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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간부, 휴양소 청소부·관리인에도 감시당해…불안감 커져 본문
진행 : 안녕하십니까. 이광백입니다. 2015년 유엔은 대한민국 서울에 인권사무소를 설치해 북한의 인권상황을 감시하고 피해자들의 증언을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정부도 2016년 말 탈북민들의 증언을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록은 통일 후 인권 책임자들을 처벌하는 결정적인 법적 근거가 될 것입니다.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고 어떤 인권문제가 있는지 이야기해 봅니다. 지금도 북한에서 인권침해를 지속하고 있는 가해자들이 인권침해 행위를 중단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북한의 간부를 비롯한 고위층들이 겪는 인권 침해에 관해 들어봅니다. 북에서 간부 생활을 하다 탈북한 김형수 씨 나와 계십니다. 어서 오세요.
– 지난 시간에 간부를 비롯 고위층들이 일반 인민들 못지않게 심각한 감시와 통제를 당하고 있다는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직장에서뿐 아니라, 자주 가는 식당, 심지어 집에서까지 감시를 당하고 있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우선 북한에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 식당 아니겠습니까? 일반인들이 많이 갈 수 없지만, 간부들은 많이 갑니다. 제가 북한에 있을 때도 잘 가던 식당들이 있는데요, 그 식당의 종업원들 중에 제가 아는 접대원이 있었습니다. 아는 사이다 보니 그 접대원이 비밀이라면서 보위부가 간부들이 와서 밥 먹을 때마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려달라고 얘기한다고 합니다. 이 업무를 보통 일주일에 열 건 정도는 해야 된다고 해요. 아마 자기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했습니다.
중요한 건 간부 같은 경우는 자기 집에서 도청기가 있으니까 도청도 되고 감시도 되거든요. 그래서 사람 많은 식당에 가면 감시가 소홀할까 싶거든요. 그런데 간부들이 식당을 가도 그렇지 않은 거예요. 중요한 레스토랑에는 다 (도청이나 감시가) 있어요. 제가 말한 곳은 일반 식당인데 대체로 사람이 없을 때는 도청이 없다가 음식 질이 높아지고 사람이 많아지면서 도청을 하고 감시까지 하는 거예요. 간부들이 술이 들어가면 진심이 나오는데 그때 이 사람이 충성스러운지 감시하는 거예요. 그래서 식당에서 우연 중에 말을 잘못해서 감옥 가는 간부들이 많습니다. 식당을 가장 많이 가고 그 다음으로 휴양소에 (많이) 갑니다. 일반인들이 못가는 간부 휴양소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 휴양소 관리인들, 청소하는 사람들 모두 사실 간부들을 감시한다고 보면 돼요.
– 이런 분위기라면 그냥 당(黨)에 대한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렵겠군요?
그래서 북한 사람들은 직장이나 회사 안에서 쌍소리, 음담패설을 하는 거예요. 감시에 안 걸리고 시간 때우기에 좋으니까요.
– 간부라면 당의 정책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고 국가는 이를 수렴하면서 정책을 세우고 하는 방식이 상식적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북한에서는 이런 게 자유롭게 이뤄지나요?
간부들 자체는 겉과 속이 다르게 행동해야 합니다. 간부들일수록 북한체제와 정책이 잘못됐다는 것을 잘 알고 있거든요. 그렇지만 자신은 간부하는 덕에 남들보다 잘살고, (이를 계속하려면) 낮에는 충성하고 밤에는 이불 속에서나 귓속말로 부인에게 얘기하는 거죠. 그런데 부인도 믿지 못한다는 말도 있어요. 혹여나 이혼하면 언제 그 말이 되돌아올지 모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결혼식을 하면 부모들이 신랑, 신부한테 ‘속주지 마라’고 얘기를 할 정도예요. 부부라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없는 게 북한인 겁니다.
– 누가 봐도 ‘이것은 인민을 위한 정책이 아니다’ 싶어도, 당이 결정하면 그냥 따르겠군요?
그렇기 때문에 김부자, 김정은이가 어떤 방침을 내렸다고 이것을 어김없이 집행해야 하는데, 이게 나쁘다고 하더라도 이것에 대해 뭐라 할 수 없어요. 북한에서는 ‘짜까닥’이라고 하는데, 말을 ‘짜까닥’ 했다가 목이 ‘짜까닥’ 하고 날아간다는 뜻으로 사용합니다.
– 예를 들어서 위에서 방침이 내려오면 그것이 옳은지, 좋은지, 혹은 나쁜지 토론할 자리가 없겠군요?
그 집행을 철저히 하겠다는 토론밖에 할 수 없어요. 그렇지 않고 다른 말을 하는 경우 하루아침에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갈 수도 있거든요.
– 하루아침에 정치범수용소를 가는 경우가 많다면 늘 불안에 시달릴 것 같은데 이것과 관련해서 제가 북한 말로 ‘풀기 있을 때 어떻게 하라’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게 무슨 의미인가요?
