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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Pacific Region Intelligence Center

짐바브웨 대통령 하야 협상 본문

남부 중앙아프리카 지역/짐바브웨(Zimbabwe)

짐바브웨 대통령 하야 협상

CIA bear 허관(許灌) 2017. 11. 19. 15:42

 

11월 17일 짐바브웨 하라레어 한 남성이 쿠데타 소식이 실린 신문을 읽고 있다. 뒤로 돈을 찾기 위해 은행에 줄을 선 사람들이 보인다.

군사정변으로 사실상 실각한 것으로 알려진 짐바브웨 장기 독재자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 나타났습니다. 앞서 해임당한 뒤 해외로 피신했던 전 부통령은 귀국했는데요. 급박하게 돌아가는 짐바브웨 사태, 짚어보겠습니다. 

진행자) 짐바브웨 사태가 급박하게 진행되고 있군요?

기자) 네. 아프리카 동남부 인도양 가까운 짐바브웨에서 지난 화요일(14일)부터 이튿날까지 군사정변이 일어나, 군부가 실권을 장악하고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은 가택 연금된 걸로 알려졌는데요. 무가베 대통령이 사태 후 처음으로 오늘(17일) 공식 석상에 나왔습니다. 수도 하라레의 한 대학교 졸업식장이었는데요. 무가베 대통령이 무표정한 얼굴로 참석자들과 함께 국가를 합창하고 행사 개최를 선언하는 모습이 현지 언론과 BBC방송을 비롯한 외신을 통해 전해졌습니다.

진행자) 그러면, 쿠데타가 일어난 뒤에도 대통령직을 정상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거네요?

기자) 그렇게 간단히 볼 상황은 아닙니다. BBC 방송은 “일상적 직무 수행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무가베의 장래를 더 혼란스럽게 만드는 일”이라고 오늘(17일) 졸업식 참석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진행자) 어째서 일이 더 혼란스러워졌다는 거죠?

기자) 짐바브웨의 실권을 장악한 군부는 무가베 대통령과 하야 협상을 벌이고 있습니다. 유혈 쿠데타로 국가적인 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고, 무가베 대통령이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날 수 있도록 퇴로를 열어주는 건데요. 이 와중에 무가베 대통령이 외부 행사에 참석하는 것이 사임을 거부하고 버티는 모습으로 해석되고 있는 겁니다. 사태가 더 복잡해지고, 장기화될 가능성을 일부 외신들은 우려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짐바브웨 군부와 무가베 대통령 측의 사임 협상,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기자) 군사정변 다음날인 어제(16일) 짐바브웨 군은, 총사령관 콘스탄티노 치웬가 대장과 무가베 대통령이 나란히 서서 대화하며 웃는 사진을 언론에 공개했습니다. 함께 공개된 다른 사진에는 관계자 여러 명이 함께 무가베 대통령과 뭔가 논의하는 모습도 있었는데요. 사진 속에 나오는 사람들은 무가베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가톨릭 사제들, 그리고 협상을 중재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특사들이라고 CNN 방송이 설명했습니다. 남아공은 짐바브웨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치는 나라입니다.

진행자) 군부가 실권을 장악한 뒤 무가베 대통령이 스스로 퇴진하도록 요구하는 건데,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거죠?

기자) 올해 93세인 무가베 대통령은 지난 37년동안 세계 최장기 집권하면서 독재자로 비판 받아왔습니다. 1980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해 짐바브웨가 정식 건국한 뒤 초대 총리를 맡았고요. 7년 뒤 총리제를 폐지하고 대통령 자리에 올랐습니다. 이번에 정변을 일으킨 군부는 무가베 대통령 주변 인물들이 오랫동안 나라를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고난 속에 몰아넣었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는데요. 보다 직접적인 이유는, 무가베 대통령이 권력을 부인에게 물려주려한다는 의혹 때문이었습니다.

진행자) 무가베 대통령이 권력을 부인에게 넘기려고 계획했다고요?

기자) 네. 무가베 대통령이 얼마 전, 차기 대통령 후보로 꼽히던 에머슨 음난가그와 부통령을 전격 해임했는데요. 이 일이 아프리카 일대에서 큰 논란이 됐습니다. 정치적 경쟁자를 제거해서, 권력을 부인 그레이스 여사에게 물려주려는 사전 작업으로 해석됐는데요. 음난가그와 부통령은 해임 직후 해외로 피신했습니다. 이어서, 짐바브웨군 총사령관 치웬가 대장은 “해방전쟁 참전용사에 대한 정치적 숙청 작업을 멈추라”며 반발했습니다.

