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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원채씨의 수기 ‘노예공화국 북조선 탈출’ 본문
한원채씨의 수기 ‘노예공화국 북조선 탈출’ 1쇄(왼쪽)와 2쇄 표지.
“저 어둠의 세계, 북조선의 현실을 세상에 알리고 북녘 주민 모두가 자유를 찾고, 노예에서 해방되어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해야 한다. 내가 대한민국에 못 가더라도 이 글만은 반드시 출판되어 북조선 사람들이 김일성 부자의 잔인한 독재체제에서 얼마나 많이 굶어 죽고, 병들어 죽고, 얼어 죽고, 맞아 죽고, 신음하며 살고 있으며, 자유를 갈망하고 있는지 알려야 한다.” -저자가 3번째 체포돼 북으로 강제 송환되기 직전 차녀에게 남긴 말
[노예공화국 북조선 탈출: 1급 설계원?보위부 비밀요원의 자유ㆍ인권ㆍ민주주의 향한 여정]은 세 번째 북조선 탈출에 성공한 한원채가 연길에서 북조선으로 강제 송환된 뒤 구류장에서의 경험을 적나라하게 쓰고 북한의 비인도적 인권 무시, 부패 타락한 사회를 백일하에 드러내고 싶은 강한 의지로 쓴 원고이다. 원제는 ‘광명을 찾아서: 나의 감방생활 수기’. 원고는 대한민국으로 오는 관문인 중국 대련으로 이동하기 직전에 탈고, 2부를 복사해 원본과 사본 1부는 일본으로, 사본 1부는 연길시 신풍교회에 전달했으나 교회에 침투해 있던 북한 공작조에게 넘어간 모양이다. 대련에서 중국 공안에 세 번째 체포 돼 북송된 한원채는 3일 만에 고문을 받다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끝내 탈북하지 못한 탈북자의 수기인 셈이다.
한원채의 세 자녀는 이 원고를 담보로 받은 출판 선인세로 2001년 한국행을 성사시켰다. 책은 2002년 일본에서 일본어로 번역돼 [脫北者](李山河 譯, 晩聲社)라는 제목으로 출간됐고, 이번에 원본인 한글판으로 처음 빛을 보는 것이다. 일본의 유명작가 무라카미 류(村上龍)는 2005년 노마문예상과 마이니치문화예술상을 받은 장편소설 [반도에서 나가라](윤덕주 역, 스튜디오본프리, 2006)가 한원채의 이 수기집이 강력한 동기로 작용했다고 고백했다.
저자 한원채는 머리말에서 “차마 말과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비인간적인 대우 속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던 3개월간의 감방 수기를 공개하면서, 북조선 사회를 제대로 알기 위한 운동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책을 펴낸 동기를 밝혔다.
저자 : 한원채(韓元彩)
출생지: 1943생. 함경남도 흥남시 회상구 역회 상동
주거지: 함경북도 길주군 영북구 68반
1951~1956년 함남 함주군 흥남인민학교 졸업
1956~1959년 함북 길주군 영북중학교 졸업
1959~1961년 함북 길주군 철도운수학교 졸업
1961~1963년 함북 길주군 팔프전문학교 졸업
1963~1967년 함남 함흥화학공업대학 졸업(기계공학사)
직장: 조선인민군 후방총국 직속 길주팔프련합기업소 설계원
표창: 국기훈장 2급 2개, 국기훈장 3급 3개
자격증: 과학기술발명권 3개, 신기술등록증 3개, 창의고안증 35개
특수임무: 1974년부터 길주팔프련합기업소 설계실 당세포 부서기(정치보위부 비밀공작원)
저서: [脫北者](李山河 譯, 東京: 晩聲社, 2002)
목차
추천사: 태영호, 이영환
머리말
1장 시련
정치보위부 지하 감방
회령시 안전부 감방으로
이 잡이와 꽃제비 참상
2장 탈출
보위사령부 백산초소
머나먼 길주로의 호송
살인 소굴 재탈출
3장 만장
중국 장백에서 만장까지
인정 깊은 파출소 소장
감방에서 사귄 친구
4장 량강도
정취보위부 재수감
안전부 집결소의 하루
뽐뿌와 직승기 처벌
5장 광명
함경남도 안전부 호송
친인척 상봉과 결별
다시 중국 연길로 재탈출
맺는말
일본어판 후기: 이산하
자녀 후기: 한봉희
책 속으로
- 집결소의 하루하루는 강제 로동으로 시작되며 심문과 고문, 노예적 굴욕과 인권 유린, 인권 침해, 강제 로동으로 끝난다. 이른 아침부터 정복 입은 승인된 도적놈들의 채찍 밑에 들볶이며 일터로 떠나는 죄수들의 몰골은 참으로 측은해 보인다. 살 빠진 어깨 우에 푹 움츠러든 가느다란 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안전원 선생님들의 눈치를 힐끔힐끔 살피는 그들은 모두가 생기 잃은 얼굴로 삶을 귀찮아한다. 죽으라면 죽고 살라면 사는 비참한 노예의 운명을 지닌 인간들의 집단이다.
