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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열병식으로 한국전쟁 정전60주년 기념 본문

Guide Ear&Bird's Eye/한국전쟁과 유엔군 16개국 자료 발굴

북한, 열병식으로 한국전쟁 정전60주년 기념

CIA bear 허관(許灌) 2013. 7. 27.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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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27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을 진행하여 한국전쟁 정전60주년을 경축했습니다. 김정은 북한 최고지도자와 북한 당과 정부, 군대의 지도자들이 참석했습니다.

열병식은 오전 10시에 시작되었습니다. 최룡해 북한인민군 총정치국장은 축사에서 북한은 경제와 문화건설 그리고 인민생활수준 향상을 가장 절박한 과업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평화로운 환경을 수요한다면서 전체 인민군장병과 인민들은 국가보위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열병식에는 북한 인민군 부대 1만여명 군인들이 참가했으며 기병대열과 노전사대열, 보병대열, 기계화대열이 잇달아 주석단앞을 지나며 사열을 받았습니다.

열병식이 끝난후 평양시민들이 꽃차행진을 진행했습니다.

최근 북한은 여러가지 경축행사를 진행했습니다. 대형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이 평양 5.1경기장에서 열리고 있으며 27일 조국해방전쟁승리 기념관이 정식 개관했습니다.

지금 북한 방문중인 중국정부대표단과 중국인민지원군 노전사대표단이 요청에 응해 상술한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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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전승절' 맞아 대규모 열병식 거행

                                                                      전승절 열병식을 지켜보고 있는 북한 김정은과 당군 고위간부

한국전쟁 정전 60주년을 맞아 북한이 27일 대규모 열병식을 벌였습니다.

이 열병식은 북한이 ‘조국해방전쟁승리일’로 부르는 기념일을 축하하는 행사였습니다.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군인 수천 명과 탱크, 그리고 미사일이 행진하는 가운데 북한 지도자 김정은은 당군 고위 간부, 그리고 축하사절로 참석한 리위안차오 중국 국가부주석과 함께 단상에서 열병식을 지켜봤습니다.

열병식에서 연설에 나선 최룡해 북한 총정치국장은 “경제문화 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을 초미의 과제로 내세우는 우리에게 평화적 환경은 더없이 귀중하다"라며 "현실이 보여주는 것처럼 평화를 바란다면 전쟁에 준비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한편 한국 연합뉴스는 열병식에서 300여종의 무기가 등장했지만 새로운 무기가 없었다고 전했습니다.

VOA 뉴스

 

*소련은 유엔에서 한국전쟁 참전 결의안 선거에서 기권을 했으며 한국전쟁 개입을 하지 않았으며 한국전쟁 이후 소련 공산당 출신 허가이나 박헌영등이 북한 권력에서 제거되었다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 중국 공산당 출신이면서 2차대전 소련군측 국제여단출신 김일성이가 북한 권력을 장악했다 한국전쟁은 동북3성을 점령한 국제여단 출신 조선족 추축으로 전쟁을 추진했다 후방 전쟁지원은 임표등 만주 동북3성 군부 실권자들이었다

 

                                유엔군 16개국 포로 봄볕 즐기는 중국 인민해방군 모습(그들은 이데올로기 모른채 한국전쟁에 참가했습니다 동북 3성 청년들이)

 

                                                                                 한국전쟁 참전한 중국인민해방군 여군 모습  

 

 

 

 

 

 

 *한국전쟁(6.25 동란) 중 북한을 지지하고 도왔던 국가들은 어떤 나라들입니까? 공식적으로 중국과 체코슬로바키아등 2개국

북한의 전격적인 남침은 유엔내에서는 유엔군을 구성하여 북한의 불법적 남침을 격퇴하려고 하였습니다. 소비에트연방(소련의 정식명칭)은 유엔의 투표에서 국제여론을 의식하고 기권을 하였으며 반대가 없었기 때문에 유엔군이 결성되어 전장에 투입되었습니다.