진행자) 해임된 뒤 피신했던 부통령이 귀국했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무가베 대통령으로부터 갑작스럽게 해임된 음난가그와 전 부통령이 도피생활을 마치고 어제(16일) 짐바브웨에 돌아간 것으로 오늘 AFP통신이 보도했는데요. 짐바브웨 야권은 음난가그와 전 부통령을 새 지도자로 세우는 과도정부 구성을 논의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진행자) 짐바브웨 새 지도자로 거론되는 음난가그와 전 부통령은 어떤 인물인가요?

기자) 음난가그와 전 부통령은 무가베 대통령과 함께 영국을 상대로 독립투쟁에 나섰던 동지인데요, 일반의 평가는 엇갈립니다. 군과 국민들로부터 두루 신임받는 것으로 BBC방송 등이 전했는데요, 반면 뉴욕타임스는 '독재자 기질'이 무가베 대통령 못지 않다는 현지 언론 논평을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진행자) 혼란스러운 짐바브웨 사태,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까요?

기자) 새 지도자를 세우려는 군부와 야권, 그리고 하야를 거부하고 버티는 무가베 대통령이 서로 부딪히고 있는 건데요. 무가베 대통령의 버티기가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앞서 말씀 드린대로 짐바브웨 정세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제이콥 주마 대통령은 의회에 출석해서 “짐바브웨의 정치 상황이 곧 명백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현지 사정에 정통한 영국왕립국제문제연구소 측도 결국 무가베 대통령이 조만간 사임할 것으로 뉴욕타임스에 설명했습니다.

진행자) 짐바브웨는 북한과도 가까운 나라죠?

기자) 그렇습니다. 영국에 대한 짐바브웨 독립투쟁 당시부터 북한이 군사지원을 했는데요. 무가베 대통령이 실권을 장악한 직후인 1980년 수교하고, 평양에서 양국 ‘우호협력조약’을 체결했습니다. 이후로도 다양한 협력이 진행됐고요, 무가베 대통령이 총 8차례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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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게이브리얼 무가베(영어: Robert Gabriel Mugabe, 1924년 2월 21일 ~ )는 짐바브웨의 정치가이다.

1980년 4월 짐바브웨가 정식으로 건국되면서 총리를 맡아 실권을 가졌으며, 1987년부터 총리제를 폐지하고 대통령이 되어 현재까지 30년 넘게 짐바브웨를 통치하고 있다. 그러나 2008년과 2013년 대통령 선거에 대해 정통성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1.생애

(1)생애 초반

솔즈베리(하라레) 부근의 농촌에서 태어났고 로마 가톨릭 교회 신자였던 그는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세운 학교를 다닌 후, 남아프리카 연방의 포트헤어 대학교를 졸업하였고, 영국으로 건너가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수학하기도 했다.

(2)정치 활동

학창시절부터 흑인 민족주의 운동에 참여했으며, 가나에서 교사로 재직하다가 가나가 영국에서 독립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곧바로 로디지아로 돌아와 독립 운동에 참여하였다. 처음에는 짐바브웨 아프리카 인민 연맹(ZAPU)에 참여했으나, 결별하고 1963년 짐바브웨 아프리카 민족 연맹(ZANU) 창립에 참여하여 간부가 되었다. 그러나 1964년 과한 언동을 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10년간 수감되었다.

(3)총선거 승리

1974년 가석방되었고 ZANU 의장에 취임하였다. 1976년 그가 이끄는 ZANU와 조슈아 은코모가 이끄는 ZAPU가 연합하여 애국전선(PF)을 결성했으며, 애국전선은 모잠비크 등 외국에 근거지를 두고 백인 정권에 대해 무장 투쟁을 전개했다. 그러나 백인인 이언 스미스 총리는 애국전선을 배제하고 국내의 흑인 온건세력과 협상하여 1979년 총선을 치렀다.

이에 애국전선은 총선 무효화를 주장하여 1980년 다시 총선이 치러졌으며, 그가 이끄는 ZANU가 최다 의석을 확보, 그는 그 해 4월 건국된 짐바브웨의 초대 총리로 취임했다.

(4)총리 재직 시절

초기에 무가베는 은코모가 이끄는 애국전선과 연정을 구성했고, 백인들의 정치참여도 보장하며 유화적인 정책을 취했다. 경제 개발을 위한 정책을 내놓고 흑인들의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1982년 은코모를 연정에서 축출했으며, 흑인들간의 민족 대립으로 혼란에 빠졌으며, 짐바브웨 경제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하던 백인들은 짐바브웨를 떠나며 국가 경제는 파탄상태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무가베는 차츰 독재 정책을 취하며 국내외의 비난을 받았다.