- 감방 안에서 죄수들 호상끼리 허물없이 하는 말이었다. 비좁은 감방 안 조용한 곳에서 죄수 동료끼리만 할 수 있는 공통된 말이다. 이 좁은 살창 안이 아닌 그 밖의 어느 공간에서든지 할 수 없는 이야기다. 자기 생각을 자기 입으로 말할 수 없는 세상, 자유로운 남의 말을 자기의 귀로 자유롭게 들을 수 없는 세상, 남의 좋은 것을 자기의 밝은 눈으로 자유롭게 볼 수 없는 세상, 이것이 오늘의 북조선이다. 아 세상이여, 자유의 공간은 이다지도 좁단 말인가!
- “야, 이 새끼야, 너 왜 중국에 갔댔어?” “야, 이 새끼 솔직히 말해라. 다 알고 묻는데 왜 거짓말을 해?” 그렇게 말하며 나의 아랫도리를 발로 마구 차며 행패를 부린다. 나는 처음으로 구타당했다. 내가 신음을 내자 또 주먹으로 두 뺨을 엇바꿔 가면서 강타를 들이댄다. 내가 두 팔꿈치로 얼굴을 가리면서 그자의 주먹 강타를 피하려고 하자 이번에는 금방 가지고 들어온 몽둥이로 몸의 아무 부위나 관계하지 않고 마구 두들겨 패는 것이다. 나는 불의에 가해지는 예상치 않았던 매질 앞에서 어쩔 바를 모르고 이리저리 몸을 돌리면서 피하려고 했으나, 수쇠 찬 몸이다 보니 두들겨 주는 대로 맞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 탈북 후 1년 만에 다시 돌아오는 조선의 지리와 마을, 사람과 자연, 숨 막히는 현실을 목격하면서 그 속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백성들의 모습이 삼삼히 떠올랐다. 길가에서는 1년 전 내가 조선을 떠날 때와 다름없는 백성들의 참상이 펼쳐졌다. 기름때 반들거리는 꽃제비 아이들의 정기 잃은 눈동자, 휘청거리며 방랑하는 거지 옷차림의 중년 사나이들과 로인들, 무거운 짐을 두 어깨에 걸머진 배낭꾼 행인들, 허약에 걸린 젊은 병사의 무질서한 움직임. 그런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 그 누가 맨 처음 신선한 꽃과 제비의 이름을 따내 ‘꽃제비’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아마 처음에는 불쌍한 어린이를 동정해서 꽃 같은 제비로 칭했으리라. 옛날에는 말조차 없었던 꽃제비라는 단어가 생겨나고 그 이름의 주인공들이 최근 몇 년 사이에 전국 도처에 나다니고 있다. 이제 갓 말을 배우는 젖먹이 어린애들도 꽃제비의 참뜻을 알고 있으니 이 얼마나 큰 민족의 수치인가! 허 씨의 눈물겨운 인생학 강의를 들으며 지금은 비록 목숨 붙어 살아가고 있으나 얼마 있지 않으면 또 새로운 꽃제비로 태어날 수많은 조선의 꽃제비 세상을 그려 보면서 또 하루 감방 속에서의 밤을 지새웠다.
- “하늘에 계시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느님이시여. 이 땅의 교형리들에게 끌려가 죽음의 시각에 박두한 불쌍한 이 자식은 오직 하느님의 신비한 힘의 구원을 받아 살아나기를 바라오며 다시 사랑하는 처자와 만나 귀하신 하느님께 감사드릴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아-멘-.”나는 달리는 차의 적재함 감방에 홀로 앉아 하느님께 자꾸자꾸 또 자꾸 빌고 또 빌면서 구원을 청했다. 죽음을 경각에 둔 이 순간 나는 그 어디에 하느님이 계시어서 옛 이야기 속에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환상 같은 현실이 나를 구원해 주기만을 바랐다.