 당시 유엔군은 한국을 제외한 16개국이 군사적 지원을 하였으며 비공식적 지원국은 2개국, 의료지원국은 5개국이었습니다. 이에 반해 북한의 경우 중화인민공화국이 공식적으로 지원을 하였고 소비에트 연방은 비공식 지원국이었습니다. 여기에 체코슬로바키아가 의료지원을 하였습니다(소련은 유엔에서 한국전쟁 참전 결의안 선거에서 기권을 했으며 한국전쟁 개입을 하지 않았으며 한국전쟁 이후 소련 공산당 출신 허가이나 박헌영등이 북한 권력에서 제거되었다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 중국 공산당 출신 김일성이가 북한 권력을 장악했다. 한국전쟁 때 인해전술 떼거리 중국 인민해방군 100만명이 희생했다 중국도 남북지역 구분으로 한국전쟁을 지지하는 세력은 한족보다는 남부지역 1억 규모 인구 장족과 만주지역 다수 민족인 거란, 만주족등이 지지하는 입장이다 이들은 한국전쟁과 한족이 전쟁에 개입할 때 독립운동과 세력확대로 새로운 군사대국으로 등장을 시도해왔다 중국지역에서 한족 이외 다른 민족의 인구 3억에서 4억 규모이다 김일성은 중국 공산당 출신으로 중국인, 만주인, 조선인 연합군 소련 극동사령부 88특별여단 소속 대대장 출신이다 소련군 극동사령부는 만주지역과 한반도지역 점령한 후 중국인과 조선인 혼성군 88특별여단 주축으로 중국 내전 공산혁명에 주력부대었다 임표 동북3성 총사령관으로 만주국을 소련군과 함께 점령하는 데 큰 공헌을 했으며 중국내전 승리에  결정적  지위와 역할을 했으며 내전승리 이후 조선의용대 출신 지원과 함께 남침을 추진했다 임표, 팽덕회 동북 3성등이 한국전쟁 배후세력으로 활동했다 임표는 모택동 다음 2인자로 문화혁명 주도와 중미수교 이후 모택동을 암살하려다가 실패이후 소련으로 망명 도중 살해되었다 중국정부 내부 반미 친북 김일성세력이 소련군 지원세력이다 임표나 김일성등은 소련군 즉 KGB 조직원이었다 이들 소련방위대로 중국과 북한에서 활동해왔다 중국 동북 3성이 남침을 도와줄때 북한정부가 남침을 할 것으로 본다 중국과 미국 수교이후 조국을 소련으로 생각하는 소련 공산당 전위대가 대부분 제거되었다 중국이나 북한 내부 공산주의 세력 태자당 출신이 과거처럼 외국세력에 아부할 가능성도 있다)

 

                                                          모스크바 거주 레베데프씨가 제공한 사진 내용물 중 소련군정과 북로당 간부들...
"지도자 김은 스티코프가 주도한 소련군 극동사령부 작품이었다 1946년 8월 30일 소련군정 지도부가 스탈린의 지시에 따라 북조선 공산당과 신민당을 합당 북조선노동당을 결성한 후 당 고위간부들과 기념 촬영을 했다 앞 줄 오른쪽에는 허가이. 김일성. 소련군정 정치사령관 레베데프 소장. 김두봉. 소련군정 정치국장 이그나치프 대좌. 김책..뒷 줄 오른쪽에는 주영하. 박일우. 최창익등"

북로당은 1945년 10월 평양에서 열린 <조선공산당 서북5도 당책임자 밀 열성자 대회>에서 채택한 <정치노선과 조직강화에 관한 결정서>에 의거, 창설된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을 모체로 하고 있다
같은 해 8월 29일 중국 옌안(延安)에서 평양으로 돌아온 조선독립동맹을 중심으로 지식층, 소시민층을 망라하고 있던 조선신민당과 합당 북조선노동당으로 발족하였다 합당선언에서 북조선 노동대중의 이익을 옹호하는 대중적 정당을 세울 필요에 의해서 결성되었다고 밝혔다
강령으로 민주주의적 조선자주독립국가 건설, 일본인. 민족반역자. 지주의 토지몰수와 토지없는 농민에게 무상분배, 일본인 및 민족반역자 소유의 공장. 광산. 철도. 운수.통신기관등의 국유화, 8시간 노동제 실시, 여자들에게 남자와 동등한 임금지급등을 내걸었다 북조선노동당 위원장에 김두봉(부산출신이며 조선의용대 독립동맹주석 출신-모택동주의자), 부위원장에 김일성(중국공산당과 소련군 극동사령부 88특별여단 정찰국 대대장 출신). 허가이(소련공산당 간부-모스크바의 로모노소프대학 졸업, 우즈베크공화국 타슈켄트주당() 비서 출신)가 선출되었다
북로당은 1948년 8월 정권수립을 위해 남조선노동당과 <연합위원회>를 구성하였고 정권수립(1948년 9월 9일)이후인 1949년 6월 30일과 7월 1일 평양에서 비공개로 열린 남북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1국1당 원칙에 따라 현재의 조선노동당으로 통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ㄱ.소련군정 정치사령관 레베데프 소장과 소련군정 정치국장 이그나치프 대좌
-소련군 연해주관구 제25군단 사령부 정치위원과 소련군정 정치사령관 니콜라이 레베데프(Nikolai G Lebedebv)
(ㄱ)1945년 8월 북한을 점령하고 공산정권 창출의 주역을 맡았다
소련군 25만명이 북한지역에 배치했다
(ㄴ)소련군정은 극동사령부 예하 제1전선 군사령부 T.F 스티코프 상장 지시를 받았다
-평양주둔 소련군 사령관 스티코프 대장
-미소공동위원회 소련측 대표
-초대 북한주재 소련대사

