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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수상과 매티스 장관 회담, 일미동맹 책무 결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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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수상과 매티스 장관 회담, 일미동맹 책무 결의

CIA Bear 허관(許灌) 2017. 2. 4. 09:26

 

아베 일본수상은 오늘 오후 5시반 경부터 수상관저에서 트럼프 정권 각료로서는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한 매티스 국방장관과 회담했습니다.

회담 첫머리에서 아베수상은 "지난번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로 회담했을 때, 매티스 장관이 첫 방문지로서 동아시아, 그리고 일본을 선택한 것은 동맹국으로 일본을 중시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아베 수상은 또, "매티스 장관, 그리고 트럼프 정권과도 일미동맹이 견고하다는 점을 국내외에 보여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확신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매티스 국방장관은, "이 지역을 먼저 방문하고 싶다고 희망한 이유는 워싱턴의 정권 이행기라도 미국은 100% 아베 수상, 일본 국민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간다는데 일절 오해가 없도록 하겠다는 생각에서였다"고 말했습니다.

매티스 장관은 또, "양국 모두 직면해 있는 다양한 과제, 그리고 북한의 도발 등에도 직면해 있어, 일미 안전보장조약 제5조가 정말로 중요하다는 점을 명확히 하려고 생각했다"며, "그것은 앞으로 5년 후, 10년 후에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일본에 대한 미국의 방위의무를 규정한 일미 안전보장조약 제5조의 책무를 다하겠다는 결의를 강조했습니다.

매티스 장관은 트럼프 정권 출범 후 첫 외국 방문지로서 한국을 방문한데 이어, 오늘부터 이틀간 일본을 방문해, 내일은 이나다 방위상과 일미 방위상 회담을 가질 예정입니다.

 

 

미 국방장관 "센카쿠 열도 일미 안보조약 적용 범위"

                                     오키나와 현 센카쿠 열도은 실정법상(영토 지배통치상) 일본 영토이다

회담에 동석한 일본 정부 고위관리는 기자들에게 매티스 국방장관이 회담에서 미국의 일본에 대한 방위 의무를 정한 일미 안전보장조약 제5조가 "오키나와 현 센카쿠 열도에도 적용된다"는 것을 분명히 말했다고 밝혔습니다.

회담에서는 또, 북한 관련 정세와 동중국해 등 해양 질서와 관련해 법의 지배 등 공통의 가치관에 대해 일미가 협력해 대응한다는데 일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한, 아베 일본 수상이 안전보장 관련법에 대해 설명하고, 일본이 적극적인 역할을 다하겠다는 생각을 나타낸데 대해 매티스 국방장관이 평가한다는 생각을 나타냈습니다.

한편 아베 수상이 오키나와의 미군 후텐마기지 이전 계획과 관련해 나고시 헤노코로의 이전 공사 상황을 설명한데 대해 매티스 국방장관은 "이전지는 헤노코 밖에 없다"는 인식을 나타내고 오키나와의 기지 부담 비용을 위해 대처해 간다는데 일치했습니다.

회담에서는 또, 트럼프 대통령이 앞서 증액을 요구하겠다는 생각을 나타낸 주일 미군의 주둔 경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북한정부 탄도 미사일 배치도[전방과 중앙(중간), 후방구역]

북한 전략 로켓군 배치도는 다음과 같다

전방구역(남한전역 공격 목표)과 중앙구역(주일미군과 일본, 러시아 극동지역 공격목표), 후방구역(괌과 태평양 미군기지, 중국 공격 목표) 으로 나누어 배치 돼 오고 있다

북한  3개의 탄도 미사일이 태평양 괌에도 도달할 수 있다

 

 

 

북한 지도부들이 두려워 하는 전쟁은 북한 자유화 민주화 세력과 연합군이 연합(결속)으로 추진하는 인민전쟁 모델이다

미국과 한국이 平和大忍, 信望愛(참고 포용) 대북정책으로  일관돼 있으며 북한 주민들 입장을 존중하는 것이 올바른다

북한정부의 재래식 핵무기정책보다는 전방구역[단거리 미사일], 중앙(중간)구역[중거리 미사일], 후방구역[장거리 미사일] 미사일정책을 견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민주주의 3대 원칙:"국민의(民有), 국민에 의한(民治), 국민을 위한(民享) 정부"[링컨의 인민전쟁 모델]

북한 주민들의  김정은 독재정부 항거-->자유화 민주화 세력 임시정부 수립--->북한 내부 내전-->연합군 개입-->중국정부 입장과 내전종식, 남북통일..