- 이 순간 나는 심장이 높이 뛰고 숨소리가 커지는 감을 느낀다. 이 순간이 결정적 탈출의 시각이라고 락착지었다. 바로 이 순간이 자비스러운 하느님께서 나에게 응답하여 주신 귀중한 전환의 최후 순간이었던 것이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집결소 정문으로 다가가서 빗장을 밀어버리고 출입문을 연 다음 캄캄한 마을 속을 향해 달리고 또 달렸다. 단층집 마을의 복잡한 골목길을 요리조리 에돌면서 집결소에서부터 멀리멀리 사라졌다. 집결소 마을을 끝까지 다 지나가고 동쪽에 나타난 낮은 야산 과수원 고개를 하나 넘어 멀리 다른 동네까지 갔다.
자유의 몸이 되었다.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탈출의 순간이었는가! 성공한 탈출의 기쁨으로 하여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려 앞을 볼 수가 없었다. 그 누구도 나를 구원할 수 없는 살벌한 총부리 앞에서 나를 구원한 것은 오직 고마우신 하느님이라고 생각되었다. 이때 나는 반룡산 중턱에 안치된 할아버지 묘지 방향의 높은 하늘을 향해 고마우신 하느님께 세 번 허리 굽혀 인사하였다.
출판사 서평
북조선 인텔리의 자유?인권?민주주의 향한 목숨 건 여정!
세 번 탈북, 세 번 체포…中 연길 감옥, 北 보위부?안전부 감옥 수기
희망 잃은 조선 땅을 떠나며 피로 쓴 원고…폭정 종식 앞당기는 무기되길
북한 체제에 충실하게 살던 인텔리 한원채는 1998년 7월 30일 아내와 자녀 3명(2녀1남)과 함께 정든 고향 집을 떠나 8월 1일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북했다. 숱한 백성이 굶어 죽어도 관심도 대안도 없는 체제와 6?25 월남민 가족이라는 출신 성분의 멍에를 벗어날 수 없는 연좌제의 굴레, 봉건 세습과 선군정치로 표방된 군국주의 김일성 일가 독재에 불복하겠다는 반발심이 탈북을 결심하게 했다. 노력과 능력만으로는 출세에 한계가 있는 자기 자신의 처지와 대학을 졸업한 두 딸, 고등중학교(고등반)에 재학 중인 외아들의 희망 없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도 강력한 탈북 동기로 작용했다.
조선인민군 후방총국 직속 길주팔프련합기업소에서 설계원이자 설계실 당세포 부서기(정치보위부 비밀공작원)로 30년 이상 근무한 한원채는 “옹근 반세기 동안 공화국 공민으로 나라와 인민을 위하여, 자신과 가족을 위하여 창조하며 참답게 살려고 노력”하며 살아온 평범한 인텔리 가장이다. 아내는 철도국병원 내과의사였다.
그는 “내가 타고 앉아 사는 지구촌이건만 이 지구촌의 이모저모에 대하여 다 알 길 없는 나로서는 오직 내가 살고 있는 조선이야말로 세계 제일의 보금자리인 양 싶었고, 조선 경외에 사는 모든 인간은 최악의 생활 조건에서 조선이라는 리상촌을 부럽게 바라보며 건국해 살아가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고 토로한다. 이어 “조선의 당과 조선의 모든 국가 관저, 행정기관은 백성들에게 그렇게만 선전하였고 그렇게만 교육하였으니 달리 생각할 리 만무하다”고 고백한다. 속으며 살아온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죽어라 일을 해도 부가 없는 세상, 부를 창조한 사람이 그 부를 소유하지 못하고 부를 가로채는 자가 부의 향유자가 되는 사회, 사회악의 쓰레기통에서 사회 악취를 숨 쉬며 사느니 차라리 그 속을 탈출하는 거기에 바로 나의 인생철학이 있었다. 하여 나는 정든 고향 땅과 고향 집, 손때 묻은 가장집물을 그대로 남겨두고 이국의 하늘 아래로 서슴없이 달려온 것이다.”
“사람들은 못살고 권세 없고 자유 없고, 인간다운 생활이 마비된 그 근본이 누구의 탓인지와 전 세계 사회주의 대진영이 송두리째 무너진 원인도 다 사회주의 체제 자체의 모순성과 열악성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나, 수많은 조선의 인민들은 체제와 정면으로 맞서기에는 너무나도 아름차고 힘겨우니 어쩔 수 없이 탈북하는 것으로써 당국과 맞서고 있는 것이다.”
