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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권 정치 첫 진출 앞둔 수치 여사 본문
수십년 동안 재야에서만 활동했던 미얀마 민주화 운동지도자 아웅산 수치 여사가 제도권 정치 진출을 앞두고 있다.
수치 여사는 1일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옛 양곤의 빈민층 지역인 카우무 지역에 출마했고, 국민으로부터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어 국회의원 당선이 확실시되고 있다.
수치 여사는 이번 선거에서 승리하면 장기간의 재야 생활을 마무리하고 제도권 정치로 진출, 공식적인 활동을 통해 국가 민주화에 나서게 된다.
지난 1945년 미얀마 독립 영웅인 아웅산 장군의 딸로 태어난 수치 여사는 최근 21년 동안 15년가량을 구금 상태로 지내는 등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 끝에 미얀마 민주화 운동 지도자로 우뚝 섰다.
아웅산 장군은 수치 여사가 두 살때 암살됐고, 수치 여사는 인도대사였던 어머니를 따라 인도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뒤 1964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 진학해 철학과 정치학, 경제학을 공부했다.
옥스퍼드대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간 수치 여사는 영국인 교수인 마이클 아리스를 만나 결혼, 슬하에 두 아들을 낳고 기르며 평범한 가정주부로 지냈다.
수치 여사는 1988년 모친이 위독하다는 말을 듣고 귀국한 뒤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에 무차별 발포하는 군정의 잔혹성을 목격하고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다.
수치 여사는 야당인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을 창설하는 등 정치 지도자로 급부상했지만 민주화 세력을 탄압하던 군정에 의해 1989년 첫 가택연금 조치를 당했다.
NLD는 1990년 수치 여사가 구금된 가운데 실시된 총선에서 485석 중 392석을 차지하며 압승을 거뒀으나 미얀마 군정은 정권 이양을 거부했다.
수치 여사는 1995년 가택연금이 해제됐으나 이후 구금과 석방을 반복하며 재야활동을 벌였고, 지난 2010년 말 20년만에 총선이 실시될 당시 전격 석방됐다.
수치 여사는 비폭력 민주화 운동을 벌인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과 유네스코 인권상, 광주인권상 등을 수상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남편의 임종을 지켜보지도 못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미얀마 군정은 수치 여사의 남편이 1999년 암으로 사망할 무렵 수치 여사가 영국으로 건너가 남편을 볼 수 있도록 했지만 수치 여사는 미얀마 재입국이 허용되지 않을 것을 우려해 미얀마를 떠나지 않았다.
수치 여사는 이번 선거에서 당선되면 공식 경로를 통해 꿈에도 그리던 국가 민주화를 추진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수치 여사와 야당인 NLD가 선거에서 승리하더라도 그 영향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얀마는 지난해 3월 민간정부를 출범시켰으나 대통령 등 정부와 의회의 요직을 군부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어 수치 여사의 영향력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군부의 후원을 받고 있는 여당 통합단결발전당(USDP)은 2010년 실시된 총선에서 전체 의석의 76.5%를 차지하며 의회를 장악했다.
미얀마 정치 분석가인 아웅 나잉 우는 "수치 여사의 권한은 극도로 제한될 것"이라며 "보궐선거 결과가 미얀마 내의 권력구도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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