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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평화상 수상자 왕가리 마타이 씨의 생전 모습 본문

세계각국 자유사회 인물 발굴-許灌

노벨평화상 수상자 왕가리 마타이 씨의 생전 모습

CIA bear 허관(許灌) 2011. 9. 28. 00:01

일본어로 '아깝다'는 의미인 '못타이나이'를 사용해 환경 보호의 소중함을 호소한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케냐의 왕가리 마타이 씨가 25일 입원 중이던 나이로비의 병원에서 타계했습니다.

향년 일흔 한 살입니다.

마타이 씨는 1977년 케냐에서 환경보호단체를 설립하고 조림활동을 계속 펼쳐 환경보호에 공헌한 업적이 높이 평가돼, 2004년 아프리카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국제사회에서 마타이 씨의 공적을 기리고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물결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케냐의 무쇼카 부통령은 26일 나이로비에서 기자들에게, 마타이 씨는 아프리카의 상징으로서 활약했다고 밝히고, 그녀가 세상을 떠난 것은 케냐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와 전세계로서도 커다란 손실이라고 말하고 국민들과 함께 묵념했습니다.

또한 미국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마타이 씨의 공적을 기리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클린턴 국무장관도 마타이 씨는 개발도상국에서 자신이 가진 노력을 발굴하지 못하는 여성들의 옹호자였다고 말하고, 그녀로부터 좋은 자극을 받은 한 사람으로서, 마타이 씨를 친구로 부를 수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일본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마타이 씨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오늘 해설에서는 생전의 마타이 씨의 모습에 대해, 마타이 씨의 요청으로 케냐에서 현지조사를 실시하고 함께 조림활동을 펼쳐온 식물생태학 전문가인 미야와키 아키라 요코하마 국립대학 명예교수에게 들어보겠습니다.

왕가리 마타이 씨는 이상주의자이면서도 즉석에서 실천에 옮기는 분이었습니다.

지금의 과학자와 정치가들은 대부분 말로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지만, 정작 자기자신은 아무것도 하지않고, 부하들에게 일을 맡긴다든지 다른 사람들에게 일을 넘기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마타이 씨는 자기자신도 반드시 함께 나와서 긴 전통의상의 끝자락이 모두 더러워지는 것은 아닌지 생각이 들 정도로 함께 발로 뛰었습니다.

그러면서 몰두한 채 함께 나무를 심는 모습이 지금도 정겹게 다가옵니다.

마타이 씨의 조림활동 원점에는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평화로워야 하고 추한 싸움은 그만두고 서로 조금씩 인내하면서 함께 미래를 향해 살아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곳 토지의 나무로 숲을 만들자는 하나의 생각에 집중하면서 마지막까지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 뜻을 일관해 왔습니다.

마타이 씨의 그러한 삶의 방식에 전세계 사람들이 감탄하고 있습니다.

오늘 해설에서는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케냐의 환경운동가 왕가리 마타이 씨의 생전 모습에 대해, 미야와키 아키라 요코하마 국립대학 명예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