2.대통령 재임시

1987년 자신의 ZANU와 은코모가 이끌던 애국 전선을 통합하여 짐바브웨 아프리카 민족 연맹 - 애국 전선(ZANU-PF)으로 개편하였고, 다른 당들의 활동을 불법화하며 1당 독재 체제를 구축했다. 나라 정체를 의원내각제에서 1당 독재의 대통령제로 바꾸어, 총리제를 폐지하고 대통령에 모든 권한을 집중시키도록 하며 그 자신이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이후 공산주의자로써, 마오쩌둥의 계획경제체제를 받아들이고, 1990년대에는 일당독재의 마르크스주의 국가로 건설하려고 했으나, 국제 사회의 압력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90년 3월과 1996년 3월 대통령 선거에서는 80~90%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국제 여론의 악화로 2000년 총선에서는 야당의 참여를 허용하였으며, 모건 창기라이가 이끄는 민주변화운동(MDC)이 약진하였다. 그런 가운데 그 무렵 그는 백인들의 토지를 무상으로 몰수하여 국가 경제를 더 큰 혼란에 빠졌으나 한편 백인 대지주들의 착취에 시달리던 흑인 빈농들에게 토지를 나누어주어 빈농들에게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흑인들의 큰 지지를 받았다.

2002년 3월 대통령 선거에서는 모건 창기라이와 격돌했으나, 다시 다수표를 얻으며 당선되었다. 짐바브웨의 경제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로 전락하였으나, 그와 그의 부인 그레이스는 호화 생활을 하며 외국으로 많은 재산을 빼돌려 물의를 빚었다. 각국의 경제 제재와 식량난으로 초인플레이션 상황에 직면하자 여러 차폐 화폐개혁을 실행했으나 경제 혼란은 더욱 심해졌다.

2007년 여당과 야당의 합의하에 헌법을 개정하여 대통령 임기를 6년에서 5년으로 변경하였고, 이후 2008년 3월 총선과 대선을 맞이하였다.

(1)2008년 대통령 선거

총선에서는 창기라이가 이끄는 민주변화운동이 최다 의석을 확보했고, 대선에서는 창기라이가 47.9%의 득표율로 43.2%를 얻은 무가베를 꺾었다. 이에 그 해 6월 2차 투표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무가베측은 창기라이의 선거운동을 조직적으로 방해하였다. 창기라이는 선거에 부정이 개입되었다며 선거 무효를 주장했으나, 무가베는 선거를 강행, 창기라이가 불참한 가운데 85.5%의 득표율로 당선되어 5번째 대통령 임기를 수행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국제 사회에서는 이 선거가 무효이며, 짐바브웨에 대한 제재 조치를 강화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에 국내외의 비난에 직면한 무가베는 창기라이측과의 협상을 통해 헌법을 개정하여 총리직을 부활시키고 창기라이를 총리로 임명하였다.

(2)2013년 대통령 선거

2013년 7월 31일에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61.9%의 지지로 재선에 성공했다. 모건 창기라이 후보는 득표율 33.9%로 2위에 올랐다. 그러나 창기라이의 민주변화운동은 선거에 부정이 개입되었다고 주장하며, 보츠와나 정부는 보츠와나 선거감시단이 여러 부정행위를 목격하였다며 남부아프리카개발공동체(SADC) 회의에서 선거 검증이 필요하다는 점을 제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1] 선거 결과가 인정되면 로버트 무가베는 5년 임기를 더 수행하게 되어 8대 대통령에 취임한다.

(3)군부 쿠데타로 인한 축출

2017년 11월 15일, 무가베 대통령이 영부인인 그레이스 무가베에게 정권을 이양 하기 위해 군부 출신 부통령 에머슨 음난가그와를 경질한 것을 원인으로 군부에 의한 쿠데타가 일어나 구금되었다. 현재 무가베 대통령은 퇴진을 거부하고 있다.

3.기타

로버트 무가베는 현재까지의 통치 기간 동안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면서도 안으로는 돈을 많이 쓰고 호화로운 삶을 누렸다. 이 때문에 무가베는 세계 여론의 비난을 받았다.

서방 세계에서는 그를 가리켜 "아프리카 최악의 독재자"라는 별칭을 지어 올렸다고 한다.

백인 대지주들의 땅을 몰수해 흑인들에게 나누어주었기 때문에 일부 빈농들에게는 영웅으로 추앙받기도 하였다.

피델 카스트로, 넬슨 만델라, 우고 차베스와 절친이였다.

2005년에 이라크 전쟁을 비롯해 조지 W. 부시와 토니 블레어를 "히틀러와 무솔리니처럼 무고한 국가를 공격하기 위해 동맹을 결성한 불신성한 사람들이며, 세계 지배를 노리는 파시스트들"이라고 비판하여 국제적인 화제 거리가 되었다.

동성애를 '비아프리카적인 풍습'이라고 혐오하며, 동성 연애자, 동성애자 인권 단체들을 잔인하게 탄압하기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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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식 사회주의(국가사회주의) 독재자  무가베정부와 평민층의 빈곤 그리고 독재자 개인의 우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