-남북합의로 남북통일을 하는 것은 북한정부 스스로 중국정부(개혁개방정책) 모델로 나아가는 것이다-

-미국 트럼프정부의 도움과 중국정부 협조로 중국열차가 서울까지 왕래할 수도 있다는 의견이 머리소리함 내용입니다[북중철도 개통 60 주년 "100 만명 승객 수송"을 했습니다

 2014년 4월 1일 오전 10시 평양도착 95계열 열차가 단둥역(丹東驛)에서 출발하여 북중 철도 안전운행 60 주년을 맞이했습니다 북중 국경 지대에 있는 단둥역 "국가 첫째 "으로 불리우는 중국 · 외국인 관광객 수송 중국 제품 북한수출 수송 임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단둥역(丹東驛) 1954 4 1일부터 북중철도 수송사업을 시작, 매주 4 개의 열차가 베이징(북경) - 단둥(단동) - 평양을 오고 가고(왕복 운행하고) 있습니다

일부 통계에 따르면 북중철도 승객 수는 현재까지 100만 명을 넘어 섰습니다]-

 

센카쿠 열도

센카쿠 열도는 동중국해 남부에 위치한 5개의 무인도와 3개의 암초를 말한다. 중국에서는 댜오위다오 열도라고 부른다.

청일전쟁에서 패한 중국은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타이완 섬과 부속 도서 및 펑후 열도를 일본에 할양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타이완과 펑후 열도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했으나, 댜오위다오 열도 등은 미국이 위임통치하는 오키나와의 관할하에 두었다. 당시 중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1969년 센카쿠 열도 부근 해역에 천연가스와 석유가 대규모로 매장되어 있는 것이 알려지면서 분쟁지역이 되었다. 미국이 오키나와를 일본에 반환하자 일본은 댜오위다오 열도 등을 자국 영토로 편입하고 실효적 지배를 해오고 있으나, 중국·타이완도 함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한족, 만주족(동북3성), 몽골족(내몽골), 후이족(회족, 신강), 티베트족(티벳) 등 5개 큰 민족과 50개 소수민족으로 건국한 연합국가이다 

중국이나 한국, 일본등은 한자어 성씨(姓氏)와 한문을 사용하고 있다

동중국해 남부에 위치한 다섯 개의 무인도와 세 개의 암초를 말한다. 일본 오키나와[沖繩]의 나하(那覇)로부터 남서쪽으로 약 400㎞ 떨어져 있고, 중국 본토에서는 350㎞, 타이완의 지룽[基隆]으로부터는 약 175㎞ 떨어져 있다. 중국에서는 댜오위다오 열도[釣魚島列島], 댜오위타이 군도[釣漁臺群島]라고 부른다. 센카쿠 열도라는 이름은 일본이 1884년 영국 해군이 붙인 '피너클 아일랜드'(Pinnacle Islands, 뾰족한 섬)에서 본뜬 것이다.

명나라 초기 푸젠성[福建省]과 타이완성[臺灣省] 어민들이 고기를 잡거나 약초를 캐어 오면서 열도의 존재가 알려져서 중국의 판도에 들어갔다. 영락(永樂) 연간(1403~1424년)에 출판된 〈순풍상송 順風相送〉이란 책에 '조어서'(釣魚嶼)란 이름으로 역사에 처음 등장한다. 이는 1984년 오키나와에 살던 고가 다쓰시로[古賀辰四郞]가 발견해 1895년 오키나와 현 영토에 정식 편입했다고 주장한 것보다 400년이나 앞섰다. 1863년 청나라가 제작한 지도에는 푸젠성에 소속된 댜오위타이 군도란 이름으로 표기되어 있다.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청나라 정부는 1895년 4월 '시모노세키 조약'[下關條約]을 통해 타이완 섬과 그에 부속된 도서 및 펑후[彭湖] 열도를 일본에 할양했다. 이후 일본은 새로 제작하는 지도에 중국 이름인 댜오위다오 열도 대신 센카쿠 열도라고 표기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일본은 미국과 체결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타이완과 펑후 열도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한다고 했으나, 댜오위다오 열도 등 도서는 미국이 위임통치하는 오키나와의 관할 안에 두는 것으로 했다. 당시 저우언라이[周恩來] 중화인민공화국 총리는 성명을 통해 "중국 정부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결코 인정하지 않겠다"고 밝혔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69년 유엔의 아시아극동경제위원회에서 센카쿠 열도 부근 해역에 천연가스와 석유가 대규모로 매장되어 있다고 발표하면서 일대의 영해는 일약 황금지대로 변모해 분쟁 지역으로 급부상했다. 1972년 미군이 오키나와를 일본에 반환하자 일본은 댜오위다오 열도 등 도서를 자국의 영토로 편입한 후 주위에 해양순시선을 배치해 감시하는 등 실효적 지배를 해오고 있으나, 중국과 타이완도 함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어서 분쟁이 끊이지 않는 지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