간부라고 하면 ‘영원히 계속 간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잖아요. 그래서 간부하고 있을 때 아랫사람을 이용해서 뇌물을 챙기고 불법적으로 부를 불리기 쉬워요. (간부는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존재이긴 하지만 적어도 간부를 하고 있을 때에는) 손바닥에 풀기가 있으니까 갖다만 대도 돈을 주는 거죠. 간부들끼리 “야 풀기 있을 때 돈 많이 챙겨놔” 이런 말을 하죠. 가까운 친구들끼리는 그거를 또 달러로 바꿔 놓으라고 말합니다. 이건 혹시나 통일이 됐을 때, 북한에나 남한에나 우리가 갈 곳 없을 때 그나마 달러라도 있으면 우리가 살 것 아니냐고 해요.
뇌물을 받을 때도 규칙이 있어요. ‘구대일 원칙 지키냐’고 하는데 뇌물 받아 먹으면 남들도 다 알아요. 그래서 뇌물을 받으면 열개 중에서 아홉 개는 다른 간부한테 넘겨야 하고 하나 정도만 먹어야지, 안 그러면 바로 목 날아가는 거예요. 간부는 이렇게 불안하지만 그래도 간부 되면 좋아해요. 살림도 나아지고 애들도 더 잘되니까요.
– 간부 생활을 하면서 철저한 통제를 받았을 텐데 그 과정에서 발각이 돼서 문제가 된 경험이 있나요?
저 같은 경우도 사실은 간부 하다가 고향을 간 이유가 있습니다. 간부라고 하면 서로 경쟁합니다. 일반인이 모르는 약육강식 사회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아버지가 대학 교수밖에 안 되는 상황에서 좋은 회사에서 일하다 보니까 자꾸 치고 올라오는 고위층 간부 자녀들이 제 자리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뭔가 걸리기만을 노리는 거죠. 한국은 변호사를 사서 법적으로 하면 되는데 북한은 사람들이 ‘무엇을 했어’라고 전달(신고)하면 그냥 끝이에요. 그래서 (저는) 마지막에 교화소까지 갔어요.
– 교화소에 가신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연구소에서 백암 종합농장을 저희들이 담당해서 3개월씩 나갔어요. 그런데 제 친구가 폭발물을 자기 집으로 보내서 아버지 환갑 때 고기를 잡아먹겠다고 한 걸 제가 모르고 전달한 거예요. 친구가 저한테 보고를 안 하고 했기에 제가 친구를 욕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내가 (위에) 말을 안 했는데도 위에서 발각이 된 거예요. ‘당신은 당원이고 간부인데 왜 보고를 안 하고 혼자서 했느냐’길래 ‘나는 그 친구를 생각해서 그런 것이다’고 말을 했죠.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사람에게 제 자리를 넘겨준 거죠. 항의하고 싶었지만, 항의라는 게 통하지 않습니다. 모두 큰 간부들이 연결된 간부자제들이니까 할 수가 없죠. 북한에서 (웬만한) 간부가 된다는 건, 토대가 든든한 사람이 되는 거지 일반인이 간부가 되는 건 말도 안 됩니다.
– 북한의 경우, 간부들이 일반인들에 비해서 더 자유롭게 외부정보를 접할 수가 있나요?
그렇습니다. 북한은 ‘출판검열국’이란 부서가 있어요. 순안 공항장 세관원 안에 출판검열원도 있습니다. 외국에 갔다 오면 일체 모든 잡지를 통제하지만, 간부는 책자를 끼워도 높은 간부라서 검색을 못 해요. 제 친구가 고위 간부와 친했는데 그를 통해서 홍콩 잡지나 서울 대학교 영어 자료를 받기도 했어요. 외국이 발달했고 잘 사는지 더욱 잘 알 수 있는 게 간부들입니다.
– 정보에 대한 접근도 더 많이 할 수 있고 북한 사회의 문제를 더욱 알 수 있지만, 감시와 통제를 더욱 철저히 받다 보니 자기 의견을 자유롭게 할 수 없고 표현의 자유도 억압받는다고 할 수 있는데요. 김 선생님 같은 경우는 감시 통제를 받다가 교화소까지 가게 되셨는데 어떻게 탈북을 하게 된 건가요?
사실 저도 45년을 북한에서 살았고, (제가 다닌 김일성)종합대학은 다른 대학보다도 정치, 사상적 교양을 더 많이 합니다. 그러다 보니 중앙당 강의를 받는 등 남보다 더 세뇌됐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1998년, 고향에 내려갔다가 죽은 사람 시신을 보게 된 거죠.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고향에는 토대가 나빠서 대학을 못 간 친구가 있었어요. 어릴 때부터 친하다 보니까 길거리에 시신을 보고 그 친구가 저에게 말하더군요. “너는 평양 가서 살다 보니까 너무도 모른다. 지방이라는 것은 사람 사는 게 아니다. 시체들이 있는 것도 부모나 자식이 죽어 임자가 없기 때문에 방치해 두는 거다”라고요.