“6·25동란이 끝난 지도 어언 반세기가 다 되었건만, 인민들에게 이밥에 고깃국에 비단옷 입고 기와집에서 살게 하겠다고 염불처럼 외우던 말버릇이, 지금은 그 말조차 사라지고 계급투쟁이라는 창끝같이 예리한 말만이 온몸을 오싹오싹 자극하는 랭혹한 사회주의...
북한 인권 폭로한 故 한원채 씨, 북한인권특별상 수상
북한에서 국기훈장 2급 2개, 국기훈장 3급 3개의 표창과 과학기술발명권 3개, 신기술등록증 3개, 창의고안증 35개의 자격증을 받을 정도로 유능한 과학기술자 한원채 씨는 자유는 물론 인권 개념조차 없는 북한의 현실을 폭로하기 위해 탈북했고 이를 기록으로 남겼다(사진)
북한 인권을 폭로한 수기 ‘노예공화국 북조선 탈출: 1급 설계원․보위부 비밀요원의 자유․인권․민주주의 향한 여정’(도서출판 행복에너지) 저자인 고(故) 한원채(韓元彩·1943~2000) 씨가 4일 북한인권특별상을 받는다.
북한인권상은 ‘한반도인권과통일을위한변호사모임’(상임대표 김태훈 변호사, 이하 ‘한변’)이 북한 인권 개선에 헌신한 이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북한인권법 시행 기념으로 지난해 신설 돼 태영호 전 주영 북한공사가 제1회 북한인권상을 수상했고, 올해는 자유북한방송 김성민 대표가 본상을 받는다.
한원채 씨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북한의 열악하고 비인간적인 인권 실태를 폭로한 인물이다.
1998년 7월 아내와 세 자녀(2녀1남)를 데리고 북한 땅을 떠나 중국으로 탈북했다가 1년여 후 잡혀 중국과 북한 감방·구류장에서 모진 고문과 비인간적 대우를 받다 재탈북해 ‘노예공화국 북조선 탈출’을 집필한 후 2000년 초 한국행을 시도하다 다시 체포돼 북한으로 끌려가 3일 만에 고문사한 비운의 인물이다
북한의 인권 실태를 적나라하게 기록한 한 씨의 육필 수기는 2부가 복사돼 원본과 사본 1부는 극적으로 일본으로 밀반출 했고, 사본 1부는 중국 연길시 신풍교회에 전달했으나 교회에 침투해 있던 북한 공작조에게 넘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대련에서 중국 공안에 세 번째 체포 돼 북송된 한원채 씨는 3일 만에 고문을 받다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러시아 망명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보다 더 북한의 인권 실태를 생생하게 폭로한 한 씨는 끝내 탈북하지 못했고, 우여곡절 끝에 한국행에 성공한 그의 자녀에 의해 한 씨의 수기는 일본과 한국에서 뒤늦게 출간됐다.
한 씨는 머리말에서 “연길에서 북조선으로 강제 송환된 뒤 구류장에서의 경험을 적나라하게 쓰고 북한의 비인도적 인권 무시, 부패 타락한 사회를 백일하에 드러내고 싶은 강한 의지로 쓴 원고”라며 “차마 말과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비인간적인 대우 속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던 3개월간의 감방 수기를 공개하면서 북조선 사회를 제대로 알기 위한 운동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수기를 쓴 동기를 밝혔다.
한 씨의 세 자녀는 이 원고를 담보로 받은 출판 선인세로 2001년 한국행을 성사시켰다. 수기는 2002년 일본어로 번역돼 ‘脫北者’(李山河 譯, 晩聲社)라는 제목으로 일본에서 먼저 출간됐고, 2019년 6월 25일 원본인 한글판으로 한국에서 출간됐다. 일본의 유명 작가 무라카미 류(村上龍)는 2005년 노마문예상과 마이니치문화예술상을 받은 장편소설 ‘반도에서 나가라’(윤덕주 역, 스튜디오본프리, 2006)가 한 씨의 이 수기가 강력한 동기로 작용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한 씨가 밝힌 탈북 동기는 숱한 백성이 굶어 죽어도 관심도 대안도 없는 체제와 6‧25 월남민 가족이라는 출신 성분의 멍에를 벗어날 수 없는 연좌제의 굴레, 봉건 세습과 선군정치로 표방된 군국주의 김일성 일가 독재에 불복하겠다는 반발심이었다. 또한 노력과 능력만으로는 출세에 한계가 있는 자기 자신의 처지와 대학을 졸업한 두 딸, 고등중학교 고등반에 재학 중인 외아들의 희망 없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도 강력한 탈북 동기로 작용했다.
