아 독제체제(노농동맹 인민민주주의 독재체제) 사회주의는 급격히 몰락했고 레닌의 '국가와 혁명'이 나온지 102주년이 되는 2019년 현재는 레닌의 논지(마스-레닌주의)를 명목적으로나마 유지하는 공산주의 국가는 북한, 중국, 베트남 그리고 쿠바 등 4 개국에 불과하다.

-소비에트국가는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위한 사명을 완수함으로써 전인민의 국가가 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노동자계급이 영도하고 노농연맹을 기초로 하는 인민민주 전제정치( 인민민주주의독재)의 사회주의국가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전체 조선인민의 리익을 대표하는 자주적인 사회주의국가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를 국가건설과 활동의 유일한 지도적지침으로 삼는다

스탈린 헌법과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헌법.hwp

실용주의 노선 중화인민공화국 등소평 헌법과 공산당 령도 중화인민공화국 습근평 헌법.hwp

베트남 헌법.hwp

북한헌법.hwp

 

1989년 혁명과 국영자본체제 붕괴[동유럽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자본주의 반대 공산주의! 민주주의 반대 독재주의(전체주의)!

레닌,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 동상도 무너뜨려야 합니다

그리고 붉은 별도 제거해야 합니다

날짜:

198964- 19911226

지역:

유럽 및 구 동구권 공산주의 국가

원인:

국영자본체제(국가자본주의 체제), 권위주의, 전체주의, 공산주의, 부정부패, 소련의 군사 점령, 경제 붕괴, 집단살해, 철의 장막, 종교 박해, 권력 남용, 강제노동, 숙청, 가난, 테러 등

목적:

경제적 자유와 민영자본체제, 유럽 통합, 자유 선거, 자본주의, 언론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 인권, 노동권, 민주주의 등

 

종류:

시위 등 다양함

 

결과:

동구권의 몰락 폴란드, 동독,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불가리아, 알바니아의 평화적 정권 교체.

냉전의 종결

독일의 재통일

1989년 루마니아 혁명이 유혈 혁명이 됨

소련의 해체

소련의 초강대국 지위 몰락

1991년 인도 국민 회의가 신자유주의를 채택

러시아 연방이 탄생

체코슬로바키아의 해체

유고슬라비아 해체 및 유고슬라비아 전쟁 발발

중국 민주화 운동의 유혈 진압, 1989년 톈안먼 사건

바르샤바 조약 기구의 해산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군 철수

유럽을 비롯한 세계에서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회의론 대두

유럽 통합의 진전

성별 선택 낙태로 동유럽의 성비 변화

동구권에 인터넷이 확산됨

동구권에서 소비자 운동이 대두함

예멘의 통일

발트 3국의 재독립

몽골, 아프가니스탄, 베냉, 예멘, 모잠비크, 앙골라, 콩고 공화국, 소말리아에서 공산주의 붕괴

북한의 고난의 행군

베트남의 캄보디아 점령 종결

미국의 문화가 동구권 국가에 전파됨

NATOEU에 동구권 국가 가입

중화인민공화국과 베트남의 시장 경제 도입

미국이 전세계적인 초강대국으로 발돋움

신세계 질서

소비에트 전후 충돌의 첫 발발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종결

   

 

 

                                                           Red stars are removed as communism relinquishes its grip in central Europe 

 "민주주의 반대는 공산주의가 아닌 독재주의(전체주의)고 자본주의 반대가 공산주의입니다. 자본주의민주주의 혁명 이후 자유주의(자유권)와 사회주의(사회권=생존권) 공존(존중) 자유사회(민주화 사회)입니다"

a.자본주의 3대 원칙[경제]은 사유재산, 이윤추구, 자유시장경쟁 등이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 3대 원칙을 부정함으로 자영업(자작농)을 할 수 없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를 부정하기 때문에 국가사회주의(자국 사회주의) 국영자본체제로 나아갈 수 있다

b.민주주의 3대 원칙[정치]은 국민의(民有,Of the people), 국민에 의한(民治,By the people), 국민을 위한(民享,For the people) 민주정부(民主政府,Democratic Government)이다

民國基於三民主義,為民有、民治、民享之民主共和國(立憲君主國, 聯邦共和國).

국가사회주의(군국주의)와 투쟁한 2차대전 이후 공화국 대통령, 국가주석이나 입헌군주국 수상의 임기제한이 돼야 권력분리과 국민주권, 기본권보장, 법치주의, 사법부의 독립, 복수정당과 의회정치, 국제평화주의 등을 보장할 수 있었다.

[미합중국 수정 제22조(대통령 임기를 2회로 제한)
*이 수정조항은 1947년 3월 24일에 발의되어 1951년 2월 27일에 비준됨
제1절 누구라고 2회 이상 대통령직에 선출될 수 없으며 누구라도 타인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임기 중 2년이상 대통령직에 있었거나 대통령 직무를 대행한 자는 1회 이상 대통령직에 당선될 수 없다
다만, 본 조가 효력을 발생하개 될 때에 대통령직에 있거나 대통령 직무를 대행하고 있는 자가 잔여임기 중 대통령직에 있거나 대통령 직무를 대행하는 것을 방해하지 아니한다 ]


*민주국가(민주공화국, 입헌군주국, 연방공화국) 헌법[민영자본체제(民營資本體制)]

世界潮流浩浩蕩蕩順之則昌, 逆之則亡.

民國基於三民主義為民有民治民享之民主共和國(立憲君主國,聯邦共和國)

국정(國政, 民國)은 국민의 엄숙한 신탁에 의한 것으로서, 그 권위는 국민에 유래하고(民有),

그 권력은 국민의 대표자가 행사하고(民治), 그 복리는 국민이 향유한다(民享)는 민주주의(민주)국가이다

-중화민국은 삼민주의(三民主義)에 기초한, 민유(民有), 민치(民治), 민향(民享)의 민주공화국이다.

중화민국의 주권은 국민 전체에 있다.

-국정은 국민의 엄숙한 신탁에 의한 것으로서, 그 권위는 국민에 유래하고, 그 권력은 국민의 대표자가 행사하고, 그 복리는 국민이 향유한다. [일본국 헌법]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프랑스 국민은 1789년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에서 규정되고 1946년 헌법 전문에서 확인·보완된 인권과 국민주권의 원리, 그리고 2004년 환경헌장에 규정된 권리와 의무를 준수할 것을 엄숙히 선언한다.

프랑스 공화국은 상기의 원리들과 각 국민들의 자유로운 결정에 따라, 공화국에 결합하기를 희망하는 해외영토들에게 자유· 평등· 박애의 보편적 이념에 입각하고 그들의 민주적 발전을 위한 새로운 제도들을 제공한다.

프랑스 공화국은 자유· 평등· 박애를 국시로 한다.

프랑스 공화국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를 원칙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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