그리고 그때 대한민국이라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저는 원래 대한민국이라는 말도 몰랐어요. 남조선이란 말만 알았죠. 그래서 ‘대만’을 얘기하는 줄 알았어요. 그때 친구가 대한민국이 남조선이라는 것을 알고 그 친구를 통해서 처음으로 라디오를 듣고 2003년도에 그 친구를 졸라서 중국에서 라디오를 개인적으로 구했습니다. 듣는 과정에 2009년 1월에 김정은이 나왔어요. 그 당시 북한에서는 김정은을 누구도 얘기 안하고 중앙당과 일부 군부대에서만 조금 얘기가 된 거고 일반인은 몰랐습니다. 저는 충격 받았어요. 김정일 때는 ‘김정일은 나보다 20년이나 나이가 많고 풍도 왔으니 오래 못 살겠구나, 김정일이 빨리 썩어지면 나는 살 기회가 있겠구나‘ 생각했는데 김정은이 나온 거죠. 나보다 나이가 20년 아래 사람이 다시 올라간다니까(세습된다니까) ‘무조건 탈북 해야겠다’고 그제야 결심했습니다.
– 간부들이 그와 같은 억압과 불안 속에서 살다 보니 생각도 많고 변화의 필요성도 많이 느낄 것 같은데요?
(제 생각에 북한에서) 가장 변화를 바라는 것이 간부들입니다. 왜냐면 제가 라디오를 들었을 때 그 오랜 시간 들어왔던 북한 세뇌 혁명, 사상교육이 순간에 완전히 허물어진 거죠. 3일도 못 돼서 말이죠. 북한의 주체사상과 김정일주의는 ‘모래에다 지어 놓은 집과 같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간부들이 워낙 이런 교육을 받다 보니 원리적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외부세계를 또 알고 있으니, 간부들은 더 빨리 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김정은과 마찬가지로 간부들도 나쁜 사람 아니냐는 사람이 많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북한 고위 간부들도 인권을 침해받고 있는 피해자입니다. 그들이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기 때문에 이를 알려야 합니다. 독일도 총리가 동독 출신 아닙니까. 지금부터 준비를 잘해서 통일되면 우리를 처벌하는 것이 아닌, 북한 주민들한테 잘한 간부들, 주민을 위해서 도와줬던 간부들은 용서받을 뿐만 아니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전달해야 합니다. 앞으로 그들이 축이 돼서 북한 주민들을 격려해 나가면서 김정은 왕족체계를 허물어 버려야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북한의 간부들도 희망이 있다고 전달하고 싶은 이유입니다.
– 간부들이야 말고 김정은 편이 아닌 주민들의 편에 서는 게 낫다는 거군요 감사합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오늘까지 간부를 비롯한 고위층들이 겪는 인권침해, 특히 간부들 역시 심각한 감시와 통제 하에 있고 표현의 자유에서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이야기, 김형수 씨 증언을 통해 들어봤습니다. 증언 감사합니다.
– 간부를 비롯 고위층들이 표현의 자유에서 어떤 제한을 받고 어떤 인권침해 문제가 있는지 전문가 의견을 들어보는 시간 준비했습니다.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조정현 교수 전화 연결돼 있습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김형수씨의 오늘 증언을 통해, 북한 고위층의 인권침해에 관해 어떤 인권법적 문제를 이야기해 볼 수 있을까요?
진행자께서 이미 말씀하셨듯이 오늘 사례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명백한 위반입니다.
북한이 당사국인 자유권규약 제19조에 보면 “모든 사람은 간섭받지 아니하고 의견을 가질 권리를 가진다”고 1항에 먼저 규정한 후, 2항에서 “모든 사람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이 권리는 구두, 서면 또는 인쇄, 예술의 형태 또는 스스로 선택하는 기타의 방법을 통하여 국경에 관계없이 모든 종류의 정보와 사상을 추구하고 접수하며 전달하는 자유를 포함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표현의 자유는 요즘 북한인권과 관련해 자주 논의되는 정보의 자유도 넓은 의미에서 포함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표현의 자유, 정보의 자유는 북한 당국에 의해 사전에 법률에 명시된 바에 따라 합법적으로 제한될 가능성도 일반적으로는 있습니다. 다만, 북한의 경우와 같이 정부 정책에 대한 건전한 비판까지도 원천봉쇄하는 과도한 제한, 사실상 표현의 자유가 전혀 없는 것과 같은 상황의 전개는 표현의 자유가 법률에 의해 적절히 제한됐다고 보기보다는 확실히 표현의 자유 자체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즉, 일반 북한 주민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북한의 간부 및 고위층들도 표현의 자유, 정보의 자유측면에서는 심각한 인권침해를 겪고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 네, 북한 간부를 비롯 고위층들이 겪는 인권침해 문제를 살펴봤습니다. 조정현 교수님 감사합니다.
북한 당국에 의한 인권침해로 북한 주민들의 고통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와 대한민국은 인권침해를 기록해 향후 가해자 처벌을 위한 근거자료로 활용하려고 합니다. 북한 당국과 책임자들은 인권 침해 행위를 지금이라도 중지해야 할 것입니다. <라지오 북한인권기록보존소, 눈물의 기록, 정의의 기록>, 지금까지 이광백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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