수기를 완성한 한 씨는 북송 직전 차녀 한봉희(2001년 대한민국 입국, 한의사) 씨에게 사실상 유언이 된 북한 인권과 관련한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저 어둠의 세계, 북조선의 현실을 세상에 알리고 북녘 주민 모두가 자유를 찾고, 노예에서 해방되어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해야 한다. 내가 대한민국에 못 가더라도 이 글만은 반드시 출판되어 북조선 사람들이 김일성 부자의 잔인한 독재체제에서 얼마나 많이 굶어 죽고, 병들어 죽고, 얼어 죽고, 맞아 죽고, 신음하며 살고 있으며, 자유를 갈망하고 있는지 알려야 한다.”
한 씨의 이런 뜻에 따라, 북한의 인권문제가 다시 망각 돼 가는 2019년 6월 25일 대한민국 서울에서 ‘노예공화국 북조선 탈출’이란 제목으로 출간됐다. 책은 여러 신문 매체에 소개 돼 3주 만에 초판 2,000부가 매진됐고, 즉시 2쇄가 발행되는 등 꾸준히 읽히고 있다.
한원채 씨는 6·25 때 월남한 아버지로 인해 출신 성분이 안 좋아 우수한 두뇌를 소유했음에도 출세에 한계가 있었고, 자녀에게까지도 영향을 미치게 되자 탈북을 결심하게 된다. 하지만 한 씨는 1974년부터 길주팔프련합기업소 설계실 당세포 부서기, 즉 정치보위부 비밀공작원으로 활동했다. 체제를 배반하면, 즉 탈북하면 최고형인 사형에 처해진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결단했다.
한 씨의 온 가족을 대동한 탈북과 북한 인권 실태를 적나라하게 기록한 수기 집필은 하나하나가 모두 목숨을 건 행위들이다. 더욱이 중국 연길에 숨어살 때 그에겐 한화 2억 원을 상회하는 거액의 현상금이 걸려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굴하지 않고, 북한 인권 실태를 폭로하는 수기를 집필했으며, 목숨을 걸고 한국과 일본으로 전달하려다 체포돼 북송 후 결국 목숨을 잃었다.
한 씨는 대부분의 다른 탈북민처럼 단지 배고픔 때문에 탈북한 것이 아니라, 자유를 잃어버렸고 인권 개념조차 없는 북한의 현실을 폭로하기 위해 탈북했고 이를 실천했다.
따라서 이미 고인이 된 한 씨의 영전(靈前)에 한변이 뜻깊게 제정한 북한인권특별상이 돌아간 건 아주 특별하고 의미가 있는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한 씨가 집필한 ‘노예공화국 북조선 탈출’은 앞으로 북한의 인권 실태를 폭로한 ‘인권 바이블’ 같은 존재로 끝내 북한을 노예 상태로부터 해방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리라 기대된다. 현재 영미권 소개를 위해 영어로 번역 중이다.
한원채의 북한 인권 폭로 수기 ‘노예공화국 북조선 탈출’은 한국에 정착한 한 씨의 차녀 한봉희씨가 아버지의 거룩한 뜻을 잊지 않고 펴냈다. 아버지의 육필 원고를 찾아 일본까지 다녀왔고, 책을 안 읽는 열악한 독서 현실에서 적지 않은 자금도 투자했다.
차녀 한씨는 “언론의 도움으로 책이 많이 소개 돼 다행히 1쇄가 금세 매진 돼 큰 보람과 성취를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태영호 전 공사는 추천사에서 “굶어 죽게 된 인간이 배를 채우기 위해 먹을 것을 찾아가는 것은 일종의 본능인데 북한 체제는 굶주림을 피해 살아남으려는 평범한 인간의 본능조차 허용되지 않았다”며 “평범한 인텔리 한원채 씨가 남긴 이 글을 통해 북녘 주민들의 절규에 대한민국이 과연 어떻게 응해야 할지 그 해답을 찾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이영환 대표도 “한원채 님의 수기를 읽는 내내 감정의 격랑을 피하기가 어려웠다. 저자가 겪은 질식할 것 같은 고통과 당장 닥칠 것만 같은 죽음의 공포를 고스란히 느끼게 될 것”이라며 “저자의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솟구치는 생존 의지와 함께 가해자들에 대한 끓어오르는 복수심에 공감하다 보면 어느새 자기 자신도 모르게 분노하게 된다”고 말했다.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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