(ㄷ)소련군 극동사령부는 대일선전포고전에 한반도 침투조와 선발대를 투입했고 1945년 8월 9일부터 북한지역에 파견된 첩보대 조선인 박창우등과 조선인 소련군 극동정찰국 대원이었다
북한 김일성이가 소련군 극동사령부 정찰국 대대장 출신이며 북한잠입 활동때는가명 김영환으로 사용했다
(ㄹ)중국내전과 한국전쟁때 소련군 극동사령부가 배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소련군 극동사령부는 만주국을 점령한 후 임표에게 일본군 무기를 인계했으며 임표을 동북 3성 총사령관으로 임명했으며 북한지역을 점령한 후 김일성에게 총사령관을 임명했으며 한국전쟁때는 임표등의 동북3성 소련군이나 구일본군 탱크나 무기와 조선의용대 지원으로 남침을 추진했다
E.소련군 극동사령부 정찰국 요원(사진 인물)---김일성(김영환). 김책등
ㄴ.연안파---조선의용대(모택동부대)<사진인물,김두봉. 최창익>
(ㄱ)정치조직 독립동맹(주석 김두봉. 부주석 최창익)과 군사조직 조선의용대(총사령관 무정)
(ㄴ)주석 김두봉(부산 동래 출신). 부주석 최창익(허정숙의 남편)
(ㄷ)김무정(무정)----함북 경성출신이며 중앙고보 중퇴 그리고 북방군관학교 포병과 졸업, 한국전쟁때 팽덕회등 중국 인민군사령관과 친교, 제2군단장으로 낙동강까지 진격 그리고 후퇴 중에는 평양방위사령관으로 재직 중 패전으로 해임. 51년 47세로 죽음..
(ㄹ)한국전쟁 주도는 해군이나 공군등은 소련군 극동사령부 출신이 주도했으며 탱크나 포병등은 중국 팔로군(중국인민군) 출신 조선의용대 출신이 주도했다
소련군 극동사령부는 민주국을 점령한 후 중국인민군에게 일본 관동군 무기를 인계하여 중국내전에서 승리할 수 있게 했으며 중국내전에서 모택동부대가 승리하자 동북3성 총사령관 임표등을 한국전쟁 참전 사령관으로 임명하여 한국전쟁을 추진했다 한국전쟁 남침 주력부대는 조선의용대이었다 조선의용대와 북한 주둔 소련군은 동북3성 팔로군으로 중국 공산화 내전에 투입하여 큰 공헌을 세웠다

*김일성은 중국 동북항일연군 제1 팔로군 제6사장을 역임했으며 소련군 88특별여단 대위로 제4대대장을 역임했다 그래서는 김일성은 중국 모택동과 소련정부 스탈린 전폭적 지원으로 북한권력을 장악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체결 당시 유엔 연합군의 병력은 932,964 명으로 최대규모를 이루었다. 각국별 병력사항은 다음과 같다. (한국군 이외 유엔군 16개국, 한국군도 유엔군으로 참전 그리고 지금도 휴전 경계병 한국군은 유엔군 지위와 역할)
한국 - 590,911 콜롬비아 - 1,068 미합중국 - 302,483 벨기에 - 900 영국 - 14,198 남아프리카 - 826 캐나다 - 6,146 네덜란드 - 819 터키 - 5,455 룩셈부르크 - 44 호주 - 2,282 필리핀 - 1,496 뉴질랜드 - 1,389 태국 - 1,294 이디오피아 - 1,271 그리스 - 1,263  프랑스 - 1,119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